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78권, 영조 28년 12월 19일 을사 1/3 기사 / 1752년 청 건륭(乾隆) 17년
우의정 김상로와 제조 박문수가 동궁의 효성이 지극함을 아뢰다
국역
임금이 약방의 대신과 비국 당상을 소견하였다. 우의정 김상로가 말하기를,
"동궁이 창의궁으로 갈 때에 의장을 갖추지 않고 부어교(鮒魚橋)에서 여(輿)를 물리치고 도보로 갔으니, 변에 대처하는 절차를 극진하게 하였습니다."
하자, 제조 박문수가 말하기를,
"돈화문 밖에서 거적자리를 깔고 엎드려 대죄하였으며, 경명문(景明門) 밖에서는 장막을 모두 철거하고 추운 데에 앉아 음식을 들지 않고 연일 눈물을 흘리면서 경재들을 만날 때마다 선처할 수 있는 계책을 묻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그러하였는가, 동궁이 그랬단 말인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7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원문
영조 28년 (1752) 12월 19일
영조실록78권, 영조 28년 12월 19일 을사 1/3 기사 / 1752년 청 건륭(乾隆) 17년
우의정 김상로와 제조 박문수가 동궁의 효성이 지극함을 아뢰다
국역
임금이 약방의 대신과 비국 당상을 소견하였다. 우의정 김상로가 말하기를,
"동궁이 창의궁으로 갈 때에 의장을 갖추지 않고 부어교(鮒魚橋)에서 여(輿)를 물리치고 도보로 갔으니, 변에 대처하는 절차를 극진하게 하였습니다."
하자, 제조 박문수가 말하기를,
"돈화문 밖에서 거적자리를 깔고 엎드려 대죄하였으며, 경명문(景明門) 밖에서는 장막을 모두 철거하고 추운 데에 앉아 음식을 들지 않고 연일 눈물을 흘리면서 경재들을 만날 때마다 선처할 수 있는 계책을 묻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그러하였는가, 동궁이 그랬단 말인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7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원문
원본
영조 28년 (1752)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