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6권, 태종 8년 10월 16일 庚寅 1/5 기사 /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민무구를 옹진진에 민무질을 삼척진에 옮겨 두다. 의정부와 삼성의 상소문
국역
명하여 민무구를 풍해도(豐海道) 옹진진(甕津鎭)에, 민무질을 강원도(江原道) 삼척진(三陟鎭)에 옮겨 두었다. 의정부 좌정승(議政府左政丞) 성석린(成石璘) 등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무구·무질의 불충한 죄는 일국(一國)의 신민(臣民)이 모두 들어서 아는 바입니다. 지난번에 신 등이 두번이나 백관을 거느리고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 훈친(勳親)인 까닭으로 인하여 차마 갑자기 법에 의해 처치하지 못하시고 수령(首領)을 보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구 등은 전하의 재생시킨 은혜를 생각지 않고 붕음(朋淫) 방자(放恣)하여 개전(改悛)하는 바가 없습니다. 근일에 대간(臺諫)이 소(疏)를 올려 법에 따라 시행하기를 여러 번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 이미 그 죄를 아시고도 곧 유윤(兪允)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두렵건대, 간악한 자가 징계되는 바가 없어서 왕법(王法)이 문란해질까 염려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지공(至公)한 도(道)를 넓히셔서 한결같이 대간의 청을 따라 밝게 그 죄를 바루시어 길이 만세(萬世) 인신(人臣)의 경계를 삼으소서."
하였고,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박은(朴訔)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엎드려 교서(敎書)를 살피옵건대,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할 일이요, 충성(忠誠)하고 순실(純實)하여 두 마음이 없는 것은 신하가 감히 힘쓰지 않으랴?’ 하셨으니, 크시도다 성교(聖敎)여! 실로 만세의 자손(子孫)·신서(臣庶)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천하 국가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은 항상 상벌(賞罰)의 당부(當否)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 이미 지공(至公)한 것으로 자처(自處)하셨으니, 군신(群臣)으로서 누가 감히 감격하여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불충한 신하 무구·무질 등만 죄악이 하늘에 닿았는데도 아직 마음을 고치지 않으니, 이른바 ‘외로운 병아리와 썩은 쥐는 호랑이가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고기로 회(膾)를 친다 하더라도 어찌 족히 나라 사람의 분(憤)을 풀 수 있겠습니까? 정부(政府)·대간(臺諫)이 일찍이 여러 번 상소하여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는 왜 곧 베어서 천위(天威)를 베풀어 대소 신민(大小臣民)으로 하여금 상벌(賞罰)의 지공 무사(至公無私)함을 효연(曉然)히 알게 하지 않으십니까? 대개 그 불충한 죄는 천지(天地)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신인(神人)이 함께 분(憤)하게 여기는 것이오니, 군신(群臣)의 청을 기다리지 않고 베는 것이 가합니다. 군신(群臣)이 굳이 청하여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대의(大義)로 결단하지 못하시고, 죄인으로 하여금 세월을 도둑질하여 연장해 가면서 본래 계획했던 땅에서 안민(安眠)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성상(聖上)의 뜻은 갑자기 법에 의해 처치하는 것이 인정(人情)에 차마 행할 수 없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숙(管叔)은 형인데 주공(周公)이 베었어도 성인(聖人)이 되기에 해롭지 않았고, 건성(建成)은 맏이인데 태종(太宗)이 제거하였어도 현주(賢主)가 되기에 해롭지 않았으니, 옛날의 성현(聖賢)은 어찌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없었겠습니까? 