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태종실록17권, 태종 9년 4월 2일 甲戌 2/3 기사 /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조대림의 병권을 회수하자고 상소한 유사눌 등 대간들을 국문하여 유배보내다

신역 바로가기

국역

집의(執義) 유사눌(柳思訥)을 안악(安岳)으로, 장령(掌令) 김사문(金思文)을 진주(晉州)로, 지평(持平) 조서로(趙瑞老)를 창원(昌原)으로, 임인산(林仁山)을 양성(陽城)으로 유배(流配)시키고, 성균 박사(成均博士) 주면(周冕)에게 장(杖) 1백 대를 때렸다. 처음에 조서로가 예궐하여 봉장(封章) 두 통을 올렸는데, 그 하나는 이러하였다.

"엎드려 보건대,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불충(不忠)한 죄는 일국(一國)의 신민(臣民)이 다 같이 분개하는 바인데, 전하께서 훈친(勳親)의 옛정을 생각하여 차마 베지 못하고 외방에 거처하도록 하여 목숨을 보전하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개전(改悛)하는 마음이 없이 빈객(賓客)과 교결(交結)하여, 붕비(朋比)를 만들어 흉계를 꾸미고 포악한 짓을 함부로 행하며, 남의 전지를 빼앗고 남의 계집을 간통합니다. 대간(臺諫)에서 여러 번 봉장을 올려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부월(鈇鉞)의 형벌을 관대히 용서하여 잠시 변경 고을에 유배시키는 데 그치시고, 물건의 하사(下賜)를 여러 번 행하셨으니, 죄를 다스리는 뜻에 어떠하겠습니까? 예전에 한(漢)나라 장제(章帝) 때에는 두헌(竇憲)075) 이 궁액(宮掖)의 세력을 믿고 심수 공주(沁水公主)의 토지를 빼앗았다가 발각되었는데, 황제가 크게 노하여 두헌을 불러 간절히 책망하기를, ‘나라에서 두헌을 버리는 것은 고추부서(孤雛腐鼠)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끝내 그 죄를 바루지 못하였다가, 뒤에 두씨(竇氏)가 권세를 전횡하여 그의 부자 형제가 조정에 가득하여, 조신(朝臣)의 높고 낮은 이들이 두헌에게 붙좇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중상시(中常侍) 정중(鄭衆)의 힘을 입어 의논을 정하고 두헌을 베었는데, 사관(史官)이 말하기를, ‘황제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싼 값[賤價]으로 전지를 빼앗은 것은 그 죄가 작은 것이었으나, 한번 능히 바로잡지 못하여, 간신(奸臣)이 꺼려하는 바가 없어서 마침내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방자한 짓을 함부로 하여, 한(漢)의 왕실을 거의 전복할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천년 뒤에도 오히려 분개할 만한 일인데, 이제 민무구·민무질의 죄악은 가득차고 넘쳐서 두헌에게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베지 아니하면 장래의 화를 알 수 없습니다. 대개 법은 천하에 공평한 것이므로 사사로이 폐할 수 없는 것이어늘, 하물며 죄악이 차고 넘쳐서 일이 종사(宗社)에 관계되는데, 어찌 전하께서 사정(私情)을 쓸 수 있습니까? 무릇 신하가 되어 불충한 것을 토죄(討罪)하지 않으면, 그 죄가 같으니 어찌 위태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소식(蘇軾)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에서 말하는 바는 천하의 공의(公議)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공의가 찬성하는 바는 대간도 찬성하고, 공의가 반대하는 바는 대간도 반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민무구·민무질을 법에 의해 처치하여, 길이 후세에 남길 법으로 삼으소서."

그 둘째는 이러하였다.

