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1권, 고종 1년 2월 29일 경자 4/4 기사 / 1864년 청 동치(同治) 3년
경상 감사 서헌순이 경주의 동학의 정형을 보고하다
국역
경상 감사(慶尙監司) 서헌순(徐憲淳)이, ‘경주(慶州)의 동학(東學) 죄인 최복술(崔福述) 등에 대해서 그 전말을 밝혀 경중을 나눠 논리(論理)하여 등문(登聞)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참사관(參査官) 상주 목사(尙州牧使) 조영화(趙永和), 지례 현감(知禮縣監) 정기화(鄭夔和), 산청 현감(山淸縣監) 이기(李沂)가 신문해야 할 사람들을 함께 세밀히 신문하니, 「최복술은 경주 백성으로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양학(洋學)이 나왔다는 말을 듣자 의관(衣冠)을 갖추고 행세하는 사람으로서 양학이 갑자기 퍼지는 것을 차마 보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라는 13자로 된 말을 지어서 동학(東學)이라고 불렀는데, 동쪽 나라의 학문이라는 뜻에서 취한 것입니다. 양학은 음(陰)이고, 동학은 양(陽)이기 때문에 양을 가지고 음을 억제할 목적에서 늘 외우고 읽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간질병에 걸렸다가 이것을 외워서 저절로 완쾌되었고, 병이 있던 자는 그것이 풍병(風病)이든 간질병이든 관계없이 이것을 외우기만 하면 차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글씨를 좀 쓸 줄 알아 누가 혹시 써 달라고 할 때면 언제나 거북 귀(龜) 자와 용 룡(龍) 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써 주었습니다.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산 속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지만 소를 잡은 적은 없습니다. 잡병(雜病)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궁(弓) 자를 쓴 종이를 불에 태워 마시게 하면 이내 병이 나았습니다.
먼 데서나 가까운 데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부득이 만나 주었기 때문에 도당(徒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 붓을 잡고 귀신이 내리게 했거나 칼춤을 추면서 공중으로 솟아올랐거나 돈과 쌀을 토색질한 일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선생이니 제자니 하는 소리도 그가 자칭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간악한 종교와는 달라서 애초에 숨기거나 속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퇴한 아전(衙前)인 이내겸(李乃謙)은, 「제 아버지의 병에는 약도 효력이 없기 때문에 최가를 찾아가 보았더니, 13자를 써 주면서 읽으라고 권하여 밤낮으로 외웠으나 병이 차도가 없기 때문에 그만 걷어치우고 그 자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편지까지 썼습니다. 이른바 그 문서라는 것은 포덕문(布德文)과 수덕문(修德文)입니다. 그 주문(呪文)에 이르기를, 『지극한 기운이 이제 이르렀으니, 원컨대 크게 내리소서.〔至氣今至願爲大降〕』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천주(天主)께서 내 정성을 돌아보니 만사를 알게 한 은혜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知〕』라고 하고, 검가(劍歌)에는 이르기를, 『날이 시퍼런 용천검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龍泉利劍不用何爲〕』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돼지고기, 국수, 떡, 과일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은 병을 치료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복술이 본래 글씨를 잘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거북 귀(龜) 자, 용 룡(龍) 자, 구름 운(雲) 자, 상서로울 상(祥) 자, 의로울 의(義) 자 등의 글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그러면 그 부형들이 약간의 돈이나 곡식으로 수고를 갚았을 뿐, 실제 토색질을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상(紙商) 강원보(姜元甫)는, 「저는 풍담(風痰)으로 집에서 앓고 있다가 그것을 외우기만 하면 다 빠졌던 머리털도 다시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병이 나은 후로는 더 외울 맛이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박응환(朴應煥)은, 「제가 병 때문에 최가를 찾아갔더니 그가 말하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숭상하면 병도 나을 수 있다. 아침이 되면 수학(受學)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각기 잠자리로 돌아가 자던 중에 붙들려 왔으므로 다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童蒙) 김의갑(金義甲)은, 「저는 최복술과 같은 동리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실정을 속이겠습니까? 