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46권, 고종 42년 12월 1일 양력 3/5 기사 / 1905년 대한 광무(光武) 9년
조병세가 자살하였는데 충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다
국역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가 새로운 한일 조약(韓日條約)에 분개해서 약을 먹고 죽었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이 대신의 돈후한 천품과 굳은 지조를 두루 중앙과 지방에 시험하니 명성과 업적이 무수히 드러났으며 조정에 벼슬하여서는 모두 그 위풍을 우러러보았다. 그리하여 짐은 큰집을 버텨주는 기둥과 대들보처럼 의지했었고 이 어려운 때에 직면하여서는 더욱 마음을 의탁했었는데 갑자기 이처럼 부고가 이르렀다. 굳은 충성심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정은 후세에 빛날 것이지만 짐의 슬픈 심정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졸(卒)한 특진관 조병세의 상(喪)에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궁내부(宮內府)에서 1등급의 예장(禮葬)을 기준으로 지급하여 겸장례(兼掌禮)를 보내 호상(護喪)하게 하고, 장사(匠事)는 영선사(營繕司)에서 거행하게 하라. 예식원(禮式院)에서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주는 은전을 시행하게 하되,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 없이 정문을 세우기 전에 시호를 의논하도록 하라. 성복(成服)하는 날 정경(正卿)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게 하되 제문(祭文)은 마땅히 친히 지어서 내려 보낼 것이며, 모든 관리들은 나아가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졸한 특진관 조병세의 상에 각종 비단 10필(疋), 무명과 베 각각 5동(同), 돈 1,000환(圜), 쌀 30석(石), 전칠(全㓼) 1두(斗)를 특별히 수송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졸한 조 특진관의 상에 비서 승(祕書丞)을 보내 자식들을 구휼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이어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문
特進官趙秉世以韓、日新約憤惋, 仰藥死之。 詔曰: "此大臣敦厚之姿、堅確之操, 歷試中外, 聲績茂著, 紳笏巖廊, 具瞻巋然。 朕倚之若支廈之棟樑, 値玆艱會, 尤所屬意, 忽此逝單遽至。 斷斷衷赤, 憂國捐軀, 一段精忠, 可以赫赫於後世。 而朕心愴衋, 夫何可言? 卒特進官趙秉世喪, 東園副器一部, 輸送, 令宮內府給一等禮葬, 遣兼掌禮護喪, 匠事, 營繕司擧行。 令禮式院施以綽楔之典、節惠之典, 不待狀立旌前議諡。 成服日, 遣正卿致祭, 祭文, 當親撰以下矣。 百官進去。" 又詔曰: "卒特進官趙秉世喪, 各色緞十疋、木布各五同、錢一千圜、米三十石、全漆一斗, 別爲輸送。" 又詔曰: "卒趙特進官喪, 遣祕書丞恤孤以來。" 仍贈諡忠正。
고종실록46권, 고종 42년 12월 1일 양력 3/5 기사 / 1905년 대한 광무(光武) 9년
조병세가 자살하였는데 충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다
국역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가 새로운 한일 조약(韓日條約)에 분개해서 약을 먹고 죽었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이 대신의 돈후한 천품과 굳은 지조를 두루 중앙과 지방에 시험하니 명성과 업적이 무수히 드러났으며 조정에 벼슬하여서는 모두 그 위풍을 우러러보았다. 그리하여 짐은 큰집을 버텨주는 기둥과 대들보처럼 의지했었고 이 어려운 때에 직면하여서는 더욱 마음을 의탁했었는데 갑자기 이처럼 부고가 이르렀다. 굳은 충성심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정은 후세에 빛날 것이지만 짐의 슬픈 심정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졸(卒)한 특진관 조병세의 상(喪)에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궁내부(宮內府)에서 1등급의 예장(禮葬)을 기준으로 지급하여 겸장례(兼掌禮)를 보내 호상(護喪)하게 하고, 장사(匠事)는 영선사(營繕司)에서 거행하게 하라. 예식원(禮式院)에서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주는 은전을 시행하게 하되,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 없이 정문을 세우기 전에 시호를 의논하도록 하라. 성복(成服)하는 날 정경(正卿)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게 하되 제문(祭文)은 마땅히 친히 지어서 내려 보낼 것이며, 모든 관리들은 나아가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졸한 특진관 조병세의 상에 각종 비단 10필(疋), 무명과 베 각각 5동(同), 돈 1,000환(圜), 쌀 30석(石), 전칠(全㓼) 1두(斗)를 특별히 수송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졸한 조 특진관의 상에 비서 승(祕書丞)을 보내 자식들을 구휼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이어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문
特進官趙秉世以韓、日新約憤惋, 仰藥死之。 詔曰: "此大臣敦厚之姿、堅確之操, 歷試中外, 聲績茂著, 紳笏巖廊, 具瞻巋然。 朕倚之若支廈之棟樑, 値玆艱會, 尤所屬意, 忽此逝單遽至。 斷斷衷赤, 憂國捐軀, 一段精忠, 可以赫赫於後世。 而朕心愴衋, 夫何可言? 卒特進官趙秉世喪, 東園副器一部, 輸送, 令宮內府給一等禮葬, 遣兼掌禮護喪, 匠事, 營繕司擧行。 令禮式院施以綽楔之典、節惠之典, 不待狀立旌前議諡。 成服日, 遣正卿致祭, 祭文, 當親撰以下矣。 百官進去。" 又詔曰: "卒特進官趙秉世喪, 各色緞十疋、木布各五同、錢一千圜、米三十石、全漆一斗, 別爲輸送。" 又詔曰: "卒趙特進官喪, 遣祕書丞恤孤以來。" 仍贈諡忠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