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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31권, 태종 16년 5월 20일 辛亥 6/8 기사 /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공신전·별사전·과전·사사전의 절반을 충청도 및 경상도에서 절급하다. 시폐에 관한 박은·구종지의 상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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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여 공신전(功臣田)·별사전(別賜田)·과전(科田)·사사전(寺社田)을 절반을 옮겨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 절급(折給)하고, 20결(結) 이하는 그전대로 두었다. 박은(朴訔)이 상서(上書)하였다.

"전조(前朝)의 말년에 전제(田制)가 크게 무너졌으나, 우리 태조(太祖)가 처음으로 사전(私田)을 혁파하여 전제(田制)를 정하고 과전(科田)과 공신전(功臣田)을 기내(畿內)에 한하여 주는 것이 《육전(六典)》에 실려 있어서, 영구한 항식(恒式)으로 되었습니다. 이제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경기의 백성이 조세의 납부를 괴로와하여서 한재(旱災)를 불렀다.’고 하고, 위의 항목의 전지(田地)의 한 반을 경기 이외에 옮겨 주도록 청하여, 그 의논이 이미 정하여졌습니다. 신은 그윽이 의혹하건대, 경기 안에 과전(科田)을 마련한 이래로 서울에 있으면서 조정을 모시는 집들이 모두 전조(田租)를 먹고 각각 그 집을 보전하여 왔고 소민(小民)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서로 자뢰(資賴)하여서 살아 왔고, 그리고 경기의 백성으로서 조세를 바치는 자들도 익숙하여져 보통으로 여겨온 지도 오래 되었는데, 어찌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여 재앙을 부르기에 이르를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만약 경기 밖으로 옮겨 준다면 오로지 성헌(成憲)에 이즈러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외(畿外)의 공전(公田)도 또한 앞으로 문란해질 것입니다. 또 그 왕래하면서 조세를 징수하고 수송하는 폐단과 잡물(雜物)을 무역하여 사고를 내는 시끄러움이 장차 오늘날보다 심함이 있을 것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신민(臣民)의 집에 조석의 끼니꺼리도 또 그전과 같지 못할 것입니다. 또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는 혹은 기수(氣數)210) 로 인연하기도 하고 혹은 인사(人事)로 인연하기도 하는데, 어느 세대마다 없은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성탕(成湯)은 7년의 가뭄을 만나자 다만 여섯 가지[六事]211) 를 자책(自責)하고 산천(山川)에 고했을 뿐이요, 일을 변경한 것이 있었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른바 기수(氣數)란 신(臣)이 아직 이해 못하는 바이나, 인사(人事)로써 본다면 이제 우리 전하께서 어질고 총명하고 효우(孝友)한 덕(德)이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의 일에 부지런한 정사가 지성에서 나오지만, 조금만 재변(災變)을 만나더라도 문득 스스로 경계하고 자책하니, 바로 성탕(成湯)이 한재(旱災)를 만나 자신을 책하던 마음이므로, 반드시 신이 감격(感格)하는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오늘날의 일을 간절히 생각하건대, 오늘날의 재앙은 허물이 신 등의 염치(廉恥)가 지극하지 못한 까닭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어찌 하여 한때의 재앙으로 만세의 성헌(成憲)을 고치려 합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를 깊이 생각하여, 장차 여러 신하가 받은 경기 안의 전지의 한 반을 경기 밖으로 옮겨 절급(折給)하여서, 기외(畿外)의 백성들이 이를 기뻐하고, 전지를 받은 자도 또 이를 기뻐하고, 서울에 사는 소민(小民)도 또 이를 기뻐하고,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도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가라앉게 된다면, 비록 성헌(成憲)을 고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하겠으나, 만약 옮겨 절급(折給)하여도 기외(畿外)의 백성이 기뻐하지 않고, 전지를 받은 자도 또 기뻐하지 않고, 서울에 사는 소민(小民)도 도 기뻐하지 않고, 그리고 수재(水災)·한재(旱災)도 또한 반드시 가라앉힐 수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가볍게 성헌(成憲)을 고쳐서 중외의 신민(臣民)의 새 원망을 부르겠습니까? 경기 백성의 구습에 따라서 수조(收租)의 법을 개정하기를 공전(公田)의 예와 같이 하여 거의 중외(中外)의 신민(臣民)의 소망을 잃지 않게 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가진 바 관견(管見) 한두 조건을 아울러 기록하여 삼가 아룁니다.

1. 우리 태조(太祖)가 즉위한 처음에 하교(下敎)하여 이르기를, ‘기인(其人)을 설치함은 스스로 그 책임도 있으나, 법이 오래 되고 폐단이 생겨서 노예와 같이 사역(使役)하니,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원수로 여김이 실로 많다. 금후로는 일체 모두 혁파하여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기인(其人)을 다시 세우고, 또 액수(額數)를 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얽매어 역사시키니, 원망과 괴로움이 더욱 심합니다. 오늘날 공처 노비(公處奴婢)를 10만으로 계산하는데, 어찌 양인(良人)을 가지고 강제로 천역(賤役)을 하게 하겠습니까? 원컨대, 기인(其人)을 태조의 하교(下敎)에 의하여 영구히 혁파하소서.