최복술의 아들 최인득(崔仁得)은 늘 나무칼을 가지고 뛰거나 춤을 추면서 『용천이검(龍泉利劍)』이라는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미치광이로 알고 절대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각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적어도 30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뒷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병이 낫게 해주기를 빌었으나 끝내 효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 등지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최가의 행동이 황당해서 밤에 어디를 가노라고 횃불을 찾으면 온 동리가 비웃고 꾸짖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는, 「제가 고질병이 있어서 최가에게 가 보았더니 『위천주(爲天主)』등의 13자를 가르쳐 주면서 그 운자(韻字)에 맞추어 부(賦)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었더니 최복술이 썼습니다. 그날 밤에 함께 붙들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 최인득(崔仁得)은, 「제가 사실 칼춤을 추었지만 본심에서 한 짓이 아니라 미친병이 갑자기 발작해서였습니다. 나무칼을 들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 노래는 『때로구나 때로구나』라고 하는 곡입니다. 이것을 익히기 위하여 먼저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두 번째 공초(供招)에, 「제가 경신년(1860) 경에 듣건대, 양인(洋人)이 먼저 중국을 점령하고 다음에 우리나라로 오면 그 변(變)을 장차 헤아릴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13자로 된 주문(呪文)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쳐서 양인을 제어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은 정성을 다하면 이롭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인의 책은 반드시 규(𢎥)로 이름을 달았는데 그 글자는 「궁(弓)」자의 밑에 두 점을 찍은 것입니다. 그것을 불태워 마셔서 액운을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공부를 시작할 때에 몸이 떨리면서 귀신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천신(天神)이 내려와 가르치기를, 『요사이 바다 위에 배로 오고 가고 하는 것들은 모두 양인인데 칼춤이 아니고는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검가(劍歌) 한 편을 주었습니다. 문(文)을 짓고 부(賦)를 지어 불렀는데 과연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내겸(李乃兼)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이른바 검가(劍歌)라고 하는 것은 『때로구나, 때로구나, 이야말로 내 때로구나. 날이 퍼런 용천이검(龍天利劍)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 만대에 한 번 태어난 장부요, 5만 년에 한 번 만난 때로구나. 날이 퍼런 용천검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 춤추는 소매에 긴 장삼을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바로 잡고 호호 망망 넓은 천지에 한 몸을 기대고 서서 검가(劍歌) 한 곡조를 부르노라. 때로구나 때로구나 노래를 부르니 날이 퍼런 용천검이 해와 달에 번쩍이는구나. 늘어진 소매가 달린 장삼으로 우주를 덮으리.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장부가 앞에 나서니 장사도 소용없구나. 때로구나 때로구나, 좋구나, 이야말로 내 때로구나. 좋구나.』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약이라고 하는 것은 『궁(穹)』자에서 그 글자 반쪽의 뜻을 취한 것으로서 종이 위에 둥그런 원을 그려놓고 종이의 가장자리에 「궁(弓)」자 두 자를 써넣은 것인데 해석하기를, 『그 이름은 태극(太極)이라고도 하고, 또 궁궁(弓弓)이라고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크게 내린다는 내용을 담은 8자는 이것만 외우면 몸이 떨린다고 합니다. 들은 것을 다 고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조상빈(趙相彬)은, 「제가 최복술을 만나보니, 『천신(天神)이 내려와서 분명히 나에게 가르치기를 금년 2월과 5월 사이에 양인이 의주(義州)로부터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는데 내 통문(通文)을 가지고 일제히 따라가라. 이 춤을 익힌 자가 앞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공을 세울 것이니, 내가 고관(高官)이 되면 너희들은 각기 다음 자리의 벼슬들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제사를 지낼 때, 저는 귀신을 내리게 하는 글을 외우고 최복술은 칼을 휘둘렀습니다. 글씨를 잘 써서 병을 빨리 낫게 하였는데 『염병 귀신은 달아나고 학질 귀신은 사라져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른바 약이라고 하는 두 개의 궁(弓) 자를 혹 불태워 마시기도 하고, 혹 씹어서 삼키기도 하는데, 최복술이 그 뜻을 해석하기를, 『옛날 임진년(1592)이나 임신년(1812?)에는 이(利)가 송송(松松)에 있다고 하고 가가(家家)에 있다고 하였지만, 갑자년(1864)에는 이가 궁궁(弓弓)에 있기 때문에 궁자를 불태워서 마시면 제어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세 번째 공초에, 「양인이 나온다고 하는 것는 간사한 마귀에 속은 것이고, 갑자년(1864)에는 이(利)가 궁궁(弓弓)에 있다는 소리는 전해 내려오는 말입니다. 마귀라는 것이 분명히 와서 이르기를, 『계해년(1863) 12월 19일에는 양인이 나올 것이고, 갑자년(1864) 1월에는 응당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계해년 10월에는 네가 하양 현감(河陽縣監)이 되고, 12월에는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검무(劍舞)도 마귀가 시킨 노릇입니다. 