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2권, 정조 19년 1월 17일 경자 2/13 기사 / 1795년 청 건륭(乾隆) 60년
경모궁에 가서 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이어 친향을 거행하다
국역
경모궁(景慕宮)에 가서 상이 직접 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이어 친향(親享)을 거행하였다.
면복(冕服)을 갖추고 판위(版位)에 들어가 두 번 절한 다음 치사(致詞)를 올렸다. 상이 자리로 돌아와 두 번 절하고 서쪽을 향해 서자 청하곡(淸河曲)이 울려 퍼졌는데, 그 내용에,
"환히 드러난 아름다운 덕, 속에 쌓인 것이 밖으로 비춰짐이로다. 효성과 우애를 근본삼아 신명(神明)과 통하였도다. 왕성한 그 기운 막을 수 없어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도다. 맑은 강물 저리 흐르듯 우리 동방 운수를 열어 주었네. 보우(保佑)하며 정중하게 내리신 그 명, 자전과 자궁에 이르렀도다. 어느새 주갑(周甲)의 해 맞고서 보니 사모하는 마음 끝이 없어라. 금에 쓰고 옥에 새겨서 아름다운 그 이름 드러내도다. 만년을 축수하는 저 음악 소리, 복록이 와서 함께 하도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이병정(李秉鼎)이 지어 올렸다.】
여러 집사(執事)가 각각 옥책문과 인장 및 상을 받들고 나아가니, 상이 지영(祗迎)하고, 이어 섬돌 위로 나아가 북쪽을 향해서 꿇어앉았다. 도제조(都提調)가 이를 받들어 무릎꿇고 바치니, 임금이 받아서 근시(近侍)에게 주었다. 근시가 이를 마주 들고 봉책인관(捧冊印官)에게 주자 봉책인관이 무릎꿇고 받은 다음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승지가 받들어 봉안하였는데, 옥책문의 내용은,
"천천히 퍼지는 관현악 연주 소리, 올해가 과연 어떤 해입니까. 옥첩(玉牒)에 밝은 덕 기록하며 큰 글씨로 특별히 써서 바치니 이는 백세토록 징험될 일로서 나라 전체가 장엄하게 칭송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황숙부(皇叔父)이신 사도 수덕 돈경 홍인 경지 장헌 세자(思悼綬德敦慶弘仁景祉莊獻世子) 저하께서는 하늘과 땅을 본받아 박후(博厚) 고명(高明)하셨으며, 인지(仁智)하시고 철문(哲文)하심은 훈화(勛華)와 어울리셨습니다. 한(漢)·당(唐) 이래의 규모가 비좁을 만큼 그 큰 도량 넓게 틔었고 끝을 볼 수 없는 강물과 바다마냥 그 속마음은 한없이 깊으셨습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구가(謳歌)하며 모두 귀의하였는데 만기(萬機)를 대리(代理)할 때의 그 업적 빛나기만 하옵니다. 말을 듣는 그 자세는 추요(蒭蕘)까지도 반드시 통하게 하였고, 곧다는 훌륭한 소문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아, 규모가 엄청난 제왕의 대경(大經) 대법(大法)도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성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정축년040) 에 어린 나이로 끝없이 사모했던 것이야말로 이미 성자(聖慈)께서 굽어살피시기에 충분하였는데 갑오년041) 에 연석(筵席)에서 분명하게 분부하셨던 것만 보아도 효성이 위를 감동시켰음을 더욱 알 수가 있습니다. 아, 근년에 눈물이 나는 말들을 보아도 모두가 이를 드러내 밝히고 있는데, 나라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찌 다만 이해 타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소자(小子)가 자나깨나 지극히 원했던 것은 조금이라도 성대한 덕을 형용하는 것이었는데, 전후에 걸쳐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려고 명호(名號)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소라 껍질로 바다를 재듯 하였으므로 감추어진 덕을 기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북두칠성의 자루가 인방(寅方)에 놓이면서 바로 만나기 어려운 구갑(舊甲)의 해를 맞았습니다. 무지개가 중화(重華)의 물가에 비쳤던 것042) 이 돌아보면 이 해 이 달이었고 별이 일주(一周)하여 요(堯)의 명협(蓂莢)이 되었으니,043) 이때에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누겠습니까.
