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실록6권, 정종 2년 12월 1일 辛卯 6/9 기사 /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사헌부와 문하부에서 번갈아 상소하여 권희달을 귀양보내기를 청했으나 파직만 시키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 김약채(金若采) 등이 상소하였다.
"지난번에 권희달(權希達)이 완악(頑惡)하고 강포(强暴)하여 법을 범하였으므로, 본부(本府)에서 서리(書吏)를 보내어 지켰는데, 권희달이 밤중에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서리를 구타하고 도망쳐 나갔습니다. 본부에서 상서(上書)하여 죄를 청하니, 전하가 명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습니다. 신 등은 전하께서 반드시 그 죄를 엄격히 징치하시리라 여겼는데, 지금 고쳐 대장군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횡포하고 난동하는 신하를 징계할 길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그 죄를 밝게 바루어 외방에 귀양보내소서."
임금이 특별히 용서하고 말하기를,
"겨울에 옥에 갇힌 지가 지금 이미 17일이나 되었으니, 족히 징계되었다. 다시는 거론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憲府)에서 다시 상소(上疏)하여, 권희달의 죄는 마땅히 외방에 귀양보내야 된다고 거듭 청하였고, 문하부(門下府)에서 또한 상언(上言)하였다.
"상벌(賞罰)은 정사의 큰 권병(權柄)입니다. 상이 지나치지 않고 벌이 한도를 넘지 않은 연후에야, 사람을 권장하고 징계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인주(人主)가 마땅히 삼가야 할 일입니다. 지난번에 대장군 권희달이 광포(狂暴)하여 법을 범하고,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헌사의 서리(書吏)를 구타하였습니다. 헌사에서 상서(上書)하여 죄를 청하니, 전하가 명하여 순군옥에 가두었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전하의 강명(剛明)하신 도량으로 반드시 그 죄를 명정(明正)하여 그 악(惡)한 것을 징치하시리라 여겼는데, 금월 11일에 비하(批下)하신 것을 엎드려 보니, 권희달을 그대로 대장군을 제수하시어, 득죄해 옥에 있는 자로 하여금 도리어 벼슬과 상을 받게 하였으니, 신 등은 상벌(賞罰)의 법이 이것으로 인하여 분수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권희달이 광포한 짓을 자행하여 사금(司禁)을 임의로 구타하였으니, 이미 큰 죄악을 저질렀는데, 하물며 헌사(憲司)에서 수직(守直)하는 때를 당하여 서리(書吏)를 구타하고 갑옷을 입고 도망하여 나갔으니, 권희달이 무슨 생각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하건대, 헌사(憲司)에 내려 그 작첩(爵牒)을 거두고 율에 의하여 죄를 결단하소서."
소(疏)가 올라가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문하부(門下府)에서 다시 상소하였다.
"권희달이 광포하여 법을 범한 일을, 글장을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전하께서 ‘17일 동안이나 구금(拘禁)하여 족히 징계하였으니 거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 등이 황공하고 마음이 간절하여 다시 천총(天聰)을 더럽힙니다. 신 등이 가만히 보건대,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과오나 실수는 용서하고, 믿는 것이 있어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은 극형에 처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성인이 후세에 경계를 남긴 큰 교훈입니다. 지금 권희달이 사금(司禁)을 마음대로 구타하고, 또 수직(守直)하는 즈음에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헌사(憲司)의 서리(書吏)를 구타하고, 도망하여 나가서 횡행하며 제 마음대로 방자히 굴어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력을 믿고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니, 어찌 오래 가두어 징계한 것으로 족히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즉위하신 처음을 당하여 진실로 마땅히 신상필벌(信賞必罰)하여 백성의 뜻을 정할 것이요, 한 사람 때문에 만세에 바꾸지 못할 큰 법을 폐할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만일 권희달에게 법을 굽히고 은혜를 펴서 그 죄를 면하게 하시면, 신 등은 횡포하고 난동하는 무리가 장차 뒤따라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권희달을 특별히 유사(攸司)에 내려 그 직첩을 거두고, 율에 의하여 죄를 결단해서 나라 법을 바로잡으소서."
사헌부에서 다시 상소하였다.
