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2권, 태종 16년 9월 25일 癸丑 1/1 기사 /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구종수는 경성군에 귀양보내고, 이오방은 공주 관노에 환속시키다
국역
구종수(具宗秀)는 장 1백 대를 때려 경성군(鏡城郡)에 귀양보내고, 이오방(李五方)은 1백 대를 때려 공주(公州) 관노(官奴)에 환속(還屬)시켰다.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서 이원(李原)·황희(黃喜)를 인견하고 구종수의 죄악과 세자의 행실을 교유(敎諭)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구종수의 한 짓이 응견(鷹犬)의 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하고, 또 ‘세자는 연소(年少)합니다. 세자는 연소합니다.’하고, 두 번씩이나 말하였다. 하윤(河崙)이 구종수의 일을 듣고, 예궐(詣闕)하니, 임금이 내전(內殿)에서 인견하였다. 임금이 말이 있기 전에 하윤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세자의 직책이 장차 종사(宗社)를 주관할 터인데, 지금 거칠고 음란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어찌하겠습니까? 마땅히 구종수를 베어 후래(後來)를 경계하고, 더욱 방금(防禁)을 더하여 난(亂)의 근원을 근절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 말에 감동하였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구종수가 궁성(宮城)을 넘었으니, 죄가 교형(絞刑)에 해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정부(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에 전지하기를,
"이 사람을 또한 삼복(三覆)을 기다린 뒤에 형을 집행할 것인가?"
하였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안등(安騰)이 아뢰기를,
"옥(獄)의 의심나는 것은 삼복(三覆)407) 을 기다려야 하지마는, 궁성을 넘어 들어간 것은 죄가 더 큰 것이 없으니, 무엇을 기다릴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여러 경(卿)들이 모두 안등의 말을 옳다고 하였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조금 있다가 대사헌(大司憲) 김여지(金汝知)와 좌사간(左司諫) 박수기(朴竪基) 등이 아뢰기를,
"구종수의 죄는 다시 의논할 것이 없으나, 궁성을 넘어 들어간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청컨대, 그 까닭을 국문한 연후에 죽이소서."
하였다. 이에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함께 출입한 자를 물었으나, 말이 세자에게 관련되므로 숨기고 다시 캐어 묻지 않았다. 그 어미가 신정(申呈)하여 사형을 용서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누(累)가 세자에게 미친다고 하여 말감(末減)408) 에 따라 장(杖) 1백 대와 도(徒) 3년에 처하여 경성(鏡城)으로 귀양보내고, 이오방은 장 1백 대를 때려서 본역(本役)에 따라서 역(役)을 정하였다.
- [註 407] 삼복(三覆) : 사죄(死罪)에 해당하는 죄인을 신중히 처결하기 위하여 세 차례나 거듭하여 죄상을 조사하던 법. 사죄 삼복법(死罪三覆法).
- [註 408] 말감(末減) : 죄를 감면하여 주던 것.
원문
○癸丑/杖具宗秀一百, 流于鏡城郡; 李五方一百, 還屬公州官奴。 上御便殿, 引見李原、黃喜, 諭以宗秀之惡、世子之行, 喜對曰: "宗秀所爲, 不過鷹犬之事耳。" 且再言世子年少、世子年少。 河崙聞宗秀之事詣闕, 上引見于內殿, 上未有所言, 崙垂淚啓曰: "世子之職, 將主宗社, 今荒淫至此, 奈何奈何? 宜斬宗秀, 以戒後來; 尤加防禁, 以絶亂源。" 上感其言。 義禁府啓: "宗秀越宮城, 罪當絞。" 上傳旨政府、六曹、臺諫曰: "此人亦待三覆, 然後行刑歟?" 刑曹判書安騰啓曰: "獄之疑者, 固待三覆, 越入宮城, 罪莫大焉, 何用待之?" 諸卿皆以騰言爲是, 上從之。 俄而, 大司憲金汝知、左司諫朴竪基等啓曰: "宗秀之罪則無有更議者焉, 其越入宮城, 必有以也。 請問其所以, 然後戮之。" 乃命義禁府, 問其同出入者, 以辭連世子, 故秘之, 不復究問。 其母申呈, 請貸其死, 上以累干世子, 從末減, 止杖一百、徒三年, 流于鏡城; 五方杖一百, 從本定役。
