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48권, 영조 15년 1월 1일 무신 2/2 기사 / 1739년 청 건륭(乾隆) 4년
세수에 기곡(祈穀)하는 예를 정결하게 하라고 봉상 제조 박사정에게 하교하다
국역
임금이 봉상 제조(奉常提調) 박사정(朴帥正)을 불러 하교하기를,
"세수(歲首)에 기곡(祈穀)하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중대한 예(禮)이니, 모든 제물이 정결하도록 힘쓰게 하라."
하니, 박사정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제조가 감독하여 봉진(封進)하는 규례가 없었습니다마는, 신(臣)이 성의(聖意)를 우러러 본받아 삼가 몸소 살피겠습니다."
하였다. 박사정이 이어서 말하기를,
"영월(寧越)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의 후손이 영남(嶺南)에 있다고 하니, 마땅히 찾아서 거두어 써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대개 엄흥도는 장릉(莊陵)002) 이 승하한 때에 혼자 스스로 염습(殮襲)하고 재궁(梓宮)을 갖추어 장사를 지내 준 자였는데, 현종(顯宗) 때에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이를 청하였으나, 있는 곳을 몰라서 드디어 그만두고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박사정이 말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4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609면
- 【분류】농업-권농(勸農)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관리(管理)
- [註 002] 장릉(莊陵) : 단종(端宗)의 능호(陵號).
원문
영조 15년 (1739) 1월 1일
영조실록48권, 영조 15년 1월 1일 무신 2/2 기사 / 1739년 청 건륭(乾隆) 4년
세수에 기곡(祈穀)하는 예를 정결하게 하라고 봉상 제조 박사정에게 하교하다
국역
임금이 봉상 제조(奉常提調) 박사정(朴帥正)을 불러 하교하기를,
"세수(歲首)에 기곡(祈穀)하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중대한 예(禮)이니, 모든 제물이 정결하도록 힘쓰게 하라."
하니, 박사정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제조가 감독하여 봉진(封進)하는 규례가 없었습니다마는, 신(臣)이 성의(聖意)를 우러러 본받아 삼가 몸소 살피겠습니다."
하였다. 박사정이 이어서 말하기를,
"영월(寧越)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의 후손이 영남(嶺南)에 있다고 하니, 마땅히 찾아서 거두어 써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대개 엄흥도는 장릉(莊陵)002) 이 승하한 때에 혼자 스스로 염습(殮襲)하고 재궁(梓宮)을 갖추어 장사를 지내 준 자였는데, 현종(顯宗) 때에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이를 청하였으나, 있는 곳을 몰라서 드디어 그만두고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박사정이 말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4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609면
- 【분류】농업-권농(勸農)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관리(管理)
- [註 002] 장릉(莊陵) : 단종(端宗)의 능호(陵號).
원문
원본
영조 15년 (1739)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