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9권, 태종 10년 6월 14일 己酉 1/2 기사 /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살인 혐의로 전 장흥고 사 홍자의 직첩을 거두고 외방 부처시키다
국역
전(前) 장흥고 사(長興庫使) 홍자(洪咨)의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에 부처(付處)하였으니, 비부(婢夫) 장두언(張豆彦)을 때려서, 두언이 물러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일에 좌죄되었기 때문이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여 홍자의 죄를 청하기를,
"신 등은 생각건대, 형조(刑曹)에서 아뢴 바 학생(學生) 장두언(張豆彦)의 죽음은, 옥사(獄事)의 중대한 것이므로 밝게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형조에서 국문(鞫問)한 두언의 어미 구슬(俱瑟)과 그 아우 장오을(張吾乙), 죽은 사노(私奴) 이보(李寶)·김녹(金祿)이 모두 목을 맨 상황을 말하기를, ‘목에 상처(傷處)도 없고, 자국 난 흔적도 없으며, 또 노끈[葛索]으로 두 손을 한데 묶어 배꼽 아래에 잡아매었다.’ 하였고, 검시인(檢屍人) 원평(原平)·교하(交河) 아전[吏]이 증험한 것도 상항(上項)의 4인의 말과 다름이 없으니, 이것은 스스로 목을 맨 것이 아닌 것으로 의심이 듭니다. 홍자가 지난해 8월에 두언을 매질할 때에, 그 아내가 〈홍자의 집을〉 지나다가 홍자의 집에서 남자 종[男僕]이 매를 맞는 소리를 들었으나,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였는데, 밤이 깊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 두언이 목을 매어 소나무에 달려 있었다 하니, 그 죽은 것이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비록 혹시 스스로 목을 매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또한 홍자가 위력(威力)으로 핍박(逼迫)하여 죽게 한 것입니다. 그 아우 장언(張彦)이 그 형이 죄 없이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어 관(官)에 고(告)하여 복수하려 한 것은 천리(天理)·인정(人情)에 잘못이 아닌데, 도리어 부처(付處)를 당하였으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형조(刑曹)의 아뢴 바에 따라 홍자를 국문(鞫問)하여 밝게 그 죄를 바루소서. 또 사헌 지평(司憲持平) 강종덕(姜宗德)은 상항(上項)의 조건(條件)을 용심(用心)하여 추명(推明)하지 못했으니, 또한 책임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聖上)께서 재가(裁可)하여 시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소(疏)를 보고 장언(張彦)의 죄를 용서하고,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내가 홍자(洪咨)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두언(豆彦)의 죽음이 이미 헌부(憲府)와 형조(刑曹)를 거쳤으나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였고, 장언이 그 형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홍자가 죽인 것으로 관(官)에 고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의옥(疑獄)으로 처리한 것이다. 지금 이 상소의 뜻은 어떻게 처리하자는 것이냐?"
하고, 대언(代言)을 시켜 상소 가운데의 뜻을 헌납(獻納) 권선(權繕)에게 갖추 물으니, 권선이 대답하기를,
"원컨대, 형조(刑曹)에서 아뢴 바에 따라 홍자의 살인한 사유를 국문하소서."
하니, 안등(安騰)이 말하기를,
"홍자가 살인한 것이 분명하면 국문하는 것이 가하지만, 형조(刑曹)가 이미 두언(豆彦)의 어미와 딸을 국문하여 두언이 죽은 연유를 물었으나, 모두 홍자가 죽였다는 까닭을 말하지 않았으니, 지금 다시 국문하면, 이 같이 심한 더위에 어찌 살 수 있겠소? 매[箠楚] 밑에 무엇을 구(求)한들 얻지 못하겠소? 홍자가 만일 매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살인죄(殺人罪)에 좌죄(坐罪)된다면, 두언의 죽음으로 세 사람이 또한 죽는 것이니, 불가하지 않겠소?"