"군사는 국가의 대사(大事)이고 장수(將帥)는 사람의 생명을 맡는 것이므로, 그 골라 쓰기를 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충성하고 근신하며 용맹하고 지혜로운 자를 골라서 장수를 삼은 것은 고금을 통한 의리입니다. 엎드려 보건대,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은 의관(衣冠)076) 의 자제로서 부귀(富貴)속에 생장하여, 어려서 일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학문도 별로 없어서, 이(利)에 따라 잘 움직이고 위협하면 쉽게 겁냅니다. 이리하여 목인해(睦仁海)의 간언(奸言)이 한번 들어가자 그 술책에 빠지는 줄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바 입니다. 신 등은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그에게 군사의 일을 내놓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에 힘쓰도록 하여, 스스로 새 사람이 되기를 기다려도 늦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 등이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하여, 미치고 우매한 말을 감히 올리오니, 성감(聖鑑)께서 유의하시기 바라옵니다."

임금이 읽어 보다가 조대림을 논한 일에 이르러 진노(震怒)하여, 조서로로 하여금 자문(紫門)에 청가(請暇)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튿날 유사눌·김사문·조서로·임인산 등을 순금사(巡禁司)에 내렸다. 임금이 사헌부의 상소를 다시 읽어 보고 말하였다.

"민무구와 민무질은 나도 죄가 없다고 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내가 독단(獨斷)한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동의(同議)한 것이다. 평양군(平壤君)의 일은, 평양군 혼자만이 아니라 나와 안성군(安城君)도 목인해의 술책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때에 순금사(巡禁司)의 죄인들이 조대림과 목인해에게 빙문(憑問)하도록 청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목인해의 술책에 빠진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말하기를, ‘왕자는 병권(兵權)을 잡지 못한다.’고 하니, 효령(孝寧)과 충녕(忠寧)은 장차 세자(世子)에게 기식(寄食)할 것이다. 부마(駙馬) 청평군(淸平君)은 상당군(上黨君)의 동생인지라 남에게 꺼림을 받고 있고, 길천군(吉川君)은 나이가 어리므로, 내가 평양군에게 병권을 잡게 한 것은 공실(公室)을 굳건히 하려는 것이다. 헌사에서 그 병권을 내놓게 하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또 그 상소에 이르기를, ‘위협하면 쉽게 겁내고 이(利)를 위해 잘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가지고 겁낸다는 것이며, 무엇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인가? 마땅히 하나하나 국문(鞫問)하도록 하겠다."

임금이 드디어 형조 판서 이빈(李彬)·좌부대언(左副代言) 안등(安騰)·동순금사 겸 판사(同巡禁司兼判事) 남재(南在) 등에게 명하여, 병권을 내놓게 하자는 논의를 먼저 발한 자를 고문(拷問)하게 하였다. 이조 판서 유양(柳亮)이 간하기를,

"대관(臺官)을 옥에 가두는 것은 사필(史筆)에 아름답지 못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친히 심문하시고 효유(曉諭)하여 석방하소서."

하니, 임금이,

"나의 행하는 일이 사필(史筆)에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안다. 어찌 그것을 삭제(削除)할 수 있겠느냐? 내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급박한 것도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끝내 그것을 고치지 못하겠다."

하고, 끝까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남재 등이 유사눌에게 말이 나온 곳을 물으니, 유사눌이 말하였다.

"신이 집의(執義)로 제수되던 날부터 민씨(閔氏)의 죄를 청하고자 하여, 집에서 소(疏)를 초(草)잡아 본부에 나가서 동료(同僚)들에게 내어 보이니, 모두 좋다고 하고, 그날 좌중(坐中)에서 조대림의 병권을 내놓도록 청하자고 말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 일도 또한 봉장(封章)으로 하는 것이 좋겠으나, 하루 동안에 두 건의 큰일을 논의함이 어떨는지?’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였으므로, 드디어 중론(衆論)을 따라서 신이 스스로 소(疏)를 지었습니다. ‘이(利)에 따라 잘 움직이고, 위협하면 쉽게 겁낸다.’고 한 것은 옛글을 인용한 것이고, 뜻이 있어서 글자를 넣은 것이 아닙니다."

김사문은 말하였다.

