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세종실록59권, 세종 15년 2월 15일 己亥 2/7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의정부·육조 등에게 파저강 야인에 대한 접대 방식과 토벌할 계책 등을 진술하게 하다

신역 바로가기

국역

임금이 장차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토벌하려고 대신에게 시험하고자 하여, 비밀히 의정부·육조·삼군 도진무 등에게 〈저들을〉 접대할 방법과 죄를 성토(聲討)할 말과 토벌할 계책 등을 각각 진술하게 하니, 영의정 황희는 아뢰기를,

"만약 그 죄를 성토 하려면, 마땅히 말하기를, ‘홀라온 올적합(忽剌溫兀狄哈)은 본국과는 일찍이 상통하지 아니하여 길의 방향과 산천의 형세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20여 일의 노정(路程)을 넘어서 깊이 들어와 도둑질하였겠는가. 또 너희들과 더불어 오랜 원수가 져 있는데, 너희들을 침범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변경수비를 넘어 들어와서 감히 침략을 방자히 하였으니, 이는 실정에 가깝지 아니한 말이다. 너희들이 일찍이 교호(交好)로써 우리 변장(邊將)을 달래어, 그 방비에 게을리하는 틈을 타서 몰래 살그머니 나와 도둑질하여 무고한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고는, 자기의 죄를 숨기기를 꾀하여 거짓으로 올적합을 칭탁한 정적(情迹)이 매우 분명하다. 만일 올적합이 도둑질하고, 너희들이 사로잡힌 인구를 쳐서 빼앗았다면 마소와 재물만을 어째서 빼앗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이 가히 의심스럽다. 너희들이 만약 반성하여 잘못이 없다면, 포로된 사람을 압송(押送)하는 자가 공을 자랑하고 상(賞)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 일인데, 본국의 길가는 사람을 만나 급하게 교부(交付)하고는 스스로 의혹하여 도망해 피하였으니, 정실(情實)이 곧지 못하다.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자도 말하기를, 「너희들이 겉으로는 올적합을 포위하였으나, 실상은 화호(和好)하여 혹 가슴을 합하여 서로 잡으며, 혹 서로 술과 고기를 먹었다.」고 하니, 너희들이 끌어 들여서 변경을 범한 것이 틀림없다. ’고 하여, 이로써 죄를 성토하고,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다 돌려보내게 하되, 저들이 만약 좇지 아니하거든, 삼가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의 선유(宣諭)한 성지(聖旨)에 의해서 죄를 묻고 토벌하여, 편히 살지 못하게 함이 가하옵니다. 만약 군사를 일으켜 칠 수 없다면 더욱 무비(武備)를 엄하게 하고 변경을 굳게 지켜서, 저들이 와서 변경을 침범하거든 추적하여 잡는 것도 가하옵니다. 가령 저들 도적이 거짓으로 교호(交好)하겠다는 이유로써 감언(甘言)으로 나오거든, 구류(拘留)시켜 변(變)을 기다리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좌의정 맹사성은 아뢰기를,

"여연에 침입해 도둑질한 것은 오로지 파저강 야인의 소위인데, 도리어 홀라온 올적합을 지목하여 장 천사(張天使)를 통하여 황제께 주달하였으므로, 당시의 사세가 비록 파저강 야인들의 소위임이 의심스러우나,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는 것은 혹 불가할까 합니다. 다만 일컫기를, ‘올적합이 우리 경계에 들어와서 노략질하기를 3일 동안이나 하였는데, 너희들이 쫓아가 잡지 아니하였을 뿐더러, 또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또 올적합을 사로잡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오로지 너희들의 소위다. ’라고 딱잡아 말하고, 화친하기를 허락하지 말며, 삼가고 굳게 지켜서 저들로 하여금 죄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자복하게 하되, 만약 횡포하게 굴거든 급히 공격하여 변란(變亂)에 대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우의정 권진은 아뢰기를,

"올적합은 20여 일의 길을 어찌 지시하는 사람이 없이 깊이 들어와서 노략질하였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올량합이 길을 인도한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서 사람과 가축을 모두 돌려보내도록 효유하고, 저들이 만약 변경을 침범하거든, 미리 군사와 말을 정비하여 사변에 응하여 쫓아가 잡는 것이 가하겠습니다. 또 최윤덕이 곤외(閫外)를 전제(專制)하므로, 저들의 실정을 오히려 들어서 알 수 있으니, 피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에게 힐문(詰問)하여 실정을 얻어 계문(啓聞)한 뒤에, 죄를 성토할 말과 토벌할 계책을 다시 논의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조 판서 허조는 아뢰기를,

"파저강 올량합이 올적합과 더불어 합심하여 도둑질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사오니, 죄악이 심히 중하여 당연히 가서 쳐야 할 것이오나, 그윽이 듣건대, 저들의 땅이 산수(山水)가 험조(險阻)하고, 수목(樹木)이 무성하고 빽빽하여, 본디 성곽(城廓)이 없고 산골에 흩어져 산다고 하오니, 만약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깊은 곳으로 도망갈 것이오니 쫓기 어려울 듯하며, 또, 이 무리들이 스스로 지은 죄를 헤아리고 토벌함이 있을까 염려되어 흉흉(洶洶)하여 불안해 할 것인데, 이때에 가서 치는 것이 성공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양계(兩界)의 장수들이 사태를 살펴서 계달하기를 기다려 뒤에 헌의(獻議)하게 하옵소서."

하고, 호조 판서 안순은 아뢰기를,

"파저강의 도둑이 홀라온을 핑계하여 말하나, 파저강 사람이 만일 같이 공모하지 아니하였으면, 홀라온이 어찌 능히 수십 일의 노정(路程)을 넘어서 〈파저강의〉 길을 빌어 깊이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포로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파저강에서 돌아왔으니, 그것은 저들을 핑계하여 스스로를 해명한 것이 분명하옵니다. 진실로 죄를 성토하고 토벌해서 그 소굴을 소탕(掃蕩)하여 무위(武威)를 보이소서. 이는 성상의 진념(軫念)하시는 바이며, 신민(臣民)이 이를 가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함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오랑캐의 습성이 지리의 험함을 믿고 틈을 엿보아 나왔다가,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면 새처럼 흩어져 숨으니, 비록 관우(關羽)·장비(張飛) 같은 용맹이 있을지라도 행할 수 없는데, 도둑의 소굴에 깊이 들어갔다가 반드시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수고롭게 하여 공이 없으면 도리어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첫째입니다.

가사 좋은 시기를 만나 정예(精銳)한 군사를 뽑아 나아가서 추한 무리들을 섬멸(殲滅)하여, 한때의 분함을 쾌(快)하게 한다면야 이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종류가 많아서 어찌 다 베어 죽일 수 있으며, 만약 저들이 단결하여 서로 보호하는 계책을 내어, 혐진(嫌眞)·골간(骨看) 등과 더불어 항상 생각지 아니하는 기회를 엿보아서 공모하고 내침(來侵)하면, 후일의 근심은 말할 수 없을 것이오니, 이것이 둘째입니다.

양목답올(楊木答兀)은 중국에 죄를 지었는데, 중국에서 비록 탓하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나 토벌할 마음은 잠시도 잊지 않는데, 우리 나라가 군사를 써서 승리했다는 것을 듣고 〈양목답올〉 치기를 명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도 의외의 염려이오니, 셋째입니다.

또, 오랑캐[戎狄]의 침해는 역대의 공통된 근심이온데, 제왕(帝王)들은 모기가 쏘는 것처럼 보고 몰아냈을 뿐입니다. 오랑캐를 대하는 도리는 수비(守備)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공벌(攻伐)을 먼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항상 성보(城堡)를 수선하며, 장수를 고르고 군사를 훈련시켜서, 안으로 침노하거든 공격하고, 도망쳐 가거든 쫓지 않았사온즉, 이는 고금의 좋은 계책이옵니다. 파저강의 도둑이 홀라온을 핑계해서 말하니, 이는 곧 죄를 알고 자복하는 기미(幾微)입니다. 그 자복하는 기미를 통하여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돌려보내기를 명하고, 대하기를 처음과 같이하여, 안으로는 닦고 물리치는 준비를 오로지하고, 밖으로는 회유(懷柔)의 어진 마음을 보이면, 오랑캐를 제어하는 도리에 적합하고, 원수를 맺아 날뛰는 근심을 방지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장 내사(張內史)가 먼저 파저강 사람의 말을 황제께 아뢰었으니, 파저를 허물하여 가서 치는 것은 더욱 불가하옵니다."

하고, 찬성 노한(盧閈)은 아뢰기를,

"접대의 방법은, 저들이 간사함이 많아서 가볍게 끊을 수는 없으나, 또한 후하게 대접할 수 없으니 예전대로 하며, 죄를 성토하는 말은, 각 사람의 공초(供招)를 보면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과 더불어 서로 친한 것을 가히 알 수 있으니, 만약 올적합을 포위하여 60여 명을 과연 빼앗았다면, 그 힘이 족히 도둑을 제어하고 그 형세가 가히 다 빼앗을 만한데, 그 나머지 사람과 가축만은 빼앗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본다면 파저강 사람이 스스로 도둑질한 것이 명백합니다. 더군다나 홀라온과 파저강은 거리가 25일정(日程)이니 여연과는 더욱 멀리 떨어졌는데, 홀라온들이 무슨 혐의가 있어서 1백 명의 고군(孤軍)으로 파저강의 경계를 지나 우리 강토를 침범하고 우리의 사람과 물화를 빼앗아 갔겠습니까. 그런즉,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이라 사칭(詐稱)하고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며, 비록 파저강 사람이 한 짓이 아닐지라도 홀라온과 더불어 기맥을 통하여 도둑질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이것은 저 파저강 사람이 그 죄책을 사피할 수 없을 것이니 진실로 마땅히 쳐야 할 바이오나, 저들이 죄를 면하고자 하여 홀라온을 핑계해 말하였으니, 방금 사실을 밝히는 중이고 죄명(罪名)을 붙이지 아니 하였으며, 또 이미 중국 조정에 보고하였는데, 국가에서 진실로 그 실정을 얻지 못하고서 토죄(討罪)한다면 실로 적당치 못합니다. 지금 저 사람들이 산골에 도망해 숨었으니, 비록 1만 명의 군사를 일으킬지라도 어찌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인심은 세월이 오래되면 그 정(情)과 실(實)을 알 수 있는 것이오니, 잇따라 사람을 보내어 사로잡힌 사람·마소·가산(家産) 등을 돌려보내게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말을 듣고 그 뜻을 살피며, 인하여 그 산천의 험조(險阻)와 요해처(要害處)를 살펴보고, 또 저 사람들이 안심하기를 기다린 뒤에 죄를 성토하고 토벌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형조 판서 정흠지는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기 전에 마땅히 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할 것이며, 저들에게 우리가 자기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서, 그들의 계책을 이루는 데에 덕이 되게 함은 불가하오니, 만약 항거하기를 예비하거나, 혹 도망해 숨게 함은 옳은 계책이 아니옵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홀라온 올적합(忽剌溫兀狄哈)이 알타리 올량합과 비록 같은 무리라고 하나, 본래 마음이 같지 아니하여 서로 틈이 있으며, 수십 일정(日程)의 밖에서 살고, 그 사이에는 각종 야인들이 섞여 살아서, 우리와 더불어 일찍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도로의 요해(要害)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으면서, 다른 여러 오랑캐에게 사로잡힘을 무릅쓰고서 우리 경계에까지 깊이 들어왔을 것입니까. 가사 홀라온이 나왔을지라도 알타리가 이들을 위하여 길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요로(要路)를 적확하게 알고 우리의 무방비(無防備)한 틈을 타서 습격하여, 사흘이나 오랜 날을 지내면서 거리낌 없이 도둑질을 함부로 행하였겠습니까. 알타리가 올적합에게 강약(强弱)이 같지 아니하고 재주와 기술이 현격한 차이가 있어, 두려워하기를 호랑이처럼 할뿐이 아닌데, 지금 그 약탈한 사람과 마소를 빼앗았으나 화살과 활촉을 허비한 것이 없고, 도리어 더불어 즐기고 희롱하면서 마시고 먹이며, 서로 왕래하기를 한집 사람이나 부자(父子)가 서로 주고받음과 같이 하니, 이는 신의 믿지 못하는 바입니다. 더군다나 여연의 군인 전의(全義)란 자가 교전할 때에, 알타리 심아랑합(沈阿郞哈)을 친히 보고 은혜를 저버리고 도둑질함을 꾸짖었고, 또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부인들이 도둑 송천부(宋天富)가 이춘부(李春富)를 원망하는 말을 친히 들었으니, 그것은 알타리가 도둑질한 것이 더욱 명백하옵니다. 이 도적은 인의(仁義)는 부족하나 음흉하고 간사함은 남음이 있으니, 어찌 후일의 근심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홀라온을 지목해 말하면서 오히려 부녀자 가운데 아름다운 자와 마소·재물 등을 마침내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위로 천자를 속여서 조선을 팔았으니, 이것으로써 죄를 성토한다면 어찌 할 말이 없다고 근심하겠습니까. 공벌(攻伐)하는 계책은, 마땅히 장수를 고르고 군사를 훈련시켜, 두어 길로 나누어 함께 나아가서 함매(銜枚)031) 하고 재빨리 달려가, 그들이 뜻하지 아니할 때에 나가 그 부락들을 덮쳐서, 그 큰 괴수(魁首)를 사로잡고, 그 어리고 약한 자는 옮겨서, 저들로 하여금 정성을 드러내고 성심으로 복종하여 이마를 조아려 애걸하게 한 뒤에, 더불어 화친하면 쉽게 굳어질 것이고, 이로써 불러서 어루만지면 쉽게 복종할 것입니다. 이는 도둑을 위력으로는 굴복시킬 수 있으되 덕으로 감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해년 대마도의 정역(征役)에 조야(朝野)에서 모두 치고자 아니하였으나, 태종께서 성심(聖心)으로 스스로 결단하시어 6월에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토벌하니, 왜인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혜를 생각하여, 지금까지 신하로 복종하고 백성들이 그 은혜를 받으니, 이는 이미 그러한 밝은 공효(功效)입니다. 지금의 논의하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저들이 비록 실지로 도둑질하였을지라도 홀라온을 칭탁해 말하니, 국가에서는 모르는 체하고 우리의 수비를 굳게 하여 대접하기를 더욱 후하게 할 것이고, 더불어 원수를 맺을 수 없다. ’고 하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는 일시의 편함을 도모하는 계책이지 대대로 영구히 편히 할 좋은 계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하고, 호조 참판 심도원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 야인의 걱정이 있는 것은 중국에 융적(戎狄)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어하는 방법과 방책(方策)에 갖추 실려 있으니, 대요(大要)는 정벌과 화친 두 가지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연의 일은 변장(邊將)이 실책하여 전하께서 진념하시게 하오니, 신 등의 죄이옵니다.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의 말을 고찰하건대, 알타리의 간사한 꾀가 현저하오니, 그 음모와 간휼한 꾀는 오늘날의 정벌을 면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장차 후일에 도둑질하기를 도모하는 것이오니, 이는 징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임합라(林哈剌)는 일찍이 변경에 분쟁을 일으킨 일이 있는 자인데, 그와 함께 하는 다른 부락이 모두 하루 이틀 길에 불과하니, 지금은 마땅히 그 간사함을 거짓으로 받아들여서 대접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여,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과 물건을 요구한다는 말로써, 잇따라 사람을 보내어 그 실정을 깊이 살피고, 여연·강계에서 날래고 용맹한 장졸을 뽑아 모아서, 그들이 무심히 있을 때를 기다려 가만히 군사가 강을 건너서 함매(銜枚)하고 빨리 달려가서, 두어 길로 아울러 나아가서 불의(不意)에 덮치고 꾸짖기를, ‘홀라온의 있는 곳이 멀리 떨어졌고, 나오는 길이 너희 부락을 경유하는데, 너희가 공모하지 아니하였다면 어찌 능히 도둑질할 수 있었겠는가. 또 너희가 그 노략질한 것을 다 빼앗았다면 어찌하여 다 돌려주지 아니하느냐. 지금 우리가 온 것은 장차 사람과 물건을 찾으려는 것이다. ’라고 하면, 마땅히 다 내어 놓을 것이며, 배반하는 자는 죽이고 항복하는 자는 포로하며, 또 장졸들을 경계하여 노인과 어린이와 부녀들은 죽이지 말고, 모두 몰고 와서 구류(拘留)시키고 신문하면, 도둑질한 실정을 다 알수 있으며, 변경 백성들의 원통함을 가히 씻을 것입니다. 논의하는 자는 말하기를, ‘야인들이 산골에 흩어져 살아서 다 멸망시킬 수 없는데, 한번 서로 틈이 나면 변경에 환란이 더욱 심하여 거의 편할 해가 없을 것이니, 그들이 간사함으로 포용(包容)하여 방어함이 가하다. ’고 하오나, 신은 생각하건대, 야인들이 변민(邊民)을 침해한 적이 오늘처럼 참혹한 때가 있지 않았는데, 이를 놓아 두고 베어 죽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업신여길 것이오니 마땅히 그 죄를 토벌할 것입니다. 연강(沿江) 여러 고을로 하여금 성보(城堡)를 쌓고, 봉화(烽火)를 삼가히 하여, 얼음이 얼거든 성벽(城壁)을 굳건히 하고 청야(淸野)032) 하여 기다리다가, 기회를 타고 편리를 보아서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금 달아나도 돌아갈 바가 없고, 와도 소득이 없게 한다면 변경의 근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그윽이 아뢸 것이 있습니다. 기밀의 일을 비밀히 하지 아니하면 일이 이룩되지 아니한다고 하오니, 남을 치고자 할 적에 그 일을 비밀히 아니하면, 신은 말이 누설되기 쉬울까 염려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깊은 꾀와 비밀한 계책을 마음속으로 결단하시고, 그 기회에 임하여 승리를 거둘 방책을 장수에게 위임하여 그 성공을 책임지게 하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형조 좌참판 허성(許誠)은 아뢰기를,

"야인이 우리 지경에 가까이 살아 우리 백성들과 더불어 섞여 있으면서, 굶주리면 겸손한 말로 와서 복종하고, 배부르면 마구 날뛰며 함부로 포학(暴虐)하게 구는 까닭으로, 마땅히 은혜로서 회유하고 위엄으로써 제압하여, 이들에게 은혜를 배반할 수 없고 위엄을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며, 중국이 이적(夷狄)을 사막 지방의 구별된 땅에 버려 두고 다만 횡포하지 못하도록 굴레를 씌워 제어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파저강 야인은 지척에서 서로 바라보고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며, 우리 변군(邊郡)에서 먹고 살면서 요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고, 하고자 함을 이루지 못함이 없었으니 그 은혜가 지극하온데, 지금 도리어 침해를 가하고 거짓으로 북쪽 사람이 와서 도둑질했다고 말하니, 이는 장차 후일에 구걸하여 물건을 요구하려는 계책입니다. 금년에 이와 같이 하면 명년에 또 이와 같이 할 것이오니, 위력으로 제어하여 후환을 방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접대하는 방법과, 죄를 성토하는 말과, 공벌하는 계책 등은 다음에 간략하게 진술하옵니다.

1. 저들 홀라온이 들어와서 도둑질했다는 말을 짐짓 믿는 체하고, 예전대로 대접해서 그 변동(變動)을 볼 것입니다.

1. 홀라온이 도둑질했다는 말은 망령되고 허탄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분명하오나, 일이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 죄명을 바르게 할 것이므로, 원컨대 조관(朝官) 한 사람을 택해 보내어 파저강 추장(酋長) 등에게 말하기를, ‘올적합이 우리 변경의 사람과 물건을 노략해 갔는데, 너희들이 힘써 싸워서 탈취하였으니 진실로 기쁘고 고맙다. 그러나 홀라온은 20여 일정(日程)에서 군사를 달려 깊이 들어왔으니 예전에 없던 바이며, 또 우리 나라와 더불어 본래 조그마한 혐의도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너희들이 싸워서 빼앗을 적에 저들이 마땅히 와서 침략한 까닭을 말했을 터이니, 그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한다. ’고 하면서 조용히 되풀이해 캐어 물으면, 저들도 대답할 말이 없어서 반드시 속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 함길도 도절제사로 하여금 군관(軍官) 한 사람을 택해 보내어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에게 말하기를, ‘지금 삼파(森波)의 말을 듣고서 그 사변을 좀 알긴 했으나, 삼파의 말이 미진한 것 같으므로 그 자세한 것을 듣기 원한다. ’고 하면서, 그 홀라온이 멀리까지 온 까닭과, 파저강 사람이 싸워서 빼앗은 이유를 되풀이해 힐문하면, 또한 그 사실을 가히 알 것입니다. 또 본국에서 북경에 간 사신이 돌아오면 파저강 야인이 주문(奏聞)한 여부를 알 것이오니, 그 음모와 속이는 사실이 스스로 명백한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꾸짖기를, ‘너희들이 조석으로 왕래하면서 구걸하고 요구하여 그 생활을 힘입었으므로, 마땅히 감사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이에 은혜를 배반하고 침범하고도 홀라온이 와서 도둑질했다고 핑계해 말하여, 천총(天聰)을 속이고 또 우리 나라를 속였으니, 너희들의 죄악이 작지 아니하다. ’고 성토하고, 토벌하여 인민과 축산(畜産)을 다 돌려보내게 하고는, 곧 태종 황제께서 내리신 명령에 의거하여, 야인이 말을 가탁(假託)하여 속였다는 말과 군사를 일으켜서 침포(侵暴)한 상황을 자세히 갖추어서 주문(奏聞)할 것입니다.

1. 군사를 행할 때에 2품 이상을 두 사람 뽑아 보내고, 또 공격하는 싸움에 익숙하고, 그 경계의 산천과 도로의 형세를 잘 아는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 5, 6명을 보내어 편장(褊將)을 삼으며, 그 행군(行軍)하는 진퇴(進退)의 방법은 도절제사로 하여금 적당함에 따라 배치하게 하고, 또 2품 이상의 한 사람을 명하여 독찰(督察)하게 하옵소서."

하고, 판원사(判院事) 하경복(河敬復)은 아뢰기를,

"신이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의 공초(供招)를 가만히 본즉, 도둑질한 자는 홀라온이 아니고 실은 파저강 올량합이 연경(連境)한 잡종 야인들을 유인해서 도둑질한 것입니다. 대개 홀라온은 파저강과의 거리가 20여 일정(日程)이며, 또 우리 나라와는 본래 틈이 없는데, 하물며 춥고 어는 때를 당하여 저들이 어찌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어 와서 우리의 변경을 침략하였겠습니까. 올적합이 올량합과 본래 서로 불화하여 피차 서로 만나면 개처럼 짖으며 서로 물고 뜯는데, 어찌 서로 만날 즈음에 허리를 안고 서로 희롱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야인들의 소행입니다. 신이 임인년에 올량합이 와서 침략한 뒤에 길주에 진무(鎭撫)로 가서, 올량합에게 사람을 시켜 효유하기를, ‘너희들 있는 곳은 동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고, 북쪽으로는 여러 종류의 올적합이 있는데, 만약 우리의 인구가 가축을 돌려주지 아니하면, 내가 장차 나라에 알려서 농경시(農耕時)를 당하여 가서 쳐서 너희들의 농사를 해칠 것이며, 또 추수 때에 가서 쳐서 너희들 곡식을 해치면, 너희들은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고 하니, 저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우리의 인구와 가축을 돌려보내고, 비록 죽은 마소라도 모두 찾아서 돌려보냈습니다. 지금 파저강 올량합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혐진(嫌眞) 잡종 올적합과 연접하였고, 북쪽으로는 홀라온 올적합이 있고, 서쪽에는 중국이 있어, 그 사이에 끼어 있어 돌아갈 곳이 없는데, 지금 한때의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우리 여연을 침범하고는, 우리가 칠까 봐 두려워하여 홀라온을 가탁해 말하고 노략질한 사람과 물건을 아직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니, 그들이 우리 나라를 속임이 심하옵니다. 이는 마땅히 장수를 명하여 가 쳐서 천위(天威)를 보이는 것이 가하옵니다. 그러나 산천이 험난하고 평탄함을 쉽사리 알지 못하고, 노략질한 사람과 물건도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원컨대 신의 전일의 계책에 의하여 우선 토벌을 늦추고, 먼저 사리에 밝고 익숙한 통사(通事)를 파저강에 보내어 효유하기를, ‘너희들이 우리 나라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의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으며, 우리의 가축과 재물을 약탈하였으니, 너희가 만약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장차 봄과 여름에 군사를 보내어 너희 농사짓는 것을 요란하게 하고, 가을과 겨울에 군사를 보내어 너희 추수하는 것을 요란하게 하여, 장차 너희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게 하겠다. ’고 하고, 위엄으로 겁내게 하여 우리의 사람·물건·가축 등을 돌려보내게 하며, 또 산천의 험난하고 평탄한 것을 안 뒤에 그 죄를 성토하고 토벌할 것입니다. 지금 만약 토벌하지 않으면 뒤에는 반드시 마음속으로 달갑게 여겨 틈을 타서 도둑질할 것이오니, 모름지기 벼락같은 위엄을 떨쳐 가서 그 죄를 치게 하고, 접대하는 방법은 아직 예전대로 하옵소서."

