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실록2권, 정종 1년 8월 3일 庚子 3/3 기사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좌정승 조준이 전을 올려 사직하기를 비니 윤허하지 않다
국역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이 전(箋)을 올려 사면하기를 비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전문(箋文)은 대략 이러하였다.
"신은 들으니, 성만(盛滿)060) 에 그치지 않은 것은 소하(蕭何)061) 가 스스로 욕(辱)을 부른 것이고, 유후(留侯)에 봉한 것을 족하게 안 것은 장양(張良)062) 이 스스로 보전한 것입니다. 신이 태상왕(太上王)을 만나고부터 전하를 섬기기에 이르기까지 성만(盛滿)이 극진함에 몸 둘 곳이 없었습니다. 깊이 소하로 경계를 삼고 장양으로 법을 삼아, 지극한 정회를 다하여 우러러 천총(天聰)을 더럽힙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이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어 대강 경사(經史)를 섭렵(涉獵)하고, 처음으로 현릉(玄陵)063) 을 섬겨 유악(帷幄)을 모셨는데, 중간에 비운(否運)을 당하여 장차 종신(終身)을 기약하지 못할 듯하였습니다. 태상(太上)께서 한 번 보시고 구면 같이 여기어 불차(不次)로 대접하였습니다. 신을 최질(衰絰)중에 기복(起復)하여 헌사(憲司)의 장(長)에 두시니, 신이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알면 말하지 않는 바가 없었고, 태상께서 널리 포용하여 말하면 좇지 않은 바가 없었습니다. 혁연(赫然)히 분발하여 정성을 가다듬어 다스리기를 도모해서, 공도(公道)를 밝게 펴고 무너진 기강(紀綱)을 진작(振作)하였습니다. 사전(私田)을 개혁하여 백성의 생활을 넉넉히 하고, 위성(僞姓)064) 을 내쫓아 왕씨(王氏)065) 를 다시 세웠는데, 하늘이 화(禍)를 풀지 아니하여 왕씨가 혼미하고, 간신들이 틈을 얽어서, 태상(太上)의 광복(匡復)하신 공은 생각지 않고 도리어 꺼리어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태상을 가리켜 권세가 중(重)하다 하고, 신 등을 지목하여 붕당(朋黨)이라 하여, 대간(臺諫)을 사주(使嗾)하여 신 등을 모살(謀殺)하고, 곧 태상을 도모하려 하였습니다. 하늘이 태상을 도와서 제공(諸公)들이 의거(義擧)를 분발하여, 흉도(兇徒)가 와해(瓦解)되고, 신도 또한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에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이미 왕씨를 떠나고, 구가(謳歌)와 옥송(獄訟)이 모두 태상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태상께서 잠저(潛邸)에 덕을 쌓으시어 밝게 하늘에 이르게 해서,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신이 어찌 그 사이에 털끝만한 힘이 있었겠습니까?
큰 일이 겨우 정하여 지니, 태재(太宰)의 높은 자리에 앉게 하고 식읍(食邑)을 봉하여 주시어, 이름이 개국 공신(開國功臣)의 첫째가 되고, 상사(賞賜)가 거만(鉅萬)이나 되었습니다. 태상께서 저를 살리시고 귀하게 하시어, 난익지덕(卵翼之德)이 하늘에 닿고 땅에 서립니다.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은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과 더불어 동공일체(同功一體)여서, 처음에는 털끝만한 간격도 없었습니다. 정도전이 천자에게 죄를 얻으면서부터 남은과 결탁하여 요동(遼東)을 치자고 꾀해서 한 몸의 화를 면하려 하였습니다. 신이 이때 와병(臥病)중에 있었는데, 태상께서 두 사람을 보내어 신에게 물으셨습니다. 신이 병을 무릅쓰고 기운을 내어 천문(天門)에 뵈옵고, 어리석은 충정을 분발하여 천의(天意)를 돌이키니, 간사한 꾀가 드디어 저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과 신 사이에 시기하고 틈이 생겨,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길 가는 사람도 아는 바입니다. 