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반포하다
교문(敎文)을 반포하였는데, 다음과 같았다.
"태실(太室)100) 에서 올려서 부제(祔祭)의 의식을 거행하니 경명(景命)을 이에 맞게 되었고, 양전(兩殿)에 존숭의 전례(典禮)를 드리니 성대한 예를 비로소 거행하게 되었다. 삼가 떳떳한 전장(典章)에 따라 크게 명고(明誥)를 반포한다. 삼가 생각건대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익렬 명선 수경 대왕 대비 전하(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大王大妃殿下)께서는 주실(周室)의 성사(聖姒)101) 이고, 송조(宋朝)의 여요(女堯)이시다. 정곤(正壼)으로 규목(樛木)102) 의 인(仁)을 펼쳐 황조(皇祖)의 건극(建極)의 정치에 짝하셨고, 세자를 도와 반석같이 튼튼함에 올려 놓아 소고(昭考)103) 의 천조(踐祚)104) 하시는 일을 도우셨다. 신묘한 솜씨를 깊은 궁중에서 말없이 운용하시어 여러번에 걸쳐 종사(宗社)의 위태로움을 안정시켰고, 음공(陰功)은 훌륭한 칭호로 천양되어 크게 요책(瑤冊)의 찬란함을 입으시게 되었다. 아! 소자(小子)가 하늘에 도움을 받지 못하여 오직 태모(太母)만을 의지해 살아왔다. 구면(裘冕)105) 의 조용한 모습을 우러러보며 날마다 사랑해 주시는 은혜를 받았고, 염유(簾帷)의 엄연히 임하심을 받들어 만기(萬機)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뜻을 힘입었다. 해와 별 같이 밝은 대의(大義)를 밝히시니 선대(先代)의 아름다움에 빛남이 있었고, 무지개와 같은 여러 간사한 무리들을 시원히 없애 버리니 만민들의 습속이 크게 변하였다. 충신과 역적을 진퇴시키기를 엄정하게 하니 조정이 깨끗이 맑아지고, 민생의 고칠병을 영원히 제거하니 공화(功化)가 널리 펴졌다. 자천(慈天)의 보우하신 덕을 입어서 종사가 안정되기에 이르렀으니, 돌아보건대 지금 보답하고 싶은 심정은 하해(河海)와 같아 헤아릴 수가 없도다, 아! 우리 왕대비의 곤범(壼範)은 진실로 옛 현천한 왕후의 규범(閨範)보다 휠씬 뛰어나셨다. 상서로움은 위량(渭梁)106) 의 빈(嬪)에 부응하시어, 영왕(寧王)107) 의 시초를 바로잡는 치화(治化)에 터전을 닦으셨고 덕은 경실(京室)의 부인됨에 합당하여 문모(文母)108) 의 단정하시다는 칭송을 이으셨다. 비록 어렵고 험난한 때라도 육궁(六宮)에서 잠이(簪珥)109) 의 칭송을 올렸고, 그 근검하고 공손하게 삼가시는 행실은 팔방(八方)이 굉연(紘綖)110) 의 공덕을 입었다. 선어(仙馭)111) 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어찌 달랠 수 있겠는가?
