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84권, 영조 31년 5월 25일 무술 2/7 기사 / 1755년 청 건륭(乾隆) 20년
유수원과 김성이 복주되다. 유수원·김성의 공초
국역
유수원(柳壽垣)과 김성(金渻)이 복주되었다. 유수원에게 묻기를,
"너 역시 하나의 신하인데 무슨 마음을 두어 역적 유봉휘의 지휘를 받아 방자하게 소장을 베꼈느냐? 그 마음을 따져 보면 이미 무상한 데에 관계되고, 역적 신치운·박사집과 함께 역적 김일경과 같은 음참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쌓아서 난만하게 주무한 정상이 역적 박사집의 초사에서 남김없이 탄로되었다. 너는 몸이 반열에 있으면서 역적 김일경을 조술(祖述)하였으니, 절절이 통분하고 놀랍다."
하고, 마침내 형신하니, 유수원이 승복하여 공초하기를,
"신은 신치운·박사집과 친밀하게 사귀어 침체된 바가 신치운과 다름이 없게 되었는데, 이는 오로지 조제(調劑)한 소치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는 성상을 비방하고 아래로는 조제한 여러 신하를 욕하여 몰래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을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매양 서로 만날 때마다 흉언과 패설을 많이 하기를 김일경과 박필몽처럼 하였고, 때로는 혹 김일경과 박필몽보다 더 하였는데 신도 거기에 난만하게 수작하여 참여했습니다. 대개 신은 여러 역적 가운데 비단 흉적을 알 뿐만 아니라 이는 실로 당준(黨峻)의 마음에서 말미암아 나라를 원망하기에 이르렀으며,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에서 항상 헤아리기 어려운 패설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고, 대역 부도로 지만(遲晩)하여 정형하고, 법대로 노적(孥籍)하였다. 김성(金渻)은 김호(金浩)의 사촌 아우로 역시 박사집이 고한 자인데, 형신하니 김성이 공초하기를,
"신치운과는 친족의 분의(分誼)가 있고, 또 철원의 원[倅] 을지냈기 때문에 친숙하게 되었으며, 박사집은 평생의 동접(同接)입니다. 신이 일찍이 신치운과 박사집이 앉아 있는 자리에 갔는데, 그들이 무슨 글인가를 보다가 신을 보고는 감추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역모의 일이어서 신이 묻기를, ‘너희들이 보던 글이 어떤 글인가? 생각건대, 이는 괴이한 글인 듯한데 내가 비록 보더라도 어찌 사람들에게 말하겠는가?’라고 하니, 신치운은 좋은 벼슬을 얻지 못해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하였고, 박사집 역시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항상 거리낌이 없이 방자하였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박사집이 말하기를, ‘내가 다시 무신년195) 역적 박필현(朴弼顯)의 일을 하고자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지금은 형세가 무신년과 다른데 장차 어떻게 하려는가?’라고 하니, 박사집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나 다만 도모해야 마땅하다.’ 하고, 인하여 심유현(沈維賢)을 위하는 흉악한 말을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심유현은 이미 위를 무함한 부도(不道)로써 자복하였는데, 네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비록 그러하나 나 역시 마땅히 함께 들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모역으로 지만하였다. 하교하기를,
"죄인 김성은 역적 신치운·박사집과 함께 무신년의 음참하고 부도한 말을 난만하게 수작하였음을 낱낱이 지만하였으니, 역적 이전(李佺)의 예에 의하여 병조 판서로 하여금 수구문(水口門) 밖에서 먼저 효시하고, 사지를 가른 후 모두 강원 감영으로 보내어 10일 동안 현수(懸首)하고 도내에 회시(回示)하게 하고, 해부로 하여금 대역의 율을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2면
- [註 195] 무신년 : 1728 영조 4년.
