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21권, 세종 5년 8월 2일 庚戌 1/7 기사 /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이조 판서 허조가 중국측이 요구한 말 1만필을 5천필로 줄이도록 건의하다
국역
정사를 보았다. 여러 재상(宰相)들이 모두 나갔으나, 이조 판서 허조(許稠)·병조 판서 조말생은 그대로 남았다. 허조가 아뢰기를,
"양목탑올(楊木塔兀)은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이 없으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으니, 한번 격노(激怒)하면 이를 제어하기가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에서는 흉년이 겹쳐서 창고가 텅 비었으니, 혹시 뜻밖의 변이 있으면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서는, 지금의 안전을 위해서는 잠정적으로 주보(奏報)와 반래(搬來)를 정지하고 견제(牽制)하여 봄이 옳겠사오며, 비록 주문(奏聞)하지 않더라도 우리 편에는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주문(奏聞)은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허조는 또 아뢰기를,
"중국에서 지난해에 말을 1만 필을 청구하고 지금 또 1만 필을 청구하니, 본국(本國)의 말은 예전에 비하여 감소되고, 또 강장(强壯)하지도 못합니다. 지난날에는 사대부(士大夫)집에는 말이 두서너 필 이상이 있었고, 서민(庶民)들도 모두 충실한 말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인(士人)의 집에도 한 필에 지나지 못하고, 또한 모두 피약(疲弱)한데, 하물며 서민(庶民)이겠습니까. 군정(軍政)은 말보다 급한 것이 없는데, 충실한 말 2만필을 골라 바치게 되면, 이는 2만의 기병(騎兵)을 감소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이 일 때문에 신은 밤중에도 자지 않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태조께서, 고황제(高皇帝) 때에 말을 3, 4천 필을 바친 적이 없었으니, 신은 반을 감하기를 주청(奏淸)하여, 다만 5천 필만 바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부득이하여 다 바치게 된다면, 내년을 기다려 바치는 것이 옳겠습니다. 지금 황제의 모든 하는 일이 도리가 아닌 일이 많사온데, 북적(北狄)이 크게 소란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게 되면, 편소한 우리 나라로서 어떻게 그 한정 없는 요구에 응하겠습니까. 만일에 천명이 이미 다하여, 이 무리[北狄]들이 뜻대로 된다면, 끝까지 〈명나라에게〉 신하의 절개를 지킬 수 없사오니, 이를 계승한 나라도 반드시 이 수효로써 청구하기를 마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서는, 지금 주청(奏請)하여 감하지 않으면 만세의 걱정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말생도 또한 이 뜻으로써 아뢰었다. 〈이들이〉 이미 나가자, 임금이 육대언(六代言)과 더불어 이를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허조의 말은 깊이 생각하고 먼 앞일을 헤아린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전일에 말을 바칠 때에 의주(義州)가 피곤했었는데, 지금 또 흉년이 들어 사료 콩이 모자랄 형편이므로, 평안도 한 도가 폐해를 받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왕위에 오른 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황제의 총은(寵恩)이 이미 지극하니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원문
○庚戌/視事。 諸宰執皆出, 吏曹判書許稠、兵曹判書趙末生仍留。 稠進曰: "楊木塔兀人面獸心, 驍勇無比, 一有激怒, 制之甚難。 況我國家饑饉相仍, 倉庫虛竭, 脫有不虞, 將何以哉? 臣愚以爲, 爲今之計, 姑停奏報搬來之事, 使羈縻而已可也。 雖不奏聞, 無失於我。" 上曰: "不然。 今此奏聞不可緩也。" 稠又曰: "中國去年求馬一萬匹, 今又求一萬匹, 本國之馬比舊爲減, 又未强壯。 往時士大夫家有馬, 不下數匹, 庶民皆有實馬, 今士人之家不過一匹, 亦皆疲弱, 況庶民乎? 軍政莫急於馬, 而擇實馬二萬匹以獻, 則是減二萬騎兵也。 此臣所以中夜不寢而憂慮者也。 我太祖在高皇帝朝, 無獻馬三四千之時, 臣以爲奏請減半, 只進五千匹爲便。 不得已而畢獻, 則待來年而獻可也。 今皇帝凡所施爲, 多非有道之事。 北狄大亂, 征戰不已, 則以我國褊少, 其能應無已之求乎? 萬有天命已去, 此輩得志, 則不可終守臣節, 繼是必以此數徵之不已。 臣愚以爲, 今不奏減, 則萬世之患也。" 末生亦以此意啓之。 旣出, 上與六代言議之, 皆曰: "許稠之言可謂深慮遠計也。 且前者進馬之時, 義州疲困, 今又饑饉, 料豆渴乏, 平安一道受弊不淺。 然殿下卽位未久, 皇帝寵恩已極, 不可不從。"