태종 16년 (1416) 9월 25일
국역
구종수(具宗秀)는 장 1백 대를 때려 경성군(鏡城郡)에 귀양보내고, 이오방(李五方)은 1백 대를 때려 공주(公州) 관노(官奴)에 환속(還屬)시켰다.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서 이원(李原)·황희(黃喜)를 인견하고 구종수의 죄악과 세자의 행실을 교유(敎諭)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구종수의 한 짓이 응견(鷹犬)의 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하고, 또 ‘세자는 연소(年少)합니다. 세자는 연소합니다.’하고, 두 번씩이나 말하였다. 하윤(河崙)이 구종수의 일을 듣고, 예궐(詣闕)하니, 임금이 내전(內殿)에서 인견하였다. 임금이 말이 있기 전에 하윤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세자의 직책이 장차 종사(宗社)를 주관할 터인데, 지금 거칠고 음란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어찌하겠습니까? 마땅히 구종수를 베어 후래(後來)를 경계하고, 더욱 방금(防禁)을 더하여 난(亂)의 근원을 근절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 말에 감동하였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구종수가 궁성(宮城)을 넘었으니, 죄가 교형(絞刑)에 해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정부(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에 전지하기를,
"이 사람을 또한 삼복(三覆)을 기다린 뒤에 형을 집행할 것인가?"
하였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안등(安騰)이 아뢰기를,
"옥(獄)의 의심나는 것은 삼복(三覆)407) 을 기다려야 하지마는, 궁성을 넘어 들어간 것은 죄가 더 큰 것이 없으니, 무엇을 기다릴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여러 경(卿)들이 모두 안등의 말을 옳다고 하였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조금 있다가 대사헌(大司憲) 김여지(金汝知)와 좌사간(左司諫) 박수기(朴竪基) 등이 아뢰기를,
"구종수의 죄는 다시 의논할 것이 없으나, 궁성을 넘어 들어간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청컨대, 그 까닭을 국문한 연후에 죽이소서."
하였다. 이에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함께 출입한 자를 물었으나, 말이 세자에게 관련되므로 숨기고 다시 캐어 묻지 않았다. 그 어미가 신정(申呈)하여 사형을 용서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누(累)가 세자에게 미친다고 하여 말감(末減)408) 에 따라 장(杖) 1백 대와 도(徒) 3년에 처하여 경성(鏡城)으로 귀양보내고, 이오방은 장 1백 대를 때려서 본역(本役)에 따라서 역(役)을 정하였다.
- [註 407] 삼복(三覆) : 사죄(死罪)에 해당하는 죄인을 신중히 처결하기 위하여 세 차례나 거듭하여 죄상을 조사하던 법. 사죄 삼복법(死罪三覆法).
- [註 408] 말감(末減) : 죄를 감면하여 주던 것.
원문
○癸丑/杖具宗秀一百, 流于鏡城郡; 李五方一百, 還屬公州官奴。 上御便殿, 引見李原、黃喜, 諭以宗秀之惡、世子之行, 喜對曰: "宗秀所爲, 不過鷹犬之事耳。" 且再言世子年少、世子年少。 河崙聞宗秀之事詣闕, 上引見于內殿, 上未有所言, 崙垂淚啓曰: "世子之職, 將主宗社, 今荒淫至此, 奈何奈何? 宜斬宗秀, 以戒後來; 尤加防禁, 以絶亂源。" 上感其言。 義禁府啓: "宗秀越宮城, 罪當絞。" 上傳旨政府、六曹、臺諫曰: "此人亦待三覆, 然後行刑歟?" 刑曹判書安騰啓曰: "獄之疑者, 固待三覆, 越入宮城, 罪莫大焉, 何用待之?" 諸卿皆以騰言爲是, 上從之。 俄而, 大司憲金汝知、左司諫朴竪基等啓曰: "宗秀之罪則無有更議者焉, 其越入宮城, 必有以也。 請問其所以, 然後戮之。" 乃命義禁府, 問其同出入者, 以辭連世子, 故秘之, 不復究問。 其母申呈, 請貸其死, 上以累干世子, 從末減, 止杖一百、徒三年, 流于鏡城; 五方杖一百, 從本定役。
원본
태종 16년 (1416)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