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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2권, 고종 2년 5월 26일 경신 3/5 기사 / 1865년 청 동치(同治) 4년

차대에서 대신들이 경비를 절약할 것, 새로운 삼군부의 신설과 인릉, 수릉의 묘지문과 행장을 봉안하는 날을 받을 것 등을 아뢰다

국역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법궁(法宮)의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민력(民力)을 소중하게 여겨 토목 공사를 신중히 벌이라고 한 《춘추(春秋)》에서의 경계가 절실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전하께서는 오늘날 건축 공사를 벌이는 것과 관련하여 성상 자신을 크게 자책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독실한 자세로 전당(殿堂)은 엄숙하게만 할 뿐 사치스럽게는 하지 말도록 하고, 담장은 완전하게만 할 뿐 현란하게는 하지 말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띠풀로 지붕을 이고 흙으로 계단을 만든 것처럼 검소하게 하여 선왕의 규모와 견줄 수 있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전하께서 입고 타고 드시는 것들로부터 아래로는 조정의 불요불급한 비용에 이르기까지 절약하고 줄이시어 1분(分)을 절약하면 1분 어치의 이익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복을 맞아들이는 길이 되고, 자식처럼 공사에 달려온 백성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진달한 말이 절실하여 매우 좋다. 마땅히 명심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경복궁(景福宮)의 건축 공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의정부(議政府) 역시 새로 중건(重建)되고 있습니다. 지금 예조가 있는 곳은 바로 국초(國初)에 삼군부(三軍府)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때에 정부와 대치해서 삼군부를 세웠던 것은 한 나라의 정령(政令)을 내는 곳은 문사(文事)와 무비(武備)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오위(五衛)의 옛 제도를 갑자기 복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훈국(訓局)의 신영(新營)과 남영(南營)과 마병소(馬兵所) 및 오영(五營)의 주사(晝仕)하는 곳 등을 지금 예조가 있는 곳에 합설(合設)하여 삼군부라고 칭하고, 예조는 한성부 자리로 옮겨 설치하며, 한성부는 훈국의 신영 자리로 옮겨 설치함으로써 육부(六部)가 대궐의 좌우에 늘어서게 하여 일체 옛 규례를 따르도록 하며, 그 밖에 각사(各司)는 편리한 쪽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대 역사(役事)를 경영하기 시작한 뒤로 방민(坊民)과 기민(畿民)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오며 혹시라도 남에게 뒤질까 염려하고 있는 것은, 300년을 내려온 옛 터전을 다시 일구려고 하는 일이 크게 백성들의 마음을 용동시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의연금(義捐金)을 내어 보조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이것은 조정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것이 아니니 많이 납부한 자에 대해서는 별도로 성의를 표시하는 거조가 있어야 할 것인데, 옛날의 곡식을 납부하는 자에 대해 보직으로 관직을 주었던 정사에 비추어 보아도 더욱 근거할 점이 있기에 우러러 진달합니다."

하니,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이르기를,

"이와 같은 백성의 마음에 어떻게 성의를 표시해야 하겠는가? 오직 조정의 책무에 달려 있다. 우리 성상을 보좌하며 인도하고 우리 적자(赤子)를 온전히 보호하여 도탄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 이 모두가 조정의 책임이다. 각별히 성의를 표시하여 신의를 잃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신이 또다시 이렇게 염치없이 나왔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상하(上下)가 서로 버티다 보면 사체(事體)가 갈수록 민망스럽게 되겠기에 감히 달려나와 아뢰면서 공경하는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정력(精力)이 완전히 소진되어 10가지 중에 9가지는 잘못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는 신이 직접 처리해 올려야 할 긴급한 사무까지도 완전히 빠뜨린 나머지 거의 큰 낭패를 보게 한 것이 여러 번입니다. 온갖 책무가 집중되는 자리를 완전히 비어 있는 자리로 만들어 버렸으니, 신 한 몸이 떠나는 것이 바로 국가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하니, 대왕대비가 이르기를,

"여러 차례나 체직(遞職)을 청하였기 때문에 예우하는 도리상 어쩔 수 없이 잠깐 뜻을 들어주기로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가적인 역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가례(嘉禮)를 또 내년에 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때에 원보(元輔)의 자리를 어찌 잠시라도 비워 둘 수가 있겠는가? 다시는 사면(辭免)하지 말라."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김병학(金炳學)이 아뢰기를,