1. 노비의 소송은 털끝만큼이라도 국가에 이익되는 것은 없으나, 실로 감상(感傷)의 근본이 됩니다. 신이 갑오년(甲午年)에 변정(辨正)할 초기에 극력 진달(陳達)하였고, 또 을미년(乙未年)에 가뭄을 걱정할 때에도 거듭 고(告)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국가의 여민(黎民)212) 을 위한 계책으로 크게 노비의 제도를 정하여 감상(感傷)의 근원을 막는다면, 만세에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1. 오늘날 신서(臣庶)가 노비로 인하여 차원(嗟怨)213) 하는 정(情)도 또한 하령(下令)하여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혹은 아비가 죽고 어미와 아비의 노비를 다투는 자도 있어서 분개하며 원망하여 서로 소송하여 성상(聖上)의 교화에 누(累)를 끼치니, 원컨대, 율(律)에 의하여 엄격히 금지하소서. 그 관사(官司)에서 정상을 알고도 심리 판결한 경우에도 같이 죄를 주고, 만약 망부(亡夫)와 망처(亡妻)의 노비를 자식에게 불균등(不均等)하게 분배해 준 경우가 있어서, 부모가 죽은 뒤에 그 자식이 관가에 고하거든 평등하게 분배하고, 부모 생전에 감히 쟁단(爭端)을 일으키는 자는 불효(不孝)로 논하고 혹은 부모가 아직 분배하지 아니한 노비와 이미 분배한 노비는 합집(合執)214) 하고 거집(據執)215) 하여서 연한 내에 신정(申呈)하지 못했다고 핑계하고, 평등하게 분배하여 환급(還給)하기를 기껍게 여기지 아니하니, 형제가 서로 시기함이 항상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원컨대, 부모가 아직 분배하지 않은 노비와 이미 분배한 노비를 합집(合執)·거집(據執)하는 자는 연한에 구애하지 않고 심리 판결하도록 허락하소서.

1. 속공(屬公)한 노비로서 이미 관적(官籍)에 실려서 입역(立役)하고 공물(貢物)을 바치면 본주(本主)에게 관계되는 바가 없는데, 혹은 도망하고 혹은 물고(物故)한들 무슨 명문(明文)이 본주(本主)에게 있겠습니까? 근래에 강제로 본주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니, 대단히 불법하여 실로 화기(和氣)를 감상(感傷)하는 일단(一端)입니다. 원컨대, 속공(屬公)한 노비를 그 본주(本主)가 용은(容隱)하여 사용하다가 도망(逃亡)하거나 신고(身故)216) 한 것 이외에 용은(容隱)한 흔적이 없는 경우는 도망하거나 신고(身故)하거나 명문(明文)이 있고 없음을 논하지 말고 본주(本主)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지 말아서 여러 사람의 바람을 위로하소서.

1. 노비(奴婢)는 본래 양민(良民)이었으나 혹은 공천(公賤)이 되고 혹은 사천(私賤)이 되었으니, 그 유래가 오래 됩니다. 무릇 노비로서 공천(公賤)에 관계되는 자는 진실로 속공(屬公)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 공천(公賤)에 관계되지 않는데도 역사(役使)한 지 이미 오래 되어 사천(私賤)을 혹은 온전히 빼앗거나, 혹은 반탈(半奪)하여 갑오년(甲午年)에 새로 속공(屬公)한 경우는 그 수가 많지 않으니, 원컨대, 모두 환급(還給)하여서 잃어버린 자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전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구종지(具宗之)도 또한 상서(上書)하였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의 성헌(成憲)을 살펴서 영원히 허물이 없게 하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허물도 없고 실수도 없이 모두 옛 법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창업(創業)하고 수통(垂統)217) 하는 임금은 제도를 세우고 기강을 펴고, 세대(世代)를 이어서 백성에게 임하는 인주(人主)는 영성(盈盛)을 지키고 수성(守成)하였으며, 또 옛사람이 성법(成法)을 개혁함에는 이익이 백배가 아니면 감히 어지러이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대소 인원(大小人員)이 받은 과전(科田)을 반감(半減)하여 하삼도(下三道)에 옮겨 주는데, 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태조(太祖)의 성헌(成憲)을 다시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폐단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대저 경기의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바로 전주(田主)의 간활(奸猾)한 종들이 조세(租稅)를 거둘 즈음에 손(損)을 실(實)로 하여 중하게 거두어서 스스로 족하게 여기고, 공사(公私) 양편으로 계교하지 않으므로, 백성들의 수심과 원망이 끝이 없습니다. 이제 기강(紀綱)을 엄하게 세워서 그 폐단을 혁거(革去)하지 아니하고, 한갓 하도(下道)로 옮겨 주어 그 폐단을 혁거하고자 한다면, 전수(轉輸)하는 괴로움이 경기의 백성보다는 배가 될 것이요, 침어(侵漁)하는 폐단도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하도(下道)의 백성들도 또한 전하의 적자(赤子)인데, 어찌 피차(彼此)가 있겠습니까? 또 경기는 가까와서 보고 듣기가 쉬운데도 오히려 그 불법을 금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멀리 떨어진 하도(下道)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태조(太祖)의 전제(田制)를 고치지 말고, 답험(踏驗)할 때마다 각각 그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몸소 답험하여 손실(損實)을 분간(分揀)하여 행심기(行審記)218) 를 성급(成給)하게 하소서. 또 수조(收租)하는 법도 아울러 일찍이 내린 교금(敎禁) 조건(條件)에 의하여 시행한다면 거의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갑오년(甲午年)에 변정 도감(辨正都監)을 설치하니, 한년(限年)을 물론하고 쟁송(爭訟)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일득일실(一得一失)로 원망하는 자가 태반이었습니다. 무릇 인정(人情)은 얻은 경우에 기쁨은 얕고 잃은 경우에 원망은 깊은 법입니다. 신은 그윽이 갑오년(甲午年)과 을미년(乙未年)의 한재(旱災)가 혹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일까 생각합니다. 이제 또 쇄권색(刷卷色)219) 을 설치하여 무진년간(戊辰年間)에 주살(誅殺)당한 인원(人員)이 증여(贈與)받은 노비를 그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아울러 입역(立役)하게 하는데, 신이 가만히 그 형세를 관찰하건대, 혹은 신고(身故)220) 하였는데도 명문(明文)이 없는 경우가 있으며, 혹은 도망하였는데도 아직 추고(推考)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당자가 있어서 입역(立役)하는 것은 진실로 가하다고 하겠으나, 만약 당자가 사망하거나 도망 중에 있는데도 남을 빌려 입역(立役)하게 되면 그 원망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무진년간(戊辰年間)에 증여(贈與)한 노비 가운데 재주(財主)221) 로서 자식(子息)이 없이 이미 물고(物故)한 자의 노비를 아직 추고(推考)하지 못한 것은 모두 다른 노비를 전득(傳得)한 자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니, 노비를 전득(傳得)222) 한 자가 어찌 공력이 없이 이를 얻었겠습니까? 무진년(戊辰年) 이래로 단지 증여(贈與)한 명문(明文)만 있고 당자가 입역(立役)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울러 추고하지 말아서 원통하고 억울함을 펴게 하고, 또 쇄권색(刷卷色)을 가을걷이를 기다리지 말고 풍년을 기다려서 백성의 소망을 이루게 하소서."