형제(兄弟)의 변(變)에 처해서도 오히려 사은(私恩)으로 대의(大義)를 폐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이 척리(戚里)의 흉인(凶人)은 죄(罪)가 차고 의(義)가 끊어져서 결코 용서할 도리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또 상벌이 어긋나게 되면 간사한 것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니, 이는 고금(古今)의 통환(通患)입니다. 지난날 회안(懷安)의 역모(逆謀)는 법(法)에 베임을 용서할 수 없고, 이거이(李居易)의 말은 죽어도 남는 죄가 있사온데, 전하께서 법을 굽혀 은혜를 펴서 포용 보전(包容保全)하시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비록 예전에 없는 성덕(盛德)의 일이기는 하나, 사직(社稷)의 대체(大體)와 군신(君臣)의 대의(大義)에 있어서는 진실로 교서(敎書)에 이른바 ‘고식(姑息)의 계책’입니다. 고식의 계책은 다만 난(亂)을 열어 놓을 뿐이고 후래(後來)를 권하고 징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흉악한 불충한 신하들이 징계할 바가 없어서 오늘날 접종(接踵)하는 것이니 어찌 우연한 일입니까? 자고로 척리 소인(戚里小人)이 국가의 근심이 되는데, 인군(人君)이 그 악한 것을 알고도 토벌하지 못하여 변(變)을 부른 것이 심히 많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심사 숙려(深思熟慮)하시고,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무구 형제의 그 불충한 죄를 바루어서 상벌이 공정하다는 뜻을 보이시고, 또 회안(懷安)과 거이(居易) 등 부자(父子)의 소위(所爲)를 살피시어 만일 혹시라도 스스로 검속(檢束)하지 못하고 개전(改悛)하는 마음이 없거든, 아울러 극법(極法)을 행하여 넘겨다보는 소망을 근절하소서."
하였고, 형조 좌참의(刑曹左參議) 윤규(尹珪) 등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신하로서 불충한 것은 천하의 대역(大逆)이니, 천지가 용납하지 않고 인군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충한 신하 무구·무질을 전하께서 특별히 가벼운 법을 적용하여 안처(安處)하게 하셨는데, 무구·무질이 주상의 은혜를 돌보지 않고 붕당(朋黨)을 끌어들이기를 평시와 다를 바 없이 하고, 또 주상의 은혜를 입어 경사(京師)에 발을 붙인 것이 여러 날이었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옵건대, 지난날에 무구·무질이 오랫동안 병권(兵權)을 잡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을 가로채고 은혜를 팔았으니 의탁하고 아부하는 무리들이 악(惡)을 같이하여 서로 이루어서 은밀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무구·무질이 의(義)로는 비록 국척(國戚)이나, 죄가 십악(十惡)193) 을 범하였으니, 삼가 《대명률(大明律)》에 상고하면 ‘팔의(八議)194) 가 있는데 십악을 범한 자는 이 율(律)을 쓰지 않는다.’ 하였고, 《춘추전(春秋傳)》에 또한 말하기를, ‘난신(亂臣)을 베는 데는 중전(重典)을 쓴다.’ 하였으니, 선왕(先王)의 성법(成法)을 전하께서 가볍게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일시(一時)의 사은(私恩)으로 만세(萬世)의 대법(大法)을 폐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들이 뒤를 이어 나올 것이니, 비록 날마다 주륙(誅戮)을 베푼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제어할 수 있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윤(兪允)해 시행하셔서 왕법(王法)을 보이소서."
