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실록6권, 헌종 5년 5월 25일 기미 1/3 기사 / 1839년 청 도광(道光) 19년
대왕 대비가 사학의 징치를 하교하고, 우의정 이지연이 경차인의 폐해를 아뢰다
국역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 및 평안 감사(平安監司) 김난순(金蘭淳)을 인견(引見)하였는데, 김난순은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하교(下敎)하기를,
"근래에 추조(秋曹)038) 에서 사학(邪學)을 징치(懲治)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가? 이러한 무리를 만약 진작 제거하지 않는다면, 만연될 염려가 심상할 뿐만이 아닌데, 어떻게 한때에 소홀하여 이와 같이 지체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우의정(右議政) 이지연(李止淵)이 말하기를,
"당초에 소문이 낭자(狼藉)할 뿐만이 아니었는데, 신칙(申飭)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후 아직 붙잡힌 자가 없습니다. 이는 반드시 저 무리들이 징계되어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마음을 바꾸어 그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비록 붙잡혀서 형벌(刑罰)을 당하는 자도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붙잡히기 전에 법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새롭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기필할 수 있겠는가?
하자, 이지연이 말하기를,
"수십년 전에는 인심(人心)이 오히려 모두 두려워하고 분개하여 사학(邪學)을 토죄(討罪)하는 법이 있음을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심상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가장 우려(憂慮)하고 민망하게 여길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가장 집물(家藏什物)을 수탈(收奪)하지 못하게 한 후부터 포교(捕校)의 무리가 다시 붙잡은 자가 없다고 하니, 어찌 이와 같은 국체(國體)가 있겠는가? 이것은 나 혼자 근심하는 것이 아니고, 조정에서 함께 깊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서 조정의 사대부(士大夫) 사이에도 물드는 자가 없을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대신(大臣)이 나간 후에 포도 대장(捕盜大將)을 불러서 신칙(申飭)을 더함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이지연이 아뢰기를,
"지금 전(前)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헌구(李憲球)가 아뢴 것을 보았더니, 본도(本道)는 옛날에 입은 재해(災害)가 가장 많은 까닭에, 농민(農民)들이 치우치게 해를 보고 있는 실상과 각궁(各宮) 및 각영(各營)과 각사(各司)의 둔토(屯土)에서 세(稅)를 거둘 때 경차인(京差人)이 폐해(弊害)를 끼치는 사단을 갖추어 진달(陳達)하자,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品處)하라는 명(命)이 있었습니다. 이제 만약 속여서 탈(頉)로 잡은 곳에 나가서 일일이 조사해 내어 사실대로 환원시킨다면, 이른바 구진(舊陳)은 바로잡히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스스로 바로잡힐 것이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그 난이(難易)와 편부(便否)를 헤아려 수령(守令)을 각별히 신칙하여 곧 거행하게 하소서. 경차인(京差人)이 소민(小民)의 절박한 폐막(弊瘼)이 되는 것은 진실로 아뢴 바와 같습니다. 