하고, 예조 판서 신상(申商)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이미 이룩된 격례(格例)에 의하여 더하거나 덜함이 없게 하며, 저들이 만약 서울에 와서 변명하고자 하는 자가 있거든 역마(驛馬)를 주어 보낼 것입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연전에 본국 사람으로 포로되었다가 도망해 와서 말하기를, ‘임합라(林哈剌) 등이 원한을 품고 몰래 여연에 이르러 농민들을 노략질하였다. ’고 하니, 그 죄가 첫째요,

지금 또 홀라온과 더불어 한편이 되어 와서 침범하여 군정(軍丁)을 살해하고 부녀자·마소·가산(家産) 등을 노략질하고는, 거짓으로 홀라온의 소위라고 하면서 다만 늙고 어린 남녀만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숨기고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그 죄가 둘째이요,

무인년에 여연에서 사람과 재물을 노략질하고, 또 임인년에 재차 들어와서 침범한 자들이, 이 무리들이 아니고 누구이옵니까. 그 죄가 셋째라고 할 것입니다.

공격하는 계책은, 당시의 이미 그렇게 된 자취로서 본다면, 이들이 비록 스스로 한 짓이 아닐지라도 홀라온과 더불어 서로 내통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공격하여 위엄을 보일 것이오나, 사리(事理)가 무궁하고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오니, 마땅히 동서 양계(東西兩界)의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일로 인해서 사람을 보내어 조용히 그 형세를 살펴보게 하고, 다시 그 사실을 밝힌 뒤에 공격을 가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토벌하는 날을 당해서는 그 도의 장수로 하여금 그들이 무심히 있을 때를 엿보게 하여, 몰래 군사가 그 지경에 들어가 그 죄가 있는 자는 치고, 항복하는 자와 늙은이·어린이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 와서, 그 남은 무리들이 와서 사죄하고 우리 인구와 가축을 다 돌려보내기를 기다린 뒤에야 도로 줄 것입니다."

하고, 참찬 이맹균(李孟畇)이 아뢰기를,

"여연을 침범한 자는 홀라온이 아니고 바로 파저강 야인의 소행입니다. 비록 혹 홀라온이 와서 도둑질하였다 할지라도 반드시 파저강 사람과 결탁하여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오니,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듣건대, 저들의 땅은 산천이 험조(險阻)하고 수목이 울창하며, 길은 좁고도 매우 꼬불꼬불하여, 비록 큰 군사를 거느리고 갈지라도 열씩 다섯씩 함께 달려서 나아갈 수 없으며, 저들이 반드시 척후(斥候)를 엄하게 하여 기다릴 것이니, 만일 우리 군사가 이른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처자와 노약(老弱)은 숨기고, 장용(壯勇)한 자로 하여금 길이 굽고 후미진 곳마다 수풀과 구렁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 군사가 겨우 이르러 그 앞뒤를 공격하면 진퇴(進退)할 바를 잃을 것이오며, 비록 그 소굴을 진공(進攻)한다 할지라도 어찌 찾을 수 있겠습니까. 혹 그 소굴을 바로 다짓는다 하여도 하나도 소득이 없이 헛되게 갔다가 돌아올 것 같으면 국위(國威)만 손상시킬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그들이 홀라온에게 죄를 돌리는 말을 짐짓 믿는 체하고, 만일 내왕하는 자가 있거든 온순한 말로 후하게 대접하고 요구를 들어 주어 예전대로 함이 가하며, 할 수 없이 토벌할 적에는 모름지기 1, 2년 후를 기다리는 것이 득책(得策)입니다. 수년을 늦추면 저들이 반드시 우리가 영구히 가서 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무비(武備)를 늦출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장수를 나누어 보내서 그들이 생각지도 않을 때에 나가서 각각 그 부락을 치면, 서로 구원할 수 없어서 큰 괴수를 가히 다 섬멸할 수 있을 것이며, 노약(老弱)을 가히 다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죄를 성토하는 말은, ‘너희들이 우리 경계와 밀접하여 변장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인하여 요구하는 물건을 주었으니 그 회유(懷柔)함이 지극하였는데, 지금 은덕(恩德)을 배반하고 도리어 시랑(豺狼)같은 독(毒)을 내어 우리 변경을 침범하여, 우리 군민(軍民)을 죽이고 사로잡았으며, 우리의 마소와 재물을 겁탈하고는, 그 죄를 문책할까 염려하여 죽음을 면하려고 그 죄를 홀라온에게 돌렸으니, 그 말이 속이고 망령된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홀라온의 땅은 우리 경계와의 거리가 천여 리(里)인데, 어찌 감히 1백여 병마(兵馬)로서 너희들의 부락을 뚫고 지나와서 바로 우리 경계를 침범하였겠는가. 더군다나 우리와의 묵은 원수가 없는 데에서랴. 또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너희들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우리 백성이 죄 없이 피살된 자도 많고, 사로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한 자도 많은데, 어찌 차마 그대로 두고 죄를 묻지 않겠느냐. 이 까닭으로 지금 장수에게 명하여 가서 치게 하였으니 대체로 부득이함에서이다. 너희가 만약 돌려보내지 아니한 사람과 마소·재산 등을 다 쓸어 보내고, 인하여 목을 매고 와서 사죄하면 대접해 죽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 무리들을 다 섬멸하여 변경 백성들의 원수를 갚겠다.’ 하여, 이런 말로서 효유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병조 우참판 황보인(皇甫仁)은 아뢰기를,

"신은 듣건대, 오거든 어루만지고 가거든 쫓지 아니하며, 도둑질하거든 방어하는 것은 옛 제왕들의 오랑캐를 제어하는 대략입니다. 그러하오나 이적(夷狄)이 성쇠(盛衰)가 있어 중국 변경의 큰 근심이 된 적이 오히려 많았으므로, 이에 혹은 화친하기를 의논하고, 혹은 정벌하기를 의논하였으나, 요는 모두 일시의 이해(利害)에 대한 편견(偏見)이지 시종(始終)과 원근(遠近)을 구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야인과 땅이 연접하였고, 특히 작은 물이 격(隔)하였으나, 얼음이 얼면 큰길같이 평탄하여 내왕하기를 나는 듯이 하므로, 그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겨울 여연의 일과 같은 것은 지극히 한심하옵니다. 지금 포로되었던 사람의 말과 전의(全義)의 말을 들어 보면, 올량합이 저들을 보고 서로 좋아하기를 형제같이 한다고 하니, 들어와서 도둑질한 자는 올적합이 아니라 반드시 그 동류들입니다. 올적합은 올량합과 일찍이 사이가 나쁜데 어찌 이같이 서로 좋아하겠습니까. 올적합은 본래 깊은 곳에 사는데 어찌 20여 일의 노정에서 다른 종족 야인의 지경을 멀리 넘어 침략을 감히 행하였겠습니까. 오랑캐의 풍속이 비록 의리(義理)는 부족하나 흉하고 간사함은 남음이 있으니, 여연을 도둑질한 것은 반드시 올량합이 전일의 원한을 품고 한 짓인데, 죄를 올적합에게 돌린 것입니다. 올적합이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허소한 곳을 어찌 알고 3일 동안을 머물면서 도둑질하였겠습니까. 만약 올적합이 와서 침범하였다면 올량합이 반드시 앞장서서 지시한 것입니다. 올량합이 우리 북문(北門)에서 살면서 입고 먹는 것을 실로 우리 나라에 의뢰하는데, 도리어 도둑질을 행하니 은혜를 잊고 덕을 저버림이 심하오며, 완흉(頑凶)하고 불공(不恭)함이 심하옵니다. 마땅히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여 남김없이 섬멸시킬 것이오나, 이때를 당하여 밖으로는 칠 만한 형세가 있고, 안으로는 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올량합 등이 우리 나라를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금 변명하여 말하기를, ‘해서(海西) 올적합이 사람과 재물을 노략질해 가는 것을, 우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장 천사(張天使)의 병마(兵馬)와 더불어 함께 포위하여 64명을 빼앗아 보낸다. ’고 하였으니, 그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우리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할 것인데, 지금 그 실상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은 이미 불가합니다. 또 건주위 지휘(建州衛指揮)가 올적합이 저들과 우리 나라의 사람과 재물을 침략한 일을 이미 중국 조정에 아뢰었고, 장 천사도 이미 북경으로 돌아갔으니, 조용히 그 형세를 보면 반드시 그 실정을 알 것이오니, 그런 뒤에 그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또 우리 나라 북방(北方)은 동으로는 경원으로부터 서로는 의주에 이르기까지 연변(沿邊)의 성보(城堡)를 이때까지 쌓기를 마치지 못하였는데, 지금 군사를 일으켜 쳐서 다 멸하지 못한다면, 저들이 보복할 마음을 미련스럽게 가지게 되어, 틈만 있으면 때 없이 들어와서 도둑질할 것이니, 변민(邊民)의 근심이 그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연변 고을에 성을 쌓을 만한 곳은 다 쌓고, 목책(木柵)을 배설할 곳은 다 배설하며, 척후(斥候)·봉화(烽火) 등의 일이 다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웅성(雄城)과 거진(巨鎭)이 연기와 불을 서로 바라볼만큼 많이 있고, 정련(精鍊)된 군사와 강력한 쇠뇌[弩]로써 요해처(要害處)에 나누어 지키게 한 뒤에, 도둑질한 형적이 드러나지 않거든 예전에 대우하던 예(禮)에 의하여 대접하되, 고삐는 놓지 말고 그 형세를 보아, 침략한 형적이 드러나거든 한두 사람의 좋은 장수에게 명하여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나누어 함께 나아가서 그 죄를 성토하기를, ‘너희들이 우리 북문(北門)에 살고, 우리의 경계에서 자고 먹으면서, 잠시 신하노릇 하다가 고대 배반하여 우리 변경 백성을 요란하게 하고, 지금 또 까닭 없이 도둑질하는 꾀를 내어 우리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으며, 우리의 가축과 재물을 약탈하고는, 속이기를 올적합의 짓이라고 하니 그 간흉 완악(奸凶頑惡)함이 심하다. 그리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죄를 문책하니, 너희가 능히 싸우겠거든 싸우고, 싸우지 못하겠거든 사실대로 자복하고 사죄하라.’ 하고, 이와 같이 말하면 저 도적이 반드시 말이 있을 것이오니, 그 말의 옳고 그름에 따라 변통하여 처치함이 가하옵니다. 저들의 땅에는 큰 산과 긴 골짜기 사이에 초목이 울밀하므로 진(陣)을 치기 어렵고, 천태만상(千態萬狀)이 잠깐 사이에 변화(變化)함은 장수의 응변 여하에 있을 뿐이니 멀리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판에 오르내리면서 슬쩍 숨고 몰래 나오는 것은 야인들의 장기(長技)입니다. 그 산천의 모양과 허실(虛實)의 형세를 보아서, 넓은 들판에서는 나아가서 치고, 초목이 울밀한 곳에는 풍세(風勢)를 이용하여 불을 놓아 태우며, 도망해 숨거든 그 집을 모두 태우면, 비록 마음에 개운하지는 못할지라도, 이같이 수년을 한다면 저 도적들이 봄과 여름에는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고, 가을과 겨울에는 편히 살 수가 없을 것이니, 마침내 그 무리들을 잡아 묶어 궐하(闕下)에 바칠 것이옵니다. 이는 접대하는 방법과 죄를 성토하는 말과 토벌하는 계책의 대략이옵니다. 그 조목은 반드시 그 시기에 따라서 처리하여야 그 적당함을 얻을 것이며, 억측하는 말은 변통성 없다는 근심을 면하지 못함이 있으므로, 신이 후일의 사태의 변함에 따라서 다시 진술할까 하옵니다."

하였다.

동지중추원사 이순몽(李順蒙)은 아뢰기를,

"홀라온은 파저강과의 상거(相距)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우리와 틈이 없는데 어찌 감히 길을 넘어 와서 우리 변민을 잡았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야인이 각종 야인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들어와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천의 험조를 알지 못하고 갑자기 가서 치고자 하면, 도적들이 반드시 두려워하여 산골짜기에 도망해 숨을 것이니, 비록 백만의 군사를 보낼지라도 뜻을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신은 망령되게 생각하건대, 그 간사한 꾀를 따라서 짐짓 모르는 체하여, 죄는 홀라온에게 돌리고 공(功)은 파저강 야인에게 돌려서 대접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면, 적이 반드시 우리 술책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안심하고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간(反間)033) 을 많이 해서 산천의 험조를 자세히 알아, 강에 얼음이 풀리기를 기다려 배와 떼를 만들어 군사들을 몰래 강을 넘게 하여, 그들이 생각지 아니할 적에 나가서 급히 한두 부락을 공격하고 군사를 돌이켜 속히 돌아오면, 적이 반드시 원한을 품고 얼음 얼기를 기다려서 올 것이니, 이에 응하여 치면, 이것이 좋은 계책입니다. 그런 뒤에 야인에게 효유하기를, ‘너희들이 변민을 노략질하고는 간사하게 홀라온을 칭탁하기 때문에, 변장(邊將)이 나라에 고하지도 아니하고 바로 너희에게 문죄(問罪)하는 것이다. ’고 할 것입니다. 만약 모름지기 가서 친다면, 갑산(甲山) 등지에 장졸(將卒)을 명해 보내어 죄를 성토하고 가서 치게 하며, 목책(木柵)을 여연·강북(江北)에 설치하고, 군사 5, 6백 명을 주둔시켜 그 목책을 지키게 하고 그 위엄을 보여서, 도적으로 하여금 농사짓고 사냥하지 못하게 하여 생활에 나가도록 하면, 도적이 더욱더 분한 마음을 먹고 얼음이 얼면 반드시 와서 침범할 것이니, 우리는 군사를 엄하게 하고 지키기를 굳게 하여, 편안히 앉아서 멀리 오는 피로한 군사를 기다릴 것이니, 이는 병가(兵家)에서 이르는 바, ‘남을 유치(誘致)하고 남에게 유치되지 않는다. ’고 하는 것입니다. 도적이 만약 오지 아니하거든 형세에 따라 가서 치는 것도 가하옵니다. 신이 또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지금 조그마한 백여 명의 야인이 마음대로 포악하게 굴어서 변민(邊民)들을 노략질하였으니, 소신이 엎드려 그 사실을 듣고서 자리에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아프고 이가 갈립니다. 〈신이〉 노둔(駑鈍)한 재주를 다하여 그 불공(不恭)한 죄를 가서 묻기를 원하옵니다."

하고, 병조 판서 최사강(崔士康)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지금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각 사람의 말로써 그 사세를 참작해 본다면, 실은 홀라온이 아니고 곧 임합라(林哈剌) 등의 소행입니다. 그러나 저들 도적이 이미 그 잘못을 알고, 이에 말하기를, ‘포로된 사람을 홀라온에게서 빼앗아 도로 돌려보낸다. ’고 하였으니, 왕래하기를 보통 때와 같이 한다면 비록 후하게 대접하여도 가하옵니다. 더군다나 오거든 어루만지고 가거든 쫓지 말게 함은 오랑캐를 제어하는 좋은 계책이 아니옵니까. 아직 대접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여 그 변동을 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파저강의 도둑이 우리 경계에 가까이 있으면서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고, 소금과 간장을 구걸해서 그 생활에 이바지하는데, 만약 홀라온의 도적이 나오면, 저들이 마땅히 사람을 시켜 먼저 고하고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이 가하거늘, 도둑질을 하기전에 먼저 변(變)을 고하지 아니하고, 도둑질을 한 뒤에는 거짓으로 홀라온을 칭탁하였으니, 저들 스스로가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옵니다.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탈취할 때에 칼로 싸우지 아니하고, 허리를 껴안고 서로 희롱하기도 하고, 술과 음식을 먹이기도 하였다. ’고 하오니, 그 거짓임이 또한 명백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길러 준 덕을 잊고 우리의 변경을 침노하여 죄 없는 백성을 죽인 것이 50여 명이고, 사로잡아 간 것이 70여 명이며, 마소와 재산을 약탈한 것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오니, 이로써 말을 잡아 토벌하면 누가 감히 굴복하지 아니하겠습니까. 토벌하는 계책은,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파저강 도적의 괴수는 5, 6명에 불과하고, 거느린 것이 수백 명 미만이오니, 비록 그 무리들이 흩어져 있다 하나 길이 멀리 막혀 있으니, 어찌 하루 낮 하루 밤에 능히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장수에게 명하고 군사를 뽑아서, 셋으로 군사를 나누어 번갈아서 들어가고 나오면, 저들이 어찌 감히 우리를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야인들이 그 산과 골짜기의 험함과 숲과 나무의 무성함을 믿고 달려나와 냅다 치고 숨어 버린다면, 어찌 능히 일거(一擧)에 다 섬멸(殲滅)하겠습니까. 그런즉 한갓 원망과 분노만을 더하게 하여, 곧 다시 도둑질할 것이오니 변경이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겨레붙이가 동북쪽에 나누어 살고 있는데, 그 토벌한다는 것을 들으면 다시 서로 와서 침노할 것이니, 북방의 백성도 역시 편히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건주위(建州衛)는 요동에 속하는데 도둑질한 일을 거짓으로 홀라온의 소위라고 하여 이미 황제께 알렸으니, 신은 생각하건대, 성책(城柵)을 수리하고 경계를 굳게 지키며, 사신을 보내서 효유하여 사람과 물건을 모두 돌려보내게 하면, 비록 당장 눈앞에 개운함은 없을지라도 뒷날에 후환을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공조 판서(工曹判書) 조계생(趙啓生)은 아뢰기를,

"야인들은 얼굴은 사람이라도 마음은 짐승과 같으므로, 구걸하는 사이에 욕심에 차지 않으면 문득 사사로운 원망을 품어 허실(虛實)을 엿보아 변민을 침해하오니, 비록 은혜로서 회유(懷柔)할지라도 보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연에 침입한 것을 비록 홀라온이라고 말하나, 홀라온은 우리 나라에 본래 왕래도 없고 흔단(釁端)도 없는데, 어찌 여연의 방비가 허술한 사실을 알고 고군(孤軍)으로 강적(强敵)이 있는 파저강 땅을 지나 갑자기 와서 도둑질하였겠습니까.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과 더불어 허리를 껴안고 웃기도 하고, 고기를 베어 같이 먹기도 하였다. ’고 하니, 이와 같다면 그 공모한 것을 가히 알겠습니다. 또 올적합이 강하고 용맹함을 야인이 본래 두려워하는 바이온데, 한 번 칼을 겨루워 싸우지도 아니하고 어떻게 사로잡아 가는 사람과 물건을 다 빼앗았겠습니까. 그 서로 내통한 것을 가히 알겠습니다. 서로 싸울 때에 여연의 정군(正軍) 전의(全義)가 파저강에 거주하는 심아랑합(沈阿郞哈)을 보고 꾸짖기를, ‘이전에 너희들이 자주 와서 구걸해 먹어 우리 나라에서 은혜를 입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같이 와서 도둑질하느냐. ’고 하니, 아랑합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돌아갔다고 하니,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을 끌어다가 공모해 도둑질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그 포로해 간 사람을 돌려보낸 것은 후일에 우리의 토벌을 면하기 위한 계책입니다. 만약 진실로 우리 나라를 위해서 그 포로해 가는 사람과 물건을 빼앗았다면, 당초에 문앞을 지나가는 도둑을 어찌 먼저 우리 나라에 알리지 않았겠습니까. 그 간악(姦惡)함이 너무 크옵니다. 만약 그대로 두고 문죄(問罪)하지 않으면 이는 유악함을 보이는 것이오며, 저 도적들이 장차 우리 나라가 그들의 술책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좋아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어찌하여 찾아 보내지 아니하옵니까. 마땅히 이로써 말을 하여 그 죄를 정벌할 것입니다. 파저강 야인이 비록 올적합이 도둑질한 것이라고 중국 조정에 먼저 알렸을지라도, 야인이 공모한 사실을 중국에 알리면 곧은 것은 우리에게 있고, 굽은 것은 저들에게 있으니, 중국 조정에서 어찌 우리 나라를 의심하고 야인들을 신용하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야인은 본래 성곽(城廓)이 없고 산골에 흩어져 사는데, 우리 군사가 이른다는 것을 먼저 알고 산에 올라가 숨으면, 비록 천만의 군사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이를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 뜻하지 아니할 때에 나가서 덮쳐 습격(襲擊)하는 것은 장수의 전략(戰略)에 달렸습니다."

하고, 참찬 성억(成抑)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신의 마음속으로 생각하건대, 파저강 야인이 비밀히 동류를 끌어다가 변경을 침범하고는 거짓으로 올적합을 칭탁하였으나 증거가 드러나지 아니하였으니, 마땅히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탐문(探問)하게 하여, 저들이 만약 노략질한 사람과 재물을 돌려보낸 것을 공(功)으로 삼거든, 우선 그 뜻에 순응하여 공로를 상(賞)을 준다는 명목으로, 지혜있고 용감한 자를 골라 보내어 위로도 하고 캐묻기도 하여, 그들의 뜻을 살피면서 대접하기를 다소 후하게 하며, 평안·함길 두 도로 하여금 방문하게 하여, 만약 그 실정을 얻거든 중국에 주문(奏聞)하고 죄를 성토하여 토벌을 행하면, 할 말이 없음을 근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토벌하는 계책은 신이 생각하건대, 이때에 이르러 토벌한다면 저 도적들이 스스로 그 죄를 알고 산골짜기에 숨을 것이오니, 비록 군사를 일으켜 깊이 들어갈지라도 반드시 공격할 수 없으며, 벌[蜂]처럼 쏘는 독기(毒氣)를 또한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대접하기를 다소 후하게 하고, 여연·강계 등의 군마(軍馬)로 하여금 자주 강을 건너가서 사냥하게 하여 예사로운 일처럼 그들에게 보인 뒤에, 그 뜻하지 않는 때에 나가 토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조뇌(趙賚)는 아뢰기를,

"홀라온은 여연과 거리가 30여 일의 노정인데, 지금 날이 춥고 눈이 깊이 쌓인 때를 당하여 깊이 들어와 노략질했다는 것은 사정에 가깝지 아니하며, 또 포로되었던 각 사람의 공초(供招)를 보면 그 사세(事勢)가 비록 올적합이 침입한 것 같으나, 올량합 등이 끌어들여서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여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진실로 의(義)를 들어 토벌을 행함이 마땅하오나, 예로부터 군사를 쓰는 자는 먼저 산천과 도로의 멀고 가깝고 험하고 평탄한 것 등을 안 뒤에 군사를 행하는데, 저들의 살고 있는 땅은 산천이 험조하여 비록 천만의 많은 군사를 쓸지라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지금 또 도둑질하였으므로 저들이 반드시 준비하고 기다릴 것이오니 가볍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들이 속이는 대로 두고 우선 관대한 은혜를 보여서 사람을 보내어 술을 주고, 인해서 실정을 정탐해 살펴서 도로의 난이(難易)를 자세히 안 뒤에, 그들이 방비를 게을리하는 틈을 기다려서 기병(奇兵)034) 을 써서 토벌해도 오히려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예조 우참판 유맹문(柳孟聞)은 아뢰기를,

"파저강 올량합이 그 겨레붙이들과 더불어 같이 와서 도둑질한 것은 명백하여 의심할 나위 없으니, 이는 진실로 징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괴수(魁首)가 이미 황제의 명을 받아 파저강 지휘가 되었으니, 마음대로 스스로 가서 칠 수 없습니다. 또 더군다나 홀라온을 칭탁하여 황제께 아뢰었으니, 〈우리 나라에서〉 아뢰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만약 주달(奏達)하면 반드시 윤허하지 않을 것이며, 주청(奏請)하지 아니하고 토벌하는 것도 옳지 못하오니, 오직 와서 굴복하거든 은혜를 더하여 보내고, 만일 우리 경계를 침략하여 시끄럽게 하거든, 그때에 쳐서 없애면 거의 어루만지고 제어하는 방법에 합할까 하옵니다."

하고, 예조 좌참판 박안신(朴安臣)은 아뢰기를,

"홀라온이 우리 나라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원수진 일이 없는데, 다만 백여 명의 군사로써 와서 도둑질할 이치는 없을 듯하옵니다. 또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말한 바로써 본다면, 그것은 파저강이 도둑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가 네 가지 있습니다.

파저강 오랑캐가 이미 황제의 명을 받아 지휘(指揮)의 이름을 가졌고, 또 지금 칭탁하기를, ‘홀라온이 조선 사람을 사로잡아 가기에 군사를 거느리고 포위하여 쳐서 포로를 빼앗아 모두 돌려보내게 하였다. ’고 거짓으로 꾸며서 황제께 주문(奏聞)하였으니, 황제께서 반드시 그렇게 여길 것인데, 이때를 당하여 즉시 주문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수 없음이 그 첫째입니다.

저 도적들이 이미 우리 변경을 침범하고는 스스로 그 화(禍)를 두려워하여 준비하고 사변을 기다릴 것이니, 칠 수 없음이 둘째입니다.

또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와 더불어 의각지세(猗角之勢)가 되어 있음은 이미 드러난 형세인데, 다만 파저강만을 치면 이는 호랑이와 이리는 남겨 두고 여유와 삵[狸]을 토벌하는 것입니다. 맹가첩목아가 도리어 의혹이 생겨 서로 보호하고 의지하면 그 음모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셋째입니다.

여연·강계의 백성들이 바야흐로 패배를 당해서 이산(離散)하여 위태로움을 근심하고 조금도 싸울 뜻이 없으니, 이것이 넷째입니다.