"신 등은 들으니, 법은 규구(規矩)와 같아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함께 의뢰하는 것이니, 옛날의 어진 왕들이 삼척법(三尺法)102) 을 굳게 지킨 것이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신 등이 생각하기를, 권희달이 방종하여 유사(攸司)를 능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리의 부녀자를 겁탈하여 방자하고 음란한 짓이 도수(度數)가 없고, 그 아내를 때리고 그 장모를 능욕하는 것이 그 상사(常事)이니, 실로 인륜(人倫)에 어그러집니다. 비록 가금(呵禁)의 어려움과 숙직의 수고가 있더라도 어찌 아낄 것이 있겠습니까? 전하의 너그럽게 용서하는 어지심이 권희달에게는 다행이지마는, 그 인주(人主)가 벼슬을 설치하고 법을 세운 뜻에 어떠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곧 권희달을 외방에 귀양보내어, 인신(人臣)이 전하를 위해 기강을 바로잡고 상벌을 밝히려는 소망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상벌이 밝지 아니하면, 기강이 서지 못하고, 풍속이 아름다와지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이 모두 보고 다만 파직만 시켰다.
- [註 102] 삼척법(三尺法) : 옛날 중국에서 석 자 길이의 대쪽에 법률을 기록하였던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원문
○司憲府大司憲金若采等上疏曰:
頃者, 權希達頑暴犯法, 本府遣吏以守, 希達於中夜, 被甲執兵, 打吏逃出。 本府上書請罪, 殿下命囚巡軍, 臣等謂殿下必痛懲其罪, 今乃改授大將軍。 臣等竊恐橫亂之臣, 無所懲矣。 伏望明正其罪, 竄逐于外。
特原之曰: "冬月繫獄, 今已十七日, 足以懲矣。 更勿擧論。" 憲府復上疏申請希達之罪, 當竄逐于外。 門下府亦上言:
賞罰, 政之大柄。 賞而不濫, 罰而不僭, 然後人得而勸懲, 此實人主之所當謹也。 頃者, 大將軍權希達, 狂暴犯法, 被甲執兵, 歐打憲司書吏。 憲司上書請罪, 殿下命囚巡軍, 臣等以爲殿下剛明之量, 必明正其罪, 以懲其惡。 伏覩今月十一日批, 以希達仍授大將軍, 使得罪在獄者, 反蒙爵賞, 臣等竊恐賞罰之法, 因此而濫矣。 希達恣行狂暴, 擅打司禁, 已爲大惡。 況當憲司守直, 歐打書吏, 被甲逃出? 未知希達以何心, 而至此極也。 請下憲司, 收其爵牒, 按律科罪。
疏上, 皆不允。
門下府再上疏曰:
希達狂暴犯法之事, 上章請罪, 殿下以十七日囚禁, 足以懲戒, 毋得擧論。 臣等惶恐隕越, 再瀆天聰。 臣等竊見, 《書》曰: "眚災肆赦, 怙終賊刑。" 此聖人所以垂戒後世之大訓也。 今希達擅打司禁, 又於守直之際, 被甲執兵, 歐打憲司之吏, 逃出橫行, 用意自恣, 不畏邦憲, 是怙終之甚者也。 豈以久囚懲戒, 爲足免哉! 況當卽位之初, 誠宜信賞必罰, 以定民志。 不可以一人, 廢萬世不易之大法也。 殿下若於希達, 屈法伸恩, 使免其罪, 臣等竊恐橫亂之徒, 將接踵而起矣。 伏望將希達, 特下攸司, 收其職牒, 按律科罪, 以正邦憲。
司憲府復上疏曰:
臣等聞, 法猶規矩, 爲天下國家者, 所共倚賴。 古先哲王, 固守三尺, 良以此也。 臣等以爲希達, 不惟縱逸, 而埋沒所司, 刦掠巷婦, 恣淫無度, 歐撻其妻, 陵慢其姑, 是其常事, 實乖人倫。 雖有呵禁之愎, 直宿之勞, 何足惜哉! 殿下寬宥之仁, 於希達則幸矣, 其乃人主設官立法之義何? 願殿下, 卽將希達, 竄逐于外, 以遂人臣爲殿下正紀綱明賞罰之望。 賞罰不明, 則紀綱不立, 而風俗不美矣。
上皆覽之, 但罷其職。
정종 2년 (1400) 12월 1일
-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전에 나아가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헌수하다
- 궁궐에 숙직하면서 기생을 불러들이고 비판지를 내준 이조 좌랑 이승조를 귀양보내다
- 갑사 2천 명을 다시 세워, 한 번에 천 명씩 각위에 보충하여 매년 교대하게 하다
- 문하부의 상소로 분경을 금하지 않은 대사헌 정구, 중승 김구덕 등을 파직하다
- 순자비를 내려 김약채를 대사헌으로, 전순을 중승으로, 권희달을 대장군으로 삼다
- 사헌부와 문하부에서 번갈아 상소하여 권희달을 귀양보내기를 청했으나 파직만 시키다
- 재능 있는 군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품계가 높은데 낮은 관직을 준 시초
- 하윤이 인재를 천거하는 데 전단하는 것을 이거이가 미워하다
- 경연에서 환관이 정치에 참여하는 폐해에 대해 말하다
정종실록6권, 정종 2년 12월 1일 辛卯 6/9 기사 /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사헌부와 문하부에서 번갈아 상소하여 권희달을 귀양보내기를 청했으나 파직만 시키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 김약채(金若采) 등이 상소하였다.
