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9권, 태종 15년 5월 20일 丙辰 1/4 기사 /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사헌 집의 안망지 등이 염치용·민무회·이직 등의 죄에 대해 상소하다
국역
사헌 집의(司憲執義) 안망지(安望之) 등이 상소하여 염치용(廉致庸)·민무회(閔無悔)·윤흥부(尹興阜)·이직(李稷)의 죄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상호군(上護軍) 박이(朴履)를 남재(南在)의 집에 보내어 교지를 전하였다.
"이직(李稷)이 개국(開國)에 참여하였다 하나 무슨 모의(謀議)가 있었는가? 다만 이제(李濟)의 연고로 해서 한축에 끼일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또 무인년에는 남은(南誾)에게 편당하여 난(亂)이 발생하던 날에 남은(南誾)이 있는 곳에서 모여 자다가, 그 일에 발각됨에 이르러 봉두(蓬頭)120) 로 뛰쳐 나왔으니, 이는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이무(李茂)에 비교한다면, 이무는 오히려 왕래하면서 유세(遊說)하여 몰래 서로 통한 공(功)이나 있지만, 이직은 그렇지도 못하였으니, 대체로 이무보다도 우심(尤甚)한 자이다. 이것은 경이 다 알고 있는 바다. 그런데, 경은 어찌 이직에게 아부하여 수서양단(首鼠兩端)121) 하는가? 근자에 헌사(憲司)에서 법에 의거하여 다투는데, 내 이것을 매우 어렵게 여긴다."
남재(南在)가 대답하였다.
"신의 죄가 중하나 면직[褫職]에 그치었으니,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여 조석(朝夕)으로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이 이직에게 아부하여 죄를 청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윤(河崙)이 피혐(避嫌)하는 까닭에 즉시 신청(申請)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니, 전하가 양찰(諒察)하소서."
임금이 다시 박이를 보내어 남재를 타일렀다.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과실이 없겠는가? 과실이 있으면 고치면 가(可)한 것이다. 어찌 수상(首相)으로서 우상(右相)의 명령을 듣고 아직까지 영상(領相)이 피혐한다 하여 말하려 하지 않는단 말이냐?"
박이는 남재의 매부(妹夫)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면
원문
○丙辰/司憲執義安望之等上疏, 請致庸、無悔、興阜、李稷之罪, 不允。 遣上護軍朴履於南在家, 宣旨曰:
李稷之與於開國, 有何謀議? 特以李濟之故, 得攀拊耳, 予豈不知? 且在戊寅, 黨於南誾, 至亂發之日, 會宿南誾之在處, 及其事發, 蓬頭走出, 人所共知。 比之李茂, 茂尙有往來遊說, 潛相交通之功, 而稷則不然, 蓋尤甚於茂矣。 卿所悉知, 卿何附李稷, 而首鼠兩端乎? 邇者, 憲司據法以爭, 吾甚難之。
在對曰: "臣罪重, 止蒙(褫)〔遞〕 職, 不勝惶悚, 朝夕竢罪。 臣非敢阿附於稷而不欲請罪, 特以河崙避嫌之故, 未卽申請耳。 臣罪當萬死, 惟殿下諒察。" 上復遣履諭在曰: "人誰無過, 過而能改, 斯爲可矣。 豈可以(首相)〔左相〕 , 反聽命於右相, 而猶以領相避嫌, 不欲爲辭乎?" 履, 在之妹夫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면
국역
사헌 집의(司憲執義) 안망지(安望之) 등이 상소하여 염치용(廉致庸)·민무회(閔無悔)·윤흥부(尹興阜)·이직(李稷)의 죄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상호군(上護軍) 박이(朴履)를 남재(南在)의 집에 보내어 교지를 전하였다.
"이직(李稷)이 개국(開國)에 참여하였다 하나 무슨 모의(謀議)가 있었는가? 다만 이제(李濟)의 연고로 해서 한축에 끼일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또 무인년에는 남은(南誾)에게 편당하여 난(亂)이 발생하던 날에 남은(南誾)이 있는 곳에서 모여 자다가, 그 일에 발각됨에 이르러 봉두(蓬頭)120) 로 뛰쳐 나왔으니, 이는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이무(李茂)에 비교한다면, 이무는 오히려 왕래하면서 유세(遊說)하여 몰래 서로 통한 공(功)이나 있지만, 이직은 그렇지도 못하였으니, 대체로 이무보다도 우심(尤甚)한 자이다. 이것은 경이 다 알고 있는 바다. 그런데, 경은 어찌 이직에게 아부하여 수서양단(首鼠兩端)121) 하는가? 근자에 헌사(憲司)에서 법에 의거하여 다투는데, 내 이것을 매우 어렵게 여긴다."
남재(南在)가 대답하였다.
"신의 죄가 중하나 면직[褫職]에 그치었으니,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여 조석(朝夕)으로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이 이직에게 아부하여 죄를 청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윤(河崙)이 피혐(避嫌)하는 까닭에 즉시 신청(申請)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니, 전하가 양찰(諒察)하소서."
임금이 다시 박이를 보내어 남재를 타일렀다.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과실이 없겠는가? 과실이 있으면 고치면 가(可)한 것이다. 어찌 수상(首相)으로서 우상(右相)의 명령을 듣고 아직까지 영상(領相)이 피혐한다 하여 말하려 하지 않는단 말이냐?"
박이는 남재의 매부(妹夫)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면
원문
○丙辰/司憲執義安望之等上疏, 請致庸、無悔、興阜、李稷之罪, 不允。 遣上護軍朴履於南在家, 宣旨曰:
李稷之與於開國, 有何謀議? 特以李濟之故, 得攀拊耳, 予豈不知? 且在戊寅, 黨於南誾, 至亂發之日, 會宿南誾之在處, 及其事發, 蓬頭走出, 人所共知。 比之李茂, 茂尙有往來遊說, 潛相交通之功, 而稷則不然, 蓋尤甚於茂矣。 卿所悉知, 卿何附李稷, 而首鼠兩端乎? 邇者, 憲司據法以爭, 吾甚難之。
在對曰: "臣罪重, 止蒙(褫)〔遞〕 職, 不勝惶悚, 朝夕竢罪。 臣非敢阿附於稷而不欲請罪, 特以河崙避嫌之故, 未卽申請耳。 臣罪當萬死, 惟殿下諒察。" 上復遣履諭在曰: "人誰無過, 過而能改, 斯爲可矣。 豈可以(首相)〔左相〕 , 反聽命於右相, 而猶以領相避嫌, 不欲爲辭乎?" 履, 在之妹夫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