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26권, 세종 6년 10월 15일 丙辰 1/2 기사 /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등극 사신이 서울에 들어와 모화루에서 면복으로 조서를 맞이하다
국역
등극 사신(登極使臣) 예부 낭중 이기(李琦)와 통정사(通政司) 참의(參議) 팽경(彭璟)이 서울에 들어왔다. 임금이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모화루에 거둥하여 면복(冕服)으로 조서를 맞이하고, 경복궁에 이르러 의식대로 예를 거행하였다. 부고 사신(訃告使臣) 유경(劉景)·진선(陳善)이 먼저 월대(月臺) 위에 올라가 오배고두례(五拜叩頭禮)를 거행하였다.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하늘을 받들고 운수를 이어받은 황제[奉天承運皇帝]는 조하노라. 짐은 생각건대, 하느님이 백성들을 낳고 군주를 세워, 인(仁)으로 억조 창생(蒼生)을 길러 모두 태평하고 화목하게 하며,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통치하여 다 같이 태평 세월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 선황제(先皇帝)는 하늘을 받들고 세상을 다스려, 치화(治化)가 여러 제왕보다 높고,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이 있어, 덕택이 사해(四海)에 덮이었다. 근간에 변방의 경보가 있어, 잠깐 동안 말을 달려 친히 정벌하고,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승서(升逝)하시고, 유명(遺命)으로 나의 작은 몸에다 신기(神器)를 맡기었다. 돌아보건대, 슬픔이 마음 속 깊이 잠겨 있는데, 어찌 차마 곧 〈유명을〉 받들리오. 그러나, 종친(宗親)·공후(公侯)·부마(駙馬)·백(伯)·문무 신료(臣僚)·군민(軍民)·기로(耆老)와 사이(四夷)의 조공(朝貢)하는 사신까지 대궐 아래 엎드려 표(表)를 올려 즉위할 것을 권하면서 말하기를, ‘천자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워 둘 수가 없고, 생민은 임금이 없을 수 없으며, 맏아들로 대통(大統)을 잇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법이라.’ 하며, 두세 번 간절히 말하므로, 위로 유명(遺命)에 따르고 아래로 여정(輿情)에 좇아, 이미 8월 15일에 공손히 천지 종묘 사직에 고하고, 황제(皇帝)의 자리에 나아가 조고(祖考)의 큰 복을 받들고, 신성(神聖)한 영구 계획을 행하려 한다. 이제 즉위초(卽位初)를 당하여 유신(維新)의 명령을 선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명년을 홍희(洪熙) 원년(元年)이라 하고, 실시할 일들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표시한다. 1. 영락(永樂) 22년 8월 15일 새벽 이전에 관리(官吏) 군민(軍民) 등으로 범죄한 자는 모반 대역(謀叛大逆)이나, 자손으로 조부모 또는 부모를 죽였거나, 처첩으로 남편을 죽였거나, 노비로서 주인을 죽인 자는 사(赦)하지 아니하고, 그 이외에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이나, 이미 결정된 것이나 결정되지 아니한 것이나, 죄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사면하고, 사면 이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발하는 자는 그 죄로 죄를 준다.
1. 군관(軍官)·기군(旗軍)·장군(將軍)·역사(力士)·교위(校尉)·사인(舍人)·여정(餘丁) 등으로 일을 하다가 범죄하고, 공을 세워 면죄하기 위하여 각처에 파견되어 방수하는 자는 모두 사면하여, 그 전 직역(職役)으로 다시 돌아 오게 한다.
1. 군관(軍官)으로 일을 하다가 형을 받은 자와 파면된 자는 모역(謀逆)은 제외하고, 기타 생존자는 그 원직에 복구시키고, 이미 사망한 자는 예에 의하여 그 자손에게 상속시키고, 총소기(總小旗)로서 강등하여 충군(充軍)된 자는 각기 그 원직에 복구시킨다.
1. 문무 관원과 총소기(總小旗)가 어떤 일로 이미 복직되었으나 본봉급보다 떨어지게 주거나 반봉급을 주는 자는 모두 옛날 관문(關文)대로 지급(支給)한다.
1. 문무 관리와 군민(軍民)·공작인(工作人)이 어떤 일로 역공(役工)이 되거나 벽돌을 운반하고 성을 쌓고 양식을 운반하는 자는 모두 그 죄를 면제하여, 관리는 복직시키고, 역군(役軍)은 원대로 환원하고, 공장은 그대로 공장에 있게 하고, 백성은 제 집으로 보내되, 풍헌관(風憲官)으로서 장죄(贓罪)를 범한 자는 복직시키지 아니하고, 다만 원적지(原籍地)로 돌려보내어 백성이 되게 한다.
1. 영락(永樂) 19년 12월 말일 이전의 세량(稅糧)·요두(料荳)·호구 염량(戶口鹽糧)을 갚지 못하였거나 바치지 못한 자와 보고된 숫자는 관문서에 실려 있는데 현재까지 바치지 못한 자는 모두 면제하고, 영락 22년 1년간의 호구 염량도 면제하고, 각처에서 갚지 못한 초속(草束)·시탄(柴炭)도 영락 20년 12월 말일 이전의 것은 모두 면제한다.
1. 영락(永樂) 22년 8월 15일 이전 1년을 통하여 바치지 못한 농상(農桑) 여러가지 부과와 창량(倉糧)·염과(鹽課)·어과(魚課) 등 항목과 말·낙타·나귀·노새·소·양을 죽게 한 것, 생장 번식하는 목축을 축낸 것, 노시(蘆柴)를 바치지 아니한 것, 각처에서 미납한 동철(銅鐵)·안료(顔料)·자리·삼·대나무 등 물건과, 배상하는 진주(珍珠) 등 물건을 미납한 것, 장벌(贓罰)의 배상을 끝내지 못한 단필(段匹)은 모두 감면한다.
1. 군관(軍官)으로 범죄하여 각처에 파견되어 충군(充軍)·양마(養馬)·종전(種田) 등의 일을 하는 자는 모두 사면하여 복직시킨다.
1. 각처의 군민(軍民)이 증식하는 마필(馬匹)을 배상하는 문제로 관청의 핍박을 받아, 할 수 없이 남녀 처첩(男女妻妾)을 팔아서 남에게 주고, 떠돌아다니면서 고생하고 살 수 없는 자는, 조서가 도착하는 날 곧 관청에서 속환(贖還)하고, 이유를 끌어대어 지연시키지 말 것이며, 만일 딸자식으로서 장성하여 이미 결혼한 자는 이 예에 의하지 않는다. 금후로는 증식하는 말을 죽게 하는 자는 다만 홍무(洪武) 연간의 예에 의하여 배상한다.
1. 천하(天下)의 모든 과세는 영락 20년 이전의 옛날 액수에 의하여 징수하고, 초법(鈔法)을 이유로 하여 함부로 증가시켜 상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허락하지 말 것이며, 이것을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1. 각처에서 도망하여 이주한 민호는 모두 그 죄를 사하고, 현주지의 관청에 자수하게 하여, 원적지에 돌려보내어 그 전 직업에 복귀시키되, 그들에게 부역을 2년간 면제하고, 그 집 명의로 미납한 세량(稅糧)은 모두 면제한다.
1. 하서양(下西洋) 여러 번국(蕃國)의 각국 보선(寶船)은 모두 정지시키도록 한다. 만일 이미 복건(福建)·대창(大倉) 등지에 정박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모두 남경으로 돌려보내서 가지고 있는 물화를 내부(內府) 창고에 교부하여 받아들이고, 여러 번국에서 진공(進貢)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갈 자는 다만 인부와 배를 적당히 내어 호송하여 주고, 차견(差遣)하였던 내의 관원은 바로 서울로 돌아오게 하고, 수행한 백성들은 각기 제 집으로 돌려보낸다.