"지난번에 권희달(權希達)이 완악(頑惡)하고 강포(强暴)하여 법을 범하였으므로, 본부(本府)에서 서리(書吏)를 보내어 지켰는데, 권희달이 밤중에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서리를 구타하고 도망쳐 나갔습니다. 본부에서 상서(上書)하여 죄를 청하니, 전하가 명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습니다. 신 등은 전하께서 반드시 그 죄를 엄격히 징치하시리라 여겼는데, 지금 고쳐 대장군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횡포하고 난동하는 신하를 징계할 길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그 죄를 밝게 바루어 외방에 귀양보내소서."
임금이 특별히 용서하고 말하기를,
"겨울에 옥에 갇힌 지가 지금 이미 17일이나 되었으니, 족히 징계되었다. 다시는 거론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憲府)에서 다시 상소(上疏)하여, 권희달의 죄는 마땅히 외방에 귀양보내야 된다고 거듭 청하였고, 문하부(門下府)에서 또한 상언(上言)하였다.
"상벌(賞罰)은 정사의 큰 권병(權柄)입니다. 상이 지나치지 않고 벌이 한도를 넘지 않은 연후에야, 사람을 권장하고 징계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인주(人主)가 마땅히 삼가야 할 일입니다. 지난번에 대장군 권희달이 광포(狂暴)하여 법을 범하고,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헌사의 서리(書吏)를 구타하였습니다. 헌사에서 상서(上書)하여 죄를 청하니, 전하가 명하여 순군옥에 가두었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전하의 강명(剛明)하신 도량으로 반드시 그 죄를 명정(明正)하여 그 악(惡)한 것을 징치하시리라 여겼는데, 금월 11일에 비하(批下)하신 것을 엎드려 보니, 권희달을 그대로 대장군을 제수하시어, 득죄해 옥에 있는 자로 하여금 도리어 벼슬과 상을 받게 하였으니, 신 등은 상벌(賞罰)의 법이 이것으로 인하여 분수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권희달이 광포한 짓을 자행하여 사금(司禁)을 임의로 구타하였으니, 이미 큰 죄악을 저질렀는데, 하물며 헌사(憲司)에서 수직(守直)하는 때를 당하여 서리(書吏)를 구타하고 갑옷을 입고 도망하여 나갔으니, 권희달이 무슨 생각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하건대, 헌사(憲司)에 내려 그 작첩(爵牒)을 거두고 율에 의하여 죄를 결단하소서."
소(疏)가 올라가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문하부(門下府)에서 다시 상소하였다.
"권희달이 광포하여 법을 범한 일을, 글장을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전하께서 ‘17일 동안이나 구금(拘禁)하여 족히 징계하였으니 거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 등이 황공하고 마음이 간절하여 다시 천총(天聰)을 더럽힙니다. 신 등이 가만히 보건대,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과오나 실수는 용서하고, 믿는 것이 있어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은 극형에 처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성인이 후세에 경계를 남긴 큰 교훈입니다. 지금 권희달이 사금(司禁)을 마음대로 구타하고, 또 수직(守直)하는 즈음에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가지고 헌사(憲司)의 서리(書吏)를 구타하고, 도망하여 나가서 횡행하며 제 마음대로 방자히 굴어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력을 믿고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니, 어찌 오래 가두어 징계한 것으로 족히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즉위하신 처음을 당하여 진실로 마땅히 신상필벌(信賞必罰)하여 백성의 뜻을 정할 것이요, 한 사람 때문에 만세에 바꾸지 못할 큰 법을 폐할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만일 권희달에게 법을 굽히고 은혜를 펴서 그 죄를 면하게 하시면, 신 등은 횡포하고 난동하는 무리가 장차 뒤따라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권희달을 특별히 유사(攸司)에 내려 그 직첩을 거두고, 율에 의하여 죄를 결단해서 나라 법을 바로잡으소서."
사헌부에서 다시 상소하였다.
