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4월 3일 乙卯 4/4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의안 대군 이화 등과 중국 사신의 인격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국역
임금이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등과 더불어 도적을 만난 일에 대하여 의논하기를,
"이 변(變)을 당하게 된 것은 모두가 사신(使臣)이 마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 소경(祝少卿)은 일이 끝나 벌써 돌아갔고, 손 소경은 뇌물을 요구하여 말이 좋지 않다 하고, 유 감생은 평양에 이르러서 병을 핑계하고 드러누워 세월을 지연시키다가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였다. 박석명이 아뢰기를,
"지금 중국 조정의 사람들은 거개가 이와 같습니다. 서쪽에는 연(燕)이 있어서 배반하옵고, 북쪽에는 흉노(匈奴)가 있사옵고, 중간에는 초적(草賊)이 있사온데 이것은 놓아두고 근심하지 않으면서 도망한 군사들만 추격하오니, 요동 서 총병(徐摠兵)의 도모함도 매우 얕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단목지는 진실로 소인이다. 술과 밥만을 좋아하니 말이오."
하니, 박석명이 대답하기를,
"근래의 사신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중국에 참으로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오직 축 소경만이 일찍이 말하기를, ‘육유생(陸儒生) 때문에 천하를 잃어버릴 뻔 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근심하는 선비이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이빈이 비보(飛報)하기를,
"도적의 무리들이 온 곳을 정탐해 본즉, 바로 연(燕)을 정벌하던 군사들의 패잔병들이오라, 그 수가 2백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손 소경이 1백여 기(騎)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종적을 찾아보았으나 도적은 한 사람도 없이 벌써 요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니, 나라 사람들의 근심과 의심이 약간 풀리었다. 임금이 사람을 시켜 단목지에게 말하니, 단목지가 매우 기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上與義安大君 和、判承樞府事趙英茂等, 議遇賊之事曰: "致此變者, 皆由使非其人故也。 祝少卿事畢旣還, 孫少卿欲求贈賚, 而乃以馬爲不良, 柳監生至平壤稱疾而臥, 淹延日月, 遂至於此。" 朴錫命曰: "今中朝之人, 率皆如此。 西有燕反, 北有(凶奴)〔匈奴〕 , 間有草賊, 釋此不憂, 惟逃軍是追, 遼東 徐摠兵之爲謀亦淺矣。" 上曰: "如端木智者, 誠小人也。 惟酒食是好。" 錫命曰: "近來使臣類如此, 中國實無人也。" 上曰: "唯祝少卿嘗曰: ‘以陸儒生幾失天下。’ 此卽憂國之士也。" 未幾, 彬又飛報: "探賊徒所自, 乃征燕潰卒, 其數不過二百餘人。 孫少卿率百餘騎, 渡鴨綠江尋蹤, 見無賊人, 已還遼東矣。" 於是, 國人憂疑稍解, 上使人言於端木智, 智喜甚。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국역
임금이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등과 더불어 도적을 만난 일에 대하여 의논하기를,
"이 변(變)을 당하게 된 것은 모두가 사신(使臣)이 마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 소경(祝少卿)은 일이 끝나 벌써 돌아갔고, 손 소경은 뇌물을 요구하여 말이 좋지 않다 하고, 유 감생은 평양에 이르러서 병을 핑계하고 드러누워 세월을 지연시키다가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였다. 박석명이 아뢰기를,
"지금 중국 조정의 사람들은 거개가 이와 같습니다. 서쪽에는 연(燕)이 있어서 배반하옵고, 북쪽에는 흉노(匈奴)가 있사옵고, 중간에는 초적(草賊)이 있사온데 이것은 놓아두고 근심하지 않으면서 도망한 군사들만 추격하오니, 요동 서 총병(徐摠兵)의 도모함도 매우 얕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단목지는 진실로 소인이다. 술과 밥만을 좋아하니 말이오."
하니, 박석명이 대답하기를,
"근래의 사신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중국에 참으로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오직 축 소경만이 일찍이 말하기를, ‘육유생(陸儒生) 때문에 천하를 잃어버릴 뻔 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근심하는 선비이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이빈이 비보(飛報)하기를,
"도적의 무리들이 온 곳을 정탐해 본즉, 바로 연(燕)을 정벌하던 군사들의 패잔병들이오라, 그 수가 2백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손 소경이 1백여 기(騎)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종적을 찾아보았으나 도적은 한 사람도 없이 벌써 요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니, 나라 사람들의 근심과 의심이 약간 풀리었다. 임금이 사람을 시켜 단목지에게 말하니, 단목지가 매우 기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上與義安大君 和、判承樞府事趙英茂等, 議遇賊之事曰: "致此變者, 皆由使非其人故也。 祝少卿事畢旣還, 孫少卿欲求贈賚, 而乃以馬爲不良, 柳監生至平壤稱疾而臥, 淹延日月, 遂至於此。" 朴錫命曰: "今中朝之人, 率皆如此。 西有燕反, 北有(凶奴)〔匈奴〕 , 間有草賊, 釋此不憂, 惟逃軍是追, 遼東 徐摠兵之爲謀亦淺矣。" 上曰: "如端木智者, 誠小人也。 惟酒食是好。" 錫命曰: "近來使臣類如此, 中國實無人也。" 上曰: "唯祝少卿嘗曰: ‘以陸儒生幾失天下。’ 此卽憂國之士也。" 未幾, 彬又飛報: "探賊徒所自, 乃征燕潰卒, 其數不過二百餘人。 孫少卿率百餘騎, 渡鴨綠江尋蹤, 見無賊人, 已還遼東矣。" 於是, 國人憂疑稍解, 上使人言於端木智, 智喜甚。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30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