태상께서 병환이 나서 오래 끄는 때를 당하여, 오직 이 두 사람만은 그 욕망을 이룩하고자 하여 어린 얼자(孽子)를 세우기를 탐하였습니다. 외간(外奸) 내궤(內軌)가 이미 이루어져서 화가 조석에 있었는데, 다행히 천지(天地) 조종(祖宗)의 몰래 돕는 힘을 입어서, 제공(諸公)과 부마(駙馬)가 먼저 의거(義擧)를 일으켜, 흉한 무리가 복주(伏誅)되고, 나라의 운수가 다시 안정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신을 공신(功臣)의 상열(上列)에 뽑아 두시어, 산하(山河)의 맹세를 주시고, 운대(雲臺)066) 에 그림을 그리고, 상사(賞賜)가 더욱 지극하였으니, 덕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였습니다. 유언(流言)이 잇달아 생겨 여러 사람의 청문(聽聞)을 현혹하게 됨에 미쳐서, 신 조준(趙浚)이 운월(隕越)하여 부월(鈇鉞)을 기다릴 뿐이었더니, 전하께서 신의 어리석고 곧은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무죄함을 살피시와, 천안(天顔)이 참측(慘惻)하고 침묵하시어 현연(泫然)히 눈물을 흘리셔서, 뇌정(雷霆) 아래에 재생(再生)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신은 이때에 전하가 계신 것만 알고 신의 한 몸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의 경경(耿耿)한 마음은 천지 귀신이 함께 조림하는 바입니다. 일에 있어 어려운 것을 피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직책을 받들어서 죽은 뒤에야 마는 것이, 이것이 신이 태상께 보답하고 전하께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신은 성품이 본래 노둔(駑鈍)하고 배우지 못해 무식하여 도리에 어둡습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생각은 비록 마음에는 간절하나, 세상을 돕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도리는 그 요령을 알지 못합니다. 오래 논사(論思)의 자리에 있었으나 일찍이 보필의 도움이 없었습니다. 근자에 꼬리별이 견책(譴責)을 보이고, 산의 돌이 무너지고, 뭇 까마귀가 밤에 울고 하는 것이, 모두가 어리석은 신이 오래 어진 사람의 길을 막아서 섭리(燮理)를 잘 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나가는 것만 알고 물러가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였고, 《서전(書傳)》에 말하기를, ‘신하는 총애와 이록(利祿)으로 성공(成功)에 처하지 말라.’ 하였고, 전(傳)에 말하기를, ‘족한 것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현의 격언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에게 봉한 식읍을 없애시고, 신에게 정승의 직책을 해면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성화(盛化) 가운데서 한가롭게 노닐며 견마(犬馬)의 남은 해를 보전하게 하시면, 신이 살아서는 화봉(華封)의 축수067) 를 본받고, 죽어서는 결초(結草)의 보은(報恩)068) 을 기약하겠습니다."
임금이 전(箋)을 보기 전에 도승지(都承旨) 이문화(李文和)에게 이르기를,
"어제 꿈에 조준이 나를 보고 공민왕 이래로 벼슬하여 온 노고를 스스로 말하고, 정승을 사면하기를 빌었다."
하였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문화가 조준의 전문을 펴서 읽으니, 임금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덕이 없이 이 큰 기업을 이어받아, 훈신(勳臣)의 협찬과 보필에 힘입어서 태평시대에 이를까 바랐는데, 어찌하여 사면하기를 급히 비는가?"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숙(李淑)을 시켜 윤허하지 않는 비답(批答)을 가지고 조준의 집에 이르러 위로하여 유시하였는데, 대략 이러하였다.