원문
○柳壽垣、金渻伏誅。 問壽垣: "以汝亦一臣子, 有何心腸, 受逆輝之指揮, 放恣寫疏? 究其心已涉無狀, 而與逆賊致雲、師緝, 共蓄逆鏡陰慘叵測之心, 瀾漫綢繆之狀, 逆緝之招綻露無餘。 汝身爲從班, 祖述逆鏡, 節節痛駭。" 遂刑訊, 壽垣承服招: "臣與致雲、師緝交結親密, 其所沈滯, 與致雲無異者, 此專由於調劑之致。 故上而訕上, 下而辱調劑諸臣, 陰蓄怨國之心。 每與相對時, 多發凶言悖說, 如鏡、夢之爲, 時或有加於鏡、夢, 而臣輒與之瀾漫酬酢。 蓋臣於諸賊, 非徒不以凶賊知之, 此實由於黨峻之心, 至於怨國, 以怨國之心, 至於常道罔測之悖說。" 大逆不道遲晩, 正刑, 孥籍如法。 渻, 浩從弟, 亦以師緝所告, 刑訊, 渻洪: "致雲有族誼, 且經鐵原倅, 故與之親熟, 師緝則平生同接矣。 臣曾往致雲、師緝座上, 則渠輩有所看之文, 而見臣匿之。 此必是謀逆之事, 臣問, ‘汝輩所看何文? 想是怪異之文, 吾雖見之, 豈言於人乎?’ 云矣, 致雲以不得好官, 有怨國之言, 師緝亦有怨國之心, 常指天劃地。 臣問其故, 師緝以爲, ‘吾欲復爲戊申顯賊之事。’ 臣問 ‘今則形勢異於戊申, 將奈何?’ 師緝曰, ‘雖如此, 第當圖之,’ 仍爲維賢之凶言。 臣曰, ‘維賢旣以誣上不道自服, 汝何爲此言? 雖然吾亦當同入’ 云。" 謀逆遲晩。 敎曰: "罪人渻, 與逆賊致雲、師緝, 戊申陰慘不道之說, 爛漫酬酢, 箇箇遲晩, 依逆佺例, 令兵判水口門外先梟示, 肢解後, 幷下送江原監營, 懸首十日, 道內回示, 令該府施以大逆律。"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2면
영조실록84권, 영조 31년 5월 25일 무술 2/7 기사 / 1755년 청 건륭(乾隆) 20년
유수원과 김성이 복주되다. 유수원·김성의 공초
국역
유수원(柳壽垣)과 김성(金渻)이 복주되었다. 유수원에게 묻기를,
"너 역시 하나의 신하인데 무슨 마음을 두어 역적 유봉휘의 지휘를 받아 방자하게 소장을 베꼈느냐? 그 마음을 따져 보면 이미 무상한 데에 관계되고, 역적 신치운·박사집과 함께 역적 김일경과 같은 음참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쌓아서 난만하게 주무한 정상이 역적 박사집의 초사에서 남김없이 탄로되었다. 너는 몸이 반열에 있으면서 역적 김일경을 조술(祖述)하였으니, 절절이 통분하고 놀랍다."