임금이 이를 보고 말하였다.

"박은(朴訔) 등이 올린 상서(上書)는 이해(利害)를 극진히 진달(陳達)하였으니 바로 내 뜻에 합한다. 또 박은은 동맹(同盟)하여 사직(社稷)과 휴척(休戚)을 같이 하니, 이를 말함이 당연하다. 구종지(具宗之)는 동맹(同盟)하지 아니하고도 또한 이를 말하니 가상하다 하겠다. 비록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그르다.’고 하겠는가? 그가 말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의정부·육조(六曹)·대간(臺諫)에 전지(傳旨)하였다.

"경기 과전(科田)의 법은 태조의 성헌(成憲)이니 가볍게 고칠 수가 없다."

  • [註 210] 기수(氣數) : 길흉화복의 운수.
  • [註 211] 옛날에 성탕(成湯)은 7년의 가뭄을 만나자 다만 여섯 가지[六事] : 성탕(成湯)이 즉위하니, 7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으므로 스스로 재계(齋戒)하고 희생이 되어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꾸짖었는데, "제가 정치에 절제(節制)가 없어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백성이 직업을 잃고 곤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까? 제 궁전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입니까? 여알(女謁)이 성하여 정치가 공정하지 못한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정도(正道)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참소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 하니, 천 리에 구름이 모여들어 수천 리의 땅을 적시었다는 고사.
  • [註 212] 여민(黎民) : 일반 백성.
  • [註 213] 차원(嗟怨) : 한탄하고 원망함.
  • [註 214] 합집(合執) :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할 노비(奴婢)를 한 사람이 모조리 차지하는 것.
  • [註 215] 거집(據執) : 거짓 문서(文書)를 꾸며서 남의 노비를 강제로 차지하여 사역시키는 것.
  • [註 216] 신고(身故) : 몸이 죽는 것.
  • [註 217] 수통(垂統) : 왕통을 드리움.
  • [註 218] 행심기(行審記) : 수령(守令)이 직접 전지(田地)의 연사(年事)를 손실 답험(損實踏驗)하여 그 등급을 매긴 기록.
  • [註 219] 쇄권색(刷卷色) : 노비(奴婢)를 추쇄(推刷)하던 관아.
  • [註 220] 신고(身故) : 사망.
  • [註 221] 재주(財主) : 임자.
  • [註 222] 전득(傳得) : 전하여 얻음.

원문

○命以功臣田、別賜田、科田、寺社田爲半, 移折給於忠淸、慶尙、全羅道, 二十結以下仍舊。 朴訔上書曰:

前朝之季, 田制大壞, 我太祖首革私田, 以定田制, 科田、功臣田, 止於畿內給之, 載在《六典》, 永爲恒式。 今議者曰: "京圻之民苦於納租, 以致旱災。" 請將上項田一半, 移給圻外, 其議已定, 臣竊惑焉。 自置圻內科田以來, 在京侍朝之家, 皆食田租, 各保其家, 至於小民, 亦得相資以生, 而圻民之納租者, 習以爲常久矣。 何至有傷和致災之道乎? 今若移給畿外, 則非唯有虧於成憲, 畿外公田, 亦將紊亂矣。 又其往來徵租輸轉之弊、雜物貿易生事之擾, 將有甚於今日, 而在京臣民之家朝夕之資, 又不如舊矣。

且水旱之災, 或因氣數, 或因人事, 無世無之。 昔成湯遇七年之旱, 唯以六事自責, 告于山川而已, 未聞有所變更之事也。 所謂氣數則臣所未解。 以人事觀之, 則今我殿下仁明孝友之德, 卓冠千古, 而敬天勤民之政, 出於至誠, 少遭災變, 輒自警責, 卽成湯遇旱責躬之心也, 必有感格之應矣。 臣竊意, 今日之事、今日之災, 咎在臣等廉恥不至故耳。 奈何以一時之災, 欲改萬世之成憲哉? 願殿下深思之。

