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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12권, 순조 9년 6월 26일 을묘 1번째기사 1809년 청 가경(嘉慶) 14년

여송국의 표류인을 송환시키라 명하다

여송국(呂宋國)123) 의 표류인(漂流人)을 성경(盛京)에 이자(移咨)124) 하여 본국(本國)으로 송환(送還)시키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앞서 신유년125) 가을 이국인(異國人) 5명이 표류하여 제주(濟州)에 도착하였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오랑캐들의 말이어서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나라 이름을 쓰게 하였더니 단지 막가외(莫可外)라고만 하여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자관(移咨官)을 딸려서 성경(盛京)으로 들여보냈었는데, 임술년126) 여름 성경의 예부(禮部)로부터도 또한 어느 나라인지 확실히 지적할 수 없다는 내용의 회자(回咨)와 함께 다시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그중 1명은 도중에서 병이 들어 죽었다. 그리하여 우선 해목(該牧)에 머루르게 한 다음 공해(公廨)를 지급하고 양찬(粮饌)을 계속 대어주면서 풍토를 익히고 언어를 통하게 하라고 명하였는데, 그 가운데 1명이 또 죽어서 단지 3명만이 남아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나주(羅州) 흑산도(黑山島) 사람 문순득(文順得)이 표류되어 여송국(呂宋國)에 들어갔었는데, 그 나라 사람의 형모(形貌)와 의관(衣冠)을 보고 그들의 방언(方言)을 또한 기록하여 가지고 온 것이 있었다. 그런데 표류되어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용모와 복장이 대략 서로 비슷하였으므로, 여송국의 방언으로 문답(問答)하니 절절이 딱 들어맞았다. 그리하여 미친듯이 바보처럼 정신을 못차리고서 울기도 하고 외치기도 하는 정상이 매우 딱하고 측은하였다. 그들이 표류되어 온 지 9년 만에야 비로소 여송국 사람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른바 막가외라는 것 또한 그 나라의 관음(官音)이었다. 전라 감사 이면응(李冕膺)과 제주 목사 이현택(李顯宅)이 사유를 갖추어 아뢰었으므로 이 명(命)이 있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34면
  • 【분류】
    외교-야(野)

  • [註 123]
    여송국(呂宋國) : 필리핀을 가리킴.
  • [註 124]
    이자(移咨) : 자문(咨文)을 보내어 통보함.
  • [註 125]
    신유년 : 1801 순조 원년.
  • [註 126]
    임술년 : 1802 순조 2년.

○乙卯/命呂宋國漂人, 移咨盛京, 送還本國。 先是, 辛酉秋, 異國人五名, 漂到濟州, 而鴂舌聱牙, 莫辨魚魯。 寫其國名, 只稱莫可外, 未知爲何國人。 移咨入送于盛京, 壬戌夏, 自盛京禮部, 亦未能確指何國, 回咨還送。 而一名在塗病故矣。 命姑留該牧, 給公廨, 繼糧饌, 使之習風土, 通言語, 其中一人又故, 只餘三名。 至是羅州 黑山島文順得, 漂入呂宋國, 見該國人形貌衣冠, 其方言, 亦有所錄來者。 而漂留人容服, 大略相似, 試以呂宋國方言問答, 則節節脗合。 而如狂如痴, 或泣或叫之狀, 甚可矜惻。 漂留已爲九年, 而始知爲呂宋國人, 所謂莫可外, 亦該國之官音也。 全羅監司李冕膺濟州牧使李顯宅, 具由以聞, 有是命。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34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