하였고, 사간원(司諫院)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유백순(柳伯淳) 등은 말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무구·무질 등은 죄악이 관영(貫盈)하여 천주(天誅)가 용서하지 못할 것이므로, 대간(臺諫)이 교장(交章)하여 죄를 청하기를 두 번 세 번에 이르렀으나, 전하께서 사은(私恩)에 끌리어 일찍이 공의(公義)로 결단하지 못하셨으니, 대소 신료(大小臣僚)로서 통심(痛心)해 하지 않는 자 없습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착한 자가 상(賞)을 받지 못하고 악한 자가 형벌에 나가지 않으면, 비록 요(堯)·순(舜)으로 군신(君臣)을 삼더라도 하루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만세에 바뀌지 않는 지론(至論)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무구·무질을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방헌(邦憲)을 바루셔서 종사(宗社)의 무강(無彊)한 계책을 삼으시고, 자손 만세의 교훈을 보이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유양(柳亮)·대사헌(大司憲) 박은(朴訔)·사간(司諫) 유백순(柳伯淳)·서선(徐選)·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박강생(朴剛生)·검상(檢詳) 신개(申槪)를 불러 명하기를,
"무구·무질이 부처(付處)한 땅에 있는데 어찌 붕당(朋黨)을 불러들이겠는가? 무지(無知)한 사람들이 고구(故舊)의 정(情)으로 인하여 가서 보므로 거절하지 못한 것뿐이다. 내가 일찍이 교서(敎書)를 반포한 것은 대중(大衆)에게 이르고자 한 것이지, 다시 죄를 가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전후(前後)의 언관(言官)이 죄를 청하여 마지 않는다. 지금 국가(國家)가 마침 액운(厄運)을 만나 대상(大喪)을 당하고, 대신(大臣)이 많이 죽으며, 기후(氣候)가 고르지 못하여 음복 양건(陰伏陽愆)하고, 간혹 어둔 안개가 사방에 막히며, 혹은 대수(大水)가 표류(漂流)하여 오곡(五穀)이 흉년들고, 또 사신(使臣)이 나라에 온 지가 이미 반년이 넘었으니, 나의 근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록 이 일이 아니더라도 잠시도 마음 편안할 때가 없는데, 정부(政府)·대간(臺諫)·형조(刑曹)가 또 소장(疏章)을 올리니, 먼 땅에 옮겨 두게 하겠다. 만일 두 사람이 전의 마음을 고치지 않고 붕당(朋黨)을 불러들이면, 왕래하며 서로 만나보는 자도 반드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니, 그때에 이르러 다시 그 죄를 청하면 내가 마땅히 들어서 허락하겠다. 지금 경들을 불러서 밝게 말하는 것은 장차 내 마음을 편케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 뜻을 몸받아 다시는 신청(申請)하지 말라."
하고, 무구·무질을 옮겨 두었다. 조금 뒤에 두 도(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옹진(甕津)·삼척(三陟)의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농장(農場)의 마땅한 곳에 넓고 깨끗한 집을 가려서 주게 하였다.
- [註 193] 십악(十惡) :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의 큰 죄(罪). 즉 모반(謀反)·모대역(謀大逆)·모반(謀叛)·악역(惡逆)·부도(不道)·대불경(大不敬)·불효(不孝)·불목(不睦)·불의(不義)·내란(內亂)을 말함.
- [註 194] 팔의(八議) : 당(唐)나라 때에, 평의(評議)하여 형벌을 감면(減免)하던 여덟 가지 조건. 즉 의친(議親)·의고(議故)·의현(議賢)·의능(議能)·의공(議功)·의귀(議貴)·의근(議勤)·의빈(議賓)을 말함.
