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권, 영조 2년 7월 19일 기유 1/1 기사 / 1726년 청 옹정(雍正) 4년
사헌부에서 좨주 정제두를 논핵하다
국역
사헌부에서 【지평 이정박(李挺樸)이다.】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엇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또 아뢰기를,
"정자(程子)332) 와 주자(朱子)333) 이후에는 도학(道學)이 크게 밝아져 지(知)와 행(行)을 병진(幷進)해야 하는 공부를 마치 수레바퀴나 새의 날개처럼 어느 하나를 폐할 수 없게 되었는데, 육구연(陸九淵)334) 의 돈오설(頓悟說)과 왕수인(王守仁)335) 의 양지론(良知論)은 오도(吾道)336) 와 배치(背馳)되는 것으로서 깊이 세상의 폐해가 되어, 전하여지는 해독과 남아 있는 열기가 지금까지 멎지 않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옛날에는 폐해가 천근(淺近)해서 알아차라기 쉬웠지만 오늘날에는 해독이 깊어서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좨주(祭酒) 정제두(鄭齊斗)는 정주(程朱)337) 의 학문을 완전히 배반하고 육왕(陸王)338) 의 학설을 대강 답습(踏襲)하여, 이에 감히 말하기를, ‘육왕과 정주는 비록 다같이 대도(大道)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지만, 육왕의 학문은 숭례문(崇禮門)과 같고 정주의 학문은 돈의문(敦義門)과 같다.’고 했으니, 이는 대개 육왕을 정도(正道)로 삼고 정주를 방기(旁歧)로 여긴 것입니다. 그는 배우지 않고 무식하여 전연 두뇌(頭腦)에 어두움이 이처럼 심하기에 이미 일찍이 선생(先生) 장자(長者)들에게 배척받던 사람인데, 특히 대가(大家)에 드나들며 조금 스스로 수식(修飾)했기 때문에 차차로 추천(推遷)하여 외람하게도 재상(宰相)의 반열에 올라가 심지어는 사유(師儒)의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니, 일의 해괴하고 우습게 됨이 이보다 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진실로 도학(道學)으로 나아가는 길에 참여시켜 논할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정도(正道)에 어둡고 이교(異敎)를 숭상하는 유들을 만일 엄격하게 제방(隄防)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전하는 폐해가 어찌 혹세 무민(惑世誣民)을 순치(馴致)하게 되지 않기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진실로 세상의 도의(道義)에 있어 소소한 근심거리가 아니니, 청컨대 좨주 정제두를 시급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에 대략 말하기를,
"무릇 일에 있어서 선(善)한 것을 본받는다면 비록 더러 미진하게 되더라도 다 같이 선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선하지 못한 것을 본받게 된다면 그 일이 혹은 아름답게 되어도 똑같이 선하지 못한 데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 고도(高蹈)339) 하는 선비가 산림(山林)에다 이름을 감추고 암혈(巖穴)에서 사는 몸이어서 이미 입조(立朝)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데도, 지난번에 귀양보내기를 청하는 논계(論啓)가 암혈에서 살고 있는 사람까지 언급하게 되었기에 내가 일찍이 세상의 도의를 통탄스럽게 여기며 분개했었다. 이번의 개정하자는 의논이 비록 귀양보내기를 논계한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모욕하고 훼방하는 뜻에 있어서는 똑같은 것이다. 정주(程朱)와 육왕(陸王)의 흑백(黑白) 구분을 세상 사람들이 알기 어렵지 않은 것은 바로 네가 말한 바와 같기는 하다마는, 이미 선왕조(先王朝)로부터 유신(儒臣)에 두었는데도 어찌 한 사람도 말을 하는 자가 없었겠는가? 조가(朝家)에서 사람을 쓸 적에는 현명 여부에 따라서 하지 어찌 세상의 구애(拘礙)를 받겠는가? 지난번에 유신(儒臣)을 초치(招致)했을 적에 좨주의 직명(職名)을 전대로 띠고 있었는데도 마침내 별유(別諭) 내용에 거론(擧論)하지 않아 이미 염박(厭薄)하는 뜻을 알고 있은 것이니, 개정하기를 청하는 것은 오히려 늦었다 하겠다. 심하도다! 세상의 도의여. 그렇다면 과연 동강(桐江)의 지조340) 로 경세 제민(經世濟民)할 학문이 있더라도 장차 펴 볼 때가 없게 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8면
- [註 332] 정자(程子) :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호(程顥)·정이(程頤).
- [註 333] 주자(朱子) : 남송(南宋)의 대유(大儒) 주희(朱熹).
- [註 334] 육구연(陸九淵) : 남송(南宋)의 유학자.
- [註 335] 왕수인(王守仁) : 명(明)나라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
- [註 336] 오도(吾道) : 유교의 도를 이르는 말.
- [註 337] 정주(程朱) : 정자·주자.
- [註 338] 육왕(陸王) : 육구연·왕수인.
- [註 339] 고도(高蹈) : 은거(隱居)함.
