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19권, 고종 19년 6월 10일 갑자 4/17 기사 /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등을 소견하다
국역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봉조하(奉朝賀), 시임 각신(時任閣臣)및 원임 각신(原任閣臣)을 소견(召見)하였다. 승후(承候)하였기 때문이다. 【영의정(領議政) 홍순목(洪淳穆), 봉조하(奉朝賀) 강로(姜㳣),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병국(金炳國), 검교 직각(檢校直閣) 이호익(李鎬翼)·김흥균(金興均)·강찬(姜𧄽)이다.】
홍순목 등이 아뢰기를,
"뜻밖에 이런 큰 변고가 벌어지고 보니 우러러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것은 실로 내가 부덕한 소치이다."
하였다. 홍순목이 각전(各殿)에 대해 문후(問候)하였다. 하교하기를,
"중궁전(中宮殿)의 소재를 모르겠다."
하니, 여러 대신들은 이어 눈물을 삼켰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신들이 들어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만, 문이 막혀서 곧바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세자궁(世子宮)이 경우궁(景祐宮)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판중추부사 김병국(金炳國)과 함께 문안을 올리고 왔습니다."
하니, 강로(姜㳣)가 아뢰기를,
"신은 나중에 들어오다 보니 세자궁에 문안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서 판부사(徐判府事)도 들어왔으나, 다리에 마비가 와서 연석(筵席)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소란을 일으킨 군사들을 우선 무마시키면 일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겠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방금 전에 전교로 그들에게 효유(曉諭)하니 그들이 감읍(感泣)하기도 하고 재배(再拜)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이는 순조롭게 마무리 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들이 과연 감읍하였는가?"
하니, 강노가 아뢰기를,
"각영(各營)에서 이제 옛 규례를 회복하고 처분하는 것이 매우 타당할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군사들에게 급료를 지급해 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지난번 연석에서 우러러 아뢴 바가 있었지만 지급하지 못한 급료가 지금 13개월분이나 됩니다. 지금의 방도로는 검소함을 숭상하고 비용을 절약하여 인심을 수습하는 것보다 먼저인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절로 반석(磐石)같이 안정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와 전 경기 감사(前京畿監司), 전 선혜청 당상(前宣惠廳堂上官)들의 일에 대하여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참혹합니다."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군사-중앙군(中央軍) / 정론-정론(政論)
원문
召見時原任大臣、奉朝賀、時原任閣臣。 承候也 【領議政洪淳穆、奉朝賀姜㳣、判府事金炳國、檢校直閣李鎬翼·金興均·姜𧄽】 淳穆等曰: "不意有此大變, 無辭仰達矣。" 敎曰: "此實予之否德所致也。" 淳穆, 各殿問候。 敎曰: "中宮殿, 未知所在也。" 諸大臣因飮泣。 淳穆曰: "臣等入來旣久。 而阻門不得直入。 伏聞世子宮在景祐宮, 與金判府事, 同爲承候而來矣。" 㳣曰: "臣則追後入來, 故不得承候於世子宮矣。" 淳穆曰: "徐判府事亦入來, 而脚部不仁, 不得登筵矣。" 敎曰: "作鬧輩, 姑且撫摩, 則可以妥貼否?" 淳穆曰: "俄者傳敎, 曉諭於渠輩, 則渠輩或感泣或再拜云。 此可以妥貼矣。" 敎曰: "渠輩果感泣乎?" 㳣曰: "各營今復舊例, 處分甚得當矣。" 敎曰: "軍料之未放, 爲幾許耶?" 淳穆曰: "向筵已有所仰達, 而未放之料, 今爲十三朔矣。 爲今之道, 莫先於崇儉節用, 收拾人心, 自底於磐石之安矣。" 敎曰: "領敦寧、前畿伯、前惠堂事, 尙忍言哉?" 淳穆曰: "慘切矣。"
- 【원본】 23책 1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군사-중앙군(中央軍) / 정론-정론(政論)
고종 19년 (1882) 6월 10일
- 난병들이 범궐하다
- 군사들의 변란을 자책하다
- 선혜청 제조 민겸호, 지중추부사 김보현이 난군에게 살해되다
-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등을 소견하다
- 영돈녕부사에게 어의를 보내어 간병하도록 하다
- 영돈녕부사 이최응이 졸하다
- 중궁전이 승하하여 거애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다
- 무위영을 훈련 도감이라 호칭하고 각 영도 옛 규례를 복구하도록 하다
- 경복궁을 수리하는 일은 하교를 기다리라고 명하다
- 기무아문을 혁파하고 삼군부라고 칭하도록 하다
- 죄인 백낙관을 방송하도록 명하다
-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도배 이하의 죄수들을 모두 방송하다
- 상호군 신응조를 우의정에 임명하다
- 병조 판서와 각 영의 장신들을 별성기로 입직하도록 하다
-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어영청에서 반란 군졸들이 무기를 탈취해 갔음을 보고하다
고종실록19권, 고종 19년 6월 10일 갑자 4/17 기사 /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등을 소견하다
국역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봉조하(奉朝賀), 시임 각신(時任閣臣)및 원임 각신(原任閣臣)을 소견(召見)하였다. 승후(承候)하였기 때문이다. 【영의정(領議政) 홍순목(洪淳穆), 봉조하(奉朝賀) 강로(姜㳣),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병국(金炳國), 검교 직각(檢校直閣) 이호익(李鎬翼)·김흥균(金興均)·강찬(姜𧄽)이다.】
홍순목 등이 아뢰기를,
"뜻밖에 이런 큰 변고가 벌어지고 보니 우러러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것은 실로 내가 부덕한 소치이다."