원문
○庚寅/命移置閔無咎于豐海道 瓮津鎭, 無疾于江原道 三陟鎭。 議政府左政丞成石璘等上書言:
無咎、無疾不忠之罪, 一國臣民, 所共聞知也。 曩者, 臣等再率百官, 請正其罪, 殿下以勳親之故, 不忍遽置於法, 俾全首領。 無咎等不念殿下再生之恩, 朋淫橫恣, 罔有悛改。 近日, 臺諫上章累請, 依法施行, 殿下旣知其罪, 不卽兪允。 臣等竊恐奸惡無所懲, 而王法紊矣。 伏望殿下, 擴至公之道, 一從臺諫之請, 明正其罪, 永爲萬世人臣之誡。
司憲府大司憲朴訔上書言:
伏審敎書曰: "賞罰惟公, 予之所當爲也。 忠純無貳, 臣其敢不懋哉!" 大哉聖敎! 實爲萬世子孫臣庶之訓也。 天下國家之治亂興亡, 常係乎賞罰之當否。 今我殿下, 旣以至公自處之矣, 群臣孰不感激而盡忠也哉? 獨有不忠之臣無咎、無疾等罪惡滔天, 而尙不悛心, 所謂孤雛腐鼠, 有虎不食者也。 縱膾其肉, 烏足以快國人之憤哉? 政府臺諫累曾上疏, 請正其罪, 殿下何不卽誅, 以張天威, 使大小臣民, 曉然知賞罰之至公無所私乎? 蓋其不忠之罪, 天地所不容, 神人所共憤, 不待群臣之請而誅之可也。 群臣固請, 而殿下猶不斷之以大義, 乃令罪辜偸延歲月, 安眠於夙計之地, 何哉? 聖意不過遽置於法, 情所不忍。 然則管叔兄也, 而周公誅之, 不害爲聖人; 建成長也, 而太宗除之, 不害爲賢主。 古之聖賢, 豈無不忍之心者哉? 其處兄弟之變, 尙不以私恩廢大義。 況此戚里凶人, 罪盈義絶, 決無可赦之理者乎? 且賞罰或差, 則姦邪必作, 古今之通患也。 向者懷安之逆, 法不容誅; 居易之言, 死有餘辜, 殿下屈法伸恩, 包容保全, 以至于今。 雖是曠古所無盛德之事, 然於社稷之大體, 君臣之大義, 則誠敎書所謂姑息之計也。 姑息之計, 祇以啓亂, 非所以勸懲於後來也。 故使兇頑不忠之臣無所懲, 而接踵於今日, 豈偶然哉! 自古戚里小人, 爲國家患, 人君知其惡而不能討, 馴致其變者甚多。 願殿下深思熟慮, 斷以大義, 將無咎兄弟, 正其不忠之罪, 以示賞罰惟公之義, 又察懷安、居易等父子所爲, 如或不自檢束, 罔有悛心, 則竝行極法, 以絶覬覦之望。
刑曹左參議尹珪等上書言:
臣之不忠, 天下之大逆, 天地所不容, 人君所不赦, 不忠之臣無咎、無疾, 殿下特垂輕典, 賜之安處。 其無咎、無疾, 不顧上恩, 援引朋黨, 無異平昔, 又蒙上恩, 接足於京師, 許多日矣。 臣等竊念, 曩者無咎、無疾, 久執兵權, 掠美市恩, 其依附之徒, 同惡相濟, 潛圖不軌, 固難測矣, 而無咎、無疾, 義雖國戚, 罪犯十惡。 謹按《大明律》, 有八議, 其犯十惡者, 不用此律; 《春秋傳》亦曰: "誅亂臣用重典。" 先王成憲, 非殿下之所輕改。 若以一時之私恩, 廢萬世之大法, 則如此之輩, 繼踵而出, 雖日施誅戮, 何能制之! 伏望殿下, 兪允施行, 以示王法。
司諫院左司諫大夫柳伯淳等言:
臣等伏見無咎、無疾等罪惡貫盈, 天誅所不赦。 臺諫交章請罪, 至再至三, 殿下牽於私恩, 曾不斷以公義, 大小臣僚罔不痛心。 《傳》曰: "善不蒙賞, 惡不卽刑, 雖以堯、舜爲君臣, 不能一日治天下。" 此萬世不易之至論。 伏望殿下, 將無咎、無疾, 斷以大義, 以正邦憲, 以爲宗社無疆之計, 以示子孫萬世之訓。
上於是召參贊議政府事柳亮、大司憲朴訔、司諫柳伯淳ㆍ徐選、議政府舍人朴剛生、檢詳申槪, 命之曰:
無咎、無疾在付處之地, 豈招引朋黨者乎? 無知之人, 因故舊之情而往見, 但不能去絶耳。 予之曾布敎書, 欲以諭衆, 非欲更加罪也, 前後言官請罪不已。 今國家適逢厄運, 遭此大喪, 大臣多歿, 氣候不齊, 陰伏陽愆, 或沈霧四塞, 或大水漂流, 五穀不登。 且使臣到國, 已逾半年, 予之憂患, 非一二也。 雖非此事, 未嘗頃刻而安心, 而政府臺諫刑曹又有章疏, 俾令移置于遠地。 若二人不改前心, 招引朋黨, 則其往來相見者, 亦必有異心。 至時更請其罪, 予當聽許。 今召卿等而明言之者, 將欲安吾心耳。 宜體此意, 勿復更有申請。
乃移置無咎、無疾, 尋命兩道監司, 令瓮津、三陟守令, 擇宜農場之地, 寬淨家舍以給之。
태종실록16권, 태종 8년 10월 16일 庚寅 1/5 기사 /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민무구를 옹진진에 민무질을 삼척진에 옮겨 두다. 의정부와 삼성의 상소문
국역
