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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7권, 영조 1년 7월 21일 병진 2/7 기사 /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의금부에 친행하여 심정옥 등의 죄를 참작하여 결정하다

국역

이날 임금이 사직단으로부터 회가(回駕)하다가 의금부(義禁府) 앞길에 이르러 의금부에 몸소 가서 옥수(獄囚)을 소석(疏釋)하라는 명을 내리니, 도승지(都承旨) 김취로(金取魯) 등이 나와서 말하기를,

"형살(刑殺)하는 곳에는 마땅히 친히 가실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이에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연(輦)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의금부(義禁府)의 국수(鞫囚) 외에는 다른 죄수는 없습니다. 법가(法駕)1119) 가 환어(還御)하신 뒤에 천천히 유사(有司)로 하여금 조사하게 하여도 될 것인데, 어찌 반드시 친히 보려고 하십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고, 마침내 의금부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의금부 당상관(義禁府堂上官)과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이내 국옥(鞫獄)의 여러 죄수를 참작하여 결정하였는데, 이삼(李森)은 극변(極邊)에 안치(安置)하고, 심정옥(沈廷玉)은 감사(減死)하여 도배(島配)하였으며, 심정신(沈廷紳)은 정배(定配)하고, 목천임(睦天任)은 극변(極邊)에 원찬(遠竄)하였으며, 유경유(柳慶裕)는 도로 배소(配所)로 보내고, 심수관(沈受觀)언례(彦禮)는 놓아 보냈다. 대신과 삼사(三司)에서 강력히 간쟁(諫爭)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심정옥심익창(沈益昌)의 장자(長子)인데, 심익창박상검(朴尙儉)·김일경(金一鏡)과 서로 내통한 일이 죄인 정우관(鄭宇寬)·손형좌(孫荊佐)의 공초(供招)에서 나왔으므로, 심익창은 이미 죽어서 추구(推究)하여 조사할 수가 없는 까닭에 대계(臺啓)로 인하여 국문(鞫問)을 명한 것이다. 심정신심정옥의 아우이고 언례(彦禮)박상검의 물긷는 여종[婢]이다. 이삼(李森)·목천임(睦天任)·윤추상(尹就尙)김일경박상검을 체결(締結)하여 정국(政局)을 바꿀 것을 몰래 도모했는데, 이것이 모두 심정옥의 공초에서 나왔다. 이중환(李重煥)이잠(李潛)의 족손(族孫)인데, 목호룡(睦虎龍)이 그 원훈(元勳)을 양보하였기 때문에 대계(臺啓)로 인하여 잡아다 국문한 것이다. 원일서(元日瑞)원휘(元徽)의 아들이다. 원휘이삼·목천임·윤취상(尹就商)·유경유(柳慶裕)·심수관(沈受觀) 등과 더불어 은화(銀貨)를 모아 박상검에게 뇌물로 바친 형상이 정우관(鄭佑寬)·손형좌(孫荊佐)의 공초에서 나왔으나, 원휘(元徽)는 이미 죽었으므로 원일서(元日瑞)를 문초하지 않으면 추구하여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잡아다 국문하였다. 유경유심수관도 또한 김일경목호룡에게 서로 내통하였으므로 잡아다 국문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심정옥을 문초하니, 심정옥이 공초하기를,

"원휘(元徽)는 신(臣)의 이성(異姓) 재종친(再從親)이고, 김일경(金一鏡)은 신 전모(前母)의 지친(至親)이며, 박상검(朴尙儉)은 신의 집에서 수학(受學)하였고 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신축년1120) 7월 그믐 무렵에 밤이 깊은 뒤에 박상검의 집에서 불빛이 있었고 또 문을 여는 소리가 있었으므로, 다음날 박상검의 집에 물 긷는 여종[婢] 언례(彦禮)에게 물어보니, 언례가 말하기를, ‘아계동(丫溪洞)김 참의(金參議), 원주(原州)원서방(元書房)과 진사(進士) 윤선달(尹先達)이 밤이 깊은데 문득 모였다.’고 하였고, 그 뒤에 박상검에게 물어 보았더니, ‘원휘(元徽)도 자주 와서 모인다.’고 하였는데, 이른바 김 참의는 곧 김일경이고 원 서방은 원일서(元日瑞)이며, 진사는 곧 목천임(睦天任)이고, 윤선달은 곧 윤취상(尹就商)입니다."