"오늘날 시폐(時弊)를 논하는 자들은 반드시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기강을 확립하고 작상(爵賞)을 신중히 하고 형옥(刑獄)을 공평하게 하고 탐묵(貪墨)을 징계하고 사치를 금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물론 이치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신의 생각에는 오히려 말단적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대저 임금의 한 마음이야말로 온갖 교화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마음이 일단 바르게 되면 백관(百官)과 만백성들이 감히 부정(不正)한 짓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니, 마치 북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고 바람이 불면 풀이 드러눕듯 하여 반드시 하고자 하는 대로 정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들의 다스림과 계책이 모두 학문에 힘쓴 결과 나온 것이고 학문을 하지 않고서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시종 일관 학문에 정진할 생각을 하시어 날마다 공경하는 마음을 이루어 나가시고 제때에 민첩하게 처리하도록 힘쓰심으로써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일체가 정도(正道)에 나오도록 하소서. 그러면 고쳐져야 할 현재의 폐단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진달한 말을 명심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열성(列聖)의 지장(誌狀)을 매번 실록(實錄)이 완성된 뒤에 사고(史庫)에 함께 봉안(奉安)하곤 하였습니다. 인릉(仁陵)의 천봉(遷奉) 지장과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지장과 수릉(綏陵)의 천봉 지장과 경릉(景陵)에게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한 지장과 효현왕후(孝顯王后)에게 휘호(徽號)와 존호를 추상한 지장과 예릉(睿陵)의 지장을 내각(內閣)으로 하여금 날을 가려서 봉인(奉印)하게 하는 동시에 열성의 지장에 합부(合附)하도록 해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식(典式)이기에 감히 진달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문

次對。 領議政趙斗淳曰: "法宮經始, 已閱月矣。 重民力、謹土功, 《春秋》告誡丁寧。 殿下以今日堂構, 有丕責於聖躬, 恒慥慥焉。 堂陛嚴而已, 勿求侈大; 垣墉完而已, 勿求炫耀。 茅茨土階, 用比先王之觀。 而上自服御膳需, 下至朝廷不急之費, 克節克損。 約一分, 有一分之益, 是其爲迓申休而答子來之心也。" 敎曰: "所陳切切甚好。 當體念矣。" 又曰: "景福宮方張營建, 而際此議政府重新矣。 今之禮曹, 卽國初三軍府, 而與政府對峙者, 以其一國政令, 文事與武備也。 五衛舊制, 雖不可遽復, 以訓局新營、南營、馬兵所及五營晝仕之所, 合設於今禮曹, 而曰三軍府。 禮曹則移設於漢城府, 漢城府則移設於訓局新營。 使六部列於象魏左右, 一遵古規, 外他各司使之從便經紀爲好矣。" 允之。 又曰: "大役經始後, 坊民、畿民之樂赴, 惟恐或後者, 以三百年舊址重闢, 有以聳動群心也。 至於隨力出義, 許其補助, 非朝家强督, 則就其多數, 別有示意之擧。 其視納粟補官之政, 尤爲有據, 故仰達矣。" 大王大妃曰: "如此民心, 何以示意? 惟在朝廷之責也。 輔導我聖上, 全保我赤子, 勿使入於塗炭, 是其責也。 各別示意, 無至失信, 可也。" 又曰: "臣之復此冒膺, 誠有靦矣。 上下相持, 事體悶悚, 不敢不以趨走爲恭。 而只是精力銷耗, 十顚九錯, 甚則到手上緊事務, 全然遺落, 幾乎做出大狼狽者, 屢矣。 以百責委輸之地, 爲一切癏曠之所, 臣之一身之去, 爲一國之幸也。" 大王大妃曰: "屢次請遞, 故其在禮遇, 不得已暫爲許副。 目下國役方張, 嘉禮又在明年, 此時元輔之任, 豈可暫曠? 勿復辭免。" 左議政金炳學曰: "今之論時弊者, 必曰‘財用可節也, 紀綱可立也, 爵賞可愼也, 刑獄可平也, 貪墨可懲也, 奢侈可禁也。’ 此固理到之言, 而臣則猶以爲末也。 夫人主一心, 萬化之原。 殿下之心一正, 則百官萬民, 罔敢不正, 桴應草偃, 必底乎從欲而治。 所以聖主、哲辟治法、政謨, 皆從典學中做出來, 未有不學而能致治者也。 今殿下念終始典于學, 日躋、時敏存諸心, 發於事者, 一出於正, 則何憂乎時弊之可矯可捄乎?" 敎曰: "所陳當體念矣。" 又曰: "列聖誌狀, 每於實錄告成後, 同爲奉安於史庫矣。 仁陵遷奉誌狀、純元王后誌狀、綏陵遷奉誌狀、景陵追上尊號誌狀、孝顯王后追上徽號尊號誌狀、睿陵誌狀, 令內閣擇日奉印, 合附於列聖誌狀, 卽典式。 故敢達矣。" 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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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2권, 고종 2년 5월 26일 경신 3/5 기사 / 1865년 청 동치(同治) 4년

