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사에서 강제로 정한 창원·마산 등지의 세금을 혁파하게 하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성학(聖學)을 힘쓰고 유현(儒賢)을 초치(招致)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내가 사복(嗣服)한 이후로 여러 번 초치(招致)한 일이 있었으나 〈유현은 오지 않고〉 백구(白駒)045) 가 길이 공곡(空谷)에 매어 있으니, 이것이 내가 자겸(自慊)해 하는 바이다. 《시경(詩經)》에 이른바 ‘나를 멀리 버리지 말라.’ 하는 마음을 늘 잊지 않고 하전(厦氈)046) 의 맑게 갠 낮에는 언제나 발돋움하여 바라보는 생각이 간절하였는데, 지금 경(卿)의 말을 들으니, 다시 경경(耿耿)함을 깨닫겠다. 송 좨주(宋祭酒)와 조 유현(趙儒賢)에게 특별히 가자(加資)하게 하라. 도승지로 하여금 별유(別諭)를 대신 짓게 하여 지방관에 나누어 보내어 여러 유현들에게 유지(諭旨)를 전하여 조속히 길을 떠나 나를 위하여 번연(幡然)히 마음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창원(昌原)·마산(馬山)의 7포(浦)에 내수사(內需司)에서 강제로 세액(稅額)을 정한 것을 우선 혁파하고 제도(諸道) 가운데 이렇게 수세(收稅)하는 폐단이 있는 것은 일일이 이정(釐正)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관시(關市)에도 오히려 정세(征稅)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상선(商船)이겠는가? 가령 거기에서 받는 세금이 수용(需用)에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 백성들에 해를 끼친 것을 알았다면 무엇을 아껴서 혁파하지 않겠는가? 해도(該道)에 명령을 내려 혁파하게 하고, 이외에도 이러한 일이 있으면 일일이 관문(關文)으로 보내어 혁파하게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팔도(八道) 유생(儒生) 김칠환(金七煥) 등이 상소하여 문강공(文康公) 신(臣) 김창흡(金昌翕), 문경공(文敬公) 신 김원행(金元行), 고(故) 좨주(祭酒) 신 김이안(金履安)을 석실 서원(石室書院)에 추배(追配)하게 할 것을 청한 일로 인하여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삼현(三賢)은 이 서원에 곧 조손(祖孫)과 부자(父子)를 전에 이미 배향(配享)한 곳인데, 삼현이 도학(道學)과 명의(名義)를 닦은 것이 수연(粹然)히 빛나 백세(百世) 뒤에도 관감(觀感)하고 숭모(崇慕)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건대 그 곳은 형제(兄弟)끼리 학문을 닦은 곳이요, 부자(父子) 간에 교훈을 주고받은 곳으로, 모두 이 물과 이 언덕에서 있었습니다. 지금 추배하자는 논의는 다만 신리(神理)와 인정(人情)에 화합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돕고 어진이를 본뜨게 하는 정사(政事)에 있어 먼저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청컨대 유소(儒疏)의 청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부교리 최재후(崔在厚)의 상소를 방금 살펴보건대, 고 참판 신(臣) 서춘보(徐春輔)가 신미년에 충성을 다한 절개를 갖추어 진달하면서 잇따라 그에게 추증(追贈)을 허락하고 시호(諡號)를 내리며 사손(祀孫)을 기용할 것을 청하였는데, 비지(批旨)에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셨습니다. 고 무재(武宰)는 유서(由緖)깊은 공신(功臣)의 집안으로, 정묘(正廟)께서 예외의 은혜로 대우하심을 입어 마음속으로 맹세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힘을 다한 공적은 민멸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임신년047) 추류(醜類)들을 섬멸시킨 전역(戰役)이 있기에 미쳐서는 충의(忠義)를 분발하고 사졸(士卒)을 권장해 이끌어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유신(儒臣)이 지금 청한 바는 곧 당일 군중(軍中)에서 칭송한 나머지입니다. 청컨대 추증의 은전(恩典)을 허락하여 내리시고 포가(褒嘉)의 정사를 거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황단(皇壇)에 친향(親享)하는 날 윤 학사(尹學士)의 사손(祀孫)을 등용시키라는 명이 계셨는데, 사손 전부사(府使) 윤태긍(尹泰兢)은 늙고 병들어 사환(仕宦)의 공직(供職)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초사(初仕)에 녹용(錄用)하라는 뜻으로 해조(該曹)에 분부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612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 / 풍속(風俗) / 교육(敎育) / 인물(人物)
- [註 045]백구(白駒) : 백구는 어진이가 타고 다니는 어린 말을 말하는 것으로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인데, 어진이가 임금을 떠나는 것을 만류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내용임.
- [註 046]
하전(厦氈) : 임금이 거처하는 곳.- [註 047]
임신년 : 1812 순조 12년.○庚申/次對于熙政堂。 右議政趙斗淳啓言: "勉聖學招儒賢。" 批曰: "嗣服以來, 屢有招延之擧, 而白駒長在空谷, 此予自慊處。 《詩》所謂 ‘不我遐棄’ 之心, 常常無忘, 廈氈淸晝, 每切跂予之想, 而今聞卿言, 更覺耿耿矣。 宋祭酒趙儒賢, 特爲加資。 令都承旨, 代撰別諭, 分遣地方官, 傳諭于諸儒賢, 俾速登途, 惠我幡然爲好矣。" 又啓言: "昌原、馬山七浦之自內司勒定稅額者, 爲先革罷, 諸道此弊收稅, 一一釐正。" 批曰: "關市尙爲不征, 況商舶乎? 假使其稅, 有補於需用, 旣知貽害於吾民, 則何愛而不革罷也? 知委該道, 使之革罷, 外此如有此等事, 一一關文革罷。" 又啓言: "因八道儒生金七煥等疏請, 文康公臣金昌翕, 文敬公臣金元行, 故祭酒臣金履安, 追配石室書院事, 有令廟堂稟處之命矣。 三賢之於是院, 卽祖孫父子前已腏享之所, 而三賢道學名義藏修之, 粹然爲百世觀慕。 顧其地棣韡之所麗澤, 鯉庭之所授承, 俱在於是水是邱矣。 今玆追配之論, 非但神理人情所允合, 其輔世象賢之政, 在所宜先。 請依儒疏所請施行。" 從之。 又啓言: "卽見副校理崔在厚上疏, 則備陳故參判臣徐春輔, 辛未效忠之節, 仍請許其貤贈, 施以節惠, 錄用祀孫, 而批旨令廟堂稟處矣。 故武宰, 以鍾鼎閥閱之家, 蒙被正廟格外恩遇, 矢心報效, 厥有未可泯焉者。 而逮夫壬申殲醜之役, 奮發奬率, 不有其身者, 儒臣今玆所請, 卽師中當日餘誦也。 請許施貤贈之典, 用擧褒嘉之政。" 從之。 又啓言: "皇壇親享日, 有尹學士祀孫調用之命矣, 而祀孫前府使泰兢, 老病不堪供仕。 以其子初仕錄用之意, 分付該曹, 恐好。" 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612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 / 풍속(風俗) / 교육(敎育) / 인물(人物)
- [註 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