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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69권, 영조 25년 1월 27일 병자 5번째기사 1749년 청 건륭(乾隆) 14년

유신에게 명하여 동궁의 앞에서 《정훈》을 읽게 하고 그 뜻에 대해 말하다

임금이 호조 판서 박문수(朴文秀), 병조 판서 김상로(金尙魯), 좌참찬 원경하(元景夏), 사직 조명리(趙明履)를 불러 이정하는 문서를 얼마나 뽑아내었는가를 묻고, 잇달아 동궁에게 대신의 연명 차자를 가지고 입시하기를 명하였다. 잠시 후 동궁이 나아가 부복하자 임금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여 동궁의 앞에서 《정훈(政訓)》을 읽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정훈》 가운데 ‘아들이 돌아와 아뢴다.[有子歸奏]’라는 말이 있는데, 네가 이것을 보고도 만약 힘쓰지 않는다면 이는 나를 저버리는 것이다. 《정훈》 가운데 여덟 조목은 어느 책에서 나왔느냐?"

하니, 동궁이 대답하기를,

"《중용(中庸)》에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25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56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나에게는 과분하다. 네가 만약 나의 뒤를 잘 잇는다면 25년 동안의 허물을 덮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비록 25년 동안 조금 평안했던 일도 또한 반드시 너로 말미암아 그르치게 될 것이다. ‘근습(近習)을 엄격히 한다.[嚴近習]’는 말에 이르러서는 곧 근습을 온전케 하는 것이니 처음에 예방하지 않아 국법에 빠지게 한다면 비록 그들을 온전토록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엄격히 한다는 것이 날이면 날마다 위엄과 처벌로써 다스린다는 말이 아니다. 감히 우리의 정령(政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곧 엄격히 하는 것이다. ‘분화(紛華)’라는 것은 여색을 가리킨 것이다. 너는 모름지기 날마다 손과 발을 씻고 의관을 정제하여 세 《보감(寶鑑)》을 읽어서 이러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나는 이 책들이 곁에 있을 때에는 감히 기대거나 눕지 못하였다. 이틀밤을 자지 않고 너에게 주기 위해 《정훈》을 지었으니 네가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겠느냐?"

하였다. 승지에게 명하여 영의정 김재로, 좌의정 조현명이 연명으로 올린 차자를 읽게 하였다. 그 차자에 이르기를,

"우리 춘궁 저하(春宮邸下)께서는 어린 나이에 어렵고 큰 임무를 이어받으셨으니 저하께서는 장차 어떻게 대조(大朝)께서 부탁하신 지극한 뜻에 보답하시겠습니까? 신들이 저하를 위해 구구한 근심과 염려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경사스러운 일을 당하여 감히 다섯 조목의 말씀을 올리니 좌우명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저하께서는 큰 뜻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큰 뜻이란 대인(大人)의 뜻입니다. 저하께서는 비록 어린 나이에 계시나 국정을 처결하시니 대인의 일을 실제로 행하고 계십니다. 진실로 어린 사람의 뜻을 버리고 대인의 뜻을 세우지 못하신다면 어떻게 큰 책임을 맡아 대인의 일을 행하시겠습니까? 대인이란 요(堯)·순(舜)·문왕(文王)·무왕(武王)과 같은 분이 바로 그것이니 참으로 ··문왕·무왕의 사업을 행하시려는 뜻을 갖고자 하신다면 ··문왕·무왕과 같은 임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저하께서는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효제란 부모의 마음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기의 자녀가 착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으며, 또 자기의 자녀가 악한 일을 하지 말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습니다. 대조께서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저하께서는 반드시 행하시고, 대조께서 행하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을 저하께서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오로지 대조의 마음에 순종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서 비록 궁중의 하찮은 일이라도 한결같이 모두 여쭈어 행하시고 주무시는 잠자리와 잡수시는 음식을 보살펴 드리거나 용안을 뵙고 하교를 받들 때에 더욱 삼가고 두려워하며 정성과 예의를 다 하십시오.

셋째, 저하께서는 학문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학문이란 ··문왕·무왕의 사업을 배우는 것이니 독서 궁리(讀書窮理)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독서하지 않고 어떻게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온갖 일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를 응대함이 번거롭고 잦다고 하여 중간에 끊지 마시고 하루 두 번의 연석(筵席)을 혹시라도 중지하거나 폐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야흐로 봄날이 되어 낮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전각 끝에 화풍(和風)이 감도니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아니하면 대조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기쁘고 즐거워하시어 근심을 잊으실 것이니 이것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한 방도입니다.

넷째, 저하께서는 완호(玩好)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완호란 진기한 보물, 성악(聲樂), 화초, 새와 짐승이니 무릇 귀와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번 애호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장차 즐겨 갖고 싶은 욕망은 커지고 뜻과 생각은 황폐하게 되어 그 폐해는 단지 공부를 방해하고 정치를 해치는데 그칠 뿐만이 아닙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주지 육림(酒池肉林)과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경궁 요대(瓊宮瑤臺)가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섯째, 저하께서는 근습(近習)을 엄격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근습이란 환관·궁첩(宮妾) 따위가 그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좌우에 있어 허물없이 대하기 쉬우니 저하께서는 모름지기 장중하게 몸가짐을 가지시어 이들 무리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하시고, 청소와 심부름 외에는 감히 털끝만큼도 분수를 넘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 가운데 경망되고 말이 많은 자는 반드시 멀리 내치십시오. 이 일은 나라의 치평(治平)과 혼란에 관계되며 과거의 실패한 자취를 여러 곳에서 상고할 수 있으니 오늘날에 있어서 엄중한 자세로 예방함이 마땅합니다.

