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16권, 영조 47년 5월 21일 신유 1/4 기사 / 1771년 청 건륭(乾隆) 36년
변무에 관한일을 김치인 등과 의논하다
국역
임금이 숭정전(崇政殿)에 나가니 여러 신하들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몇 년에 변무(辨誣)하였는지는 이미 정사(正史)에 기재되어 있으니, 비록 꿈속에서라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좌의정은 변무할 것이 못된다고 말하였는데, 밤에 누워서 다시 생각하여 보니 이 책을 우주(宇宙)에 하루 동안 머물러 있게 하면 하루 동안 불효(不孝)하는 것이고, 이틀 동안 머물러 있게 하면 이틀 동안 불효하는 것이다. 경(卿)들은 각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바를 진달하도록 하라."
하매,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말하기를,
"한 차례 진주(陳奏)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하고, 좌의정 한익모(韓翼謨)는 말하기를,
"놀랍고 가슴 아픈 것은 극도에 달하였지만 정사(正史)가 이미 반포되어 사실이 분명하기가 일성(日星)과 같으며, 이것은 피인(彼人)이 개인적으로 기술(記述)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밑천으로 삼으려는 것에 불과하니, 그것이 믿을 것이 못됨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와 같이 지나치게 성심(聖心)에 번민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좌의정의 말은 너무나 느슨하다."
하자, 우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아주 놀랍고 가슴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만 이미 정사(正史)가 아니라면 지금 변무(辨誣)할 단서가 없으며, 사신(使臣)을 보내어 진주하게 한 뒤에 책을 태워버리고 판(板)을 허물어 버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김치인은 말하기를,
"책을 불태우게 하고 판을 허물도록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인(朱璘)의 처벌을 청한 후라야 가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먼저 사 가지고 온 사신을 처벌한 연후라야 피국(彼國)에 대하여 요청할 말이 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여러 비국 당상들이 더러는 책을 불태우고 판을 허물도록 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더러는 주 인의 처벌을 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는데, 한익모는 말하기를,
"비록 책을 불태우게 하고 판을 허물게 하도록 청한다 하더라도 저들의 청답(聽答)은 기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염려가 됩니다."
하고, 부응교 정상인(鄭象仁)은 그 당시의 세 사신을 삭직(削職)하도록 청하고, 지평 송덕기(宋德基)는 아주 먼 변방에 귀양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모두 답을 하지 아니하고 하교하기를,
"아! 두 차례 변무한 뒤에 그 무설(誣說)이 통쾌하게 씻겨 분명하기가 일성(日星)과 같았으니, 이번의 이 책은 진실로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제 이 사건을 듣고 마음과 뼈가 모두 떨렸으며, 그 중의 한 글자는 무자년193) 에 없었던 일이니, 이런 등류의 문자(文字)를 비록 연경(燕京)의 저자거리에서 얻었다 하더라도 감히 단장을 하여 묶어서 두겠는가? 먼저 우리 나라 사신(使臣)을 처벌하고 계속해서 청(淸)나라에 주문(奏聞)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 〈그 책자를〉 얻어 가지고 온 사신을 삭직(削職)하라는 청은 그것이 윤리(倫理)가 없으며, 멀리 귀양을 보내라는 청은 이보다 낫기는 하다. 아! 비록 솔선하여 연경에 달려가 주인(朱璘)의 살점과 가죽을 사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 입시(入侍)한 삼사(三司)의 관원들은 어찌 감히 같은 목소리로 성토하기를 청하지 않는가? 그 당시 사가지고 온 세 사신에게는 빨리 천극(栫棘)하는 법을 시행하게 하고, 입시한 삼사의 관원들은 모두 삭직하도록 하며, 사신의 명칭은 진주사(陳奏使)라고 하라. 아! 선대(先代)를 위하여 마음 아파하는 때에 반전(盤纏)194) 이 웬 말인가? 역관(譯官)의 3분의 1을 줄이도록 하고 상매(商買)와 데리고 가는 팔포(八包)도 일체 엄중히 금지하되 그것을 만약 금지하지 않으면 해당 의주 부윤(義州府尹)과 서장관(書狀官)에게는 중률(重律)을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사신의 복명(復命)을 미리 기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압록강(鴨綠江)을 건넌 연후에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으니, 배표(拜表)195) 하는 날짜를 이달 안으로 택정하여 들이도록 하고, 오늘부터 감선(減膳)·철악(撤樂)하게 하며 박필순(朴弼淳)에게는 특별히 가자(加資)하도록 하라."
