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92권, 영조 34년 8월 30일 계미 1/4 기사 /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함인정에서 향을 친히 전하다. 춘방관을 모두 파직하자 왕세자가 석고 대죄하다
국역
임금이 함인정(涵仁亭)에 나아가 친히 향(香)을 전하고, 걸어서 효소전(孝昭殿)의 행각(行閣) 바깥에 이르러 땅에 부복(俯伏)한 채 통곡하였다. 춘방관(春坊官)을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고 돌아와서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갔다. 임금이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여 《자성편(自省編)》을 가지고 들어오게 하여, 임금이 내편(內篇)을 읽었다. 영부사(領府事) 이종성(李宗城)이 입시(入侍)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 평상시에 스스로 마음을 다짐하시는 것이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더 하시는데, 근래에는 정도에 지나치는 점이 많이 있으시니, 신은 걱정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성인(聖人)이 우환(憂患)에 대처하고 변란(變難)에 대처하는 방도에는 스스로 법도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은 오로지 나더러 나쁘다고 하는 것인가?"
하였다. 이종성이 말하기를,
"신 등이 전하께 우러러 말씀드리는 것은 그 말이 옳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동궁께 학업에 힘쓰도록 아뢰는 것도 또한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면서 좌상에게 이르기를,
"경이 이 사람과 함께 동궁을 진견(進見)하는 것이 좋겠다. 동궁이 지금부터 시작하여 열흘 동안에 세 번 강연(講筵)을 하고, 공사(公事)를 가지고 입대(入對)하는 따위의 일들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는다면, 나도 마땅히 다시 강연과 차대(次對)를 행할 것이다."
하고, 임금이 하교하기를,
"내가 이미 전정(殿庭)에서 신령께 계달(啓達)하였으니, 장서를 불사르기 전이라고 하여 어찌 이러한 마음을 돌이키겠는가? 그러나 다만 강학(講學)하기를 추모할 뿐이므로, 어찌 차마 강연을 그대로 중지시키겠는가? 지금 국사(國事)를 돌아보건대, 차대를 모두 빠뜨린다면, 그것이 민사(民事)의 처리에 있어서 폐단이 끝이 없다고 이를 만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전정에서 신령께 주달하고 대신들에게 유시(諭示)하였으니, 마땅히 열흘 동안 동궁의 태도를 보고서, 강학과 차대에 대하여 융통성이 있는 방도를 강구하겠다."
하고, 또 임금이 하교하기를,
"신하들은 그 형묵(刑墨)258) 을 바로잡지 아니하는데, 아! 지금의 사건이 어찌 여러 신하들의 잘못이겠는가? 그러나 그 직책이 춘방(春坊) 요속(僚屬)의 자리에 있으나, 아직 그들이 면관(免冠)하고 집영문(集英門) 밖에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서 대죄(待罪)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나라가 망한다고 이를 만하다. 근일에 입직(入直)한 춘방 관리들에게 내가 이미 전정(殿庭)에 주달하고 모두 영원히 서용(敍用)하지 아니하는 형률을 시행하였다."
하였다. 왕제자가 시민당(時敏堂) 북정(北庭)에서 석고 대죄(席藁待罪)하였다. 석강(夕講)할 때 여러 승지들이 공사(公事)를 가지고 입대(入對)하니, 승지 원인손(元仁孫)과 윤동승(尹東昇)이 석고 대죄한 사유를 가지고 대조(大朝)께 앙주(仰奏)하자고 청하니, 하령(下令)하기를,
"즉시 아뢰지 말도록 하라."
하니, 승지와 대신들이 다시 차가운 곳에서 밤을 새우면, 예후(睿候)를 상하게 할 것이므로, 마땅히 즉시 대조께 품주(稟奏)해야 한다고 하니, 하령하기를,
"이해 관계를 따져 비교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또한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지나치게 서로 버틸 것이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97면
- [註 258] 형묵(刑墨) : 죄인을 형벌함.
원문
○癸未/上御涵仁亭, 親傳香, 步詣孝昭殿行閣外, 俯伏痛哭。 春坊官幷命罷職, 還御明政殿。 命儒臣, 持入《自省編》, 上讀內篇。 領府事李宗城入侍曰: "殿下平日自期, 必在堯、舜之上, 近日下敎, 多有過中處, 臣不勝憂歎。 聖人之處憂患處變難之道, 自有法矣。" 上曰: "卿獨以予爲非乎?" 宗城曰: "臣等仰達於殿下者, 其言如是矣。 陳勉於東宮者, 亦有說矣。" 上笑謂左相曰: "卿與之進見於東宮可也。 東宮自今爲始, 限十日三講, 持公事入對等事, 一無闕焉, 則予當復行講對矣。" 敎曰: "旣達于殿庭, 未燎之前, 何回此心? 而但追慕講學, 何忍仍止? 顧今國事, 次對俱闕, 其於民事, 可謂罔涯, 涕達于殿庭, 諭大臣, 當觀十日, 於講學次對, 有闊狹之道。" 又敎曰: "臣下不匡其刑墨, 噫! 于今之事, 豈諸臣之過? 然職在春坊僚屬, 罔聞免冠泥首集英門之擧, 可謂亡矣。 近日入直春坊, 旣達于殿, 幷施永不敍用之律。" 王世子席藁時敏堂北庭。 夕講, 諸承旨持公事入對, 承旨元仁孫、尹東昇請以席藁之由仰奏大朝。 令曰: "勿令卽奏。" 承旨、大臣復以徹宵露處, 睿候有傷, 宜卽稟奏大朝, 令曰: "非計較利害之意。 而亦有思量者, 不必過爲相持。"
-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97면
영조실록92권, 영조 34년 8월 30일 계미 1/4 기사 /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함인정에서 향을 친히 전하다. 춘방관을 모두 파직하자 왕세자가 석고 대죄하다
국역
임금이 함인정(涵仁亭)에 나아가 친히 향(香)을 전하고, 걸어서 효소전(孝昭殿)의 행각(行閣) 바깥에 이르러 땅에 부복(俯伏)한 채 통곡하였다. 춘방관(春坊官)을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고 돌아와서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갔다. 임금이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여 《자성편(自省編)》을 가지고 들어오게 하여, 임금이 내편(內篇)을 읽었다. 영부사(領府事) 이종성(李宗城)이 입시(入侍)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 평상시에 스스로 마음을 다짐하시는 것이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더 하시는데, 근래에는 정도에 지나치는 점이 많이 있으시니, 신은 걱정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성인(聖人)이 우환(憂患)에 대처하고 변란(變難)에 대처하는 방도에는 스스로 법도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은 오로지 나더러 나쁘다고 하는 것인가?"