초라한 이 몸이 상중(喪中)에 있음을 민망히 여겨, 덮어주고 감싸주시는 은혜를 치우치게 받았다. 해옥(海屋)112) 의 보주(寶籌)가 점차 높아지시니 소자의 마음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다. 계전(桂殿)113) 의 봄빛이 길게 머무니 덕을 현양하고 싶은 생각이 뭉클하게 솟는다. 이에 청묘(淸廟)에 올려 부제(祔祭)를 지낸 끝에 동조(東朝)에 존호를 올리는 전례를 거행하는 바이다. 지위는 장락궁(長樂宮)114) 보다 더욱 높으니 천승(千乘)의 숭봉(崇奉)함에 의절이 있고, 예는 우리 가문에 마땅한 것이니, 세분 왕후의 거룩한 일을 기술할 수가 있다. 다만 양성(兩聖)의 겸손하심으로 인하여 굳이 열조(列朝)의 떳떳한 전례를 거절하셨다. 이번의 커다란 의식을 치룸에 있어서 아마도 자심(慈心)에 슬픔이 많으셨으리라. 옛날의 정미(精微)한 의리를 추억하여 실로 마음이 더욱 슬프신 것이다. 연달아 호소함이 뜰에 가득하였으나 이미 마음을 돌릴 가망은 없었고, 온화한 유음(諭音)을 거듭 내리시어 행여 대양(對揚)하는 말씀이 있을까 하였다. 이에 공덕을 묘사하는 글월은 그만두기도 하고 다만 위호(位號)를 더 높이는 예만 거행하노라. 어버이를 높이는 효도가 큰 것인데 비록 2자(二字)의 찬양은 결여되었지만 뜻을 순종하는 도리가 이에 있으니 거의 백세(百世)의 빛남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차례대로 전하여 빛나는 자리에 오르니 우뚝하게 자극(慈極)·자위(慈衛)가 더욱 높았으며 명호(名號)를 바르게 하는 높고 귀한 의식을 거행하여, 빛나는 옥전(玉篆)과 옥첩(玉牒)을 삼가 드린다. 갱장(羹牆)115) 의 사모가 더욱 깊으니 지극히 애통하는 마음이 항시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맺혀 있다. 강릉(岡陵) 같은 수명(壽命)을 누리시기를 빌면서 작은 정성을 날짜를 아끼며 조금 펼친다. 이에 자은(慈恩)의 넓고 크심을 미루어 널리 큰 혜택을 내린다. 이번 달 11일 날이 밝기 이전의 잡범(雜犯)으로 사죄(死罪) 이하는 모두 용서하여 석방해 주라.
아! 국운(國運)이 바야흐로 형통하여 열리니 만물이 각기 풍성하게 되리로다. 나라의 대부(大夫)·서사(庶士)들은 모름지기 석류(錫類)116) 의 큰 규모를 도와, 여러 백성들도 더불어 함께 복을 받는 지화(至化)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는 것이니 생각건대 마땅히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황승원(黃昇源)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436면
- 【분류】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역사-고사(故事) / 사법(司法)
- [註 100]태실(太室) : 종묘(宗廟).
- [註 101]
성사(聖姒) : 문왕(文王)의 비(妃) 태사(太姒).- [註 102]
규목(樛木) :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시명(詩名). 모시서(毛詩序)에서는 후비(后妃)가 질투하지 않고 밑의 여러 첩들을 두루 돌보아주는 것을 읊은 시라 하였음. 즉 가지가 밑으로 늘어진 나무[樛木]는 밑의 여러 첩들을 감싸주고 후비의 덕을 상징한 것으로 봄.- [註 103]
소고(昭考) : 정조(正祖).- [註 104]
천조(踐祚) : 왕위(王位)의 계승.- [註 105]
구면(裘冕) : 복장.- [註 106]
위량(渭梁) : 문왕(文王)의 태사(太姒) 친영(親迎)을 말함.- [註 107]
영왕(寧王) : 정조를 말함.- [註 108]
문모(文母) :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말함.- [註 109]