今將群臣所受畿內之田, 一半移給畿外, 而畿外之民悅之, 受田者又悅之, 居京小民又悅之, 水旱之災, 必由此而弭, 則雖改成憲而爲之可也, 若移給之而畿外之民不悅, 受田者又不悅, 居京小民又不悅, 而水旱之災, 亦未可必弭, 則何由而輕改成憲, 以召中外臣民之新怨乎? 不如因畿民之舊習, 而更定收租之法如公田例, 則庶不失中外臣民之望矣。 所有管見一二條件, 竝錄謹啓。

一, 我太祖卽位之初, 下敎謂: "其人之設, 自有其任, 法久弊生, 役使如奴隷, 不堪其苦, 怨讎實多。 今後一皆罷去。" 厥後復立其人, 又加其額, 迄今拘役, 怨苦尤甚。 今公處奴婢計以十萬, 何用良人勒令賤役乎? 願其人依太祖之敎, 永罷之。

一, 奴婢之訟, 無毫髮之益於國家, 而實爲感傷之本也。 臣於甲午年, 辨正之初極陳之, 又於乙未年, 憂旱之時再告之。 伏望殿下, 爲國家黎民之計, 大定奴婢之制, 以塞感傷之源, 萬世幸甚。

一, 今日臣庶因奴婢嗟怨之情, 亦望下令和解之。 或有父亡而與母爭父之奴婢者, 憤怨相訟, 有累聖化。 願依律痛禁, 其官司知情聽決者, 與同罪。 若將亡夫、亡妻奴婢, 於子息不均分給者, 父母身後, 其子息告官平分, 父母生前, 敢生爭端者, 以不孝論。 或有父母未分奴婢及已分奴婢, 合執據執, 以年限未呈爲辭, 而不肯平分還給, 兄弟相猜, 恒由於此。 願父母未分奴婢及已分奴婢, 合執據執者, 不拘年限, 許令聽決。

一, 屬公奴婢, 旣載官籍, 而立役納貢, 則於本主無所干攝矣。 或逃或故, 有何明文於本主乎? 近來勒令本主代立, 甚爲無法, 實感傷和氣之一端也。 願屬公奴婢, 其本主容隱使用, 而逃亡身故者外, 無容隱之跡者, 不論逃亡、身故明文有無, 勿令本主代立, 以慰衆望。

一, 奴婢本是良民, 或爲公賤、或爲私賤, 其來久矣。 凡奴婢干於公賤者, 固宜屬公也, 其不干於公賤, 而役使已久私賤, 或專奪或半奪, 甲午年新屬公者, 其數不多, 願皆還給, 以慰失者之望。

前京畿都觀察使具宗之亦上書曰:

《書》曰: "監于先王成憲, 其永無愆。" 《詩》曰: "不愆不忘, 率由舊章。" 是故, 創業垂統之君, 立經陳紀; 繼世莅民之主, 持盈守成。 且古人革成法, 利非百倍, 不敢紛更。 今也大小人員所受科田, 減半移給於下三道, 臣竊惟不唯更改太祖之成憲, 弊有可言者矣。 夫畿民致怨者, 正由田主奸猾之奴收租之際, 以損爲實, 重斂而自足, 不以公私兩便爲計, 民之愁怨, 無有紀極。 今不嚴立紀綱, 以革其弊, 而徒移給於下道, 欲革其弊, 則轉輸之苦, 倍於畿民; 侵漁之弊, 亦不可勝言。 如是則下道之民亦殿下之赤子也, 豈有彼此哉? 且京畿近而易於視聽, 尙不能禁其不法, 況下道之遐隔乎? 伏望殿下, 毋更太祖田制, 每於踏驗之際, 各其守令, 身親踏驗, 損實分揀, 行審記成給。 且收租之法, 竝依曾降敎禁條件施行, 則庶幾無弊矣。

去甲午年, 設辨正都監, 勿論限年, 而爭訟蜂起, 一得一失, 怨者太半。 凡人情得之者喜淺, 失之者怨深, 臣竊恐甲午、乙未之旱, 或由於此。 今又設刷卷色, 於戊辰年間被誅人員受贈奴婢, 使其子孫竝令立役。 臣竊觀其勢, 或有身故而無明文者; 或有在逃而未推焉。 身在而立役, 則誠云可也, 儻有身死、在逃, 而借人立役, 則其怨可勝言哉? 且戊辰年間贈與奴婢內, 財主無子息, 已曾物故者之奴婢未推, 則皆令他奴婢傳得者代立, 奴婢傳得者, 豈無功而得之歟? 戊辰年以來, 只有贈與明文, 而身不立役者, 竝令勿推, 以伸冤抑。 且刷卷色勿待秋成, 以俟年豐, 以孚民望。

上覽之曰: "訔等所上書, 極陳利害, 正合予意。 且訔同盟, 與社稷同休戚, 言之當矣; 宗之非同盟, 亦言之可嘉。 雖勿言, 孰曰非乎? 其言之, 所以愛予也。" 命趙末生傳旨于議政府、六曹、臺諫曰: "京畿科田之法, 太祖成憲, 不可輕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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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31권, 태종 16년 5월 20일 辛亥 6/8 기사 /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공신전·별사전·과전·사사전의 절반을 충청도 및 경상도에서 절급하다. 시폐에 관한 박은·구종지의 상서문

국역

명하여 공신전(功臣田)·별사전(別賜田)·과전(科田)·사사전(寺社田)을 절반을 옮겨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 절급(折給)하고, 20결(結) 이하는 그전대로 두었다. 박은(朴訔)이 상서(上書)하였다.

