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29권, 순조 27년 4월 23일 무진 2/3 기사 / 1827년 청 도광(道光) 7년
영중추부사 김재찬의 졸기
국역
영중추부사 김재찬(金載瓚)이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이 대신(大臣)은 선왕조 때부터 인정을 깊이 받았고, 내가 계승한 뒤로는 가장 오랫동안 위임하여 공로가 가장 많이 드러나서 지금까지 우뚝하게 국가의 시귀(蓍龜)와 퇴속(頹俗)의 지주(砥柱)가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한번 병들어 마침내 세상을 떠나 하늘이 어진 이를 남겨 두지 않았으니,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한단 말인가? 안색을 바로하고 조정에 나온 거동과 어려움에 처하여 충절(忠節)을 다하는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애통함이 극도에 이르러 어디에 비유해야 할 지 모르겠다. 졸한 영부사 김재찬의 집에 동원 부판(東園副板)125) 한 부(部)를 보내고, 성복(成服)하는 날에 승지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고, 녹봉은 3년까지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라. 그리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시호(諡號)를 의논하고, 자손이 복을 벗으면 채용하고, 그 나머지 응당 행하여야 할 절차는 해조(該曹)로 하여금 관례대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85면
- [註 125] 동원 부판(東園副板) : 동원은 원래 한(漢)나라의 관곽(棺槨)을 제조하던 관서로, 조선조에서는 장생전(長生殿)을 말함. 부판은 궁궐에서 쓰이는 관곽을 만들고 난 나머지 재목으로 만든 판재(板材).
원문
순조 27년 (1827) 4월 23일
순조실록29권, 순조 27년 4월 23일 무진 2/3 기사 / 1827년 청 도광(道光) 7년
영중추부사 김재찬의 졸기
국역
영중추부사 김재찬(金載瓚)이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이 대신(大臣)은 선왕조 때부터 인정을 깊이 받았고, 내가 계승한 뒤로는 가장 오랫동안 위임하여 공로가 가장 많이 드러나서 지금까지 우뚝하게 국가의 시귀(蓍龜)와 퇴속(頹俗)의 지주(砥柱)가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한번 병들어 마침내 세상을 떠나 하늘이 어진 이를 남겨 두지 않았으니,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한단 말인가? 안색을 바로하고 조정에 나온 거동과 어려움에 처하여 충절(忠節)을 다하는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애통함이 극도에 이르러 어디에 비유해야 할 지 모르겠다. 졸한 영부사 김재찬의 집에 동원 부판(東園副板)125) 한 부(部)를 보내고, 성복(成服)하는 날에 승지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고, 녹봉은 3년까지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라. 그리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시호(諡號)를 의논하고, 자손이 복을 벗으면 채용하고, 그 나머지 응당 행하여야 할 절차는 해조(該曹)로 하여금 관례대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85면
- [註 125] 동원 부판(東園副板) : 동원은 원래 한(漢)나라의 관곽(棺槨)을 제조하던 관서로, 조선조에서는 장생전(長生殿)을 말함. 부판은 궁궐에서 쓰이는 관곽을 만들고 난 나머지 재목으로 만든 판재(板材).
원문
원본
순조 27년 (1827)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