글씨를 쓰는 것도 귀신을 접한 이후 더욱 기묘해져서 써 달라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종종 써 주었습니다. 하루에 몇백 리를 걷는다는 설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걸음이 느려서 몇십 리만 걸어도 발이 부르틀 지경입니다. 가마를 타고 다닌다는 설은 과연 지난해에 신영(新寧)과 영천(永川) 땅에 갔다 온 일이 있습니다. 일월산(日月山)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설은 어떤 사람이 그 산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다고들 하는데, 제가 들어갔던 것은 아닙니다. 더 아뢸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내겸(李乃兼)의 세 번째 공초에, 「일월산에 대한 설은 영양(英陽)과 진보(眞寶)에 사는 사람들이 산 밑에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고 모여서 공부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최복술이 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 성일규(成一奎)는, 「제가 시험 삼아 검무(劍舞)를 배울 초기에는 몸이 떨리는 듯했으나 끝끝내 공중으로 솟아오르게 된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네 번째 공초에, 「《옥편(玉篇)》과 같은 책에서 「𢎥」자를 도교(道敎)의 경서(經書)라고 해석하였으니, 서학(西學)도 도교의 경서와 같은 종류인 것 같습니다. 억측으로 생각건대, 이(利)가 궁궁(弓弓)에 있다고 한 것은 「𢎥」자 밑의 두 개의 점이 바로 궁궁(弓弓)이 되는 것을 취한 것 같습니다. 계해년(1863) 12월 19일이라는 기한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기 때문에 학도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길까봐 다시 갑자년(1864) 10월 11일 운운하였습니다. 만약에 이 달도 그냥 지나면 다시는 공부를 하지 말자는 뜻으로 서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돈이요, 양곡이요, 갑옷이요, 병기요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양 도적이 나오더라도 주문과 칼춤으로 도적을 막을 것이고, 하늘 귀신의 도움을 받을 것이니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강원보(姜元甫)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이 도적들은 불로 하는 공격을 잘하므로 무력으로 막을 바가 아니다. 오직 동학(東學)이라야 그 무리를 모두 섬멸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양인이 일본(日本)에 들어가서 천주당(天主堂)을 세웠고, 우리 동방에 와서 또 그런 것을 세우려고 하지만 내가 응당 소멸 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의 두 번째 공초에, 「최가가 말하기를, 『나무의 날카로움이 쇠보다도 더하면 양인들의 눈이 현혹하여 보검(寶劍)인줄 알게 되므로 제아무리 든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가졌더라도 감히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가와 가장 친밀한 사람들로서 수제자(首弟子)라는 자들은, 곧 최자원(崔自元), 강원보(姜元甫), 백원수(白源洙), 최신오(崔愼五), 최경오(崔景五) 등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원수(白源洙)는, 「저의 집의 고노(雇奴)인 김인찬(金仁贊)이 동학을 외우던 끝에 갑자기 광기(狂氣)가 발작하여 아들 김용성(金龍成)과 함께 귀신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붓을 들어 큰 글씨로 『김인찬은 대장(大將)이 되고, 김용성은 중군(中軍)이 되고, 강원보(姜元甫)는 훈도(訓導)가 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그 고노를 곧 내쫓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대질하고 공초를 받아 이번에 요사스러운 공부를 하고 있는 무리들을 철저히 구핵(究覈)하였습니다. 최복술은 본래 요사한 부류로서 감히 황당한 술책을 품고 주문이란 것을 꾸며내어 요망스러운 말로 선동하였습니다. 위천주(爲天主)라는 설에서는 서학(西學)을 배척한다고 하였지만, 도리어 사학(邪學)의 포덕문(布德文)을 답습하였고,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꾸며 은밀히 나쁜 마음을 실현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궁(弓)’ 자 약은 비방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검무(劍舞)를 추면서 흉악한 노래를 퍼뜨렸으며 평온한 세상에 난(亂)을 생각하고, 은밀히 도당(徒黨)을 모았으며 걸핏하면 귀신이 가르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술법은 바로 한(漢) 나라 때 누런 두건을 쓴 도적들과 같은 것이고, 누구에게나 돈과 곡식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으니 그 무리는 바로 한 나라 때 미적(米賊)과 같은 것입니다. 법이 더없이 엄한 이상 조금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강원보(姜元甫) 등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였고, 정석교(丁錫敎) 등도 엄하게 감처(勘處)해야 할 것입니다. 전석문(田錫文) 등은 모두 범죄의 실제 증거가 없으니 응당 참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괴수가 체포되는 바람에 진상이 속속들이 다 드러났으므로 열거하여 등문(登聞)하고 공손히 처결을 기다립니다. 장경서(張敬瑞) 등도 엄히 신칙하여 감시하고 염탐하도록 하였습니다.’라고 아뢰니, 전교하기를,