1. 타서살마아(迤西撒馬兒)·한실자사(罕失剌思) 등지에 가서 말을 사는 것과 합밀(哈密)에서 말을 가져 오는 것은 모두 정지하고, 대가로 가지고 간 비단과 자기(磁器) 등 물건은 소재지의 관청에 나아가 명백히 숫자에 맞추어서 입고시키고, 말·낙타·노새는 관청에서 준 것은 돌려 보내고, 관리와 군인·백성이 사들인 것은 원래 산 사람에게 돌려주고, 파견한 내외 관원들은 모두 열흘 안에 길을 떠나서 서울로 오게 하고, 사유를 들어 오래도록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1. 운남(雲南)·목방(木邦)·면리(緬里)·여천({广+麓}川)·거리(車里) 등지에 가서 보석을 캐고, 마필(馬匹)을 매수하는 일들은 모두 정지하고, 내려준 물건은 파견되어 온 진공 사인(進貢使人)에게 주어 잘 가지고 돌아가게 하고, 조정에서 파견한 내외 관원은 10일 이내에 길을 떠나 곧 서울로 돌아오며, 관군은 각기 원위(原衛)에 돌아가 취역하게 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1. 각처에서 여러 번 국의 배를 수리하는 것은 모두 정지하고, 각처에서 철리목(鐵梨木)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것은 홍무 연간의 예에 의하여 채취 판매하고, 그 밖에는 모두 정지한다.
1. 제후국(諸侯國)에서 사들이는 모든 물건과 동전을 만들어 사향(麝香)·생동(生銅)·저사(苧絲) 등 물건을 사들이는 데 있어서는, 이미 사들여서 관청에 있는 것으로 곧 소재지의 관청 창고에 보관한 것을 빼고, 아직 사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한다.
1. 각처에서 사들이는 여러가지 저사(苧絲)·사라(紗羅)·단필(段匹)·보석(寶石)·안료(顔料)와 소주(蘇州)·항주(杭州) 등지에서 단필을 속조(續造)하고, 지찰(紙札)을 초조(抄造)하고, 자기(磁器)를 초조(焇造)하고, 이목판(梨木板)을 채판(採辦)하는 것과 여러가지 해미(海味)·과자(果子)를 만들던 것은 모두 정파(停罷)하고, 그 일로 파견한 인원은 곧 서울로 돌아 오게 하고, 이것을 이유로 재물을 거둬들여 백성을 해롭게 하는 자에게는 죄를 준다.
1. 각처에서 금은세를 갑판(閘辦)하는 것은 이미 제련하고 수입되어 관청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지금부터는 모두 정지하고, 감히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사로 제련하는 자는 죄를 주고, 그 일로 보냈던 갑판인(閘辦人)은 10일 이내에 바로 서울로 오게 하고, 사유를 붙여서 머뭇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다만 구액(舊額)으로 해마다 부과하는 은과 차출한 금은 예외로 한다.
1. 교지(交趾)에서 금과 구슬과 향화(香貨)를 채취하는 따위는 모두 정지하고, 조서 안에 쓰지 아니한 것이라도 교지에서 사들이거나 채취(採取)하는 여러가지 물건도 또한 정지하고, 그 일로 보낸 내외 감독관은 10일 이내에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고, 사유를 붙여 머물러 있으면서 군민(軍民)을 부리는 것은 허락하지 아니한다.
1. 각처에서 영조(營造)를 위하여 목재(木材)를 벌채하는 것은, 이미 군정(軍丁)을 동원하여 벌채한 것은 소재지에 무더기로 쌓아 두고, 아직 벌채에 착수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하고, 군민(軍民)은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일로 보냈던 채판관(採辦官) 등은 10일 이내에 곧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게 하며, 사유를 붙여서 고의로 머물러 있으면서 군민(軍民)을 침해(侵害)하지 못하게 하고,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1. 절강(浙江)·복건(福建) 소속 일산(一山) 오봉동(烏峯洞) 등지의 인민이 부현(府縣)이나 갑판관(閘辦官)의 핍박을 받아, 할 수 없이 산중으로 도망하여 드나들면서 도적질하는 자는 조서가 이르는 날에 모두 그 죄를 사면하여, 각기 본적지에 돌아와 직업을 가지고 편안히 살게 하여 영구히 양민이 되게 한다.
1. 섬서(陝西)·사천(四川)의 군다(軍茶)를 모으는 것은 이미 군을 보낸 데는 지정한 다마사(茶馬司)에 나아가 받아들이고, 군을 보내지 아니한 데는 모두 정지한다.
1. 각처의 〈물품〉 제조는 군수(軍需)를 제외하고 기타 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한다. 금후 유사가 조정의 명문을 받지 아니하고 감히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일을 시켜, 군과 민을 괴롭게 하는 자는 죄를 준다.
1. 도망한 군인·죄수·공장 등은 조서가 도착한 날로부터 한 달 이내에 관청에 자수하여 본죄(本罪)를 면하게 하여, 군인은 원대로 돌아가고, 백성은 본적지로 돌아가고, 공장은 본업(本業)으로 돌아가게 한다.
1. 해마다 〈집을〉 떠나서 참(站)의 말[馬]을 사고, 교체하는 역부(驛夫)·조예(皂隷)·선부(膳夫)·군반(軍伴)의 수에 충당한 자는 법사(法司)에서 바로 통첩을 내어 방환시켜, 백성이 되게 한다. 그것을 지연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어긴 자는 죄를 준다.
1. 수재와 한재를 당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된 가난한 백성은 유사가 곧 조사하여 구제한다.
1. 민간에서 사고가 발생한 집이 전토를 버려 두어 묵게 된 것은, 유사가 즉시 실지를 조사 보고하여 다시 심사할 때에는 사실 조사를 근거로 하여 소송을 면제하고 소작하는 중간에 관전(官田)을 경작한 자는 곧 민전(民田)의 예에 의하여 조세를 부과한다.
1. 군민(軍民) 가운데 홀아비나 과부·고아들은 담당 관사에서 예에 의하여 구휼하여 죽지 않게 하고, 백성으로 나이 70이상 되는 자와 폐인이나 잡병으로 고생하는 자에게는 장정 한 명으로 봉양하게 하고, 〈장정이 없어서〉 자립할 수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생활비를〉 진급(賑給)하고, 군민(軍民)으로 나이 80이상인 자는 관사에서 비단 2필, 솜 2근, 술 1말, 고기 10근을 주어 때때로 보호한다.
1. 효자(孝子)·순손(順孫)·의부(義婦)·절부(節婦)는 관사에서 조사하여, 명백히 그 실적(實跡)을 적어서 보고하여 정표(旌表)의 참고가 되게 한다.
1. 군민 가운데 재주와 덕이 있어서 등용할 만한 사람으로서, 하료(下僚)에 파묻혀 있거나, 또는 산림(山林)에 숨어 사는 자는 관사에서 천거하여 예(禮)로 대접하고 서울에 보내어 재주에 따라 뽑아 쓴다.
1. 군민의 이익과 병폐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직언하여 숨김이 없도록 허락한다.
1. 탐관오리로서 정치를 좀먹게 하고 법을 무너뜨려 폐단을 부려 백성을 해롭게 한 자가, 조서가 도착한 뒤에도 뉘우치지 아니하고 그 전대로 탐학(貪虐)한 짓을 하는 자는 순안감찰어사(巡按監察御史)와 안찰사(按察使)가 곧 잡아서 서울에 보낸다.
1. 금후부터 관리가 조세를 독촉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직접 향촌에 내려가 거둬들이면서 가난한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누구든지 고발하게 하고, 관사에서는 즉시 잡아서 문초하여 서울로 보낸다.