이 다섯 가지 조목은 대조께서 태평한 세상을 이루시어 수복(壽福)을 누리시는 것들이므로 신들이 지금 저하께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저하께서 마땅히 이어받을 바가 아니겠습니까? 아! 오로지 공경하면 마음이 방자하여지지 아니하고 오로지 성실하면 일마다 모두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공경은 구용(九容)025) 에서 시작되고 성실은 속이지 않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오직 저하께서는 이를 생각하시고 이를 마음에 두소서."

하였다.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동궁에게 이르기를,

"상신의 차자가 곡진하고 조리가 있으니 너는 승지로 하여금 붓을 들어 비답을 부르는 대로 쓰게 하라. 내가 마땅히 지켜보겠다. 비답의 내용이 비록 능숙하지 않더라도 중외(中外)에서는 반드시 귀하게 여길 것이다."

하니, 동궁이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처녀가 처음 시집갈 때 어찌 부끄러움이 없으리요만, 그래도 배례(拜禮)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예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비답을 불러 쓰게 하는 것이 어찌 처녀가 처음 시집가는 부끄러움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였다. 동궁이 부르는 대로 받아쓰게 하기를,

"차자를 보니 경들의 간절한 뜻이 두루 갖추어 있었다. 뜻밖에 대리 청정의 하교가 계시었으나, 나의 성의가 천박하여 끝내 명을 거두어들이게 하지 못하였으니, 천심(天心)과 정리(情理)에 초조하다. 이 다섯 조목을 어찌 감히 잠시라도 소홀히 하겠는가? 명심하여 잊지 않을 것이다."

하고, 이어서 하령하기를,

"사관(史官)이 가서 유시(諭示)하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한 번 읽고 승정원에 버려 둘 것이겠는가?"

하니, 동궁이 말하기를,

"승정원에서 베껴 낸 뒤에 다시 들이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명심하여 잊지 않겠다.[銘心服膺]’라는 글자는 네 자신이 생각해서 쓴 것이냐, 아니면 다른 데서 보고 쓴 것이냐?"

하니, 동궁이 대답하기를,

"정유년의 기초(記草)를 보고 썼습니다."

하자, 임금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유년에 경묘(景廟)께서 비답을 내리시는 것을 내가 직접 보았는데, 오늘 네가 다시 옮겨 쓰리라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느냐? 일찍이 소설(小說)을 보니, ‘산동(山東)의 부로(父老)들이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즉위조(卽位詔)를 보고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뻐하며 술에 취했다.’는 것을 보고 내가 늘 눈으로 본 듯이 상상하였다. 오늘은 너의 처음 정사인데 어찌 백관을 신칙하고 군민(軍民)을 위안하는 한 마디 말이 없느냐?"

하니, 동궁이 불러서 받아쓰게 하기를,

"오늘 성상의 훈계를 받들어 정사에 참여하였으니 대신과 여러 신하들은 한 마음으로 나라를 도와 소민(小民)에게 털끝만치라도 고통을 주지 말라."

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조정의 신하가 15세된 원량의 ‘한 마음으로 나라를 도우라.’는 말을 보고도 오히려 당습(黨習)을 일삼으며, 수령이 15세된 원량의 ‘털끝만치라도 고통을 주지 말라.’는 신칙을 보고도 오히려 혹시라도 백성을 침해한다면, 우리 동방은 반드시 오랑캐나 짐승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며, 잇달아 유신(儒臣)에게 《자성편(自省編)》을 읽도록 명하고 끝마쳤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28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註 025]
    구용(九容) : 군자(君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올바른 몸가짐.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 "군자의 몸가짐은 한가하고 단아해야 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언행은 삼가하고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걸음은 무게가 있고[足容重], 손놀림은 공손하고[手容恭], 눈은 단정하고[目容端], 입은 조용하고[口容止], 소리는 고요하고[聲容靜], 머리는 곧고[頭容直], 기상(氣像)은 엄숙하고[氣容肅], 서 있는 모양은 덕이 있고[立容德], 얼굴빛은 장엄[色容莊]하여야 한다."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임.