차대에서 대신들이 경비를 절약할 것, 새로운 삼군부의 신설과 인릉, 수릉의 묘지문과 행장을 봉안하는 날을 받을 것 등을 아뢰다

국역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법궁(法宮)의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민력(民力)을 소중하게 여겨 토목 공사를 신중히 벌이라고 한 《춘추(春秋)》에서의 경계가 절실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전하께서는 오늘날 건축 공사를 벌이는 것과 관련하여 성상 자신을 크게 자책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독실한 자세로 전당(殿堂)은 엄숙하게만 할 뿐 사치스럽게는 하지 말도록 하고, 담장은 완전하게만 할 뿐 현란하게는 하지 말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띠풀로 지붕을 이고 흙으로 계단을 만든 것처럼 검소하게 하여 선왕의 규모와 견줄 수 있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전하께서 입고 타고 드시는 것들로부터 아래로는 조정의 불요불급한 비용에 이르기까지 절약하고 줄이시어 1분(分)을 절약하면 1분 어치의 이익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복을 맞아들이는 길이 되고, 자식처럼 공사에 달려온 백성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진달한 말이 절실하여 매우 좋다. 마땅히 명심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경복궁(景福宮)의 건축 공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의정부(議政府) 역시 새로 중건(重建)되고 있습니다. 지금 예조가 있는 곳은 바로 국초(國初)에 삼군부(三軍府)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때에 정부와 대치해서 삼군부를 세웠던 것은 한 나라의 정령(政令)을 내는 곳은 문사(文事)와 무비(武備)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오위(五衛)의 옛 제도를 갑자기 복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훈국(訓局)의 신영(新營)과 남영(南營)과 마병소(馬兵所) 및 오영(五營)의 주사(晝仕)하는 곳 등을 지금 예조가 있는 곳에 합설(合設)하여 삼군부라고 칭하고, 예조는 한성부 자리로 옮겨 설치하며, 한성부는 훈국의 신영 자리로 옮겨 설치함으로써 육부(六部)가 대궐의 좌우에 늘어서게 하여 일체 옛 규례를 따르도록 하며, 그 밖에 각사(各司)는 편리한 쪽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대 역사(役事)를 경영하기 시작한 뒤로 방민(坊民)과 기민(畿民)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오며 혹시라도 남에게 뒤질까 염려하고 있는 것은, 300년을 내려온 옛 터전을 다시 일구려고 하는 일이 크게 백성들의 마음을 용동시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의연금(義捐金)을 내어 보조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이것은 조정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것이 아니니 많이 납부한 자에 대해서는 별도로 성의를 표시하는 거조가 있어야 할 것인데, 옛날의 곡식을 납부하는 자에 대해 보직으로 관직을 주었던 정사에 비추어 보아도 더욱 근거할 점이 있기에 우러러 진달합니다."

하니,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이르기를,

"이와 같은 백성의 마음에 어떻게 성의를 표시해야 하겠는가? 오직 조정의 책무에 달려 있다. 우리 성상을 보좌하며 인도하고 우리 적자(赤子)를 온전히 보호하여 도탄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 이 모두가 조정의 책임이다. 각별히 성의를 표시하여 신의를 잃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신이 또다시 이렇게 염치없이 나왔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상하(上下)가 서로 버티다 보면 사체(事體)가 갈수록 민망스럽게 되겠기에 감히 달려나와 아뢰면서 공경하는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정력(精力)이 완전히 소진되어 10가지 중에 9가지는 잘못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심지어는 신이 직접 처리해 올려야 할 긴급한 사무까지도 완전히 빠뜨린 나머지 거의 큰 낭패를 보게 한 것이 여러 번입니다. 온갖 책무가 집중되는 자리를 완전히 비어 있는 자리로 만들어 버렸으니, 신 한 몸이 떠나는 것이 바로 국가의 다행이 될 것입니다."

하니, 대왕대비가 이르기를,

"여러 차례나 체직(遞職)을 청하였기 때문에 예우하는 도리상 어쩔 수 없이 잠깐 뜻을 들어주기로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가적인 역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가례(嘉禮)를 또 내년에 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때에 원보(元輔)의 자리를 어찌 잠시라도 비워 둘 수가 있겠는가? 다시는 사면(辭免)하지 말라."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김병학(金炳學)이 아뢰기를,