세종실록21권, 세종 5년 8월 2일 庚戌 1/7 기사 /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이조 판서 허조가 중국측이 요구한 말 1만필을 5천필로 줄이도록 건의하다
국역
정사를 보았다. 여러 재상(宰相)들이 모두 나갔으나, 이조 판서 허조(許稠)·병조 판서 조말생은 그대로 남았다. 허조가 아뢰기를,
"양목탑올(楊木塔兀)은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이 없으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으니, 한번 격노(激怒)하면 이를 제어하기가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에서는 흉년이 겹쳐서 창고가 텅 비었으니, 혹시 뜻밖의 변이 있으면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서는, 지금의 안전을 위해서는 잠정적으로 주보(奏報)와 반래(搬來)를 정지하고 견제(牽制)하여 봄이 옳겠사오며, 비록 주문(奏聞)하지 않더라도 우리 편에는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주문(奏聞)은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허조는 또 아뢰기를,
"중국에서 지난해에 말을 1만 필을 청구하고 지금 또 1만 필을 청구하니, 본국(本國)의 말은 예전에 비하여 감소되고, 또 강장(强壯)하지도 못합니다. 지난날에는 사대부(士大夫)집에는 말이 두서너 필 이상이 있었고, 서민(庶民)들도 모두 충실한 말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인(士人)의 집에도 한 필에 지나지 못하고, 또한 모두 피약(疲弱)한데, 하물며 서민(庶民)이겠습니까. 군정(軍政)은 말보다 급한 것이 없는데, 충실한 말 2만필을 골라 바치게 되면, 이는 2만의 기병(騎兵)을 감소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이 일 때문에 신은 밤중에도 자지 않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태조께서, 고황제(高皇帝) 때에 말을 3, 4천 필을 바친 적이 없었으니, 신은 반을 감하기를 주청(奏淸)하여, 다만 5천 필만 바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부득이하여 다 바치게 된다면, 내년을 기다려 바치는 것이 옳겠습니다. 지금 황제의 모든 하는 일이 도리가 아닌 일이 많사온데, 북적(北狄)이 크게 소란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게 되면, 편소한 우리 나라로서 어떻게 그 한정 없는 요구에 응하겠습니까. 만일에 천명이 이미 다하여, 이 무리[北狄]들이 뜻대로 된다면, 끝까지 〈명나라에게〉 신하의 절개를 지킬 수 없사오니, 이를 계승한 나라도 반드시 이 수효로써 청구하기를 마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서는, 지금 주청(奏請)하여 감하지 않으면 만세의 걱정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말생도 또한 이 뜻으로써 아뢰었다. 〈이들이〉 이미 나가자, 임금이 육대언(六代言)과 더불어 이를 의논하니, 모두 아뢰기를,
"허조의 말은 깊이 생각하고 먼 앞일을 헤아린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전일에 말을 바칠 때에 의주(義州)가 피곤했었는데, 지금 또 흉년이 들어 사료 콩이 모자랄 형편이므로, 평안도 한 도가 폐해를 받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왕위에 오른 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황제의 총은(寵恩)이 이미 지극하니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원문
○庚戌/視事。 諸宰執皆出, 吏曹判書許稠、兵曹判書趙末生仍留。 稠進曰: "楊木塔兀人面獸心, 驍勇無比, 一有激怒, 制之甚難。 況我國家饑饉相仍, 倉庫虛竭, 脫有不虞, 將何以哉? 臣愚以爲, 爲今之計, 姑停奏報搬來之事, 使羈縻而已可也。 雖不奏聞, 無失於我。" 上曰: "不然。 今此奏聞不可緩也。" 稠又曰: "中國去年求馬一萬匹, 今又求一萬匹, 本國之馬比舊爲減, 又未强壯。 往時士大夫家有馬, 不下數匹, 庶民皆有實馬, 今士人之家不過一匹, 亦皆疲弱, 況庶民乎? 軍政莫急於馬, 而擇實馬二萬匹以獻, 則是減二萬騎兵也。 此臣所以中夜不寢而憂慮者也。 我太祖在高皇帝朝, 無獻馬三四千之時, 臣以爲奏請減半, 只進五千匹爲便。 不得已而畢獻, 則待來年而獻可也。 今皇帝凡所施爲, 多非有道之事。 北狄大亂, 征戰不已, 則以我國褊少, 其能應無已之求乎? 萬有天命已去, 此輩得志, 則不可終守臣節, 繼是必以此數徵之不已。 臣愚以爲, 今不奏減, 則萬世之患也。" 末生亦以此意啓之。 旣出, 上與六代言議之, 皆曰: "許稠之言可謂深慮遠計也。 且前者進馬之時, 義州疲困, 今又饑饉, 料豆渴乏, 平安一道受弊不淺。 然殿下卽位未久, 皇帝寵恩已極, 不可不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