"경(卿)은 타고난 바탕이 영의(英毅)하고, 지식과 도량이 매우 깊다. 우리 태상왕(太上王)을 만나 충성을 다하여 보좌해서 만세의 큰 기업을 창건하니, 국가에서 힘을 입어 평안해졌고, 생령(生靈)이 의지하여 명(命)을 부지하였다. 불행하게도 간신이 소장(蕭墻)069) 에 엎드려 있어 화가 불측(不測)한 지경에 있었는데, 경이 대의에 의하여 계책을 결정해서 종실을 협보(夾輔)하고, 과궁(寡躬)을 추대하여 적서(嫡庶)의 분수를 정해서, 사직(社稷)을 반석같이 굳게 하고, 백성들을 임석(衽席)의 편안한 곳에 두었도다. 경의 공은 마땅히 대려(帶礪)070) 로 맹세하여야 하고, 경의 덕은 마땅히 묘당(廟堂)의 으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상상(上相)의 직임을 주고 승평(昇平)의 정치에 이르기를 기약하니, 사퇴하고 칭탁하는 말은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또 내가 어제 꿈에 경이 사직하기를 고하기에, 내가 위로하고 권면하여 허락하지 않았는데, 아침에 경의 글이 마침 이르렀다. 아아! 임금은 원수(元首)요, 신하는 고굉(股肱)이니, 한 몸이 되어 서로 의지하여 정치를 이루는 것이다. 진실로 충성(衷誠)으로 서로 느끼고 성기(聲氣)로서 서로 응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경의 마음이 있는데, 내가 문득 꿈꿀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경은 성만(盛滿)한 것으로 경계를 삼고, 나는 보전하는 것으로 급한 것을 삼으면, 거의 군신이 각각 그 도리를 다하고, 또한 후세에 칭사(稱辭)가 있을 것이다. 근자에 하늘이 이변(異變)을 보이고, 땅이 재이(災異)를 보이는 것은 모두 부덕(否德)이 부른 것이니, 경은 마땅히 나를 도와서 변(變)을 없애는 방도를 구(求)할 것이요, 물러가기를 구(求)하여 나를 슬프게 할 것이 아니다. 아직 그 직위를 편안히 하여 나의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하라."
조준이 읽고서 감격하여 울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060] 성만(盛滿) : 성하고 참. 즉 재상의 즉위.
- [註 061] 소하(蕭何) :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공신(功臣). 강소성(江蘇省) 출신. 군량(軍糧) 보급에 큰 공을 세우고, 진(秦)나라의 번거로운 법을 폐지하고 율구장(律九章)을 실시함. 장양(長良)·한신(韓信)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創業)의 3걸(三傑).
- [註 062] 장양(張良) :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명신(名臣). 자는 자방(子房). 한(韓)나라의 세족(世族)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함. 뒤에 유후(留侯)에 봉해졌으나 은거 생활을 하였음.
- [註 063] 현릉(玄陵) : 공민왕(恭愍王).
- [註 064] 위성(僞姓) : 우왕(禑王) 창왕(昌王).
- [註 065] 왕씨(王氏) : 공양왕(恭讓王).
- [註 066] 운대(雲臺) : 후한(後漢) 때 궁중(宮中)에 높이 쌓은 대(臺).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영평(永平) 3년에 광무제(光武帝)의 공신(功臣) 28인을 그려 이곳에 봉안(奉安)하였음.
- [註 067] 화봉(華封)의 축수 : 요(堯)임금이 화봉(華封:지금의 용계현(龍溪縣) 서북) 지방을 순행하였을 때, 화봉인(華封人)이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여, ‘성인(聖人)은 수(壽)하시고, 성인은 부(富)하시고, 성인은 다남(多男)하시라.’고 축복하였다는 고사(故事). 화봉 삼축(華封三祝).
- [註 068] 결초(結草)의 보은(報恩) :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 《좌전(左傳)》에 의하면, 위무자(魏武子)의 아들 위과(魏顆)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서모(庶母)를 순사(殉死)시키지 않고 재혼(再婚)을 시켰는데, 그후 싸움터에서 위과가 진(秦)나라 역사(力士) 두회(杜回)와 맞싸울 때, 서모의 아버지 혼이 나타나서 풀을 잡아매어, 두회로 하여금 넘어져 쓰러지게 하여, 위과가 생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고사(故事).
- [註 069] 소장(蕭墻) : 임금과 신하가 조회하는 곳에 세우는 병풍.