"병권을 내놓게 하자는 것은 신이 실지로 말을 내었습니다."

조서로는 말하였다.

"신도 또한 병권을 내놓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임인산은 두려워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순금사(巡禁司)에서 그 말을 갖추어 아뢰니, 임금이 말하였다.

"김사문과 조서로는 지휘(指揮)한 사람을 말하도록 고문(拷問)하고, 유사눌은 행수(行首)로서 능히 이를 금지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죄가 없겠는가? 그러나 아직은 형을 가하지 말라. 임인산은 다른 사람의 논의에 핍박되었으니 진실로 따질 만한 것이 없다."

  • [註 075] 두헌(竇憲) : 중국의 후한(後漢) 시대 사람. 자(字)는 백도(伯度). 누이가 황후(皇后)가 되자,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어 북선우(北單于)를 격파하고 그 비(碑)를 연연산(燕然山)에 세우고 개선하였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세력을 부리게 되매, 두씨(竇氏)의 일족이 조정에 가득 차기에 이르렀으므로, 장제(章帝)가 정중(鄭衆)과 밀의(密議)하여, 그 인신(印信)을 박탈하고 자살(自殺)하게 하였음.
  • [註 076] 의관(衣冠) : 권문세가.

원문

○流執義柳思訥于安岳, 掌令金士文于晋州, 持平趙瑞老于昌原, 林仁山于陽城, 杖成均博士周冕一百。 初, 瑞老詣闕進封章二道。

其一曰, 伏見無咎、無疾不忠之罪, 一國臣民所共憤懟, 殿下乃念勳親之舊, 不忍加誅, 俾居于外, 得保首領。 彼乃罔有悛心, 交結賓客, 朋淫肆虐, 侵人之田, 奸人之女。 臺諫累上封章, 請正其罪, 殿下尙寬鈇鉞之誅, 薄示邊邑之流, 賜與屢至。 其於討罪之義何如? 昔漢 章帝時, 竇憲恃宮掖之勢, 奪沁水公主田。 發覺, 帝大怒, 召憲切責曰: "國家棄憲如孤雛腐鼠耳", 卒不能正其罪。 厥後竇氏專權, 父子兄弟充滿朝廷, 朝臣上下莫不附憲, 賴中常侍鄭衆定議誅憲。 史官以爲帝優柔不斷之過。 夫以賤直奪田, 罪之微者也, 一不能正之, 則奸臣無所忌憚, 卒至擅權專恣, 幾傾漢室, 千載之下, 猶可憤懣。 今無咎、無疾, 罪惡貫盈, 非憲之比也。 今不誅之, 將來之禍, 未可知已。 蓋法者, 天下之公也, 不可以私廢也。 矧惟罪盈惡積, 事關宗社, 豈殿下之所得私也? 夫爲臣而不能討其不忠, 厥罪惟均, 豈不殆哉! 蘇軾曰: "臺諫所言, 當隨天下公議。 公議所與, 臺諫亦與之, 公議所擊, 臺諫亦擊之。" 伏望殿下斷以大義, 將無咎、無疾置之於法, 永爲垂世之規。 其二曰, 兵者, 國之大事也; 將者, 人之司命也。 其選不可不重, 故必擇其忠謹勇智者, 爲之將帥, 古今之通義也。 伏見平壤君 趙大臨, 衣冠之冑, 生長富貴, 少不更事, 且無學問, 易動以利, 易怵以威。 是以仁海之奸言一入, 而不虞墮其術中, 此殿下之所親見也。 臣等伏望殿下, 姑釋其兵, 使之怡養精神, 勉强學問, 以待自新之日, 猶未晩也。 臣等昧冒天聰, 敢進狂瞽之言, 伏惟聖鑑留意。

