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58권, 세종 14년 12월 9일 甲午 3/5 기사 /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평안도 감사가 강계 절제사 박초가 군사를 이끌고 야인을 추격하였음을 치보하다
국역
평안도 감사가 치보(馳報)하기를,
"야인(野人) 4백여 기(騎)가 여연(閭延)의 경내에 쳐들어 와서 사람과 물건을 표략(摽掠)하여 가매, 강계 절제사(江界節制使) 박초(朴礎)가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하여, 붙들려 가던 사람 26명과 말 30필, 소 50마리를 도로 빼앗아 왔사오나, 우리 나라 사람으로 전사자(戰死者)는 13명이옵고, 적의 화살에 맞아 부상한 자가 25명이나 되었사온데, 마침 날이 저물어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심히 노하여, 곧 황희(黃喜)·맹사성(孟思誠)·권진(權軫)과 입번 도진무(入番都鎭撫) 조말생(趙末生), 병조 판서 최사강(崔士康) 등을 불러 들여서 의논하기를,
"야인(野人)이 분심을 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표략(摽掠)하여 간 인민들이 우리 나라 지경 안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에, 만일 본국과 관계된 자이면 이내 본고장으로 돌려보내고, 중국에 관계된 자이면 즉시 중국으로 돌려보냈던 까닭으로, 이에 원한을 품어 지금 변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그자들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니, 이러한 뜻을 갖추 황제께 주문(奏聞)함이 어떠할까."
하니, 황희·조말생·최사강 등이 아뢰기를,
"여진(女眞)이 내침(來侵)하였을 때는 우리 군사가 비록 중국 땅까지 뒤쫓아 들어갈지라도 이는 방어하기 위한 것이요, 진실로 사대하는 의리에 해로움이 없을 것이온데, 황제가 어찌 허물하겠나이까. 오늘날 중국이 우리를 대우함에 후하오나, 그러나 거병(擧兵)하여 입경(入境)할 때에 미리 황제께 주달(奏達)함은 의리에 타당하지 못하옵니다. 또한 야인들이 지극히 완고하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교화가 불가하오니, 만일 그들 종족을 소탕하고자 한다면 불가하옵니다. 오랑캐[戎狄]를 다루는 계책은 옛 성현(聖賢)이 이미 상세히 말씀하였사옵니다."
하고, 맹사성·권진 등이 아뢰기를,
"주상의 말씀에 따라 황제께 주문(奏聞)하옴이 편하겠나이다."
하였다.
원문
○平安道監司馳報: "野人四百餘騎突入閭延之境, 摽掠人物, 江界節制使朴礎率兵追之, 還奪被擄人二十六口、馬三十匹、牛五十隻。 我國人戰死者十三, 中箭者二十五。 日暮未得窮追。" 上怒甚, 卽召黃喜、孟思誠、權軫、入番都鎭撫趙末生、兵曹判書(崔士廉)〔崔士康〕 等議曰: "野人之發忿者, 無他, 以其摽掠人民, 逃來我境, 若係本國則仍還其業, 係上國則隨卽發還, 以此含怨。 卽今作變, 本國未得窮追者, 以不可擅越上國之境也。 具此意奏聞何如?" 喜、末生、士康等以爲: "當女眞來侵之時, 我師雖追入中國地面, 是乃禦之, 固無害於事大之義, 帝何咎哉? 今中國待我甚厚, 然以擧兵入境, 預先奏達, 於義未便。 且野人至頑, 人面獸心, 不可校也。 若欲掃除種類, 則不可。 馭戎之策, 古昔聖賢已詳言之矣。" 思誠、軫等以爲: "依上敎奏聞爲便。"
세종실록58권, 세종 14년 12월 9일 甲午 3/5 기사 /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평안도 감사가 강계 절제사 박초가 군사를 이끌고 야인을 추격하였음을 치보하다
국역
평안도 감사가 치보(馳報)하기를,
"야인(野人) 4백여 기(騎)가 여연(閭延)의 경내에 쳐들어 와서 사람과 물건을 표략(摽掠)하여 가매, 강계 절제사(江界節制使) 박초(朴礎)가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하여, 붙들려 가던 사람 26명과 말 30필, 소 50마리를 도로 빼앗아 왔사오나, 우리 나라 사람으로 전사자(戰死者)는 13명이옵고, 적의 화살에 맞아 부상한 자가 25명이나 되었사온데, 마침 날이 저물어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심히 노하여, 곧 황희(黃喜)·맹사성(孟思誠)·권진(權軫)과 입번 도진무(入番都鎭撫) 조말생(趙末生), 병조 판서 최사강(崔士康) 등을 불러 들여서 의논하기를,
"야인(野人)이 분심을 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표략(摽掠)하여 간 인민들이 우리 나라 지경 안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에, 만일 본국과 관계된 자이면 이내 본고장으로 돌려보내고, 중국에 관계된 자이면 즉시 중국으로 돌려보냈던 까닭으로, 이에 원한을 품어 지금 변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그자들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니, 이러한 뜻을 갖추 황제께 주문(奏聞)함이 어떠할까."
하니, 황희·조말생·최사강 등이 아뢰기를,
"여진(女眞)이 내침(來侵)하였을 때는 우리 군사가 비록 중국 땅까지 뒤쫓아 들어갈지라도 이는 방어하기 위한 것이요, 진실로 사대하는 의리에 해로움이 없을 것이온데, 황제가 어찌 허물하겠나이까. 오늘날 중국이 우리를 대우함에 후하오나, 그러나 거병(擧兵)하여 입경(入境)할 때에 미리 황제께 주달(奏達)함은 의리에 타당하지 못하옵니다. 또한 야인들이 지극히 완고하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교화가 불가하오니, 만일 그들 종족을 소탕하고자 한다면 불가하옵니다. 오랑캐[戎狄]를 다루는 계책은 옛 성현(聖賢)이 이미 상세히 말씀하였사옵니다."
하고, 맹사성·권진 등이 아뢰기를,
"주상의 말씀에 따라 황제께 주문(奏聞)하옴이 편하겠나이다."
하였다.
원문
○平安道監司馳報: "野人四百餘騎突入閭延之境, 摽掠人物, 江界節制使朴礎率兵追之, 還奪被擄人二十六口、馬三十匹、牛五十隻。 我國人戰死者十三, 中箭者二十五。 日暮未得窮追。" 上怒甚, 卽召黃喜、孟思誠、權軫、入番都鎭撫趙末生、兵曹判書(崔士廉)〔崔士康〕 等議曰: "野人之發忿者, 無他, 以其摽掠人民, 逃來我境, 若係本國則仍還其業, 係上國則隨卽發還, 以此含怨。 卽今作變, 本國未得窮追者, 以不可擅越上國之境也。 具此意奏聞何如?" 喜、末生、士康等以爲: "當女眞來侵之時, 我師雖追入中國地面, 是乃禦之, 固無害於事大之義, 帝何咎哉? 今中國待我甚厚, 然以擧兵入境, 預先奏達, 於義未便。 且野人至頑, 人面獸心, 不可校也。 若欲掃除種類, 則不可。 馭戎之策, 古昔聖賢已詳言之矣。" 思誠、軫等以爲: "依上敎奏聞爲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