하고, 마침내 형신하니, 유수원이 승복하여 공초하기를,
"신은 신치운·박사집과 친밀하게 사귀어 침체된 바가 신치운과 다름이 없게 되었는데, 이는 오로지 조제(調劑)한 소치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는 성상을 비방하고 아래로는 조제한 여러 신하를 욕하여 몰래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을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매양 서로 만날 때마다 흉언과 패설을 많이 하기를 김일경과 박필몽처럼 하였고, 때로는 혹 김일경과 박필몽보다 더 하였는데 신도 거기에 난만하게 수작하여 참여했습니다. 대개 신은 여러 역적 가운데 비단 흉적을 알 뿐만 아니라 이는 실로 당준(黨峻)의 마음에서 말미암아 나라를 원망하기에 이르렀으며,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에서 항상 헤아리기 어려운 패설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고, 대역 부도로 지만(遲晩)하여 정형하고, 법대로 노적(孥籍)하였다. 김성(金渻)은 김호(金浩)의 사촌 아우로 역시 박사집이 고한 자인데, 형신하니 김성이 공초하기를,
"신치운과는 친족의 분의(分誼)가 있고, 또 철원의 원[倅] 을지냈기 때문에 친숙하게 되었으며, 박사집은 평생의 동접(同接)입니다. 신이 일찍이 신치운과 박사집이 앉아 있는 자리에 갔는데, 그들이 무슨 글인가를 보다가 신을 보고는 감추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역모의 일이어서 신이 묻기를, ‘너희들이 보던 글이 어떤 글인가? 생각건대, 이는 괴이한 글인 듯한데 내가 비록 보더라도 어찌 사람들에게 말하겠는가?’라고 하니, 신치운은 좋은 벼슬을 얻지 못해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하였고, 박사집 역시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항상 거리낌이 없이 방자하였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박사집이 말하기를, ‘내가 다시 무신년195) 역적 박필현(朴弼顯)의 일을 하고자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지금은 형세가 무신년과 다른데 장차 어떻게 하려는가?’라고 하니, 박사집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나 다만 도모해야 마땅하다.’ 하고, 인하여 심유현(沈維賢)을 위하는 흉악한 말을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심유현은 이미 위를 무함한 부도(不道)로써 자복하였는데, 네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비록 그러하나 나 역시 마땅히 함께 들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모역으로 지만하였다. 하교하기를,
"죄인 김성은 역적 신치운·박사집과 함께 무신년의 음참하고 부도한 말을 난만하게 수작하였음을 낱낱이 지만하였으니, 역적 이전(李佺)의 예에 의하여 병조 판서로 하여금 수구문(水口門) 밖에서 먼저 효시하고, 사지를 가른 후 모두 강원 감영으로 보내어 10일 동안 현수(懸首)하고 도내에 회시(回示)하게 하고, 해부로 하여금 대역의 율을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2면
- [註 195] 무신년 : 1728 영조 4년.
원문
○柳壽垣、金渻伏誅。 問壽垣: "以汝亦一臣子, 有何心腸, 受逆輝之指揮, 放恣寫疏? 究其心已涉無狀, 而與逆賊致雲、師緝, 共蓄逆鏡陰慘叵測之心, 瀾漫綢繆之狀, 逆緝之招綻露無餘。 汝身爲從班, 祖述逆鏡, 節節痛駭。" 遂刑訊, 壽垣承服招: "臣與致雲、師緝交結親密, 其所沈滯, 與致雲無異者, 此專由於調劑之致。 故上而訕上, 下而辱調劑諸臣, 陰蓄怨國之心。 每與相對時, 多發凶言悖說, 如鏡、夢之爲, 時或有加於鏡、夢, 而臣輒與之瀾漫酬酢。 蓋臣於諸賊, 非徒不以凶賊知之, 此實由於黨峻之心, 至於怨國, 以怨國之心, 至於常道罔測之悖說。" 大逆不道遲晩, 正刑, 孥籍如法。 渻, 浩從弟, 亦以師緝所告, 刑訊, 渻洪: "致雲有族誼, 且經鐵原倅, 故與之親熟, 師緝則平生同接矣。 臣曾往致雲、師緝座上, 則渠輩有所看之文, 而見臣匿之。 此必是謀逆之事, 臣問, ‘汝輩所看何文? 想是怪異之文, 吾雖見之, 豈言於人乎?’ 云矣, 致雲以不得好官, 有怨國之言, 師緝亦有怨國之心, 常指天劃地。 臣問其故, 師緝以爲, ‘吾欲復爲戊申顯賊之事。’ 臣問 ‘今則形勢異於戊申, 將奈何?’ 師緝曰, ‘雖如此, 第當圖之,’ 仍爲維賢之凶言。 臣曰, ‘維賢旣以誣上不道自服, 汝何爲此言? 雖然吾亦當同入’ 云。" 謀逆遲晩。 敎曰: "罪人渻, 與逆賊致雲、師緝, 戊申陰慘不道之說, 爛漫酬酢, 箇箇遲晩, 依逆佺例, 令兵判水口門外先梟示, 肢解後, 幷下送江原監營, 懸首十日, 道內回示, 令該府施以大逆律。"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