하고, 또 공초하기를,

"신축년 9월에 신이 고향에 내려갔다가 동짓달 그믐 무렵에야 비로소 돌아왔으니, 그 사이의 일은 신의 넷째 아우인 심정신(沈廷紳)이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하므로, 이에 심정신언례를 국문(鞫問)하였으나 모두 변명하고 자복(自服)하지 않았다. 다시 심정옥을 추국(推鞫)하니, 공초하기를,

"신이 박상검에게 등불을 밝히고 모였던 일을 물으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원휘·윤취상·목천임·원일서환국(煥局)1121) 을 모의(謀議)하였는데, 환국된 뒤에는 윤취상은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고, 원휘는 평안도 병사(平安道兵使)가 되며, 목천임은 그가 승륙(陞六)1122) 되는 것과 그 조부(祖父)의 관작(官爵)을 회복시키는 일을 도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신이 김일경의 집에 간 것이 6, 7차례나 되는데, 박상검과 같이 간 것은 3차례이고, 김일경박상검의 집에 와서 모인 것은 여러 차례뿐만이 아니었으나, 신이 김일경과 함께 박상검의 집에 와서 모인 것은 여러 차례뿐만이 아니었으나, 신이 김일경과 함께 박상검을 만난 것은 한 차례였고, 김일경이 신의 집으로 찾아 온 것도 또한 한 차례였습니다. 신축년 9월에 신이 박상검과 함께 김일경의 집에 같이 갔을 때에 그곳에 있던 철릭(帖裏)1123) 을 입은 한 무인(武人)이 나갔으므로, 신이 물어 보고 나서 이삼(李森)인 것을 알았습니다. 김일경이 곧 박상검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이름난 무인인데, 나와 더불어 같이 일을 하면 앞날에는 크게 쓰일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신이 원휘의 집에 갔었는데, 이삼이 이미 자리에 있었습니다. 원휘가 신을 가리키면서 이삼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은 곧 나와 〈이성(異姓)으로〉 재종(再從) 간이 되는 심정옥이다.’고 하였고, 다시 이삼을 가리키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충청 병사(忠淸兵使) 이삼(李森)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삼이 신에게 전일 아동(丫洞)에 같이 간 소환(小宦)을 묻기에, 신이 말하기를, ‘박상검이었다.’고 하니, 이삼은 그가 일찍이 알지 못하고 그때에 수작(酬酢)한 것을 한(恨)스러워하였으며, 또 신축년 10월에 밤이 깊은 뒤에 김일경박상검의 집에 와서 신을 맞이하여 이르기를, ‘조금 전에 이삼이 이곳에 와서 그대와 서로 만나 보려고 하다가 그대가 늦게 오는 까닭으로 혹시 이웃집에 발각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곧바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였는데, 대개 승지(承旨) 정필동(鄭必東)의 집이 앞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월에 다시 박상검과 같이 김일경의 집에 갔었는데, 심단(沈檀)이 이미 먼저 자리에 와서 있었습니다. 김일경박상검에게 이르기를, ‘심단은 어찌 정승(政丞)에 합당하지 않는가?’ 하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최석항(崔錫恒)심단이 모두 합당하긴 하나 최석항이 마땅히 먼저 정승이 되어야 하니, 심단은 우선 먼저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김일경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잘 주선(周旋)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신이 신축년 12월 초2일 밤에 박상검의 집에 갔었는데, 인정(人定)1124) 이 된 뒤에 누구인가 문에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추어 박상검을 부르니, 박상검이 신은 남겨둔 채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기에 신이 몰래 가서 엿보았더니, 박상검이 손[客]과 같이 대문(大門)왼쪽 난간 위에 있었는데, 손이 박상검에게 이르기를, ‘그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만약 대장의 직임(職任)을 얻는다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그대의 집 산업(産業)을 힘써 도울 것이다.’라고 하니, 박상검이 웃으면서 손에게 이르기를, ‘비록 구차(久次)1125) 로써 논하더라도 저절로 마땅히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조급하게 서두는가?’ 하니, 손도 또한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급히 공격하여 기회를 잃지 말라[急擊勿失]〉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고 하였습니다. 신은 드디어 들어와 앉았다가 박상검에게 묻기를, ‘손은 누구냐?’고 하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곧 전일에 말한 윤선달(尹先達)이다.’고 하기에 신은 그가 윤취상(尹就商)인 것을 알았으며 이내 수작(酬酌)을 했는데, 윤취상이 갈 때에 ‘누설하지 말라.’고 경계하였고, 박상검도 신의 손을 잡고는 서로가 경계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목천임(睦天任)·이삼(李森)·윤취상(尹就商)을 모두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대개 이삼은 전일에 대계(臺啓)로써 원찬(遠竄)되었고 윤취상도 또한 일찍이 정우관(鄭宇寬)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잠깐 국문(鞫問)하고 곧바로 귀양보냈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잡아와서 마침내 정국(庭鞫)하게 되었다. 윤취상은 4차례의 형신(刑訊)을 받았으나, 끝내 자복(自服)하지 않고 곧 넘어져 죽었다. 이삼을 추국(推鞫)하였으나 이삼이 자복하지 않았으로 심정옥(沈廷玉)과 면질(面質)시켰다. 심정옥이삼을 향하여 말하기를,

"신축년 9월에 내가 박상검과 같이 김일경의 집에 갔을 때에 나는 먼저 들어가고 박상검은 다음에 들어왔는데, 마루에 올라가려 할 때에 네가 나왔으므로 김일경에게 물어 보고는 너인 줄을 알았다. 그날 내가 마침 말을 빌려서 타고 갔기 때문에 박상검은 머물고 있었으나 나는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원휘의 집에 들렸는데, 그때 너는 이미 앉아 있었다."