"대왕대비께 여쭈어 응당 처분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전교하기를,
"이단(異端)의 사설(邪說)이 사람들의 마음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고 있으니 실로 교화가 밝지 못함을 탄식하게 된다. 이번 경상도(慶尙道) 옥에 갇힌 여러 죄수로 말한다면,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우둔하여 더 말할 여지조차 없고, 이단이란 죄목도 과분하다. ‘죄를 다스리는 데만 치우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훈계는 바로 이런 무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미쳐서 몰려다닌 행적에 대해서는 뭇사람을 각성시키기 위한 조치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백(嶺伯)이 사계(査啓)한 내용을 묘당(廟堂)에서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원문
慶尙監司徐憲淳:
以慶州東學罪人崔福述等, 究其本末, 分輕重論理登聞事, 命下矣。 參査官尙州牧使趙永和、知禮縣監鄭夔和、山淸縣監李沂在, 應問各人, 眼同盤覈。 則福述, 以"慶州民, 訓學爲業矣。 聞洋學出來, 以衣冠之類, 不忍見洋學之熾行, 以敬天順天之心, 做出‘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十三字, 名之曰‘東學’, 取東國之義。 而洋學陰也, 東學陽也, 欲以陽制陰, 常誦讀矣。 渠子疳病, 誦此自瘳, 抱病人, 無論風症癎疾, 勸誦卽差。 而略知筆法, 人或請書, 每以‘龜’、‘龍’字尋常書給矣。 有人療病, 入山行祭, 而無宰牛之事。 人有雜病, 以‘弓’字書紙, 燒飮乃差。 遠近來者, 不得已許接, 所以有徒黨之名。 執筆降神、舞劍騰空、錢米討索, 初無是事。 至於先生、弟子之說, 亦非渠自稱, 而此與邪敎有異, 初不隱諱。" 云。 退吏李乃謙, "渠之父病無效, 往見崔哥, 則授以十三字勸讀, 晝夜誦讀而病無差, 仍絶口而作拒絶之書。 其所謂文書, 卽《布德文》、《修德文》, 其呪曰: ‘至氣今至願爲大降’, 又曰: ‘爲天主顧我誠永世不忘萬事知’, 劍歌則曰: ‘龍泉利劍不用何爲’。 以猪、麪、餠果, 入山祭天, 出於差病之意也。 崔哥素有能書之名, 以‘龜’、‘龍’、‘雲’、‘祥’、‘義’等字書給各人, 學徒父兄, 以如干錢糧, 酬勞而已, 實無討索"云。 紙商姜元甫, "渠以風痰蟄伏, 聞誦此則落髮復生云, 故往訪。 而病差後, 不必誦, 仍廢閣, 而更無可達"云。 朴應煥, "渠有抱病, 往訪福述, 則曰: ‘誠心敬天, 敦尙倫綱, 則病乃可治。 待朝受學爲可’云。 各自宿歇而被捉, 無他可達"云。 童蒙金義甲, "渠與福述, 同居一洞, 焉敢欺情? 福述子仁得, 常以木刀跳舞, 唱‘龍泉利劍’之歌。 故知其狂誕, 絶不相從。 雜類來會, 少不下三十人, 設天祭於後山, 而所祝病差, 竟無效, 多背去。 且崔漢行止閃忽, 夜行索炬, 一洞譏罵"云。 李正華, "渠抱貞疾, 往見崔哥, 則以爲天主十三字敎之, 而使之作賦次韻, 故渠果作之, 福述書之。 伊夜同爲被捉"云。 童蒙崔仁得, "渠果劍舞, 而此非本心, 狂氣忽發。 持木刀或舞或歌, 則‘時乎時乎之曲’, 而欲習此則先祭天"云。 福述再招, "渠於庚申年分, 聞洋人先占中國, 次出我國, 變將不測云。 故作十三字呪文, 敎人以制彼, 而天祭事, 盡誠則事無不利。 洋書必以‘𢎥’爲名。 ‘𢎥’之爲字, 弓下二點, 所以燒飮爲度厄也。 初學時, 身戰神通, 而一日天神降, 敎曰: 「近日海舶往來者, 皆是洋人, 非劍舞, 無以制之」, 因以劍歌一篇授之。 文作賦唱, 果有是事。 更無可達"云。 乃謙再招, "福述所謂劍歌曰: ‘時乎時乎是吾時乎, 龍泉利劍不用何爲。 萬世一之丈夫, 五萬年之時乎, 龍泉利劍不用何爲。 舞袖長衫拂著, 此劍彼劍橫執, 浩浩茫茫廣天地, 一身倚立劍歌一曲。 時乎時乎唱出, 龍泉利劍閃弄日月, 懶袖長衫覆在宇宙。 自古名將安在哉? 丈夫當前無壯士。 時乎時乎好矣, 是吾時乎好矣。’ 而所謂藥物, 取穹字半字之義, 畫圈於紙, 書兩弓字於紙傍。 釋之曰: ‘其名「太極」, 又名「弓弓」’, 所謂大降八字, 誦此則身戰。 所聞悉告"云。 趙相彬, "渠見福述, 則曰: ‘天神下降, 叮嚀敎我曰: 「今年二五月之間, 洋人出自龍灣。」 持我通文, 一齊隨去。 習此舞者, 其將保國安民, 建功樹勳。 吾爲高官, 汝各次職’"云。 正華更招, "渠於福述設祭之時, 渠誦降神文, 福述揮劍。 而善書字, 速差病呪, 以‘癘鬼走, 瘧神去’。 所謂藥物二弓字, 或燒飮或齧呑。 福述釋義曰: ‘昔在壬辰、壬申之年, 有曰「利在松松, 利在家家」, 而甲子則利在弓弓, 燒飮弓字, 足以制之’"云。 福述三招, "洋人出來, 見欺於邪魔, 弓弓利在甲子, 流來傳說。 所謂鬼魔, 叮嚀來謂曰: ‘癸亥十二月十九日, 洋人出來, 甲子正月, 當有所聞。 癸亥十月, 汝爲河陽縣監, 十二月爲吏判’。 劍舞亦魔所使。 筆法, 於接神後尤奇, 願受者多, 種種書給。 日行數百里之說, 素以鈍步行數十里足繭。 乘轎出行之說, 果於昨年來往於新寧、永川地。 日月山騷訛之說, 有何人入山行祭云, 非渠入去。 更無可達"云。 乃謙三招, "日月山之說, 英陽、眞寶人, 結幕山底, 聚會學習云, 而未聞福述入山"云。 童蒙成一奎, "渠於劍舞試學之初, 似有身戰之狀, 竟無騰空之驗"云。 福述四招, "《玉篇》等書, 釋‘𢎥’字爲道經。 而西學似是道經之類, 臆料其利在𢎥者, 取其𢎥字下二點, 卽爲弓弓。 以癸亥十二月十九日期限, 無消息, 恐學徒認以無實, 更以甲子十月十一日云云, 若過此月, 更不爲學之意, 互相盟約。 錢糧、甲兵等事, 洋寇出, 則呪文、舞劍以禦敵, 將獲天神之助, 焉用準備?" 云。 元甫更招, "福述曰: ‘此寇善火攻, 非甲兵所敵, 惟東學盡殲其類’, 又言: ‘洋人入日本, 建天主堂, 出我東, 又建此堂, 吾當勦滅’"云。 正華更招, "崔漢曰: ‘木利勝於鐵, 洋人眼眩, 認以寶劍, 雖有堅甲利兵, 不敢近我’云。 而崔家最親密, 稱首弟子者, 卽崔自元、姜元甫、白源洙、崔愼五、崔景五等"云。 白源洙, "渠雇奴金仁贊, 誦東學, 猝發狂氣, 與兒子龍成, 謂以降神, 執筆大書曰: ‘仁贊爲大將, 龍成爲中軍, 姜元甫爲訓導’云, 雇奴卽爲逐送"云。 竝面質納招, 而今此妖學之徒, 到底鉤覈, 福述則本以幺麽之類, 敢懷謊誕之術, 創造呪文煽動, 妖言爲天之說。 云斥彼而反襲邪學, 布德之文, 故飾僞而陰售禍心。 弓藥謂出祕方, 劍舞唱播兇歌, 平世思亂, 暗地聚黨。 動稱鬼神降敎, 其術則河內風角也; 擧使錢穀來遺, 厥類則漢中米賊也。 三尺莫嚴, 一縷難貸。 元甫等, 俱犯難貸之科, 丁錫敎等, 亦宜重勘。 田錫文等, 竝無眞贓, 合有參量。 何幸巨魁就捕, 根窩畢露, 臚列登聞, 恭竣處分。 張敬瑞等, 嚴飭譏詗。 啓。
敎曰: "仰稟東朝, 當有處分矣。" 大王大妃敎曰: "異端邪說之陷溺人心, 實歎敎化之不明。 而今此嶺獄諸囚, 則至愚至蠢, 無足多卞, 異端之目, 在渠亦濫。 哀矜勿喜之訓, 政謂此等矣, 第其誑惑嘯聚之跡, 不可無警衆之擧。 嶺伯査啓, 令廟堂稟處。"