자궁(慈宮)께서 칠순(七旬)의 나이를 바라보게 되신 것도 실로 돌보아 주심을 받든 것이요, 변변치 못한 몸이 20년 동안 정치를 해 온 것 또한 빛나는 업적이 끼쳐 준 나머지 경사라 할 것인데, 돌아보면 우리 집안이 더 융성해지는 전범(典範)을 시행해야 할 책임이 지금에 와서 부과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禮)란 본래 인정(人情)에 따르는 것이니 인정과 부합되어야만 예가 되는 것이고, 명호(名號)는 실제의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니 실제 내용이 있다면 명호를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일곱 줄 면류관 끈을 생각하면 추연(愀然)히 다시 뵙는 것만 같고, 온 나라에서 칭송하는 것들을 모아들이다 보니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더욱 높아지기만 합니다. 어찌 감히 완전하게 생전의 자취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렇게라도 해야만 인정상으로나 절문(節文)상으로 그런대로 갖추어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정성을 쏟고 애모(愛慕)하신 것은 독실하고 지극하여 인륜이 이로 말미암아 밝게 되었고, 규모와 도량은 높고도 깊어 우주와 넓이를 같이했으며, 하늘로부터 역년(歷年)과 길(吉)함을 명받아 태산과 반석처럼 큰 기업을 열어 놓았고, 해가 떠오르듯 달이 차오르듯 후손을 편케 해 준 위업이 빛나기만 하옵니다.
이에 삼가 옥책문을 받들면서 장륜 융범 기명 창휴(章倫隆範基命彰休)라는 존호를 추후로 올리게 되었는데, 삼가 깊이 살피시어 미천한 정성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만물이 그 교화를 입도록 해 주시고, 상제의 좌우에서 오르내리시면서 그 공이 천지(天地)와 하나가 되도록 해 주소서."
하였다. 【우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지었다.】 상이 도로 자리에 돌아와 두 번 절하고, 친향(親享)을 행한 뒤에 환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44면
- [註 040] 정축년 : 1757 영조 33년.
- [註 041] 갑오년 : 1774 영조 50년.
- [註 042] 무지개가 중화(重華)의 물가에 비쳤던 것 :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중화(重華) 즉 순(舜)임금에게 시집오던 때를 말하는 것으로서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사도 세자에게 시집온 것을 뜻함.
- [註 043] 별이 일주(一周)하여 요(堯)의 명협(蓂莢)이 되었으니, : 새해가 찾아와 정월이 되었다는 말임. 명협은 요임금 때 조정에 난 상서로운 풀 이름으로서 초하루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다가 15일부터는 매일 한 잎씩 졌다고 함.
원문
○詣景慕宮, 親上冊印, 仍行親享。 具冕服入版位, 再拜致詞。 上還復位再拜, 西向立。 於是, 登歌《淸河之曲》曰:
顯顯令德, 晬外積中。 孝悌爲本, 神明與通。 沛然莫禦, 仰之彌崇。 彼淸者河, 光啓我東。 保佑申命, 于殿于宮。 軒紀載周, 舜慕無窮。 書金縷玉, 闡徽冞隆。 登歌萬年, 福祿來同。 【藝文提學李秉鼎製進。】
諸執事各捧冊印及案進詣, 上祗迎, 仍詣階上北向跪’ 都提調奉以跪進, 上受之, 以授近侍。 近侍對擧, 以授捧冊印官, 捧冊印官跪受, 詣廟內, 承旨奉安。
玉冊文曰:
朱絃薦疏越之音, 今歲何歲? 玉牒紀於昭之德, 大書特書, 百代可徵, 八域莊誦。 恭惟皇叔父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莊獻世子邸下, 博厚高明之象天地, 仁智哲文之協勛 華。 陋漢、唐以來規模, 廓其大度, 譬河海不見涯涘, 淵乎聖衷。 率土之謳歌皆歸, 熙庶績於萬幾代理, 聽言則芻蕘必達, 播令聞於一人以貞。 猗歟, 挽三之宏謨, 本之源百之懿行。 丁丑之孺慕靡極, 旣致聖慈之俯監; 甲午之筵敎昭垂, 益知睿孝之上格。 嗟, 近年抆涕之語, 所以闡明於斯, 而邦人沒世之思, 豈但樂利而已? 肆小子寤寐至願, 在一分形容盛徽, 前後琬琰之發揮, 縱陳顯號, 終始管蠡之窺測, 莫贊幽光。 屬玆斗杓之在寅, 正値河淸之舊甲。 虹流華渚, 緬言是月是年, 星周堯蓂, 詎堪此時此慕? 慈宮望七旬之壽, 寔眷佑之攸承; 眇躬撫二紀之治, 又昌熾之餘慶, 顧我家加隆之典, 伊丕責若待於今。 禮本緣情, 合於情者爲禮; 名以紀實, 有其實則斯名。 想七旒之潛輝, 愀如復見; 採一國之輿頌, 仰之彌高。 敢曰摸畫之能眞? 然後情文之克備。 誠愛篤至, 揭倫彝而式昭; 範圍隆深, 彌宇宙而同廣。 命歷命吉, 誕啓磐泰之洪基; 如升如恒, 用彰燕翼之休烈。 謹奉玉冊, 追上尊號曰: "章倫隆範基命彰休。" 伏惟仰冀沖鑑, 俯諒微誠, 保我子孫黎民, 化被萬品, 在帝左右陟降, 功參兩儀。 【右議政李秉模撰。】
