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6권, 태종 13년 11월 21일 丁酉 3/6 기사 /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고려 왕실의 후손을 숙청한 것과 관련 전대 역사를 상고하게 하다
국역
예조에서 전대 제왕(帝王)이 전조(前朝)의 군왕(君王)의 자손을 대접하던 법을 상고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역대 제왕(帝王)이 역성 혁명(易姓革命)하여 전대의 자손을 베어 없앤 사실을 나는 사전(史典)에서 아직 보지 못하였다."
예조 참의 이지강(李之剛)이 대답하였다.
"신 등이 명을 받고 삼대(三代)417) ·한(漢)나라·당(唐)나라·송(宋)나라에서 상고하니 모두 보전하였고, 베어 없앤 것은 오직 오호(五胡)와 오대[五季]의 임금뿐이었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법을 당(唐)·우(虞)·삼대(三代)의 성대에서 취하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족히 오대[五季]의 쇠망한 세대의 일을 논하겠느냐? 태조(太祖)가 개국하였을 초기에 전조(前朝)의 후손이 보존을 받지 못한 것은 본래 태조의 뜻이 아니었고, 한두 대신이 생각하기를, ‘이제 초창(草創)하는 때를 당하여 인심(人心)이 안정되지 않으니, 그 후예를 제거시켜서 여러 사람의 뜻을 하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내가 어렸고 고전(古典)을 알지 못하여 그 의논을 중지하도록 능히 청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된다."
이조 판서 한상경(韓尙敬)이 나와서 아뢰었다.
"국초(國初)에 신이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이 사건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실은 태조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대간(臺諫)에서 상소하여 제거하기를 청하니, 태조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한두 간신(奸臣)이 이해(利害)로써 아뢰니, 태조가 부득이 이를 따랐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보전하고자 하며, 뜻이 이미 정해졌다."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이 말하였다.
"신도 또한 이 사건에 참여하여 들었는데, 태조의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성상께서 이러한 명을 내리시니, 실로 우리 나라 기틀이 만세토록 연장될 징조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이제 왕휴(王庥)의 아들은 본래 죄가 없으니, 죽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다만 숨겨 주고 관(官)에 고하지 않는 자는 의논하여 죄 줄 수도 있다."
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순금사에 가서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와 그 어미와 처자(妻子)를 보방(保放)418) 하였다. 순금사와 정부·대간·형조에서 청하였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며, 지금 끝낼 것도 아니니 빨리 석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임금이 명하였다.
"만약 물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 삼촌 숙부 이밀충(李密沖)과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 우홍부(禹洪富) 등이 그대로 있지 않으냐?"
임금이 또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전조(前朝)의 후손이 비록 10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혐의(嫌疑)가 없다. 이제 왕거을오미를 놓아 두고 논하지 않으면 죄상을 알고도 자수하지 않는 자도 또한 면하게 될 것이다."
원문
○命禮曹, 考前代帝王待前朝君王子孫之法以聞。 上謂群臣曰: "歷代帝王, 易姓受命, 剪除前代之子孫, 予於史典, 未之見也。" 禮曹參議李之剛對曰: "臣等承命, 稽諸三代、漢、唐、宋, 皆保全之。 剪除者, 唯五胡五季之君耳。" 上曰: "當取法唐、虞三代之盛, 何足論五季衰世之事耶? 太祖開國之初, 前朝之後, 不得保全者, 本非太祖之意。 一二大臣以爲, 今當草創, 人心未定, 宜去其裔, 以一衆志。 予少也, 不識古典, 未能請寢其議, 至今爲恨。" 吏曹判書韓尙敬進曰: "國初, 臣爲知申事, 得聞是事, 實非太祖之本意。 臺諫上疏請除, 太祖不從, 一二奸臣, 啓以利害, 太祖不得已而從之耳。" 上曰: "予欲保全, 意已定矣。" 玉川君 劉敞曰: "臣亦與聞是事, 甚非太祖之意。 今日上有是命, 實我國祚萬世延長之兆也。" 上曰: "今王庥之子, 本無罪, 不當就死。 唯匿不告官者, 可以議罪。" 命代言趙末生, 往巡禁司, 保放巨乙吾未及其母與妻子。 巡禁司及政府、臺諫、刑曹請曰: "此非小事, 而今未畢, 不宜速放。" 命曰: "如有可問之事, 其三寸叔李密冲及辭連人禹洪富等在焉。" 上又謂群臣曰: "前朝之後, 雖有十人, 吾無嫌焉。 今巨乙吾未者, 置而不論, 則知情不首者, 亦免矣。"
국역
예조에서 전대 제왕(帝王)이 전조(前朝)의 군왕(君王)의 자손을 대접하던 법을 상고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역대 제왕(帝王)이 역성 혁명(易姓革命)하여 전대의 자손을 베어 없앤 사실을 나는 사전(史典)에서 아직 보지 못하였다."