고종 1년 (1864) 2월 29일
고종실록1권, 고종 1년 2월 29일 경자 4/4 기사 / 1864년 청 동치(同治) 3년
경상 감사 서헌순이 경주의 동학의 정형을 보고하다
국역
경상 감사(慶尙監司) 서헌순(徐憲淳)이, ‘경주(慶州)의 동학(東學) 죄인 최복술(崔福述) 등에 대해서 그 전말을 밝혀 경중을 나눠 논리(論理)하여 등문(登聞)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참사관(參査官) 상주 목사(尙州牧使) 조영화(趙永和), 지례 현감(知禮縣監) 정기화(鄭夔和), 산청 현감(山淸縣監) 이기(李沂)가 신문해야 할 사람들을 함께 세밀히 신문하니, 「최복술은 경주 백성으로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양학(洋學)이 나왔다는 말을 듣자 의관(衣冠)을 갖추고 행세하는 사람으로서 양학이 갑자기 퍼지는 것을 차마 보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라는 13자로 된 말을 지어서 동학(東學)이라고 불렀는데, 동쪽 나라의 학문이라는 뜻에서 취한 것입니다. 양학은 음(陰)이고, 동학은 양(陽)이기 때문에 양을 가지고 음을 억제할 목적에서 늘 외우고 읽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간질병에 걸렸다가 이것을 외워서 저절로 완쾌되었고, 병이 있던 자는 그것이 풍병(風病)이든 간질병이든 관계없이 이것을 외우기만 하면 차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글씨를 좀 쓸 줄 알아 누가 혹시 써 달라고 할 때면 언제나 거북 귀(龜) 자와 용 룡(龍) 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써 주었습니다.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산 속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지만 소를 잡은 적은 없습니다. 잡병(雜病)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궁(弓) 자를 쓴 종이를 불에 태워 마시게 하면 이내 병이 나았습니다.
먼 데서나 가까운 데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부득이 만나 주었기 때문에 도당(徒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 붓을 잡고 귀신이 내리게 했거나 칼춤을 추면서 공중으로 솟아올랐거나 돈과 쌀을 토색질한 일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선생이니 제자니 하는 소리도 그가 자칭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간악한 종교와는 달라서 애초에 숨기거나 속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퇴한 아전(衙前)인 이내겸(李乃謙)은, 「제 아버지의 병에는 약도 효력이 없기 때문에 최가를 찾아가 보았더니, 13자를 써 주면서 읽으라고 권하여 밤낮으로 외웠으나 병이 차도가 없기 때문에 그만 걷어치우고 그 자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편지까지 썼습니다. 이른바 그 문서라는 것은 포덕문(布德文)과 수덕문(修德文)입니다. 그 주문(呪文)에 이르기를, 『지극한 기운이 이제 이르렀으니, 원컨대 크게 내리소서.〔至氣今至願爲大降〕』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천주(天主)께서 내 정성을 돌아보니 만사를 알게 한 은혜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知〕』라고 하고, 검가(劍歌)에는 이르기를, 『날이 시퍼런 용천검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龍泉利劍不用何爲〕』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돼지고기, 국수, 떡, 과일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은 병을 치료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복술이 본래 글씨를 잘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거북 귀(龜) 자, 용 룡(龍) 자, 구름 운(雲) 자, 상서로울 상(祥) 자, 의로울 의(義) 자 등의 글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그러면 그 부형들이 약간의 돈이나 곡식으로 수고를 갚았을 뿐, 실제 토색질을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상(紙商) 강원보(姜元甫)는, 「저는 풍담(風痰)으로 집에서 앓고 있다가 그것을 외우기만 하면 다 빠졌던 머리털도 다시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병이 나은 후로는 더 외울 맛이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박응환(朴應煥)은, 「제가 병 때문에 최가를 찾아갔더니 그가 말하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숭상하면 병도 나을 수 있다. 아침이 되면 수학(受學)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각기 잠자리로 돌아가 자던 중에 붙들려 왔으므로 다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童蒙) 김의갑(金義甲)은, 「저는 최복술과 같은 동리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실정을 속이겠습니까? 