대개 잘 싸우는 것은 진(陣)을 잘치는 것만 못하고, 진을 잘 치는 것은 지키기를 잘하는 것만 못하오니, 능히 굽히고 능히 펴는 것은 용병(用兵)의 도(道)입니다. 지금은 성책(城柵)을 수리하고 병기를 단련하며, 군량을 쌓고 정찰(偵察)을 부지런히 하며, 오는 사자(使者)를 우대하고, 간첩을 보내어 그 도둑질한 수모자(首謀者)가 누구인지 정탐하고, 또 맹가첩목아와 더불어 공모하여 도둑질한 사실을 알아내어, 말을 갖추어 황제께 주문하여 윤허를 받은 뒤에, 그들이 생각지 아니한 때에 나가서 군사를 나누어 돌격하여, 두 오랑캐를 아울러 깨뜨려도 늦지 않을 듯하옵니다."

하고, 병조 좌참판 정연(鄭淵)은 아뢰기를,

"여연을 침략한 일을 파저강 사람이 비록 홀라온의 소위라고 말하나, 홀라온은 우리와 더불어 본래 혐극(嫌隙)이 없고, 20여 일의 노정이나 떨어진 험한 길에 이유없이 나와서 사람과 물건을 침략할 까닭은 진실로 없습니다. 파저강 사람이 우리 국경에 오래 살면서 내왕하며 구걸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차지 아니하면 반드시 원한을 품고, 또 임합라(林哈剌)가 잃어버린 종을 뒤쫓은 일이 있어 분명히 그 혐의가 있으니, 지금 침략한 일은 실로 파저강 사람의 소위입니다. 그러나 일의 증거가 아직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사로잡힌 사람을 반 넘어 돌려보냈으며, 또 장 천사(張天使)가 돌아갈 적에 홀라온이 침략했다고 말하였으므로, 반드시 이 말을 중국 조정에 알렸을 것이오니, 비록 고황제(高皇帝)035) 조서(詔書)가 있을지라도 지금 다시 아뢰지 아니하고 갑작스레 토벌함은 실로 온당치 못하옵니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성책을 수축하고 변경을 굳게 지켜서, 저들이 비록 침범할지라도 변민(邊民)들로 하여금 모두 다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하여 피란할 계책을 다 갖추고, 또 무신(武臣) 3품 이하로서 지략(智略)이 있고 권변(權變)036) 에 능한 사람을 골라서, 술과 안주를 가지고 가서 효유하기를, ‘홀라온이 침입하여 빼앗은 인구를 멀리서 빼앗아 돌려보냈으니, 이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아니한 인구와 재물을 숫자대로 모두 다 돌려보냄이 마땅하다. ’고 하고, 인하여 그들이 사는 곳의 산천 형세와 용병(用兵)의 난이(難易)를 살피고, 말을 듣고 태도를 보면, 그 사이에 사세(事勢)의 진위(眞僞)를 거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침략한 실정과 산천·도로 등을 자세히 안 뒤에, 중국에 아뢰어 청하고 죄를 성토해 토벌하면, 사기(事機)가 늦지 아니하고, 명분이 바르며, 말하기가 순하여, 저들도 변명할 말이 없어서 스스로 굴복할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는 접대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하고, 이조 좌참판 김익정(金益精)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 야인이 있음은 중국에 흉노(凶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접대하는 방법과 수어(守禦)하는 준비를 삼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혹 변장(邊將)이 옳지 못하여 방어의 수비를 잃으면, 반드시 엿보는 마음이 생겨서 우리 백성에게 중하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융적(戎狄)의 성품이 시랑(豺狼)과 다름 없이 강퍅하고 사나와서, 혐의가 있으면 반드시 보복하므로, 은혜와 신의(信義)로 맺기가 어렵고, 위엄과 세력으로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생활을 이바지하고 놀고 즐기면서 자기 몸을 보호하고자 함은 화인(華人)037) 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태조(太祖)와 태종(太宗)께서 오랑캐를 제어하는 도리에 밝아서, 성심(誠心)으로 복종하고 귀순(歸順)하여 붙으면 그 주는 것을 풍족하게 하고, 또 변군(邊郡)으로 하여금 그 곤궁함을 구제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변경(邊境)에 근심이 없고, 사는 백성들이 베개를 편히 한 것이 지금 40여 년이옵니다. 그 접대하는 방법은 아직 예전대로 하게 하고, 그 방비해 지키기를 엄하게 하여 위엄을 보이고, 와서 따르고 복종함을 아름답게 여겨 은혜로서 편하게 하여 주면, 강퍅하고 사나운 기운이 사라지고, 엿보는 마음이 스스로 그칠 것이오니, 어찌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하여 우리에게 원수를 맺겠습니까. 죄를 성토하는 말과 토벌하는 계책에 대하여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홀라온은 우리와 더불어 경계가 연하지 아니하였고, 은혜와 원수를 갚을 것이 없는데, 백여 명의 무리를 모아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어서 가벼이 우리 지경을 범하려 들겠습니까. 지금 각 사람의 공사(供辭)를 상고하건대, 실로 홀라온이 아닌 것은 명백하옵니다. 또 그 포로된 인구를 돌려보낼 즈음에 노약자(老弱者)만 보내고 장정은 숨겼으니, 그것은 전일의 흔극(釁隙)을 갚고자 하였으나 토벌을 당할까 두려워 다른 도적을 가탁(假托)한 것이 명백하옵니다. 비록 흉한 꾀가 만 가지이고 가탁한 말이 많을지라도, 그 실정과 증거가 다 드러났고, 그 간사하고 교활(狡猾)함이 스스로 나타났으니, 가서 그 죄를 문초(問招)하면 어찌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죄를 성토하고 치는 것은 비록 ‘군사를 일으킴이 정도(正道)라. ’고 하오나, 그 산과 골짜기가 험하고 수목이 빽빽하여, 새처럼 숨고 쥐같이 엎드리며, 모이고 흩어짐에 재빠르니, 군사가 궁벽하고 험한 땅에 나갔다가 오랑캐 한 놈도 보지 못하고 돌아올지 알 수 없으며, 요해지(要害地)를 분거(分據)하여 잠복하였다가 뛰쳐나와 우리를 핍박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다면 한갓 일시의 실패일 뿐 아니라, 장차 후일에 침해를 당할 것이오니, 이보다는 정예병(靜銳兵)을 골라서 샛길[間道]로 함매(銜枚)하고 그들이 뜻하지 않을 때에 나가서, 그 달아나는 길을 막고 잇따라 많은 군사가 바로 가서 습격하면, 저들 무리들을 가히 다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서쪽으로 파저강으로부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야인의 사는 곳이 많으면 백여 호, 적으면 수십 호로서, 그 무리가 하나가 아니며, 악한 일을 서로 도우니, 도적을 평정한 뒤에 만일 남은 추악한 무리가 있어서, 원망을 품고 원수를 갚을 자가 혹 있을 것이오니, 명장(名將)을 골라 뽑고, 군사를 정비하여 경비하고 수어하는 방법을 진실로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공조 우참판 이긍(李兢)은 아뢰기를,

"예로부터 오랑캐를 제어하는 방책은 사람마다 소견이 각각 다름이 있었으나, 그 귀결의 요지는 화친이냐, 정벌이냐 두 가지뿐입니다. 그러나 각각 옳고 그름이 있으므로 하나를 잡고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신은 그윽이 헤아리건대, 야인이 같은 겨레붙이와 통정하고 모의하여 몰래 분풀이를 하고, 토지가 아까와서 후환을 면하기를 도모하였으니 간교(姦狡)함이 심합니다. 논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파저강은 백두산 북쪽에까지 부락이 연접하였고 종류가 심히 많으므로, 침범하였다가 보복하는 실마리가 되게 함은 불가하니, 그것보다는 그 말을 거짓으로 믿는 체하고, 아직 두고 묻지 말며 접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원망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요, 변경을 편하게 하는 이익이 되므로, 치지 않는 것이 편하다. ’고 하오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 시랑(豺狼)같이 탐포(貪暴)한 무리들이 만약 그 거짓으로 믿는 체하는 술책을 알게 되면, 좋은 계책이 되지 못할 것이고, 만일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우리 술책에 빠졌다. ’고 하면서, 마음에 달갑게 여겨 마음대로 횡포(橫暴)하게 굴 것이오니, 속이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실지의 화(禍)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날에 변경의 근심이 그치지 않을는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여자가 음행(淫行)이 있었는데, 그 남편이 거짓 모르는 체하고 금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살해를 당하였으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릇 일을 간(諫)하고 논의를 세우는 데에 영구한 이익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일시의 편익만을 취하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신의 망령된 뜻으로는,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먼저 사람을 시켜 간절히 꾸짖기를, ‘너희들이 우리 지경에 가까이 살면서 염장(鹽醬)과 양식을 구걸하면 곧 주었으니, 기르는 은혜가 족하다. 다만 너희들이 중국 사람과 우리 국경의 백성들을 사로잡아서 노비(奴婢)로 삼아 부리는데, 이따금 도망쳐 온 자가 있으면 그 근본[根脚]을 심문하여, 중국 사람은 요동으로 돌려보내고, 우리 나라 사람은 그대로 복업(復業)하게 하였으니, 이는 곧 조정을 높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당연한 사리인데, 우리 나라에서 너희에게 무엇을 저버렸다고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은덕을 저버리면서 도리어 분한 원망을 일으키느냐. 이 앞서 너희들이 자주 와서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으나, 작은 허물을 헤아리지 아니하기로 한 것이지, 병력(兵力)이 넉넉하지 못해서 문죄하지 아니함이 아니었다. 근래에 여러 무리들을 모아서 몰래 들어와 도둑질하여, 남녀 70여 명을 사로잡아 가고, 남녀 40여 명을 죽였으며, 마소와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갔는데, 서로 싸우던 날에 여연 정군(正軍) 전의(全義)가 파저강 주좌(住坐) 심아랑합(沈阿郞哈)을 보고 꾸짖기를, 「너희들이 이전에 자주 와서 구걸하여 우리 나라의 은혜 입음이 적지 아니한데, 무슨 까닭으로 같이 와서 도둑질하느냐.」고 하며 꾸짖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더니, 아랑합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돌아간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아는 바이다. 지금 너희들이 꾀를 고쳐 내어 거짓으로 말하기를, 「홀라온이 도둑질하여 돌아가는 것을, 중로(中路)에서 포위하고 사람을 빼앗아서 돌려 보낸다.」고 하였으니, 그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은 어디 있으며, 또 마소와 재물을 전혀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간사함이 어찌 이토록 심하냐. 남녀 노소로서 죄 없이 죽은 자가 저와 같이 많으니 진실로 마음 아프다. 영락(永樂) 8년간에 올량합 등이 경원부에 돌입(突入)하여 도둑질하자, 아군이 추격하여 마구 잡아 죽일 때에 팔을속(八乙速) 등 지휘 4명이 화살을 맞고 죽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를 갖추 아뢰었더니, 태종 황제의 성지(聖旨)에, ‘그처럼 죽인 것은 정말 잘하였다. 이후에도 다시 이와 같은 무례한 일이 있으면 결코 용서하지 말라. ’고 하였으니, 우리 나라에서 성지(聖旨)를 공경히 받들기를 이미 이와 같이 하였는데, 지금 너희들의 소위가 또 이와 같으니, 비록 우리 나라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너희 무리들을 섬멸할지라도, 모두 너희들이 자취(自取)한 것이니 다시 누구를 허물할 것인가.’ 하고는, 변장이 군사를 이끌고 저기에 이르러, 군사를 베풀고 변동을 보아서, 저들이 만약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말을 낮추어 항복을 청하거든, 대의(大義)로써 꾸짖고 군사를 돌이켜서 돌아오는 것은 그 상책(上策)입니다. 만약 놀라고 두려워하여 어쩔 줄을 몰라서 그 부락을 버리고 산림(山林) 속에 도망해 숨거든, 끝까지 쫓지 말고, 몹시 해치지 말며, 그 부락을 온전히 하여 위엄을 밝게 보여서, 가벼이 토벌하고 돌아오는 것은 그 중책(中策)입니다. 만약 저들과 우리가 서로 대적하여 칼날을 겨뤄, 그 승부를 결단하는 것은 그 하책(下策)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에 반드시 중책(中策)에서 나와야 된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렇다면 원망을 적게 하는 도리와 싸움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왕도(王道)를 행하는 군사입니다. 그런 뒤에 성보(城堡)를 수축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경계를 굳게 하고 방어를 삼가면, 저들이 반드시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스스로 와서 화친하기를 구할 것이니, 대접하기를 예전대로 할 따름입니다. 기해년 동정(東征)한 이후로 지금까지 하삼도(下三道)의 연해주현(沿海州縣)이 모두 편하고 근심이 없으며, 왜인들이 위업을 두려워하고 은덕에 감복하여 조공(朝貢)을 바치고, 와서 문안하지 아니하는 달이 거의 없습니다. 경인년에 동북쪽 올량합(兀良哈)과 싸워서 이긴 뒤에 야인들이 감히 독(毒)을 부리지 못하고 귀순(歸順)하기를 끊이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 나라가 이미 경험한 뚜렷한 효력이온데, 홀로 이 조그만 야인을 어찌 그다지도 깊이 염려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도승지 안숭선에게 명하여 밀봉(密封)하여 발표하지 말라 하고,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였다.

  • [註 031] 함매(銜枚) : 비밀히 행군할 때에 입에 막대기를 물려서 떠들지 못하게 함.
  • [註 032] 청야(淸野) : 적의 편리를 주지 않기 위하여 집들을 헐어 없앰.
  • [註 033] 반간(反間) : 간첩.
  • [註 034] 기병(奇兵) : 기이한 꾀를 써서 적을 치는 군대.
  • [註 035] 고황제(高皇帝) : 명 태조.
  • [註 036] 권변(權變) : 어떤 경우에 적합한 계책을 세우는 일.
  • [註 037] 화인(華人) : 중국 사람.

원문

○上將討婆猪江 野人, 欲試大臣, 密令政府六曹三軍都鎭撫等, 各陳接待之方、聲罪之辭、攻伐之策, 領議政黃喜曰:

若聲罪, 則當言: "忽剌溫 兀狄哈於本國, 不曾相通, 未知道路向背、山川通塞, 安能越二十餘日之程, 深入作賊! 且與汝等宿有讎怨, 不侵汝輩, 越入我邊備, 敢肆侵掠, 此不近事情之言也。 汝等嘗以交好, 誘我邊將, 乘其懈怠, 竊發作賊, 殺掠無辜, 謀匿己罪, 詐稱兀狄哈情迹明甚。 儻令兀狄哈作賊, 汝等邀奪被虜人口, 則牛馬家財, 何獨不奪? 是可疑也。 汝輩若內省不疚, 則押送被虜者, 誇功求賞, 常事也。 遇本國路人, 急遽交付, 自惑逃遁, 情實不直。 被虜回還者亦言: ‘汝輩陽圍兀狄哈, 而實與和好, 或合胸相把, 或相食酒肉。’, 則汝等引而犯邊無疑矣。" 以此聲罪, 勒令盡還被虜人畜。 彼如不從, 欽依太宗文皇帝宣諭聖旨, 問罪致討, 使不得安業可也。 若不可興師致討, 則益嚴武備, 固守邊境, 彼來犯邊, 應期追捕亦可也。 假如彼賊詐以交好, 甘言出來, 拘留待變何如?

左議政孟思誠曰:

入寇閭延, 專是婆猪 野人所爲, 而反指忽剌溫 兀狄哈, 因張天使奏帝所以當時事勢。 雖疑婆猪 野人所作, 然聲罪致討, 恐或不可, 但稱: "兀狄哈入掠我境, 經宿三日, 汝等非徒不追捕, 且不盡還被虜人畜, 又不擒送兀狄哈, 則專是汝輩所爲也。" 執以爲辭, 勿許和好, 謹愼固守, 使彼畏罪自服。 假若橫悖, 則急攻應變何如?

右議政權軫曰:

兀狄哈於二十餘日之程, 豈無指示之人, 而深入抄掠哉! 是必婆猪江 兀良哈爲之鄕導也, 使人諭以悉還人畜。 彼若犯邊, 則預整軍馬, 應變追捕可矣。 且崔閏德專制閫外, 彼之情僞, 猶可聞知, 詰問被虜還來人, 得情啓聞後, 聲罪之辭、攻伐之策, 更議何如?

吏曹判書許稠曰:

婆猪江 兀良哈與兀狄哈同心作賊無疑, 罪惡深重, 固當往伐。 然竊聞(被)〔彼〕 土山水險阻, 樹木茂密, 本無城郭, 散居山谷, 若聞(與)〔興〕 師, 輒遁深處, 似難追逐。 且此輩自度所作, 慮有征討, 洶洶未安, 此時往伐, 恐難有濟, 待兩界將帥觀變啓達後獻議。

戶曹判書安純曰:

婆猪之寇以忽剌溫爲辭, 然婆猪之人, 如不與謀, 忽剌溫豈能越數十日之程, 假途深入乎? 矧今俘虜之人, 皆自婆猪而還, 則其托彼而自解明矣。 誠宜聲罪致討, 掃蕩巢穴, 以示威武。 此聖上之軫念, 臣民之切齒者, 然其不可者有三。 獷俗負險, 伺隙而出, 見其不敵, 則鳥散而伏, 雖張、關之勇, 不得而施, 窮入賊穴, 未可必勝, 勞師無功, 反生輕侮之心, 一也。 假使値天之時, 選鋒銳進殲醜類, 以快一時之憤, 則斯無難矣。 然其類多種, 豈可盡誅? 倘出唇齒之計, 與嫌眞、骨看等常伺不虞, 協謀來侵, 後日之患, 不可勝言, 二也。 楊木塔兀負罪上國, 上國雖置之度外, 然欲致討之心, 未嘗頃刻而忘也。 聞我國用兵之利, 命使征之, 其何得辭? 此亦意外之慮, 三也。 且戎狄之害, 歷代通患, 帝王視之若蚊蝱之螫, 驅之而已。 待戎狄之道, 守備爲本, 不以攻伐爲先。 當繕修城堡, 選將練卒, 內侵則攻之, 遁去則不追, 是乃古今之良策。 婆猪之寇, 以忽剌溫爲辭, 是乃知罪自服之幾也。 因其自服之幾, 命還被虜人畜, 待之如初, 內謹修攘之備, 外示懷柔之仁, 則御戎之道得, 而構怨跳梁之患弭矣。 況張內史先將婆猪之人之語, 奏聞于帝, 尤不可以婆猪爲咎而往征之也。

贊成盧閈曰:

接待之方則彼人姦詐多端, 不可輕絶, 亦不可厚待, 依舊爲之。 聲罪之辭, 觀各人供招, 則婆猪江人與忽剌溫相親可知, 若果圍兀狄哈而奪六十餘人, 則其力足以制賊, 其勢可以盡奪, 而其餘人口畜産, 獨不奪送。 以此觀之, 婆猪人自爲賊明矣。 況忽剌溫與婆猪江相距二十五日程, 則與閭延尤爲懸隔, 忽剌溫人有何嫌, 而以一百孤軍, 道過婆猪之境, 而侵我疆土, 奪我人物乎? 然則婆猪江人詐稱忽剌溫而自爲賊明矣。 雖非婆猪人所作, 與忽剌溫相應作賊必矣。 是則彼婆猪江人不得辭其責矣, 固所當討。 然彼欲免罪, 以忽剌溫爲辭, 時方辨析, 罪名未着, 而亦已報於朝廷, 國家苟不得情而討罪, 則實爲未便。 今者彼人等逃遁山谷, 雖擧萬衆之師, 安得人人而制之哉? 且人心日久月深, 則可以得其情而知其實矣。 因續遣人, 令還被擄人口牛馬家財, 一以聽其言觀其志, 而因察山川險阻害要之處。 且待彼人等安心不虞, 然後聲罪致討何如?

刑曹判書鄭欽之曰:

接待之方, 聲罪致討之前, 宜當待之如初, 不可使彼知吾疑己, 德成其計, 若預備抗拒, 且或逃遁, 非策之得也。 聲罪之辭, 忽剌溫 兀狄哈與斡朶里 兀良哈等, 雖曰同類, 本非同心, 頗有嫌隙, 居數十日程途之外, 其間各種野人雜處, 與我不曾相通, 未知道路要害, 安能越千里之險, 冒雜種之虜, 深入我境乎? 儻使忽剌溫出來, 非斡朶里爲之鄕導, 安能的知要路, 襲我無備, 經三宿之久, 恣行無忌乎? 斡朶里於兀狄哈, 强弱不侔, 材技懸絶, 畏之不啻如虎。 今奪其所掠人口牛馬, 無亡矢遺鏃之費, 而反與之娛戲飮食, 交相往來, 如家人父子之相授受者, 是臣之所不信也。 況閭延軍人全義者, 交戰之時, 親見斡朶里 沈阿郞哈, 責以負恩爲賊, 又被虜回還婦人親, 聞賊德宋天富怨李春富之言, 其斡朶里之爲寇益明矣。 此賊仁義不足, 凶狡有餘, 豈不知後日之患乎? 故指忽剌溫爲辭, 猶擇婦女之美者與牛馬財物, 卒不盡還, 上欺天子, 以賣朝鮮。 以此聲罪, 何患無辭? 攻伐之策, 當選將鍊兵, 數道竝進, 銜枚疾馳, 出其不意, 掩其部落, 虜其巨魁, 遷其幼弱, 使彼輸誠納款, 稽顙求哀, 然後與之和親則易固, 以之招撫則易服矣。 此賊可以威服, 難以德化。 己亥對馬島之役, 朝野皆不欲征, 太宗斷自聖心, 六月興師, 以討其罪, 倭人畏威懷惠, 至今臣服, 民受其賜, 此已然之明效也。 今之議者皆曰: "彼雖實爲寇盜, 托以忽剌溫爲辭, 國家似若不知, 固我守備, 待之愈厚, 不可與之構怨。" 臣愚以謂此一時偸安之計, 非永世久安之長策也。

戶曹參判沈道源曰:

我國有野人之患, 猶中國之有戎狄也。 禦之之方, 備載方策, 大要不過征伐與和親爾。 今閭延之事, 邊將失策, 令殿下軫慮, 此臣等之罪也。 以被虜還來人言考之, 斡朶里姦詐之謀顯著, 其陰謀譎計, 非唯免今日之征討, 將以圖後日之作賊, 是不可不懲也。 林哈剌, 嘗有釁於邊境者也。 其所與他部落, 皆不過一兩日之程, 今當僞受其詐, 接之如初, 以求未還人物爲辭, 連續送人, 深察其情, 使閭延、江界選聚驍勇, 待其無心, 潛師渡江, 銜枚疾走, 數道竝進, 掩其不意, 責之曰: "忽剌溫所居遐隔, 出來之路, 由爾部落, 爾不同謀, 焉能作賊? 且爾盡奪其所掠, 奈何不盡還乎? 今我之來, 將以搜還人物耳, 宜當盡出。 背者殺之, 降者俘之。" 又戒將士, 勿殺老幼婦女, 盡驅以來, 拘留訊之, 則作賊之情可盡得, 邊民之冤可以雪也。 議者曰: "野人散居山谷, 難可盡滅, 一與爲隙, 邊患滋甚, 殆無寧歲。 今因其(其)詐, 包容以禦之可也。" 臣以謂野人侵害邊民, 未有如今日之慘酷也。 釋此不誅, 必生輕慢, 當討其罪, 使沿江諸郡築城堡謹烽火, 合氷則堅壁淸野以待之, 乘便觀利而擊之, 使走無所歸, 來無所得, 則不得爲邊患矣。 臣竊有獻焉, 幾事不密, 事故不成。 欲伐人, 而不密其事, 臣恐言之易洩也。 伏望深謀秘計, 內斷於心, 其臨機制勝之策, 委之將帥, 責其成功, 不勝幸甚。

刑曹左參判許誠曰:

野人近居我境, 與吾民雜處, 飢則卑辭來附, 飽則跳梁肆暴, 故當恩以懷之, 威以制之, 使知恩不可背, 而威不可犯也。 非若中國之於夷狄, 置諸沙漠區別之地, 而但以羈縻之也。 婆猪江 野人, 咫尺相望, 朝往夕還, 糊口我邊郡, 無求不得, 無欲不遂, 其恩至矣。 今反加侵害, 詐以北人來寇爲辭, 此將後日乞丐求索之計也。 今年如此, 則明年又如此, 不可不威以制之, 以防後患也。 接待之方、聲罪之辭、攻伐之策, 略陳于後。 一。 佯信彼人忽剌溫入寇之語, 依舊接待, 以觀其變。 一。 忽剌溫作賊之言, 罔誕不信明矣。 然事有明驗, 乃能正名其罪, 願擇遣朝官一人, 言於婆猪江酋長等曰: "兀狄哈虜掠我邊境人物而去, 爾等力戰而取, 良用喜謝。 然忽剌溫二十餘日之程, 懸軍深入, 古所未有。 又與我國本無小嫌, 不知何故而來。 爾等戰奪之際, 彼當言來侵之故, 欲問其詳。" 從容反覆詰問, 則彼亦對之無辭, 必露肝膽矣。 又令咸吉道都節制使擇遣軍官一人, 言於童猛哥帖木兒曰: "今聞森波之言, 稍知其變, 然森波之言, 似乎未盡, 願聞其詳。" 其忽剌溫遠來之故、婆猪人戰奪之由, 反覆詰問, 則亦可知其實矣。 又本國赴京使臣還, 則亦知婆猪 野人奏聞與否, 其陰謀欺誑之實, 自有明驗矣。 然後責之以"爾等朝夕往還, 乞丐求索, 以資其生, 當致謝之不暇, 乃背恩侵犯, 托以忽剌溫來寇爲辭, 欺誑天聰, 又誑我國, 爾等罪惡不淺。" 聲言致討, 使盡還人民畜産。 卽據太宗皇帝明降, 野人托辭欺誑之辭, 與夫興兵侵暴之狀, 具辭奏聞。 一。 行師之時, 則擇遣二品以上二, 又遣習於攻戰能知其界山川道路形勢上大護軍五六人, 以爲偏將。 其行軍進退之方, 令都節制使隨宜布置, 又命二品以上一人督察。