예조 참의 이지강(李之剛)이 대답하였다.
"신 등이 명을 받고 삼대(三代)417) ·한(漢)나라·당(唐)나라·송(宋)나라에서 상고하니 모두 보전하였고, 베어 없앤 것은 오직 오호(五胡)와 오대[五季]의 임금뿐이었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법을 당(唐)·우(虞)·삼대(三代)의 성대에서 취하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족히 오대[五季]의 쇠망한 세대의 일을 논하겠느냐? 태조(太祖)가 개국하였을 초기에 전조(前朝)의 후손이 보존을 받지 못한 것은 본래 태조의 뜻이 아니었고, 한두 대신이 생각하기를, ‘이제 초창(草創)하는 때를 당하여 인심(人心)이 안정되지 않으니, 그 후예를 제거시켜서 여러 사람의 뜻을 하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내가 어렸고 고전(古典)을 알지 못하여 그 의논을 중지하도록 능히 청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된다."
이조 판서 한상경(韓尙敬)이 나와서 아뢰었다.
"국초(國初)에 신이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이 사건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실은 태조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대간(臺諫)에서 상소하여 제거하기를 청하니, 태조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한두 간신(奸臣)이 이해(利害)로써 아뢰니, 태조가 부득이 이를 따랐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보전하고자 하며, 뜻이 이미 정해졌다."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이 말하였다.
"신도 또한 이 사건에 참여하여 들었는데, 태조의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성상께서 이러한 명을 내리시니, 실로 우리 나라 기틀이 만세토록 연장될 징조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이제 왕휴(王庥)의 아들은 본래 죄가 없으니, 죽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다만 숨겨 주고 관(官)에 고하지 않는 자는 의논하여 죄 줄 수도 있다."
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순금사에 가서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와 그 어미와 처자(妻子)를 보방(保放)418) 하였다. 순금사와 정부·대간·형조에서 청하였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며, 지금 끝낼 것도 아니니 빨리 석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임금이 명하였다.
"만약 물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 삼촌 숙부 이밀충(李密沖)과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 우홍부(禹洪富) 등이 그대로 있지 않으냐?"
임금이 또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전조(前朝)의 후손이 비록 10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혐의(嫌疑)가 없다. 이제 왕거을오미를 놓아 두고 논하지 않으면 죄상을 알고도 자수하지 않는 자도 또한 면하게 될 것이다."
원문
○命禮曹, 考前代帝王待前朝君王子孫之法以聞。 上謂群臣曰: "歷代帝王, 易姓受命, 剪除前代之子孫, 予於史典, 未之見也。" 禮曹參議李之剛對曰: "臣等承命, 稽諸三代、漢、唐、宋, 皆保全之。 剪除者, 唯五胡五季之君耳。" 上曰: "當取法唐、虞三代之盛, 何足論五季衰世之事耶? 太祖開國之初, 前朝之後, 不得保全者, 本非太祖之意。 一二大臣以爲, 今當草創, 人心未定, 宜去其裔, 以一衆志。 予少也, 不識古典, 未能請寢其議, 至今爲恨。" 吏曹判書韓尙敬進曰: "國初, 臣爲知申事, 得聞是事, 實非太祖之本意。 臺諫上疏請除, 太祖不從, 一二奸臣, 啓以利害, 太祖不得已而從之耳。" 上曰: "予欲保全, 意已定矣。" 玉川君 劉敞曰: "臣亦與聞是事, 甚非太祖之意。 今日上有是命, 實我國祚萬世延長之兆也。" 上曰: "今王庥之子, 本無罪, 不當就死。 唯匿不告官者, 可以議罪。" 命代言趙末生, 往巡禁司, 保放巨乙吾未及其母與妻子。 巡禁司及政府、臺諫、刑曹請曰: "此非小事, 而今未畢, 不宜速放。" 命曰: "如有可問之事, 其三寸叔李密冲及辭連人禹洪富等在焉。" 上又謂群臣曰: "前朝之後, 雖有十人, 吾無嫌焉。 今巨乙吾未者, 置而不論, 則知情不首者, 亦免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