하니, 이삼심정옥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의 처음 공초(供招)에선 이미 말하기를, ‘처음에는 나를 김일경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다가 뒤에 가서는 나를 원휘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곧 말하기를, ‘김일경의 집에서 돌아올 때에 원휘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니, 어떻게 그 말이 서로 어긋나는가?"

하며 서로가 증거를 대어 변론(辯論)하였으나, 끝내 승부(勝負)가 없었다. 목천임을 국문하였으나, 목천임이 자복하지 않았다. 그때에 목천임이 그의 털로 만든 갖옷을 나장(羅將)인 유복상(兪卜尙)에게 뇌물로 주어서 심정옥으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하고 심정신(沈廷紳)도 또한 심정옥에게 편지를 전하여 변사(變辭)하게 하니, 심정옥이 과연 변사하였는데, 편지로 내통한 일이 발각이 되자 나장(羅將) 유복상(兪卜尙)·김삼봉(金三奉)·김부귀(金富貴)를 모두 형률에 의하여 처벌하였다.

그리고 원일서(元日瑞)를 추국하여 은화(銀貨)를 모아 환첩(宦妾)을 체결(締結)하여 박상검의 집에 모여서 환국(換局)을 모의(謀議)한 일에 대하여 물었으나 원일서는 자복하지 않았고, 유경유(柳慶裕)를 추국하여 은화를 모아 환첩을 체결한 상황을 물었으나 유경유도 또한 자복하지 않았으며, 이중환(李重煥)을 추국하여 목호룡(睦虎龍)이 공훈(功勳)을 양보하는 일로써 이잠(李潛)을 추켜 세워서 자랑한 뜻을 가지고 물었으나 이중환도 또한 자복하지 않았다. 심수관(沈受觀)은 이름 글자가 틀렸다는 이유로써 우선 수금(囚禁)을 명하였는데, 이로부터 추국(推鞫)을 연달아 행하여 목천임은 형신(刑訊)을 받은 것이 2차례나 되었고 심정옥언례(彦禮)는 형신이 4차례나 되었으며, 이중환은 형신이 6차례나 되었고, 원일서는 형신이 5차례나 되었으며, 유경유·이삼·심정신은 다만 엄격히 묻기만 하고 형벌(刑罰)은 가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호두각(虎頭閣)에 나아가 이삼에게 심정옥이 공초한 가운데 김일경·박상검과 체결(締結)했다는 정상(情狀)을 가지고 물으니, 이삼이 공초하기를,

"심정옥(沈廷玉)의 처음에 공초한 것이 면질(面質)할 때와 서로 어긋납니다. 신이 충청 병사(忠淸兵使)로 제수된 것은 바로 신축년 10월에 있었는데, 그의 이른바 ‘9월에 신을 원휘의 집에서 만나서 곧 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충청 병사라」고 하였다.’는 것은 신이 제배(除拜)되기 전에 원휘가 어찌 미리 충청 병사로 지칭하였겠습니까? 박상검의 집에서 서로 만난 일이 국면(局面)을 바꿀 것을 도모하였다면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며, 제가 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면 어찌 신이 있을 때에 저를 부르지 않고 반드시 신이 돌아가기를 기다려 불렀겠습니까?"

하니, 다시 묻기를,

"국휼(國恤)이 났던 처음에 역적 김일경이 진중(陣中)에 돌입(突入)할 때 네가 영기(令旗)1126) 를 가지고 3차례나 들어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이삼이 공초하기를,

"군중(軍中)에 영기가 없으면 진(陣)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규례(規例)입니다. 역적 김일경이 위세(威勢)로써 돌입(突入)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이 그로 하여금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영(令)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장교(將校)가 위세에 겁을 내어 먼저 이미 진문(陣門)을 열어 주어 들어오게 했기 때문에 신이 곧 그 장교를 곤장(棍杖)을 쳐서 태거(汰去)하였습니다. 그 뒤에 김일경이 또 진문(陣門)으로 돌입하려고 하니, 장교 안종국(安宗國)이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다가 끝내는 능히 거절하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안종국을 태거(汰去)시키지 않은 것은 처음에 능히 거절하였기 때문이요, 안종국을 곤장으로 다스린 것은 끝내 능히 거절하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대간(臺諫)에서 말하기를, ‘곧 신이 안종국을 곤장친 것은 처음에 역적 김일경을 거절한 죄라.’고 하였으니, 이는 사실과 어긋납니다."

