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29권, 고종 29년 5월 2일 기미 1/3 기사 / 1892년 조선 개국(開國) 501년
선조 대왕, 의인 왕후 및 인목 왕후에게 존호를 추상하는 경사를 기념하여 하례를 받고 사령을 반포하다
국역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받고 사령(赦令)을 반포하였다. 왕세자(王世子)가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올렸다. 선조 대왕(宣祖大王), 의인 왕후(懿仁王后) 및 인목 왕후(仁穆王后)에게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하는 경사를 기념한 것이다.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효도는 조상의 공적을 계승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기에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라는 덕망 있는 임금이 잇달아 나온 것이며, 공적은 반드시 기록되는 것이기에《시경(詩經)》의 아송(雅頌)이 두고두고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더구나 나라를 구제하고 중흥시킨 공적이라면 그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니, 훌륭한 문장으로 존호를 올려 그 공을 드러내는 바이다.
삼가 생각건대, 선조 소경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 현문 의무 성예 달효 대왕(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儀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께서는 큰 일을 수행할 운명을 받으시어 이 나라를 끝없이 뻗어가게 하셨다. 나라를 다스릴 만한 총명과 너그러운 관용을 지니셨기에 사저(私邸) 시절부터 왕위를 계승할 조짐이 있었으며, 두려워할 만한 위엄과 본받을 만한 의용(儀容)을 겸비한 까닭에 우순(虞舜)과 같은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펴셨다. 밤늦도록 책을 가까이하시니 훌륭한 신하들이 경연(經筵)에 가득하였으며, 재야(在野)의 선비들을 모두 조정에 세우시니 많은 초야의 현자(賢者)들이 부름을 받았다. 성학도(聖學圖)를 좌우에 걸어 두시고 성정(性情)을 함양하였으며, 유선록(儒先綠)을 중외(中外)에 간행하시어 명교(名敎)를 뿌리내리셨다. 반드시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고 극진한 효성으로 선조를 받들었으니, 재이(災異)가 생기면 자신을 반성하여 매번 대궐에서 제사를 거행하였으며, 종가(宗家)의 혈통을 바로잡아 이륜(彛倫)을 펴서 온 천하에 사책(史冊)을 빛나게 하였다. 의리와 시비를 따지는 자리에서는 뇌성벽력(雷聲霹靂)처럼 신속하고 서릿발처럼 엄하셨으며, 명령을 내리고 계획을 세울 때에는 은하수처럼 밝고 해와 별처럼 분명하셨다. 아! 국운(國運)이 불행하여 왜적의 침범을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치달아 올라오는 적의 사나운 기세에 국운이 위태로워 파천(播遷)하는 처지에 놓이셨다. 다행히도 명(明) 나라의 구원병이 평양성(平壤城)에서 적의 예봉(銳鋒)을 꺾었을 뿐 아니라, 종사(宗社)의 음덕(陰德)으로 우리 수군(水軍)이 한도(閑島)에서 남은 왜적을 소탕하였으니, 8년 동안 옮겨 다니시며 온갖 고초를 겪으시던 끝에 왜란이 종결되어 다시 평화로이 지내시게 되었다.
장성 휘열 정헌 의인 왕후(章聖徽烈貞憲懿仁王后)께서는 황후가 될 상서로운 징조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으니, 드러나지 않은 공덕으로 정사를 도와 늘 곁에서 정무에 힘쓰도록 경계하였으며, 지방에서 올린 깨끗한 술과 음식으로 종묘에 제사를 지내셨다. 노리개가 기물 등에 일절 욕심이 없었으니 후궁과 내인들이 이를 본받아 사치하지 않았으며, 외가(外家)에서 정사에 관여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으니 내정(內政)에서 인재를 고루 등용할 수 있었다. 임금을 보좌하여 서쪽으로 피하시어 오랫동안 지방에서 피난 생활을 하셨으니, 강을 건널 때에는 행여 뒤쳐진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강변에서 기다리게 하셨으며, 닭울음소리가 점차 줄어들자 반찬 수를 줄이라는 하교를 내리셨다. 주(周) 나라 문왕을 도운 열 사람의 충신보다도 보좌한 공이 컸으나, 중년에도 이르지 못하고 수명을 마치셨으니 이치란 믿기 어려운 것이로다.