세금을 거둘 때 무릇 집총(執摠)의 많고 적은 것과 작전(作錢)의 높고 낮음을 모두 본관(本官)에서 관유(關由)039) 하여 각 궁방(宮房)과 각영(各營)·각사(各司)에서도 이를 고집하는 말로 갈등(葛藤)을 빚는 일이 없게 한다면, 거의 돌아보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차인에 있어서는 이익을 잃는 데 이르지 않고, 둔민(屯民)에게 있어서는 부담을 벗게 될 수 있을 것이니, 청컨대,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이에 의거해서 절목(節目)을 만들어 각 고을의 둔소(屯所)에 걸어 두고 영구히 준행(遵行)하게 하소서. 이 두 가지 폐단은 오로지 본도(本道)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니, 일체로 제도(諸道)에 알려서 기필코 민폐(民弊)를 제거하는 실효(實効)를 거둘 수 있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문
○己未/上御熙政堂, 引見大臣備局堂上及平安監司金蘭淳, 蘭淳辭陛也。 大王大妃敎曰: "近來秋曹邪學之懲治何如云耶? 此類若不趁卽除鋤, 則其滋蔓之慮, 不啻尋常, 豈可一時踈忽, 而如是稽緩乎?" 右議政李止淵曰: "當初所聞, 不啻狼藉, 而飭令之後, 尙無被捉者。 此未必彼輩有所懲畏, 革心而然矣。" 大王大妃敎曰: "雖被捉, 當刑者, 尙不畏死, 其未捉之前, 能畏法自新, 何可必耶?" 止淵曰: "在數十年前, 人心猶皆驚憤, 知有討邪之法矣, 今則不然, 視若尋常, 此最憂憫矣。" 大王大妃敎曰: "自家藏勿令搜奪之後, 捕校輩, 更無所捉者云, 豈有如許國體乎? 此非予之獨憂, 朝廷之所共深慮也, 未久, 安知朝廷士夫間, 無浸染者乎? 大臣出去後, 招致捕將, 益加申飭可也。" 止淵啓言: "卽見前全羅監司李憲球所奏, 則備陳本道舊災最多, 爲耕民偏害之狀, 及各宮各營司屯土收稅時, 京差貽(弊)〔弊〕 之端, 有令廟堂稟處之命矣。 今若就僞頉處, 一一査出還實, 則所謂舊陳, 不期正而自正, 令道臣, 量其難易便否, 另飭守宰, 俾卽擧行。 京差之爲小民切瘼, 誠如所奏。 收稅時, 凡執摠多寡, 作錢高低, 必皆關由於本官, 各宮各營司, 亦無得執言葛藤, 則庶可爲顧畏自戢。 而在京差, 不至失利, 在屯民, 足得息肩, 請令道臣, 依此成節目, 揭置於各邑屯所, 以爲永久遵行。 此兩(弊)〔弊〕 非獨本道爲然, 一體知委於諸道, 期有爲民祛(弊)〔弊〕 之實效。" 從之。
헌종 5년 (1839) 5월 25일
헌종실록6권, 헌종 5년 5월 25일 기미 1/3 기사 / 1839년 청 도광(道光) 19년
대왕 대비가 사학의 징치를 하교하고, 우의정 이지연이 경차인의 폐해를 아뢰다
국역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 및 평안 감사(平安監司) 김난순(金蘭淳)을 인견(引見)하였는데, 김난순은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하교(下敎)하기를,
"근래에 추조(秋曹)038) 에서 사학(邪學)을 징치(懲治)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가? 이러한 무리를 만약 진작 제거하지 않는다면, 만연될 염려가 심상할 뿐만이 아닌데, 어떻게 한때에 소홀하여 이와 같이 지체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우의정(右議政) 이지연(李止淵)이 말하기를,
"당초에 소문이 낭자(狼藉)할 뿐만이 아니었는데, 신칙(申飭)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후 아직 붙잡힌 자가 없습니다. 이는 반드시 저 무리들이 징계되어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마음을 바꾸어 그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비록 붙잡혀서 형벌(刑罰)을 당하는 자도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붙잡히기 전에 법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새롭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기필할 수 있겠는가?
