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24권, 세종 6년 5월 12일 丙戌 4/9 기사 /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영의정 유정현 등을 불러 중국인 장청 등의 본국 송환을 논의하다
국역
임금이 영의정 유정현(柳廷顯)·좌의정 이원(李原) 등을 불러서 말하기를,
"지난번에 중국 사람 장청(張淸)을 조정 논의에 따라 전주(全州)에 우거하게 하였으나, 내 마음에 몹시 미안(未安)했소. 경들은 깊이 생각하여서 말을 하오. 전번에 〈장청에게〉 관직을 주어서 사대 문서(事大文書)를 맡게 하라는 자가 있었소. 그러나 이 사람이 특별한 재능(才能)이 없고, 가령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이 사람의 힘을 입어서 사명(詞命)을 닦겠소. 우리 나라는 그전부터 왜(倭)에 포로(捕虜)되었던 중국 사람이 오면 모두 중국에 돌려보냈는데, 그 중에 우리 나라와 일본(日本)이 서로 통(通)하는 것을 자세하게 아는 자가 어찌 없었겠소마는, 〈중국에서〉 그냥두고 논란하지 않았거던, 유독 장청 등을 본국에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50보(步)로서 백보를 비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이 일을 시일이〉 늦도록 주문(奏聞)하지 않았음이 염려되오."
하니, 모두 말하기를,
"상교(上敎)가 옳습니다. 비록 늦어졌다 하더라도 보내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습니다. 또 돌려보낼 때에, 근래 조정에 말[馬]을 무역하는 일로써 사번(事煩)하므로 곧 돌려보내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박희중(朴熙中)이 왜에서 사가지고 온[買來] 중국 사람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박희중이 포로된 우리 나라 사람을 찾아오는 일로써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사가지고 왔다고 〈명나라에〉 주문(奏聞)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날 특별히 장청 등 남녀 12인을 소환(召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96면
- 【분류】외교-명(明)
원문
○上召領議政柳廷顯、左議政李原等曰: "往者唐人 張淸, 予以廷議, 使居全州, 於予心深以爲未安, 卿等深思熟慮言之。 頃有言授職, 俾任事大文書者, 然此人別無才能, 借曰有才, 何賴此人以修詞命乎? 我國自來, 被倭 漢人來到, 則皆還中國, 其中豈無備知我國與日本相通者, 置而勿論。 獨張淸等不還本土, 何異於五十步笑百步哉? 但以遲緩不奏爲慮。" 僉曰: "上敎善矣。 雖曰遲留, 猶愈於不送矣。 且於發還時, 近以朝廷易換馬事煩, 未卽發還爲言可矣。" 上曰: "然。" 又曰: "朴熙中買來唐人, 處之如何?" 僉曰: "朴熙中以我國被擄人推刷事, 奉使日本時, 買易而來, 奏聞爲可。" 是日, 特召還張淸等男女十二人。
- 【태백산사고본】 8책 2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96면
- 【분류】외교-명(明)
세종 6년 (1424) 5월 12일
국역
임금이 영의정 유정현(柳廷顯)·좌의정 이원(李原) 등을 불러서 말하기를,
"지난번에 중국 사람 장청(張淸)을 조정 논의에 따라 전주(全州)에 우거하게 하였으나, 내 마음에 몹시 미안(未安)했소. 경들은 깊이 생각하여서 말을 하오. 전번에 〈장청에게〉 관직을 주어서 사대 문서(事大文書)를 맡게 하라는 자가 있었소. 그러나 이 사람이 특별한 재능(才能)이 없고, 가령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이 사람의 힘을 입어서 사명(詞命)을 닦겠소. 우리 나라는 그전부터 왜(倭)에 포로(捕虜)되었던 중국 사람이 오면 모두 중국에 돌려보냈는데, 그 중에 우리 나라와 일본(日本)이 서로 통(通)하는 것을 자세하게 아는 자가 어찌 없었겠소마는, 〈중국에서〉 그냥두고 논란하지 않았거던, 유독 장청 등을 본국에 돌려보내지 않는 것은 50보(步)로서 백보를 비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이 일을 시일이〉 늦도록 주문(奏聞)하지 않았음이 염려되오."
하니, 모두 말하기를,
"상교(上敎)가 옳습니다. 비록 늦어졌다 하더라도 보내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습니다. 또 돌려보낼 때에, 근래 조정에 말[馬]을 무역하는 일로써 사번(事煩)하므로 곧 돌려보내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박희중(朴熙中)이 왜에서 사가지고 온[買來] 중국 사람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박희중이 포로된 우리 나라 사람을 찾아오는 일로써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사가지고 왔다고 〈명나라에〉 주문(奏聞)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날 특별히 장청 등 남녀 12인을 소환(召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96면
- 【분류】외교-명(明)
원문
○上召領議政柳廷顯、左議政李原等曰: "往者唐人 張淸, 予以廷議, 使居全州, 於予心深以爲未安, 卿等深思熟慮言之。 頃有言授職, 俾任事大文書者, 然此人別無才能, 借曰有才, 何賴此人以修詞命乎? 我國自來, 被倭 漢人來到, 則皆還中國, 其中豈無備知我國與日本相通者, 置而勿論。 獨張淸等不還本土, 何異於五十步笑百步哉? 但以遲緩不奏爲慮。" 僉曰: "上敎善矣。 雖曰遲留, 猶愈於不送矣。 且於發還時, 近以朝廷易換馬事煩, 未卽發還爲言可矣。" 上曰: "然。" 又曰: "朴熙中買來唐人, 處之如何?" 僉曰: "朴熙中以我國被擄人推刷事, 奉使日本時, 買易而來, 奏聞爲可。" 是日, 特召還張淸等男女十二人。
- 【태백산사고본】 8책 2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96면
- 【분류】외교-명(明)
원본
세종 6년 (1424)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