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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2번째기사

목조 이안사가 알동 천호소의 수(首)천호로서 다루가치를 겸하다

명년 을묘(1255)에 산길이 이 사실을 원(元)나라 황제에게 알리니, 원나라에서 〈목조(穆祖)를 위해〉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금패(金牌)를 내려 주어 남경(南京) 등처(等處) 오천호소(五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로 삼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겸하게 하였다. 알동(斡東)남경(南京) 동남쪽 90여 리(里)에 있으니, 지금의 경흥부(慶興府) 동쪽 30리에 떨어져 있다. 알동의 서북쪽 1백 20여 리에 두문성(豆門城)이 있고, 또 그 서쪽 1백 20여 리에 알동 사오리(斡東沙吾里)가 있으니, 사오리(沙吾里)여진(女眞) 말로서 참(站)이다. 참(站)이 관동 알동의 관내(管內)에 있는 까닭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평야(平野)에 큰 토성(土城)이 있고, 남경(南京)의 평야에도 또한 큰 토성이 있으며, 그 북쪽 7, 8리에도 또한 큰 석성(石城)이 있으니, 모두 목조가 관령(管領)한 군민(軍民)이 거처하던 곳이다. 목조는 비록 알동에 거처하였으나, 여러 성(城)에 왕래하여 그 거처가 일정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외교-원(元)

○明年乙卯, 散吉聞于帝, 爲立斡東千戶所, 給降金牌, 爲南京等處五千戶所, 首千戶、兼達魯花赤。 斡東南京東南九十餘里, 距今慶興府東三十里。 斡東西北百二十餘里, 有豆門城, 又其西百二十餘里, 有斡東沙吾里沙吾里, 女眞言站也。 站在斡東管內, 故云然。 其平有大土城, 南京之平, 亦有大土城, 其北七八里, 又有大石城, 皆穆祖管領軍民之所居也。 穆祖雖居斡東, 而往來諸城, 不常厥居。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면
  • 【분류】
    인물(人物) / 역사(歷史) /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외교-원(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