세종실록60권, 세종 15년 6월 18일 己亥 7/7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황희·맹사성·권진 등을 불러 안숭선으로 하여금 국사를 논의하게 하다
국역
황희·맹사성·권진·최윤덕·허조·하경복·안순·노한·신상 등을 불러 안숭선으로 하여금 국사를 논의하게 하였다.
첫째는,
"중국에서 맹 지휘(孟指揮) 및 최진으로 하여금 칙서를 가지고 본국에 이르러 인구와 마소와 재산을 찾아서 각각 본곳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니, 정토해서 얻은 마소와 가산은 이미 여연과 강계의 인민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곧 회수하여 최진이 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최진이 본국에 온 뒤에 회수할 것인가."
하니, 황희·맹사성·신상 등은 논의하기를,
"이제 듣건대, 야인들이 고명(誥命)과 인장(印章)까지 모두 빼앗겼다고 황제에게 고하였다 하니, 본국에서 얻은 물건은 모두 내어놓고, 고명과 인장만 내어놓지 아니하면 중국에서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자(王者)의 군사는 정의(正義)를 위하여 토벌한 것뿐인데, 이제 저들의 의복과 재산을 내놓으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포로한 인구와 마소 및 금은(金銀) 기명은 칙유(勅諭)에 의하여 돌려주고, 그 나머지 재물은 태워 버렸다고 대답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고, 권진·최윤덕·허조·하경복·노한 등은 논의하기를,
"민간에 주어서 이미 쓴 물건은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흩어지지 아니한 물건은 모두 찾아서 관(官)으로 가져와, 최진이 오기를 기다리게 하소서."
하고, 안순은 논의하기를,
"인민이 이미 받은 물건을 추탈(追奪)할 수 없는 것이오. 관에 있는 금은과 띠[帶] 같은 물건은 〈주어도〉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둘째는,
"지금 마좌화(馬佐和)가 청하기를, ‘동맹가첩목아의 아들 도적(都赤)이 맹가불화(孟哥不花)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전번 토벌할 때에 포로되어 왔으니, 만일 살아 있으면 본곳으로 돌려보내어 맹가첩목아의 소청을 막으소서.’ 하였으니, 어떻게 처리할까."
하니, 희·사성·진·윤덕 등의 논의는,
"만일 살아 있으면 그 청대로 보내 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경복·순·한·상 등의 논의는,
"지금 중국에서 포로된 인구를 각각 본곳으로 돌려보내라고 칙유하였은 즉, 본국에서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손녀뿐만 아니라 그들이 요청하는 사람을 모두 돌려보내어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편하고 유익할 듯합니다."
하였다. 숭선이 들어와서 〈여러 사람의 논의를〉 아뢰니, 임금이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숭선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매, 숭선이 아뢰기를,
"빼앗아 온 물건에는 본디 인장(印章)이 없고, 다른 물건은 장졸들이 무리하게 빼앗아 온 것일지라도 이미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제 전해 들은 말을 가지고 급급히 회수하면 백성들에게 신의를 보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설사 칙유(勅諭)에 모두 돌려주게 하였다 할지라도 어찌 일일이 수를 헤아려서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최진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마소와 금은은 돌려보내고, 기타 잡물은 이미 인민들에게 주어서 뚫어지고 찢어졌다고 대답하면, 황제가 일시 동인(一視同仁)하는 도량으로서 어찌 일일이 강제로 거두어서 돌려주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최진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다시 논의하여도 늦지 않겠다."
하였다.
원문
○召黃喜、孟思誠、權軫、崔閏德、許稠、河敬復、安純、盧閈、申商等, 令安崇善議事: 其一曰: "上國令孟指揮及崔眞, 齎勑到國, 推刷人口牛馬財産, 各還本處, 前日征討所獲牛馬家財, 已給閭延、江界人民, 卽令還收, 待崔眞之行乎? 待崔眞到國, 然後還收乎?" 喜、思誠、商等議曰: "今聞彼人奏云: ‘以至誥命印章, 亦皆奪去。’ 本國盡出所獲之物, 而獨不出誥命印章, 則上國不無疑焉。 況王者之師, 擧義討罪而已,! 今出彼人衣服財産, 不亦愧乎? 其人口牛馬金銀器皿, 依勑諭以還, 其餘財物, 以燒焚爲答, 似爲便益。" 軫、閏德、稠、敬復、閈議曰: "給付民間而已用之物則已矣, 不散之物, 宜竝推刷入官, 以待崔眞之行。" 安純議曰: "人民已受之物, 不可追奪, 在官若金銀若帶等物, 似爲可也。" 其二曰: "今者馬佐和請曰: ‘童猛哥帖木兒之子都赤娶孟哥不花之女, 前者征討之時, 被擄而來。 如其生存, 請還本處, 以塞猛哥帖木兒之請。’ 何以處之?" 喜、思誠、軫、閏德議曰: "如其生存, 則依請給送可也。" 敬復、純、閈、商議曰: "今上國勑諭, 被擄人口, 各還本處, 則本國不得已發還矣。 如此則非獨孫女, 其請人, 竝皆還送, 以悅其心, 似爲便益。" 崇善入啓, 上良久思之, 謂崇善曰: "爾心以爲何如?" 崇善啓曰: "奪來物件, 本無印章, 其他物件, 雖將卒非理奪來, 已分諸人民, 今因傳聞之言, 汲汲還收, 則恐非示信於民之義。 且設使勑諭, 竝令還給, 豈一一計數傳付乎? 待崔眞之來, 送還牛馬金銀, 其他雜物, 已給人民, 服之穿裂, 以此爲辭, 則以皇帝一視同仁之量, 豈一一强收還送乎?" 上曰: "待崔眞來, 更議未晩。"
국역
황희·맹사성·권진·최윤덕·허조·하경복·안순·노한·신상 등을 불러 안숭선으로 하여금 국사를 논의하게 하였다.