判院事河敬復曰:

臣竊見被虜回來人供招, 乃知作賊者非忽剌溫, 實是婆猪江 兀良哈, 誘引連境雜種野人而作賊也。 蓋忽剌溫距婆猪江二十餘日程, 且與我國本無釁端, 況當寒凍, 彼豈越千里之險, 而來侵我邊鄙乎? 兀狄哈之於兀良哈, 本非相和, 彼此相遇, 則狺然相噬矣, 豈有相遇之際, (杞)〔把〕 腰相戲之理乎? 此必是婆猪江 野人之所爲耳。 臣於壬寅年兀良哈來侵之後, 往鎭吉州, 使人於兀良哈諭之曰: "汝之所居, 東有大海, 北有諸種兀狄哈。 若不復我人口頭畜, 則吾將聞于國家, 當耕耘時往征, 以害汝農, 又於秋斂往征, 以害汝穡, 則汝將曷歸?" 彼皆讋服, 盡還我人口頭畜, 雖死牛馬, 亦皆徵還。 今婆猪江 兀良哈, 亦猶是也。 東接嫌眞雜種兀狄哈, 北有忽剌溫 兀狄哈, 西有中原而介居其間, 無所歸處。 今不勝一朝之忿, 犯我閭延, 恐我攻討, 托忽剌溫爲辭, 虜掠人物, 尙未盡還, 其紿國家甚矣, 是宜命將往征, 以示天威可也。 然山川險易, 未易知也; 虜掠人物, 亦未盡還也。 乞依臣前日之計, 姑緩攻討, 先遣諳練通事於婆猪江, 諭之曰: "汝等忘我國恩, 殺虜我人口, 奪掠我頭畜財物。 汝若不盡還, 我將春夏遣兵, 擾汝耕耘; 秋冬遣兵, 擾汝收藏, 將使汝無所歸處, 威以讋之, 使還我人物頭畜。 且知山川險易, 而後聲其罪而討之。 今若不討, 後必甘心, 乘間作賊, 須震雷霆之威, 往征其罪。 接待之方, 姑仍其舊。

禮曹判書申商曰:

接待之方, 依已成格例, 毋或加減, 彼如有欲來京辨明者, 給傳以送。 聲罪之辭, 年前本國被虜人逃來言: "林哈剌等含憤潛到閭延, 擄掠農民。" 其罪一也。 今又與忽剌溫結黨來侵, 殺害軍丁, 虜掠婦女牛馬家財, 詐稱忽剌溫所爲, 只還其老幼男女而已, 餘皆匿不以還, 其罪二也。 歲在戊寅, 虜掠閭延人物, 又於壬寅, 再擧入侵者, 非此輩而誰歟? 其罪三也。 攻伐之策, 以當時已然之迹觀之, 此輩雖非自爲, 與忽剌溫相應必矣, 固當攻伐示威, 然事理無窮, 關係甚重, 宜令東西兩界邊將因事使人, 徐觀其勢, 更得其實, 然後乃加攻伐, 未爲晩也。 當其攻伐之日, 令其道將帥瞰其無心, 潛師入境, 討其有罪者, 其投降與老弱, 勿殺擒來, 以待其餘類來謝, 盡還我人口頭畜, 然後還給。

參贊李孟畇曰:

侵犯閭延者, 非忽剌溫, 卽婆猪江 野人所爲也。 雖或有忽剌溫來賊者, 必是婆猪人交結作賊明矣, 不可不聲罪致討。 然臣聞彼地山川險阻, 林木薈蔚, 經路狹而多曲折, 雖大擧而往, 什什伍伍, 不得竝馳而進, 彼必嚴斥候以待之, 如聞我軍之至, 則匿其妻子老弱, 使壯勇者, 每於曲折幽僻之處, 隱居林壑, 我軍纔至, 攻其前後, 則進退失措, 雖或進攻巢穴, 其可得乎? 如或直擣巢穴, 一無所取, 空往空還, 但損國威耳, 不如佯信歸罪忽剌溫之辭。 如有來往者, 溫言厚接, 聽給需索, 如舊而已可矣。 不得已攻伐, 則須俟一二年後, 斯得矣。 緩之數年, 則彼必謂我永不來討, 弛其武備矣。 當是時也, 分遣將帥, 出其不意, 各攻其部落, 則不得自相救援, 而巨魁可盡殲, 老弱可盡擒也。 若夫聲罪之辭: ‘爾等密邇我疆, 邊將待之甚厚, 仍給所求之物, 其懷綏也至矣。 今乃忘恩背德, 反肆豺狼之毒, 犯我邊疆, 殺虜我軍民, 劫奪我牛馬財物, 慮其問罪, 欲免誅戮, 歸罪於忽剌溫, 其言之誣妄, 昭然可知也。 忽剌溫之地, 距我境千有餘里, 安敢以百餘兵馬, 突過爾等部落, 直犯我疆乎? 況與我無宿怨乎? 且被虜回還人等, 皆言汝等所爲也。 我民無罪而被殺者多, 虜去未還者多, 何忍置之而不問乎? 故今命將往討, 蓋出於不得已也。 爾若盡刷未還人物及牛馬財産以還, 仍繫頸來謝, 則待以不死。 不爾則當盡殲爾衆, 以復邊民讎怨。" 以此諭之何如?

兵曹右參判皇甫仁曰:

臣聞來則撫之, 去則不追, 寇則禦之, 此古之帝王禦戎之大略也。 然夷狄有盛衰, 深爲中國邊患者, 猶多有之。 於是或議和親, 或議征伐, 要皆偏見一時之利害, 而未有究終始遠近者也。 國家地連野人, 特一小水隔之。 然氷合則坦如周道, 來往如飛, 其可不深慮乎? 如去冬閭延之事, 至爲寒心。 今觀被虜人之語及全義之言, 兀良哈見彼人, 而相歡如兄弟, 則彼入寇者, 非(兀狄合)〔兀狄哈〕 也, 必其同類也。 兀狄哈則與兀良哈, 曾有嫌隙, 安有如此相歡乎? 兀狄哈本居深處, 安有二十餘日之程, 遠涉他種野人之境, 而敢行侵掠乎? 夷狄之俗, 雖義理不足, 而凶狡有餘, 閭延之寇, 必是兀良哈含前日之恨而爲之, 乃歸罪於兀狄哈。 兀狄哈安知江邊人物聚居虛疎之處, 淹留三日而爲盜乎? 儻曰兀狄哈來侵, 則兀良哈必爲前驅而指示也。 兀良哈居我北門, 衣食之奉, 實賴我國, 反行剽竊, 背恩忘德甚矣, 頑凶不恭甚矣。 當聲罪致討, 殄滅無遺, 然當此時, 外有可伐之勢, 內有不可伐之實。 兀良哈等深恐我國, 故今乃名言之曰: "海西兀狄哈虜掠人物而去, 我率兵, 與張天使兵馬共圍之, 奪六十四口而還。" 其心反以爲大有功於國家, 今未知其實, 而遽發兵伐之, 旣爲不可。 且建州衛指揮將兀狄哈侵掠彼我國人物之事, 已奏朝廷, 張天使亦旣還京, 徐觀其勢, 則必得其實矣。 然後聲其罪以伐之, 亦未晩也。 且我北方, 東自慶源, 西至義州沿邊城堡, 時未畢築。 今擧兵伐之而未盡滅之, 則彼俗報復之心, 嚚然未已, 乘間投隙, 無時入寇, 則邊民之患, 無時而息, 莫若沿邊郡城可築處畢築之, 木柵可排處畢排之, 斥候烽火等事, 無不畢備, 雄城巨鎭, 烟火相望, 精卒勁弩, 分守要害。 然後爲寇之迹未著, 則依已成待遇之禮而待之, 羈縻不絶, 以觀其勢, 入寇之迹悉著, 則命一二良將, 將數千之衆, 分道俱進, 聲其罪曰: "汝居我北門, 寢食我疆境, 乍臣乍叛, 擾我邊民, 今又無因而逞盜賊之謀, 殺掠我人民, 侵奪我頭畜財物, 乃詭之曰: ‘兀狄哈。’ 其姦凶頑惡甚矣。 肆命將問罪, 汝能戰則戰, 不能戰則輸情謝罪。" 如此則彼賊必有辭矣, 因其辭之曲直, 而區處之可也。 彼地太山長谷之間, 草木鬱密, 難以成陣, 千態萬狀, 變化須臾, 在將帥應變如何耳, 不可遙度。 然上下山坂, 潛匿竊發, 野人之長技也。 觀其山川之形、虛實之勢, 曠野則進攻之, 鬱密則因風之勢而縱火燒之, 隱遁則盡焚其廬舍, 雖未得快意, 如此數年, 則彼賊春夏不得耕耘, 秋冬不得安居, 終繫其類致闕下矣。 此接待聲罪攻伐之大略也。 若其條目則必因時區處, 乃得其宜, 臆量之說, 未免有膠柱不通之患, 臣欲因後日事變而更陳之。

同知中樞院使李順蒙曰:

忽剌溫與婆猪江, 相距懸絶。 且與我無釁端, 安敢跋涉千里, 虜我邊民乎? 是必婆猪 野人與雜種野人同心入寇也。 然不知山川險阻, 而遽欲往伐, 賊必恐懼, 逃匿山谷, 雖遣百萬之師, 恐不能得志矣。 臣妄謂因其詐謀, 佯爲不識, 歸罪於忽剌溫, 歸功於婆猪江, 接待如舊, 則賊必謂我陷於術中, 而安然不虞。 我則多爲反間, 備知山川險阻, 待江氷解, 作船作桴, 潛師越江, 出其不意, 急擊一二部落, 回師速還, 則賊必含恨, 待氷而來, 應而擊之, 是良策也。 夫然後諭野人曰: "汝等虜掠邊民, 詐稱忽剌溫, 故邊將不告國家, 直問汝罪爾。" 若須往伐, 則於甲山等處, 命遣將卒, 聲罪往伐。 置木柵於閭延江北, 屯兵五六百人, 使戍其柵, 示其威靈, 使賊不得農作田獵, 以資其生, 賊心尤忿, 氷合則必來侵犯, 我則嚴兵固守, 以逸待勞, 此兵家所謂致人, 而不致於人也。 賊若不來, 則因形往伐, 亦可也。 臣抑有獻焉, 今蕞爾百餘野人, 得逞暴虐, 虜掠邊民, 小臣伏聞其事, 寢不假寐, 腐心切齒, 願竭駑鈍, 往問不恭之罪。

兵曹判書崔士康曰:

接待之方, 臣竊謂今以被虜還來各人之言, 參觀其事勢, 則實非忽剌溫, 乃林哈剌等之所爲也。 然彼賊旣知其非, 乃曰: "被虜之人, 奪於忽剌溫, 悉以還送。" 往來如常, 則雖接之以(後)〔厚〕 可也。 況來則撫之, 去則勿追, 禦戎之良策乎? 姑宜接之如舊, 以觀其變。 聲罪之辭, 臣竊謂婆猪之賊, 近處我境, 朝往夕還, 請乞鹽醬, 以資其生, 若忽剌溫之賊出來, 則彼當使人先告, 拒而不納可也。 作賊之前, 不先告變, 作賊之後, 詐稱忽剌溫, 彼之自賊明矣。 還來之人皆曰: "奪取之時, 不接兵刃, 或把腰相戲, 或饋以酒食。" 其爲詐諼, 亦明矣。 忘我惠養之德, 侵我邊陲, 無辜之氓, 殘殺者五十餘, 虜掠者七十餘, 牛馬財産之奪亦不知幾, 以此執言致討, 則誰敢不服? 攻伐之策, 臣竊謂婆猪之賊, 魁首不過五六, 所領未滿數百, 雖其黨與散處, 然程途遙隔, 豈一晝一夜所能救援哉? 若命將選卒, 分軍爲三, 更出迭入, 則彼何敢當我哉? 然野人恃其山谿之險、林木之茂, 奔突竄伏, 安能一擧而盡殲乎? 然則徒增怨怒, 尋復鼠竊, 邊境未得寧矣。 黨類分處東北, 聞其攻伐, 則更相來侵, 北方之民, 亦未得安寢矣。 況建州衛屬遼東, 而作賊之事, 詐稱忽剌溫所爲, 已聞于帝, 臣謂莫若修城柵固封疆, 遣使告諭, 悉還人物, 則雖無目前之快, 亦不貽患於後也。

工曹判書趙啓生曰:

野人人面獸心, 丐乞之間, 未厭所欲, 便生私怨, 窺覘虛實, 賊害邊民, 雖懷之以恩, 不可保也。 今入侵閭延, 雖以爲忽剌溫, 然忽剌溫於我國, 本無往來, 又無釁端, 豈知閭延防禦虛疎之實, 以孤軍經强敵所在婆猪之地, 遽來作賊? 被虜還來人言: "婆猪江人與忽剌溫, 或把腰(讀)〔談〕 笑, 或割肉相喫。" 如此則其同謀可知也。 且兀狄哈之强勇, 本野人所畏, 不交一刃, 何以盡奪虜去之人物乎? 其相應可知也。 當相戰時, 閭延正軍全義見婆猪江住忱阿郞哈, 罵曰: "汝等前此頻來乞食, 受恩於我國, 何故同來作賊?" 阿郞哈不答回去, 則婆猪江人引忽剌溫, 同謀作賊, 又何疑哉? 其送還虜去人物, 圖免後日攻伐之計也。 若誠爲我國而奪其虜去之人物, 則當初過門之賊, 何不先報於我國乎? 其姦惡莫甚, 若置而不問, 是示弱也。 彼賊將謂我國, 墮於術中而甘心矣, 況未還人物, 何以不推乎? 宜當以此執言, 往征其罪。 婆猪江 野人, 雖以兀狄哈作賊, 先聞朝廷, 具其野人同謀之狀奏聞, 則直在我、曲在彼, 朝廷豈疑我國而信野人哉? 然野人本無城郭, 散居山谷, 先知我兵之至, 登山而遁, 則雖千萬兵, 何以制之? 出其不意, 掩襲攻之, 在將帥籌策耳。

參贊成抑曰:

接待之方, 臣意以謂婆猪 野人, 暗引同類, 侵耗邊境, 詐稱兀狄哈, 然情迹未著, 宜令邊將分遣人探問。 彼若以送還虜掠人物爲功, 姑順其意, 名爲賞勞, 擇遣有智勇敢者, 且慰且問, 以觀其意, 待之稍厚, 令平安、咸吉兩道訪問, 如得其情, 奏聞上國, 聲罪致伐, 不患無辭矣。 攻伐之策, 臣意以爲及此時攻伐, 則彼賊自知其罪, 竄伏山谷, 雖興師深入, 必不得攻, 蜂蠆之毒, 亦不可不慮, 姑待之稍厚, 令閭延、江界軍馬, 頻數越江田獵, 示爲常事, 然後出其不意, 攻伐何如?

同知敦寧府事趙賚曰:

忽剌溫距閭延三十日餘程, 今當天寒雪深, 深入抄掠, 不近事情。 又以被虜各人供招觀之, 其事勢, 雖似兀狄哈入寇, 兀良哈等援引作賊, 明白無疑, 誠宜擧義致討, 然自古用兵者, 先知山川道路遠近險易, 然後行師。 彼人所據之地, 山川險阻, 雖用千萬之衆, 難以成功, 今又作賊, 彼必設備以待之, 不可輕擧。 臣愚以爲任其彼人之誣, 姑示寬大之恩, 遣人賜酒, 仍使詗察情實, 明知道路難易, 然後待其懈怠之隙, 設奇兵以討之, 猶未晩也。

禮曹右參判柳孟聞曰:

婆猪江 兀良哈, 與其族類同來作賊, 明白無疑, 是誠不可不懲也。 然其魁首旣受帝命, 爲婆猪江指揮, 則不可擅自往伐也。 又況托稱忽剌溫, 以奏于帝, 則其可不奏而擅伐乎? 今若奏達, 未必允許, 不請擅誅, 亦爲未便。 唯其來服, 則加惠而送之, 如又侵擾我疆, 則登時滅之, 庶合撫綏制禦之方。

禮曹左參判朴安臣曰:

忽剌溫與我國相距遼隔, 又無讎怨, 而但以百餘兵來寇, 似無是理。 且以被虜回還人所說觀之, 其爲婆猪之賊無疑矣, 然不可輕擧者有四焉。 婆猪江虜, 旣受帝命, 號爲指揮, 且今托以忽剌溫虜去朝鮮之人, 擧兵圍之, 攻奪所獲, 悉令回還, 飾詐奏聞, 皇帝必以爲然矣。 當是之時, 不卽奏聞, 擅興師旅而往討, 一也。 彼賊旣寇我邊, 自懼其禍, 設備待變, 不可攻伐, 二也。 且與猛哥帖木兒共爲掎角, 其勢已著, 只擊婆猪, 則是遺虎狼而問狐狸, 猛哥帖木兒反生疑惑, 唇齒相資, 其謀難測, 三也。 閭延、江界之民, 方見破敗, 離散憂危, 殊無戰志, 四也。 大抵善戰不如善陣, 善陣不如善守, 能屈能伸, 用兵之道也。 今莫若修城柵、鍊兵器, 積糧餉、謹候邏, 優來使行間(楪)〔諜〕 , 探其首謀作賊之爲誰, 又知其與猛哥帖木兒同謀作賊之實, 具辭奏聞, 欽蒙明允, 然後出其不意, 分兵突擊, 竝破二虜, 似亦未晩。

兵曹左參判鄭淵曰:

閭延侵掠之事, 婆猪是人, 雖曰忽剌溫, 然忽剌溫與我本無嫌隙, 二十餘日隔絶險路, 無緣出來, 侵掠人物, 固無此理。 婆猪之人, 久居我境, 來往求索, 少有不厭, 必生怨恨, 又有林哈剌失奴追逐, 明有其嫌。 今侵掠之事, 實婆猪之人所爲也。 然事迹時未現著, 虜掠人口, 過半送還, 且張天使之還, 聲言忽剌溫侵掠, 則必以此言告朝廷, 雖有高帝之詔, 今未更奏, 遽急攻伐, 實爲未便。 臣愚之計, 莫若修城柵、固邊圍, 彼雖侵犯, 使邊民悉皆入保, 避患之策, 無不備具, 又擇武臣三品以下有智略能權變者, 齎酒饌往諭之曰: "忽剌溫侵奪人口, 遙奪而還, 是可喜也。 然未還人口財物, 宜當盡數刷還。" 因察所居山川形勢、用兵難易, 聽言觀動, 則其間事勢情僞, 庶可知矣。 如此而審知侵掠情實、山川道路, 然後奏聞準請, 聲罪致討, 則事機未晩, 名正言順, 彼輩亦無辭自伏矣。 未擧兵之前, 接待宜如舊。

吏曹左參判金益精曰:

我國之有野人, 猶中國之有匈奴, 接待之方、守禦之備, 不可不愼也。 苟或邊將匪人, 關防失守, 則必生窺覦之心, 重爲吾民之害矣。 戎狄之性, 無異豺狼, 强悍戾, 嫌隙必報, 難以恩信結之, 威勢服之也, 然其養生佚樂, 而欲保其身者, 無異於華人也。 我太祖、太宗明於禦戎之道, 納款歸附, 則豐其賜與, 又令邊郡濟其窮乏。 由是邊境無虞, 生民安枕, 于今四十餘年矣。 其接待之方, 姑令依舊, 嚴其防守, 示之以威, 嘉其來附, 綏之以恩, 則强悍之氣銷, 而窺覦之心自沮矣。 安有背恩忘惠, 構怨於我乎? 至若聲罪之辭、攻伐之策, 則又有說焉。 忽剌溫不與我連境, 無恩讎之可報, 肯聚百餘之衆, 越千里之險, 而輕犯我境乎? 今考各人供辭, 實非忽剌溫明矣。 又還其被虜人口之際, 徒遣老弱而匿其丁壯, 其欲報前釁, 而懼其見伐, 托爲他賊亦明矣。 雖凶謀萬端, 假托多辭, 其情迹畢露, 而姦狡自見矣。 往問其罪, 豈曰無辭? 然聲罪而攻, 雖曰行師之正, 彼其山谿之險、樹木之密, 鳥竄鼠伏, 聚散倐忽, 師出窮險之地, 不見一虜而還, 未可知也。 分據要害, 伏發逼我, 亦未可知也。 如此則非徒一時之失利, 將見後日之侵陵矣。 莫若選其精銳, 間道銜枚, 出其不意, 要其走路而繼以大兵, (經)〔徑〕 往襲之, 則彼衆可盡虜矣。 獨念西自婆猪, 東至于海, 野人之居, 多則百餘聚, 少則數十戶, 厥類非一, 同惡相濟, 賊平之後, 脫有遺醜修怨報仇, 容或有之矣。 選揀名將, 嚴兵警備, 守禦之方, 誠不可不愼也。

工曹右參判李兢曰:

自古禦夷狄之策, 人持所見, 各有異同, 其要歸不過曰和親、曰征伐兩科而已。 然各有得失, 不可以執一論也。 臣竊料野人通謀同類, 陰逞憤情, 愛惜土地, 圖免後患, 姦狡審矣。 議者曰: "婆猪江至白頭山北, 部落連接, 種類甚衆, 不可侵犯以啓報復之端, 莫若佯信其言, 姑置勿問, 接待如初, 則止怨之方、安邊之利, 勿擊便。" 臣愚以謂彼豺狼貪暴之類, 如知其佯信之術, 未爲良策, 如不知之, 其必曰: "朝鮮之人, 墮於術中。" 甘心肆暴, 不可被詐侮而受實禍也, 又安知異日邊患無有已也? 昔有一婦人行淫, 其夫佯爲不知而莫之禁, 卒之被害, 何以異於是哉? 夫規事建議, 不圖永世之利, 偸恃一時之便者, 未可以經久也。 臣妄意令邊將先使人切責之曰: "汝等近居我境, 乞索鹽醬口糧, 輒便給與, 恩養足矣。 但爾等虜掠中國人口及我邊民, 爲奴婢使喚, 往往有逃來者, 審問根脚, 中國人口, 發還遼東, 我國之人, 仍令復業, 此乃尊朝廷、愛百姓, 事理之當然也。 我國何負於汝, 不計是非, 背恩忘德, 反致憤怨乎? 前此汝等數來, 侵掠我國, 不計細過, 非兵力不贍而勿問也。 近者結聚群黨, 暗入作賊, 虜去男女七十餘口, 殺害四十餘口, 牛馬財物, 盡數搶奪。 當相戰日, 閭延正軍全義對見婆猪江住坐沈阿郞哈, 罵曰: ‘汝等前此數來乞索, 受恩我國不爲小矣, 何故同來作賊?’ 罵不絶聲, 阿郞哈不答回去, 衆人所共見知也。 今汝等變生謀計, 詭言: ‘忽剌溫作賊回去, 中路圍住, 還奪人口送回。’ 其未還之人安在? 且牛馬財物, 全不送還, 是何姦狡之甚歟? 男女老幼, 無辜遇害者, 如彼其多, 誠爲痛心。 永樂八年間, 兀良哈等突入慶源府作賊, 我軍追逐廝殺時, 八乙速等指揮四名, 中箭身死, 我國具奏太宗皇帝, 聖旨節該: ‘恁殺的正好, 這已後還這般無禮呵, 不要饒了。’ 我國欽奉聖旨旣如此, 今汝等所爲又如此, 雖我國大擧師旅, 殲滅汝類, 皆汝自取, 復誰咎哉?" 邊將引軍至彼, 陳師觀變, 彼若畏服, 卑辭請降, 則責以大義, 班師而還, 上策也。 若驚惶罔措, 棄其部落, 逃遁山林, 則勿窮追、勿殘害, 全其部落, 明示威靈, 薄伐而還, 中策也。 若彼我相敵, 鋒刃交接, 決其勝負, 下策也。 臣妄意必出於中策也。 然則寡怨之道、息戰之方, 王者之師矣。 然後修築城堡, 嚴整軍兵, 固封疆、謹守禦, 則彼必畏服, 自來求和, 待之不過依舊而已。 己亥年東征以後, 至于今下三道沿海州縣, 晏然無虞, 倭人畏威懷德, 納款來朝者, 殆無虛月, 庚寅年東北兀良哈戰勝之後, 野人不敢肆毒, 歸順不絶, 此我國家已驗之明效也。 獨此蕞爾野人, 豈足深慮乎?