하고, 인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명기집략(明紀輯略)》 가운데 찍힌 도서(圖署)를 상고해 보도록 하였는데 바로 서종벽(徐宗璧)이었다. 임금이 승지를 시켜 금상문(金商門)에 나가도록 하여 그 무어(誣語)가 관계된 곳에다 먼저 세초(洗草)하게 한 뒤에 불태우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진주(陳奏)하면 청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다만 이정귀(李廷龜)와 같은 이가 없으니196)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자,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신이 치우치게 국가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국가에 대한 조그마한 공적도 없었으니, 원하건대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서 기필코 청원을 이루고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의정이 떠나기를 청하니 그의 충성은 감동할 만하다. 다만 부사(副使)와 서장관(書狀官)만 의망(擬望)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8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 [註 193] 무자년 : 1588 선조 21년.
- [註 194] 반전(盤纏) : 노자(路資).
- [註 195] 배표(拜表) : 중국 황제에게 보낼 표문(表文)을 다시 살펴보고 봉(峰)하는 일.
- [註 196] 이정귀(李廷龜)와 같은 이가 없으니 : 1598(선조 31년) 명나라 병부 주사(兵部主事) 정응태(丁應泰)가 조선에서 왜병을 끌어들여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조선을 무고(誣告)한 사건이 일어나자 이정귀가 조선국 변무주문(朝鮮國辨誣奏文)을 지어 진주 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응태의 무고임을 밝혀 그를 파직시킨 일.
원문
○辛酉/上御崇政殿, 諸臣入侍。 上曰: "幾年辨誣, 已載正史, 則雖夢寐中, 豈料有此事耶? 左相謂不足辨誣, 夜臥更思, 則此書留置宇宙一日則一日不孝也, 二日則二日不孝也。 卿等各陳所懷焉。" 領議政金致仁曰: "一番陳奏, 似不可已矣。" 左議政韓翼謩曰: "駭痛則極矣, 正史已頒, 昭如日星, 則此不過彼人私自記述, 以爲取利之資, 其不足信明矣。 何如是過煩聖心耶?" 上曰: "左相之言甚緩矣。" 右議政金尙喆曰: "不勝萬萬驚痛, 而旣非正史, 則今無辨誣之端, 遣使陳奏後, 焚書毁板好矣。" 致仁曰: "非但焚書毁板, 必請罪朱璘然後可也。" 上曰: "自此先罪貿來使臣, 然後可以有辭於彼國矣。" 諸備堂或言宜請焚書毁板, 或言宜請朱璘罪, 翼謩曰: "雖請焚書毁版, 彼之聽答, 未可必, 故以是爲慮矣。" 副應敎鄭象仁, 請其時三使臣削職, 持平宋德基, 請極邊遠竄, 上皆不答。 敎曰: " 嗚呼! 兩次辨誣後, 其誣快雪, 昭如日星, 則今者此書, 誠萬萬料表。 昨聞此事, 心骨俱戰, 其中一字, 戊子所無之事, 此等文字, 雖得於燕市, 敢粧䌙以置? 先罪我國使臣, 續當奏聞。 嗚呼! 得來使臣削職之請, 其無倫理, 遠竄之請, 雖勝於此。 嗚呼! 雖不能挺身赴燕, 買來朱璘肉皮, 爲今日入侍三司, 焉敢不齊聲請討? 其時買來三使臣, 亟施栫棘之典, 入侍三司竝削職, 使名曰陳奏。 噫! 爲先痛心之時, 盤纏何云? 譯官三分減一, 商買付包, 一切嚴禁, 其若不禁, 當該灣尹書狀當施重律。 使臣復命, 雖不可預待, 渡江然後可食可寢, 拜表日字, 今月內擇入, 自今日減膳撤樂, 朴弼淳特爲加資。" 仍命諸臣, 考見《輯略》中所印圖署, 卽徐宗璧也。 上使承旨, 出去金商門, 其誣語所系之處, 先洗草後付丙。 上曰: "陳奏則似可得請, 但無如李廷龜者奈何?" 尙喆曰: "臣偏蒙國恩, 莫效涓埃, 願奉使以往, 期於得請而還矣。" 上曰: "右相請行, 其忠可感。 只副使書狀擬望。"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8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영조 47년 (1771) 5월 21일
영조실록116권, 영조 47년 5월 21일 신유 1/4 기사 / 1771년 청 건륭(乾隆) 36년
변무에 관한일을 김치인 등과 의논하다
국역
임금이 숭정전(崇政殿)에 나가니 여러 신하들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몇 년에 변무(辨誣)하였는지는 이미 정사(正史)에 기재되어 있으니, 비록 꿈속에서라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좌의정은 변무할 것이 못된다고 말하였는데, 밤에 누워서 다시 생각하여 보니 이 책을 우주(宇宙)에 하루 동안 머물러 있게 하면 하루 동안 불효(不孝)하는 것이고, 이틀 동안 머물러 있게 하면 이틀 동안 불효하는 것이다. 경(卿)들은 각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바를 진달하도록 하라."