- [註 340] 동강(桐江)의 지조 : 동강(桐江)은 중국 부춘현(富春縣)에 있는 동계(桐溪)를 가리킨 것으로, 후한(後漢) 때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간곡한 부름을 물리치고 은퇴해 낚시로 여생을 보낸 일을 말함.
원문
○己酉/憲府【持平(李廷樸) 〔李挺樸〕。】 申前啓, 不允。 又啓曰: "程、朱以後, 道學大明, 知行兩進之工, 有如車輪鳥翼之不可偏廢, 而陸九淵頓悟之說, 王守仁致良知之論, 背馳吾道, 深爲世害, 流毒餘烈, 至今未已, 此所謂昔之害, 近而易知, 今之害, 深而難辨者也。 祭酒鄭齊斗, 全背程、朱之學, 粗襲陸、王之說, 乃敢曰: ‘陸ㆍ王、程ㆍ朱, 雖可謂偕入於大道, 而陸、王之學, 如崇禮門; 程、朱之學, 如敦義門。 此蓋以陸、王爲正道, 程、朱爲旁岐也。 其不學無識, 全昧頭腦, 若是之甚, 已嘗見斥於先生長者也, 特以出入大家, 稍自修飾之故, 節次推遷, 濫躋宰列, 至玷師儒之席, 事之駭笑, 孰甚焉? 彼固不足與論於道學蹊逕, 而如此昧正道尙異敎之類, 若不嚴加隄防, 其流之害, 安保其不爲馴致於感世而誣民乎? 此誠非世道之細憂, 請祭酒鄭齊斗, 亟命改正。" 批略曰: "凡事效善, 則雖或未盡, 同歸於善效; 不善則其事或善, 同歸於不善矣。 噫! 高蹈之士, 藏名山林, 處身巖穴, 旣與立朝者有間, 而向者請竄之啓, 至及於巖穴之人, 予嘗痛慨世道矣。 今玆改正之論, 雖異竄啓, 辱之毁之意則一也。 程ㆍ朱、陸ㆍ王, 其分黑白, 則非世難知, 正如爾言, 旣自先朝, 置諸儒臣, 而豈無一人言者乎? 朝家用人, 隨其賢否, 何拘於世, 而頃者儒臣之招致也, 祭酒職名如舊, 而終不擧論於別諭之中, 已知厭薄之意, 改正之請, 尙云晩矣。 甚矣, 世道也! 然則果有桐江之節, 濟世之學, 將無所施矣。"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8면
영조 2년 (1726) 7월 19일
영조실록10권, 영조 2년 7월 19일 기유 1/1 기사 / 1726년 청 옹정(雍正) 4년
사헌부에서 좨주 정제두를 논핵하다
국역
사헌부에서 【지평 이정박(李挺樸)이다.】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엇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또 아뢰기를,
"정자(程子)332) 와 주자(朱子)333) 이후에는 도학(道學)이 크게 밝아져 지(知)와 행(行)을 병진(幷進)해야 하는 공부를 마치 수레바퀴나 새의 날개처럼 어느 하나를 폐할 수 없게 되었는데, 육구연(陸九淵)334) 의 돈오설(頓悟說)과 왕수인(王守仁)335) 의 양지론(良知論)은 오도(吾道)336) 와 배치(背馳)되는 것으로서 깊이 세상의 폐해가 되어, 전하여지는 해독과 남아 있는 열기가 지금까지 멎지 않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옛날에는 폐해가 천근(淺近)해서 알아차라기 쉬웠지만 오늘날에는 해독이 깊어서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좨주(祭酒) 정제두(鄭齊斗)는 정주(程朱)337) 의 학문을 완전히 배반하고 육왕(陸王)338) 의 학설을 대강 답습(踏襲)하여, 이에 감히 말하기를, ‘육왕과 정주는 비록 다같이 대도(大道)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지만, 육왕의 학문은 숭례문(崇禮門)과 같고 정주의 학문은 돈의문(敦義門)과 같다.’고 했으니, 이는 대개 육왕을 정도(正道)로 삼고 정주를 방기(旁歧)로 여긴 것입니다. 그는 배우지 않고 무식하여 전연 두뇌(頭腦)에 어두움이 이처럼 심하기에 이미 일찍이 선생(先生) 장자(長者)들에게 배척받던 사람인데, 특히 대가(大家)에 드나들며 조금 스스로 수식(修飾)했기 때문에 차차로 추천(推遷)하여 외람하게도 재상(宰相)의 반열에 올라가 심지어는 사유(師儒)의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니, 일의 해괴하고 우습게 됨이 이보다 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진실로 도학(道學)으로 나아가는 길에 참여시켜 논할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정도(正道)에 어둡고 이교(異敎)를 숭상하는 유들을 만일 엄격하게 제방(隄防)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전하는 폐해가 어찌 혹세 무민(惑世誣民)을 순치(馴致)하게 되지 않기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진실로 세상의 도의(道義)에 있어 소소한 근심거리가 아니니, 청컨대 좨주 정제두를 시급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비답에 대략 말하기를,
