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권, 정조 1년 7월 4일 정묘 1/1 기사 / 1777년 청 건륭(乾隆) 42년
대궐의 뜰에서 칼을 뺀 해조 조례 박중근을 대시시키도록 하다
국역
병조 좌랑(兵曹佐郞) 유성한(柳星漢)을 사천현(泗川縣)에 귀양보내고, 해조(該曹)의 조례(皂隷) 박중근(朴重根)은 추조(秋曹)로 하여금 결안(結案)을 받아 놓았다가 대시(待時)174) 하여 법대로 하도록 하였다. 유성한이 내성(內省)에 입직(入直)했을 때에 근수(跟隨)175) 가 많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홍국영(洪國榮)을 핍박하게 되었는데, 기당(騎堂)176) 이 홍국영의 뜻을 받아 유성한이 데리고 온 조례를 곤장으로 다스리게 되므로, 유성한이 앞질러 나가버리고, 이날 근장 군사(近仗軍士)와 해조(該曹)의 조례가 호패(戶牌)를 바꾸어 찼는데, 해조의 조례를 사문(査問)하도록 명했다. 해조의 조례는 곧 박중근인데 박중근이 거역하여 곤장을 받지 않으며 칼을 빼어 자문(自刎)하려고 했기에, 병조에서 아뢰니, 하교하기를,
"금중(禁中)의 뜰은 얼마나 엄숙한 자리이고 전교(傳敎)는 얼마나 중대한 사항 이라고, 하찮은 하례(下隷)가 이처럼 놀라운 짓을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필경에는 차비문(差備門) 안에서도 칼을 빼는 짓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무리는 결단코 심상하게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니, 적용할 만한 율(律)을 대신·형조 당상과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박중근이 비록 무식한 하천(下賤)이기는 하지만, 임금의 명을 거역하고 금중의 뜰에서 칼을 빼는 짓을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범한 죄로서 진실로 단안(斷案)이 되는 것이고, 나라에 일정한 법이 있으니 용서할 것 없이 죽여야 합니다."
하고, 좌의정 정존겸(鄭存謙)은 말하기를,
"한결같이 군복 작변(軍服作變)의 율(律)에 의하여 부대시(不待時)하여 정형(正刑)177) 하는 것을 단정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고, 우의정 서명선(徐命善)은 말하기를,
"박중근은 부대시로 의율(議律)하여 군문(軍門)에 회부시켜 군민(軍民)에게 효시(梟示)하도록 하되, 징일 여백(懲一礪百)하는 일을 단정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유성한의 해괴하고 망령된 거동과 직무를 유기(遺棄)한 상황도 죄가 가볍지 않은데 데리고 온 조례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순치(馴致)하였으니, 유성한도 시급히 찬배(竄配)하는 율을 시행함이 합당합니다."
하고, 형조 판서 장지항(張志恒) 등이 말하기를,
"율문(律文)을 고찰해 보건대, 비록 딱 들어맞게 적용할 조문(條文)이 없습니다마는, 청명(淸明)한 금중(禁中)에서 칼을 빼어드는 발악한 짓은 마땅히 부도 간범률(不道干犯律)로 감단(勘斷)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박중근의 일은 곧 그전에는 없던 변괴이니, 부대시(不待時)하여 정법(正法)하는 것도 옳고 당장 효시(梟示)하는 것도 또한 옳으나, 일률(一律)의 법을 쓰는 데에는 마땅히 잘 살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율문을 고찰해 보면 또한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니, 추조(秋曹)에 이송(移送)하여 준엄하게 형벌을 하여 결안(結案)을 받아 놓고 대시(待時)하여 거행하라."
하였다. 교리 남학문(南鶴聞), 수찬 윤상동(尹尙東) 등이 상소하여, 유성한을 시급히 찬배하는 형벌을 시행할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174] 대시(待時) : 사형수를 처형할 때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까지 생물이 자라는 기간에는 사형시키지 않고 가을철 추분까지 기다리던 일. 사형은 대시(待時)하였다가 추분 후 춘분 전에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를 진 죄인은 부대시(不待時)하여 확정 후 곧 집행하였음. 이 경우 대시하여 참형에 처하는 참대시(斬待時)와 부대시하여 참형에 처하는 참부대시(斬不待時)가 있었으며, 또 참형 외에 교형의 경우에도 교대시(絞待時)와 교부대시(絞不待時)가 있었음.