하였다. 이종성이 말하기를,
"신 등이 전하께 우러러 말씀드리는 것은 그 말이 옳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동궁께 학업에 힘쓰도록 아뢰는 것도 또한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면서 좌상에게 이르기를,
"경이 이 사람과 함께 동궁을 진견(進見)하는 것이 좋겠다. 동궁이 지금부터 시작하여 열흘 동안에 세 번 강연(講筵)을 하고, 공사(公事)를 가지고 입대(入對)하는 따위의 일들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는다면, 나도 마땅히 다시 강연과 차대(次對)를 행할 것이다."
하고, 임금이 하교하기를,
"내가 이미 전정(殿庭)에서 신령께 계달(啓達)하였으니, 장서를 불사르기 전이라고 하여 어찌 이러한 마음을 돌이키겠는가? 그러나 다만 강학(講學)하기를 추모할 뿐이므로, 어찌 차마 강연을 그대로 중지시키겠는가? 지금 국사(國事)를 돌아보건대, 차대를 모두 빠뜨린다면, 그것이 민사(民事)의 처리에 있어서 폐단이 끝이 없다고 이를 만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전정에서 신령께 주달하고 대신들에게 유시(諭示)하였으니, 마땅히 열흘 동안 동궁의 태도를 보고서, 강학과 차대에 대하여 융통성이 있는 방도를 강구하겠다."
하고, 또 임금이 하교하기를,
"신하들은 그 형묵(刑墨)258) 을 바로잡지 아니하는데, 아! 지금의 사건이 어찌 여러 신하들의 잘못이겠는가? 그러나 그 직책이 춘방(春坊) 요속(僚屬)의 자리에 있으나, 아직 그들이 면관(免冠)하고 집영문(集英門) 밖에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서 대죄(待罪)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나라가 망한다고 이를 만하다. 근일에 입직(入直)한 춘방 관리들에게 내가 이미 전정(殿庭)에 주달하고 모두 영원히 서용(敍用)하지 아니하는 형률을 시행하였다."
하였다. 왕제자가 시민당(時敏堂) 북정(北庭)에서 석고 대죄(席藁待罪)하였다. 석강(夕講)할 때 여러 승지들이 공사(公事)를 가지고 입대(入對)하니, 승지 원인손(元仁孫)과 윤동승(尹東昇)이 석고 대죄한 사유를 가지고 대조(大朝)께 앙주(仰奏)하자고 청하니, 하령(下令)하기를,
"즉시 아뢰지 말도록 하라."
하니, 승지와 대신들이 다시 차가운 곳에서 밤을 새우면, 예후(睿候)를 상하게 할 것이므로, 마땅히 즉시 대조께 품주(稟奏)해야 한다고 하니, 하령하기를,
"이해 관계를 따져 비교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또한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지나치게 서로 버틸 것이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97면
- [註 258] 형묵(刑墨) : 죄인을 형벌함.
원문
○癸未/上御涵仁亭, 親傳香, 步詣孝昭殿行閣外, 俯伏痛哭。 春坊官幷命罷職, 還御明政殿。 命儒臣, 持入《自省編》, 上讀內篇。 領府事李宗城入侍曰: "殿下平日自期, 必在堯、舜之上, 近日下敎, 多有過中處, 臣不勝憂歎。 聖人之處憂患處變難之道, 自有法矣。" 上曰: "卿獨以予爲非乎?" 宗城曰: "臣等仰達於殿下者, 其言如是矣。 陳勉於東宮者, 亦有說矣。" 上笑謂左相曰: "卿與之進見於東宮可也。 東宮自今爲始, 限十日三講, 持公事入對等事, 一無闕焉, 則予當復行講對矣。" 敎曰: "旣達于殿庭, 未燎之前, 何回此心? 而但追慕講學, 何忍仍止? 顧今國事, 次對俱闕, 其於民事, 可謂罔涯, 涕達于殿庭, 諭大臣, 當觀十日, 於講學次對, 有闊狹之道。" 又敎曰: "臣下不匡其刑墨, 噫! 于今之事, 豈諸臣之過? 然職在春坊僚屬, 罔聞免冠泥首集英門之擧, 可謂亡矣。 近日入直春坊, 旣達于殿, 幷施永不敍用之律。" 王世子席藁時敏堂北庭。 夕講, 諸承旨持公事入對, 承旨元仁孫、尹東昇請以席藁之由仰奏大朝。 令曰: "勿令卽奏。" 承旨、大臣復以徹宵露處, 睿候有傷, 宜卽稟奏大朝, 令曰: "非計較利害之意。 而亦有思量者, 不必過爲相持。"
-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6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