1. 여러 관사의 관원이 이졸(吏卒)·궁병(弓兵)·조예(皂隷)·뇌자(牢子)를 숨겨 오랫동안 관사에서 점령하고, 해마다 하나도 바꾸지 아니하며, 오로지 침윤(侵潤)하는 관장(官長)이 사송(詞訟)을 일으키거나 없애면서 수수료 또는 대서료라 하는 각종 명목을 붙여, 각 아문(衙門)에서 서로 결탁(結託)하여 문서를 만들어 내어, 관부(官府)에 가지고 가서 양선한 자를 침해한 것은 인민으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여, 소재지의 안찰사(按察使)나 순안감찰어사(巡按監察御使)가 체포 문초하여 서울로 보낸다.
1. 법사(法司)에서 문초한 죄수는 앞으로는 모두 《대명률(大明律)》에 의하여 처단하고, 각박한 조문은 허용하지 아니하고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아아, 군신은 한 몸이라, 사람을 사랑함에는 관대하여야 하고, 상과 벌은 법칙이 있어야 하고, 나라를 경영함에는 밝고 믿음을 나타내어야 한다. 다행히 문무의 어진 보필과 중외의 어진 신하에 의지하여, 그들의 충량(忠良)을 펴서 〈나의〉 부족함을 돕게 하여 국통을 이어받아 국가의 영원한 터전을 높이고, 여러 백성에게 좋은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천하 태평의 복을 이루게 하고자 천하에 고하여 모두 알게 하노라."
하였다. 예를 마친 다음 임금은 사신과 서로 재배하고 다례(茶禮)를 거행하였다. 사신이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가니, 임금은 근정전 문밖에 나와서 보내었다. 사시(巳時)에 근정전에 나아가 유지(宥旨)를 중외에 반포하였다. 그 유지에 이르기를,
"왕은 이르노라. 천지의 마음은 오로지 만물을 생육하는 데에 있고, 제왕의 도는 이 백성을 편안히 기르는 데에 있도다. 하늘과 사람은 비록 다르나, 그 목적은 같은 것이다. 〈황제가〉 반포한 조서에는……라고 하였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皇帝)는 방금 최질(衰絰) 중에 있고 또 즉위한 시초를 당하여, 애통한 정이 지극할 것이요, 군국(軍國)의 사무도 많을 것인데, 과인(寡人)을 생각하여 특히 조관을 보내 윤명(綸命)을 펴니, 은혜가 지극히 큰 것이다. 하물며 대사(大赦)의 관대한 조문은 실로 천하가 다 같이 경사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러한 명랑한 조서가 내렸으니 마땅히 비상한 덕음을 내려야 한다. 영락 22년 10월 15일 새벽 이전을 기하여, 대역을 모반한 자와 자손으로 조부모와 부모를 구타하였거나 모살한 자, 처첩으로 남편을 모살한 자, 노비로서 주인을 모살한 자, 독약이나 방술로써 고의로 살인을 도모한 자와 강도를 제외하고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이나, 이미 판결된 것이나 판결되지 아니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그 죄를 놓아 주고,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소하는 자는 그 죄로써 죄를 준다. 아아, 하늘의 마음을 받들어서 왕도(王道)를 행하고, 곁으로 변함 없는 인(仁)을 베풀고, 황제의 가르침을 펴서 민생을 구휼하여, 영원히 풍부하고 태평한 세상을 이루려 한다."
하였다. 오시에 임금이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사신관(使臣館)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었다. 정사 이기(李琦)가 병으로 연회에 나오지 못하므로, 지신사 곽존중(郭存中)에게 명하여 연탁(宴卓)을 그의 방에 차리게 하였다. 기가 존중에게 말하기를,
"전하의 정치와 교화는 묻지 아니하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니 길도 잘 닦여 있고 관사(館舍)도 깨끗하며, 음식도 정결하고 어른과 아이들도 차서를 차리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일조 일석에 될 일이랴. 내가 복이 없어서 영화스러운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연회를 파하고 임금이 기의 방에 가서 문병하고, 유시에 환궁하였다. 유경(劉景)이 기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조선 사람이 예의를 안다고 들었는데, 이제 그 경내에 들어와 보니 과연 들은 바와 같다. 전하는 학문이 고금을 통달하여, 〈이러한 분이〉 근대에 없는 바이다. 그대가 전하와 함께 도리(道理)를 담론하였으면 하였는데, 이제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니 실로 유감된 일이다."
하였다. 기가 이르기를,
"나도 또한 한이 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31면
- 【분류】외교-명(明)
원문
○丙辰/登極使臣禮部郞中李琦、通政司參議彭璟入國, 上率王世子以下群臣, 幸慕華樓, 以冕服迎詔, 至景福宮行禮如儀。 告訃使臣劉景、陳善 先升月臺上, 行五拜扣頭禮。 其詔曰:
奉天承運皇帝詔曰: 朕惟上天生民, 爰立君主。 仁育兆庶, 咸至於泰和; 統御華夷, 同躋於熙皞。 我先皇帝奉天撫運, 治化高於百王; 文德武功, 聲敎被於四海。 比緣邊警, 厪龍御以親征; 逮及凱旋, 竟鼎湖之升逝。 遺命神器, 付予眇躬。 顧哀疚之方深, 豈遵承之遽忍? 宗親、公侯、駙馬、伯、文武臣僚、軍民、耆老及四夷朝貢之使, 俯伏闕下, 奉表勸進, 以爲: "天位不可以久虛, 生民不可以無主, 嫡長承統, 國家常經。" 陳辭再三, 瀝懇勤切。 用是仰遵遺命, 俯循輿情, 已於八月十五日, 祗告天地、宗廟、社稷, 卽皇帝位。 奉祖考之洪祐, 仰聖神之永圖。 屬玆涖祚之初, 宜布維新之命。 其以明年爲洪熙元年, 所有合行事宜, 條示于後。
一, 自永樂二十二年八月十五日昧爽以前, 官吏軍民人等, 有犯除謀叛大逆、子孫謀殺祖父母父母、妻妾謀殺夫、奴婢殺主不赦外, 其餘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罪無大小, 咸赦除之, 敢有赦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一, 軍官倂旗軍將軍力士校尉舍人餘丁等爲事犯罪, 發遣各處, 立功哨瞭等項者, 盡行宥免, 復還職役。
一, 軍官有爲事被刑及罷閑者, 除謀逆外, 其餘見在者, 復其原職; 已故者, 子孫依例承襲。 總小旗革易充軍者, 各復其原職。
一, 文武官員幷總小旗有爲事已復職役住支俸糧及支半俸者, 俱照舊關支。