하매,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말하기를,
"한 차례 진주(陳奏)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하고, 좌의정 한익모(韓翼謨)는 말하기를,
"놀랍고 가슴 아픈 것은 극도에 달하였지만 정사(正史)가 이미 반포되어 사실이 분명하기가 일성(日星)과 같으며, 이것은 피인(彼人)이 개인적으로 기술(記述)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밑천으로 삼으려는 것에 불과하니, 그것이 믿을 것이 못됨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와 같이 지나치게 성심(聖心)에 번민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좌의정의 말은 너무나 느슨하다."
하자, 우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아주 놀랍고 가슴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만 이미 정사(正史)가 아니라면 지금 변무(辨誣)할 단서가 없으며, 사신(使臣)을 보내어 진주하게 한 뒤에 책을 태워버리고 판(板)을 허물어 버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김치인은 말하기를,
"책을 불태우게 하고 판을 허물도록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인(朱璘)의 처벌을 청한 후라야 가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먼저 사 가지고 온 사신을 처벌한 연후라야 피국(彼國)에 대하여 요청할 말이 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여러 비국 당상들이 더러는 책을 불태우고 판을 허물도록 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더러는 주 인의 처벌을 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는데, 한익모는 말하기를,
"비록 책을 불태우게 하고 판을 허물게 하도록 청한다 하더라도 저들의 청답(聽答)은 기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염려가 됩니다."
하고, 부응교 정상인(鄭象仁)은 그 당시의 세 사신을 삭직(削職)하도록 청하고, 지평 송덕기(宋德基)는 아주 먼 변방에 귀양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모두 답을 하지 아니하고 하교하기를,
"아! 두 차례 변무한 뒤에 그 무설(誣說)이 통쾌하게 씻겨 분명하기가 일성(日星)과 같았으니, 이번의 이 책은 진실로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제 이 사건을 듣고 마음과 뼈가 모두 떨렸으며, 그 중의 한 글자는 무자년193) 에 없었던 일이니, 이런 등류의 문자(文字)를 비록 연경(燕京)의 저자거리에서 얻었다 하더라도 감히 단장을 하여 묶어서 두겠는가? 먼저 우리 나라 사신(使臣)을 처벌하고 계속해서 청(淸)나라에 주문(奏聞)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 〈그 책자를〉 얻어 가지고 온 사신을 삭직(削職)하라는 청은 그것이 윤리(倫理)가 없으며, 멀리 귀양을 보내라는 청은 이보다 낫기는 하다. 아! 비록 솔선하여 연경에 달려가 주인(朱璘)의 살점과 가죽을 사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 입시(入侍)한 삼사(三司)의 관원들은 어찌 감히 같은 목소리로 성토하기를 청하지 않는가? 그 당시 사가지고 온 세 사신에게는 빨리 천극(栫棘)하는 법을 시행하게 하고, 입시한 삼사의 관원들은 모두 삭직하도록 하며, 사신의 명칭은 진주사(陳奏使)라고 하라. 아! 선대(先代)를 위하여 마음 아파하는 때에 반전(盤纏)194) 이 웬 말인가? 역관(譯官)의 3분의 1을 줄이도록 하고 상매(商買)와 데리고 가는 팔포(八包)도 일체 엄중히 금지하되 그것을 만약 금지하지 않으면 해당 의주 부윤(義州府尹)과 서장관(書狀官)에게는 중률(重律)을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사신의 복명(復命)을 미리 기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압록강(鴨綠江)을 건넌 연후에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으니, 배표(拜表)195) 하는 날짜를 이달 안으로 택정하여 들이도록 하고, 오늘부터 감선(減膳)·철악(撤樂)하게 하며 박필순(朴弼淳)에게는 특별히 가자(加資)하도록 하라."