"전조(前朝)의 말년에 전제(田制)가 크게 무너졌으나, 우리 태조(太祖)가 처음으로 사전(私田)을 혁파하여 전제(田制)를 정하고 과전(科田)과 공신전(功臣田)을 기내(畿內)에 한하여 주는 것이 《육전(六典)》에 실려 있어서, 영구한 항식(恒式)으로 되었습니다. 이제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경기의 백성이 조세의 납부를 괴로와하여서 한재(旱災)를 불렀다.’고 하고, 위의 항목의 전지(田地)의 한 반을 경기 이외에 옮겨 주도록 청하여, 그 의논이 이미 정하여졌습니다. 신은 그윽이 의혹하건대, 경기 안에 과전(科田)을 마련한 이래로 서울에 있으면서 조정을 모시는 집들이 모두 전조(田租)를 먹고 각각 그 집을 보전하여 왔고 소민(小民)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서로 자뢰(資賴)하여서 살아 왔고, 그리고 경기의 백성으로서 조세를 바치는 자들도 익숙하여져 보통으로 여겨온 지도 오래 되었는데, 어찌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여 재앙을 부르기에 이르를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만약 경기 밖으로 옮겨 준다면 오로지 성헌(成憲)에 이즈러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외(畿外)의 공전(公田)도 또한 앞으로 문란해질 것입니다. 또 그 왕래하면서 조세를 징수하고 수송하는 폐단과 잡물(雜物)을 무역하여 사고를 내는 시끄러움이 장차 오늘날보다 심함이 있을 것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신민(臣民)의 집에 조석의 끼니꺼리도 또 그전과 같지 못할 것입니다. 또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는 혹은 기수(氣數)210) 로 인연하기도 하고 혹은 인사(人事)로 인연하기도 하는데, 어느 세대마다 없은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성탕(成湯)은 7년의 가뭄을 만나자 다만 여섯 가지[六事]211) 를 자책(自責)하고 산천(山川)에 고했을 뿐이요, 일을 변경한 것이 있었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른바 기수(氣數)란 신(臣)이 아직 이해 못하는 바이나, 인사(人事)로써 본다면 이제 우리 전하께서 어질고 총명하고 효우(孝友)한 덕(德)이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의 일에 부지런한 정사가 지성에서 나오지만, 조금만 재변(災變)을 만나더라도 문득 스스로 경계하고 자책하니, 바로 성탕(成湯)이 한재(旱災)를 만나 자신을 책하던 마음이므로, 반드시 신이 감격(感格)하는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오늘날의 일을 간절히 생각하건대, 오늘날의 재앙은 허물이 신 등의 염치(廉恥)가 지극하지 못한 까닭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어찌 하여 한때의 재앙으로 만세의 성헌(成憲)을 고치려 합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를 깊이 생각하여, 장차 여러 신하가 받은 경기 안의 전지의 한 반을 경기 밖으로 옮겨 절급(折給)하여서, 기외(畿外)의 백성들이 이를 기뻐하고, 전지를 받은 자도 또 이를 기뻐하고, 서울에 사는 소민(小民)도 또 이를 기뻐하고,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도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가라앉게 된다면, 비록 성헌(成憲)을 고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하겠으나, 만약 옮겨 절급(折給)하여도 기외(畿外)의 백성이 기뻐하지 않고, 전지를 받은 자도 또 기뻐하지 않고, 서울에 사는 소민(小民)도 도 기뻐하지 않고, 그리고 수재(水災)·한재(旱災)도 또한 반드시 가라앉힐 수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가볍게 성헌(成憲)을 고쳐서 중외의 신민(臣民)의 새 원망을 부르겠습니까? 경기 백성의 구습에 따라서 수조(收租)의 법을 개정하기를 공전(公田)의 예와 같이 하여 거의 중외(中外)의 신민(臣民)의 소망을 잃지 않게 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가진 바 관견(管見) 한두 조건을 아울러 기록하여 삼가 아룁니다.

1. 우리 태조(太祖)가 즉위한 처음에 하교(下敎)하여 이르기를, ‘기인(其人)을 설치함은 스스로 그 책임도 있으나, 법이 오래 되고 폐단이 생겨서 노예와 같이 사역(使役)하니,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원수로 여김이 실로 많다. 금후로는 일체 모두 혁파하여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기인(其人)을 다시 세우고, 또 액수(額數)를 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얽매어 역사시키니, 원망과 괴로움이 더욱 심합니다. 오늘날 공처 노비(公處奴婢)를 10만으로 계산하는데, 어찌 양인(良人)을 가지고 강제로 천역(賤役)을 하게 하겠습니까? 원컨대, 기인(其人)을 태조의 하교(下敎)에 의하여 영구히 혁파하소서.