또한 소성 정의 명렬 광숙 장정 인목 왕후(昭聖貞懿明烈光淑莊庭仁穆王后)께서는 청렴한 가정에서 자라나 깨끗한 자품을 지니셨다. 겨울에는 밖에서 호위하는 군사들에게까지 유의(襦衣)를 내려 주시면서도 자신은 항상 수수한 차림이었으니 일찍이 그 검소한 덕이 대궐에 알려졌다. 법도에 맞는 옷차림으로 그 의범(懿範)이 더욱 드러나셨고, 부부간에 정이 두터워 바야흐로 많은 자손들이 나오기를 송축하였다. 그러나 부왕(夫王)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임금과의 사이에 이간하는 말이 떠돌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모후를 서궁(西宮)에 유폐(幽閉)하여 삼강(三綱)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으며, 대비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다가 12년 만에야 자애로운 덕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침 선왕의 후손이 의리를 내세워 반정(反正)하니 나라가 새롭게 변모하였고, 태모(太母)께서 명분을 바로 세워 제자리로 돌아오시니 하늘의 뜻이 마침내 회복되었다.
돌아보건대, 나는 중흥의 업을 계승하여 지금 왜란 후 다섯 번째 되는 임진년을 맞이하였다. 선왕을 추모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기만 하니 300년이 결코 먼 세월이 아니로다. 존호를 올리는 중대한 의전(儀典)을 행하여 선왕의 공훈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다면 마땅히 빛나는 책문(冊文)을 높이 올리고 성대한 의식을 크게 거행하리라. 침묘(寢廟)에 이르러 선왕을 즐겁게 하니 마치 그 모습이 어슴푸레 보이는 듯하고, 궁묘(宮廟)에 올라 두 분 왕후의 덕을 기리니 전해 온 유래가 깊도다. 더욱 높이고 후하게 붙인들 그 큰 덕을 칭송할 수 있겠는가마는, 비길 데 없는 공렬을 송축하여 후손을 빛내고 선조를 빛내노라. 이에 올해 4월 26일에 삼가 책보(冊寶)를 받들어 선조 대왕에게는 ‘경명 신력 홍공 융업(景命神曆弘功隆業)’이라는 존호를, 의인왕후에게는 ‘경목(敬穆)’이라는 존호를, 인목왕후에게는 ‘정숙(正肅)’이라는 존호를 추상하노니, 공덕을 새긴 옥책에서는 해와 달이 함께 빛나고, 주슬(朱瑟)로 이를 연주하매 귀신과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노라. 은혜로운 조서를 내리면 작은 벌레조차도 모두 즐거워할 것이니, 계간(鷄竿)을 세우고 사령을 반포하여 두루 잘못을 용서하노라.
이달 2일 새벽 이전에 지은 죄로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 이하에 해당하는 자를 모두 용서하라. 아! 이렇듯 만세토록 태평할 세상을 열어 놓으신 선왕의 공렬을 우러러 칭송하노니, 대대손손 크나큰 복을 맞이할 것이며 방방곡곡 백성들에게 즐겁고 이로운 일이 생기리라. 그러므로 교시하니,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한장석(韓章錫)이 지었다.】
원문
初二日。 御勤政殿, 受賀, 頒赦。 王世子隨詣, 行禮, 進箋文表裏。 宣祖大王、懿仁王后、仁穆王后追上尊號, 稱慶也。 敎文若曰:
孝莫先於繼述, 文、武所以宣重光, 功必待乎形容, 《雅》、《頌》所以傳百代。 矧惟匡恢之烈, 冞增追慕之忱, 式昭賁章, 載颺渙號。 伏惟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膺有爲運, 纘無疆基。 明足以臨, 寬足以容, 啓代邸橫庚之兆, 威有可畏儀有可象, 敷虞廷恭己之治。 親方冊而至夜分, 濟濟經幄之簪筆; 擧遺逸而列朝著, 翹翹草野之弓旌。 涵養性情則聖學圖之左右揭置, 扶植久敎則儒先錄之中外刊行。 事天必出乎誠, 奉先克致其孝, 遇災異而盡修省, 圭璧每擧禁中, 辨宗系而敍彝倫, 簡編有光天下。 至夫義理淑慝之際, 雷霆迅而霜雪嚴; 施諸命令謨謀之間, 雲漢昭而日星煥。 嗟! 邦運適値陽九, 奈戎捷亦遲月三。 侵鎬之患匪茹, 駭夷氛之猖獗, 去邠之議遂定。 慟國步之綴旒, 幸藉皇朝眷顧之靈, 又賴宗、社陰騭之福, 天戈奮飛翰之勢, 挫銳鋒於箕城, 水師覘風雲之機, 掃餘醜於閑島。 當八載乘輿播越, 險阻艱難之備嘗, 致四方兵革無虞, 休養生息之復見。 粤惟祖妣章聖徽烈貞憲懿仁王后, 沙枇衍祉, 洽陽定祥, 贊萬機而著陰功, 警簪珥於永巷。 奉千乘而蠲大饎, 薦蘋蘩於宗宮, 器服玩好之無所私, 外家存濯龍之戒, 嬪嬙媵御之從而化, 內政推貫魚之恩。 逮夫翊聖而西, 久矣蒙塵於外, 鷖馭爲駐於江次, 或慮後涉之人, 鷄聲漸稀於村塒, 特下減膳之敎, 功有邁於十, 亂所助也深, 壽未及於中身, 難諶者理。 亦惟祖妣昭聖貞懿明烈光淑莊定仁穆王后, 淸白家範, 幽靜天姿, 寒節必賜襦衣, 仁澤至及於陛衛, 常服不過紬帛, 儉德夙聞於宮闈。 