上覽至論大臨之事, 震怒, 令瑞老紫門請暇, 歸其家。 翼日, 下思訥、士文、瑞老、仁山于巡禁司。 上再覽憲府疏曰: "無咎、無疾, 予亦不謂無罪, 然非獨斷, 乃朝廷之同議。 若平壤君之事, 則非獨平壤君也, 予與安城君, 亦墮仁海術中。 于時巡禁司, 罪人未得, 請憑問大臨與仁海, 此亦非墜於術中乎? 人有言曰: ‘王子不可握兵。’ 孝寧、忠寧, 將寄食於世子矣。 駙馬淸平君, 以上黨之弟, 見忌於人, 吉川君年幼。 我之令平壤君握兵者, 所以强公室也。 憲司欲其釋兵, 果何意歟? 且其疏曰: ‘易怵以威, 易動以利。’ 不知將何以怵之, 將何以動之? 當一一鞫問。" 遂命刑曹判書李彬、左副代言安騰, 同巡禁司兼判事南在等, 拷問首發釋兵之議者。 吏曹判書柳亮諫曰: "臺官下獄, 史筆不美。 願殿下親自審問, 諭而釋之。" 上曰: "予之行事, 不美於史筆, 知之審矣。 其能削之乎? 予之傷於苛急, 亦知之明矣, 終不能改也。" 竟不許。 在等問思訥以發言之處, 思訥曰: "臣自除執義之日, 欲請閔氏之罪, 在家草疏, 坐本府出示同僚, 皆以爲可。 其日坐中, 有言請釋大臨兵柄者, 臣曰: ‘此事亦可封章。 然一日之內, 論兩件大事, 何如?’ 對曰: ‘何害之有!’ 遂從衆論, 臣自裁疏。 至如易動以利, 易怵以威, 乃引用古文耳, 非有意而下字也。" 士文曰: "釋兵之議, 臣實發之。" 瑞老曰: "臣亦言可釋兵。" 仁山則惶懼不能出一言。 巡禁司具辭以聞, 上曰: "士文、瑞老, 可拷問指揮之人。 思訥則以行首不能禁止, 夫豈無罪? 然姑勿加刑。 若仁山, 則逼於他人之議, 固不足數矣。"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태종실록17권, 태종 9년 4월 2일 甲戌 2/3 기사 /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조대림의 병권을 회수하자고 상소한 유사눌 등 대간들을 국문하여 유배보내다

국역

집의(執義) 유사눌(柳思訥)을 안악(安岳)으로, 장령(掌令) 김사문(金思文)을 진주(晉州)로, 지평(持平) 조서로(趙瑞老)를 창원(昌原)으로, 임인산(林仁山)을 양성(陽城)으로 유배(流配)시키고, 성균 박사(成均博士) 주면(周冕)에게 장(杖) 1백 대를 때렸다. 처음에 조서로가 예궐하여 봉장(封章) 두 통을 올렸는데, 그 하나는 이러하였다.