명하여 민무구를 풍해도(豐海道) 옹진진(甕津鎭)에, 민무질을 강원도(江原道) 삼척진(三陟鎭)에 옮겨 두었다. 의정부 좌정승(議政府左政丞) 성석린(成石璘) 등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무구·무질의 불충한 죄는 일국(一國)의 신민(臣民)이 모두 들어서 아는 바입니다. 지난번에 신 등이 두번이나 백관을 거느리고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 훈친(勳親)인 까닭으로 인하여 차마 갑자기 법에 의해 처치하지 못하시고 수령(首領)을 보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구 등은 전하의 재생시킨 은혜를 생각지 않고 붕음(朋淫) 방자(放恣)하여 개전(改悛)하는 바가 없습니다. 근일에 대간(臺諫)이 소(疏)를 올려 법에 따라 시행하기를 여러 번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 이미 그 죄를 아시고도 곧 유윤(兪允)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두렵건대, 간악한 자가 징계되는 바가 없어서 왕법(王法)이 문란해질까 염려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지공(至公)한 도(道)를 넓히셔서 한결같이 대간의 청을 따라 밝게 그 죄를 바루시어 길이 만세(萬世) 인신(人臣)의 경계를 삼으소서."
하였고,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박은(朴訔)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엎드려 교서(敎書)를 살피옵건대,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할 일이요, 충성(忠誠)하고 순실(純實)하여 두 마음이 없는 것은 신하가 감히 힘쓰지 않으랴?’ 하셨으니, 크시도다 성교(聖敎)여! 실로 만세의 자손(子孫)·신서(臣庶)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천하 국가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은 항상 상벌(賞罰)의 당부(當否)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 이미 지공(至公)한 것으로 자처(自處)하셨으니, 군신(群臣)으로서 누가 감히 감격하여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불충한 신하 무구·무질 등만 죄악이 하늘에 닿았는데도 아직 마음을 고치지 않으니, 이른바 ‘외로운 병아리와 썩은 쥐는 호랑이가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고기로 회(膾)를 친다 하더라도 어찌 족히 나라 사람의 분(憤)을 풀 수 있겠습니까? 정부(政府)·대간(臺諫)이 일찍이 여러 번 상소하여 그 죄를 바루기를 청하였사온데, 전하께서는 왜 곧 베어서 천위(天威)를 베풀어 대소 신민(大小臣民)으로 하여금 상벌(賞罰)의 지공 무사(至公無私)함을 효연(曉然)히 알게 하지 않으십니까? 대개 그 불충한 죄는 천지(天地)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신인(神人)이 함께 분(憤)하게 여기는 것이오니, 군신(群臣)의 청을 기다리지 않고 베는 것이 가합니다. 군신(群臣)이 굳이 청하여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대의(大義)로 결단하지 못하시고, 죄인으로 하여금 세월을 도둑질하여 연장해 가면서 본래 계획했던 땅에서 안민(安眠)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성상(聖上)의 뜻은 갑자기 법에 의해 처치하는 것이 인정(人情)에 차마 행할 수 없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숙(管叔)은 형인데 주공(周公)이 베었어도 성인(聖人)이 되기에 해롭지 않았고, 건성(建成)은 맏이인데 태종(太宗)이 제거하였어도 현주(賢主)가 되기에 해롭지 않았으니, 옛날의 성현(聖賢)은 어찌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없었겠습니까? 