○上召戶曹判書朴文秀, 兵曹判書金尙魯、左參贊元景夏、司直趙明履, 問釐正文書幾何抄出, 仍命東宮持大臣聯名箚入侍。 已而, 東宮進伏, 上命儒臣讀《政訓》於東宮前。 上曰: "《訓》中以 ‘有子歸奏’ 爲言, 汝見此而若不勉焉, 是負予也。 《訓》中八目, 出何書?" 東宮對曰: "在《中庸》。" 上曰: "予之二十五年在位, 及五十六歲之籌, 於予過矣。 汝若善其後, 則可以掩二十五年之過, 如不然, 雖二十五年小康之事, 亦必由汝而誤矣。 至於 ‘嚴近習’ 云者, 乃所以全近習, 初不防閑, 使陷於國法, 則雖欲全之, 得乎? 然嚴者非日日威罰之謂也。 使不敢奸我政令, 卽所以嚴之也。 至若 ‘紛華’ 云者, 指女色也。 汝須日日盥洗、整衣冠、讀三《寶鑑》, 以操此心。 予於此等冊在傍時, 則不敢欹臥耳。 兩夜不寢作《政訓》以貽之, 汝豈敢少忽乎?" 命承旨讀領議政金在魯、左議政趙顯命聯名箚。 其箚以爲:

我春宮邸下, 以沖年承艱大之任, 邸下將何以稱塞大朝付托之至意哉? 臣等竊爲邸下, 不勝區區憂慮之至。 今當蹈忭之餘, 敢以五條之說, 仰備座右之銘焉。 其一, 願邸下立大志焉。 所謂大志者, 大人之志也。 邸下雖在沖年, 聽斷國政, 實行大人之事。 苟不能棄幼志而立大人之志, 則何以任大責而行大人之事也? 大人者, 如是也, 誠有欲爲之志, 則斯可爲也。 其一, 願邸下敦孝悌焉。 所謂孝悌者, 順父母之心之謂也。 父母之心, 莫不欲其子之爲善也, 亦莫不欲其子之不爲不善也。 大朝之所欲爲, 邸下必爲之, 大朝之所不欲爲, 邸下必不爲之。 事無大小, 惟以順大朝之心爲心, 雖宮中微細之事, 一皆咨稟而行之, 問寢、視膳、承顔、奉敎之際, 益兢兢盡誠禮焉。 其一, 願邸下勤學問焉。 所謂學問者, 學爲之事, 而讀書窮理, 以爲修齊治平之本者也。 不讀書, 則何以窮萬理而應萬事哉? 勿以酬應之繁多, 而有所間斷, 一日兩筵, 毋或停廢焉。 方今春陽已舒, 晝漏漸長, 殿角和風, 誦聲洋洋, 則大朝聽之, 必欣然樂而忘憂, 此孝親之一道也。 其一, 願邸下屛玩好焉。 所謂玩好者珍寶、聲樂、花草、禽獸, 凡可以悅耳目者也。 一有愛好之心, 則將使嗜慾長而志慮荒, 其弊不但止於妨工害政而已。 之酒池肉林, 之瓊宮瑤臺, 皆由此出, 可不懼哉。 其一, 願邸下嚴近習焉。 所謂近習者宦官、宮妾之類是也。 朝夕左右, 易於親狎, 邸下必須莊重自持, 使此輩戰兢嚴畏, 灑掃使令之外, 毋敢有毫分踰濫, 而其中輕妄多言語者, 必斥遠之。 事關國家治亂, 前代覆轍, 斑斑可考, 在今日宜有所嚴立防限者也。 是五說者, 大朝所以致太平, 而享壽福者也, 臣等今以奉獻於邸下。 此豈非邸下所當繼述者哉? 嗚呼! 惟敬則心不放, 惟誠則事皆實, 敬從九容始, 誠從不欺始, 惟邸下念玆在玆焉。

讀訖, 上謂東宮曰: "相箚曲盡有條理, 汝令承旨, 操筆呼寫批答。 予當觀焉。 批語雖或未暢, 中外必以爲貴矣。" 東宮久沈思。 上笑曰: "處子於初婚, 豈不抱羞, 而猶不得不拜者, 禮然故也。 呼! 寫批答, 豈不愈於處子初婚之羞耶?" 東宮呼寫曰: "覽箚, 具悉卿懇。 意外有聽政之敎, 余之誠意淺薄, 終不得反汗, 天心情理焦迫。 其五條則豈敢一時忽哉? 當銘心服膺焉。" 仍令曰: "史官往諭。" 上曰: "此豈一覽而棄政院者乎?" 東宮曰: "政院謄出後還入。" 上曰: "銘心服膺字, 汝自思得乎? 抑得之於他乎?" 東宮對曰: "考丁酉記草而得之矣。" 上噓唏曰: "丁酉景廟命批時, 予親見之矣, 豈意今日汝復移用之乎? 嘗見小說曰, ‘山東父老, 見 卽位詔, 歡欣扶醉於楊柳之陰’, 予每想像如見焉。 今日寔汝一初, 豈無一言可以飭百僚慰軍民者乎?" 東宮呼寫曰: "今奉聖訓, 以參政事, 大臣、諸臣一心輔國, 勿使小民, 一毫苦焉。" 上顧諸臣曰: "廷臣見十五歲元良 ‘一心輔國’ 之語, 而猶事黨習, 守令見十五歲元良 ‘勿使一毫苦焉’ 之飭, 而猶或侵民, 則我東方必不免夷狄禽獸之歸矣。" 仍命儒臣, 讀《自省編》而罷。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28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