- [註 070] 대려(帶礪) : 황하(黃河)가 띠 같이 되고 태산(泰山)이 숫돌 같이 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
원문
○左政丞趙浚上箋乞辭, 不允。 箋略曰:
臣聞盛滿不止, 蕭何所以自辱; 封留知足, 張良所以保全。 臣自遭太上, 逮事殿下, 盛滿之極, 措身無地, 深以蕭何爲戒, 張良爲法, 罄竭至情, 仰瀆天聰。 伏念臣早志于學, 粗涉經史, 始事玄陵, 侍奉帷幄, 中遭否運, 若將終身。 不期太上, 一見如舊, 待之不次, 起臣衰絰之中, 置諸憲司之長。 臣由是感激, 知無不言, 太上包容, 言無不從, 赫然奮發, 勵精圖治, 昭布公道, 振起頹綱, 革私田以足民養, 黜僞姓以復王氏。 天不悔禍, 王氏昏迷, 奸臣搆隙, 不思太上匡復之功, 反生忌疾, 指太上爲權重, 目臣等爲朋黨, 嗾使臺諫, 謀殺臣等, 尋圖太上。 天佑太上, 諸公奮義, 兇徒瓦解, 臣亦生還。 於是天命人心, 已去王氏, 謳歌獄訟, 皆歸太上。 是由太上, 積德潛邸, 昭格於蒼蒼之使然, 臣安有毫髮之力於其間哉? 大事甫定, 位以大宰之崇, 錫以食邑之封, 冠名開國, 賞賜鉅萬, 太上所以生我貴我卵翼之德, 極天蟠地, 言之不覺涕泣。 臣與道傳、南誾, 同功一體, 初無纖毫之隔, 自道傳得罪天子, 與南誾結好, 謀攻遼東, 規免一己之禍。 臣當是時, 病臥於家, 太上遣二人, 枉咨於臣, 臣力疾作氣, 上謁天門, 奮發愚衷, 得回天意, 邪謀遂沮。 由是二人, 與臣猜隙, 勢不相容, 路人所知。 當太上失豫彌留之際, 惟此二人, 欲肆其慾, 貪立幼孼, 奸軌已成, 禍在朝夕。 幸賴天地祖宗陰相之力, 諸公駙馬擧義先發, 兇黨伏誅, 國步再安。 殿下擢置臣於上功之列, 錫以山河之誓, 圖畫雲臺, 賞賜尤極, 德至渥也。 及乎流言繼作, 眩惑衆聽, 臣浚隕越, 以竢鈇鑕。 殿下憐臣愚直, 察臣無罪, 天顔慘默, 泫然涕下, 生死肉骨於雷霆之下。 臣於是時, 知有殿下, 不知有一身也。 臣之耿耿, 天地鬼神, 所共赫臨, 事不避難, 竭心奉職, 死而後已。 此臣所以報太上, 而忠殿下之職分也。 然臣性本駑鈍, 不學墻面, 愛君憂國之念, 雖切於心, 輔世澤民之道, 未領其要, 久處論思之地, 曾無輔弼之益。 日者, 星芒示譴, 山石崩頹, 群烏夜噪, 無非臣愚, 久防賢者之路, 未克燮理之所致也。 《易》曰: "知進而不知退。" 《書》曰: "臣罔以寵利居成功。" 《傳》曰: "知足不辱, 知止不殆。" 此聖賢之格言也。 願殿下除臣食邑之封, 解臣政丞之職, 使臣優游盛化之中, 保全犬馬之餘年, 則臣生效華封之祝, 死期結草之報。
上未覽箋, 謂都承旨李文和曰: "昨夢, 浚見予, 自敍恭愍王以來歷仕之勞, 乞免政丞。" 言未訖, 文和展浚箋開讀, 上嘆曰: "予以否德, 承此丕基, 庶賴勳臣協輔, 以致隆平, 何乞辭之亟也!" 乃使右承旨李淑, 齎不允批答, 至浚第慰諭之。 略曰:
卿天資英毅, 識度淵深。 遇我太上王, 盡忠輔益, 以創萬世之丕基, 國家賴以爲安, 生靈倚以爲命。 不幸奸伏蕭墻, 禍在不測, 而卿仗義決策, 夾輔宗室, 推戴寡躬, 以定嫡庶, 置社稷於盤石之固, 措斯民於衽席之安。 惟卿之功, 宜誓帶礪, 惟卿之德, 宜冠廟堂, 仍授上相之任, 期致昇平之治, 退托之辭, 非所欲聞。 且予昨夢, 卿告以辭職, 而予慰勉不許, 及朝而卿書適至。 於戲! 君爲元首, 臣爲股肱, 一體相須, 以成其治。 苟非衷誠相感、聲氣相應, 則安得卿有心, 而予輒夢乎? 自今卿以盛滿爲戒, 予以保全爲急, 庶幾君臣各盡其道, 而亦有辭於後世矣。 近者天之示變, 地之見異, 皆否德所召。 卿當助我, 求所以消變之道, 不當求去以慼我也。 姑安厥位, 以副予懷。
浚讀之感泣。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정종 1년 (1399) 8월 3일
국역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이 전(箋)을 올려 사면하기를 비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전문(箋文)은 대략 이러하였다.