"엎드려 보건대,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불충(不忠)한 죄는 일국(一國)의 신민(臣民)이 다 같이 분개하는 바인데, 전하께서 훈친(勳親)의 옛정을 생각하여 차마 베지 못하고 외방에 거처하도록 하여 목숨을 보전하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개전(改悛)하는 마음이 없이 빈객(賓客)과 교결(交結)하여, 붕비(朋比)를 만들어 흉계를 꾸미고 포악한 짓을 함부로 행하며, 남의 전지를 빼앗고 남의 계집을 간통합니다. 대간(臺諫)에서 여러 번 봉장을 올려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부월(鈇鉞)의 형벌을 관대히 용서하여 잠시 변경 고을에 유배시키는 데 그치시고, 물건의 하사(下賜)를 여러 번 행하셨으니, 죄를 다스리는 뜻에 어떠하겠습니까? 예전에 한(漢)나라 장제(章帝) 때에는 두헌(竇憲)075) 이 궁액(宮掖)의 세력을 믿고 심수 공주(沁水公主)의 토지를 빼앗았다가 발각되었는데, 황제가 크게 노하여 두헌을 불러 간절히 책망하기를, ‘나라에서 두헌을 버리는 것은 고추부서(孤雛腐鼠)와 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끝내 그 죄를 바루지 못하였다가, 뒤에 두씨(竇氏)가 권세를 전횡하여 그의 부자 형제가 조정에 가득하여, 조신(朝臣)의 높고 낮은 이들이 두헌에게 붙좇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중상시(中常侍) 정중(鄭衆)의 힘을 입어 의논을 정하고 두헌을 베었는데, 사관(史官)이 말하기를, ‘황제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싼 값[賤價]으로 전지를 빼앗은 것은 그 죄가 작은 것이었으나, 한번 능히 바로잡지 못하여, 간신(奸臣)이 꺼려하는 바가 없어서 마침내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방자한 짓을 함부로 하여, 한(漢)의 왕실을 거의 전복할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천년 뒤에도 오히려 분개할 만한 일인데, 이제 민무구·민무질의 죄악은 가득차고 넘쳐서 두헌에게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베지 아니하면 장래의 화를 알 수 없습니다. 대개 법은 천하에 공평한 것이므로 사사로이 폐할 수 없는 것이어늘, 하물며 죄악이 차고 넘쳐서 일이 종사(宗社)에 관계되는데, 어찌 전하께서 사정(私情)을 쓸 수 있습니까? 무릇 신하가 되어 불충한 것을 토죄(討罪)하지 않으면, 그 죄가 같으니 어찌 위태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소식(蘇軾)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에서 말하는 바는 천하의 공의(公議)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공의가 찬성하는 바는 대간도 찬성하고, 공의가 반대하는 바는 대간도 반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민무구·민무질을 법에 의해 처치하여, 길이 후세에 남길 법으로 삼으소서."

그 둘째는 이러하였다.

"군사는 국가의 대사(大事)이고 장수(將帥)는 사람의 생명을 맡는 것이므로, 그 골라 쓰기를 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충성하고 근신하며 용맹하고 지혜로운 자를 골라서 장수를 삼은 것은 고금을 통한 의리입니다. 엎드려 보건대,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은 의관(衣冠)076) 의 자제로서 부귀(富貴)속에 생장하여, 어려서 일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학문도 별로 없어서, 이(利)에 따라 잘 움직이고 위협하면 쉽게 겁냅니다. 이리하여 목인해(睦仁海)의 간언(奸言)이 한번 들어가자 그 술책에 빠지는 줄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바 입니다. 신 등은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그에게 군사의 일을 내놓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에 힘쓰도록 하여, 스스로 새 사람이 되기를 기다려도 늦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 등이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하여, 미치고 우매한 말을 감히 올리오니, 성감(聖鑑)께서 유의하시기 바라옵니다."

임금이 읽어 보다가 조대림을 논한 일에 이르러 진노(震怒)하여, 조서로로 하여금 자문(紫門)에 청가(請暇)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튿날 유사눌·김사문·조서로·임인산 등을 순금사(巡禁司)에 내렸다. 임금이 사헌부의 상소를 다시 읽어 보고 말하였다.

"민무구와 민무질은 나도 죄가 없다고 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내가 독단(獨斷)한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동의(同議)한 것이다. 평양군(平壤君)의 일은, 평양군 혼자만이 아니라 나와 안성군(安城君)도 목인해의 술책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때에 순금사(巡禁司)의 죄인들이 조대림과 목인해에게 빙문(憑問)하도록 청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목인해의 술책에 빠진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말하기를, ‘왕자는 병권(兵權)을 잡지 못한다.’고 하니, 효령(孝寧)과 충녕(忠寧)은 장차 세자(世子)에게 기식(寄食)할 것이다. 부마(駙馬) 청평군(淸平君)은 상당군(上黨君)의 동생인지라 남에게 꺼림을 받고 있고, 길천군(吉川君)은 나이가 어리므로, 내가 평양군에게 병권을 잡게 한 것은 공실(公室)을 굳건히 하려는 것이다. 헌사에서 그 병권을 내놓게 하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또 그 상소에 이르기를, ‘위협하면 쉽게 겁내고 이(利)를 위해 잘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가지고 겁낸다는 것이며, 무엇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인가? 마땅히 하나하나 국문(鞫問)하도록 하겠다."