최복술의 아들 최인득(崔仁得)은 늘 나무칼을 가지고 뛰거나 춤을 추면서 『용천이검(龍泉利劍)』이라는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미치광이로 알고 절대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각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적어도 30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뒷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병이 낫게 해주기를 빌었으나 끝내 효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 등지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최가의 행동이 황당해서 밤에 어디를 가노라고 횃불을 찾으면 온 동리가 비웃고 꾸짖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는, 「제가 고질병이 있어서 최가에게 가 보았더니 『위천주(爲天主)』등의 13자를 가르쳐 주면서 그 운자(韻字)에 맞추어 부(賦)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었더니 최복술이 썼습니다. 그날 밤에 함께 붙들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 최인득(崔仁得)은, 「제가 사실 칼춤을 추었지만 본심에서 한 짓이 아니라 미친병이 갑자기 발작해서였습니다. 나무칼을 들고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 노래는 『때로구나 때로구나』라고 하는 곡입니다. 이것을 익히기 위하여 먼저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두 번째 공초(供招)에, 「제가 경신년(1860) 경에 듣건대, 양인(洋人)이 먼저 중국을 점령하고 다음에 우리나라로 오면 그 변(變)을 장차 헤아릴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13자로 된 주문(呪文)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쳐서 양인을 제어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은 정성을 다하면 이롭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인의 책은 반드시 규(𢎥)로 이름을 달았는데 그 글자는 「궁(弓)」자의 밑에 두 점을 찍은 것입니다. 그것을 불태워 마셔서 액운을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공부를 시작할 때에 몸이 떨리면서 귀신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천신(天神)이 내려와 가르치기를, 『요사이 바다 위에 배로 오고 가고 하는 것들은 모두 양인인데 칼춤이 아니고는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검가(劍歌) 한 편을 주었습니다. 문(文)을 짓고 부(賦)를 지어 불렀는데 과연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내겸(李乃兼)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이른바 검가(劍歌)라고 하는 것은 『때로구나, 때로구나, 이야말로 내 때로구나. 날이 퍼런 용천이검(龍天利劍)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 만대에 한 번 태어난 장부요, 5만 년에 한 번 만난 때로구나. 날이 퍼런 용천검을 쓰지 않고 무엇하리! 춤추는 소매에 긴 장삼을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바로 잡고 호호 망망 넓은 천지에 한 몸을 기대고 서서 검가(劍歌) 한 곡조를 부르노라. 때로구나 때로구나 노래를 부르니 날이 퍼런 용천검이 해와 달에 번쩍이는구나. 늘어진 소매가 달린 장삼으로 우주를 덮으리.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장부가 앞에 나서니 장사도 소용없구나. 때로구나 때로구나, 좋구나, 이야말로 내 때로구나. 좋구나.』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약이라고 하는 것은 『궁(穹)』자에서 그 글자 반쪽의 뜻을 취한 것으로서 종이 위에 둥그런 원을 그려놓고 종이의 가장자리에 「궁(弓)」자 두 자를 써넣은 것인데 해석하기를, 『그 이름은 태극(太極)이라고도 하고, 또 궁궁(弓弓)이라고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크게 내린다는 내용을 담은 8자는 이것만 외우면 몸이 떨린다고 합니다. 들은 것을 다 고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조상빈(趙相彬)은, 「제가 최복술을 만나보니, 『천신(天神)이 내려와서 분명히 나에게 가르치기를 금년 2월과 5월 사이에 양인이 의주(義州)로부터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는데 내 통문(通文)을 가지고 일제히 따라가라. 이 춤을 익힌 자가 앞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공을 세울 것이니, 내가 고관(高官)이 되면 너희들은 각기 다음 자리의 벼슬들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제사를 지낼 때, 저는 귀신을 내리게 하는 글을 외우고 최복술은 칼을 휘둘렀습니다. 글씨를 잘 써서 병을 빨리 낫게 하였는데 『염병 귀신은 달아나고 학질 귀신은 사라져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른바 약이라고 하는 두 개의 궁(弓) 자를 혹 불태워 마시기도 하고, 혹 씹어서 삼키기도 하는데, 최복술이 그 뜻을 해석하기를, 『옛날 임진년(1592)이나 임신년(1812?)에는 이(利)가 송송(松松)에 있다고 하고 가가(家家)에 있다고 하였지만, 갑자년(1864)에는 이가 궁궁(弓弓)에 있기 때문에 궁자를 불태워서 마시면 제어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세 번째 공초에, 「양인이 나온다고 하는 것는 간사한 마귀에 속은 것이고, 갑자년(1864)에는 이(利)가 궁궁(弓弓)에 있다는 소리는 전해 내려오는 말입니다. 마귀라는 것이 분명히 와서 이르기를, 『계해년(1863) 12월 19일에는 양인이 나올 것이고, 갑자년(1864) 1월에는 응당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계해년 10월에는 네가 하양 현감(河陽縣監)이 되고, 12월에는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검무(劍舞)도 마귀가 시킨 노릇입니다. 