"신은 들으니, 성만(盛滿)060) 에 그치지 않은 것은 소하(蕭何)061) 가 스스로 욕(辱)을 부른 것이고, 유후(留侯)에 봉한 것을 족하게 안 것은 장양(張良)062) 이 스스로 보전한 것입니다. 신이 태상왕(太上王)을 만나고부터 전하를 섬기기에 이르기까지 성만(盛滿)이 극진함에 몸 둘 곳이 없었습니다. 깊이 소하로 경계를 삼고 장양으로 법을 삼아, 지극한 정회를 다하여 우러러 천총(天聰)을 더럽힙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이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어 대강 경사(經史)를 섭렵(涉獵)하고, 처음으로 현릉(玄陵)063) 을 섬겨 유악(帷幄)을 모셨는데, 중간에 비운(否運)을 당하여 장차 종신(終身)을 기약하지 못할 듯하였습니다. 태상(太上)께서 한 번 보시고 구면 같이 여기어 불차(不次)로 대접하였습니다. 신을 최질(衰絰)중에 기복(起復)하여 헌사(憲司)의 장(長)에 두시니, 신이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알면 말하지 않는 바가 없었고, 태상께서 널리 포용하여 말하면 좇지 않은 바가 없었습니다. 혁연(赫然)히 분발하여 정성을 가다듬어 다스리기를 도모해서, 공도(公道)를 밝게 펴고 무너진 기강(紀綱)을 진작(振作)하였습니다. 사전(私田)을 개혁하여 백성의 생활을 넉넉히 하고, 위성(僞姓)064) 을 내쫓아 왕씨(王氏)065) 를 다시 세웠는데, 하늘이 화(禍)를 풀지 아니하여 왕씨가 혼미하고, 간신들이 틈을 얽어서, 태상(太上)의 광복(匡復)하신 공은 생각지 않고 도리어 꺼리어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태상을 가리켜 권세가 중(重)하다 하고, 신 등을 지목하여 붕당(朋黨)이라 하여, 대간(臺諫)을 사주(使嗾)하여 신 등을 모살(謀殺)하고, 곧 태상을 도모하려 하였습니다. 하늘이 태상을 도와서 제공(諸公)들이 의거(義擧)를 분발하여, 흉도(兇徒)가 와해(瓦解)되고, 신도 또한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에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이미 왕씨를 떠나고, 구가(謳歌)와 옥송(獄訟)이 모두 태상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태상께서 잠저(潛邸)에 덕을 쌓으시어 밝게 하늘에 이르게 해서,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신이 어찌 그 사이에 털끝만한 힘이 있었겠습니까?
큰 일이 겨우 정하여 지니, 태재(太宰)의 높은 자리에 앉게 하고 식읍(食邑)을 봉하여 주시어, 이름이 개국 공신(開國功臣)의 첫째가 되고, 상사(賞賜)가 거만(鉅萬)이나 되었습니다. 태상께서 저를 살리시고 귀하게 하시어, 난익지덕(卵翼之德)이 하늘에 닿고 땅에 서립니다.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은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과 더불어 동공일체(同功一體)여서, 처음에는 털끝만한 간격도 없었습니다. 정도전이 천자에게 죄를 얻으면서부터 남은과 결탁하여 요동(遼東)을 치자고 꾀해서 한 몸의 화를 면하려 하였습니다. 신이 이때 와병(臥病)중에 있었는데, 태상께서 두 사람을 보내어 신에게 물으셨습니다. 신이 병을 무릅쓰고 기운을 내어 천문(天門)에 뵈옵고, 어리석은 충정을 분발하여 천의(天意)를 돌이키니, 간사한 꾀가 드디어 저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과 신 사이에 시기하고 틈이 생겨,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길 가는 사람도 아는 바입니다. 태상께서 병환이 나서 오래 끄는 때를 당하여, 오직 이 두 사람만은 그 욕망을 이룩하고자 하여 어린 얼자(孽子)를 세우기를 탐하였습니다. 