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4권, 태종 2년 10월 27일 丁丑 3/3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단양강에 놀이하다 기생이 빠져죽자 지단양군사 박안의를 파직하다
국역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 박안의(朴安義)를 파직하였다. 처음에 안의가 청풍 군사(淸風郡事) 황보전(皇甫琠)·강릉 판관(江陵判官) 김질(金晊)·제주 감무(提州監務) 유여(柳洳) 등과 더불어 단양강(丹陽江) 위에서 배를 띄우고 연음(宴飮)하다가, 배가 기울어져서 기생 하나와 아전 하나가 물에 빠져 죽었다. 관찰사(觀察使) 함부림(咸傅霖)이 이를 안핵(按覈)하여 태형(笞刑)을 쳐서 환임(還任)시켰다. 사간원(司諫院)에서 듣고 헌사(憲司)에 이문(移文)하여 추핵(推劾)하였다. 마침 대사(大赦)가 있었는데, 이무(李茂) 등이 장계(狀啓)하여 안의(安義)를 용서해서 환임(還任)시키기를 청하였으니, 무(茂)는 단양 사람이었다.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이 그 장계(狀啓)를 임금께 올리니, 임금이 이를 보고 석명에게 묻기를,
"안의가 무슨 죄인가?"
하였다. 석명이 갗추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죽은 자가 있으면 어찌하여 일찍이 아뢰지 않고, 지금 사(赦)를 당해서야 용서하기를 청하는가? 매사(每事)가 이와 같다면, 내가 국사를 보지 않는 것이 옳다. 부림(傅霖)이 안의(安義)를 파직시키고 의정부에 보고하고 나서, 헌사(憲司)에 이문(移文)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태형(笞刑)만 가하여 환임(還任)시켰으니 어찌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것인가? 사욕(私慾)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것은 큰일이다."
하니, 석명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원문
태종 2년 (1402) 10월 27일
국역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 박안의(朴安義)를 파직하였다. 처음에 안의가 청풍 군사(淸風郡事) 황보전(皇甫琠)·강릉 판관(江陵判官) 김질(金晊)·제주 감무(提州監務) 유여(柳洳) 등과 더불어 단양강(丹陽江) 위에서 배를 띄우고 연음(宴飮)하다가, 배가 기울어져서 기생 하나와 아전 하나가 물에 빠져 죽었다. 관찰사(觀察使) 함부림(咸傅霖)이 이를 안핵(按覈)하여 태형(笞刑)을 쳐서 환임(還任)시켰다. 사간원(司諫院)에서 듣고 헌사(憲司)에 이문(移文)하여 추핵(推劾)하였다. 마침 대사(大赦)가 있었는데, 이무(李茂) 등이 장계(狀啓)하여 안의(安義)를 용서해서 환임(還任)시키기를 청하였으니, 무(茂)는 단양 사람이었다.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이 그 장계(狀啓)를 임금께 올리니, 임금이 이를 보고 석명에게 묻기를,
"안의가 무슨 죄인가?"
하였다. 석명이 갗추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죽은 자가 있으면 어찌하여 일찍이 아뢰지 않고, 지금 사(赦)를 당해서야 용서하기를 청하는가? 매사(每事)가 이와 같다면, 내가 국사를 보지 않는 것이 옳다. 부림(傅霖)이 안의(安義)를 파직시키고 의정부에 보고하고 나서, 헌사(憲司)에 이문(移文)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태형(笞刑)만 가하여 환임(還任)시켰으니 어찌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것인가? 사욕(私慾)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것은 큰일이다."
하니, 석명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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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2년 (1402)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