글씨를 쓰는 것도 귀신을 접한 이후 더욱 기묘해져서 써 달라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종종 써 주었습니다. 하루에 몇백 리를 걷는다는 설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걸음이 느려서 몇십 리만 걸어도 발이 부르틀 지경입니다. 가마를 타고 다닌다는 설은 과연 지난해에 신영(新寧)과 영천(永川) 땅에 갔다 온 일이 있습니다. 일월산(日月山)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설은 어떤 사람이 그 산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다고들 하는데, 제가 들어갔던 것은 아닙니다. 더 아뢸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내겸(李乃兼)의 세 번째 공초에, 「일월산에 대한 설은 영양(英陽)과 진보(眞寶)에 사는 사람들이 산 밑에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고 모여서 공부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최복술이 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몽 성일규(成一奎)는, 「제가 시험 삼아 검무(劍舞)를 배울 초기에는 몸이 떨리는 듯했으나 끝끝내 공중으로 솟아오르게 된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복술의 네 번째 공초에, 「《옥편(玉篇)》과 같은 책에서 「𢎥」자를 도교(道敎)의 경서(經書)라고 해석하였으니, 서학(西學)도 도교의 경서와 같은 종류인 것 같습니다. 억측으로 생각건대, 이(利)가 궁궁(弓弓)에 있다고 한 것은 「𢎥」자 밑의 두 개의 점이 바로 궁궁(弓弓)이 되는 것을 취한 것 같습니다. 계해년(1863) 12월 19일이라는 기한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기 때문에 학도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길까봐 다시 갑자년(1864) 10월 11일 운운하였습니다. 만약에 이 달도 그냥 지나면 다시는 공부를 하지 말자는 뜻으로 서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돈이요, 양곡이요, 갑옷이요, 병기요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양 도적이 나오더라도 주문과 칼춤으로 도적을 막을 것이고, 하늘 귀신의 도움을 받을 것이니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강원보(姜元甫)의 두 번째 공초에, 「최복술이, 『이 도적들은 불로 하는 공격을 잘하므로 무력으로 막을 바가 아니다. 오직 동학(東學)이라야 그 무리를 모두 섬멸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양인이 일본(日本)에 들어가서 천주당(天主堂)을 세웠고, 우리 동방에 와서 또 그런 것을 세우려고 하지만 내가 응당 소멸 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정화(李正華)의 두 번째 공초에, 「최가가 말하기를, 『나무의 날카로움이 쇠보다도 더하면 양인들의 눈이 현혹하여 보검(寶劍)인줄 알게 되므로 제아무리 든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가졌더라도 감히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가와 가장 친밀한 사람들로서 수제자(首弟子)라는 자들은, 곧 최자원(崔自元), 강원보(姜元甫), 백원수(白源洙), 최신오(崔愼五), 최경오(崔景五) 등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원수(白源洙)는, 「저의 집의 고노(雇奴)인 김인찬(金仁贊)이 동학을 외우던 끝에 갑자기 광기(狂氣)가 발작하여 아들 김용성(金龍成)과 함께 귀신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붓을 들어 큰 글씨로 『김인찬은 대장(大將)이 되고, 김용성은 중군(中軍)이 되고, 강원보(姜元甫)는 훈도(訓導)가 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그 고노를 곧 내쫓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대질하고 공초를 받아 이번에 요사스러운 공부를 하고 있는 무리들을 철저히 구핵(究覈)하였습니다. 최복술은 본래 요사한 부류로서 감히 황당한 술책을 품고 주문이란 것을 꾸며내어 요망스러운 말로 선동하였습니다. 위천주(爲天主)라는 설에서는 서학(西學)을 배척한다고 하였지만, 도리어 사학(邪學)의 포덕문(布德文)을 답습하였고,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꾸며 은밀히 나쁜 마음을 실현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궁(弓)’ 자 약은 비방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검무(劍舞)를 추면서 흉악한 노래를 퍼뜨렸으며 평온한 세상에 난(亂)을 생각하고, 은밀히 도당(徒黨)을 모았으며 걸핏하면 귀신이 가르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술법은 바로 한(漢) 나라 때 누런 두건을 쓴 도적들과 같은 것이고, 누구에게나 돈과 곡식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으니 그 무리는 바로 한 나라 때 미적(米賊)과 같은 것입니다. 법이 더없이 엄한 이상 조금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강원보(姜元甫) 등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였고, 정석교(丁錫敎) 등도 엄하게 감처(勘處)해야 할 것입니다. 전석문(田錫文) 등은 모두 범죄의 실제 증거가 없으니 응당 참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괴수가 체포되는 바람에 진상이 속속들이 다 드러났으므로 열거하여 등문(登聞)하고 공손히 처결을 기다립니다. 장경서(張敬瑞) 등도 엄히 신칙하여 감시하고 염탐하도록 하였습니다.’라고 아뢰니, 전교하기를,