紘綖其度, 黼黻其章, 儀彌尊於褕翟, 鐘鼓之樂琴瑟之友, 頌方興於詵螽, 豈意灑竹之淚未乾? 乃遭變蒲之言交煽。 西宮之門敢閉。 民彝幾墜於三綱。 東朝之位久虛, 慈德彌彰於一紀, 際神孫奮義而改玉。 邦運維新, 猗太母正名而回鑾, 天心乃復, 顧小子承再昌之緖, 維壬辰當五週之期。 羹牆之思彌深, 莫曰三百年久遠, 範鏤之典是重, 若爲萬一分揄揚。 肆當顯冊之對隆, 聿稽縟儀之誕擧, 假殷寢而衍烈祖。 如有見僾然, 登魯宮而頌姜嫄, 所由來遠矣。 增高附厚, 縱大德之難名, 賁後光前, 頌維烈之無競。 乃於本年四月二十六日, 謹奉冊寶, 追上宣祖大王尊號曰‘景命神曆弘功隆業’, 懿仁王后尊號曰‘敬穆’, 仁穆王后尊號曰‘正肅’。 揚玉檢而日月竝耀, 拊朱瑟而神人同和, 鳳綍銜恩, 肖蝡之屬皆樂。 鷄竿發號, 雷雨之澤旁流。 自本月二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開萬世太平, 欽先王成烈。 如岡如陵, 如山如阜, 迓景祿於繼繼承承, 自南自北, 自西自東, 囿群生於樂樂利利。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韓章錫製】
고종실록29권, 고종 29년 5월 2일 기미 1/3 기사 / 1892년 조선 개국(開國) 501년
선조 대왕, 의인 왕후 및 인목 왕후에게 존호를 추상하는 경사를 기념하여 하례를 받고 사령을 반포하다
국역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받고 사령(赦令)을 반포하였다. 왕세자(王世子)가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올렸다. 선조 대왕(宣祖大王), 의인 왕후(懿仁王后) 및 인목 왕후(仁穆王后)에게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하는 경사를 기념한 것이다. 교문(敎文)에,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효도는 조상의 공적을 계승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기에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라는 덕망 있는 임금이 잇달아 나온 것이며, 공적은 반드시 기록되는 것이기에《시경(詩經)》의 아송(雅頌)이 두고두고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더구나 나라를 구제하고 중흥시킨 공적이라면 그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니, 훌륭한 문장으로 존호를 올려 그 공을 드러내는 바이다.
삼가 생각건대, 선조 소경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 현문 의무 성예 달효 대왕(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儀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께서는 큰 일을 수행할 운명을 받으시어 이 나라를 끝없이 뻗어가게 하셨다. 나라를 다스릴 만한 총명과 너그러운 관용을 지니셨기에 사저(私邸) 시절부터 왕위를 계승할 조짐이 있었으며, 두려워할 만한 위엄과 본받을 만한 의용(儀容)을 겸비한 까닭에 우순(虞舜)과 같은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펴셨다. 밤늦도록 책을 가까이하시니 훌륭한 신하들이 경연(經筵)에 가득하였으며, 재야(在野)의 선비들을 모두 조정에 세우시니 많은 초야의 현자(賢者)들이 부름을 받았다. 성학도(聖學圖)를 좌우에 걸어 두시고 성정(性情)을 함양하였으며, 유선록(儒先綠)을 중외(中外)에 간행하시어 명교(名敎)를 뿌리내리셨다. 반드시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고 극진한 효성으로 선조를 받들었으니, 재이(災異)가 생기면 자신을 반성하여 매번 대궐에서 제사를 거행하였으며, 종가(宗家)의 혈통을 바로잡아 이륜(彛倫)을 펴서 온 천하에 사책(史冊)을 빛나게 하였다. 의리와 시비를 따지는 자리에서는 뇌성벽력(雷聲霹靂)처럼 신속하고 서릿발처럼 엄하셨으며, 명령을 내리고 계획을 세울 때에는 은하수처럼 밝고 해와 별처럼 분명하셨다. 아! 국운(國運)이 불행하여 왜적의 침범을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치달아 올라오는 적의 사나운 기세에 국운이 위태로워 파천(播遷)하는 처지에 놓이셨다. 다행히도 명(明) 나라의 구원병이 평양성(平壤城)에서 적의 예봉(銳鋒)을 꺾었을 뿐 아니라, 종사(宗社)의 음덕(陰德)으로 우리 수군(水軍)이 한도(閑島)에서 남은 왜적을 소탕하였으니, 8년 동안 옮겨 다니시며 온갖 고초를 겪으시던 끝에 왜란이 종결되어 다시 평화로이 지내시게 되었다.