형제(兄弟)의 변(變)에 처해서도 오히려 사은(私恩)으로 대의(大義)를 폐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이 척리(戚里)의 흉인(凶人)은 죄(罪)가 차고 의(義)가 끊어져서 결코 용서할 도리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또 상벌이 어긋나게 되면 간사한 것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니, 이는 고금(古今)의 통환(通患)입니다. 지난날 회안(懷安)의 역모(逆謀)는 법(法)에 베임을 용서할 수 없고, 이거이(李居易)의 말은 죽어도 남는 죄가 있사온데, 전하께서 법을 굽혀 은혜를 펴서 포용 보전(包容保全)하시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비록 예전에 없는 성덕(盛德)의 일이기는 하나, 사직(社稷)의 대체(大體)와 군신(君臣)의 대의(大義)에 있어서는 진실로 교서(敎書)에 이른바 ‘고식(姑息)의 계책’입니다. 고식의 계책은 다만 난(亂)을 열어 놓을 뿐이고 후래(後來)를 권하고 징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흉악한 불충한 신하들이 징계할 바가 없어서 오늘날 접종(接踵)하는 것이니 어찌 우연한 일입니까? 자고로 척리 소인(戚里小人)이 국가의 근심이 되는데, 인군(人君)이 그 악한 것을 알고도 토벌하지 못하여 변(變)을 부른 것이 심히 많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심사 숙려(深思熟慮)하시고,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무구 형제의 그 불충한 죄를 바루어서 상벌이 공정하다는 뜻을 보이시고, 또 회안(懷安)과 거이(居易) 등 부자(父子)의 소위(所爲)를 살피시어 만일 혹시라도 스스로 검속(檢束)하지 못하고 개전(改悛)하는 마음이 없거든, 아울러 극법(極法)을 행하여 넘겨다보는 소망을 근절하소서."
하였고, 형조 좌참의(刑曹左參議) 윤규(尹珪) 등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신하로서 불충한 것은 천하의 대역(大逆)이니, 천지가 용납하지 않고 인군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충한 신하 무구·무질을 전하께서 특별히 가벼운 법을 적용하여 안처(安處)하게 하셨는데, 무구·무질이 주상의 은혜를 돌보지 않고 붕당(朋黨)을 끌어들이기를 평시와 다를 바 없이 하고, 또 주상의 은혜를 입어 경사(京師)에 발을 붙인 것이 여러 날이었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옵건대, 지난날에 무구·무질이 오랫동안 병권(兵權)을 잡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을 가로채고 은혜를 팔았으니 의탁하고 아부하는 무리들이 악(惡)을 같이하여 서로 이루어서 은밀히 불궤(不軌)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무구·무질이 의(義)로는 비록 국척(國戚)이나, 죄가 십악(十惡)193) 을 범하였으니, 삼가 《대명률(大明律)》에 상고하면 ‘팔의(八議)194) 가 있는데 십악을 범한 자는 이 율(律)을 쓰지 않는다.’ 하였고, 《춘추전(春秋傳)》에 또한 말하기를, ‘난신(亂臣)을 베는 데는 중전(重典)을 쓴다.’ 하였으니, 선왕(先王)의 성법(成法)을 전하께서 가볍게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일시(一時)의 사은(私恩)으로 만세(萬世)의 대법(大法)을 폐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들이 뒤를 이어 나올 것이니, 비록 날마다 주륙(誅戮)을 베푼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제어할 수 있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윤(兪允)해 시행하셔서 왕법(王法)을 보이소서."