上還復位再拜, 行親享還宮。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44면
정조 19년 (1795) 1월 17일
- 장헌 세자에게 추가하여 존호를 올리다
- 경모궁에 가서 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이어 친향을 거행하다
- 혜경궁에게 존호와 책문·금인을 올리고 치사와 전문·표리를 바치다
- 명정전에 거둥하여 자궁의 환갑을 경축하는 치사와 전문과 표리를 바치다
- 상전을 시행하다
- 61세 이상의 문신·무신·음관에게 가자하고 부채의 탕감과 요역의 면제를 하교하다
- 서울과 외방의 6백 82인에게 노직을 제수하라는 비답을 내리다
- 심환지를 이조 참판, 이시수를 공조 판서로 삼다
- 사(赦)문서 속의 홍국영 및 도류안의 유철 등을 명단에서 지워버리라고 하교하다
- 극역죄인을 사전에 포함시키라는 분부의 취소를 청한 승지 황승원 등을 체차하다
- 황승원을 이조 참판으로 삼다
- 옥당이 극역 죄인을 사면하라는 명의 환수를 청하다
- 양사가 연명하여 홍국영·유철 등을 사면하라는 성명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
국역
경모궁(景慕宮)에 가서 상이 직접 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이어 친향(親享)을 거행하였다.
면복(冕服)을 갖추고 판위(版位)에 들어가 두 번 절한 다음 치사(致詞)를 올렸다. 상이 자리로 돌아와 두 번 절하고 서쪽을 향해 서자 청하곡(淸河曲)이 울려 퍼졌는데, 그 내용에,
"환히 드러난 아름다운 덕, 속에 쌓인 것이 밖으로 비춰짐이로다. 효성과 우애를 근본삼아 신명(神明)과 통하였도다. 왕성한 그 기운 막을 수 없어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도다. 맑은 강물 저리 흐르듯 우리 동방 운수를 열어 주었네. 보우(保佑)하며 정중하게 내리신 그 명, 자전과 자궁에 이르렀도다. 어느새 주갑(周甲)의 해 맞고서 보니 사모하는 마음 끝이 없어라. 금에 쓰고 옥에 새겨서 아름다운 그 이름 드러내도다. 만년을 축수하는 저 음악 소리, 복록이 와서 함께 하도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이병정(李秉鼎)이 지어 올렸다.】
여러 집사(執事)가 각각 옥책문과 인장 및 상을 받들고 나아가니, 상이 지영(祗迎)하고, 이어 섬돌 위로 나아가 북쪽을 향해서 꿇어앉았다. 도제조(都提調)가 이를 받들어 무릎꿇고 바치니, 임금이 받아서 근시(近侍)에게 주었다. 근시가 이를 마주 들고 봉책인관(捧冊印官)에게 주자 봉책인관이 무릎꿇고 받은 다음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승지가 받들어 봉안하였는데, 옥책문의 내용은,
"천천히 퍼지는 관현악 연주 소리, 올해가 과연 어떤 해입니까. 옥첩(玉牒)에 밝은 덕 기록하며 큰 글씨로 특별히 써서 바치니 이는 백세토록 징험될 일로서 나라 전체가 장엄하게 칭송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황숙부(皇叔父)이신 사도 수덕 돈경 홍인 경지 장헌 세자(思悼綬德敦慶弘仁景祉莊獻世子) 저하께서는 하늘과 땅을 본받아 박후(博厚) 고명(高明)하셨으며, 인지(仁智)하시고 철문(哲文)하심은 훈화(勛華)와 어울리셨습니다. 한(漢)·당(唐) 이래의 규모가 비좁을 만큼 그 큰 도량 넓게 틔었고 끝을 볼 수 없는 강물과 바다마냥 그 속마음은 한없이 깊으셨습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구가(謳歌)하며 모두 귀의하였는데 만기(萬機)를 대리(代理)할 때의 그 업적 빛나기만 하옵니다. 