장성 휘열 정헌 의인 왕후(章聖徽烈貞憲懿仁王后)께서는 황후가 될 상서로운 징조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으니, 드러나지 않은 공덕으로 정사를 도와 늘 곁에서 정무에 힘쓰도록 경계하였으며, 지방에서 올린 깨끗한 술과 음식으로 종묘에 제사를 지내셨다. 노리개가 기물 등에 일절 욕심이 없었으니 후궁과 내인들이 이를 본받아 사치하지 않았으며, 외가(外家)에서 정사에 관여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으니 내정(內政)에서 인재를 고루 등용할 수 있었다. 임금을 보좌하여 서쪽으로 피하시어 오랫동안 지방에서 피난 생활을 하셨으니, 강을 건널 때에는 행여 뒤쳐진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강변에서 기다리게 하셨으며, 닭울음소리가 점차 줄어들자 반찬 수를 줄이라는 하교를 내리셨다. 주(周) 나라 문왕을 도운 열 사람의 충신보다도 보좌한 공이 컸으나, 중년에도 이르지 못하고 수명을 마치셨으니 이치란 믿기 어려운 것이로다.
또한 소성 정의 명렬 광숙 장정 인목 왕후(昭聖貞懿明烈光淑莊庭仁穆王后)께서는 청렴한 가정에서 자라나 깨끗한 자품을 지니셨다. 겨울에는 밖에서 호위하는 군사들에게까지 유의(襦衣)를 내려 주시면서도 자신은 항상 수수한 차림이었으니 일찍이 그 검소한 덕이 대궐에 알려졌다. 법도에 맞는 옷차림으로 그 의범(懿範)이 더욱 드러나셨고, 부부간에 정이 두터워 바야흐로 많은 자손들이 나오기를 송축하였다. 그러나 부왕(夫王)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임금과의 사이에 이간하는 말이 떠돌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모후를 서궁(西宮)에 유폐(幽閉)하여 삼강(三綱)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으며, 대비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다가 12년 만에야 자애로운 덕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침 선왕의 후손이 의리를 내세워 반정(反正)하니 나라가 새롭게 변모하였고, 태모(太母)께서 명분을 바로 세워 제자리로 돌아오시니 하늘의 뜻이 마침내 회복되었다.
돌아보건대, 나는 중흥의 업을 계승하여 지금 왜란 후 다섯 번째 되는 임진년을 맞이하였다. 선왕을 추모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기만 하니 300년이 결코 먼 세월이 아니로다. 존호를 올리는 중대한 의전(儀典)을 행하여 선왕의 공훈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다면 마땅히 빛나는 책문(冊文)을 높이 올리고 성대한 의식을 크게 거행하리라. 침묘(寢廟)에 이르러 선왕을 즐겁게 하니 마치 그 모습이 어슴푸레 보이는 듯하고, 궁묘(宮廟)에 올라 두 분 왕후의 덕을 기리니 전해 온 유래가 깊도다. 더욱 높이고 후하게 붙인들 그 큰 덕을 칭송할 수 있겠는가마는, 비길 데 없는 공렬을 송축하여 후손을 빛내고 선조를 빛내노라. 이에 올해 4월 26일에 삼가 책보(冊寶)를 받들어 선조 대왕에게는 ‘경명 신력 홍공 융업(景命神曆弘功隆業)’이라는 존호를, 의인왕후에게는 ‘경목(敬穆)’이라는 존호를, 인목왕후에게는 ‘정숙(正肅)’이라는 존호를 추상하노니, 공덕을 새긴 옥책에서는 해와 달이 함께 빛나고, 주슬(朱瑟)로 이를 연주하매 귀신과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노라. 은혜로운 조서를 내리면 작은 벌레조차도 모두 즐거워할 것이니, 계간(鷄竿)을 세우고 사령을 반포하여 두루 잘못을 용서하노라.