- [註 175] 근수(跟隨) : 벼슬아치를 따라다니는 관아(官衙)의 하례(下隷).
- [註 176] 기당(騎堂) : 병조 당상.
- [註 177] 정형(正刑) : 사형.
원문
○丁卯/配兵曹佐郞柳星漢于泗川縣, 曹隷朴重根, 令秋曹捧結案, 待時用法。 星漢入直內省, 以跟隨之多, 語逼洪國榮, 騎堂承國榮旨, 棍治星漢之帶隷, 星漢徑出, 是日近仗軍士與曹隷, 換佩戶牌, 命査問曹隷。 曹隷卽重根也, 重根拒不受棍, 拔劍欲自刎, 兵曹以啓。 敎曰: "禁庭何等肅嚴之地, 傳敎何等重大之事, 而幺麽下隷, 作此驚駭之擧, 若此不已, 則必至於拔劍於差備之內。 此等之類, 決不可尋常處之, 可擬之律, 議于大臣刑曹堂上以聞。" 領議政金尙喆以爲: "重根雖無識下賤, 君命之違逆, 禁庭之拔劍。 卽此所犯, 實爲斷案, 國有常憲, 殺無赦也。" 左議政鄭存謙以爲: "一依軍服作變之律, 不待時正刑, 斷不可已。" 右議政徐命善以爲: "重根不待議律, 出付軍門, 梟示軍民, 懲一礪百, 斷不可已, 而柳星漢駭妄之擧, 溺職之狀, 厥罪不輕, 而馴致帶隷, 至於此境, 星漢亟施竄配之典爲宜。" 刑曹判書張志恒等以爲: "考諸律文, 雖無襯着可擬之條, 而淸禁之內, 拔劍肆惡, 當以不道干犯之律勘處。" 敎曰: "朴重根事, 卽無前變怪, 不待時正法可也, 登時梟示亦可也, 一律用法, 宜存審愼。 考之律文, 亦有近似, 移送秋曹, 嚴刑捧結案, 待時擧行。" 校理南鶴聞, 修撰尹尙東等上疏, 請柳星漢亟施竄配之典, 從之。
정조 1년 (1777) 7월 4일
국역
병조 좌랑(兵曹佐郞) 유성한(柳星漢)을 사천현(泗川縣)에 귀양보내고, 해조(該曹)의 조례(皂隷) 박중근(朴重根)은 추조(秋曹)로 하여금 결안(結案)을 받아 놓았다가 대시(待時)174) 하여 법대로 하도록 하였다. 유성한이 내성(內省)에 입직(入直)했을 때에 근수(跟隨)175) 가 많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홍국영(洪國榮)을 핍박하게 되었는데, 기당(騎堂)176) 이 홍국영의 뜻을 받아 유성한이 데리고 온 조례를 곤장으로 다스리게 되므로, 유성한이 앞질러 나가버리고, 이날 근장 군사(近仗軍士)와 해조(該曹)의 조례가 호패(戶牌)를 바꾸어 찼는데, 해조의 조례를 사문(査問)하도록 명했다. 해조의 조례는 곧 박중근인데 박중근이 거역하여 곤장을 받지 않으며 칼을 빼어 자문(自刎)하려고 했기에, 병조에서 아뢰니, 하교하기를,
"금중(禁中)의 뜰은 얼마나 엄숙한 자리이고 전교(傳敎)는 얼마나 중대한 사항 이라고, 하찮은 하례(下隷)가 이처럼 놀라운 짓을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필경에는 차비문(差備門) 안에서도 칼을 빼는 짓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무리는 결단코 심상하게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니, 적용할 만한 율(律)을 대신·형조 당상과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박중근이 비록 무식한 하천(下賤)이기는 하지만, 임금의 명을 거역하고 금중의 뜰에서 칼을 빼는 짓을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범한 죄로서 진실로 단안(斷案)이 되는 것이고, 나라에 일정한 법이 있으니 용서할 것 없이 죽여야 합니다."