하였고, 사간원(司諫院)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 유백순(柳伯淳) 등은 말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무구·무질 등은 죄악이 관영(貫盈)하여 천주(天誅)가 용서하지 못할 것이므로, 대간(臺諫)이 교장(交章)하여 죄를 청하기를 두 번 세 번에 이르렀으나, 전하께서 사은(私恩)에 끌리어 일찍이 공의(公義)로 결단하지 못하셨으니, 대소 신료(大小臣僚)로서 통심(痛心)해 하지 않는 자 없습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착한 자가 상(賞)을 받지 못하고 악한 자가 형벌에 나가지 않으면, 비록 요(堯)·순(舜)으로 군신(君臣)을 삼더라도 하루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만세에 바뀌지 않는 지론(至論)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무구·무질을 대의(大義)로 결단하여 방헌(邦憲)을 바루셔서 종사(宗社)의 무강(無彊)한 계책을 삼으시고, 자손 만세의 교훈을 보이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유양(柳亮)·대사헌(大司憲) 박은(朴訔)·사간(司諫) 유백순(柳伯淳)·서선(徐選)·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박강생(朴剛生)·검상(檢詳) 신개(申槪)를 불러 명하기를,
"무구·무질이 부처(付處)한 땅에 있는데 어찌 붕당(朋黨)을 불러들이겠는가? 무지(無知)한 사람들이 고구(故舊)의 정(情)으로 인하여 가서 보므로 거절하지 못한 것뿐이다. 내가 일찍이 교서(敎書)를 반포한 것은 대중(大衆)에게 이르고자 한 것이지, 다시 죄를 가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전후(前後)의 언관(言官)이 죄를 청하여 마지 않는다. 지금 국가(國家)가 마침 액운(厄運)을 만나 대상(大喪)을 당하고, 대신(大臣)이 많이 죽으며, 기후(氣候)가 고르지 못하여 음복 양건(陰伏陽愆)하고, 간혹 어둔 안개가 사방에 막히며, 혹은 대수(大水)가 표류(漂流)하여 오곡(五穀)이 흉년들고, 또 사신(使臣)이 나라에 온 지가 이미 반년이 넘었으니, 나의 근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록 이 일이 아니더라도 잠시도 마음 편안할 때가 없는데, 정부(政府)·대간(臺諫)·형조(刑曹)가 또 소장(疏章)을 올리니, 먼 땅에 옮겨 두게 하겠다. 만일 두 사람이 전의 마음을 고치지 않고 붕당(朋黨)을 불러들이면, 왕래하며 서로 만나보는 자도 반드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니, 그때에 이르러 다시 그 죄를 청하면 내가 마땅히 들어서 허락하겠다. 지금 경들을 불러서 밝게 말하는 것은 장차 내 마음을 편케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 뜻을 몸받아 다시는 신청(申請)하지 말라."
하고, 무구·무질을 옮겨 두었다. 조금 뒤에 두 도(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옹진(甕津)·삼척(三陟)의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농장(農場)의 마땅한 곳에 넓고 깨끗한 집을 가려서 주게 하였다.
- [註 193] 십악(十惡) :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의 큰 죄(罪). 즉 모반(謀反)·모대역(謀大逆)·모반(謀叛)·악역(惡逆)·부도(不道)·대불경(大不敬)·불효(不孝)·불목(不睦)·불의(不義)·내란(內亂)을 말함.