잠이(簪珥) : 비녀와 귀걸이.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항상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니 강후(姜后)가 비녀와 귀걸이를 벗고 대죄(待罪)했다는 고사(故事).- [註 110]
굉연(紘綖) : 면주관의 줄과 덮개로 왕후가 만드는 것.- [註 111]
선어(仙馭) : 임금의 상여.- [註 112]
해옥(海屋) :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집.- [註 113]
계전(桂殿) : 내전(內殿).- [註 114]
장락궁(長樂宮) : 한(漢)나라 고조(高祖) 5년에 모후(母后)를 받들기 위하여 세운 궁전. 혜제(惠帝) 이후 황제의 모후는 모두 이곳에 거처했다. 황제가 거처하는 미앙궁(未央宮)은 서쪽에 있었는 데 반해 이 궁은 동쪽에 있었으므로 동조(東朝)라고 하며, 흔히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과 대비전(大妃殿)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註 115]
갱장(羹牆) : 선왕(先王)을 추모하는 마음. 《후한서(後漢書)》 이고전(李固傳)에 의하면, "예전에 요(堯)임금이 죽은 후에 순(舜)임금이 3년 동안 추모하였는데 앉으면 벽에 요임금이 보이고 음식을 들 때에는 국에 요임금이 보였다."하였음.- [註 116]
석류(錫類) : 효자에게 복을 내린다는 뜻. 즉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효자의 효도 다함이 없으시니, 영원토록 복 내리시겠네. [孝子不匱永錫爾類]"라고 하였음.○頒敎文:
若曰。 太室擧躋祔之儀, 景命載迓, 兩殿晉尊崇之典, 縟禮肇稱。 祗率彝章, 誕敷明誥。 恭惟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大王大妃殿下, 周室聖姒, 宋朝女堯。 正壼敷《樛木》之仁, 配皇祖建極之治, 翼儲措磐石之固, 贊昭考踐阼之謨。 神機默運於深宮, 屢奠宗社之岌嶪, 陰功載闡於顯號, 誕膺瑤冊之煒煌。 嗟! 小子不弔于天, 惟太母相依爲命。 瞻裘冕之淵靜, 三朝承止慈之恩, 奉簾帷之嚴臨, 萬幾賴仰成之旨。 闡日星之大義, 有光先休, 廓螮蝀之群邪, 於變民俗。 忠逆進退之嚴正, 朝著肅淸, 民生膏肓之永除, 功化普暢。 荷慈天保佑之德, 旣宗祊之底安, 顧今日崇報之忱, 若河海之莫量。 猗! 我王大妃壼範, 允邁古哲后閨徽。 祥膺渭梁之嬪, 基寧王正始之化德合京室之婦, 嗣文母思濟之音。 雖艱難險巇之時, 六宮騰簪珥之頌, 伊勤儉恭謹之行, 八方被紘綖之功。 望仙馭之陟遐, 曷慰崩毁之慟? 閔眇躬之在疚, 偏荷覆幬之仁。 海屋之寶籌漸高, 翼小心於喜懼。 桂殿之春暉長駐, 藹一念於顯敡。 肆於淸廟升祔之餘, 爰有東朝晉號之例。 位彌隆於長樂, 千乘之崇奉有儀, 禮則宜於我家, 三后之盛事可述。 祗緣兩聖之謙挹, 堅拒列朝之典常。 迨此時張大之儀, 蓋慈心之多慼。 追昔年精微之義, 寔懿衷之增摧。 聯籲齊登於滿庭, 旣感回之無望, 溫諭洊降於盈缶, 庶對揚之有辭。 斯寢功德摸畫之章, 只擧位號加隆之禮。 尊親之孝爲大, 縱欠二字之揄揚, 順志之道斯存, 庶期百世之炫燿。 傳序膺光升之位, 巍乎慈極慈闈之冞尊, 正名擧隆貴之儀, 煥矣玉篆玉牒之祗獻。 羹墻之慕冞篤, 至痛恒纏於終天。 岡陵之壽是祈, 微誠粗伸於愛日。 斯推慈恩之曠蕩, 用霈惠澤之涵泓。 自本月十一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運方啓於泰亨, 物各遂於豐阜。 邦之大夫、庶士, 須贊錫類之洪規, 嘉與百姓群黎, 咸歸斂福之至化。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黃昇源製。】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436면
- 【분류】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역사-고사(故事) / 사법(司法)
- [註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