첫째는,
"중국에서 맹 지휘(孟指揮) 및 최진으로 하여금 칙서를 가지고 본국에 이르러 인구와 마소와 재산을 찾아서 각각 본곳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니, 정토해서 얻은 마소와 가산은 이미 여연과 강계의 인민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곧 회수하여 최진이 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최진이 본국에 온 뒤에 회수할 것인가."
하니, 황희·맹사성·신상 등은 논의하기를,
"이제 듣건대, 야인들이 고명(誥命)과 인장(印章)까지 모두 빼앗겼다고 황제에게 고하였다 하니, 본국에서 얻은 물건은 모두 내어놓고, 고명과 인장만 내어놓지 아니하면 중국에서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자(王者)의 군사는 정의(正義)를 위하여 토벌한 것뿐인데, 이제 저들의 의복과 재산을 내놓으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포로한 인구와 마소 및 금은(金銀) 기명은 칙유(勅諭)에 의하여 돌려주고, 그 나머지 재물은 태워 버렸다고 대답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고, 권진·최윤덕·허조·하경복·노한 등은 논의하기를,
"민간에 주어서 이미 쓴 물건은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흩어지지 아니한 물건은 모두 찾아서 관(官)으로 가져와, 최진이 오기를 기다리게 하소서."
하고, 안순은 논의하기를,
"인민이 이미 받은 물건을 추탈(追奪)할 수 없는 것이오. 관에 있는 금은과 띠[帶] 같은 물건은 〈주어도〉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둘째는,
"지금 마좌화(馬佐和)가 청하기를, ‘동맹가첩목아의 아들 도적(都赤)이 맹가불화(孟哥不花)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전번 토벌할 때에 포로되어 왔으니, 만일 살아 있으면 본곳으로 돌려보내어 맹가첩목아의 소청을 막으소서.’ 하였으니, 어떻게 처리할까."
하니, 희·사성·진·윤덕 등의 논의는,
"만일 살아 있으면 그 청대로 보내 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경복·순·한·상 등의 논의는,
"지금 중국에서 포로된 인구를 각각 본곳으로 돌려보내라고 칙유하였은 즉, 본국에서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손녀뿐만 아니라 그들이 요청하는 사람을 모두 돌려보내어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편하고 유익할 듯합니다."
하였다. 숭선이 들어와서 〈여러 사람의 논의를〉 아뢰니, 임금이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숭선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매, 숭선이 아뢰기를,
"빼앗아 온 물건에는 본디 인장(印章)이 없고, 다른 물건은 장졸들이 무리하게 빼앗아 온 것일지라도 이미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제 전해 들은 말을 가지고 급급히 회수하면 백성들에게 신의를 보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설사 칙유(勅諭)에 모두 돌려주게 하였다 할지라도 어찌 일일이 수를 헤아려서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최진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마소와 금은은 돌려보내고, 기타 잡물은 이미 인민들에게 주어서 뚫어지고 찢어졌다고 대답하면, 황제가 일시 동인(一視同仁)하는 도량으로서 어찌 일일이 강제로 거두어서 돌려주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최진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다시 논의하여도 늦지 않겠다."
하였다.
원문
○召黃喜、孟思誠、權軫、崔閏德、許稠、河敬復、安純、盧閈、申商等, 令安崇善議事: 其一曰: "上國令孟指揮及崔眞, 齎勑到國, 推刷人口牛馬財産, 各還本處, 前日征討所獲牛馬家財, 已給閭延、江界人民, 卽令還收, 待崔眞之行乎? 待崔眞到國, 然後還收乎?" 喜、思誠、商等議曰: "今聞彼人奏云: ‘以至誥命印章, 亦皆奪去。’ 本國盡出所獲之物, 而獨不出誥命印章, 則上國不無疑焉。 況王者之師, 擧義討罪而已,! 今出彼人衣服財産, 不亦愧乎? 其人口牛馬金銀器皿, 依勑諭以還, 其餘財物, 以燒焚爲答, 似爲便益。" 軫、閏德、稠、敬復、閈議曰: "給付民間而已用之物則已矣, 不散之物, 宜竝推刷入官, 以待崔眞之行。" 安純議曰: "人民已受之物, 不可追奪, 在官若金銀若帶等物, 似爲可也。" 其二曰: "今者馬佐和請曰: ‘童猛哥帖木兒之子都赤娶孟哥不花之女, 前者征討之時, 被擄而來。 如其生存, 請還本處, 以塞猛哥帖木兒之請。’ 何以處之?" 喜、思誠、軫、閏德議曰: "如其生存, 則依請給送可也。" 敬復、純、閈、商議曰: "今上國勑諭, 被擄人口, 各還本處, 則本國不得已發還矣。 如此則非獨孫女, 其請人, 竝皆還送, 以悅其心, 似爲便益。" 崇善入啓, 上良久思之, 謂崇善曰: "爾心以爲何如?" 崇善啓曰: "奪來物件, 本無印章, 其他物件, 雖將卒非理奪來, 已分諸人民, 今因傳聞之言, 汲汲還收, 則恐非示信於民之義。 且設使勑諭, 竝令還給, 豈一一計數傳付乎? 待崔眞之來, 送還牛馬金銀, 其他雜物, 已給人民, 服之穿裂, 以此爲辭, 則以皇帝一視同仁之量, 豈一一强收還送乎?" 上曰: "待崔眞來, 更議未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