1. 노비의 소송은 털끝만큼이라도 국가에 이익되는 것은 없으나, 실로 감상(感傷)의 근본이 됩니다. 신이 갑오년(甲午年)에 변정(辨正)할 초기에 극력 진달(陳達)하였고, 또 을미년(乙未年)에 가뭄을 걱정할 때에도 거듭 고(告)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국가의 여민(黎民)212) 을 위한 계책으로 크게 노비의 제도를 정하여 감상(感傷)의 근원을 막는다면, 만세에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1. 오늘날 신서(臣庶)가 노비로 인하여 차원(嗟怨)213) 하는 정(情)도 또한 하령(下令)하여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혹은 아비가 죽고 어미와 아비의 노비를 다투는 자도 있어서 분개하며 원망하여 서로 소송하여 성상(聖上)의 교화에 누(累)를 끼치니, 원컨대, 율(律)에 의하여 엄격히 금지하소서. 그 관사(官司)에서 정상을 알고도 심리 판결한 경우에도 같이 죄를 주고, 만약 망부(亡夫)와 망처(亡妻)의 노비를 자식에게 불균등(不均等)하게 분배해 준 경우가 있어서, 부모가 죽은 뒤에 그 자식이 관가에 고하거든 평등하게 분배하고, 부모 생전에 감히 쟁단(爭端)을 일으키는 자는 불효(不孝)로 논하고 혹은 부모가 아직 분배하지 아니한 노비와 이미 분배한 노비는 합집(合執)214) 하고 거집(據執)215) 하여서 연한 내에 신정(申呈)하지 못했다고 핑계하고, 평등하게 분배하여 환급(還給)하기를 기껍게 여기지 아니하니, 형제가 서로 시기함이 항상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원컨대, 부모가 아직 분배하지 않은 노비와 이미 분배한 노비를 합집(合執)·거집(據執)하는 자는 연한에 구애하지 않고 심리 판결하도록 허락하소서.

1. 속공(屬公)한 노비로서 이미 관적(官籍)에 실려서 입역(立役)하고 공물(貢物)을 바치면 본주(本主)에게 관계되는 바가 없는데, 혹은 도망하고 혹은 물고(物故)한들 무슨 명문(明文)이 본주(本主)에게 있겠습니까? 근래에 강제로 본주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니, 대단히 불법하여 실로 화기(和氣)를 감상(感傷)하는 일단(一端)입니다. 원컨대, 속공(屬公)한 노비를 그 본주(本主)가 용은(容隱)하여 사용하다가 도망(逃亡)하거나 신고(身故)216) 한 것 이외에 용은(容隱)한 흔적이 없는 경우는 도망하거나 신고(身故)하거나 명문(明文)이 있고 없음을 논하지 말고 본주(本主)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지 말아서 여러 사람의 바람을 위로하소서.

1. 노비(奴婢)는 본래 양민(良民)이었으나 혹은 공천(公賤)이 되고 혹은 사천(私賤)이 되었으니, 그 유래가 오래 됩니다. 무릇 노비로서 공천(公賤)에 관계되는 자는 진실로 속공(屬公)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 공천(公賤)에 관계되지 않는데도 역사(役使)한 지 이미 오래 되어 사천(私賤)을 혹은 온전히 빼앗거나, 혹은 반탈(半奪)하여 갑오년(甲午年)에 새로 속공(屬公)한 경우는 그 수가 많지 않으니, 원컨대, 모두 환급(還給)하여서 잃어버린 자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전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 구종지(具宗之)도 또한 상서(上書)하였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의 성헌(成憲)을 살펴서 영원히 허물이 없게 하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허물도 없고 실수도 없이 모두 옛 법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창업(創業)하고 수통(垂統)217) 하는 임금은 제도를 세우고 기강을 펴고, 세대(世代)를 이어서 백성에게 임하는 인주(人主)는 영성(盈盛)을 지키고 수성(守成)하였으며, 또 옛사람이 성법(成法)을 개혁함에는 이익이 백배가 아니면 감히 어지러이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대소 인원(大小人員)이 받은 과전(科田)을 반감(半減)하여 하삼도(下三道)에 옮겨 주는데, 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태조(太祖)의 성헌(成憲)을 다시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폐단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대저 경기의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바로 전주(田主)의 간활(奸猾)한 종들이 조세(租稅)를 거둘 즈음에 손(損)을 실(實)로 하여 중하게 거두어서 스스로 족하게 여기고, 공사(公私) 양편으로 계교하지 않으므로, 백성들의 수심과 원망이 끝이 없습니다. 이제 기강(紀綱)을 엄하게 세워서 그 폐단을 혁거(革去)하지 아니하고, 한갓 하도(下道)로 옮겨 주어 그 폐단을 혁거하고자 한다면, 전수(轉輸)하는 괴로움이 경기의 백성보다는 배가 될 것이요, 침어(侵漁)하는 폐단도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하도(下道)의 백성들도 또한 전하의 적자(赤子)인데, 어찌 피차(彼此)가 있겠습니까? 또 경기는 가까와서 보고 듣기가 쉬운데도 오히려 그 불법을 금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멀리 떨어진 하도(下道)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태조(太祖)의 전제(田制)를 고치지 말고, 답험(踏驗)할 때마다 각각 그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몸소 답험하여 손실(損實)을 분간(分揀)하여 행심기(行審記)218) 를 성급(成給)하게 하소서. 또 수조(收租)하는 법도 아울러 일찍이 내린 교금(敎禁) 조건(條件)에 의하여 시행한다면 거의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갑오년(甲午年)에 변정 도감(辨正都監)을 설치하니, 한년(限年)을 물론하고 쟁송(爭訟)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일득일실(一得一失)로 원망하는 자가 태반이었습니다. 무릇 인정(人情)은 얻은 경우에 기쁨은 얕고 잃은 경우에 원망은 깊은 법입니다. 신은 그윽이 갑오년(甲午年)과 을미년(乙未年)의 한재(旱災)가 혹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일까 생각합니다. 이제 또 쇄권색(刷卷色)219) 을 설치하여 무진년간(戊辰年間)에 주살(誅殺)당한 인원(人員)이 증여(贈與)받은 노비를 그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아울러 입역(立役)하게 하는데, 신이 가만히 그 형세를 관찰하건대, 혹은 신고(身故)220) 하였는데도 명문(明文)이 없는 경우가 있으며, 혹은 도망하였는데도 아직 추고(推考)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당자가 있어서 입역(立役)하는 것은 진실로 가하다고 하겠으나, 만약 당자가 사망하거나 도망 중에 있는데도 남을 빌려 입역(立役)하게 되면 그 원망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무진년간(戊辰年間)에 증여(贈與)한 노비 가운데 재주(財主)221) 로서 자식(子息)이 없이 이미 물고(物故)한 자의 노비를 아직 추고(推考)하지 못한 것은 모두 다른 노비를 전득(傳得)한 자로 하여금 대신 입역(立役)하게 하니, 노비를 전득(傳得)222) 한 자가 어찌 공력이 없이 이를 얻었겠습니까? 무진년(戊辰年) 이래로 단지 증여(贈與)한 명문(明文)만 있고 당자가 입역(立役)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울러 추고하지 말아서 원통하고 억울함을 펴게 하고, 또 쇄권색(刷卷色)을 가을걷이를 기다리지 말고 풍년을 기다려서 백성의 소망을 이루게 하소서."