임금이 드디어 형조 판서 이빈(李彬)·좌부대언(左副代言) 안등(安騰)·동순금사 겸 판사(同巡禁司兼判事) 남재(南在) 등에게 명하여, 병권을 내놓게 하자는 논의를 먼저 발한 자를 고문(拷問)하게 하였다. 이조 판서 유양(柳亮)이 간하기를,

"대관(臺官)을 옥에 가두는 것은 사필(史筆)에 아름답지 못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친히 심문하시고 효유(曉諭)하여 석방하소서."

하니, 임금이,

"나의 행하는 일이 사필(史筆)에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안다. 어찌 그것을 삭제(削除)할 수 있겠느냐? 내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급박한 것도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끝내 그것을 고치지 못하겠다."

하고, 끝까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남재 등이 유사눌에게 말이 나온 곳을 물으니, 유사눌이 말하였다.

"신이 집의(執義)로 제수되던 날부터 민씨(閔氏)의 죄를 청하고자 하여, 집에서 소(疏)를 초(草)잡아 본부에 나가서 동료(同僚)들에게 내어 보이니, 모두 좋다고 하고, 그날 좌중(坐中)에서 조대림의 병권을 내놓도록 청하자고 말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 일도 또한 봉장(封章)으로 하는 것이 좋겠으나, 하루 동안에 두 건의 큰일을 논의함이 어떨는지?’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였으므로, 드디어 중론(衆論)을 따라서 신이 스스로 소(疏)를 지었습니다. ‘이(利)에 따라 잘 움직이고, 위협하면 쉽게 겁낸다.’고 한 것은 옛글을 인용한 것이고, 뜻이 있어서 글자를 넣은 것이 아닙니다."

김사문은 말하였다.

"병권을 내놓게 하자는 것은 신이 실지로 말을 내었습니다."

조서로는 말하였다.

"신도 또한 병권을 내놓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임인산은 두려워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순금사(巡禁司)에서 그 말을 갖추어 아뢰니, 임금이 말하였다.

"김사문과 조서로는 지휘(指揮)한 사람을 말하도록 고문(拷問)하고, 유사눌은 행수(行首)로서 능히 이를 금지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죄가 없겠는가? 그러나 아직은 형을 가하지 말라. 임인산은 다른 사람의 논의에 핍박되었으니 진실로 따질 만한 것이 없다."

  • [註 075] 두헌(竇憲) : 중국의 후한(後漢) 시대 사람. 자(字)는 백도(伯度). 누이가 황후(皇后)가 되자,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어 북선우(北單于)를 격파하고 그 비(碑)를 연연산(燕然山)에 세우고 개선하였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세력을 부리게 되매, 두씨(竇氏)의 일족이 조정에 가득 차기에 이르렀으므로, 장제(章帝)가 정중(鄭衆)과 밀의(密議)하여, 그 인신(印信)을 박탈하고 자살(自殺)하게 하였음.
  • [註 076] 의관(衣冠) : 권문세가.

