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11권, 영조 44년 7월 20일 을사 1/2 기사 / 1768년 청 건륭(乾隆) 33년
오현중 김굉필·정여창의 후손도 널리 찾아 조용하라고 명하다
국역
내국(內局)에서 입시(入侍)하였다. 명하여 제조 한광회(韓光會)의 체임(遞任)을 허락하고, 홍낙성(洪樂性)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전 교리 이헌묵(李憲默)을 특별히 제수하여 승지로 삼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현(五賢) 가운데 문순(文純)243) 의 후손 이세택(李世澤)은 이미 하대부(下大夫)에 이르렀고, 문원(文元)244) 의 후손 이헌묵(李憲默)은 이제 승자(陞資)하였으며, 문정(文正)245) 의 후손도 이미 녹용(錄用)되었는데,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의 후손은 조정에 있는 자가 없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곧 널리 물어서 봉사(奉祀)하는 사람을 조용(調用)하게 하라."
하였다.
원문
영조 44년 (1768) 7월 20일
영조실록111권, 영조 44년 7월 20일 을사 1/2 기사 / 1768년 청 건륭(乾隆) 33년
오현중 김굉필·정여창의 후손도 널리 찾아 조용하라고 명하다
국역
내국(內局)에서 입시(入侍)하였다. 명하여 제조 한광회(韓光會)의 체임(遞任)을 허락하고, 홍낙성(洪樂性)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전 교리 이헌묵(李憲默)을 특별히 제수하여 승지로 삼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현(五賢) 가운데 문순(文純)243) 의 후손 이세택(李世澤)은 이미 하대부(下大夫)에 이르렀고, 문원(文元)244) 의 후손 이헌묵(李憲默)은 이제 승자(陞資)하였으며, 문정(文正)245) 의 후손도 이미 녹용(錄用)되었는데,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의 후손은 조정에 있는 자가 없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곧 널리 물어서 봉사(奉祀)하는 사람을 조용(調用)하게 하라."
하였다.
원문
원본
영조 44년 (1768)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