上命都承旨安崇善, 密封不發, 潛心決定。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세종실록59권, 세종 15년 2월 15일 己亥 2/7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의정부·육조 등에게 파저강 야인에 대한 접대 방식과 토벌할 계책 등을 진술하게 하다

국역

임금이 장차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토벌하려고 대신에게 시험하고자 하여, 비밀히 의정부·육조·삼군 도진무 등에게 〈저들을〉 접대할 방법과 죄를 성토(聲討)할 말과 토벌할 계책 등을 각각 진술하게 하니, 영의정 황희는 아뢰기를,

"만약 그 죄를 성토 하려면, 마땅히 말하기를, ‘홀라온 올적합(忽剌溫兀狄哈)은 본국과는 일찍이 상통하지 아니하여 길의 방향과 산천의 형세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20여 일의 노정(路程)을 넘어서 깊이 들어와 도둑질하였겠는가. 또 너희들과 더불어 오랜 원수가 져 있는데, 너희들을 침범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변경수비를 넘어 들어와서 감히 침략을 방자히 하였으니, 이는 실정에 가깝지 아니한 말이다. 너희들이 일찍이 교호(交好)로써 우리 변장(邊將)을 달래어, 그 방비에 게을리하는 틈을 타서 몰래 살그머니 나와 도둑질하여 무고한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고는, 자기의 죄를 숨기기를 꾀하여 거짓으로 올적합을 칭탁한 정적(情迹)이 매우 분명하다. 만일 올적합이 도둑질하고, 너희들이 사로잡힌 인구를 쳐서 빼앗았다면 마소와 재물만을 어째서 빼앗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이 가히 의심스럽다. 너희들이 만약 반성하여 잘못이 없다면, 포로된 사람을 압송(押送)하는 자가 공을 자랑하고 상(賞)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 일인데, 본국의 길가는 사람을 만나 급하게 교부(交付)하고는 스스로 의혹하여 도망해 피하였으니, 정실(情實)이 곧지 못하다.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자도 말하기를, 「너희들이 겉으로는 올적합을 포위하였으나, 실상은 화호(和好)하여 혹 가슴을 합하여 서로 잡으며, 혹 서로 술과 고기를 먹었다.」고 하니, 너희들이 끌어 들여서 변경을 범한 것이 틀림없다. ’고 하여, 이로써 죄를 성토하고,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다 돌려보내게 하되, 저들이 만약 좇지 아니하거든, 삼가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의 선유(宣諭)한 성지(聖旨)에 의해서 죄를 묻고 토벌하여, 편히 살지 못하게 함이 가하옵니다. 만약 군사를 일으켜 칠 수 없다면 더욱 무비(武備)를 엄하게 하고 변경을 굳게 지켜서, 저들이 와서 변경을 침범하거든 추적하여 잡는 것도 가하옵니다. 가령 저들 도적이 거짓으로 교호(交好)하겠다는 이유로써 감언(甘言)으로 나오거든, 구류(拘留)시켜 변(變)을 기다리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좌의정 맹사성은 아뢰기를,

"여연에 침입해 도둑질한 것은 오로지 파저강 야인의 소위인데, 도리어 홀라온 올적합을 지목하여 장 천사(張天使)를 통하여 황제께 주달하였으므로, 당시의 사세가 비록 파저강 야인들의 소위임이 의심스러우나,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는 것은 혹 불가할까 합니다. 다만 일컫기를, ‘올적합이 우리 경계에 들어와서 노략질하기를 3일 동안이나 하였는데, 너희들이 쫓아가 잡지 아니하였을 뿐더러, 또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또 올적합을 사로잡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오로지 너희들의 소위다. ’라고 딱잡아 말하고, 화친하기를 허락하지 말며, 삼가고 굳게 지켜서 저들로 하여금 죄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자복하게 하되, 만약 횡포하게 굴거든 급히 공격하여 변란(變亂)에 대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우의정 권진은 아뢰기를,

"올적합은 20여 일의 길을 어찌 지시하는 사람이 없이 깊이 들어와서 노략질하였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올량합이 길을 인도한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서 사람과 가축을 모두 돌려보내도록 효유하고, 저들이 만약 변경을 침범하거든, 미리 군사와 말을 정비하여 사변에 응하여 쫓아가 잡는 것이 가하겠습니다. 또 최윤덕이 곤외(閫外)를 전제(專制)하므로, 저들의 실정을 오히려 들어서 알 수 있으니, 피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에게 힐문(詰問)하여 실정을 얻어 계문(啓聞)한 뒤에, 죄를 성토할 말과 토벌할 계책을 다시 논의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조 판서 허조는 아뢰기를,

"파저강 올량합이 올적합과 더불어 합심하여 도둑질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사오니, 죄악이 심히 중하여 당연히 가서 쳐야 할 것이오나, 그윽이 듣건대, 저들의 땅이 산수(山水)가 험조(險阻)하고, 수목(樹木)이 무성하고 빽빽하여, 본디 성곽(城廓)이 없고 산골에 흩어져 산다고 하오니, 만약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깊은 곳으로 도망갈 것이오니 쫓기 어려울 듯하며, 또, 이 무리들이 스스로 지은 죄를 헤아리고 토벌함이 있을까 염려되어 흉흉(洶洶)하여 불안해 할 것인데, 이때에 가서 치는 것이 성공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양계(兩界)의 장수들이 사태를 살펴서 계달하기를 기다려 뒤에 헌의(獻議)하게 하옵소서."

하고, 호조 판서 안순은 아뢰기를,

"파저강의 도둑이 홀라온을 핑계하여 말하나, 파저강 사람이 만일 같이 공모하지 아니하였으면, 홀라온이 어찌 능히 수십 일의 노정(路程)을 넘어서 〈파저강의〉 길을 빌어 깊이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포로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파저강에서 돌아왔으니, 그것은 저들을 핑계하여 스스로를 해명한 것이 분명하옵니다. 진실로 죄를 성토하고 토벌해서 그 소굴을 소탕(掃蕩)하여 무위(武威)를 보이소서. 이는 성상의 진념(軫念)하시는 바이며, 신민(臣民)이 이를 가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함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오랑캐의 습성이 지리의 험함을 믿고 틈을 엿보아 나왔다가,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면 새처럼 흩어져 숨으니, 비록 관우(關羽)·장비(張飛) 같은 용맹이 있을지라도 행할 수 없는데, 도둑의 소굴에 깊이 들어갔다가 반드시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수고롭게 하여 공이 없으면 도리어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첫째입니다.

가사 좋은 시기를 만나 정예(精銳)한 군사를 뽑아 나아가서 추한 무리들을 섬멸(殲滅)하여, 한때의 분함을 쾌(快)하게 한다면야 이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종류가 많아서 어찌 다 베어 죽일 수 있으며, 만약 저들이 단결하여 서로 보호하는 계책을 내어, 혐진(嫌眞)·골간(骨看) 등과 더불어 항상 생각지 아니하는 기회를 엿보아서 공모하고 내침(來侵)하면, 후일의 근심은 말할 수 없을 것이오니, 이것이 둘째입니다.

양목답올(楊木答兀)은 중국에 죄를 지었는데, 중국에서 비록 탓하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나 토벌할 마음은 잠시도 잊지 않는데, 우리 나라가 군사를 써서 승리했다는 것을 듣고 〈양목답올〉 치기를 명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도 의외의 염려이오니, 셋째입니다.

또, 오랑캐[戎狄]의 침해는 역대의 공통된 근심이온데, 제왕(帝王)들은 모기가 쏘는 것처럼 보고 몰아냈을 뿐입니다. 오랑캐를 대하는 도리는 수비(守備)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공벌(攻伐)을 먼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항상 성보(城堡)를 수선하며, 장수를 고르고 군사를 훈련시켜서, 안으로 침노하거든 공격하고, 도망쳐 가거든 쫓지 않았사온즉, 이는 고금의 좋은 계책이옵니다. 파저강의 도둑이 홀라온을 핑계해서 말하니, 이는 곧 죄를 알고 자복하는 기미(幾微)입니다. 그 자복하는 기미를 통하여 피로된 사람과 가축을 돌려보내기를 명하고, 대하기를 처음과 같이하여, 안으로는 닦고 물리치는 준비를 오로지하고, 밖으로는 회유(懷柔)의 어진 마음을 보이면, 오랑캐를 제어하는 도리에 적합하고, 원수를 맺아 날뛰는 근심을 방지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장 내사(張內史)가 먼저 파저강 사람의 말을 황제께 아뢰었으니, 파저를 허물하여 가서 치는 것은 더욱 불가하옵니다."

하고, 찬성 노한(盧閈)은 아뢰기를,

"접대의 방법은, 저들이 간사함이 많아서 가볍게 끊을 수는 없으나, 또한 후하게 대접할 수 없으니 예전대로 하며, 죄를 성토하는 말은, 각 사람의 공초(供招)를 보면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과 더불어 서로 친한 것을 가히 알 수 있으니, 만약 올적합을 포위하여 60여 명을 과연 빼앗았다면, 그 힘이 족히 도둑을 제어하고 그 형세가 가히 다 빼앗을 만한데, 그 나머지 사람과 가축만은 빼앗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본다면 파저강 사람이 스스로 도둑질한 것이 명백합니다. 더군다나 홀라온과 파저강은 거리가 25일정(日程)이니 여연과는 더욱 멀리 떨어졌는데, 홀라온들이 무슨 혐의가 있어서 1백 명의 고군(孤軍)으로 파저강의 경계를 지나 우리 강토를 침범하고 우리의 사람과 물화를 빼앗아 갔겠습니까. 그런즉,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이라 사칭(詐稱)하고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며, 비록 파저강 사람이 한 짓이 아닐지라도 홀라온과 더불어 기맥을 통하여 도둑질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이것은 저 파저강 사람이 그 죄책을 사피할 수 없을 것이니 진실로 마땅히 쳐야 할 바이오나, 저들이 죄를 면하고자 하여 홀라온을 핑계해 말하였으니, 방금 사실을 밝히는 중이고 죄명(罪名)을 붙이지 아니 하였으며, 또 이미 중국 조정에 보고하였는데, 국가에서 진실로 그 실정을 얻지 못하고서 토죄(討罪)한다면 실로 적당치 못합니다. 지금 저 사람들이 산골에 도망해 숨었으니, 비록 1만 명의 군사를 일으킬지라도 어찌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인심은 세월이 오래되면 그 정(情)과 실(實)을 알 수 있는 것이오니, 잇따라 사람을 보내어 사로잡힌 사람·마소·가산(家産) 등을 돌려보내게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말을 듣고 그 뜻을 살피며, 인하여 그 산천의 험조(險阻)와 요해처(要害處)를 살펴보고, 또 저 사람들이 안심하기를 기다린 뒤에 죄를 성토하고 토벌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형조 판서 정흠지는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기 전에 마땅히 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할 것이며, 저들에게 우리가 자기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서, 그들의 계책을 이루는 데에 덕이 되게 함은 불가하오니, 만약 항거하기를 예비하거나, 혹 도망해 숨게 함은 옳은 계책이 아니옵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홀라온 올적합(忽剌溫兀狄哈)이 알타리 올량합과 비록 같은 무리라고 하나, 본래 마음이 같지 아니하여 서로 틈이 있으며, 수십 일정(日程)의 밖에서 살고, 그 사이에는 각종 야인들이 섞여 살아서, 우리와 더불어 일찍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도로의 요해(要害)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으면서, 다른 여러 오랑캐에게 사로잡힘을 무릅쓰고서 우리 경계에까지 깊이 들어왔을 것입니까. 가사 홀라온이 나왔을지라도 알타리가 이들을 위하여 길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요로(要路)를 적확하게 알고 우리의 무방비(無防備)한 틈을 타서 습격하여, 사흘이나 오랜 날을 지내면서 거리낌 없이 도둑질을 함부로 행하였겠습니까. 알타리가 올적합에게 강약(强弱)이 같지 아니하고 재주와 기술이 현격한 차이가 있어, 두려워하기를 호랑이처럼 할뿐이 아닌데, 지금 그 약탈한 사람과 마소를 빼앗았으나 화살과 활촉을 허비한 것이 없고, 도리어 더불어 즐기고 희롱하면서 마시고 먹이며, 서로 왕래하기를 한집 사람이나 부자(父子)가 서로 주고받음과 같이 하니, 이는 신의 믿지 못하는 바입니다. 더군다나 여연의 군인 전의(全義)란 자가 교전할 때에, 알타리 심아랑합(沈阿郞哈)을 친히 보고 은혜를 저버리고 도둑질함을 꾸짖었고, 또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부인들이 도둑 송천부(宋天富)가 이춘부(李春富)를 원망하는 말을 친히 들었으니, 그것은 알타리가 도둑질한 것이 더욱 명백하옵니다. 이 도적은 인의(仁義)는 부족하나 음흉하고 간사함은 남음이 있으니, 어찌 후일의 근심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홀라온을 지목해 말하면서 오히려 부녀자 가운데 아름다운 자와 마소·재물 등을 마침내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위로 천자를 속여서 조선을 팔았으니, 이것으로써 죄를 성토한다면 어찌 할 말이 없다고 근심하겠습니까. 공벌(攻伐)하는 계책은, 마땅히 장수를 고르고 군사를 훈련시켜, 두어 길로 나누어 함께 나아가서 함매(銜枚)031) 하고 재빨리 달려가, 그들이 뜻하지 아니할 때에 나가 그 부락들을 덮쳐서, 그 큰 괴수(魁首)를 사로잡고, 그 어리고 약한 자는 옮겨서, 저들로 하여금 정성을 드러내고 성심으로 복종하여 이마를 조아려 애걸하게 한 뒤에, 더불어 화친하면 쉽게 굳어질 것이고, 이로써 불러서 어루만지면 쉽게 복종할 것입니다. 이는 도둑을 위력으로는 굴복시킬 수 있으되 덕으로 감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해년 대마도의 정역(征役)에 조야(朝野)에서 모두 치고자 아니하였으나, 태종께서 성심(聖心)으로 스스로 결단하시어 6월에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토벌하니, 왜인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혜를 생각하여, 지금까지 신하로 복종하고 백성들이 그 은혜를 받으니, 이는 이미 그러한 밝은 공효(功效)입니다. 지금의 논의하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저들이 비록 실지로 도둑질하였을지라도 홀라온을 칭탁해 말하니, 국가에서는 모르는 체하고 우리의 수비를 굳게 하여 대접하기를 더욱 후하게 할 것이고, 더불어 원수를 맺을 수 없다. ’고 하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는 일시의 편함을 도모하는 계책이지 대대로 영구히 편히 할 좋은 계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하고, 호조 참판 심도원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 야인의 걱정이 있는 것은 중국에 융적(戎狄)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어하는 방법과 방책(方策)에 갖추 실려 있으니, 대요(大要)는 정벌과 화친 두 가지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연의 일은 변장(邊將)이 실책하여 전하께서 진념하시게 하오니, 신 등의 죄이옵니다.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의 말을 고찰하건대, 알타리의 간사한 꾀가 현저하오니, 그 음모와 간휼한 꾀는 오늘날의 정벌을 면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장차 후일에 도둑질하기를 도모하는 것이오니, 이는 징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임합라(林哈剌)는 일찍이 변경에 분쟁을 일으킨 일이 있는 자인데, 그와 함께 하는 다른 부락이 모두 하루 이틀 길에 불과하니, 지금은 마땅히 그 간사함을 거짓으로 받아들여서 대접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여,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과 물건을 요구한다는 말로써, 잇따라 사람을 보내어 그 실정을 깊이 살피고, 여연·강계에서 날래고 용맹한 장졸을 뽑아 모아서, 그들이 무심히 있을 때를 기다려 가만히 군사가 강을 건너서 함매(銜枚)하고 빨리 달려가서, 두어 길로 아울러 나아가서 불의(不意)에 덮치고 꾸짖기를, ‘홀라온의 있는 곳이 멀리 떨어졌고, 나오는 길이 너희 부락을 경유하는데, 너희가 공모하지 아니하였다면 어찌 능히 도둑질할 수 있었겠는가. 또 너희가 그 노략질한 것을 다 빼앗았다면 어찌하여 다 돌려주지 아니하느냐. 지금 우리가 온 것은 장차 사람과 물건을 찾으려는 것이다. ’라고 하면, 마땅히 다 내어 놓을 것이며, 배반하는 자는 죽이고 항복하는 자는 포로하며, 또 장졸들을 경계하여 노인과 어린이와 부녀들은 죽이지 말고, 모두 몰고 와서 구류(拘留)시키고 신문하면, 도둑질한 실정을 다 알수 있으며, 변경 백성들의 원통함을 가히 씻을 것입니다. 논의하는 자는 말하기를, ‘야인들이 산골에 흩어져 살아서 다 멸망시킬 수 없는데, 한번 서로 틈이 나면 변경에 환란이 더욱 심하여 거의 편할 해가 없을 것이니, 그들이 간사함으로 포용(包容)하여 방어함이 가하다. ’고 하오나, 신은 생각하건대, 야인들이 변민(邊民)을 침해한 적이 오늘처럼 참혹한 때가 있지 않았는데, 이를 놓아 두고 베어 죽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업신여길 것이오니 마땅히 그 죄를 토벌할 것입니다. 연강(沿江) 여러 고을로 하여금 성보(城堡)를 쌓고, 봉화(烽火)를 삼가히 하여, 얼음이 얼거든 성벽(城壁)을 굳건히 하고 청야(淸野)032) 하여 기다리다가, 기회를 타고 편리를 보아서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금 달아나도 돌아갈 바가 없고, 와도 소득이 없게 한다면 변경의 근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그윽이 아뢸 것이 있습니다. 기밀의 일을 비밀히 하지 아니하면 일이 이룩되지 아니한다고 하오니, 남을 치고자 할 적에 그 일을 비밀히 아니하면, 신은 말이 누설되기 쉬울까 염려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깊은 꾀와 비밀한 계책을 마음속으로 결단하시고, 그 기회에 임하여 승리를 거둘 방책을 장수에게 위임하여 그 성공을 책임지게 하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형조 좌참판 허성(許誠)은 아뢰기를,

"야인이 우리 지경에 가까이 살아 우리 백성들과 더불어 섞여 있으면서, 굶주리면 겸손한 말로 와서 복종하고, 배부르면 마구 날뛰며 함부로 포학(暴虐)하게 구는 까닭으로, 마땅히 은혜로서 회유하고 위엄으로써 제압하여, 이들에게 은혜를 배반할 수 없고 위엄을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며, 중국이 이적(夷狄)을 사막 지방의 구별된 땅에 버려 두고 다만 횡포하지 못하도록 굴레를 씌워 제어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파저강 야인은 지척에서 서로 바라보고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며, 우리 변군(邊郡)에서 먹고 살면서 요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고, 하고자 함을 이루지 못함이 없었으니 그 은혜가 지극하온데, 지금 도리어 침해를 가하고 거짓으로 북쪽 사람이 와서 도둑질했다고 말하니, 이는 장차 후일에 구걸하여 물건을 요구하려는 계책입니다. 금년에 이와 같이 하면 명년에 또 이와 같이 할 것이오니, 위력으로 제어하여 후환을 방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접대하는 방법과, 죄를 성토하는 말과, 공벌하는 계책 등은 다음에 간략하게 진술하옵니다.

1. 저들 홀라온이 들어와서 도둑질했다는 말을 짐짓 믿는 체하고, 예전대로 대접해서 그 변동(變動)을 볼 것입니다.

1. 홀라온이 도둑질했다는 말은 망령되고 허탄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분명하오나, 일이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 죄명을 바르게 할 것이므로, 원컨대 조관(朝官) 한 사람을 택해 보내어 파저강 추장(酋長) 등에게 말하기를, ‘올적합이 우리 변경의 사람과 물건을 노략해 갔는데, 너희들이 힘써 싸워서 탈취하였으니 진실로 기쁘고 고맙다. 그러나 홀라온은 20여 일정(日程)에서 군사를 달려 깊이 들어왔으니 예전에 없던 바이며, 또 우리 나라와 더불어 본래 조그마한 혐의도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너희들이 싸워서 빼앗을 적에 저들이 마땅히 와서 침략한 까닭을 말했을 터이니, 그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한다. ’고 하면서 조용히 되풀이해 캐어 물으면, 저들도 대답할 말이 없어서 반드시 속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 함길도 도절제사로 하여금 군관(軍官) 한 사람을 택해 보내어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에게 말하기를, ‘지금 삼파(森波)의 말을 듣고서 그 사변을 좀 알긴 했으나, 삼파의 말이 미진한 것 같으므로 그 자세한 것을 듣기 원한다. ’고 하면서, 그 홀라온이 멀리까지 온 까닭과, 파저강 사람이 싸워서 빼앗은 이유를 되풀이해 힐문하면, 또한 그 사실을 가히 알 것입니다. 또 본국에서 북경에 간 사신이 돌아오면 파저강 야인이 주문(奏聞)한 여부를 알 것이오니, 그 음모와 속이는 사실이 스스로 명백한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꾸짖기를, ‘너희들이 조석으로 왕래하면서 구걸하고 요구하여 그 생활을 힘입었으므로, 마땅히 감사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이에 은혜를 배반하고 침범하고도 홀라온이 와서 도둑질했다고 핑계해 말하여, 천총(天聰)을 속이고 또 우리 나라를 속였으니, 너희들의 죄악이 작지 아니하다. ’고 성토하고, 토벌하여 인민과 축산(畜産)을 다 돌려보내게 하고는, 곧 태종 황제께서 내리신 명령에 의거하여, 야인이 말을 가탁(假託)하여 속였다는 말과 군사를 일으켜서 침포(侵暴)한 상황을 자세히 갖추어서 주문(奏聞)할 것입니다.

1. 군사를 행할 때에 2품 이상을 두 사람 뽑아 보내고, 또 공격하는 싸움에 익숙하고, 그 경계의 산천과 도로의 형세를 잘 아는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 5, 6명을 보내어 편장(褊將)을 삼으며, 그 행군(行軍)하는 진퇴(進退)의 방법은 도절제사로 하여금 적당함에 따라 배치하게 하고, 또 2품 이상의 한 사람을 명하여 독찰(督察)하게 하옵소서."

하고, 판원사(判院事) 하경복(河敬復)은 아뢰기를,

"신이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의 공초(供招)를 가만히 본즉, 도둑질한 자는 홀라온이 아니고 실은 파저강 올량합이 연경(連境)한 잡종 야인들을 유인해서 도둑질한 것입니다. 대개 홀라온은 파저강과의 거리가 20여 일정(日程)이며, 또 우리 나라와는 본래 틈이 없는데, 하물며 춥고 어는 때를 당하여 저들이 어찌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어 와서 우리의 변경을 침략하였겠습니까. 올적합이 올량합과 본래 서로 불화하여 피차 서로 만나면 개처럼 짖으며 서로 물고 뜯는데, 어찌 서로 만날 즈음에 허리를 안고 서로 희롱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야인들의 소행입니다. 신이 임인년에 올량합이 와서 침략한 뒤에 길주에 진무(鎭撫)로 가서, 올량합에게 사람을 시켜 효유하기를, ‘너희들 있는 곳은 동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고, 북쪽으로는 여러 종류의 올적합이 있는데, 만약 우리의 인구가 가축을 돌려주지 아니하면, 내가 장차 나라에 알려서 농경시(農耕時)를 당하여 가서 쳐서 너희들의 농사를 해칠 것이며, 또 추수 때에 가서 쳐서 너희들 곡식을 해치면, 너희들은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고 하니, 저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우리의 인구와 가축을 돌려보내고, 비록 죽은 마소라도 모두 찾아서 돌려보냈습니다. 지금 파저강 올량합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혐진(嫌眞) 잡종 올적합과 연접하였고, 북쪽으로는 홀라온 올적합이 있고, 서쪽에는 중국이 있어, 그 사이에 끼어 있어 돌아갈 곳이 없는데, 지금 한때의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우리 여연을 침범하고는, 우리가 칠까 봐 두려워하여 홀라온을 가탁해 말하고 노략질한 사람과 물건을 아직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니, 그들이 우리 나라를 속임이 심하옵니다. 이는 마땅히 장수를 명하여 가 쳐서 천위(天威)를 보이는 것이 가하옵니다. 그러나 산천이 험난하고 평탄함을 쉽사리 알지 못하고, 노략질한 사람과 물건도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원컨대 신의 전일의 계책에 의하여 우선 토벌을 늦추고, 먼저 사리에 밝고 익숙한 통사(通事)를 파저강에 보내어 효유하기를, ‘너희들이 우리 나라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의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으며, 우리의 가축과 재물을 약탈하였으니, 너희가 만약 다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장차 봄과 여름에 군사를 보내어 너희 농사짓는 것을 요란하게 하고, 가을과 겨울에 군사를 보내어 너희 추수하는 것을 요란하게 하여, 장차 너희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게 하겠다. ’고 하고, 위엄으로 겁내게 하여 우리의 사람·물건·가축 등을 돌려보내게 하며, 또 산천의 험난하고 평탄한 것을 안 뒤에 그 죄를 성토하고 토벌할 것입니다. 지금 만약 토벌하지 않으면 뒤에는 반드시 마음속으로 달갑게 여겨 틈을 타서 도둑질할 것이오니, 모름지기 벼락같은 위엄을 떨쳐 가서 그 죄를 치게 하고, 접대하는 방법은 아직 예전대로 하옵소서."