외간(外奸) 내궤(內軌)가 이미 이루어져서 화가 조석에 있었는데, 다행히 천지(天地) 조종(祖宗)의 몰래 돕는 힘을 입어서, 제공(諸公)과 부마(駙馬)가 먼저 의거(義擧)를 일으켜, 흉한 무리가 복주(伏誅)되고, 나라의 운수가 다시 안정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신을 공신(功臣)의 상열(上列)에 뽑아 두시어, 산하(山河)의 맹세를 주시고, 운대(雲臺)066) 에 그림을 그리고, 상사(賞賜)가 더욱 지극하였으니, 덕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였습니다. 유언(流言)이 잇달아 생겨 여러 사람의 청문(聽聞)을 현혹하게 됨에 미쳐서, 신 조준(趙浚)이 운월(隕越)하여 부월(鈇鉞)을 기다릴 뿐이었더니, 전하께서 신의 어리석고 곧은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무죄함을 살피시와, 천안(天顔)이 참측(慘惻)하고 침묵하시어 현연(泫然)히 눈물을 흘리셔서, 뇌정(雷霆) 아래에 재생(再生)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신은 이때에 전하가 계신 것만 알고 신의 한 몸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의 경경(耿耿)한 마음은 천지 귀신이 함께 조림하는 바입니다. 일에 있어 어려운 것을 피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직책을 받들어서 죽은 뒤에야 마는 것이, 이것이 신이 태상께 보답하고 전하께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신은 성품이 본래 노둔(駑鈍)하고 배우지 못해 무식하여 도리에 어둡습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생각은 비록 마음에는 간절하나, 세상을 돕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도리는 그 요령을 알지 못합니다. 오래 논사(論思)의 자리에 있었으나 일찍이 보필의 도움이 없었습니다. 근자에 꼬리별이 견책(譴責)을 보이고, 산의 돌이 무너지고, 뭇 까마귀가 밤에 울고 하는 것이, 모두가 어리석은 신이 오래 어진 사람의 길을 막아서 섭리(燮理)를 잘 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나가는 것만 알고 물러가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였고, 《서전(書傳)》에 말하기를, ‘신하는 총애와 이록(利祿)으로 성공(成功)에 처하지 말라.’ 하였고, 전(傳)에 말하기를, ‘족한 것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현의 격언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에게 봉한 식읍을 없애시고, 신에게 정승의 직책을 해면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성화(盛化) 가운데서 한가롭게 노닐며 견마(犬馬)의 남은 해를 보전하게 하시면, 신이 살아서는 화봉(華封)의 축수067) 를 본받고, 죽어서는 결초(結草)의 보은(報恩)068) 을 기약하겠습니다."
임금이 전(箋)을 보기 전에 도승지(都承旨) 이문화(李文和)에게 이르기를,
"어제 꿈에 조준이 나를 보고 공민왕 이래로 벼슬하여 온 노고를 스스로 말하고, 정승을 사면하기를 빌었다."
하였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문화가 조준의 전문을 펴서 읽으니, 임금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덕이 없이 이 큰 기업을 이어받아, 훈신(勳臣)의 협찬과 보필에 힘입어서 태평시대에 이를까 바랐는데, 어찌하여 사면하기를 급히 비는가?"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숙(李淑)을 시켜 윤허하지 않는 비답(批答)을 가지고 조준의 집에 이르러 위로하여 유시하였는데, 대략 이러하였다.