"신 등은 들으니, 법은 규구(規矩)와 같아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함께 의뢰하는 것이니, 옛날의 어진 왕들이 삼척법(三尺法)102) 을 굳게 지킨 것이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신 등이 생각하기를, 권희달이 방종하여 유사(攸司)를 능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리의 부녀자를 겁탈하여 방자하고 음란한 짓이 도수(度數)가 없고, 그 아내를 때리고 그 장모를 능욕하는 것이 그 상사(常事)이니, 실로 인륜(人倫)에 어그러집니다. 비록 가금(呵禁)의 어려움과 숙직의 수고가 있더라도 어찌 아낄 것이 있겠습니까? 전하의 너그럽게 용서하는 어지심이 권희달에게는 다행이지마는, 그 인주(人主)가 벼슬을 설치하고 법을 세운 뜻에 어떠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곧 권희달을 외방에 귀양보내어, 인신(人臣)이 전하를 위해 기강을 바로잡고 상벌을 밝히려는 소망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상벌이 밝지 아니하면, 기강이 서지 못하고, 풍속이 아름다와지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이 모두 보고 다만 파직만 시켰다.
- [註 102] 삼척법(三尺法) : 옛날 중국에서 석 자 길이의 대쪽에 법률을 기록하였던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원문
○司憲府大司憲金若采等上疏曰:
頃者, 權希達頑暴犯法, 本府遣吏以守, 希達於中夜, 被甲執兵, 打吏逃出。 本府上書請罪, 殿下命囚巡軍, 臣等謂殿下必痛懲其罪, 今乃改授大將軍。 臣等竊恐橫亂之臣, 無所懲矣。 伏望明正其罪, 竄逐于外。
特原之曰: "冬月繫獄, 今已十七日, 足以懲矣。 更勿擧論。" 憲府復上疏申請希達之罪, 當竄逐于外。 門下府亦上言:
賞罰, 政之大柄。 賞而不濫, 罰而不僭, 然後人得而勸懲, 此實人主之所當謹也。 頃者, 大將軍權希達, 狂暴犯法, 被甲執兵, 歐打憲司書吏。 憲司上書請罪, 殿下命囚巡軍, 臣等以爲殿下剛明之量, 必明正其罪, 以懲其惡。 伏覩今月十一日批, 以希達仍授大將軍, 使得罪在獄者, 反蒙爵賞, 臣等竊恐賞罰之法, 因此而濫矣。 希達恣行狂暴, 擅打司禁, 已爲大惡。 況當憲司守直, 歐打書吏, 被甲逃出? 未知希達以何心, 而至此極也。 請下憲司, 收其爵牒, 按律科罪。
疏上, 皆不允。
門下府再上疏曰:
希達狂暴犯法之事, 上章請罪, 殿下以十七日囚禁, 足以懲戒, 毋得擧論。 臣等惶恐隕越, 再瀆天聰。 臣等竊見, 《書》曰: "眚災肆赦, 怙終賊刑。" 此聖人所以垂戒後世之大訓也。 今希達擅打司禁, 又於守直之際, 被甲執兵, 歐打憲司之吏, 逃出橫行, 用意自恣, 不畏邦憲, 是怙終之甚者也。 豈以久囚懲戒, 爲足免哉! 況當卽位之初, 誠宜信賞必罰, 以定民志。 不可以一人, 廢萬世不易之大法也。 殿下若於希達, 屈法伸恩, 使免其罪, 臣等竊恐橫亂之徒, 將接踵而起矣。 伏望將希達, 特下攸司, 收其職牒, 按律科罪, 以正邦憲。
司憲府復上疏曰:
臣等聞, 法猶規矩, 爲天下國家者, 所共倚賴。 古先哲王, 固守三尺, 良以此也。 臣等以爲希達, 不惟縱逸, 而埋沒所司, 刦掠巷婦, 恣淫無度, 歐撻其妻, 陵慢其姑, 是其常事, 實乖人倫。 雖有呵禁之愎, 直宿之勞, 何足惜哉! 殿下寬宥之仁, 於希達則幸矣, 其乃人主設官立法之義何? 願殿下, 卽將希達, 竄逐于外, 以遂人臣爲殿下正紀綱明賞罰之望。 賞罰不明, 則紀綱不立, 而風俗不美矣。
上皆覽之, 但罷其職。
원본
정종 2년 (1400) 12월 1일
-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전에 나아가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헌수하다
- 궁궐에 숙직하면서 기생을 불러들이고 비판지를 내준 이조 좌랑 이승조를 귀양보내다
- 갑사 2천 명을 다시 세워, 한 번에 천 명씩 각위에 보충하여 매년 교대하게 하다
- 문하부의 상소로 분경을 금하지 않은 대사헌 정구, 중승 김구덕 등을 파직하다
- 순자비를 내려 김약채를 대사헌으로, 전순을 중승으로, 권희달을 대장군으로 삼다
- 사헌부와 문하부에서 번갈아 상소하여 권희달을 귀양보내기를 청했으나 파직만 시키다
- 재능 있는 군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품계가 높은데 낮은 관직을 준 시초
- 하윤이 인재를 천거하는 데 전단하는 것을 이거이가 미워하다
- 경연에서 환관이 정치에 참여하는 폐해에 대해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