이달 2일 새벽 이전에 지은 죄로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 이하에 해당하는 자를 모두 용서하라. 아! 이렇듯 만세토록 태평할 세상을 열어 놓으신 선왕의 공렬을 우러러 칭송하노니, 대대손손 크나큰 복을 맞이할 것이며 방방곡곡 백성들에게 즐겁고 이로운 일이 생기리라. 그러므로 교시하니,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한장석(韓章錫)이 지었다.】
원문
初二日。 御勤政殿, 受賀, 頒赦。 王世子隨詣, 行禮, 進箋文表裏。 宣祖大王、懿仁王后、仁穆王后追上尊號, 稱慶也。 敎文若曰:
孝莫先於繼述, 文、武所以宣重光, 功必待乎形容, 《雅》、《頌》所以傳百代。 矧惟匡恢之烈, 冞增追慕之忱, 式昭賁章, 載颺渙號。 伏惟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膺有爲運, 纘無疆基。 明足以臨, 寬足以容, 啓代邸橫庚之兆, 威有可畏儀有可象, 敷虞廷恭己之治。 親方冊而至夜分, 濟濟經幄之簪筆; 擧遺逸而列朝著, 翹翹草野之弓旌。 涵養性情則聖學圖之左右揭置, 扶植久敎則儒先錄之中外刊行。 事天必出乎誠, 奉先克致其孝, 遇災異而盡修省, 圭璧每擧禁中, 辨宗系而敍彝倫, 簡編有光天下。 至夫義理淑慝之際, 雷霆迅而霜雪嚴; 施諸命令謨謀之間, 雲漢昭而日星煥。 嗟! 邦運適値陽九, 奈戎捷亦遲月三。 侵鎬之患匪茹, 駭夷氛之猖獗, 去邠之議遂定。 慟國步之綴旒, 幸藉皇朝眷顧之靈, 又賴宗、社陰騭之福, 天戈奮飛翰之勢, 挫銳鋒於箕城, 水師覘風雲之機, 掃餘醜於閑島。 當八載乘輿播越, 險阻艱難之備嘗, 致四方兵革無虞, 休養生息之復見。 粤惟祖妣章聖徽烈貞憲懿仁王后, 沙枇衍祉, 洽陽定祥, 贊萬機而著陰功, 警簪珥於永巷。 奉千乘而蠲大饎, 薦蘋蘩於宗宮, 器服玩好之無所私, 外家存濯龍之戒, 嬪嬙媵御之從而化, 內政推貫魚之恩。 逮夫翊聖而西, 久矣蒙塵於外, 鷖馭爲駐於江次, 或慮後涉之人, 鷄聲漸稀於村塒, 特下減膳之敎, 功有邁於十, 亂所助也深, 壽未及於中身, 難諶者理。 亦惟祖妣昭聖貞懿明烈光淑莊定仁穆王后, 淸白家範, 幽靜天姿, 寒節必賜襦衣, 仁澤至及於陛衛, 常服不過紬帛, 儉德夙聞於宮闈。 紘綖其度, 黼黻其章, 儀彌尊於褕翟, 鐘鼓之樂琴瑟之友, 頌方興於詵螽, 豈意灑竹之淚未乾? 乃遭變蒲之言交煽。 西宮之門敢閉。 民彝幾墜於三綱。 東朝之位久虛, 慈德彌彰於一紀, 際神孫奮義而改玉。 邦運維新, 猗太母正名而回鑾, 天心乃復, 顧小子承再昌之緖, 維壬辰當五週之期。 羹牆之思彌深, 莫曰三百年久遠, 範鏤之典是重, 若爲萬一分揄揚。 肆當顯冊之對隆, 聿稽縟儀之誕擧, 假殷寢而衍烈祖。 如有見僾然, 登魯宮而頌姜嫄, 所由來遠矣。 增高附厚, 縱大德之難名, 賁後光前, 頌維烈之無競。 乃於本年四月二十六日, 謹奉冊寶, 追上宣祖大王尊號曰‘景命神曆弘功隆業’, 懿仁王后尊號曰‘敬穆’, 仁穆王后尊號曰‘正肅’。 揚玉檢而日月竝耀, 拊朱瑟而神人同和, 鳳綍銜恩, 肖蝡之屬皆樂。 鷄竿發號, 雷雨之澤旁流。 自本月二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開萬世太平, 欽先王成烈。 如岡如陵, 如山如阜, 迓景祿於繼繼承承, 自南自北, 自西自東, 囿群生於樂樂利利。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韓章錫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