하고, 예조 판서 신상(申商)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이미 이룩된 격례(格例)에 의하여 더하거나 덜함이 없게 하며, 저들이 만약 서울에 와서 변명하고자 하는 자가 있거든 역마(驛馬)를 주어 보낼 것입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연전에 본국 사람으로 포로되었다가 도망해 와서 말하기를, ‘임합라(林哈剌) 등이 원한을 품고 몰래 여연에 이르러 농민들을 노략질하였다. ’고 하니, 그 죄가 첫째요,

지금 또 홀라온과 더불어 한편이 되어 와서 침범하여 군정(軍丁)을 살해하고 부녀자·마소·가산(家産) 등을 노략질하고는, 거짓으로 홀라온의 소위라고 하면서 다만 늙고 어린 남녀만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숨기고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그 죄가 둘째이요,

무인년에 여연에서 사람과 재물을 노략질하고, 또 임인년에 재차 들어와서 침범한 자들이, 이 무리들이 아니고 누구이옵니까. 그 죄가 셋째라고 할 것입니다.

공격하는 계책은, 당시의 이미 그렇게 된 자취로서 본다면, 이들이 비록 스스로 한 짓이 아닐지라도 홀라온과 더불어 서로 내통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공격하여 위엄을 보일 것이오나, 사리(事理)가 무궁하고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오니, 마땅히 동서 양계(東西兩界)의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일로 인해서 사람을 보내어 조용히 그 형세를 살펴보게 하고, 다시 그 사실을 밝힌 뒤에 공격을 가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토벌하는 날을 당해서는 그 도의 장수로 하여금 그들이 무심히 있을 때를 엿보게 하여, 몰래 군사가 그 지경에 들어가 그 죄가 있는 자는 치고, 항복하는 자와 늙은이·어린이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 와서, 그 남은 무리들이 와서 사죄하고 우리 인구와 가축을 다 돌려보내기를 기다린 뒤에야 도로 줄 것입니다."

하고, 참찬 이맹균(李孟畇)이 아뢰기를,

"여연을 침범한 자는 홀라온이 아니고 바로 파저강 야인의 소행입니다. 비록 혹 홀라온이 와서 도둑질하였다 할지라도 반드시 파저강 사람과 결탁하여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오니,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듣건대, 저들의 땅은 산천이 험조(險阻)하고 수목이 울창하며, 길은 좁고도 매우 꼬불꼬불하여, 비록 큰 군사를 거느리고 갈지라도 열씩 다섯씩 함께 달려서 나아갈 수 없으며, 저들이 반드시 척후(斥候)를 엄하게 하여 기다릴 것이니, 만일 우리 군사가 이른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처자와 노약(老弱)은 숨기고, 장용(壯勇)한 자로 하여금 길이 굽고 후미진 곳마다 수풀과 구렁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 군사가 겨우 이르러 그 앞뒤를 공격하면 진퇴(進退)할 바를 잃을 것이오며, 비록 그 소굴을 진공(進攻)한다 할지라도 어찌 찾을 수 있겠습니까. 혹 그 소굴을 바로 다짓는다 하여도 하나도 소득이 없이 헛되게 갔다가 돌아올 것 같으면 국위(國威)만 손상시킬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그들이 홀라온에게 죄를 돌리는 말을 짐짓 믿는 체하고, 만일 내왕하는 자가 있거든 온순한 말로 후하게 대접하고 요구를 들어 주어 예전대로 함이 가하며, 할 수 없이 토벌할 적에는 모름지기 1, 2년 후를 기다리는 것이 득책(得策)입니다. 수년을 늦추면 저들이 반드시 우리가 영구히 가서 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무비(武備)를 늦출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장수를 나누어 보내서 그들이 생각지도 않을 때에 나가서 각각 그 부락을 치면, 서로 구원할 수 없어서 큰 괴수를 가히 다 섬멸할 수 있을 것이며, 노약(老弱)을 가히 다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죄를 성토하는 말은, ‘너희들이 우리 경계와 밀접하여 변장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인하여 요구하는 물건을 주었으니 그 회유(懷柔)함이 지극하였는데, 지금 은덕(恩德)을 배반하고 도리어 시랑(豺狼)같은 독(毒)을 내어 우리 변경을 침범하여, 우리 군민(軍民)을 죽이고 사로잡았으며, 우리의 마소와 재물을 겁탈하고는, 그 죄를 문책할까 염려하여 죽음을 면하려고 그 죄를 홀라온에게 돌렸으니, 그 말이 속이고 망령된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홀라온의 땅은 우리 경계와의 거리가 천여 리(里)인데, 어찌 감히 1백여 병마(兵馬)로서 너희들의 부락을 뚫고 지나와서 바로 우리 경계를 침범하였겠는가. 더군다나 우리와의 묵은 원수가 없는 데에서랴. 또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너희들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우리 백성이 죄 없이 피살된 자도 많고, 사로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한 자도 많은데, 어찌 차마 그대로 두고 죄를 묻지 않겠느냐. 이 까닭으로 지금 장수에게 명하여 가서 치게 하였으니 대체로 부득이함에서이다. 너희가 만약 돌려보내지 아니한 사람과 마소·재산 등을 다 쓸어 보내고, 인하여 목을 매고 와서 사죄하면 대접해 죽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 무리들을 다 섬멸하여 변경 백성들의 원수를 갚겠다.’ 하여, 이런 말로서 효유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병조 우참판 황보인(皇甫仁)은 아뢰기를,

"신은 듣건대, 오거든 어루만지고 가거든 쫓지 아니하며, 도둑질하거든 방어하는 것은 옛 제왕들의 오랑캐를 제어하는 대략입니다. 그러하오나 이적(夷狄)이 성쇠(盛衰)가 있어 중국 변경의 큰 근심이 된 적이 오히려 많았으므로, 이에 혹은 화친하기를 의논하고, 혹은 정벌하기를 의논하였으나, 요는 모두 일시의 이해(利害)에 대한 편견(偏見)이지 시종(始終)과 원근(遠近)을 구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야인과 땅이 연접하였고, 특히 작은 물이 격(隔)하였으나, 얼음이 얼면 큰길같이 평탄하여 내왕하기를 나는 듯이 하므로, 그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겨울 여연의 일과 같은 것은 지극히 한심하옵니다. 지금 포로되었던 사람의 말과 전의(全義)의 말을 들어 보면, 올량합이 저들을 보고 서로 좋아하기를 형제같이 한다고 하니, 들어와서 도둑질한 자는 올적합이 아니라 반드시 그 동류들입니다. 올적합은 올량합과 일찍이 사이가 나쁜데 어찌 이같이 서로 좋아하겠습니까. 올적합은 본래 깊은 곳에 사는데 어찌 20여 일의 노정에서 다른 종족 야인의 지경을 멀리 넘어 침략을 감히 행하였겠습니까. 오랑캐의 풍속이 비록 의리(義理)는 부족하나 흉하고 간사함은 남음이 있으니, 여연을 도둑질한 것은 반드시 올량합이 전일의 원한을 품고 한 짓인데, 죄를 올적합에게 돌린 것입니다. 올적합이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허소한 곳을 어찌 알고 3일 동안을 머물면서 도둑질하였겠습니까. 만약 올적합이 와서 침범하였다면 올량합이 반드시 앞장서서 지시한 것입니다. 올량합이 우리 북문(北門)에서 살면서 입고 먹는 것을 실로 우리 나라에 의뢰하는데, 도리어 도둑질을 행하니 은혜를 잊고 덕을 저버림이 심하오며, 완흉(頑凶)하고 불공(不恭)함이 심하옵니다. 마땅히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여 남김없이 섬멸시킬 것이오나, 이때를 당하여 밖으로는 칠 만한 형세가 있고, 안으로는 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올량합 등이 우리 나라를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금 변명하여 말하기를, ‘해서(海西) 올적합이 사람과 재물을 노략질해 가는 것을, 우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장 천사(張天使)의 병마(兵馬)와 더불어 함께 포위하여 64명을 빼앗아 보낸다. ’고 하였으니, 그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우리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할 것인데, 지금 그 실상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은 이미 불가합니다. 또 건주위 지휘(建州衛指揮)가 올적합이 저들과 우리 나라의 사람과 재물을 침략한 일을 이미 중국 조정에 아뢰었고, 장 천사도 이미 북경으로 돌아갔으니, 조용히 그 형세를 보면 반드시 그 실정을 알 것이오니, 그런 뒤에 그 죄를 성토하고 토벌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또 우리 나라 북방(北方)은 동으로는 경원으로부터 서로는 의주에 이르기까지 연변(沿邊)의 성보(城堡)를 이때까지 쌓기를 마치지 못하였는데, 지금 군사를 일으켜 쳐서 다 멸하지 못한다면, 저들이 보복할 마음을 미련스럽게 가지게 되어, 틈만 있으면 때 없이 들어와서 도둑질할 것이니, 변민(邊民)의 근심이 그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연변 고을에 성을 쌓을 만한 곳은 다 쌓고, 목책(木柵)을 배설할 곳은 다 배설하며, 척후(斥候)·봉화(烽火) 등의 일이 다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웅성(雄城)과 거진(巨鎭)이 연기와 불을 서로 바라볼만큼 많이 있고, 정련(精鍊)된 군사와 강력한 쇠뇌[弩]로써 요해처(要害處)에 나누어 지키게 한 뒤에, 도둑질한 형적이 드러나지 않거든 예전에 대우하던 예(禮)에 의하여 대접하되, 고삐는 놓지 말고 그 형세를 보아, 침략한 형적이 드러나거든 한두 사람의 좋은 장수에게 명하여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나누어 함께 나아가서 그 죄를 성토하기를, ‘너희들이 우리 북문(北門)에 살고, 우리의 경계에서 자고 먹으면서, 잠시 신하노릇 하다가 고대 배반하여 우리 변경 백성을 요란하게 하고, 지금 또 까닭 없이 도둑질하는 꾀를 내어 우리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으며, 우리의 가축과 재물을 약탈하고는, 속이기를 올적합의 짓이라고 하니 그 간흉 완악(奸凶頑惡)함이 심하다. 그리하여 장수에게 명하여 죄를 문책하니, 너희가 능히 싸우겠거든 싸우고, 싸우지 못하겠거든 사실대로 자복하고 사죄하라.’ 하고, 이와 같이 말하면 저 도적이 반드시 말이 있을 것이오니, 그 말의 옳고 그름에 따라 변통하여 처치함이 가하옵니다. 저들의 땅에는 큰 산과 긴 골짜기 사이에 초목이 울밀하므로 진(陣)을 치기 어렵고, 천태만상(千態萬狀)이 잠깐 사이에 변화(變化)함은 장수의 응변 여하에 있을 뿐이니 멀리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판에 오르내리면서 슬쩍 숨고 몰래 나오는 것은 야인들의 장기(長技)입니다. 그 산천의 모양과 허실(虛實)의 형세를 보아서, 넓은 들판에서는 나아가서 치고, 초목이 울밀한 곳에는 풍세(風勢)를 이용하여 불을 놓아 태우며, 도망해 숨거든 그 집을 모두 태우면, 비록 마음에 개운하지는 못할지라도, 이같이 수년을 한다면 저 도적들이 봄과 여름에는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고, 가을과 겨울에는 편히 살 수가 없을 것이니, 마침내 그 무리들을 잡아 묶어 궐하(闕下)에 바칠 것이옵니다. 이는 접대하는 방법과 죄를 성토하는 말과 토벌하는 계책의 대략이옵니다. 그 조목은 반드시 그 시기에 따라서 처리하여야 그 적당함을 얻을 것이며, 억측하는 말은 변통성 없다는 근심을 면하지 못함이 있으므로, 신이 후일의 사태의 변함에 따라서 다시 진술할까 하옵니다."

하였다.

동지중추원사 이순몽(李順蒙)은 아뢰기를,

"홀라온은 파저강과의 상거(相距)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우리와 틈이 없는데 어찌 감히 길을 넘어 와서 우리 변민을 잡았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파저강 야인이 각종 야인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들어와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천의 험조를 알지 못하고 갑자기 가서 치고자 하면, 도적들이 반드시 두려워하여 산골짜기에 도망해 숨을 것이니, 비록 백만의 군사를 보낼지라도 뜻을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신은 망령되게 생각하건대, 그 간사한 꾀를 따라서 짐짓 모르는 체하여, 죄는 홀라온에게 돌리고 공(功)은 파저강 야인에게 돌려서 대접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면, 적이 반드시 우리 술책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안심하고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간(反間)033) 을 많이 해서 산천의 험조를 자세히 알아, 강에 얼음이 풀리기를 기다려 배와 떼를 만들어 군사들을 몰래 강을 넘게 하여, 그들이 생각지 아니할 적에 나가서 급히 한두 부락을 공격하고 군사를 돌이켜 속히 돌아오면, 적이 반드시 원한을 품고 얼음 얼기를 기다려서 올 것이니, 이에 응하여 치면, 이것이 좋은 계책입니다. 그런 뒤에 야인에게 효유하기를, ‘너희들이 변민을 노략질하고는 간사하게 홀라온을 칭탁하기 때문에, 변장(邊將)이 나라에 고하지도 아니하고 바로 너희에게 문죄(問罪)하는 것이다. ’고 할 것입니다. 만약 모름지기 가서 친다면, 갑산(甲山) 등지에 장졸(將卒)을 명해 보내어 죄를 성토하고 가서 치게 하며, 목책(木柵)을 여연·강북(江北)에 설치하고, 군사 5, 6백 명을 주둔시켜 그 목책을 지키게 하고 그 위엄을 보여서, 도적으로 하여금 농사짓고 사냥하지 못하게 하여 생활에 나가도록 하면, 도적이 더욱더 분한 마음을 먹고 얼음이 얼면 반드시 와서 침범할 것이니, 우리는 군사를 엄하게 하고 지키기를 굳게 하여, 편안히 앉아서 멀리 오는 피로한 군사를 기다릴 것이니, 이는 병가(兵家)에서 이르는 바, ‘남을 유치(誘致)하고 남에게 유치되지 않는다. ’고 하는 것입니다. 도적이 만약 오지 아니하거든 형세에 따라 가서 치는 것도 가하옵니다. 신이 또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지금 조그마한 백여 명의 야인이 마음대로 포악하게 굴어서 변민(邊民)들을 노략질하였으니, 소신이 엎드려 그 사실을 듣고서 자리에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아프고 이가 갈립니다. 〈신이〉 노둔(駑鈍)한 재주를 다하여 그 불공(不恭)한 죄를 가서 묻기를 원하옵니다."

하고, 병조 판서 최사강(崔士康)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지금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각 사람의 말로써 그 사세를 참작해 본다면, 실은 홀라온이 아니고 곧 임합라(林哈剌) 등의 소행입니다. 그러나 저들 도적이 이미 그 잘못을 알고, 이에 말하기를, ‘포로된 사람을 홀라온에게서 빼앗아 도로 돌려보낸다. ’고 하였으니, 왕래하기를 보통 때와 같이 한다면 비록 후하게 대접하여도 가하옵니다. 더군다나 오거든 어루만지고 가거든 쫓지 말게 함은 오랑캐를 제어하는 좋은 계책이 아니옵니까. 아직 대접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여 그 변동을 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죄를 성토하는 말은,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파저강의 도둑이 우리 경계에 가까이 있으면서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고, 소금과 간장을 구걸해서 그 생활에 이바지하는데, 만약 홀라온의 도적이 나오면, 저들이 마땅히 사람을 시켜 먼저 고하고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이 가하거늘, 도둑질을 하기전에 먼저 변(變)을 고하지 아니하고, 도둑질을 한 뒤에는 거짓으로 홀라온을 칭탁하였으니, 저들 스스로가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옵니다.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탈취할 때에 칼로 싸우지 아니하고, 허리를 껴안고 서로 희롱하기도 하고, 술과 음식을 먹이기도 하였다. ’고 하오니, 그 거짓임이 또한 명백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길러 준 덕을 잊고 우리의 변경을 침노하여 죄 없는 백성을 죽인 것이 50여 명이고, 사로잡아 간 것이 70여 명이며, 마소와 재산을 약탈한 것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오니, 이로써 말을 잡아 토벌하면 누가 감히 굴복하지 아니하겠습니까. 토벌하는 계책은,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파저강 도적의 괴수는 5, 6명에 불과하고, 거느린 것이 수백 명 미만이오니, 비록 그 무리들이 흩어져 있다 하나 길이 멀리 막혀 있으니, 어찌 하루 낮 하루 밤에 능히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장수에게 명하고 군사를 뽑아서, 셋으로 군사를 나누어 번갈아서 들어가고 나오면, 저들이 어찌 감히 우리를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야인들이 그 산과 골짜기의 험함과 숲과 나무의 무성함을 믿고 달려나와 냅다 치고 숨어 버린다면, 어찌 능히 일거(一擧)에 다 섬멸(殲滅)하겠습니까. 그런즉 한갓 원망과 분노만을 더하게 하여, 곧 다시 도둑질할 것이오니 변경이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겨레붙이가 동북쪽에 나누어 살고 있는데, 그 토벌한다는 것을 들으면 다시 서로 와서 침노할 것이니, 북방의 백성도 역시 편히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건주위(建州衛)는 요동에 속하는데 도둑질한 일을 거짓으로 홀라온의 소위라고 하여 이미 황제께 알렸으니, 신은 생각하건대, 성책(城柵)을 수리하고 경계를 굳게 지키며, 사신을 보내서 효유하여 사람과 물건을 모두 돌려보내게 하면, 비록 당장 눈앞에 개운함은 없을지라도 뒷날에 후환을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공조 판서(工曹判書) 조계생(趙啓生)은 아뢰기를,

"야인들은 얼굴은 사람이라도 마음은 짐승과 같으므로, 구걸하는 사이에 욕심에 차지 않으면 문득 사사로운 원망을 품어 허실(虛實)을 엿보아 변민을 침해하오니, 비록 은혜로서 회유(懷柔)할지라도 보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연에 침입한 것을 비록 홀라온이라고 말하나, 홀라온은 우리 나라에 본래 왕래도 없고 흔단(釁端)도 없는데, 어찌 여연의 방비가 허술한 사실을 알고 고군(孤軍)으로 강적(强敵)이 있는 파저강 땅을 지나 갑자기 와서 도둑질하였겠습니까.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과 더불어 허리를 껴안고 웃기도 하고, 고기를 베어 같이 먹기도 하였다. ’고 하니, 이와 같다면 그 공모한 것을 가히 알겠습니다. 또 올적합이 강하고 용맹함을 야인이 본래 두려워하는 바이온데, 한 번 칼을 겨루워 싸우지도 아니하고 어떻게 사로잡아 가는 사람과 물건을 다 빼앗았겠습니까. 그 서로 내통한 것을 가히 알겠습니다. 서로 싸울 때에 여연의 정군(正軍) 전의(全義)가 파저강에 거주하는 심아랑합(沈阿郞哈)을 보고 꾸짖기를, ‘이전에 너희들이 자주 와서 구걸해 먹어 우리 나라에서 은혜를 입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같이 와서 도둑질하느냐. ’고 하니, 아랑합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돌아갔다고 하니, 파저강 사람이 홀라온을 끌어다가 공모해 도둑질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그 포로해 간 사람을 돌려보낸 것은 후일에 우리의 토벌을 면하기 위한 계책입니다. 만약 진실로 우리 나라를 위해서 그 포로해 가는 사람과 물건을 빼앗았다면, 당초에 문앞을 지나가는 도둑을 어찌 먼저 우리 나라에 알리지 않았겠습니까. 그 간악(姦惡)함이 너무 크옵니다. 만약 그대로 두고 문죄(問罪)하지 않으면 이는 유악함을 보이는 것이오며, 저 도적들이 장차 우리 나라가 그들의 술책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좋아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어찌하여 찾아 보내지 아니하옵니까. 마땅히 이로써 말을 하여 그 죄를 정벌할 것입니다. 파저강 야인이 비록 올적합이 도둑질한 것이라고 중국 조정에 먼저 알렸을지라도, 야인이 공모한 사실을 중국에 알리면 곧은 것은 우리에게 있고, 굽은 것은 저들에게 있으니, 중국 조정에서 어찌 우리 나라를 의심하고 야인들을 신용하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야인은 본래 성곽(城廓)이 없고 산골에 흩어져 사는데, 우리 군사가 이른다는 것을 먼저 알고 산에 올라가 숨으면, 비록 천만의 군사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이를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 뜻하지 아니할 때에 나가서 덮쳐 습격(襲擊)하는 것은 장수의 전략(戰略)에 달렸습니다."

하고, 참찬 성억(成抑)은 아뢰기를,

"접대하는 방법은 신의 마음속으로 생각하건대, 파저강 야인이 비밀히 동류를 끌어다가 변경을 침범하고는 거짓으로 올적합을 칭탁하였으나 증거가 드러나지 아니하였으니, 마땅히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탐문(探問)하게 하여, 저들이 만약 노략질한 사람과 재물을 돌려보낸 것을 공(功)으로 삼거든, 우선 그 뜻에 순응하여 공로를 상(賞)을 준다는 명목으로, 지혜있고 용감한 자를 골라 보내어 위로도 하고 캐묻기도 하여, 그들의 뜻을 살피면서 대접하기를 다소 후하게 하며, 평안·함길 두 도로 하여금 방문하게 하여, 만약 그 실정을 얻거든 중국에 주문(奏聞)하고 죄를 성토하여 토벌을 행하면, 할 말이 없음을 근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토벌하는 계책은 신이 생각하건대, 이때에 이르러 토벌한다면 저 도적들이 스스로 그 죄를 알고 산골짜기에 숨을 것이오니, 비록 군사를 일으켜 깊이 들어갈지라도 반드시 공격할 수 없으며, 벌[蜂]처럼 쏘는 독기(毒氣)를 또한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대접하기를 다소 후하게 하고, 여연·강계 등의 군마(軍馬)로 하여금 자주 강을 건너가서 사냥하게 하여 예사로운 일처럼 그들에게 보인 뒤에, 그 뜻하지 않는 때에 나가 토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조뇌(趙賚)는 아뢰기를,

"홀라온은 여연과 거리가 30여 일의 노정인데, 지금 날이 춥고 눈이 깊이 쌓인 때를 당하여 깊이 들어와 노략질했다는 것은 사정에 가깝지 아니하며, 또 포로되었던 각 사람의 공초(供招)를 보면 그 사세(事勢)가 비록 올적합이 침입한 것 같으나, 올량합 등이 끌어들여서 도둑질한 것이 명백하여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진실로 의(義)를 들어 토벌을 행함이 마땅하오나, 예로부터 군사를 쓰는 자는 먼저 산천과 도로의 멀고 가깝고 험하고 평탄한 것 등을 안 뒤에 군사를 행하는데, 저들의 살고 있는 땅은 산천이 험조하여 비록 천만의 많은 군사를 쓸지라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지금 또 도둑질하였으므로 저들이 반드시 준비하고 기다릴 것이오니 가볍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들이 속이는 대로 두고 우선 관대한 은혜를 보여서 사람을 보내어 술을 주고, 인해서 실정을 정탐해 살펴서 도로의 난이(難易)를 자세히 안 뒤에, 그들이 방비를 게을리하는 틈을 기다려서 기병(奇兵)034) 을 써서 토벌해도 오히려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예조 우참판 유맹문(柳孟聞)은 아뢰기를,

"파저강 올량합이 그 겨레붙이들과 더불어 같이 와서 도둑질한 것은 명백하여 의심할 나위 없으니, 이는 진실로 징계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괴수(魁首)가 이미 황제의 명을 받아 파저강 지휘가 되었으니, 마음대로 스스로 가서 칠 수 없습니다. 또 더군다나 홀라온을 칭탁하여 황제께 아뢰었으니, 〈우리 나라에서〉 아뢰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만약 주달(奏達)하면 반드시 윤허하지 않을 것이며, 주청(奏請)하지 아니하고 토벌하는 것도 옳지 못하오니, 오직 와서 굴복하거든 은혜를 더하여 보내고, 만일 우리 경계를 침략하여 시끄럽게 하거든, 그때에 쳐서 없애면 거의 어루만지고 제어하는 방법에 합할까 하옵니다."

하고, 예조 좌참판 박안신(朴安臣)은 아뢰기를,

"홀라온이 우리 나라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원수진 일이 없는데, 다만 백여 명의 군사로써 와서 도둑질할 이치는 없을 듯하옵니다. 또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말한 바로써 본다면, 그것은 파저강이 도둑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가 네 가지 있습니다.

파저강 오랑캐가 이미 황제의 명을 받아 지휘(指揮)의 이름을 가졌고, 또 지금 칭탁하기를, ‘홀라온이 조선 사람을 사로잡아 가기에 군사를 거느리고 포위하여 쳐서 포로를 빼앗아 모두 돌려보내게 하였다. ’고 거짓으로 꾸며서 황제께 주문(奏聞)하였으니, 황제께서 반드시 그렇게 여길 것인데, 이때를 당하여 즉시 주문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수 없음이 그 첫째입니다.

저 도적들이 이미 우리 변경을 침범하고는 스스로 그 화(禍)를 두려워하여 준비하고 사변을 기다릴 것이니, 칠 수 없음이 둘째입니다.

또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와 더불어 의각지세(猗角之勢)가 되어 있음은 이미 드러난 형세인데, 다만 파저강만을 치면 이는 호랑이와 이리는 남겨 두고 여유와 삵[狸]을 토벌하는 것입니다. 맹가첩목아가 도리어 의혹이 생겨 서로 보호하고 의지하면 그 음모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셋째입니다.

여연·강계의 백성들이 바야흐로 패배를 당해서 이산(離散)하여 위태로움을 근심하고 조금도 싸울 뜻이 없으니, 이것이 넷째입니다.