말을 듣는 그 자세는 추요(蒭蕘)까지도 반드시 통하게 하였고, 곧다는 훌륭한 소문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아, 규모가 엄청난 제왕의 대경(大經) 대법(大法)도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성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정축년040) 에 어린 나이로 끝없이 사모했던 것이야말로 이미 성자(聖慈)께서 굽어살피시기에 충분하였는데 갑오년041) 에 연석(筵席)에서 분명하게 분부하셨던 것만 보아도 효성이 위를 감동시켰음을 더욱 알 수가 있습니다. 아, 근년에 눈물이 나는 말들을 보아도 모두가 이를 드러내 밝히고 있는데, 나라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찌 다만 이해 타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소자(小子)가 자나깨나 지극히 원했던 것은 조금이라도 성대한 덕을 형용하는 것이었는데, 전후에 걸쳐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려고 명호(名號)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소라 껍질로 바다를 재듯 하였으므로 감추어진 덕을 기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북두칠성의 자루가 인방(寅方)에 놓이면서 바로 만나기 어려운 구갑(舊甲)의 해를 맞았습니다. 무지개가 중화(重華)의 물가에 비쳤던 것042) 이 돌아보면 이 해 이 달이었고 별이 일주(一周)하여 요(堯)의 명협(蓂莢)이 되었으니,043) 이때에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누겠습니까.
자궁(慈宮)께서 칠순(七旬)의 나이를 바라보게 되신 것도 실로 돌보아 주심을 받든 것이요, 변변치 못한 몸이 20년 동안 정치를 해 온 것 또한 빛나는 업적이 끼쳐 준 나머지 경사라 할 것인데, 돌아보면 우리 집안이 더 융성해지는 전범(典範)을 시행해야 할 책임이 지금에 와서 부과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禮)란 본래 인정(人情)에 따르는 것이니 인정과 부합되어야만 예가 되는 것이고, 명호(名號)는 실제의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니 실제 내용이 있다면 명호를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일곱 줄 면류관 끈을 생각하면 추연(愀然)히 다시 뵙는 것만 같고, 온 나라에서 칭송하는 것들을 모아들이다 보니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더욱 높아지기만 합니다. 어찌 감히 완전하게 생전의 자취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렇게라도 해야만 인정상으로나 절문(節文)상으로 그런대로 갖추어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정성을 쏟고 애모(愛慕)하신 것은 독실하고 지극하여 인륜이 이로 말미암아 밝게 되었고, 규모와 도량은 높고도 깊어 우주와 넓이를 같이했으며, 하늘로부터 역년(歷年)과 길(吉)함을 명받아 태산과 반석처럼 큰 기업을 열어 놓았고, 해가 떠오르듯 달이 차오르듯 후손을 편케 해 준 위업이 빛나기만 하옵니다.
이에 삼가 옥책문을 받들면서 장륜 융범 기명 창휴(章倫隆範基命彰休)라는 존호를 추후로 올리게 되었는데, 삼가 깊이 살피시어 미천한 정성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만물이 그 교화를 입도록 해 주시고, 상제의 좌우에서 오르내리시면서 그 공이 천지(天地)와 하나가 되도록 해 주소서."
하였다. 【우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지었다.】 상이 도로 자리에 돌아와 두 번 절하고, 친향(親享)을 행한 뒤에 환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44면
- [註 040] 정축년 : 1757 영조 33년.
- [註 041] 갑오년 : 1774 영조 50년.
- [註 042] 무지개가 중화(重華)의 물가에 비쳤던 것 :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중화(重華) 즉 순(舜)임금에게 시집오던 때를 말하는 것으로서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사도 세자에게 시집온 것을 뜻함.