원문

○流執義柳思訥于安岳, 掌令金士文于晋州, 持平趙瑞老于昌原, 林仁山于陽城, 杖成均博士周冕一百。 初, 瑞老詣闕進封章二道。

其一曰, 伏見無咎、無疾不忠之罪, 一國臣民所共憤懟, 殿下乃念勳親之舊, 不忍加誅, 俾居于外, 得保首領。 彼乃罔有悛心, 交結賓客, 朋淫肆虐, 侵人之田, 奸人之女。 臺諫累上封章, 請正其罪, 殿下尙寬鈇鉞之誅, 薄示邊邑之流, 賜與屢至。 其於討罪之義何如? 昔漢 章帝時, 竇憲恃宮掖之勢, 奪沁水公主田。 發覺, 帝大怒, 召憲切責曰: "國家棄憲如孤雛腐鼠耳", 卒不能正其罪。 厥後竇氏專權, 父子兄弟充滿朝廷, 朝臣上下莫不附憲, 賴中常侍鄭衆定議誅憲。 史官以爲帝優柔不斷之過。 夫以賤直奪田, 罪之微者也, 一不能正之, 則奸臣無所忌憚, 卒至擅權專恣, 幾傾漢室, 千載之下, 猶可憤懣。 今無咎、無疾, 罪惡貫盈, 非憲之比也。 今不誅之, 將來之禍, 未可知已。 蓋法者, 天下之公也, 不可以私廢也。 矧惟罪盈惡積, 事關宗社, 豈殿下之所得私也? 夫爲臣而不能討其不忠, 厥罪惟均, 豈不殆哉! 蘇軾曰: "臺諫所言, 當隨天下公議。 公議所與, 臺諫亦與之, 公議所擊, 臺諫亦擊之。" 伏望殿下斷以大義, 將無咎、無疾置之於法, 永爲垂世之規。 其二曰, 兵者, 國之大事也; 將者, 人之司命也。 其選不可不重, 故必擇其忠謹勇智者, 爲之將帥, 古今之通義也。 伏見平壤君 趙大臨, 衣冠之冑, 生長富貴, 少不更事, 且無學問, 易動以利, 易怵以威。 是以仁海之奸言一入, 而不虞墮其術中, 此殿下之所親見也。 臣等伏望殿下, 姑釋其兵, 使之怡養精神, 勉强學問, 以待自新之日, 猶未晩也。 臣等昧冒天聰, 敢進狂瞽之言, 伏惟聖鑑留意。

上覽至論大臨之事, 震怒, 令瑞老紫門請暇, 歸其家。 翼日, 下思訥、士文、瑞老、仁山于巡禁司。 上再覽憲府疏曰: "無咎、無疾, 予亦不謂無罪, 然非獨斷, 乃朝廷之同議。 若平壤君之事, 則非獨平壤君也, 予與安城君, 亦墮仁海術中。 于時巡禁司, 罪人未得, 請憑問大臨與仁海, 此亦非墜於術中乎? 人有言曰: ‘王子不可握兵。’ 孝寧、忠寧, 將寄食於世子矣。 駙馬淸平君, 以上黨之弟, 見忌於人, 吉川君年幼。 我之令平壤君握兵者, 所以强公室也。 憲司欲其釋兵, 果何意歟? 且其疏曰: ‘易怵以威, 易動以利。’ 不知將何以怵之, 將何以動之? 當一一鞫問。" 遂命刑曹判書李彬、左副代言安騰, 同巡禁司兼判事南在等, 拷問首發釋兵之議者。 吏曹判書柳亮諫曰: "臺官下獄, 史筆不美。 願殿下親自審問, 諭而釋之。" 上曰: "予之行事, 不美於史筆, 知之審矣。 其能削之乎? 予之傷於苛急, 亦知之明矣, 終不能改也。" 竟不許。 在等問思訥以發言之處, 思訥曰: "臣自除執義之日, 欲請閔氏之罪, 在家草疏, 坐本府出示同僚, 皆以爲可。 其日坐中, 有言請釋大臨兵柄者, 臣曰: ‘此事亦可封章。 然一日之內, 論兩件大事, 何如?’ 對曰: ‘何害之有!’ 遂從衆論, 臣自裁疏。 至如易動以利, 易怵以威, 乃引用古文耳, 非有意而下字也。" 士文曰: "釋兵之議, 臣實發之。" 瑞老曰: "臣亦言可釋兵。" 仁山則惶懼不能出一言。 巡禁司具辭以聞, 上曰: "士文、瑞老, 可拷問指揮之人。 思訥則以行首不能禁止, 夫豈無罪? 然姑勿加刑。 若仁山, 則逼於他人之議, 固不足數矣。"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