대개 잘 싸우는 것은 진(陣)을 잘치는 것만 못하고, 진을 잘 치는 것은 지키기를 잘하는 것만 못하오니, 능히 굽히고 능히 펴는 것은 용병(用兵)의 도(道)입니다. 지금은 성책(城柵)을 수리하고 병기를 단련하며, 군량을 쌓고 정찰(偵察)을 부지런히 하며, 오는 사자(使者)를 우대하고, 간첩을 보내어 그 도둑질한 수모자(首謀者)가 누구인지 정탐하고, 또 맹가첩목아와 더불어 공모하여 도둑질한 사실을 알아내어, 말을 갖추어 황제께 주문하여 윤허를 받은 뒤에, 그들이 생각지 아니한 때에 나가서 군사를 나누어 돌격하여, 두 오랑캐를 아울러 깨뜨려도 늦지 않을 듯하옵니다."

하고, 병조 좌참판 정연(鄭淵)은 아뢰기를,

"여연을 침략한 일을 파저강 사람이 비록 홀라온의 소위라고 말하나, 홀라온은 우리와 더불어 본래 혐극(嫌隙)이 없고, 20여 일의 노정이나 떨어진 험한 길에 이유없이 나와서 사람과 물건을 침략할 까닭은 진실로 없습니다. 파저강 사람이 우리 국경에 오래 살면서 내왕하며 구걸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차지 아니하면 반드시 원한을 품고, 또 임합라(林哈剌)가 잃어버린 종을 뒤쫓은 일이 있어 분명히 그 혐의가 있으니, 지금 침략한 일은 실로 파저강 사람의 소위입니다. 그러나 일의 증거가 아직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사로잡힌 사람을 반 넘어 돌려보냈으며, 또 장 천사(張天使)가 돌아갈 적에 홀라온이 침략했다고 말하였으므로, 반드시 이 말을 중국 조정에 알렸을 것이오니, 비록 고황제(高皇帝)035) 조서(詔書)가 있을지라도 지금 다시 아뢰지 아니하고 갑작스레 토벌함은 실로 온당치 못하옵니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성책을 수축하고 변경을 굳게 지켜서, 저들이 비록 침범할지라도 변민(邊民)들로 하여금 모두 다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하여 피란할 계책을 다 갖추고, 또 무신(武臣) 3품 이하로서 지략(智略)이 있고 권변(權變)036) 에 능한 사람을 골라서, 술과 안주를 가지고 가서 효유하기를, ‘홀라온이 침입하여 빼앗은 인구를 멀리서 빼앗아 돌려보냈으니, 이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아니한 인구와 재물을 숫자대로 모두 다 돌려보냄이 마땅하다. ’고 하고, 인하여 그들이 사는 곳의 산천 형세와 용병(用兵)의 난이(難易)를 살피고, 말을 듣고 태도를 보면, 그 사이에 사세(事勢)의 진위(眞僞)를 거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침략한 실정과 산천·도로 등을 자세히 안 뒤에, 중국에 아뢰어 청하고 죄를 성토해 토벌하면, 사기(事機)가 늦지 아니하고, 명분이 바르며, 말하기가 순하여, 저들도 변명할 말이 없어서 스스로 굴복할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는 접대하기를 예전과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하고, 이조 좌참판 김익정(金益精)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 야인이 있음은 중국에 흉노(凶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접대하는 방법과 수어(守禦)하는 준비를 삼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혹 변장(邊將)이 옳지 못하여 방어의 수비를 잃으면, 반드시 엿보는 마음이 생겨서 우리 백성에게 중하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융적(戎狄)의 성품이 시랑(豺狼)과 다름 없이 강퍅하고 사나와서, 혐의가 있으면 반드시 보복하므로, 은혜와 신의(信義)로 맺기가 어렵고, 위엄과 세력으로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생활을 이바지하고 놀고 즐기면서 자기 몸을 보호하고자 함은 화인(華人)037) 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태조(太祖)와 태종(太宗)께서 오랑캐를 제어하는 도리에 밝아서, 성심(誠心)으로 복종하고 귀순(歸順)하여 붙으면 그 주는 것을 풍족하게 하고, 또 변군(邊郡)으로 하여금 그 곤궁함을 구제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변경(邊境)에 근심이 없고, 사는 백성들이 베개를 편히 한 것이 지금 40여 년이옵니다. 그 접대하는 방법은 아직 예전대로 하게 하고, 그 방비해 지키기를 엄하게 하여 위엄을 보이고, 와서 따르고 복종함을 아름답게 여겨 은혜로서 편하게 하여 주면, 강퍅하고 사나운 기운이 사라지고, 엿보는 마음이 스스로 그칠 것이오니, 어찌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하여 우리에게 원수를 맺겠습니까. 죄를 성토하는 말과 토벌하는 계책에 대하여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홀라온은 우리와 더불어 경계가 연하지 아니하였고, 은혜와 원수를 갚을 것이 없는데, 백여 명의 무리를 모아 천 리의 험한 길을 넘어서 가벼이 우리 지경을 범하려 들겠습니까. 지금 각 사람의 공사(供辭)를 상고하건대, 실로 홀라온이 아닌 것은 명백하옵니다. 또 그 포로된 인구를 돌려보낼 즈음에 노약자(老弱者)만 보내고 장정은 숨겼으니, 그것은 전일의 흔극(釁隙)을 갚고자 하였으나 토벌을 당할까 두려워 다른 도적을 가탁(假托)한 것이 명백하옵니다. 비록 흉한 꾀가 만 가지이고 가탁한 말이 많을지라도, 그 실정과 증거가 다 드러났고, 그 간사하고 교활(狡猾)함이 스스로 나타났으니, 가서 그 죄를 문초(問招)하면 어찌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죄를 성토하고 치는 것은 비록 ‘군사를 일으킴이 정도(正道)라. ’고 하오나, 그 산과 골짜기가 험하고 수목이 빽빽하여, 새처럼 숨고 쥐같이 엎드리며, 모이고 흩어짐에 재빠르니, 군사가 궁벽하고 험한 땅에 나갔다가 오랑캐 한 놈도 보지 못하고 돌아올지 알 수 없으며, 요해지(要害地)를 분거(分據)하여 잠복하였다가 뛰쳐나와 우리를 핍박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다면 한갓 일시의 실패일 뿐 아니라, 장차 후일에 침해를 당할 것이오니, 이보다는 정예병(靜銳兵)을 골라서 샛길[間道]로 함매(銜枚)하고 그들이 뜻하지 않을 때에 나가서, 그 달아나는 길을 막고 잇따라 많은 군사가 바로 가서 습격하면, 저들 무리들을 가히 다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서쪽으로 파저강으로부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야인의 사는 곳이 많으면 백여 호, 적으면 수십 호로서, 그 무리가 하나가 아니며, 악한 일을 서로 도우니, 도적을 평정한 뒤에 만일 남은 추악한 무리가 있어서, 원망을 품고 원수를 갚을 자가 혹 있을 것이오니, 명장(名將)을 골라 뽑고, 군사를 정비하여 경비하고 수어하는 방법을 진실로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공조 우참판 이긍(李兢)은 아뢰기를,

"예로부터 오랑캐를 제어하는 방책은 사람마다 소견이 각각 다름이 있었으나, 그 귀결의 요지는 화친이냐, 정벌이냐 두 가지뿐입니다. 그러나 각각 옳고 그름이 있으므로 하나를 잡고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신은 그윽이 헤아리건대, 야인이 같은 겨레붙이와 통정하고 모의하여 몰래 분풀이를 하고, 토지가 아까와서 후환을 면하기를 도모하였으니 간교(姦狡)함이 심합니다. 논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파저강은 백두산 북쪽에까지 부락이 연접하였고 종류가 심히 많으므로, 침범하였다가 보복하는 실마리가 되게 함은 불가하니, 그것보다는 그 말을 거짓으로 믿는 체하고, 아직 두고 묻지 말며 접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원망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요, 변경을 편하게 하는 이익이 되므로, 치지 않는 것이 편하다. ’고 하오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 시랑(豺狼)같이 탐포(貪暴)한 무리들이 만약 그 거짓으로 믿는 체하는 술책을 알게 되면, 좋은 계책이 되지 못할 것이고, 만일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우리 술책에 빠졌다. ’고 하면서, 마음에 달갑게 여겨 마음대로 횡포(橫暴)하게 굴 것이오니, 속이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실지의 화(禍)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날에 변경의 근심이 그치지 않을는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여자가 음행(淫行)이 있었는데, 그 남편이 거짓 모르는 체하고 금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살해를 당하였으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릇 일을 간(諫)하고 논의를 세우는 데에 영구한 이익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일시의 편익만을 취하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신의 망령된 뜻으로는,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먼저 사람을 시켜 간절히 꾸짖기를, ‘너희들이 우리 지경에 가까이 살면서 염장(鹽醬)과 양식을 구걸하면 곧 주었으니, 기르는 은혜가 족하다. 다만 너희들이 중국 사람과 우리 국경의 백성들을 사로잡아서 노비(奴婢)로 삼아 부리는데, 이따금 도망쳐 온 자가 있으면 그 근본[根脚]을 심문하여, 중국 사람은 요동으로 돌려보내고, 우리 나라 사람은 그대로 복업(復業)하게 하였으니, 이는 곧 조정을 높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당연한 사리인데, 우리 나라에서 너희에게 무엇을 저버렸다고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은덕을 저버리면서 도리어 분한 원망을 일으키느냐. 이 앞서 너희들이 자주 와서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으나, 작은 허물을 헤아리지 아니하기로 한 것이지, 병력(兵力)이 넉넉하지 못해서 문죄하지 아니함이 아니었다. 근래에 여러 무리들을 모아서 몰래 들어와 도둑질하여, 남녀 70여 명을 사로잡아 가고, 남녀 40여 명을 죽였으며, 마소와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갔는데, 서로 싸우던 날에 여연 정군(正軍) 전의(全義)가 파저강 주좌(住坐) 심아랑합(沈阿郞哈)을 보고 꾸짖기를, 「너희들이 이전에 자주 와서 구걸하여 우리 나라의 은혜 입음이 적지 아니한데, 무슨 까닭으로 같이 와서 도둑질하느냐.」고 하며 꾸짖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더니, 아랑합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돌아간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아는 바이다. 지금 너희들이 꾀를 고쳐 내어 거짓으로 말하기를, 「홀라온이 도둑질하여 돌아가는 것을, 중로(中路)에서 포위하고 사람을 빼앗아서 돌려 보낸다.」고 하였으니, 그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은 어디 있으며, 또 마소와 재물을 전혀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니, 간사함이 어찌 이토록 심하냐. 남녀 노소로서 죄 없이 죽은 자가 저와 같이 많으니 진실로 마음 아프다. 영락(永樂) 8년간에 올량합 등이 경원부에 돌입(突入)하여 도둑질하자, 아군이 추격하여 마구 잡아 죽일 때에 팔을속(八乙速) 등 지휘 4명이 화살을 맞고 죽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를 갖추 아뢰었더니, 태종 황제의 성지(聖旨)에, ‘그처럼 죽인 것은 정말 잘하였다. 이후에도 다시 이와 같은 무례한 일이 있으면 결코 용서하지 말라. ’고 하였으니, 우리 나라에서 성지(聖旨)를 공경히 받들기를 이미 이와 같이 하였는데, 지금 너희들의 소위가 또 이와 같으니, 비록 우리 나라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너희 무리들을 섬멸할지라도, 모두 너희들이 자취(自取)한 것이니 다시 누구를 허물할 것인가.’ 하고는, 변장이 군사를 이끌고 저기에 이르러, 군사를 베풀고 변동을 보아서, 저들이 만약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말을 낮추어 항복을 청하거든, 대의(大義)로써 꾸짖고 군사를 돌이켜서 돌아오는 것은 그 상책(上策)입니다. 만약 놀라고 두려워하여 어쩔 줄을 몰라서 그 부락을 버리고 산림(山林) 속에 도망해 숨거든, 끝까지 쫓지 말고, 몹시 해치지 말며, 그 부락을 온전히 하여 위엄을 밝게 보여서, 가벼이 토벌하고 돌아오는 것은 그 중책(中策)입니다. 만약 저들과 우리가 서로 대적하여 칼날을 겨뤄, 그 승부를 결단하는 것은 그 하책(下策)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에 반드시 중책(中策)에서 나와야 된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렇다면 원망을 적게 하는 도리와 싸움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왕도(王道)를 행하는 군사입니다. 그런 뒤에 성보(城堡)를 수축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경계를 굳게 하고 방어를 삼가면, 저들이 반드시 두려워하고 굴복하여 스스로 와서 화친하기를 구할 것이니, 대접하기를 예전대로 할 따름입니다. 기해년 동정(東征)한 이후로 지금까지 하삼도(下三道)의 연해주현(沿海州縣)이 모두 편하고 근심이 없으며, 왜인들이 위업을 두려워하고 은덕에 감복하여 조공(朝貢)을 바치고, 와서 문안하지 아니하는 달이 거의 없습니다. 경인년에 동북쪽 올량합(兀良哈)과 싸워서 이긴 뒤에 야인들이 감히 독(毒)을 부리지 못하고 귀순(歸順)하기를 끊이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 나라가 이미 경험한 뚜렷한 효력이온데, 홀로 이 조그만 야인을 어찌 그다지도 깊이 염려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도승지 안숭선에게 명하여 밀봉(密封)하여 발표하지 말라 하고,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였다.

  • [註 031] 함매(銜枚) : 비밀히 행군할 때에 입에 막대기를 물려서 떠들지 못하게 함.
  • [註 032] 청야(淸野) : 적의 편리를 주지 않기 위하여 집들을 헐어 없앰.
  • [註 033] 반간(反間) : 간첩.
  • [註 034] 기병(奇兵) : 기이한 꾀를 써서 적을 치는 군대.
  • [註 035] 고황제(高皇帝) : 명 태조.
  • [註 036] 권변(權變) : 어떤 경우에 적합한 계책을 세우는 일.
  • [註 037] 화인(華人) : 중국 사람.

원문

○上將討婆猪江 野人, 欲試大臣, 密令政府六曹三軍都鎭撫等, 各陳接待之方、聲罪之辭、攻伐之策, 領議政黃喜曰:

若聲罪, 則當言: "忽剌溫 兀狄哈於本國, 不曾相通, 未知道路向背、山川通塞, 安能越二十餘日之程, 深入作賊! 且與汝等宿有讎怨, 不侵汝輩, 越入我邊備, 敢肆侵掠, 此不近事情之言也。 汝等嘗以交好, 誘我邊將, 乘其懈怠, 竊發作賊, 殺掠無辜, 謀匿己罪, 詐稱兀狄哈情迹明甚。 儻令兀狄哈作賊, 汝等邀奪被虜人口, 則牛馬家財, 何獨不奪? 是可疑也。 汝輩若內省不疚, 則押送被虜者, 誇功求賞, 常事也。 遇本國路人, 急遽交付, 自惑逃遁, 情實不直。 被虜回還者亦言: ‘汝輩陽圍兀狄哈, 而實與和好, 或合胸相把, 或相食酒肉。’, 則汝等引而犯邊無疑矣。" 以此聲罪, 勒令盡還被虜人畜。 彼如不從, 欽依太宗文皇帝宣諭聖旨, 問罪致討, 使不得安業可也。 若不可興師致討, 則益嚴武備, 固守邊境, 彼來犯邊, 應期追捕亦可也。 假如彼賊詐以交好, 甘言出來, 拘留待變何如?

左議政孟思誠曰:

入寇閭延, 專是婆猪 野人所爲, 而反指忽剌溫 兀狄哈, 因張天使奏帝所以當時事勢。 雖疑婆猪 野人所作, 然聲罪致討, 恐或不可, 但稱: "兀狄哈入掠我境, 經宿三日, 汝等非徒不追捕, 且不盡還被虜人畜, 又不擒送兀狄哈, 則專是汝輩所爲也。" 執以爲辭, 勿許和好, 謹愼固守, 使彼畏罪自服。 假若橫悖, 則急攻應變何如?

右議政權軫曰:

兀狄哈於二十餘日之程, 豈無指示之人, 而深入抄掠哉! 是必婆猪江 兀良哈爲之鄕導也, 使人諭以悉還人畜。 彼若犯邊, 則預整軍馬, 應變追捕可矣。 且崔閏德專制閫外, 彼之情僞, 猶可聞知, 詰問被虜還來人, 得情啓聞後, 聲罪之辭、攻伐之策, 更議何如?

吏曹判書許稠曰:

婆猪江 兀良哈與兀狄哈同心作賊無疑, 罪惡深重, 固當往伐。 然竊聞(被)〔彼〕 土山水險阻, 樹木茂密, 本無城郭, 散居山谷, 若聞(與)〔興〕 師, 輒遁深處, 似難追逐。 且此輩自度所作, 慮有征討, 洶洶未安, 此時往伐, 恐難有濟, 待兩界將帥觀變啓達後獻議。

戶曹判書安純曰:

婆猪之寇以忽剌溫爲辭, 然婆猪之人, 如不與謀, 忽剌溫豈能越數十日之程, 假途深入乎? 矧今俘虜之人, 皆自婆猪而還, 則其托彼而自解明矣。 誠宜聲罪致討, 掃蕩巢穴, 以示威武。 此聖上之軫念, 臣民之切齒者, 然其不可者有三。 獷俗負險, 伺隙而出, 見其不敵, 則鳥散而伏, 雖張、關之勇, 不得而施, 窮入賊穴, 未可必勝, 勞師無功, 反生輕侮之心, 一也。 假使値天之時, 選鋒銳進殲醜類, 以快一時之憤, 則斯無難矣。 然其類多種, 豈可盡誅? 倘出唇齒之計, 與嫌眞、骨看等常伺不虞, 協謀來侵, 後日之患, 不可勝言, 二也。 楊木塔兀負罪上國, 上國雖置之度外, 然欲致討之心, 未嘗頃刻而忘也。 聞我國用兵之利, 命使征之, 其何得辭? 此亦意外之慮, 三也。 且戎狄之害, 歷代通患, 帝王視之若蚊蝱之螫, 驅之而已。 待戎狄之道, 守備爲本, 不以攻伐爲先。 當繕修城堡, 選將練卒, 內侵則攻之, 遁去則不追, 是乃古今之良策。 婆猪之寇, 以忽剌溫爲辭, 是乃知罪自服之幾也。 因其自服之幾, 命還被虜人畜, 待之如初, 內謹修攘之備, 外示懷柔之仁, 則御戎之道得, 而構怨跳梁之患弭矣。 況張內史先將婆猪之人之語, 奏聞于帝, 尤不可以婆猪爲咎而往征之也。

贊成盧閈曰:

接待之方則彼人姦詐多端, 不可輕絶, 亦不可厚待, 依舊爲之。 聲罪之辭, 觀各人供招, 則婆猪江人與忽剌溫相親可知, 若果圍兀狄哈而奪六十餘人, 則其力足以制賊, 其勢可以盡奪, 而其餘人口畜産, 獨不奪送。 以此觀之, 婆猪人自爲賊明矣。 況忽剌溫與婆猪江相距二十五日程, 則與閭延尤爲懸隔, 忽剌溫人有何嫌, 而以一百孤軍, 道過婆猪之境, 而侵我疆土, 奪我人物乎? 然則婆猪江人詐稱忽剌溫而自爲賊明矣。 雖非婆猪人所作, 與忽剌溫相應作賊必矣。 是則彼婆猪江人不得辭其責矣, 固所當討。 然彼欲免罪, 以忽剌溫爲辭, 時方辨析, 罪名未着, 而亦已報於朝廷, 國家苟不得情而討罪, 則實爲未便。 今者彼人等逃遁山谷, 雖擧萬衆之師, 安得人人而制之哉? 且人心日久月深, 則可以得其情而知其實矣。 因續遣人, 令還被擄人口牛馬家財, 一以聽其言觀其志, 而因察山川險阻害要之處。 且待彼人等安心不虞, 然後聲罪致討何如?

刑曹判書鄭欽之曰:

接待之方, 聲罪致討之前, 宜當待之如初, 不可使彼知吾疑己, 德成其計, 若預備抗拒, 且或逃遁, 非策之得也。 聲罪之辭, 忽剌溫 兀狄哈與斡朶里 兀良哈等, 雖曰同類, 本非同心, 頗有嫌隙, 居數十日程途之外, 其間各種野人雜處, 與我不曾相通, 未知道路要害, 安能越千里之險, 冒雜種之虜, 深入我境乎? 儻使忽剌溫出來, 非斡朶里爲之鄕導, 安能的知要路, 襲我無備, 經三宿之久, 恣行無忌乎? 斡朶里於兀狄哈, 强弱不侔, 材技懸絶, 畏之不啻如虎。 今奪其所掠人口牛馬, 無亡矢遺鏃之費, 而反與之娛戲飮食, 交相往來, 如家人父子之相授受者, 是臣之所不信也。 況閭延軍人全義者, 交戰之時, 親見斡朶里 沈阿郞哈, 責以負恩爲賊, 又被虜回還婦人親, 聞賊德宋天富怨李春富之言, 其斡朶里之爲寇益明矣。 此賊仁義不足, 凶狡有餘, 豈不知後日之患乎? 故指忽剌溫爲辭, 猶擇婦女之美者與牛馬財物, 卒不盡還, 上欺天子, 以賣朝鮮。 以此聲罪, 何患無辭? 攻伐之策, 當選將鍊兵, 數道竝進, 銜枚疾馳, 出其不意, 掩其部落, 虜其巨魁, 遷其幼弱, 使彼輸誠納款, 稽顙求哀, 然後與之和親則易固, 以之招撫則易服矣。 此賊可以威服, 難以德化。 己亥對馬島之役, 朝野皆不欲征, 太宗斷自聖心, 六月興師, 以討其罪, 倭人畏威懷惠, 至今臣服, 民受其賜, 此已然之明效也。 今之議者皆曰: "彼雖實爲寇盜, 托以忽剌溫爲辭, 國家似若不知, 固我守備, 待之愈厚, 不可與之構怨。" 臣愚以謂此一時偸安之計, 非永世久安之長策也。

戶曹參判沈道源曰:

我國有野人之患, 猶中國之有戎狄也。 禦之之方, 備載方策, 大要不過征伐與和親爾。 今閭延之事, 邊將失策, 令殿下軫慮, 此臣等之罪也。 以被虜還來人言考之, 斡朶里姦詐之謀顯著, 其陰謀譎計, 非唯免今日之征討, 將以圖後日之作賊, 是不可不懲也。 林哈剌, 嘗有釁於邊境者也。 其所與他部落, 皆不過一兩日之程, 今當僞受其詐, 接之如初, 以求未還人物爲辭, 連續送人, 深察其情, 使閭延、江界選聚驍勇, 待其無心, 潛師渡江, 銜枚疾走, 數道竝進, 掩其不意, 責之曰: "忽剌溫所居遐隔, 出來之路, 由爾部落, 爾不同謀, 焉能作賊? 且爾盡奪其所掠, 奈何不盡還乎? 今我之來, 將以搜還人物耳, 宜當盡出。 背者殺之, 降者俘之。" 又戒將士, 勿殺老幼婦女, 盡驅以來, 拘留訊之, 則作賊之情可盡得, 邊民之冤可以雪也。 議者曰: "野人散居山谷, 難可盡滅, 一與爲隙, 邊患滋甚, 殆無寧歲。 今因其(其)詐, 包容以禦之可也。" 臣以謂野人侵害邊民, 未有如今日之慘酷也。 釋此不誅, 必生輕慢, 當討其罪, 使沿江諸郡築城堡謹烽火, 合氷則堅壁淸野以待之, 乘便觀利而擊之, 使走無所歸, 來無所得, 則不得爲邊患矣。 臣竊有獻焉, 幾事不密, 事故不成。 欲伐人, 而不密其事, 臣恐言之易洩也。 伏望深謀秘計, 內斷於心, 其臨機制勝之策, 委之將帥, 責其成功, 不勝幸甚。

刑曹左參判許誠曰:

野人近居我境, 與吾民雜處, 飢則卑辭來附, 飽則跳梁肆暴, 故當恩以懷之, 威以制之, 使知恩不可背, 而威不可犯也。 非若中國之於夷狄, 置諸沙漠區別之地, 而但以羈縻之也。 婆猪江 野人, 咫尺相望, 朝往夕還, 糊口我邊郡, 無求不得, 無欲不遂, 其恩至矣。 今反加侵害, 詐以北人來寇爲辭, 此將後日乞丐求索之計也。 今年如此, 則明年又如此, 不可不威以制之, 以防後患也。 接待之方、聲罪之辭、攻伐之策, 略陳于後。 一。 佯信彼人忽剌溫入寇之語, 依舊接待, 以觀其變。 一。 忽剌溫作賊之言, 罔誕不信明矣。 然事有明驗, 乃能正名其罪, 願擇遣朝官一人, 言於婆猪江酋長等曰: "兀狄哈虜掠我邊境人物而去, 爾等力戰而取, 良用喜謝。 然忽剌溫二十餘日之程, 懸軍深入, 古所未有。 又與我國本無小嫌, 不知何故而來。 爾等戰奪之際, 彼當言來侵之故, 欲問其詳。" 從容反覆詰問, 則彼亦對之無辭, 必露肝膽矣。 又令咸吉道都節制使擇遣軍官一人, 言於童猛哥帖木兒曰: "今聞森波之言, 稍知其變, 然森波之言, 似乎未盡, 願聞其詳。" 其忽剌溫遠來之故、婆猪人戰奪之由, 反覆詰問, 則亦可知其實矣。 又本國赴京使臣還, 則亦知婆猪 野人奏聞與否, 其陰謀欺誑之實, 自有明驗矣。 然後責之以"爾等朝夕往還, 乞丐求索, 以資其生, 當致謝之不暇, 乃背恩侵犯, 托以忽剌溫來寇爲辭, 欺誑天聰, 又誑我國, 爾等罪惡不淺。" 聲言致討, 使盡還人民畜産。 卽據太宗皇帝明降, 野人托辭欺誑之辭, 與夫興兵侵暴之狀, 具辭奏聞。 一。 行師之時, 則擇遣二品以上二, 又遣習於攻戰能知其界山川道路形勢上大護軍五六人, 以爲偏將。 其行軍進退之方, 令都節制使隨宜布置, 又命二品以上一人督察。