하고, 좌의정 정존겸(鄭存謙)은 말하기를,
"한결같이 군복 작변(軍服作變)의 율(律)에 의하여 부대시(不待時)하여 정형(正刑)177) 하는 것을 단정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고, 우의정 서명선(徐命善)은 말하기를,
"박중근은 부대시로 의율(議律)하여 군문(軍門)에 회부시켜 군민(軍民)에게 효시(梟示)하도록 하되, 징일 여백(懲一礪百)하는 일을 단정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유성한의 해괴하고 망령된 거동과 직무를 유기(遺棄)한 상황도 죄가 가볍지 않은데 데리고 온 조례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순치(馴致)하였으니, 유성한도 시급히 찬배(竄配)하는 율을 시행함이 합당합니다."
하고, 형조 판서 장지항(張志恒) 등이 말하기를,
"율문(律文)을 고찰해 보건대, 비록 딱 들어맞게 적용할 조문(條文)이 없습니다마는, 청명(淸明)한 금중(禁中)에서 칼을 빼어드는 발악한 짓은 마땅히 부도 간범률(不道干犯律)로 감단(勘斷)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박중근의 일은 곧 그전에는 없던 변괴이니, 부대시(不待時)하여 정법(正法)하는 것도 옳고 당장 효시(梟示)하는 것도 또한 옳으나, 일률(一律)의 법을 쓰는 데에는 마땅히 잘 살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율문을 고찰해 보면 또한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니, 추조(秋曹)에 이송(移送)하여 준엄하게 형벌을 하여 결안(結案)을 받아 놓고 대시(待時)하여 거행하라."
하였다. 교리 남학문(南鶴聞), 수찬 윤상동(尹尙東) 등이 상소하여, 유성한을 시급히 찬배하는 형벌을 시행할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174] 대시(待時) : 사형수를 처형할 때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까지 생물이 자라는 기간에는 사형시키지 않고 가을철 추분까지 기다리던 일. 사형은 대시(待時)하였다가 추분 후 춘분 전에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를 진 죄인은 부대시(不待時)하여 확정 후 곧 집행하였음. 이 경우 대시하여 참형에 처하는 참대시(斬待時)와 부대시하여 참형에 처하는 참부대시(斬不待時)가 있었으며, 또 참형 외에 교형의 경우에도 교대시(絞待時)와 교부대시(絞不待時)가 있었음.
- [註 175] 근수(跟隨) : 벼슬아치를 따라다니는 관아(官衙)의 하례(下隷).
- [註 176] 기당(騎堂) : 병조 당상.
- [註 177] 정형(正刑) : 사형.
원문
○丁卯/配兵曹佐郞柳星漢于泗川縣, 曹隷朴重根, 令秋曹捧結案, 待時用法。 星漢入直內省, 以跟隨之多, 語逼洪國榮, 騎堂承國榮旨, 棍治星漢之帶隷, 星漢徑出, 是日近仗軍士與曹隷, 換佩戶牌, 命査問曹隷。 曹隷卽重根也, 重根拒不受棍, 拔劍欲自刎, 兵曹以啓。 敎曰: "禁庭何等肅嚴之地, 傳敎何等重大之事, 而幺麽下隷, 作此驚駭之擧, 若此不已, 則必至於拔劍於差備之內。 此等之類, 決不可尋常處之, 可擬之律, 議于大臣刑曹堂上以聞。" 領議政金尙喆以爲: "重根雖無識下賤, 君命之違逆, 禁庭之拔劍。 卽此所犯, 實爲斷案, 國有常憲, 殺無赦也。" 左議政鄭存謙以爲: "一依軍服作變之律, 不待時正刑, 斷不可已。" 右議政徐命善以爲: "重根不待議律, 出付軍門, 梟示軍民, 懲一礪百, 斷不可已, 而柳星漢駭妄之擧, 溺職之狀, 厥罪不輕, 而馴致帶隷, 至於此境, 星漢亟施竄配之典爲宜。" 刑曹判書張志恒等以爲: "考諸律文, 雖無襯着可擬之條, 而淸禁之內, 拔劍肆惡, 當以不道干犯之律勘處。" 敎曰: "朴重根事, 卽無前變怪, 不待時正法可也, 登時梟示亦可也, 一律用法, 宜存審愼。 考之律文, 亦有近似, 移送秋曹, 嚴刑捧結案, 待時擧行。" 校理南鶴聞, 修撰尹尙東等上疏, 請柳星漢亟施竄配之典, 從之。
원본
정조 1년 (1777)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