"오늘날 시폐(時弊)를 논하는 자들은 반드시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기강을 확립하고 작상(爵賞)을 신중히 하고 형옥(刑獄)을 공평하게 하고 탐묵(貪墨)을 징계하고 사치를 금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물론 이치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신의 생각에는 오히려 말단적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대저 임금의 한 마음이야말로 온갖 교화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마음이 일단 바르게 되면 백관(百官)과 만백성들이 감히 부정(不正)한 짓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니, 마치 북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고 바람이 불면 풀이 드러눕듯 하여 반드시 하고자 하는 대로 정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들의 다스림과 계책이 모두 학문에 힘쓴 결과 나온 것이고 학문을 하지 않고서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시종 일관 학문에 정진할 생각을 하시어 날마다 공경하는 마음을 이루어 나가시고 제때에 민첩하게 처리하도록 힘쓰심으로써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일체가 정도(正道)에 나오도록 하소서. 그러면 고쳐져야 할 현재의 폐단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진달한 말을 명심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열성(列聖)의 지장(誌狀)을 매번 실록(實錄)이 완성된 뒤에 사고(史庫)에 함께 봉안(奉安)하곤 하였습니다. 인릉(仁陵)의 천봉(遷奉) 지장과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지장과 수릉(綏陵)의 천봉 지장과 경릉(景陵)에게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한 지장과 효현왕후(孝顯王后)에게 휘호(徽號)와 존호를 추상한 지장과 예릉(睿陵)의 지장을 내각(內閣)으로 하여금 날을 가려서 봉인(奉印)하게 하는 동시에 열성의 지장에 합부(合附)하도록 해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식(典式)이기에 감히 진달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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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次對。 領議政趙斗淳曰: "法宮經始, 已閱月矣。 重民力、謹土功, 《春秋》告誡丁寧。 殿下以今日堂構, 有丕責於聖躬, 恒慥慥焉。 堂陛嚴而已, 勿求侈大; 垣墉完而已, 勿求炫耀。 茅茨土階, 用比先王之觀。 而上自服御膳需, 下至朝廷不急之費, 克節克損。 約一分, 有一分之益, 是其爲迓申休而答子來之心也。" 敎曰: "所陳切切甚好。 當體念矣。" 又曰: "景福宮方張營建, 而際此議政府重新矣。 今之禮曹, 卽國初三軍府, 而與政府對峙者, 以其一國政令, 文事與武備也。 五衛舊制, 雖不可遽復, 以訓局新營、南營、馬兵所及五營晝仕之所, 合設於今禮曹, 而曰三軍府。 禮曹則移設於漢城府, 漢城府則移設於訓局新營。 使六部列於象魏左右, 一遵古規, 外他各司使之從便經紀爲好矣。" 允之。 又曰: "大役經始後, 坊民、畿民之樂赴, 惟恐或後者, 以三百年舊址重闢, 有以聳動群心也。 至於隨力出義, 許其補助, 非朝家强督, 則就其多數, 別有示意之擧。 其視納粟補官之政, 尤爲有據, 故仰達矣。" 大王大妃曰: "如此民心, 何以示意? 惟在朝廷之責也。 輔導我聖上, 全保我赤子, 勿使入於塗炭, 是其責也。 各別示意, 無至失信, 可也。" 又曰: "臣之復此冒膺, 誠有靦矣。 上下相持, 事體悶悚, 不敢不以趨走爲恭。 而只是精力銷耗, 十顚九錯, 甚則到手上緊事務, 全然遺落, 幾乎做出大狼狽者, 屢矣。 以百責委輸之地, 爲一切癏曠之所, 臣之一身之去, 爲一國之幸也。" 大王大妃曰: "屢次請遞, 故其在禮遇, 不得已暫爲許副。 目下國役方張, 嘉禮又在明年, 此時元輔之任, 豈可暫曠? 勿復辭免。" 左議政金炳學曰: "今之論時弊者, 必曰‘財用可節也, 紀綱可立也, 爵賞可愼也, 刑獄可平也, 貪墨可懲也, 奢侈可禁也。’ 此固理到之言, 而臣則猶以爲末也。 夫人主一心, 萬化之原。 殿下之心一正, 則百官萬民, 罔敢不正, 桴應草偃, 必底乎從欲而治。 所以聖主、哲辟治法、政謨, 皆從典學中做出來, 未有不學而能致治者也。 今殿下念終始典于學, 日躋、時敏存諸心, 發於事者, 一出於正, 則何憂乎時弊之可矯可捄乎?" 敎曰: "所陳當體念矣。" 又曰: "列聖誌狀, 每於實錄告成後, 同爲奉安於史庫矣。 仁陵遷奉誌狀、純元王后誌狀、綏陵遷奉誌狀、景陵追上尊號誌狀、孝顯王后追上徽號尊號誌狀、睿陵誌狀, 令內閣擇日奉印, 合附於列聖誌狀, 卽典式。 故敢達矣。" 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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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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