하자, 이지연이 말하기를,
"수십년 전에는 인심(人心)이 오히려 모두 두려워하고 분개하여 사학(邪學)을 토죄(討罪)하는 법이 있음을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심상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가장 우려(憂慮)하고 민망하게 여길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가장 집물(家藏什物)을 수탈(收奪)하지 못하게 한 후부터 포교(捕校)의 무리가 다시 붙잡은 자가 없다고 하니, 어찌 이와 같은 국체(國體)가 있겠는가? 이것은 나 혼자 근심하는 것이 아니고, 조정에서 함께 깊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서 조정의 사대부(士大夫) 사이에도 물드는 자가 없을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대신(大臣)이 나간 후에 포도 대장(捕盜大將)을 불러서 신칙(申飭)을 더함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이지연이 아뢰기를,
"지금 전(前)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헌구(李憲球)가 아뢴 것을 보았더니, 본도(本道)는 옛날에 입은 재해(災害)가 가장 많은 까닭에, 농민(農民)들이 치우치게 해를 보고 있는 실상과 각궁(各宮) 및 각영(各營)과 각사(各司)의 둔토(屯土)에서 세(稅)를 거둘 때 경차인(京差人)이 폐해(弊害)를 끼치는 사단을 갖추어 진달(陳達)하자,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品處)하라는 명(命)이 있었습니다. 이제 만약 속여서 탈(頉)로 잡은 곳에 나가서 일일이 조사해 내어 사실대로 환원시킨다면, 이른바 구진(舊陳)은 바로잡히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스스로 바로잡힐 것이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그 난이(難易)와 편부(便否)를 헤아려 수령(守令)을 각별히 신칙하여 곧 거행하게 하소서. 경차인(京差人)이 소민(小民)의 절박한 폐막(弊瘼)이 되는 것은 진실로 아뢴 바와 같습니다. 세금을 거둘 때 무릇 집총(執摠)의 많고 적은 것과 작전(作錢)의 높고 낮음을 모두 본관(本官)에서 관유(關由)039) 하여 각 궁방(宮房)과 각영(各營)·각사(各司)에서도 이를 고집하는 말로 갈등(葛藤)을 빚는 일이 없게 한다면, 거의 돌아보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차인에 있어서는 이익을 잃는 데 이르지 않고, 둔민(屯民)에게 있어서는 부담을 벗게 될 수 있을 것이니, 청컨대,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이에 의거해서 절목(節目)을 만들어 각 고을의 둔소(屯所)에 걸어 두고 영구히 준행(遵行)하게 하소서. 이 두 가지 폐단은 오로지 본도(本道)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니, 일체로 제도(諸道)에 알려서 기필코 민폐(民弊)를 제거하는 실효(實効)를 거둘 수 있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문
○己未/上御熙政堂, 引見大臣備局堂上及平安監司金蘭淳, 蘭淳辭陛也。 大王大妃敎曰: "近來秋曹邪學之懲治何如云耶? 此類若不趁卽除鋤, 則其滋蔓之慮, 不啻尋常, 豈可一時踈忽, 而如是稽緩乎?" 右議政李止淵曰: "當初所聞, 不啻狼藉, 而飭令之後, 尙無被捉者。 此未必彼輩有所懲畏, 革心而然矣。" 大王大妃敎曰: "雖被捉, 當刑者, 尙不畏死, 其未捉之前, 能畏法自新, 何可必耶?" 止淵曰: "在數十年前, 人心猶皆驚憤, 知有討邪之法矣, 今則不然, 視若尋常, 此最憂憫矣。" 大王大妃敎曰: "自家藏勿令搜奪之後, 捕校輩, 更無所捉者云, 豈有如許國體乎? 此非予之獨憂, 朝廷之所共深慮也, 未久, 安知朝廷士夫間, 無浸染者乎? 大臣出去後, 招致捕將, 益加申飭可也。" 止淵啓言: "卽見前全羅監司李憲球所奏, 則備陳本道舊災最多, 爲耕民偏害之狀, 及各宮各營司屯土收稅時, 京差貽(弊)〔弊〕 之端, 有令廟堂稟處之命矣。 今若就僞頉處, 一一査出還實, 則所謂舊陳, 不期正而自正, 令道臣, 量其難易便否, 另飭守宰, 俾卽擧行。 京差之爲小民切瘼, 誠如所奏。 收稅時, 凡執摠多寡, 作錢高低, 必皆關由於本官, 各宮各營司, 亦無得執言葛藤, 則庶可爲顧畏自戢。 而在京差, 不至失利, 在屯民, 足得息肩, 請令道臣, 依此成節目, 揭置於各邑屯所, 以爲永久遵行。 此兩(弊)〔弊〕 非獨本道爲然, 一體知委於諸道, 期有爲民祛(弊)〔弊〕 之實效。" 從之。
원본
헌종 5년 (1839)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