하였다. 홍순목이 각전(各殿)에 대해 문후(問候)하였다. 하교하기를,
"중궁전(中宮殿)의 소재를 모르겠다."
하니, 여러 대신들은 이어 눈물을 삼켰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신들이 들어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만, 문이 막혀서 곧바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세자궁(世子宮)이 경우궁(景祐宮)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판중추부사 김병국(金炳國)과 함께 문안을 올리고 왔습니다."
하니, 강로(姜㳣)가 아뢰기를,
"신은 나중에 들어오다 보니 세자궁에 문안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홍순목이 아뢰기를,
"서 판부사(徐判府事)도 들어왔으나, 다리에 마비가 와서 연석(筵席)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소란을 일으킨 군사들을 우선 무마시키면 일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겠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방금 전에 전교로 그들에게 효유(曉諭)하니 그들이 감읍(感泣)하기도 하고 재배(再拜)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이는 순조롭게 마무리 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들이 과연 감읍하였는가?"
하니, 강노가 아뢰기를,
"각영(各營)에서 이제 옛 규례를 회복하고 처분하는 것이 매우 타당할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군사들에게 급료를 지급해 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지난번 연석에서 우러러 아뢴 바가 있었지만 지급하지 못한 급료가 지금 13개월분이나 됩니다. 지금의 방도로는 검소함을 숭상하고 비용을 절약하여 인심을 수습하는 것보다 먼저인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절로 반석(磐石)같이 안정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와 전 경기 감사(前京畿監司), 전 선혜청 당상(前宣惠廳堂上官)들의 일에 대하여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하니, 홍순목이 아뢰기를,
"참혹합니다."
하였다.
- 【원본】 23책 1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군사-중앙군(中央軍) / 정론-정론(政論)
원문
召見時原任大臣、奉朝賀、時原任閣臣。 承候也 【領議政洪淳穆、奉朝賀姜㳣、判府事金炳國、檢校直閣李鎬翼·金興均·姜𧄽】 淳穆等曰: "不意有此大變, 無辭仰達矣。" 敎曰: "此實予之否德所致也。" 淳穆, 各殿問候。 敎曰: "中宮殿, 未知所在也。" 諸大臣因飮泣。 淳穆曰: "臣等入來旣久。 而阻門不得直入。 伏聞世子宮在景祐宮, 與金判府事, 同爲承候而來矣。" 㳣曰: "臣則追後入來, 故不得承候於世子宮矣。" 淳穆曰: "徐判府事亦入來, 而脚部不仁, 不得登筵矣。" 敎曰: "作鬧輩, 姑且撫摩, 則可以妥貼否?" 淳穆曰: "俄者傳敎, 曉諭於渠輩, 則渠輩或感泣或再拜云。 此可以妥貼矣。" 敎曰: "渠輩果感泣乎?" 㳣曰: "各營今復舊例, 處分甚得當矣。" 敎曰: "軍料之未放, 爲幾許耶?" 淳穆曰: "向筵已有所仰達, 而未放之料, 今爲十三朔矣。 爲今之道, 莫先於崇儉節用, 收拾人心, 自底於磐石之安矣。" 敎曰: "領敦寧、前畿伯、前惠堂事, 尙忍言哉?" 淳穆曰: "慘切矣。"
- 【원본】 23책 1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군사-중앙군(中央軍) / 정론-정론(政論)
원본
고종 19년 (1882) 6월 10일
- 난병들이 범궐하다
- 군사들의 변란을 자책하다
- 선혜청 제조 민겸호, 지중추부사 김보현이 난군에게 살해되다
-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등을 소견하다
- 영돈녕부사에게 어의를 보내어 간병하도록 하다
- 영돈녕부사 이최응이 졸하다
- 중궁전이 승하하여 거애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다
- 무위영을 훈련 도감이라 호칭하고 각 영도 옛 규례를 복구하도록 하다
- 경복궁을 수리하는 일은 하교를 기다리라고 명하다
- 기무아문을 혁파하고 삼군부라고 칭하도록 하다
- 죄인 백낙관을 방송하도록 명하다
-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도배 이하의 죄수들을 모두 방송하다
- 상호군 신응조를 우의정에 임명하다
- 병조 판서와 각 영의 장신들을 별성기로 입직하도록 하다
-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어영청에서 반란 군졸들이 무기를 탈취해 갔음을 보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