"대왕대비께 여쭈어 응당 처분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전교하기를,
"이단(異端)의 사설(邪說)이 사람들의 마음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고 있으니 실로 교화가 밝지 못함을 탄식하게 된다. 이번 경상도(慶尙道) 옥에 갇힌 여러 죄수로 말한다면,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우둔하여 더 말할 여지조차 없고, 이단이란 죄목도 과분하다. ‘죄를 다스리는 데만 치우치지 말고 불쌍히 여기라.’는 훈계는 바로 이런 무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미쳐서 몰려다닌 행적에 대해서는 뭇사람을 각성시키기 위한 조치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백(嶺伯)이 사계(査啓)한 내용을 묘당(廟堂)에서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원문
慶尙監司徐憲淳:
以慶州東學罪人崔福述等, 究其本末, 分輕重論理登聞事, 命下矣。 參査官尙州牧使趙永和、知禮縣監鄭夔和、山淸縣監李沂在, 應問各人, 眼同盤覈。 則福述, 以"慶州民, 訓學爲業矣。 聞洋學出來, 以衣冠之類, 不忍見洋學之熾行, 以敬天順天之心, 做出‘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十三字, 名之曰‘東學’, 取東國之義。 而洋學陰也, 東學陽也, 欲以陽制陰, 常誦讀矣。 渠子疳病, 誦此自瘳, 抱病人, 無論風症癎疾, 勸誦卽差。 而略知筆法, 人或請書, 每以‘龜’、‘龍’字尋常書給矣。 有人療病, 入山行祭, 而無宰牛之事。 人有雜病, 以‘弓’字書紙, 燒飮乃差。 遠近來者, 不得已許接, 所以有徒黨之名。 執筆降神、舞劍騰空、錢米討索, 初無是事。 至於先生、弟子之說, 亦非渠自稱, 而此與邪敎有異, 初不隱諱。" 云。 退吏李乃謙, "渠之父病無效, 往見崔哥, 則授以十三字勸讀, 晝夜誦讀而病無差, 仍絶口而作拒絶之書。 其所謂文書, 卽《布德文》、《修德文》, 其呪曰: ‘至氣今至願爲大降’, 又曰: ‘爲天主顧我誠永世不忘萬事知’, 劍歌則曰: ‘龍泉利劍不用何爲’。 以猪、麪、餠果, 入山祭天, 出於差病之意也。 崔哥素有能書之名, 以‘龜’、‘龍’、‘雲’、‘祥’、‘義’等字書給各人, 學徒父兄, 以如干錢糧, 酬勞而已, 實無討索"云。 紙商姜元甫, "渠以風痰蟄伏, 聞誦此則落髮復生云, 故往訪。 而病差後, 不必誦, 仍廢閣, 而更無可達"云。 朴應煥, "渠有抱病, 往訪福述, 則曰: ‘誠心敬天, 敦尙倫綱, 則病乃可治。 待朝受學爲可’云。 各自宿歇而被捉, 無他可達"云。 童蒙金義甲, "渠與福述, 同居一洞, 焉敢欺情? 福述子仁得, 常以木刀跳舞, 唱‘龍泉利劍’之歌。 故知其狂誕, 絶不相從。 雜類來會, 少不下三十人, 設天祭於後山, 而所祝病差, 竟無效, 多背去。 且崔漢行止閃忽, 夜行索炬, 一洞譏罵"云。 李正華, "渠抱貞疾, 往見崔哥, 則以爲天主十三字敎之, 而使之作賦次韻, 故渠果作之, 福述書之。 伊夜同爲被捉"云。 童蒙崔仁得, "渠果劍舞, 而此非本心, 狂氣忽發。 持木刀或舞或歌, 則‘時乎時乎之曲’, 而欲習此則先祭天"云。 福述再招, "渠於庚申年分, 聞洋人先占中國, 次出我國, 變將不測云。 故作十三字呪文, 敎人以制彼, 而天祭事, 盡誠則事無不利。 洋書必以‘𢎥’爲名。 ‘𢎥’之爲字, 弓下二點, 所以燒飮爲度厄也。 初學時, 身戰神通, 而一日天神降, 敎曰: 「近日海舶往來者, 皆是洋人, 非劍舞, 無以制之」, 因以劍歌一篇授之。 文作賦唱, 果有是事。 更無可達"云。 乃謙再招, "福述所謂劍歌曰: ‘時乎時乎是吾時乎, 龍泉利劍不用何爲。 萬世一之丈夫, 五萬年之時乎, 龍泉利劍不用何爲。 舞袖長衫拂著, 此劍彼劍橫執, 浩浩茫茫廣天地, 一身倚立劍歌一曲。 時乎時乎唱出, 龍泉利劍閃弄日月, 懶袖長衫覆在宇宙。 自古名將安在哉? 丈夫當前無壯士。 時乎時乎好矣, 是吾時乎好矣。’ 而所謂藥物, 取穹字半字之義, 畫圈於紙, 書兩弓字於紙傍。 釋之曰: ‘其名「太極」, 又名「弓弓」’, 所謂大降八字, 誦此則身戰。 所聞悉告"云。 趙相彬, "渠見福述, 則曰: ‘天神下降, 叮嚀敎我曰: 「今年二五月之間, 洋人出自龍灣。」 持我通文, 一齊隨去。 習此舞者, 其將保國安民, 建功樹勳。 吾爲高官, 汝各次職’"云。 正華更招, "渠於福述設祭之時, 渠誦降神文, 福述揮劍。 而善書字, 速差病呪, 以‘癘鬼走, 瘧神去’。 所謂藥物二弓字, 或燒飮或齧呑。 福述釋義曰: ‘昔在壬辰、壬申之年, 有曰「利在松松, 利在家家」, 而甲子則利在弓弓, 燒飮弓字, 足以制之’"云。 福述三招, "洋人出來, 見欺於邪魔, 弓弓利在甲子, 流來傳說。 所謂鬼魔, 叮嚀來謂曰: ‘癸亥十二月十九日, 洋人出來, 甲子正月, 當有所聞。 癸亥十月, 汝爲河陽縣監, 十二月爲吏判’。 劍舞亦魔所使。 筆法, 於接神後尤奇, 願受者多, 種種書給。 日行數百里之說, 素以鈍步行數十里足繭。 乘轎出行之說, 果於昨年來往於新寧、永川地。 日月山騷訛之說, 有何人入山行祭云, 非渠入去。 更無可達"云。 乃謙三招, "日月山之說, 英陽、眞寶人, 結幕山底, 聚會學習云, 而未聞福述入山"云。 童蒙成一奎, "渠於劍舞試學之初, 似有身戰之狀, 竟無騰空之驗"云。 福述四招, "《玉篇》等書, 釋‘𢎥’字爲道經。 而西學似是道經之類, 臆料其利在𢎥者, 取其𢎥字下二點, 卽爲弓弓。 以癸亥十二月十九日期限, 無消息, 恐學徒認以無實, 更以甲子十月十一日云云, 若過此月, 更不爲學之意, 互相盟約。 錢糧、甲兵等事, 洋寇出, 則呪文、舞劍以禦敵, 將獲天神之助, 焉用準備?" 云。 元甫更招, "福述曰: ‘此寇善火攻, 非甲兵所敵, 惟東學盡殲其類’, 又言: ‘洋人入日本, 建天主堂, 出我東, 又建此堂, 吾當勦滅’"云。 正華更招, "崔漢曰: ‘木利勝於鐵, 洋人眼眩, 認以寶劍, 雖有堅甲利兵, 不敢近我’云。 而崔家最親密, 稱首弟子者, 卽崔自元、姜元甫、白源洙、崔愼五、崔景五等"云。 白源洙, "渠雇奴金仁贊, 誦東學, 猝發狂氣, 與兒子龍成, 謂以降神, 執筆大書曰: ‘仁贊爲大將, 龍成爲中軍, 姜元甫爲訓導’云, 雇奴卽爲逐送"云。 竝面質納招, 而今此妖學之徒, 到底鉤覈, 福述則本以幺麽之類, 敢懷謊誕之術, 創造呪文煽動, 妖言爲天之說。 云斥彼而反襲邪學, 布德之文, 故飾僞而陰售禍心。 弓藥謂出祕方, 劍舞唱播兇歌, 平世思亂, 暗地聚黨。 動稱鬼神降敎, 其術則河內風角也; 擧使錢穀來遺, 厥類則漢中米賊也。 三尺莫嚴, 一縷難貸。 元甫等, 俱犯難貸之科, 丁錫敎等, 亦宜重勘。 田錫文等, 竝無眞贓, 合有參量。 何幸巨魁就捕, 根窩畢露, 臚列登聞, 恭竣處分。 張敬瑞等, 嚴飭譏詗。 啓。
敎曰: "仰稟東朝, 當有處分矣。" 大王大妃敎曰: "異端邪說之陷溺人心, 實歎敎化之不明。 而今此嶺獄諸囚, 則至愚至蠢, 無足多卞, 異端之目, 在渠亦濫。 哀矜勿喜之訓, 政謂此等矣, 第其誑惑嘯聚之跡, 不可無警衆之擧。 嶺伯査啓, 令廟堂稟處。"
원본
고종 1년 (1864) 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