임금이 이를 보고 말하였다.

"박은(朴訔) 등이 올린 상서(上書)는 이해(利害)를 극진히 진달(陳達)하였으니 바로 내 뜻에 합한다. 또 박은은 동맹(同盟)하여 사직(社稷)과 휴척(休戚)을 같이 하니, 이를 말함이 당연하다. 구종지(具宗之)는 동맹(同盟)하지 아니하고도 또한 이를 말하니 가상하다 하겠다. 비록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그르다.’고 하겠는가? 그가 말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의정부·육조(六曹)·대간(臺諫)에 전지(傳旨)하였다.

"경기 과전(科田)의 법은 태조의 성헌(成憲)이니 가볍게 고칠 수가 없다."

  • [註 210] 기수(氣數) : 길흉화복의 운수.
  • [註 211] 옛날에 성탕(成湯)은 7년의 가뭄을 만나자 다만 여섯 가지[六事] : 성탕(成湯)이 즉위하니, 7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으므로 스스로 재계(齋戒)하고 희생이 되어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꾸짖었는데, "제가 정치에 절제(節制)가 없어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백성이 직업을 잃고 곤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까? 제 궁전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입니까? 여알(女謁)이 성하여 정치가 공정하지 못한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정도(正道)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참소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 하니, 천 리에 구름이 모여들어 수천 리의 땅을 적시었다는 고사.
  • [註 212] 여민(黎民) : 일반 백성.
  • [註 213] 차원(嗟怨) : 한탄하고 원망함.
  • [註 214] 합집(合執) :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할 노비(奴婢)를 한 사람이 모조리 차지하는 것.
  • [註 215] 거집(據執) : 거짓 문서(文書)를 꾸며서 남의 노비를 강제로 차지하여 사역시키는 것.
  • [註 216] 신고(身故) : 몸이 죽는 것.
  • [註 217] 수통(垂統) : 왕통을 드리움.
  • [註 218] 행심기(行審記) : 수령(守令)이 직접 전지(田地)의 연사(年事)를 손실 답험(損實踏驗)하여 그 등급을 매긴 기록.
  • [註 219] 쇄권색(刷卷色) : 노비(奴婢)를 추쇄(推刷)하던 관아.
  • [註 220] 신고(身故) : 사망.
  • [註 221] 재주(財主) : 임자.
  • [註 222] 전득(傳得) : 전하여 얻음.

원문

○命以功臣田、別賜田、科田、寺社田爲半, 移折給於忠淸、慶尙、全羅道, 二十結以下仍舊。 朴訔上書曰:

前朝之季, 田制大壞, 我太祖首革私田, 以定田制, 科田、功臣田, 止於畿內給之, 載在《六典》, 永爲恒式。 今議者曰: "京圻之民苦於納租, 以致旱災。" 請將上項田一半, 移給圻外, 其議已定, 臣竊惑焉。 自置圻內科田以來, 在京侍朝之家, 皆食田租, 各保其家, 至於小民, 亦得相資以生, 而圻民之納租者, 習以爲常久矣。 何至有傷和致災之道乎? 今若移給畿外, 則非唯有虧於成憲, 畿外公田, 亦將紊亂矣。 又其往來徵租輸轉之弊、雜物貿易生事之擾, 將有甚於今日, 而在京臣民之家朝夕之資, 又不如舊矣。

且水旱之災, 或因氣數, 或因人事, 無世無之。 昔成湯遇七年之旱, 唯以六事自責, 告于山川而已, 未聞有所變更之事也。 所謂氣數則臣所未解。 以人事觀之, 則今我殿下仁明孝友之德, 卓冠千古, 而敬天勤民之政, 出於至誠, 少遭災變, 輒自警責, 卽成湯遇旱責躬之心也, 必有感格之應矣。 臣竊意, 今日之事、今日之災, 咎在臣等廉恥不至故耳。 奈何以一時之災, 欲改萬世之成憲哉? 願殿下深思之。