하고, 인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명기집략(明紀輯略)》 가운데 찍힌 도서(圖署)를 상고해 보도록 하였는데 바로 서종벽(徐宗璧)이었다. 임금이 승지를 시켜 금상문(金商門)에 나가도록 하여 그 무어(誣語)가 관계된 곳에다 먼저 세초(洗草)하게 한 뒤에 불태우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진주(陳奏)하면 청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다만 이정귀(李廷龜)와 같은 이가 없으니196)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자,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신이 치우치게 국가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국가에 대한 조그마한 공적도 없었으니, 원하건대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서 기필코 청원을 이루고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의정이 떠나기를 청하니 그의 충성은 감동할 만하다. 다만 부사(副使)와 서장관(書狀官)만 의망(擬望)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8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 [註 193] 무자년 : 1588 선조 21년.
- [註 194] 반전(盤纏) : 노자(路資).
- [註 195] 배표(拜表) : 중국 황제에게 보낼 표문(表文)을 다시 살펴보고 봉(峰)하는 일.
- [註 196] 이정귀(李廷龜)와 같은 이가 없으니 : 1598(선조 31년) 명나라 병부 주사(兵部主事) 정응태(丁應泰)가 조선에서 왜병을 끌어들여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조선을 무고(誣告)한 사건이 일어나자 이정귀가 조선국 변무주문(朝鮮國辨誣奏文)을 지어 진주 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응태의 무고임을 밝혀 그를 파직시킨 일.
원문
○辛酉/上御崇政殿, 諸臣入侍。 上曰: "幾年辨誣, 已載正史, 則雖夢寐中, 豈料有此事耶? 左相謂不足辨誣, 夜臥更思, 則此書留置宇宙一日則一日不孝也, 二日則二日不孝也。 卿等各陳所懷焉。" 領議政金致仁曰: "一番陳奏, 似不可已矣。" 左議政韓翼謩曰: "駭痛則極矣, 正史已頒, 昭如日星, 則此不過彼人私自記述, 以爲取利之資, 其不足信明矣。 何如是過煩聖心耶?" 上曰: "左相之言甚緩矣。" 右議政金尙喆曰: "不勝萬萬驚痛, 而旣非正史, 則今無辨誣之端, 遣使陳奏後, 焚書毁板好矣。" 致仁曰: "非但焚書毁板, 必請罪朱璘然後可也。" 上曰: "自此先罪貿來使臣, 然後可以有辭於彼國矣。" 諸備堂或言宜請焚書毁板, 或言宜請朱璘罪, 翼謩曰: "雖請焚書毁版, 彼之聽答, 未可必, 故以是爲慮矣。" 副應敎鄭象仁, 請其時三使臣削職, 持平宋德基, 請極邊遠竄, 上皆不答。 敎曰: " 嗚呼! 兩次辨誣後, 其誣快雪, 昭如日星, 則今者此書, 誠萬萬料表。 昨聞此事, 心骨俱戰, 其中一字, 戊子所無之事, 此等文字, 雖得於燕市, 敢粧䌙以置? 先罪我國使臣, 續當奏聞。 嗚呼! 得來使臣削職之請, 其無倫理, 遠竄之請, 雖勝於此。 嗚呼! 雖不能挺身赴燕, 買來朱璘肉皮, 爲今日入侍三司, 焉敢不齊聲請討? 其時買來三使臣, 亟施栫棘之典, 入侍三司竝削職, 使名曰陳奏。 噫! 爲先痛心之時, 盤纏何云? 譯官三分減一, 商買付包, 一切嚴禁, 其若不禁, 當該灣尹書狀當施重律。 使臣復命, 雖不可預待, 渡江然後可食可寢, 拜表日字, 今月內擇入, 自今日減膳撤樂, 朴弼淳特爲加資。" 仍命諸臣, 考見《輯略》中所印圖署, 卽徐宗璧也。 上使承旨, 出去金商門, 其誣語所系之處, 先洗草後付丙。 上曰: "陳奏則似可得請, 但無如李廷龜者奈何?" 尙喆曰: "臣偏蒙國恩, 莫效涓埃, 願奉使以往, 期於得請而還矣。" 上曰: "右相請行, 其忠可感。 只副使書狀擬望。"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83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원본
영조 47년 (1771)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