"경(卿)은 타고난 바탕이 영의(英毅)하고, 지식과 도량이 매우 깊다. 우리 태상왕(太上王)을 만나 충성을 다하여 보좌해서 만세의 큰 기업을 창건하니, 국가에서 힘을 입어 평안해졌고, 생령(生靈)이 의지하여 명(命)을 부지하였다. 불행하게도 간신이 소장(蕭墻)069) 에 엎드려 있어 화가 불측(不測)한 지경에 있었는데, 경이 대의에 의하여 계책을 결정해서 종실을 협보(夾輔)하고, 과궁(寡躬)을 추대하여 적서(嫡庶)의 분수를 정해서, 사직(社稷)을 반석같이 굳게 하고, 백성들을 임석(衽席)의 편안한 곳에 두었도다. 경의 공은 마땅히 대려(帶礪)070) 로 맹세하여야 하고, 경의 덕은 마땅히 묘당(廟堂)의 으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상상(上相)의 직임을 주고 승평(昇平)의 정치에 이르기를 기약하니, 사퇴하고 칭탁하는 말은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또 내가 어제 꿈에 경이 사직하기를 고하기에, 내가 위로하고 권면하여 허락하지 않았는데, 아침에 경의 글이 마침 이르렀다. 아아! 임금은 원수(元首)요, 신하는 고굉(股肱)이니, 한 몸이 되어 서로 의지하여 정치를 이루는 것이다. 진실로 충성(衷誠)으로 서로 느끼고 성기(聲氣)로서 서로 응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경의 마음이 있는데, 내가 문득 꿈꿀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경은 성만(盛滿)한 것으로 경계를 삼고, 나는 보전하는 것으로 급한 것을 삼으면, 거의 군신이 각각 그 도리를 다하고, 또한 후세에 칭사(稱辭)가 있을 것이다. 근자에 하늘이 이변(異變)을 보이고, 땅이 재이(災異)를 보이는 것은 모두 부덕(否德)이 부른 것이니, 경은 마땅히 나를 도와서 변(變)을 없애는 방도를 구(求)할 것이요, 물러가기를 구(求)하여 나를 슬프게 할 것이 아니다. 아직 그 직위를 편안히 하여 나의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하라."
조준이 읽고서 감격하여 울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060] 성만(盛滿) : 성하고 참. 즉 재상의 즉위.
- [註 061] 소하(蕭何) :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공신(功臣). 강소성(江蘇省) 출신. 군량(軍糧) 보급에 큰 공을 세우고, 진(秦)나라의 번거로운 법을 폐지하고 율구장(律九章)을 실시함. 장양(長良)·한신(韓信)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創業)의 3걸(三傑).
- [註 062] 장양(張良) :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명신(名臣). 자는 자방(子房). 한(韓)나라의 세족(世族)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함. 뒤에 유후(留侯)에 봉해졌으나 은거 생활을 하였음.
- [註 063] 현릉(玄陵) : 공민왕(恭愍王).
- [註 064] 위성(僞姓) : 우왕(禑王) 창왕(昌王).
- [註 065] 왕씨(王氏) : 공양왕(恭讓王).
- [註 066] 운대(雲臺) : 후한(後漢) 때 궁중(宮中)에 높이 쌓은 대(臺).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영평(永平) 3년에 광무제(光武帝)의 공신(功臣) 28인을 그려 이곳에 봉안(奉安)하였음.
- [註 067] 화봉(華封)의 축수 : 요(堯)임금이 화봉(華封:지금의 용계현(龍溪縣) 서북) 지방을 순행하였을 때, 화봉인(華封人)이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여, ‘성인(聖人)은 수(壽)하시고, 성인은 부(富)하시고, 성인은 다남(多男)하시라.’고 축복하였다는 고사(故事). 화봉 삼축(華封三祝).
- [註 068] 결초(結草)의 보은(報恩) :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 《좌전(左傳)》에 의하면, 위무자(魏武子)의 아들 위과(魏顆)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서모(庶母)를 순사(殉死)시키지 않고 재혼(再婚)을 시켰는데, 그후 싸움터에서 위과가 진(秦)나라 역사(力士) 두회(杜回)와 맞싸울 때, 서모의 아버지 혼이 나타나서 풀을 잡아매어, 두회로 하여금 넘어져 쓰러지게 하여, 위과가 생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고사(故事).
- [註 069] 소장(蕭墻) : 임금과 신하가 조회하는 곳에 세우는 병풍.
