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3권, 영조 40년 6월 14일 갑오 2/3 기사 / 1764년 청 건륭(乾隆) 29년
고려 시중 윤관과 고 상신 심지원의 묘에 사제를 명하다
국역
고려 시중(高麗侍中) 윤관(尹瓘)과 고 상신(相臣) 심지원(沈之源)의 묘에 사제(賜祭)를 명하였다. 당초에 윤관·심지원의 묘가 파주(坡州)에 있었는데, 윤씨가 먼저 입장(入葬)하였으나 해가 오래되어 실전(失傳)하니 심씨가 그 외손으로서 그 산을 점령하고 묘를 썼었다. 이때에 이르러 윤씨 집 자손들이 산 아래에서 비석 조각을 습득하여 심씨 집 자손과 쟁송(爭訟)하여 끝이 나지 않자, 임금이 양쪽을 모두 만유(挽留)하여 다툼을 금하게 하고 각기 그 묘를 수호하여 서로 침범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윤관은 전조(前朝)의 명상(名相)이고 심지원은 아조(我朝)의 명상이라 하여 똑같이 치제(致祭)한 것이다.
원문
영조실록103권, 영조 40년 6월 14일 갑오 2/3 기사 / 1764년 청 건륭(乾隆) 29년
고려 시중 윤관과 고 상신 심지원의 묘에 사제를 명하다
국역
고려 시중(高麗侍中) 윤관(尹瓘)과 고 상신(相臣) 심지원(沈之源)의 묘에 사제(賜祭)를 명하였다. 당초에 윤관·심지원의 묘가 파주(坡州)에 있었는데, 윤씨가 먼저 입장(入葬)하였으나 해가 오래되어 실전(失傳)하니 심씨가 그 외손으로서 그 산을 점령하고 묘를 썼었다. 이때에 이르러 윤씨 집 자손들이 산 아래에서 비석 조각을 습득하여 심씨 집 자손과 쟁송(爭訟)하여 끝이 나지 않자, 임금이 양쪽을 모두 만유(挽留)하여 다툼을 금하게 하고 각기 그 묘를 수호하여 서로 침범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윤관은 전조(前朝)의 명상(名相)이고 심지원은 아조(我朝)의 명상이라 하여 똑같이 치제(致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