判院事河敬復曰:

臣竊見被虜回來人供招, 乃知作賊者非忽剌溫, 實是婆猪江 兀良哈, 誘引連境雜種野人而作賊也。 蓋忽剌溫距婆猪江二十餘日程, 且與我國本無釁端, 況當寒凍, 彼豈越千里之險, 而來侵我邊鄙乎? 兀狄哈之於兀良哈, 本非相和, 彼此相遇, 則狺然相噬矣, 豈有相遇之際, (杞)〔把〕 腰相戲之理乎? 此必是婆猪江 野人之所爲耳。 臣於壬寅年兀良哈來侵之後, 往鎭吉州, 使人於兀良哈諭之曰: "汝之所居, 東有大海, 北有諸種兀狄哈。 若不復我人口頭畜, 則吾將聞于國家, 當耕耘時往征, 以害汝農, 又於秋斂往征, 以害汝穡, 則汝將曷歸?" 彼皆讋服, 盡還我人口頭畜, 雖死牛馬, 亦皆徵還。 今婆猪江 兀良哈, 亦猶是也。 東接嫌眞雜種兀狄哈, 北有忽剌溫 兀狄哈, 西有中原而介居其間, 無所歸處。 今不勝一朝之忿, 犯我閭延, 恐我攻討, 托忽剌溫爲辭, 虜掠人物, 尙未盡還, 其紿國家甚矣, 是宜命將往征, 以示天威可也。 然山川險易, 未易知也; 虜掠人物, 亦未盡還也。 乞依臣前日之計, 姑緩攻討, 先遣諳練通事於婆猪江, 諭之曰: "汝等忘我國恩, 殺虜我人口, 奪掠我頭畜財物。 汝若不盡還, 我將春夏遣兵, 擾汝耕耘; 秋冬遣兵, 擾汝收藏, 將使汝無所歸處, 威以讋之, 使還我人物頭畜。 且知山川險易, 而後聲其罪而討之。 今若不討, 後必甘心, 乘間作賊, 須震雷霆之威, 往征其罪。 接待之方, 姑仍其舊。

禮曹判書申商曰:

接待之方, 依已成格例, 毋或加減, 彼如有欲來京辨明者, 給傳以送。 聲罪之辭, 年前本國被虜人逃來言: "林哈剌等含憤潛到閭延, 擄掠農民。" 其罪一也。 今又與忽剌溫結黨來侵, 殺害軍丁, 虜掠婦女牛馬家財, 詐稱忽剌溫所爲, 只還其老幼男女而已, 餘皆匿不以還, 其罪二也。 歲在戊寅, 虜掠閭延人物, 又於壬寅, 再擧入侵者, 非此輩而誰歟? 其罪三也。 攻伐之策, 以當時已然之迹觀之, 此輩雖非自爲, 與忽剌溫相應必矣, 固當攻伐示威, 然事理無窮, 關係甚重, 宜令東西兩界邊將因事使人, 徐觀其勢, 更得其實, 然後乃加攻伐, 未爲晩也。 當其攻伐之日, 令其道將帥瞰其無心, 潛師入境, 討其有罪者, 其投降與老弱, 勿殺擒來, 以待其餘類來謝, 盡還我人口頭畜, 然後還給。

參贊李孟畇曰:

侵犯閭延者, 非忽剌溫, 卽婆猪江 野人所爲也。 雖或有忽剌溫來賊者, 必是婆猪人交結作賊明矣, 不可不聲罪致討。 然臣聞彼地山川險阻, 林木薈蔚, 經路狹而多曲折, 雖大擧而往, 什什伍伍, 不得竝馳而進, 彼必嚴斥候以待之, 如聞我軍之至, 則匿其妻子老弱, 使壯勇者, 每於曲折幽僻之處, 隱居林壑, 我軍纔至, 攻其前後, 則進退失措, 雖或進攻巢穴, 其可得乎? 如或直擣巢穴, 一無所取, 空往空還, 但損國威耳, 不如佯信歸罪忽剌溫之辭。 如有來往者, 溫言厚接, 聽給需索, 如舊而已可矣。 不得已攻伐, 則須俟一二年後, 斯得矣。 緩之數年, 則彼必謂我永不來討, 弛其武備矣。 當是時也, 分遣將帥, 出其不意, 各攻其部落, 則不得自相救援, 而巨魁可盡殲, 老弱可盡擒也。 若夫聲罪之辭: ‘爾等密邇我疆, 邊將待之甚厚, 仍給所求之物, 其懷綏也至矣。 今乃忘恩背德, 反肆豺狼之毒, 犯我邊疆, 殺虜我軍民, 劫奪我牛馬財物, 慮其問罪, 欲免誅戮, 歸罪於忽剌溫, 其言之誣妄, 昭然可知也。 忽剌溫之地, 距我境千有餘里, 安敢以百餘兵馬, 突過爾等部落, 直犯我疆乎? 況與我無宿怨乎? 且被虜回還人等, 皆言汝等所爲也。 我民無罪而被殺者多, 虜去未還者多, 何忍置之而不問乎? 故今命將往討, 蓋出於不得已也。 爾若盡刷未還人物及牛馬財産以還, 仍繫頸來謝, 則待以不死。 不爾則當盡殲爾衆, 以復邊民讎怨。" 以此諭之何如?

兵曹右參判皇甫仁曰:

臣聞來則撫之, 去則不追, 寇則禦之, 此古之帝王禦戎之大略也。 然夷狄有盛衰, 深爲中國邊患者, 猶多有之。 於是或議和親, 或議征伐, 要皆偏見一時之利害, 而未有究終始遠近者也。 國家地連野人, 特一小水隔之。 然氷合則坦如周道, 來往如飛, 其可不深慮乎? 如去冬閭延之事, 至爲寒心。 今觀被虜人之語及全義之言, 兀良哈見彼人, 而相歡如兄弟, 則彼入寇者, 非(兀狄合)〔兀狄哈〕 也, 必其同類也。 兀狄哈則與兀良哈, 曾有嫌隙, 安有如此相歡乎? 兀狄哈本居深處, 安有二十餘日之程, 遠涉他種野人之境, 而敢行侵掠乎? 夷狄之俗, 雖義理不足, 而凶狡有餘, 閭延之寇, 必是兀良哈含前日之恨而爲之, 乃歸罪於兀狄哈。 兀狄哈安知江邊人物聚居虛疎之處, 淹留三日而爲盜乎? 儻曰兀狄哈來侵, 則兀良哈必爲前驅而指示也。 兀良哈居我北門, 衣食之奉, 實賴我國, 反行剽竊, 背恩忘德甚矣, 頑凶不恭甚矣。 當聲罪致討, 殄滅無遺, 然當此時, 外有可伐之勢, 內有不可伐之實。 兀良哈等深恐我國, 故今乃名言之曰: "海西兀狄哈虜掠人物而去, 我率兵, 與張天使兵馬共圍之, 奪六十四口而還。" 其心反以爲大有功於國家, 今未知其實, 而遽發兵伐之, 旣爲不可。 且建州衛指揮將兀狄哈侵掠彼我國人物之事, 已奏朝廷, 張天使亦旣還京, 徐觀其勢, 則必得其實矣。 然後聲其罪以伐之, 亦未晩也。 且我北方, 東自慶源, 西至義州沿邊城堡, 時未畢築。 今擧兵伐之而未盡滅之, 則彼俗報復之心, 嚚然未已, 乘間投隙, 無時入寇, 則邊民之患, 無時而息, 莫若沿邊郡城可築處畢築之, 木柵可排處畢排之, 斥候烽火等事, 無不畢備, 雄城巨鎭, 烟火相望, 精卒勁弩, 分守要害。 然後爲寇之迹未著, 則依已成待遇之禮而待之, 羈縻不絶, 以觀其勢, 入寇之迹悉著, 則命一二良將, 將數千之衆, 分道俱進, 聲其罪曰: "汝居我北門, 寢食我疆境, 乍臣乍叛, 擾我邊民, 今又無因而逞盜賊之謀, 殺掠我人民, 侵奪我頭畜財物, 乃詭之曰: ‘兀狄哈。’ 其姦凶頑惡甚矣。 肆命將問罪, 汝能戰則戰, 不能戰則輸情謝罪。" 如此則彼賊必有辭矣, 因其辭之曲直, 而區處之可也。 彼地太山長谷之間, 草木鬱密, 難以成陣, 千態萬狀, 變化須臾, 在將帥應變如何耳, 不可遙度。 然上下山坂, 潛匿竊發, 野人之長技也。 觀其山川之形、虛實之勢, 曠野則進攻之, 鬱密則因風之勢而縱火燒之, 隱遁則盡焚其廬舍, 雖未得快意, 如此數年, 則彼賊春夏不得耕耘, 秋冬不得安居, 終繫其類致闕下矣。 此接待聲罪攻伐之大略也。 若其條目則必因時區處, 乃得其宜, 臆量之說, 未免有膠柱不通之患, 臣欲因後日事變而更陳之。

同知中樞院使李順蒙曰:

忽剌溫與婆猪江, 相距懸絶。 且與我無釁端, 安敢跋涉千里, 虜我邊民乎? 是必婆猪 野人與雜種野人同心入寇也。 然不知山川險阻, 而遽欲往伐, 賊必恐懼, 逃匿山谷, 雖遣百萬之師, 恐不能得志矣。 臣妄謂因其詐謀, 佯爲不識, 歸罪於忽剌溫, 歸功於婆猪江, 接待如舊, 則賊必謂我陷於術中, 而安然不虞。 我則多爲反間, 備知山川險阻, 待江氷解, 作船作桴, 潛師越江, 出其不意, 急擊一二部落, 回師速還, 則賊必含恨, 待氷而來, 應而擊之, 是良策也。 夫然後諭野人曰: "汝等虜掠邊民, 詐稱忽剌溫, 故邊將不告國家, 直問汝罪爾。" 若須往伐, 則於甲山等處, 命遣將卒, 聲罪往伐。 置木柵於閭延江北, 屯兵五六百人, 使戍其柵, 示其威靈, 使賊不得農作田獵, 以資其生, 賊心尤忿, 氷合則必來侵犯, 我則嚴兵固守, 以逸待勞, 此兵家所謂致人, 而不致於人也。 賊若不來, 則因形往伐, 亦可也。 臣抑有獻焉, 今蕞爾百餘野人, 得逞暴虐, 虜掠邊民, 小臣伏聞其事, 寢不假寐, 腐心切齒, 願竭駑鈍, 往問不恭之罪。

兵曹判書崔士康曰:

接待之方, 臣竊謂今以被虜還來各人之言, 參觀其事勢, 則實非忽剌溫, 乃林哈剌等之所爲也。 然彼賊旣知其非, 乃曰: "被虜之人, 奪於忽剌溫, 悉以還送。" 往來如常, 則雖接之以(後)〔厚〕 可也。 況來則撫之, 去則勿追, 禦戎之良策乎? 姑宜接之如舊, 以觀其變。 聲罪之辭, 臣竊謂婆猪之賊, 近處我境, 朝往夕還, 請乞鹽醬, 以資其生, 若忽剌溫之賊出來, 則彼當使人先告, 拒而不納可也。 作賊之前, 不先告變, 作賊之後, 詐稱忽剌溫, 彼之自賊明矣。 還來之人皆曰: "奪取之時, 不接兵刃, 或把腰相戲, 或饋以酒食。" 其爲詐諼, 亦明矣。 忘我惠養之德, 侵我邊陲, 無辜之氓, 殘殺者五十餘, 虜掠者七十餘, 牛馬財産之奪亦不知幾, 以此執言致討, 則誰敢不服? 攻伐之策, 臣竊謂婆猪之賊, 魁首不過五六, 所領未滿數百, 雖其黨與散處, 然程途遙隔, 豈一晝一夜所能救援哉? 若命將選卒, 分軍爲三, 更出迭入, 則彼何敢當我哉? 然野人恃其山谿之險、林木之茂, 奔突竄伏, 安能一擧而盡殲乎? 然則徒增怨怒, 尋復鼠竊, 邊境未得寧矣。 黨類分處東北, 聞其攻伐, 則更相來侵, 北方之民, 亦未得安寢矣。 況建州衛屬遼東, 而作賊之事, 詐稱忽剌溫所爲, 已聞于帝, 臣謂莫若修城柵固封疆, 遣使告諭, 悉還人物, 則雖無目前之快, 亦不貽患於後也。

工曹判書趙啓生曰:

野人人面獸心, 丐乞之間, 未厭所欲, 便生私怨, 窺覘虛實, 賊害邊民, 雖懷之以恩, 不可保也。 今入侵閭延, 雖以爲忽剌溫, 然忽剌溫於我國, 本無往來, 又無釁端, 豈知閭延防禦虛疎之實, 以孤軍經强敵所在婆猪之地, 遽來作賊? 被虜還來人言: "婆猪江人與忽剌溫, 或把腰(讀)〔談〕 笑, 或割肉相喫。" 如此則其同謀可知也。 且兀狄哈之强勇, 本野人所畏, 不交一刃, 何以盡奪虜去之人物乎? 其相應可知也。 當相戰時, 閭延正軍全義見婆猪江住忱阿郞哈, 罵曰: "汝等前此頻來乞食, 受恩於我國, 何故同來作賊?" 阿郞哈不答回去, 則婆猪江人引忽剌溫, 同謀作賊, 又何疑哉? 其送還虜去人物, 圖免後日攻伐之計也。 若誠爲我國而奪其虜去之人物, 則當初過門之賊, 何不先報於我國乎? 其姦惡莫甚, 若置而不問, 是示弱也。 彼賊將謂我國, 墮於術中而甘心矣, 況未還人物, 何以不推乎? 宜當以此執言, 往征其罪。 婆猪江 野人, 雖以兀狄哈作賊, 先聞朝廷, 具其野人同謀之狀奏聞, 則直在我、曲在彼, 朝廷豈疑我國而信野人哉? 然野人本無城郭, 散居山谷, 先知我兵之至, 登山而遁, 則雖千萬兵, 何以制之? 出其不意, 掩襲攻之, 在將帥籌策耳。

參贊成抑曰:

接待之方, 臣意以謂婆猪 野人, 暗引同類, 侵耗邊境, 詐稱兀狄哈, 然情迹未著, 宜令邊將分遣人探問。 彼若以送還虜掠人物爲功, 姑順其意, 名爲賞勞, 擇遣有智勇敢者, 且慰且問, 以觀其意, 待之稍厚, 令平安、咸吉兩道訪問, 如得其情, 奏聞上國, 聲罪致伐, 不患無辭矣。 攻伐之策, 臣意以爲及此時攻伐, 則彼賊自知其罪, 竄伏山谷, 雖興師深入, 必不得攻, 蜂蠆之毒, 亦不可不慮, 姑待之稍厚, 令閭延、江界軍馬, 頻數越江田獵, 示爲常事, 然後出其不意, 攻伐何如?

同知敦寧府事趙賚曰:

忽剌溫距閭延三十日餘程, 今當天寒雪深, 深入抄掠, 不近事情。 又以被虜各人供招觀之, 其事勢, 雖似兀狄哈入寇, 兀良哈等援引作賊, 明白無疑, 誠宜擧義致討, 然自古用兵者, 先知山川道路遠近險易, 然後行師。 彼人所據之地, 山川險阻, 雖用千萬之衆, 難以成功, 今又作賊, 彼必設備以待之, 不可輕擧。 臣愚以爲任其彼人之誣, 姑示寬大之恩, 遣人賜酒, 仍使詗察情實, 明知道路難易, 然後待其懈怠之隙, 設奇兵以討之, 猶未晩也。

禮曹右參判柳孟聞曰:

婆猪江 兀良哈, 與其族類同來作賊, 明白無疑, 是誠不可不懲也。 然其魁首旣受帝命, 爲婆猪江指揮, 則不可擅自往伐也。 又況托稱忽剌溫, 以奏于帝, 則其可不奏而擅伐乎? 今若奏達, 未必允許, 不請擅誅, 亦爲未便。 唯其來服, 則加惠而送之, 如又侵擾我疆, 則登時滅之, 庶合撫綏制禦之方。

禮曹左參判朴安臣曰:

忽剌溫與我國相距遼隔, 又無讎怨, 而但以百餘兵來寇, 似無是理。 且以被虜回還人所說觀之, 其爲婆猪之賊無疑矣, 然不可輕擧者有四焉。 婆猪江虜, 旣受帝命, 號爲指揮, 且今托以忽剌溫虜去朝鮮之人, 擧兵圍之, 攻奪所獲, 悉令回還, 飾詐奏聞, 皇帝必以爲然矣。 當是之時, 不卽奏聞, 擅興師旅而往討, 一也。 彼賊旣寇我邊, 自懼其禍, 設備待變, 不可攻伐, 二也。 且與猛哥帖木兒共爲掎角, 其勢已著, 只擊婆猪, 則是遺虎狼而問狐狸, 猛哥帖木兒反生疑惑, 唇齒相資, 其謀難測, 三也。 閭延、江界之民, 方見破敗, 離散憂危, 殊無戰志, 四也。 大抵善戰不如善陣, 善陣不如善守, 能屈能伸, 用兵之道也。 今莫若修城柵、鍊兵器, 積糧餉、謹候邏, 優來使行間(楪)〔諜〕 , 探其首謀作賊之爲誰, 又知其與猛哥帖木兒同謀作賊之實, 具辭奏聞, 欽蒙明允, 然後出其不意, 分兵突擊, 竝破二虜, 似亦未晩。

兵曹左參判鄭淵曰:

閭延侵掠之事, 婆猪是人, 雖曰忽剌溫, 然忽剌溫與我本無嫌隙, 二十餘日隔絶險路, 無緣出來, 侵掠人物, 固無此理。 婆猪之人, 久居我境, 來往求索, 少有不厭, 必生怨恨, 又有林哈剌失奴追逐, 明有其嫌。 今侵掠之事, 實婆猪之人所爲也。 然事迹時未現著, 虜掠人口, 過半送還, 且張天使之還, 聲言忽剌溫侵掠, 則必以此言告朝廷, 雖有高帝之詔, 今未更奏, 遽急攻伐, 實爲未便。 臣愚之計, 莫若修城柵、固邊圍, 彼雖侵犯, 使邊民悉皆入保, 避患之策, 無不備具, 又擇武臣三品以下有智略能權變者, 齎酒饌往諭之曰: "忽剌溫侵奪人口, 遙奪而還, 是可喜也。 然未還人口財物, 宜當盡數刷還。" 因察所居山川形勢、用兵難易, 聽言觀動, 則其間事勢情僞, 庶可知矣。 如此而審知侵掠情實、山川道路, 然後奏聞準請, 聲罪致討, 則事機未晩, 名正言順, 彼輩亦無辭自伏矣。 未擧兵之前, 接待宜如舊。

吏曹左參判金益精曰:

我國之有野人, 猶中國之有匈奴, 接待之方、守禦之備, 不可不愼也。 苟或邊將匪人, 關防失守, 則必生窺覦之心, 重爲吾民之害矣。 戎狄之性, 無異豺狼, 强悍戾, 嫌隙必報, 難以恩信結之, 威勢服之也, 然其養生佚樂, 而欲保其身者, 無異於華人也。 我太祖、太宗明於禦戎之道, 納款歸附, 則豐其賜與, 又令邊郡濟其窮乏。 由是邊境無虞, 生民安枕, 于今四十餘年矣。 其接待之方, 姑令依舊, 嚴其防守, 示之以威, 嘉其來附, 綏之以恩, 則强悍之氣銷, 而窺覦之心自沮矣。 安有背恩忘惠, 構怨於我乎? 至若聲罪之辭、攻伐之策, 則又有說焉。 忽剌溫不與我連境, 無恩讎之可報, 肯聚百餘之衆, 越千里之險, 而輕犯我境乎? 今考各人供辭, 實非忽剌溫明矣。 又還其被虜人口之際, 徒遣老弱而匿其丁壯, 其欲報前釁, 而懼其見伐, 托爲他賊亦明矣。 雖凶謀萬端, 假托多辭, 其情迹畢露, 而姦狡自見矣。 往問其罪, 豈曰無辭? 然聲罪而攻, 雖曰行師之正, 彼其山谿之險、樹木之密, 鳥竄鼠伏, 聚散倐忽, 師出窮險之地, 不見一虜而還, 未可知也。 分據要害, 伏發逼我, 亦未可知也。 如此則非徒一時之失利, 將見後日之侵陵矣。 莫若選其精銳, 間道銜枚, 出其不意, 要其走路而繼以大兵, (經)〔徑〕 往襲之, 則彼衆可盡虜矣。 獨念西自婆猪, 東至于海, 野人之居, 多則百餘聚, 少則數十戶, 厥類非一, 同惡相濟, 賊平之後, 脫有遺醜修怨報仇, 容或有之矣。 選揀名將, 嚴兵警備, 守禦之方, 誠不可不愼也。

工曹右參判李兢曰:

自古禦夷狄之策, 人持所見, 各有異同, 其要歸不過曰和親、曰征伐兩科而已。 然各有得失, 不可以執一論也。 臣竊料野人通謀同類, 陰逞憤情, 愛惜土地, 圖免後患, 姦狡審矣。 議者曰: "婆猪江至白頭山北, 部落連接, 種類甚衆, 不可侵犯以啓報復之端, 莫若佯信其言, 姑置勿問, 接待如初, 則止怨之方、安邊之利, 勿擊便。" 臣愚以謂彼豺狼貪暴之類, 如知其佯信之術, 未爲良策, 如不知之, 其必曰: "朝鮮之人, 墮於術中。" 甘心肆暴, 不可被詐侮而受實禍也, 又安知異日邊患無有已也? 昔有一婦人行淫, 其夫佯爲不知而莫之禁, 卒之被害, 何以異於是哉? 夫規事建議, 不圖永世之利, 偸恃一時之便者, 未可以經久也。 臣妄意令邊將先使人切責之曰: "汝等近居我境, 乞索鹽醬口糧, 輒便給與, 恩養足矣。 但爾等虜掠中國人口及我邊民, 爲奴婢使喚, 往往有逃來者, 審問根脚, 中國人口, 發還遼東, 我國之人, 仍令復業, 此乃尊朝廷、愛百姓, 事理之當然也。 我國何負於汝, 不計是非, 背恩忘德, 反致憤怨乎? 前此汝等數來, 侵掠我國, 不計細過, 非兵力不贍而勿問也。 近者結聚群黨, 暗入作賊, 虜去男女七十餘口, 殺害四十餘口, 牛馬財物, 盡數搶奪。 當相戰日, 閭延正軍全義對見婆猪江住坐沈阿郞哈, 罵曰: ‘汝等前此數來乞索, 受恩我國不爲小矣, 何故同來作賊?’ 罵不絶聲, 阿郞哈不答回去, 衆人所共見知也。 今汝等變生謀計, 詭言: ‘忽剌溫作賊回去, 中路圍住, 還奪人口送回。’ 其未還之人安在? 且牛馬財物, 全不送還, 是何姦狡之甚歟? 男女老幼, 無辜遇害者, 如彼其多, 誠爲痛心。 永樂八年間, 兀良哈等突入慶源府作賊, 我軍追逐廝殺時, 八乙速等指揮四名, 中箭身死, 我國具奏太宗皇帝, 聖旨節該: ‘恁殺的正好, 這已後還這般無禮呵, 不要饒了。’ 我國欽奉聖旨旣如此, 今汝等所爲又如此, 雖我國大擧師旅, 殲滅汝類, 皆汝自取, 復誰咎哉?" 邊將引軍至彼, 陳師觀變, 彼若畏服, 卑辭請降, 則責以大義, 班師而還, 上策也。 若驚惶罔措, 棄其部落, 逃遁山林, 則勿窮追、勿殘害, 全其部落, 明示威靈, 薄伐而還, 中策也。 若彼我相敵, 鋒刃交接, 決其勝負, 下策也。 臣妄意必出於中策也。 然則寡怨之道、息戰之方, 王者之師矣。 然後修築城堡, 嚴整軍兵, 固封疆、謹守禦, 則彼必畏服, 自來求和, 待之不過依舊而已。 己亥年東征以後, 至于今下三道沿海州縣, 晏然無虞, 倭人畏威懷德, 納款來朝者, 殆無虛月, 庚寅年東北兀良哈戰勝之後, 野人不敢肆毒, 歸順不絶, 此我國家已驗之明效也。 獨此蕞爾野人, 豈足深慮乎?

上命都承旨安崇善, 密封不發, 潛心決定。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