- [註 070] 대려(帶礪) : 황하(黃河)가 띠 같이 되고 태산(泰山)이 숫돌 같이 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
원문
○左政丞趙浚上箋乞辭, 不允。 箋略曰:
臣聞盛滿不止, 蕭何所以自辱; 封留知足, 張良所以保全。 臣自遭太上, 逮事殿下, 盛滿之極, 措身無地, 深以蕭何爲戒, 張良爲法, 罄竭至情, 仰瀆天聰。 伏念臣早志于學, 粗涉經史, 始事玄陵, 侍奉帷幄, 中遭否運, 若將終身。 不期太上, 一見如舊, 待之不次, 起臣衰絰之中, 置諸憲司之長。 臣由是感激, 知無不言, 太上包容, 言無不從, 赫然奮發, 勵精圖治, 昭布公道, 振起頹綱, 革私田以足民養, 黜僞姓以復王氏。 天不悔禍, 王氏昏迷, 奸臣搆隙, 不思太上匡復之功, 反生忌疾, 指太上爲權重, 目臣等爲朋黨, 嗾使臺諫, 謀殺臣等, 尋圖太上。 天佑太上, 諸公奮義, 兇徒瓦解, 臣亦生還。 於是天命人心, 已去王氏, 謳歌獄訟, 皆歸太上。 是由太上, 積德潛邸, 昭格於蒼蒼之使然, 臣安有毫髮之力於其間哉? 大事甫定, 位以大宰之崇, 錫以食邑之封, 冠名開國, 賞賜鉅萬, 太上所以生我貴我卵翼之德, 極天蟠地, 言之不覺涕泣。 臣與道傳、南誾, 同功一體, 初無纖毫之隔, 自道傳得罪天子, 與南誾結好, 謀攻遼東, 規免一己之禍。 臣當是時, 病臥於家, 太上遣二人, 枉咨於臣, 臣力疾作氣, 上謁天門, 奮發愚衷, 得回天意, 邪謀遂沮。 由是二人, 與臣猜隙, 勢不相容, 路人所知。 當太上失豫彌留之際, 惟此二人, 欲肆其慾, 貪立幼孼, 奸軌已成, 禍在朝夕。 幸賴天地祖宗陰相之力, 諸公駙馬擧義先發, 兇黨伏誅, 國步再安。 殿下擢置臣於上功之列, 錫以山河之誓, 圖畫雲臺, 賞賜尤極, 德至渥也。 及乎流言繼作, 眩惑衆聽, 臣浚隕越, 以竢鈇鑕。 殿下憐臣愚直, 察臣無罪, 天顔慘默, 泫然涕下, 生死肉骨於雷霆之下。 臣於是時, 知有殿下, 不知有一身也。 臣之耿耿, 天地鬼神, 所共赫臨, 事不避難, 竭心奉職, 死而後已。 此臣所以報太上, 而忠殿下之職分也。 然臣性本駑鈍, 不學墻面, 愛君憂國之念, 雖切於心, 輔世澤民之道, 未領其要, 久處論思之地, 曾無輔弼之益。 日者, 星芒示譴, 山石崩頹, 群烏夜噪, 無非臣愚, 久防賢者之路, 未克燮理之所致也。 《易》曰: "知進而不知退。" 《書》曰: "臣罔以寵利居成功。" 《傳》曰: "知足不辱, 知止不殆。" 此聖賢之格言也。 願殿下除臣食邑之封, 解臣政丞之職, 使臣優游盛化之中, 保全犬馬之餘年, 則臣生效華封之祝, 死期結草之報。
上未覽箋, 謂都承旨李文和曰: "昨夢, 浚見予, 自敍恭愍王以來歷仕之勞, 乞免政丞。" 言未訖, 文和展浚箋開讀, 上嘆曰: "予以否德, 承此丕基, 庶賴勳臣協輔, 以致隆平, 何乞辭之亟也!" 乃使右承旨李淑, 齎不允批答, 至浚第慰諭之。 略曰:
卿天資英毅, 識度淵深。 遇我太上王, 盡忠輔益, 以創萬世之丕基, 國家賴以爲安, 生靈倚以爲命。 不幸奸伏蕭墻, 禍在不測, 而卿仗義決策, 夾輔宗室, 推戴寡躬, 以定嫡庶, 置社稷於盤石之固, 措斯民於衽席之安。 惟卿之功, 宜誓帶礪, 惟卿之德, 宜冠廟堂, 仍授上相之任, 期致昇平之治, 退托之辭, 非所欲聞。 且予昨夢, 卿告以辭職, 而予慰勉不許, 及朝而卿書適至。 於戲! 君爲元首, 臣爲股肱, 一體相須, 以成其治。 苟非衷誠相感、聲氣相應, 則安得卿有心, 而予輒夢乎? 自今卿以盛滿爲戒, 予以保全爲急, 庶幾君臣各盡其道, 而亦有辭於後世矣。 近者天之示變, 地之見異, 皆否德所召。 卿當助我, 求所以消變之道, 不當求去以慼我也。 姑安厥位, 以副予懷。
浚讀之感泣。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원본
정종 1년 (1399)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