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실록3권, 철종 2년 7월 22일 병오 2/2 기사 / 1851년 청 함풍(咸豊) 1년
양사에서 김정희와 형제들을 섬에 안치하고 나누어 정배할 것 등을 청하다
국역
양사에서 합계하여 청하기를,
"김정희는 섬에 안치하고, 김명희 등은 나누어 정배하며, 오규일 등은 엄형하여 실정을 알아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김정희의 일은 매우 애석하다마는 그가 만약 처신(處身)을 근신(謹愼)하였다면 어찌 찾아낼 만한 형적이 있었겠는가? 평소 개전(改悛)하지 않은 습성을 미루어 알 수 있으니, 북청부(北靑府)에 원찬(遠竄)하고, 김명희·김상희는 향리로 추방하라. 오규일과 조희룡 두 사람은 두 집안의 수족(手足)과 복심(腹心)이 되었다는 말을 내가 많이 들었으니, 아울러 한 차례 엄형하여 절도(絶島)에 정백하라. 조희룡의 아들은 거론할 것이 없다."
하였다.
원문
철종 2년 (1851) 7월 22일
철종실록3권, 철종 2년 7월 22일 병오 2/2 기사 / 1851년 청 함풍(咸豊) 1년
양사에서 김정희와 형제들을 섬에 안치하고 나누어 정배할 것 등을 청하다
국역
양사에서 합계하여 청하기를,
"김정희는 섬에 안치하고, 김명희 등은 나누어 정배하며, 오규일 등은 엄형하여 실정을 알아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김정희의 일은 매우 애석하다마는 그가 만약 처신(處身)을 근신(謹愼)하였다면 어찌 찾아낼 만한 형적이 있었겠는가? 평소 개전(改悛)하지 않은 습성을 미루어 알 수 있으니, 북청부(北靑府)에 원찬(遠竄)하고, 김명희·김상희는 향리로 추방하라. 오규일과 조희룡 두 사람은 두 집안의 수족(手足)과 복심(腹心)이 되었다는 말을 내가 많이 들었으니, 아울러 한 차례 엄형하여 절도(絶島)에 정백하라. 조희룡의 아들은 거론할 것이 없다."
하였다.
원문
원본
철종 2년 (1851)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