하였다. 권선이 대답하기를,
"중한 옥사[重獄]를 결단(決斷)하자면 속히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 문자(文字)로 홍자에게 갖추 물어서 만일 사실대로 대답하면 마땅히 그 죄에 좌죄되어야 합니다. 어찌 몸이 편안하고서 사실대로 토설(吐說)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조(刑曹)의 장신(狀申)에 따르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소사(所司)의 청을 내가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천재(天災)·지괴(地怪)가 정령(政令)의 잘못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하고, 간원(諫院)에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조금 뒤에 사간원(司諫院)이 자문(紫門)에 나아와 아뢰기를,
"오늘의 청(請)은 전하께서 형조(刑曹)의 장신(狀申)에 따르실 것을 원한 것뿐입니다. 지금 본원(本院)에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명하셨는데, 본원에는 형벌하는 물건[刑物]이 없으니 어떻게 사실을 조사하겠습니까? 청컨대, 다시 유사(攸司)로 하여금 밝게 그 죄를 바루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곤장을 때려서 묻겠는가? 사리(事理)를 가지고 추궁(推窮)하여 밝히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원문
○己酉/收前長興庫使洪咨職牒, 外方付處。 坐杖婢夫張豆彦, 豆彦退而自縊也。 司諫院上疏請洪咨之罪曰:
臣等竊謂刑曹所申學生張豆彦之死, 獄之重者, 不可不明辨也。 刑曹所鞫豆彦之母俱瑟, 其弟吾乙、亡私奴李寶ㆍ金祿皆言結項之狀曰: "項無傷處, 亦無盈縮, 又以葛索, 合結兩手, 繫於臍下。" 檢屍人原平、交河之吏所驗, 與上項四人之言無異, 是固可疑於非自縊也。 洪咨於前年八月, 鞭豆彦。 其妻往聞咨家有男僕被杖之聲, 不知其爲誰也, 夜深還家, 其夫不至。 翼日, 豆彦結項懸於松木, 其死尤可疑也。 雖或自縊, 是亦咨威逼而使之死也。 其弟張彦惜其兄無罪而死, 告官復讎, 於天理人情, 未爲過也, 反見付處。 伏望殿下, 從刑曹所申, 鞫問洪咨, 明正其罪。 又司憲持平姜宗德, 將上項條件, 不能用心推明, 亦不得無責矣, 伏惟上裁施行。
上覽疏, 釋張彦之罪。 傳於承政院曰: "予非愛洪咨, 但豆彦之死, 已經憲府刑曹, 未得其實, 張彦未知其兄之死, 遽以洪咨殺之告官。 是故予以疑獄處之。 今此疏意, 欲處之如何乎?" 令代言備問疏中之意於獻納權繕, 繕對曰: "願從刑曹所申, 鞫問洪咨殺人之由。" 安騰曰: "咨之殺人的然, 則雖鞫問可也。 刑曹已鞫豆彦母女, 問豆彦之死之由, 皆不言洪咨殺之之故, 今更鞫問, 如此苦熱, 其能生乎? 箠楚之下, 何求不得! 咨若不忍鞭撻之苦, 坐殺人之罪, 則以豆彦之死, 而三人亦死, 無乃不可乎?" 繕對曰: "決重獄, 不可速。 今以文字備問, 咨若以實對, 則當坐其罪。 安有身安而吐實者乎? 故乞從刑曹所申耳。" 上曰: "所司之請, 予何不從? 天災地怪, 莫不由政令之失。" 乃命諫院閱實以聞。 俄而, 司諫院進紫門啓曰: "今日之請, 願殿下從刑曹狀申而已, 今命本院閱實以聞。 本院則無刑物, 何以閱實! 請更令攸司明正其罪。" 上曰: "何可杖訊! 以事理推明可矣。"
태종 10년 (1410) 6월 14일
국역
전(前) 장흥고 사(長興庫使) 홍자(洪咨)의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에 부처(付處)하였으니, 비부(婢夫) 장두언(張豆彦)을 때려서, 두언이 물러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일에 좌죄되었기 때문이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여 홍자의 죄를 청하기를,
"신 등은 생각건대, 형조(刑曹)에서 아뢴 바 학생(學生) 장두언(張豆彦)의 죽음은, 옥사(獄事)의 중대한 것이므로 밝게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형조에서 국문(鞫問)한 두언의 어미 구슬(俱瑟)과 그 아우 장오을(張吾乙), 죽은 사노(私奴) 이보(李寶)·김녹(金祿)이 모두 목을 맨 상황을 말하기를, ‘목에 상처(傷處)도 없고, 자국 난 흔적도 없으며, 또 노끈[葛索]으로 두 손을 한데 묶어 배꼽 아래에 잡아매었다.’ 하였고, 검시인(檢屍人) 원평(原平)·교하(交河) 아전[吏]이 증험한 것도 상항(上項)의 4인의 말과 다름이 없으니, 이것은 스스로 목을 맨 것이 아닌 것으로 의심이 듭니다. 홍자가 지난해 8월에 두언을 매질할 때에, 그 아내가 〈홍자의 집을〉 지나다가 홍자의 집에서 남자 종[男僕]이 매를 맞는 소리를 들었으나,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였는데, 밤이 깊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 두언이 목을 매어 소나무에 달려 있었다 하니, 그 죽은 것이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비록 혹시 스스로 목을 매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또한 홍자가 위력(威力)으로 핍박(逼迫)하여 죽게 한 것입니다. 그 아우 장언(張彦)이 그 형이 죄 없이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어 관(官)에 고(告)하여 복수하려 한 것은 천리(天理)·인정(人情)에 잘못이 아닌데, 도리어 부처(付處)를 당하였으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형조(刑曹)의 아뢴 바에 따라 홍자를 국문(鞫問)하여 밝게 그 죄를 바루소서. 또 사헌 지평(司憲持平) 강종덕(姜宗德)은 상항(上項)의 조건(條件)을 용심(用心)하여 추명(推明)하지 못했으니, 또한 책임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聖上)께서 재가(裁可)하여 시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소(疏)를 보고 장언(張彦)의 죄를 용서하고,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내가 홍자(洪咨)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두언(豆彦)의 죽음이 이미 헌부(憲府)와 형조(刑曹)를 거쳤으나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였고, 장언이 그 형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홍자가 죽인 것으로 관(官)에 고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의옥(疑獄)으로 처리한 것이다. 지금 이 상소의 뜻은 어떻게 처리하자는 것이냐?"