- [註 043] 별이 일주(一周)하여 요(堯)의 명협(蓂莢)이 되었으니, : 새해가 찾아와 정월이 되었다는 말임. 명협은 요임금 때 조정에 난 상서로운 풀 이름으로서 초하루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다가 15일부터는 매일 한 잎씩 졌다고 함.
원문
○詣景慕宮, 親上冊印, 仍行親享。 具冕服入版位, 再拜致詞。 上還復位再拜, 西向立。 於是, 登歌《淸河之曲》曰:
顯顯令德, 晬外積中。 孝悌爲本, 神明與通。 沛然莫禦, 仰之彌崇。 彼淸者河, 光啓我東。 保佑申命, 于殿于宮。 軒紀載周, 舜慕無窮。 書金縷玉, 闡徽冞隆。 登歌萬年, 福祿來同。 【藝文提學李秉鼎製進。】
諸執事各捧冊印及案進詣, 上祗迎, 仍詣階上北向跪’ 都提調奉以跪進, 上受之, 以授近侍。 近侍對擧, 以授捧冊印官, 捧冊印官跪受, 詣廟內, 承旨奉安。
玉冊文曰:
朱絃薦疏越之音, 今歲何歲? 玉牒紀於昭之德, 大書特書, 百代可徵, 八域莊誦。 恭惟皇叔父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莊獻世子邸下, 博厚高明之象天地, 仁智哲文之協勛 華。 陋漢、唐以來規模, 廓其大度, 譬河海不見涯涘, 淵乎聖衷。 率土之謳歌皆歸, 熙庶績於萬幾代理, 聽言則芻蕘必達, 播令聞於一人以貞。 猗歟, 挽三之宏謨, 本之源百之懿行。 丁丑之孺慕靡極, 旣致聖慈之俯監; 甲午之筵敎昭垂, 益知睿孝之上格。 嗟, 近年抆涕之語, 所以闡明於斯, 而邦人沒世之思, 豈但樂利而已? 肆小子寤寐至願, 在一分形容盛徽, 前後琬琰之發揮, 縱陳顯號, 終始管蠡之窺測, 莫贊幽光。 屬玆斗杓之在寅, 正値河淸之舊甲。 虹流華渚, 緬言是月是年, 星周堯蓂, 詎堪此時此慕? 慈宮望七旬之壽, 寔眷佑之攸承; 眇躬撫二紀之治, 又昌熾之餘慶, 顧我家加隆之典, 伊丕責若待於今。 禮本緣情, 合於情者爲禮; 名以紀實, 有其實則斯名。 想七旒之潛輝, 愀如復見; 採一國之輿頌, 仰之彌高。 敢曰摸畫之能眞? 然後情文之克備。 誠愛篤至, 揭倫彝而式昭; 範圍隆深, 彌宇宙而同廣。 命歷命吉, 誕啓磐泰之洪基; 如升如恒, 用彰燕翼之休烈。 謹奉玉冊, 追上尊號曰: "章倫隆範基命彰休。" 伏惟仰冀沖鑑, 俯諒微誠, 保我子孫黎民, 化被萬品, 在帝左右陟降, 功參兩儀。 【右議政李秉模撰。】
上還復位再拜, 行親享還宮。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544면
원본
정조 19년 (1795) 1월 17일
- 장헌 세자에게 추가하여 존호를 올리다
- 경모궁에 가서 책문과 인장을 올리고 이어 친향을 거행하다
- 혜경궁에게 존호와 책문·금인을 올리고 치사와 전문·표리를 바치다
- 명정전에 거둥하여 자궁의 환갑을 경축하는 치사와 전문과 표리를 바치다
- 상전을 시행하다
- 61세 이상의 문신·무신·음관에게 가자하고 부채의 탕감과 요역의 면제를 하교하다
- 서울과 외방의 6백 82인에게 노직을 제수하라는 비답을 내리다
- 심환지를 이조 참판, 이시수를 공조 판서로 삼다
- 사(赦)문서 속의 홍국영 및 도류안의 유철 등을 명단에서 지워버리라고 하교하다
- 극역죄인을 사전에 포함시키라는 분부의 취소를 청한 승지 황승원 등을 체차하다
- 황승원을 이조 참판으로 삼다
- 옥당이 극역 죄인을 사면하라는 명의 환수를 청하다
- 양사가 연명하여 홍국영·유철 등을 사면하라는 성명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