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51권, 정조 23년 1월 7일 병인 1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봉조하 김종수의 졸기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가 죽었다. 김종수의 자는 정부(定夫)인데, 우의정 김구(金構)의 증손이다. 젊어서부터 인품이 뛰어나고 문학이 우수하였다. 영종(英宗)무자년001) 문과에 급제한 이후 간혹 실의(失意)를 겪었었다. 그러나 일찍이 상이 동궁에 있을 때 궁관(宮官)으로서 한마디 말로 서로 뜻이 통하였기 때문에 상이 즉위함에 미쳐 그에 대한 권우(眷遇)가 백관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상이 그를 명의(名義)로 허여하고 복심(腹心)으로 의탁하였다. 그리하여 내각(內閣)·문원(文苑)·전임(銓任)·융원(戎垣)의 직을 두루 역임하고, 기유년에 이르러서는 한 몸에 오영(五營)의 부절을 찼다가, 얼마 안 되어 재상이 되었으니, 그 조우(遭遇)의 융성함이 제신(諸臣) 중에 비할 자가 없었다. 매양 경연에서 아뢸 때나 상소문에서 이따금 다른 사람은 감히 말하지 못할 일을 말하였다. 그래서 행동은 매양 급하게 한 때가 많았고 언론은 혹 한쪽으로 치우치는 점도 있었으나, 대체로 또한 명예를 좋아하고 의리를 사모하는 선비였다. 갑인년에 상소를 올린 뒤로 온 조정이 그를 성토하였으나, 상은 그가 다른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서 잠깐 유배시켰다가 이내 용서하였다. 을묘년에 치사(致仕)하였는데, 그후로도 은례(恩禮)가 변함없어 상의 친서(親書)와 좋은 약제(藥劑)가 늘 길에 연달았다. 어버이를 효도로 섬겼고, 관직 생활은 매우 청렴하여 그가 살았던 시골집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죽었는데, 뒤에 정조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55면
  • 【분류】
    인물(人物)

○丙寅/奉朝賀金鍾秀卒。 鍾秀定夫, 右議政金構曾孫。 少有氣岸, 優於文學。 英宗戊子登第, 間經蹭蹬。 上, 在春邸, 以宮官, 一言而契, 及御極, 眷遇逈絶百僚, 許以名義, 托以心膂。 歷內閣、文苑、銓任、戎垣, 至己酉, 身佩五營之符, 未幾拜相, 遭遇之盛, 諸臣莫有比者。 每筵奏疏, 陳往往言人所不敢言。 擧措每多劻攘, 言論或涉偏係, 而蓋亦好名慕義之士也。 甲寅疏後, 擧朝聲討, 而上察其無他, 乍竄旋宥。 乙卯致仕, 恩禮無替, 雲章珍劑, 相續於道。 事親孝, 居官廉, 所居鄕廬, 不蔽風雨。 至是卒, 配食廟庭。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55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