一, 文武官吏軍民匠作人等有爲事做工及運磚拖砌城運糧等項者, 悉宥其罪, 官吏復還職, 役軍還原伍, 匠仍當匠, 民放寧家。 其風憲官有犯贓罪者, 不復其職, 放回原籍, 爲民當差。
一, 永樂十九年十二月終已前拖欠虧兌未完稅糧料荳戶口鹽糧及有報數在官未曾送納者, 盡行蠲免, 仍免永樂二十二年戶口鹽糧一年。 其各處拖欠草束及柴炭, 俱自永樂二十年十二月終以前, 盡行蠲免。
一, 自永樂二十二年八月十五日以前遞年虧欠農桑諸色課程倉糧鹽課魚課等項幷倒死馬駝驢騾牛羊虧欠孶生等畜及拖欠蘆柴各處納欠銅鐵顔料席麻竹木等物幷追倍珍珠等物未納各項贓罰倍追未完段匹物件, 盡行蠲免。
一, 軍官爲事犯罪, 發遣各處, 充軍養馬種田等項者, 盡行宥免復職。
一, 各處軍民有爲追倍孶生馬匹, 受官府逼迫, 不得已將男女妻妾, 典賣與人, 以致流離困苦, 不能自存者, 詔書至日, 官司卽爲贖還, 毋得托故延緩。 如女子年長, 已成婚配者, 不在此例。 今後到死孶生馬匹, 只照洪武年間例追倍。
一, 天下一應稅課, 照依永樂二十年以前舊額徵收, 不許指以鈔法爲由, 妄自增添, 擾害商民, 違者罪之。
一, 各處逃移人戶, 悉宥其罪, 許於所在官司首告發, 回原籍復業, 免其差徭二年, 其戶下虧欠稅糧, 盡行蠲免。
一, 下西洋諸蕃等國寶船, 悉皆停止。 如已福建 大倉等處安泊者, 俱回南京, 將帶去物貨, 仍於內府該庫交收。 諸蕃國有進貢使臣當回去者, 只量撥人船, 護送其去。 但係所差內外官員, 卽便回京; 民稍人等, 各放寧家。
一, 往迤西撒馬兒、罕 失剌思等處買馬等項及哈密取馬者, 悉皆停止。 將去給賜段匹磁器等件, 就於所在官司, 明白照數入庫。 馬駝騾匹, 若係官給者, 仍交還; 官軍民買辦者, 仍給還原買之人。 所有差去內外官員, 俱限十日已裏, 起程赴京, 不許托故稽留。
一, 往雲南、木邦、緬里、麓川、車里等處採取寶石等項及收買馬匹等件者, 悉皆停罷。 其給賜之物, 發與差來進貢使人, 順帶回去, 但係朝廷差去內外官員, 限十日已裏, 卽便起程回京。 官軍各回原衛著役, 不許稽留。
一, 各處修造往諸蕃船隻, 悉皆停止。 其各處採辦鐵梨木, 只照依洪武年間例採辦, 餘悉停罷。
一, 但是買辦下番一應物件幷鑄造銅錢, 買辦麝香生銅苧絲等物, 除見買, 在官者卽於所在官庫交收, 若未買者, 悉皆停止。
一, 各處買辦諸色苧絲、紗羅段匹、寶石等項及一應物件、顔料幷蘇、杭等處續造段匹、抄造紙札、焇造磁器、採辦梨木板及造諸品海味果子等項, 悉皆停罷, 其差去人員, 卽便回京。 所有指此爲由, 科斂害民者, 罪之。
一, 各處閘辦金銀課, 除已煎焇見收在官外, 自今幷行停止。 敢有不遵法度, 私自煎焇者, 罪之。 所差去閘辦人員, 限十日內, 卽便赴京, 不許托故稽留。 但係舊額歲辦課銀幷差發金, 不在此例。
一, 交趾採金採珠及採辦香貨之類, 悉皆停止。 凡交趾一應買辦採取物件, 其詔書內該載未盡, 亦皆停止。 所差去內外監督官員, 限十日以裏, 起程赴京, 竝不許托故稽留, 虐役軍民。
一, 各處有營造採辦木植, 如已發軍者, 隨到所在堆垜, 其未採辦者, 悉皆停止, 軍民各放寧家。 所差去採辦官員人等, 限十日以裏, 卽便起程赴京, 無得托故稽留, 侵害軍民, 違者罪之。
一, 浙江、福建 官一山、鳥峯洞等處有等人民, 因被府縣及閘辦官吏逼迫, 不得已逃命山林, 出沒爲盜。 詔書至日, 悉宥其罪, 各回原籍, 安生樂業, 永爲良民。
一, 陝西、四川儹軍茶課, 有已起軍者, 卽赴所指茶馬司交收, 未起軍者, 悉皆停止。
一, 各處造作除軍需外, 其餘不急之務, 悉皆停罷。 今後有司非奉朝廷明文, 敢有一毫擅自科擾軍民者, 罪之。
一, 逃軍、逃囚、逃匠人等, 詔書到日爲始, 許一月內赴官自首, 與免本罪, 軍還原伍, 民還原籍, 匠復本業。
一, 遞年爲事發去買馬當站及充遞運驛夫、皂隷、膳夫、軍伴之數, 法司卽便撥替放回爲民, 不許延緩, 違者罪之。
一, 有被水旱缺食貧民, 有司卽便取勘賑濟。
一, 民間應有事故人戶, 抛荒田土, 有司卽爲驗實, 取勘開報, 以憑(覆)〔覈〕 實除訟。 另行召人承佃, 中間如係官田, 卽照民田例起科。
一, 軍民中有鰥寡孤獨者, 所司依例存恤, 毋令失所。 民年七十以上及篤廢殘疾者, 許令一丁侍養, 不能自存者, 官爲賑給。 凡軍民年八十以上者, 所司給與絹二匹、緜二斤、酒一斗、肉十斤, 時加存問。
一, 孝子、順孫、義夫、節婦, 許所司保勘, 明白開具實跡奏聞, 以憑旌表。
一, 軍民之中, 有懷才抱德, 勘爲任用, 或屈在下僚, 或隱於山林, 所司薦擧以禮, 遣送赴京, 量才擢用。
一, 軍民利病, 許諸人直言無隱。
一, 凡貪官汚吏蠹政壞法, 作弊害民, 詔書到後, 不卽改悔, 仍前貪虐者, 許巡按監察御史按察司, 卽便拿問解京。
一, 自今後官吏, 敢有指以催辦爲由, 輒自下鄕科斂, 擾害貧民者, 許諸人首告, 所司卽便拿問解京。
一, 諸司官員, 敢有容隱吏卒、弓兵、皂隷、牢子, 久占衙門, 連年不替, 專一侵潤官長, 起滅詞訟, 說事過錢及稱主文等項名色, 在各衙門結攬寫發, 把持官府, 虐害良善者, 許人首告, 其所在按察司及巡按監察御史, 卽便擒挐問罪解京。
一, 法司所問囚人, 今後一依《大明律》科斷, 不許深文, 違者罪之。
於戲! 君臣一體, 愛人必務於寬弘; 賞罰有經, 爲國必彰於明信。 尙賴文武賢弼、中外良臣, 攄乃忠良, 匡輔不逮。 用承鴻業, 隆國家永遠之基; 嘉惠群黎, 廣海宇治平之福。 敷告天下, 咸使聞知。
禮畢, 上與使臣再拜, 行茶禮。 使臣歸太平館, 上送于勤政門外。 巳時, 御勤政殿, 頒降宥旨于中外。 其宥旨:
王若曰: 天地之心, 專於生育萬物; 帝王之道, 在乎安養斯民。 天人雖殊, 其致則一。 伏覩頒降詔書, 有曰云云。 欽惟皇帝陛下方在衰絰之中, 且値踐祚之初, 哀痛之情至矣, 軍國之務夥矣。 乃念寡人, 特遣朝官, 俾宣綸命, 恩至渥也。 矧大赦之寬條, 實普天之同慶。 屬玆誕降於明詔, 宜降非常之德音。 自永樂二十二年十月十五日昧爽以前, 除謀叛大逆、謀叛子孫、歐及謀殺祖父母父母、妻妾謀殺夫、奴婢謀殺主、蠱毒魘魅、謀故殺人、但凡强盜外, 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奉天心而行王道, 旁施渙汗之仁; 敷帝訓以恤民生, 永底豐平之治。
午時, 上率王世子以下群臣幸使臣館, 設下馬宴。 正使李琦以疾未赴宴, 命知申事郭存中設宴卓于所舍, 琦對存中言: "殿下政化, 不問可知。 入境, 道路治、館舍修, 飮食精、小長序, 此豈一朝一夕之致耶? 僕薄福, 未得與榮宴。" 宴罷, 上就琦問疾, 酉時還宮。 劉景謂琦曰: "嘗聞朝鮮之人知禮義, 今入其境, 果協所聞。 殿下學貫古今, 近代所無, 意謂君與殿下談論道理, 今病不起, 實爲缺望。" 琦曰: "我亦恨焉。"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31면
- 【분류】외교-명(明)
세종 6년 (1424) 10월 15일
국역