"무릇 일에 있어서 선(善)한 것을 본받는다면 비록 더러 미진하게 되더라도 다 같이 선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선하지 못한 것을 본받게 된다면 그 일이 혹은 아름답게 되어도 똑같이 선하지 못한 데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 고도(高蹈)339) 하는 선비가 산림(山林)에다 이름을 감추고 암혈(巖穴)에서 사는 몸이어서 이미 입조(立朝)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데도, 지난번에 귀양보내기를 청하는 논계(論啓)가 암혈에서 살고 있는 사람까지 언급하게 되었기에 내가 일찍이 세상의 도의를 통탄스럽게 여기며 분개했었다. 이번의 개정하자는 의논이 비록 귀양보내기를 논계한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모욕하고 훼방하는 뜻에 있어서는 똑같은 것이다. 정주(程朱)와 육왕(陸王)의 흑백(黑白) 구분을 세상 사람들이 알기 어렵지 않은 것은 바로 네가 말한 바와 같기는 하다마는, 이미 선왕조(先王朝)로부터 유신(儒臣)에 두었는데도 어찌 한 사람도 말을 하는 자가 없었겠는가? 조가(朝家)에서 사람을 쓸 적에는 현명 여부에 따라서 하지 어찌 세상의 구애(拘礙)를 받겠는가? 지난번에 유신(儒臣)을 초치(招致)했을 적에 좨주의 직명(職名)을 전대로 띠고 있었는데도 마침내 별유(別諭) 내용에 거론(擧論)하지 않아 이미 염박(厭薄)하는 뜻을 알고 있은 것이니, 개정하기를 청하는 것은 오히려 늦었다 하겠다. 심하도다! 세상의 도의여. 그렇다면 과연 동강(桐江)의 지조340) 로 경세 제민(經世濟民)할 학문이 있더라도 장차 펴 볼 때가 없게 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8면
- [註 332] 정자(程子) :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호(程顥)·정이(程頤).
- [註 333] 주자(朱子) : 남송(南宋)의 대유(大儒) 주희(朱熹).
- [註 334] 육구연(陸九淵) : 남송(南宋)의 유학자.
- [註 335] 왕수인(王守仁) : 명(明)나라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
- [註 336] 오도(吾道) : 유교의 도를 이르는 말.
- [註 337] 정주(程朱) : 정자·주자.
- [註 338] 육왕(陸王) : 육구연·왕수인.
- [註 339] 고도(高蹈) : 은거(隱居)함.
- [註 340] 동강(桐江)의 지조 : 동강(桐江)은 중국 부춘현(富春縣)에 있는 동계(桐溪)를 가리킨 것으로, 후한(後漢) 때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간곡한 부름을 물리치고 은퇴해 낚시로 여생을 보낸 일을 말함.
원문
○己酉/憲府【持平(李廷樸) 〔李挺樸〕。】 申前啓, 不允。 又啓曰: "程、朱以後, 道學大明, 知行兩進之工, 有如車輪鳥翼之不可偏廢, 而陸九淵頓悟之說, 王守仁致良知之論, 背馳吾道, 深爲世害, 流毒餘烈, 至今未已, 此所謂昔之害, 近而易知, 今之害, 深而難辨者也。 祭酒鄭齊斗, 全背程、朱之學, 粗襲陸、王之說, 乃敢曰: ‘陸ㆍ王、程ㆍ朱, 雖可謂偕入於大道, 而陸、王之學, 如崇禮門; 程、朱之學, 如敦義門。 此蓋以陸、王爲正道, 程、朱爲旁岐也。 其不學無識, 全昧頭腦, 若是之甚, 已嘗見斥於先生長者也, 特以出入大家, 稍自修飾之故, 節次推遷, 濫躋宰列, 至玷師儒之席, 事之駭笑, 孰甚焉? 彼固不足與論於道學蹊逕, 而如此昧正道尙異敎之類, 若不嚴加隄防, 其流之害, 安保其不爲馴致於感世而誣民乎? 此誠非世道之細憂, 請祭酒鄭齊斗, 亟命改正。" 批略曰: "凡事效善, 則雖或未盡, 同歸於善效; 不善則其事或善, 同歸於不善矣。 噫! 高蹈之士, 藏名山林, 處身巖穴, 旣與立朝者有間, 而向者請竄之啓, 至及於巖穴之人, 予嘗痛慨世道矣。 今玆改正之論, 雖異竄啓, 辱之毁之意則一也。 程ㆍ朱、陸ㆍ王, 其分黑白, 則非世難知, 正如爾言, 旣自先朝, 置諸儒臣, 而豈無一人言者乎? 朝家用人, 隨其賢否, 何拘於世, 而頃者儒臣之招致也, 祭酒職名如舊, 而終不擧論於別諭之中, 已知厭薄之意, 改正之請, 尙云晩矣。 甚矣, 世道也! 然則果有桐江之節, 濟世之學, 將無所施矣。"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8면
원본
영조 2년 (1726)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