今將群臣所受畿內之田, 一半移給畿外, 而畿外之民悅之, 受田者又悅之, 居京小民又悅之, 水旱之災, 必由此而弭, 則雖改成憲而爲之可也, 若移給之而畿外之民不悅, 受田者又不悅, 居京小民又不悅, 而水旱之災, 亦未可必弭, 則何由而輕改成憲, 以召中外臣民之新怨乎? 不如因畿民之舊習, 而更定收租之法如公田例, 則庶不失中外臣民之望矣。 所有管見一二條件, 竝錄謹啓。

一, 我太祖卽位之初, 下敎謂: "其人之設, 自有其任, 法久弊生, 役使如奴隷, 不堪其苦, 怨讎實多。 今後一皆罷去。" 厥後復立其人, 又加其額, 迄今拘役, 怨苦尤甚。 今公處奴婢計以十萬, 何用良人勒令賤役乎? 願其人依太祖之敎, 永罷之。

一, 奴婢之訟, 無毫髮之益於國家, 而實爲感傷之本也。 臣於甲午年, 辨正之初極陳之, 又於乙未年, 憂旱之時再告之。 伏望殿下, 爲國家黎民之計, 大定奴婢之制, 以塞感傷之源, 萬世幸甚。

一, 今日臣庶因奴婢嗟怨之情, 亦望下令和解之。 或有父亡而與母爭父之奴婢者, 憤怨相訟, 有累聖化。 願依律痛禁, 其官司知情聽決者, 與同罪。 若將亡夫、亡妻奴婢, 於子息不均分給者, 父母身後, 其子息告官平分, 父母生前, 敢生爭端者, 以不孝論。 或有父母未分奴婢及已分奴婢, 合執據執, 以年限未呈爲辭, 而不肯平分還給, 兄弟相猜, 恒由於此。 願父母未分奴婢及已分奴婢, 合執據執者, 不拘年限, 許令聽決。

一, 屬公奴婢, 旣載官籍, 而立役納貢, 則於本主無所干攝矣。 或逃或故, 有何明文於本主乎? 近來勒令本主代立, 甚爲無法, 實感傷和氣之一端也。 願屬公奴婢, 其本主容隱使用, 而逃亡身故者外, 無容隱之跡者, 不論逃亡、身故明文有無, 勿令本主代立, 以慰衆望。

一, 奴婢本是良民, 或爲公賤、或爲私賤, 其來久矣。 凡奴婢干於公賤者, 固宜屬公也, 其不干於公賤, 而役使已久私賤, 或專奪或半奪, 甲午年新屬公者, 其數不多, 願皆還給, 以慰失者之望。

前京畿都觀察使具宗之亦上書曰:

《書》曰: "監于先王成憲, 其永無愆。" 《詩》曰: "不愆不忘, 率由舊章。" 是故, 創業垂統之君, 立經陳紀; 繼世莅民之主, 持盈守成。 且古人革成法, 利非百倍, 不敢紛更。 今也大小人員所受科田, 減半移給於下三道, 臣竊惟不唯更改太祖之成憲, 弊有可言者矣。 夫畿民致怨者, 正由田主奸猾之奴收租之際, 以損爲實, 重斂而自足, 不以公私兩便爲計, 民之愁怨, 無有紀極。 今不嚴立紀綱, 以革其弊, 而徒移給於下道, 欲革其弊, 則轉輸之苦, 倍於畿民; 侵漁之弊, 亦不可勝言。 如是則下道之民亦殿下之赤子也, 豈有彼此哉? 且京畿近而易於視聽, 尙不能禁其不法, 況下道之遐隔乎? 伏望殿下, 毋更太祖田制, 每於踏驗之際, 各其守令, 身親踏驗, 損實分揀, 行審記成給。 且收租之法, 竝依曾降敎禁條件施行, 則庶幾無弊矣。

去甲午年, 設辨正都監, 勿論限年, 而爭訟蜂起, 一得一失, 怨者太半。 凡人情得之者喜淺, 失之者怨深, 臣竊恐甲午、乙未之旱, 或由於此。 今又設刷卷色, 於戊辰年間被誅人員受贈奴婢, 使其子孫竝令立役。 臣竊觀其勢, 或有身故而無明文者; 或有在逃而未推焉。 身在而立役, 則誠云可也, 儻有身死、在逃, 而借人立役, 則其怨可勝言哉? 且戊辰年間贈與奴婢內, 財主無子息, 已曾物故者之奴婢未推, 則皆令他奴婢傳得者代立, 奴婢傳得者, 豈無功而得之歟? 戊辰年以來, 只有贈與明文, 而身不立役者, 竝令勿推, 以伸冤抑。 且刷卷色勿待秋成, 以俟年豐, 以孚民望。

上覽之曰: "訔等所上書, 極陳利害, 正合予意。 且訔同盟, 與社稷同休戚, 言之當矣; 宗之非同盟, 亦言之可嘉。 雖勿言, 孰曰非乎? 其言之, 所以愛予也。" 命趙末生傳旨于議政府、六曹、臺諫曰: "京畿科田之法, 太祖成憲, 不可輕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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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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