등극 사신(登極使臣) 예부 낭중 이기(李琦)와 통정사(通政司) 참의(參議) 팽경(彭璟)이 서울에 들어왔다. 임금이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모화루에 거둥하여 면복(冕服)으로 조서를 맞이하고, 경복궁에 이르러 의식대로 예를 거행하였다. 부고 사신(訃告使臣) 유경(劉景)·진선(陳善)이 먼저 월대(月臺) 위에 올라가 오배고두례(五拜叩頭禮)를 거행하였다.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하늘을 받들고 운수를 이어받은 황제[奉天承運皇帝]는 조하노라. 짐은 생각건대, 하느님이 백성들을 낳고 군주를 세워, 인(仁)으로 억조 창생(蒼生)을 길러 모두 태평하고 화목하게 하며,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통치하여 다 같이 태평 세월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 선황제(先皇帝)는 하늘을 받들고 세상을 다스려, 치화(治化)가 여러 제왕보다 높고,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이 있어, 덕택이 사해(四海)에 덮이었다. 근간에 변방의 경보가 있어, 잠깐 동안 말을 달려 친히 정벌하고,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승서(升逝)하시고, 유명(遺命)으로 나의 작은 몸에다 신기(神器)를 맡기었다. 돌아보건대, 슬픔이 마음 속 깊이 잠겨 있는데, 어찌 차마 곧 〈유명을〉 받들리오. 그러나, 종친(宗親)·공후(公侯)·부마(駙馬)·백(伯)·문무 신료(臣僚)·군민(軍民)·기로(耆老)와 사이(四夷)의 조공(朝貢)하는 사신까지 대궐 아래 엎드려 표(表)를 올려 즉위할 것을 권하면서 말하기를, ‘천자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워 둘 수가 없고, 생민은 임금이 없을 수 없으며, 맏아들로 대통(大統)을 잇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법이라.’ 하며, 두세 번 간절히 말하므로, 위로 유명(遺命)에 따르고 아래로 여정(輿情)에 좇아, 이미 8월 15일에 공손히 천지 종묘 사직에 고하고, 황제(皇帝)의 자리에 나아가 조고(祖考)의 큰 복을 받들고, 신성(神聖)한 영구 계획을 행하려 한다. 이제 즉위초(卽位初)를 당하여 유신(維新)의 명령을 선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명년을 홍희(洪熙) 원년(元年)이라 하고, 실시할 일들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표시한다. 1. 영락(永樂) 22년 8월 15일 새벽 이전에 관리(官吏) 군민(軍民) 등으로 범죄한 자는 모반 대역(謀叛大逆)이나, 자손으로 조부모 또는 부모를 죽였거나, 처첩으로 남편을 죽였거나, 노비로서 주인을 죽인 자는 사(赦)하지 아니하고, 그 이외에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이나, 이미 결정된 것이나 결정되지 아니한 것이나, 죄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사면하고, 사면 이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발하는 자는 그 죄로 죄를 준다.
1. 군관(軍官)·기군(旗軍)·장군(將軍)·역사(力士)·교위(校尉)·사인(舍人)·여정(餘丁) 등으로 일을 하다가 범죄하고, 공을 세워 면죄하기 위하여 각처에 파견되어 방수하는 자는 모두 사면하여, 그 전 직역(職役)으로 다시 돌아 오게 한다.
1. 군관(軍官)으로 일을 하다가 형을 받은 자와 파면된 자는 모역(謀逆)은 제외하고, 기타 생존자는 그 원직에 복구시키고, 이미 사망한 자는 예에 의하여 그 자손에게 상속시키고, 총소기(總小旗)로서 강등하여 충군(充軍)된 자는 각기 그 원직에 복구시킨다.
1. 문무 관원과 총소기(總小旗)가 어떤 일로 이미 복직되었으나 본봉급보다 떨어지게 주거나 반봉급을 주는 자는 모두 옛날 관문(關文)대로 지급(支給)한다.
1. 문무 관리와 군민(軍民)·공작인(工作人)이 어떤 일로 역공(役工)이 되거나 벽돌을 운반하고 성을 쌓고 양식을 운반하는 자는 모두 그 죄를 면제하여, 관리는 복직시키고, 역군(役軍)은 원대로 환원하고, 공장은 그대로 공장에 있게 하고, 백성은 제 집으로 보내되, 풍헌관(風憲官)으로서 장죄(贓罪)를 범한 자는 복직시키지 아니하고, 다만 원적지(原籍地)로 돌려보내어 백성이 되게 한다.
1. 영락(永樂) 19년 12월 말일 이전의 세량(稅糧)·요두(料荳)·호구 염량(戶口鹽糧)을 갚지 못하였거나 바치지 못한 자와 보고된 숫자는 관문서에 실려 있는데 현재까지 바치지 못한 자는 모두 면제하고, 영락 22년 1년간의 호구 염량도 면제하고, 각처에서 갚지 못한 초속(草束)·시탄(柴炭)도 영락 20년 12월 말일 이전의 것은 모두 면제한다.
1. 영락(永樂) 22년 8월 15일 이전 1년을 통하여 바치지 못한 농상(農桑) 여러가지 부과와 창량(倉糧)·염과(鹽課)·어과(魚課) 등 항목과 말·낙타·나귀·노새·소·양을 죽게 한 것, 생장 번식하는 목축을 축낸 것, 노시(蘆柴)를 바치지 아니한 것, 각처에서 미납한 동철(銅鐵)·안료(顔料)·자리·삼·대나무 등 물건과, 배상하는 진주(珍珠) 등 물건을 미납한 것, 장벌(贓罰)의 배상을 끝내지 못한 단필(段匹)은 모두 감면한다.
1. 군관(軍官)으로 범죄하여 각처에 파견되어 충군(充軍)·양마(養馬)·종전(種田) 등의 일을 하는 자는 모두 사면하여 복직시킨다.
1. 각처의 군민(軍民)이 증식하는 마필(馬匹)을 배상하는 문제로 관청의 핍박을 받아, 할 수 없이 남녀 처첩(男女妻妾)을 팔아서 남에게 주고, 떠돌아다니면서 고생하고 살 수 없는 자는, 조서가 도착하는 날 곧 관청에서 속환(贖還)하고, 이유를 끌어대어 지연시키지 말 것이며, 만일 딸자식으로서 장성하여 이미 결혼한 자는 이 예에 의하지 않는다. 금후로는 증식하는 말을 죽게 하는 자는 다만 홍무(洪武) 연간의 예에 의하여 배상한다.
1. 천하(天下)의 모든 과세는 영락 20년 이전의 옛날 액수에 의하여 징수하고, 초법(鈔法)을 이유로 하여 함부로 증가시켜 상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허락하지 말 것이며, 이것을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1. 각처에서 도망하여 이주한 민호는 모두 그 죄를 사하고, 현주지의 관청에 자수하게 하여, 원적지에 돌려보내어 그 전 직업에 복귀시키되, 그들에게 부역을 2년간 면제하고, 그 집 명의로 미납한 세량(稅糧)은 모두 면제한다.
1. 하서양(下西洋) 여러 번국(蕃國)의 각국 보선(寶船)은 모두 정지시키도록 한다. 만일 이미 복건(福建)·대창(大倉) 등지에 정박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모두 남경으로 돌려보내서 가지고 있는 물화를 내부(內府) 창고에 교부하여 받아들이고, 여러 번국에서 진공(進貢)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갈 자는 다만 인부와 배를 적당히 내어 호송하여 주고, 차견(差遣)하였던 내의 관원은 바로 서울로 돌아오게 하고, 수행한 백성들은 각기 제 집으로 돌려보낸다.