- [註 194] 팔의(八議) : 당(唐)나라 때에, 평의(評議)하여 형벌을 감면(減免)하던 여덟 가지 조건. 즉 의친(議親)·의고(議故)·의현(議賢)·의능(議能)·의공(議功)·의귀(議貴)·의근(議勤)·의빈(議賓)을 말함.
원문
○庚寅/命移置閔無咎于豐海道 瓮津鎭, 無疾于江原道 三陟鎭。 議政府左政丞成石璘等上書言:
無咎、無疾不忠之罪, 一國臣民, 所共聞知也。 曩者, 臣等再率百官, 請正其罪, 殿下以勳親之故, 不忍遽置於法, 俾全首領。 無咎等不念殿下再生之恩, 朋淫橫恣, 罔有悛改。 近日, 臺諫上章累請, 依法施行, 殿下旣知其罪, 不卽兪允。 臣等竊恐奸惡無所懲, 而王法紊矣。 伏望殿下, 擴至公之道, 一從臺諫之請, 明正其罪, 永爲萬世人臣之誡。
司憲府大司憲朴訔上書言:
伏審敎書曰: "賞罰惟公, 予之所當爲也。 忠純無貳, 臣其敢不懋哉!" 大哉聖敎! 實爲萬世子孫臣庶之訓也。 天下國家之治亂興亡, 常係乎賞罰之當否。 今我殿下, 旣以至公自處之矣, 群臣孰不感激而盡忠也哉? 獨有不忠之臣無咎、無疾等罪惡滔天, 而尙不悛心, 所謂孤雛腐鼠, 有虎不食者也。 縱膾其肉, 烏足以快國人之憤哉? 政府臺諫累曾上疏, 請正其罪, 殿下何不卽誅, 以張天威, 使大小臣民, 曉然知賞罰之至公無所私乎? 蓋其不忠之罪, 天地所不容, 神人所共憤, 不待群臣之請而誅之可也。 群臣固請, 而殿下猶不斷之以大義, 乃令罪辜偸延歲月, 安眠於夙計之地, 何哉? 聖意不過遽置於法, 情所不忍。 然則管叔兄也, 而周公誅之, 不害爲聖人; 建成長也, 而太宗除之, 不害爲賢主。 古之聖賢, 豈無不忍之心者哉? 其處兄弟之變, 尙不以私恩廢大義。 況此戚里凶人, 罪盈義絶, 決無可赦之理者乎? 且賞罰或差, 則姦邪必作, 古今之通患也。 向者懷安之逆, 法不容誅; 居易之言, 死有餘辜, 殿下屈法伸恩, 包容保全, 以至于今。 雖是曠古所無盛德之事, 然於社稷之大體, 君臣之大義, 則誠敎書所謂姑息之計也。 姑息之計, 祇以啓亂, 非所以勸懲於後來也。 故使兇頑不忠之臣無所懲, 而接踵於今日, 豈偶然哉! 自古戚里小人, 爲國家患, 人君知其惡而不能討, 馴致其變者甚多。 願殿下深思熟慮, 斷以大義, 將無咎兄弟, 正其不忠之罪, 以示賞罰惟公之義, 又察懷安、居易等父子所爲, 如或不自檢束, 罔有悛心, 則竝行極法, 以絶覬覦之望。
刑曹左參議尹珪等上書言:
臣之不忠, 天下之大逆, 天地所不容, 人君所不赦, 不忠之臣無咎、無疾, 殿下特垂輕典, 賜之安處。 其無咎、無疾, 不顧上恩, 援引朋黨, 無異平昔, 又蒙上恩, 接足於京師, 許多日矣。 臣等竊念, 曩者無咎、無疾, 久執兵權, 掠美市恩, 其依附之徒, 同惡相濟, 潛圖不軌, 固難測矣, 而無咎、無疾, 義雖國戚, 罪犯十惡。 謹按《大明律》, 有八議, 其犯十惡者, 不用此律; 《春秋傳》亦曰: "誅亂臣用重典。" 先王成憲, 非殿下之所輕改。 若以一時之私恩, 廢萬世之大法, 則如此之輩, 繼踵而出, 雖日施誅戮, 何能制之! 伏望殿下, 兪允施行, 以示王法。
司諫院左司諫大夫柳伯淳等言:
臣等伏見無咎、無疾等罪惡貫盈, 天誅所不赦。 臺諫交章請罪, 至再至三, 殿下牽於私恩, 曾不斷以公義, 大小臣僚罔不痛心。 《傳》曰: "善不蒙賞, 惡不卽刑, 雖以堯、舜爲君臣, 不能一日治天下。" 此萬世不易之至論。 伏望殿下, 將無咎、無疾, 斷以大義, 以正邦憲, 以爲宗社無疆之計, 以示子孫萬世之訓。
上於是召參贊議政府事柳亮、大司憲朴訔、司諫柳伯淳ㆍ徐選、議政府舍人朴剛生、檢詳申槪, 命之曰:
無咎、無疾在付處之地, 豈招引朋黨者乎? 無知之人, 因故舊之情而往見, 但不能去絶耳。 予之曾布敎書, 欲以諭衆, 非欲更加罪也, 前後言官請罪不已。 今國家適逢厄運, 遭此大喪, 大臣多歿, 氣候不齊, 陰伏陽愆, 或沈霧四塞, 或大水漂流, 五穀不登。 且使臣到國, 已逾半年, 予之憂患, 非一二也。 雖非此事, 未嘗頃刻而安心, 而政府臺諫刑曹又有章疏, 俾令移置于遠地。 若二人不改前心, 招引朋黨, 則其往來相見者, 亦必有異心。 至時更請其罪, 予當聽許。 今召卿等而明言之者, 將欲安吾心耳。 宜體此意, 勿復更有申請。
乃移置無咎、無疾, 尋命兩道監司, 令瓮津、三陟守令, 擇宜農場之地, 寬淨家舍以給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