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23권, 정조 11년 1월 5일 갑술 2/2 기사 / 1787년 청 건륭(乾隆) 52년
채제공을 다시 서용한 것에 대해 말하다
국역
채제공을 소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관(冠)의 먼지를 털고 조정에 나오게 된 것은 조정에서 경에게 보답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니, 채제공이 말하기를,
"고인(古人)이 항상 천지간에 다시 살려주신 은혜라고 일컬으나 소신의 경우는 만번 살려준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할 덕은 넓은 하늘과 같아서 끝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른바 ‘세 건(件)의 일’에 대하여 애당초 문자(文子)로 소포(昭布)된 것이 없었기에 전교(傳敎)로써 소석(昭晰)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연화(筵話)에서 꺼낸 것인데, 군주를 증인으로 세웠으니, 옛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조정에서 경을 공격하는 자들이 홍국영(洪國榮)과 서로 친했다고 말을 하는데, ‘집안 사람……’ 운운하는 말을 경이 상소에서 언급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하니, 채제공이 말하기를,
"이 판부사(李判府事)가 연주(筵奏)에서 신이 홍국영과 친하다는 말을 홍국영의 집안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때 신의 상소에서 말하기를, ‘홍국영의 집안 사람을 사람들이 만나면 머리털이 모두 솟구치는데, 이모(李某)는 싫어하지 않고 말을 서로 통하니, 참으로 남을 모함하는 데 급한 나머지 스스로가 빠지는 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부터는 모름지기 세상에 용납되는 도리를 생각하라. 이때에 불러온 뜻이 어찌 단순하겠는가? 지금의 때에는 이열 치열(以熱治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요즈음 마음을 써서 상량(商量)하여 경을 명백하게 흠이 없는 처지에 두었으니, 경도 역시 보답하는 방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니, 채제공이 눈물을 흘리면서 사례하였다. 인하여 관서(關西)의 도시(都試)에 대한 일을 제기하여 아뢰니, 승지 김노순(金魯淳)이 말하기를,
"채제공이 감히 다른 말을 쓸데없이 언급하니, 참으로 외람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승선(承宣)이 노패(老誖)한데도 오히려 경을 곤란하게 하니, 경도 역시 힘들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원문
○召見蔡濟恭。 上曰: "卿彈冠立朝, 朝家可謂報卿。" 濟恭曰: "古人常稱天地再生之恩, 而小臣則被萬生之恩, 欲報之德, 昊天罔極。" 上曰: "所謂三件事, 初無文字之昭布, 則不可以傳敎昭晣, 故出諸筵話, 而以人主立證, 古有是否? 朝廷之所以攻卿者, 以與國榮相親爲辭矣。 家人云云, 卿之上疏言之否?" 濟恭曰: "李判府筵奏以爲: ‘臣與國榮相親之說, 聞於國榮之家人。’ 云, 故伊時, 臣疏以爲: ‘國榮之家人, 人若當之, 則毛髮俱竦。’ 而李某不以爲嫌, 語言相通, 眞所謂急於陷人, 不知自陷, 爲辭矣。" 上曰: "從今爲始, 須思容世之道。 此時召來, 意豈亶然? 今之時, 不可不以熱治熱矣。 予於近日, 積費商量, 置卿於白白無瑕之地。 卿亦思報效之道焉。" 濟恭涕泣謝。 因提奏關西都試事。 承旨金魯淳曰: "濟恭敢贅及他說, 誠猥濫矣。" 上曰: "此承宣者誖, 而猶爲困卿。 卿亦難矣。"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정조 11년 (1787) 1월 5일
국역
채제공을 소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관(冠)의 먼지를 털고 조정에 나오게 된 것은 조정에서 경에게 보답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니, 채제공이 말하기를,
"고인(古人)이 항상 천지간에 다시 살려주신 은혜라고 일컬으나 소신의 경우는 만번 살려준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할 덕은 넓은 하늘과 같아서 끝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른바 ‘세 건(件)의 일’에 대하여 애당초 문자(文子)로 소포(昭布)된 것이 없었기에 전교(傳敎)로써 소석(昭晰)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연화(筵話)에서 꺼낸 것인데, 군주를 증인으로 세웠으니, 옛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조정에서 경을 공격하는 자들이 홍국영(洪國榮)과 서로 친했다고 말을 하는데, ‘집안 사람……’ 운운하는 말을 경이 상소에서 언급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하니, 채제공이 말하기를,
"이 판부사(李判府事)가 연주(筵奏)에서 신이 홍국영과 친하다는 말을 홍국영의 집안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때 신의 상소에서 말하기를, ‘홍국영의 집안 사람을 사람들이 만나면 머리털이 모두 솟구치는데, 이모(李某)는 싫어하지 않고 말을 서로 통하니, 참으로 남을 모함하는 데 급한 나머지 스스로가 빠지는 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부터는 모름지기 세상에 용납되는 도리를 생각하라. 이때에 불러온 뜻이 어찌 단순하겠는가? 지금의 때에는 이열 치열(以熱治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요즈음 마음을 써서 상량(商量)하여 경을 명백하게 흠이 없는 처지에 두었으니, 경도 역시 보답하는 방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니, 채제공이 눈물을 흘리면서 사례하였다. 인하여 관서(關西)의 도시(都試)에 대한 일을 제기하여 아뢰니, 승지 김노순(金魯淳)이 말하기를,
"채제공이 감히 다른 말을 쓸데없이 언급하니, 참으로 외람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승선(承宣)이 노패(老誖)한데도 오히려 경을 곤란하게 하니, 경도 역시 힘들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원문
○召見蔡濟恭。 上曰: "卿彈冠立朝, 朝家可謂報卿。" 濟恭曰: "古人常稱天地再生之恩, 而小臣則被萬生之恩, 欲報之德, 昊天罔極。" 上曰: "所謂三件事, 初無文字之昭布, 則不可以傳敎昭晣, 故出諸筵話, 而以人主立證, 古有是否? 朝廷之所以攻卿者, 以與國榮相親爲辭矣。 家人云云, 卿之上疏言之否?" 濟恭曰: "李判府筵奏以爲: ‘臣與國榮相親之說, 聞於國榮之家人。’ 云, 故伊時, 臣疏以爲: ‘國榮之家人, 人若當之, 則毛髮俱竦。’ 而李某不以爲嫌, 語言相通, 眞所謂急於陷人, 不知自陷, 爲辭矣。" 上曰: "從今爲始, 須思容世之道。 此時召來, 意豈亶然? 今之時, 不可不以熱治熱矣。 予於近日, 積費商量, 置卿於白白無瑕之地。 卿亦思報效之道焉。" 濟恭涕泣謝。 因提奏關西都試事。 承旨金魯淳曰: "濟恭敢贅及他說, 誠猥濫矣。" 上曰: "此承宣者誖, 而猶爲困卿。 卿亦難矣。"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25면
원본
정조 11년 (1787) 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