1. 타서살마아(迤西撒馬兒)·한실자사(罕失剌思) 등지에 가서 말을 사는 것과 합밀(哈密)에서 말을 가져 오는 것은 모두 정지하고, 대가로 가지고 간 비단과 자기(磁器) 등 물건은 소재지의 관청에 나아가 명백히 숫자에 맞추어서 입고시키고, 말·낙타·노새는 관청에서 준 것은 돌려 보내고, 관리와 군인·백성이 사들인 것은 원래 산 사람에게 돌려주고, 파견한 내외 관원들은 모두 열흘 안에 길을 떠나서 서울로 오게 하고, 사유를 들어 오래도록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1. 운남(雲南)·목방(木邦)·면리(緬里)·여천({广+麓}川)·거리(車里) 등지에 가서 보석을 캐고, 마필(馬匹)을 매수하는 일들은 모두 정지하고, 내려준 물건은 파견되어 온 진공 사인(進貢使人)에게 주어 잘 가지고 돌아가게 하고, 조정에서 파견한 내외 관원은 10일 이내에 길을 떠나 곧 서울로 돌아오며, 관군은 각기 원위(原衛)에 돌아가 취역하게 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1. 각처에서 여러 번 국의 배를 수리하는 것은 모두 정지하고, 각처에서 철리목(鐵梨木)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것은 홍무 연간의 예에 의하여 채취 판매하고, 그 밖에는 모두 정지한다.
1. 제후국(諸侯國)에서 사들이는 모든 물건과 동전을 만들어 사향(麝香)·생동(生銅)·저사(苧絲) 등 물건을 사들이는 데 있어서는, 이미 사들여서 관청에 있는 것으로 곧 소재지의 관청 창고에 보관한 것을 빼고, 아직 사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한다.
1. 각처에서 사들이는 여러가지 저사(苧絲)·사라(紗羅)·단필(段匹)·보석(寶石)·안료(顔料)와 소주(蘇州)·항주(杭州) 등지에서 단필을 속조(續造)하고, 지찰(紙札)을 초조(抄造)하고, 자기(磁器)를 초조(焇造)하고, 이목판(梨木板)을 채판(採辦)하는 것과 여러가지 해미(海味)·과자(果子)를 만들던 것은 모두 정파(停罷)하고, 그 일로 파견한 인원은 곧 서울로 돌아 오게 하고, 이것을 이유로 재물을 거둬들여 백성을 해롭게 하는 자에게는 죄를 준다.
1. 각처에서 금은세를 갑판(閘辦)하는 것은 이미 제련하고 수입되어 관청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지금부터는 모두 정지하고, 감히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사로 제련하는 자는 죄를 주고, 그 일로 보냈던 갑판인(閘辦人)은 10일 이내에 바로 서울로 오게 하고, 사유를 붙여서 머뭇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다만 구액(舊額)으로 해마다 부과하는 은과 차출한 금은 예외로 한다.
1. 교지(交趾)에서 금과 구슬과 향화(香貨)를 채취하는 따위는 모두 정지하고, 조서 안에 쓰지 아니한 것이라도 교지에서 사들이거나 채취(採取)하는 여러가지 물건도 또한 정지하고, 그 일로 보낸 내외 감독관은 10일 이내에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고, 사유를 붙여 머물러 있으면서 군민(軍民)을 부리는 것은 허락하지 아니한다.
1. 각처에서 영조(營造)를 위하여 목재(木材)를 벌채하는 것은, 이미 군정(軍丁)을 동원하여 벌채한 것은 소재지에 무더기로 쌓아 두고, 아직 벌채에 착수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하고, 군민(軍民)은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일로 보냈던 채판관(採辦官) 등은 10일 이내에 곧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게 하며, 사유를 붙여서 고의로 머물러 있으면서 군민(軍民)을 침해(侵害)하지 못하게 하고,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1. 절강(浙江)·복건(福建) 소속 일산(一山) 오봉동(烏峯洞) 등지의 인민이 부현(府縣)이나 갑판관(閘辦官)의 핍박을 받아, 할 수 없이 산중으로 도망하여 드나들면서 도적질하는 자는 조서가 이르는 날에 모두 그 죄를 사면하여, 각기 본적지에 돌아와 직업을 가지고 편안히 살게 하여 영구히 양민이 되게 한다.
1. 섬서(陝西)·사천(四川)의 군다(軍茶)를 모으는 것은 이미 군을 보낸 데는 지정한 다마사(茶馬司)에 나아가 받아들이고, 군을 보내지 아니한 데는 모두 정지한다.
1. 각처의 〈물품〉 제조는 군수(軍需)를 제외하고 기타 급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정지한다. 금후 유사가 조정의 명문을 받지 아니하고 감히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일을 시켜, 군과 민을 괴롭게 하는 자는 죄를 준다.
1. 도망한 군인·죄수·공장 등은 조서가 도착한 날로부터 한 달 이내에 관청에 자수하여 본죄(本罪)를 면하게 하여, 군인은 원대로 돌아가고, 백성은 본적지로 돌아가고, 공장은 본업(本業)으로 돌아가게 한다.
1. 해마다 〈집을〉 떠나서 참(站)의 말[馬]을 사고, 교체하는 역부(驛夫)·조예(皂隷)·선부(膳夫)·군반(軍伴)의 수에 충당한 자는 법사(法司)에서 바로 통첩을 내어 방환시켜, 백성이 되게 한다. 그것을 지연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어긴 자는 죄를 준다.
1. 수재와 한재를 당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된 가난한 백성은 유사가 곧 조사하여 구제한다.
1. 민간에서 사고가 발생한 집이 전토를 버려 두어 묵게 된 것은, 유사가 즉시 실지를 조사 보고하여 다시 심사할 때에는 사실 조사를 근거로 하여 소송을 면제하고 소작하는 중간에 관전(官田)을 경작한 자는 곧 민전(民田)의 예에 의하여 조세를 부과한다.
1. 군민(軍民) 가운데 홀아비나 과부·고아들은 담당 관사에서 예에 의하여 구휼하여 죽지 않게 하고, 백성으로 나이 70이상 되는 자와 폐인이나 잡병으로 고생하는 자에게는 장정 한 명으로 봉양하게 하고, 〈장정이 없어서〉 자립할 수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생활비를〉 진급(賑給)하고, 군민(軍民)으로 나이 80이상인 자는 관사에서 비단 2필, 솜 2근, 술 1말, 고기 10근을 주어 때때로 보호한다.
1. 효자(孝子)·순손(順孫)·의부(義婦)·절부(節婦)는 관사에서 조사하여, 명백히 그 실적(實跡)을 적어서 보고하여 정표(旌表)의 참고가 되게 한다.
1. 군민 가운데 재주와 덕이 있어서 등용할 만한 사람으로서, 하료(下僚)에 파묻혀 있거나, 또는 산림(山林)에 숨어 사는 자는 관사에서 천거하여 예(禮)로 대접하고 서울에 보내어 재주에 따라 뽑아 쓴다.
1. 군민의 이익과 병폐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직언하여 숨김이 없도록 허락한다.
1. 탐관오리로서 정치를 좀먹게 하고 법을 무너뜨려 폐단을 부려 백성을 해롭게 한 자가, 조서가 도착한 뒤에도 뉘우치지 아니하고 그 전대로 탐학(貪虐)한 짓을 하는 자는 순안감찰어사(巡按監察御史)와 안찰사(按察使)가 곧 잡아서 서울에 보낸다.
1. 금후부터 관리가 조세를 독촉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직접 향촌에 내려가 거둬들이면서 가난한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누구든지 고발하게 하고, 관사에서는 즉시 잡아서 문초하여 서울로 보낸다.
