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1권, 총서 64번째기사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적과 싸워 패퇴하였으나, 태조가 합세하여 물리치다
국역
신우(辛禑) 4년(1378) 무오 4월, 왜적의 배가 착량(窄梁)에 많이 모여 승천부(昇天府)032) 로 들어와서 장차 서울을 침구(侵寇)하겠다고 성언(聲言)하니, 중앙과 지방이 크게 진동하였다. 병위(兵衛)를 대궐 문에 배치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리니, 성중(城中)이 흉흉(洶洶)하였다. 방리(坊里)의 군사로 하여금 성(城)에 올라 망보게 하고, 여러 군대에게 나누어 명령하여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에 나가서 둔치게 하였다.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에게 여러 군대를 통솔하여 해풍군(海豐郡)에 진치게 하고,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양백연(楊伯淵)을 부장(副將)으로 삼았다. 적군이 이를 정탐해 알고서 최영의 군대만 부수게 되면 서울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여러 진[屯]을 지나오면서 이를 버리고 다투어 보지도 않고 해풍(海豐)으로 달려와서 바로 중군(中軍)을 향하였다. 최영은 말하기를,
"국가의 존속(存續)과 멸망은 이 한 싸움에 결정된다."
하면서, 마침내 백연과 함께 전진하여 적을 쳤으나, 적군이 최영을 쫓으니, 최영이 패하여 달아났다. 태조가 날랜 기병[精騎]을 거느리고 바로 나아가서 백연과 합세하여 쳐서 적군을 크게 부수었다. 최영은 적군이 쓰러져 흔들림을 보고는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서 곁에서 적군을 치니, 적군이 거의 다 죽었으며 남은 무리는 밤에 도망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註 032] 승천부(昇天府) : 개풍(開豐).
태조실록1권, 총서 64번째기사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적과 싸워 패퇴하였으나, 태조가 합세하여 물리치다
국역
신우(辛禑) 4년(1378) 무오 4월, 왜적의 배가 착량(窄梁)에 많이 모여 승천부(昇天府)032) 로 들어와서 장차 서울을 침구(侵寇)하겠다고 성언(聲言)하니, 중앙과 지방이 크게 진동하였다. 병위(兵衛)를 대궐 문에 배치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리니, 성중(城中)이 흉흉(洶洶)하였다. 방리(坊里)의 군사로 하여금 성(城)에 올라 망보게 하고, 여러 군대에게 나누어 명령하여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에 나가서 둔치게 하였다.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에게 여러 군대를 통솔하여 해풍군(海豐郡)에 진치게 하고,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양백연(楊伯淵)을 부장(副將)으로 삼았다. 적군이 이를 정탐해 알고서 최영의 군대만 부수게 되면 서울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여러 진[屯]을 지나오면서 이를 버리고 다투어 보지도 않고 해풍(海豐)으로 달려와서 바로 중군(中軍)을 향하였다. 최영은 말하기를,
"국가의 존속(存續)과 멸망은 이 한 싸움에 결정된다."
하면서, 마침내 백연과 함께 전진하여 적을 쳤으나, 적군이 최영을 쫓으니, 최영이 패하여 달아났다. 태조가 날랜 기병[精騎]을 거느리고 바로 나아가서 백연과 합세하여 쳐서 적군을 크게 부수었다. 최영은 적군이 쓰러져 흔들림을 보고는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서 곁에서 적군을 치니, 적군이 거의 다 죽었으며 남은 무리는 밤에 도망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註 032] 승천부(昇天府) : 개풍(開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