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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6권, 정조 12년 11월 11일 기사 2번째기사 1788년 청 건륭(乾隆) 53년

상언한 영남 유생들을 접견하다. 승지 이민채에게 세초 단자의 반포 여부를 묻다

상언(上言)한 영남 유생들을 불러 접견하였다. 상이 이진동 등에게 이르기를,

"60주년을 맞아 충절을 포장하고 공적을 기록하는 날을 당하여, 책자 가운데 실려 있는 여러 사람들은 모두 명현의 후예들로 창의하는 일을 주도하였으니, 내 진실로 찬탄하는 바이다. 그러나 당목(黨目)이 한 번 생겨난 뒤로 취미가 각기 달라져서 근래에는 조정에서 영남을 거의 다른 나라처럼 보니 진실로 개탄스럽다. 인재가 부족한 이때를 당하여 영남의 허다한 인사 중에는 반드시 등용할 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니, 만약 수용(收用)해서 함께 조정에 늘어서게 한다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하는 도에 부합할 것이다."

하고, 이어 승지 이민채(李敏采)를 돌아보고 세초 단자(歲抄單子)를 이미 반포하였느냐고 물으니, 민채가 아뢰기를,

"책자 가운데 조덕린황익재를 많은 사람 속에 뒤섞어 기록한 것이 이미 지극한 협잡입니다. 덕린의 흉소(凶疏)의 말뜻이 음흉하고 참혹하니, 신은 감히 반포해 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사관(史官) 김조순(金祖淳)이 아뢰기를,

"승지의 아뢴 바가 실로 마땅합니다. 덕린의 흉소 중에 ‘임금이 되는 데 마음을 두지 않았고 왕위를 구하는 데 뜻이 없었다.’는 말이 어찌 신하로서 감히 생각을 내고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겠습니까. 그리고 ‘선왕이 승하하던 날에 눈물을 감추고 즉위하였다.’는 등의 말은 음흉하고 흉악하기가 실로 조태억(趙泰億)이 지은 반교문(頒敎文) 가운데 ‘반야(半夜)’라는 말보다 더 심하니 덕린 같은 역적을 신설(伸雪)시켜려는 계획을 감히 낸 자도 또한 역적입니다. 만약 조정에서 너그러운 처분으로 풀어주어 흉역(凶逆)의 무리로 하여금 만족하게 한다면 기사년의 잔당들이 다시 감히 바라서는 안 될 일을 바라는 마음을 낼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3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윤리(倫理)

○召見嶺南封章儒生。 上諭李鎭東等曰: "舊申重回, 褒忠記功冊子中所載諸人, 皆以名賢之裔, 辦此倡義之擧, 予固歎賞矣。 黨目一出, 臭味各殊, 近來朝廷之視嶺南, 殆同異服, 誠可慨然。 當此人才眇然之日, 嶺南許多人士, 必多收用之人。 若使蒐致幷列於朝廷, 政合恢蕩之道矣。" 仍顧承旨李敏采曰: "歲抄單子, 已爲頒布乎?" 敏采曰: "冊子中, 德隣翼再之混錄, 已極挾雜, 而德隣凶疏, 語意陰慘, 臣不敢頒給矣。" 史官金祖淳奏曰: "承宣所奏, 實爲允當。 德隣凶疏中所謂, 匪心無求云者, 豈臣子之所敢萌心發口者哉? 且其倉卒之日, 掩涕登朝等說, 陰譎凶悖, 實有浮於泰億敎文中半夜二字。 逆如德隣, 敢生申雪之計者, 是亦逆也。 朝家又從以疏釋之, 使凶逆輩, 充然有得, 竊恐己巳餘孽, 復生覬覦之心也。"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3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