1. 여러 관사의 관원이 이졸(吏卒)·궁병(弓兵)·조예(皂隷)·뇌자(牢子)를 숨겨 오랫동안 관사에서 점령하고, 해마다 하나도 바꾸지 아니하며, 오로지 침윤(侵潤)하는 관장(官長)이 사송(詞訟)을 일으키거나 없애면서 수수료 또는 대서료라 하는 각종 명목을 붙여, 각 아문(衙門)에서 서로 결탁(結託)하여 문서를 만들어 내어, 관부(官府)에 가지고 가서 양선한 자를 침해한 것은 인민으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여, 소재지의 안찰사(按察使)나 순안감찰어사(巡按監察御使)가 체포 문초하여 서울로 보낸다.
1. 법사(法司)에서 문초한 죄수는 앞으로는 모두 《대명률(大明律)》에 의하여 처단하고, 각박한 조문은 허용하지 아니하고 어기는 자는 죄를 준다. 아아, 군신은 한 몸이라, 사람을 사랑함에는 관대하여야 하고, 상과 벌은 법칙이 있어야 하고, 나라를 경영함에는 밝고 믿음을 나타내어야 한다. 다행히 문무의 어진 보필과 중외의 어진 신하에 의지하여, 그들의 충량(忠良)을 펴서 〈나의〉 부족함을 돕게 하여 국통을 이어받아 국가의 영원한 터전을 높이고, 여러 백성에게 좋은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천하 태평의 복을 이루게 하고자 천하에 고하여 모두 알게 하노라."
하였다. 예를 마친 다음 임금은 사신과 서로 재배하고 다례(茶禮)를 거행하였다. 사신이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가니, 임금은 근정전 문밖에 나와서 보내었다. 사시(巳時)에 근정전에 나아가 유지(宥旨)를 중외에 반포하였다. 그 유지에 이르기를,
"왕은 이르노라. 천지의 마음은 오로지 만물을 생육하는 데에 있고, 제왕의 도는 이 백성을 편안히 기르는 데에 있도다. 하늘과 사람은 비록 다르나, 그 목적은 같은 것이다. 〈황제가〉 반포한 조서에는……라고 하였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皇帝)는 방금 최질(衰絰) 중에 있고 또 즉위한 시초를 당하여, 애통한 정이 지극할 것이요, 군국(軍國)의 사무도 많을 것인데, 과인(寡人)을 생각하여 특히 조관을 보내 윤명(綸命)을 펴니, 은혜가 지극히 큰 것이다. 하물며 대사(大赦)의 관대한 조문은 실로 천하가 다 같이 경사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러한 명랑한 조서가 내렸으니 마땅히 비상한 덕음을 내려야 한다. 영락 22년 10월 15일 새벽 이전을 기하여, 대역을 모반한 자와 자손으로 조부모와 부모를 구타하였거나 모살한 자, 처첩으로 남편을 모살한 자, 노비로서 주인을 모살한 자, 독약이나 방술로써 고의로 살인을 도모한 자와 강도를 제외하고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이나, 이미 판결된 것이나 판결되지 아니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그 죄를 놓아 주고,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소하는 자는 그 죄로써 죄를 준다. 아아, 하늘의 마음을 받들어서 왕도(王道)를 행하고, 곁으로 변함 없는 인(仁)을 베풀고, 황제의 가르침을 펴서 민생을 구휼하여, 영원히 풍부하고 태평한 세상을 이루려 한다."
하였다. 오시에 임금이 왕세자 이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사신관(使臣館)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었다. 정사 이기(李琦)가 병으로 연회에 나오지 못하므로, 지신사 곽존중(郭存中)에게 명하여 연탁(宴卓)을 그의 방에 차리게 하였다. 기가 존중에게 말하기를,
"전하의 정치와 교화는 묻지 아니하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니 길도 잘 닦여 있고 관사(館舍)도 깨끗하며, 음식도 정결하고 어른과 아이들도 차서를 차리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일조 일석에 될 일이랴. 내가 복이 없어서 영화스러운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연회를 파하고 임금이 기의 방에 가서 문병하고, 유시에 환궁하였다. 유경(劉景)이 기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조선 사람이 예의를 안다고 들었는데, 이제 그 경내에 들어와 보니 과연 들은 바와 같다. 전하는 학문이 고금을 통달하여, 〈이러한 분이〉 근대에 없는 바이다. 그대가 전하와 함께 도리(道理)를 담론하였으면 하였는데, 이제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니 실로 유감된 일이다."
하였다. 기가 이르기를,
"나도 또한 한이 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31면
- 【분류】외교-명(明)
원문
○丙辰/登極使臣禮部郞中李琦、通政司參議彭璟入國, 上率王世子以下群臣, 幸慕華樓, 以冕服迎詔, 至景福宮行禮如儀。 告訃使臣劉景、陳善 先升月臺上, 行五拜扣頭禮。 其詔曰:
奉天承運皇帝詔曰: 朕惟上天生民, 爰立君主。 仁育兆庶, 咸至於泰和; 統御華夷, 同躋於熙皞。 我先皇帝奉天撫運, 治化高於百王; 文德武功, 聲敎被於四海。 比緣邊警, 厪龍御以親征; 逮及凱旋, 竟鼎湖之升逝。 遺命神器, 付予眇躬。 顧哀疚之方深, 豈遵承之遽忍? 宗親、公侯、駙馬、伯、文武臣僚、軍民、耆老及四夷朝貢之使, 俯伏闕下, 奉表勸進, 以爲: "天位不可以久虛, 生民不可以無主, 嫡長承統, 國家常經。" 陳辭再三, 瀝懇勤切。 用是仰遵遺命, 俯循輿情, 已於八月十五日, 祗告天地、宗廟、社稷, 卽皇帝位。 奉祖考之洪祐, 仰聖神之永圖。 屬玆涖祚之初, 宜布維新之命。 其以明年爲洪熙元年, 所有合行事宜, 條示于後。
一, 自永樂二十二年八月十五日昧爽以前, 官吏軍民人等, 有犯除謀叛大逆、子孫謀殺祖父母父母、妻妾謀殺夫、奴婢殺主不赦外, 其餘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罪無大小, 咸赦除之, 敢有赦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一, 軍官倂旗軍將軍力士校尉舍人餘丁等爲事犯罪, 發遣各處, 立功哨瞭等項者, 盡行宥免, 復還職役。