하고, 대언(代言)을 시켜 상소 가운데의 뜻을 헌납(獻納) 권선(權繕)에게 갖추 물으니, 권선이 대답하기를,
"원컨대, 형조(刑曹)에서 아뢴 바에 따라 홍자의 살인한 사유를 국문하소서."
하니, 안등(安騰)이 말하기를,
"홍자가 살인한 것이 분명하면 국문하는 것이 가하지만, 형조(刑曹)가 이미 두언(豆彦)의 어미와 딸을 국문하여 두언이 죽은 연유를 물었으나, 모두 홍자가 죽였다는 까닭을 말하지 않았으니, 지금 다시 국문하면, 이 같이 심한 더위에 어찌 살 수 있겠소? 매[箠楚] 밑에 무엇을 구(求)한들 얻지 못하겠소? 홍자가 만일 매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살인죄(殺人罪)에 좌죄(坐罪)된다면, 두언의 죽음으로 세 사람이 또한 죽는 것이니, 불가하지 않겠소?"
하였다. 권선이 대답하기를,
"중한 옥사[重獄]를 결단(決斷)하자면 속히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 문자(文字)로 홍자에게 갖추 물어서 만일 사실대로 대답하면 마땅히 그 죄에 좌죄되어야 합니다. 어찌 몸이 편안하고서 사실대로 토설(吐說)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조(刑曹)의 장신(狀申)에 따르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소사(所司)의 청을 내가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천재(天災)·지괴(地怪)가 정령(政令)의 잘못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하고, 간원(諫院)에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조금 뒤에 사간원(司諫院)이 자문(紫門)에 나아와 아뢰기를,
"오늘의 청(請)은 전하께서 형조(刑曹)의 장신(狀申)에 따르실 것을 원한 것뿐입니다. 지금 본원(本院)에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라고 명하셨는데, 본원에는 형벌하는 물건[刑物]이 없으니 어떻게 사실을 조사하겠습니까? 청컨대, 다시 유사(攸司)로 하여금 밝게 그 죄를 바루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곤장을 때려서 묻겠는가? 사리(事理)를 가지고 추궁(推窮)하여 밝히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원문
○己酉/收前長興庫使洪咨職牒, 外方付處。 坐杖婢夫張豆彦, 豆彦退而自縊也。 司諫院上疏請洪咨之罪曰:
臣等竊謂刑曹所申學生張豆彦之死, 獄之重者, 不可不明辨也。 刑曹所鞫豆彦之母俱瑟, 其弟吾乙、亡私奴李寶ㆍ金祿皆言結項之狀曰: "項無傷處, 亦無盈縮, 又以葛索, 合結兩手, 繫於臍下。" 檢屍人原平、交河之吏所驗, 與上項四人之言無異, 是固可疑於非自縊也。 洪咨於前年八月, 鞭豆彦。 其妻往聞咨家有男僕被杖之聲, 不知其爲誰也, 夜深還家, 其夫不至。 翼日, 豆彦結項懸於松木, 其死尤可疑也。 雖或自縊, 是亦咨威逼而使之死也。 其弟張彦惜其兄無罪而死, 告官復讎, 於天理人情, 未爲過也, 反見付處。 伏望殿下, 從刑曹所申, 鞫問洪咨, 明正其罪。 又司憲持平姜宗德, 將上項條件, 不能用心推明, 亦不得無責矣, 伏惟上裁施行。
上覽疏, 釋張彦之罪。 傳於承政院曰: "予非愛洪咨, 但豆彦之死, 已經憲府刑曹, 未得其實, 張彦未知其兄之死, 遽以洪咨殺之告官。 是故予以疑獄處之。 今此疏意, 欲處之如何乎?" 令代言備問疏中之意於獻納權繕, 繕對曰: "願從刑曹所申, 鞫問洪咨殺人之由。" 安騰曰: "咨之殺人的然, 則雖鞫問可也。 刑曹已鞫豆彦母女, 問豆彦之死之由, 皆不言洪咨殺之之故, 今更鞫問, 如此苦熱, 其能生乎? 箠楚之下, 何求不得! 咨若不忍鞭撻之苦, 坐殺人之罪, 則以豆彦之死, 而三人亦死, 無乃不可乎?" 繕對曰: "決重獄, 不可速。 今以文字備問, 咨若以實對, 則當坐其罪。 安有身安而吐實者乎? 故乞從刑曹所申耳。" 上曰: "所司之請, 予何不從? 天災地怪, 莫不由政令之失。" 乃命諫院閱實以聞。 俄而, 司諫院進紫門啓曰: "今日之請, 願殿下從刑曹狀申而已, 今命本院閱實以聞。 本院則無刑物, 何以閱實! 請更令攸司明正其罪。" 上曰: "何可杖訊! 以事理推明可矣。"
원본
태종 10년 (1410)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