一, 軍官有爲事被刑及罷閑者, 除謀逆外, 其餘見在者, 復其原職; 已故者, 子孫依例承襲。 總小旗革易充軍者, 各復其原職。
一, 文武官員幷總小旗有爲事已復職役住支俸糧及支半俸者, 俱照舊關支。
一, 文武官吏軍民匠作人等有爲事做工及運磚拖砌城運糧等項者, 悉宥其罪, 官吏復還職, 役軍還原伍, 匠仍當匠, 民放寧家。 其風憲官有犯贓罪者, 不復其職, 放回原籍, 爲民當差。
一, 永樂十九年十二月終已前拖欠虧兌未完稅糧料荳戶口鹽糧及有報數在官未曾送納者, 盡行蠲免, 仍免永樂二十二年戶口鹽糧一年。 其各處拖欠草束及柴炭, 俱自永樂二十年十二月終以前, 盡行蠲免。
一, 自永樂二十二年八月十五日以前遞年虧欠農桑諸色課程倉糧鹽課魚課等項幷倒死馬駝驢騾牛羊虧欠孶生等畜及拖欠蘆柴各處納欠銅鐵顔料席麻竹木等物幷追倍珍珠等物未納各項贓罰倍追未完段匹物件, 盡行蠲免。
一, 軍官爲事犯罪, 發遣各處, 充軍養馬種田等項者, 盡行宥免復職。
一, 各處軍民有爲追倍孶生馬匹, 受官府逼迫, 不得已將男女妻妾, 典賣與人, 以致流離困苦, 不能自存者, 詔書至日, 官司卽爲贖還, 毋得托故延緩。 如女子年長, 已成婚配者, 不在此例。 今後到死孶生馬匹, 只照洪武年間例追倍。
一, 天下一應稅課, 照依永樂二十年以前舊額徵收, 不許指以鈔法爲由, 妄自增添, 擾害商民, 違者罪之。
一, 各處逃移人戶, 悉宥其罪, 許於所在官司首告發, 回原籍復業, 免其差徭二年, 其戶下虧欠稅糧, 盡行蠲免。
一, 下西洋諸蕃等國寶船, 悉皆停止。 如已福建 大倉等處安泊者, 俱回南京, 將帶去物貨, 仍於內府該庫交收。 諸蕃國有進貢使臣當回去者, 只量撥人船, 護送其去。 但係所差內外官員, 卽便回京; 民稍人等, 各放寧家。
一, 往迤西撒馬兒、罕 失剌思等處買馬等項及哈密取馬者, 悉皆停止。 將去給賜段匹磁器等件, 就於所在官司, 明白照數入庫。 馬駝騾匹, 若係官給者, 仍交還; 官軍民買辦者, 仍給還原買之人。 所有差去內外官員, 俱限十日已裏, 起程赴京, 不許托故稽留。
一, 往雲南、木邦、緬里、麓川、車里等處採取寶石等項及收買馬匹等件者, 悉皆停罷。 其給賜之物, 發與差來進貢使人, 順帶回去, 但係朝廷差去內外官員, 限十日已裏, 卽便起程回京。 官軍各回原衛著役, 不許稽留。
一, 各處修造往諸蕃船隻, 悉皆停止。 其各處採辦鐵梨木, 只照依洪武年間例採辦, 餘悉停罷。
一, 但是買辦下番一應物件幷鑄造銅錢, 買辦麝香生銅苧絲等物, 除見買, 在官者卽於所在官庫交收, 若未買者, 悉皆停止。
一, 各處買辦諸色苧絲、紗羅段匹、寶石等項及一應物件、顔料幷蘇、杭等處續造段匹、抄造紙札、焇造磁器、採辦梨木板及造諸品海味果子等項, 悉皆停罷, 其差去人員, 卽便回京。 所有指此爲由, 科斂害民者, 罪之。
一, 各處閘辦金銀課, 除已煎焇見收在官外, 自今幷行停止。 敢有不遵法度, 私自煎焇者, 罪之。 所差去閘辦人員, 限十日內, 卽便赴京, 不許托故稽留。 但係舊額歲辦課銀幷差發金, 不在此例。
一, 交趾採金採珠及採辦香貨之類, 悉皆停止。 凡交趾一應買辦採取物件, 其詔書內該載未盡, 亦皆停止。 所差去內外監督官員, 限十日以裏, 起程赴京, 竝不許托故稽留, 虐役軍民。
一, 各處有營造採辦木植, 如已發軍者, 隨到所在堆垜, 其未採辦者, 悉皆停止, 軍民各放寧家。 所差去採辦官員人等, 限十日以裏, 卽便起程赴京, 無得托故稽留, 侵害軍民, 違者罪之。
一, 浙江、福建 官一山、鳥峯洞等處有等人民, 因被府縣及閘辦官吏逼迫, 不得已逃命山林, 出沒爲盜。 詔書至日, 悉宥其罪, 各回原籍, 安生樂業, 永爲良民。
一, 陝西、四川儹軍茶課, 有已起軍者, 卽赴所指茶馬司交收, 未起軍者, 悉皆停止。
一, 各處造作除軍需外, 其餘不急之務, 悉皆停罷。 今後有司非奉朝廷明文, 敢有一毫擅自科擾軍民者, 罪之。
一, 逃軍、逃囚、逃匠人等, 詔書到日爲始, 許一月內赴官自首, 與免本罪, 軍還原伍, 民還原籍, 匠復本業。
一, 遞年爲事發去買馬當站及充遞運驛夫、皂隷、膳夫、軍伴之數, 法司卽便撥替放回爲民, 不許延緩, 違者罪之。
一, 有被水旱缺食貧民, 有司卽便取勘賑濟。
一, 民間應有事故人戶, 抛荒田土, 有司卽爲驗實, 取勘開報, 以憑(覆)〔覈〕 實除訟。 另行召人承佃, 中間如係官田, 卽照民田例起科。
一, 軍民中有鰥寡孤獨者, 所司依例存恤, 毋令失所。 民年七十以上及篤廢殘疾者, 許令一丁侍養, 不能自存者, 官爲賑給。 凡軍民年八十以上者, 所司給與絹二匹、緜二斤、酒一斗、肉十斤, 時加存問。
一, 孝子、順孫、義夫、節婦, 許所司保勘, 明白開具實跡奏聞, 以憑旌表。
一, 軍民之中, 有懷才抱德, 勘爲任用, 或屈在下僚, 或隱於山林, 所司薦擧以禮, 遣送赴京, 量才擢用。
一, 軍民利病, 許諸人直言無隱。
一, 凡貪官汚吏蠹政壞法, 作弊害民, 詔書到後, 不卽改悔, 仍前貪虐者, 許巡按監察御史按察司, 卽便拿問解京。
一, 自今後官吏, 敢有指以催辦爲由, 輒自下鄕科斂, 擾害貧民者, 許諸人首告, 所司卽便拿問解京。
一, 諸司官員, 敢有容隱吏卒、弓兵、皂隷、牢子, 久占衙門, 連年不替, 專一侵潤官長, 起滅詞訟, 說事過錢及稱主文等項名色, 在各衙門結攬寫發, 把持官府, 虐害良善者, 許人首告, 其所在按察司及巡按監察御史, 卽便擒挐問罪解京。
一, 法司所問囚人, 今後一依《大明律》科斷, 不許深文, 違者罪之。
於戲! 君臣一體, 愛人必務於寬弘; 賞罰有經, 爲國必彰於明信。 尙賴文武賢弼、中外良臣, 攄乃忠良, 匡輔不逮。 用承鴻業, 隆國家永遠之基; 嘉惠群黎, 廣海宇治平之福。 敷告天下, 咸使聞知。
禮畢, 上與使臣再拜, 行茶禮。 使臣歸太平館, 上送于勤政門外。 巳時, 御勤政殿, 頒降宥旨于中外。 其宥旨:
王若曰: 天地之心, 專於生育萬物; 帝王之道, 在乎安養斯民。 天人雖殊, 其致則一。 伏覩頒降詔書, 有曰云云。 欽惟皇帝陛下方在衰絰之中, 且値踐祚之初, 哀痛之情至矣, 軍國之務夥矣。 乃念寡人, 特遣朝官, 俾宣綸命, 恩至渥也。 矧大赦之寬條, 實普天之同慶。 屬玆誕降於明詔, 宜降非常之德音。 自永樂二十二年十月十五日昧爽以前, 除謀叛大逆、謀叛子孫、歐及謀殺祖父母父母、妻妾謀殺夫、奴婢謀殺主、蠱毒魘魅、謀故殺人、但凡强盜外, 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奉天心而行王道, 旁施渙汗之仁; 敷帝訓以恤民生, 永底豐平之治。
午時, 上率王世子以下群臣幸使臣館, 設下馬宴。 正使李琦以疾未赴宴, 命知申事郭存中設宴卓于所舍, 琦對存中言: "殿下政化, 不問可知。 入境, 道路治、館舍修, 飮食精、小長序, 此豈一朝一夕之致耶? 僕薄福, 未得與榮宴。" 宴罷, 上就琦問疾, 酉時還宮。 劉景謂琦曰: "嘗聞朝鮮之人知禮義, 今入其境, 果協所聞。 殿下學貫古今, 近代所無, 意謂君與殿下談論道理, 今病不起, 實爲缺望。" 琦曰: "我亦恨焉。"
-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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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6년 (1424)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