하였다. 심정옥에게 물어보니, 심정옥이 공초하기를,

"김일경박상검이 모인 일은 손형좌(孫荊佐)가 이를 알고 있는데, 신의 집에서는 서로가 모인 일이 없습니다."

하고, 박상검의 집과 담을 뚫고 서로 통행한 일에 대하여 물으니, 공초하기를,

"이는 박상검의 집이 적몰(籍沒)된 뒤에 그 집에 들어간 자의 소행입니다."

하였다. 언례에게 묻기를,

"김일경박상검의 집에서 모였는가, 심정옥의 집에서 모였는가?"

하니, 언례가 공초하기를,

"심정옥의 집은 동쪽과 서쪽에 두 군데 문이 있는데, 항상 동문(東門)으로 들어와서 모퉁이 방에서 모였습니다. 그런데 밤에 모일 때에는 비록 아무 아무가 모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박상검이 오면 반드시 심정옥의 있고 없는가를 물었으며, 심정옥이 오면 반드시 박상검이 돌아갔는가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박상검의 집에서 모였는가 안 모였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해 모퉁이 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심정옥에게 물으니, 공초하기를,

"모퉁이 방이 있었습니다마는, 어찌 역적 김일경과 서로 모인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심정신(沈廷紳)에게 묻기를,

"요사한 박상검이 환관(宦官)이 된 뒤에 너의 집에 왕래(往來)하였는가?"

하니, 공초하기를,

"박상검이 환관(宦官)이 된 뒤에 왕래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신의 집에 두 군데에 문이 있어서 지름길이 되기 때문에 박상검이 때때로 왕래하였는데, 유독 박상검만이 아니고 다른 환관도 또한 더러 왕래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중환(李重煥)에게 묻기를,

"네가 만약 범(犯)한 바가 없다면 역적 목호룡(睦虎龍)을 무슨 까닭으로 원공(元功)이라 지칭(指稱)하는가? 역적 목호룡의 상소와 목시룡(睦時龍)의 공초(供招)가 아직 있는데 네가 어찌 감히 발명할 수가 있는가?"

하니, 공초하기를,

"정유년1127) 에 신이 설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더라도 임인년1128) 에 이르러서는 원래 상관되지 않는 일입니다. 신이 대계(臺啓)를 만나게 되자 호적(虎賊)1129) 이 갑자기 상소하여 신을 마치 대공(大功)이 있는 것 같이 하였으니 매우 웃을 만한 일이며, 이것은 그가 역마(驛馬)를 도둑질하여 숨긴 자취를 숨기려고 맹랑한 말을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변(告變)을 격동시켜 권유하였다는 말은 진실로 매우 애매(曖昧)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역마(驛馬)의 사건은 어느 해에 있었으며, 이중환(李重限)이 옥에 갇힌 것은 또 어느 해에 있었는가?"

하니, 좌의정 민진원이 말하기를,

"역마의 사건은 정유년에 있었고, 이중환이 옥에 갇힌 것은 계묘년1130) 에 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다시 〈이중환에게〉 묻기를,

"네가 비록 호적(虎賊)에게 상변(上變)하라고 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마는, 이미 이잠(李潛)을 칭찬하고 또 사마소(司馬昭)에 비하는 설(說)이 있었다면 곧 권유하여 성사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약 계묘년에 역마(驛馬)의 사건으로써 미봉(彌縫)하려고 해서 너의 이름을 거론하였다면 그래도 되겠지마는, 임인년에는 역마의 사건이 없었는데도 호적(虎賊)이 ‘네가 상변(上變)을 격동시켜 권하였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공초하기를,

"이는 호적(虎賊)이 구함(構陷)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혹은 유혹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니,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계묘년의 추안(推案)을 취입(取入)하여 이중환의 공사(供辭)를 읽으라고 명하고는 ‘말한 것이 비록 맞지는 않았으나 죽은 것은 또한 슬피 여길 만하다.’는 등의 말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로써 이중환에게 물으라."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맞지 않았다.’ 란 것은 추천하여 칭찬한 말이 아니고, ‘슬피 여길 만하다.’ 란 것은 한집안의 사정(私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다시 묻기를,

"맞지 않았다느니 슬피여길 만하다느니 하는 등의 말은 네가 비록 추천하여 칭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마는, 계묘년에 이르러 이에 말한 ‘단심(丹心)에서 우러나는 충성과 진심(眞心)에서 나오는 정성으로 무릇 상도(常道)를 굳게 잡은 천성(天性)을 가진 자라면 누군들 그 절의(節義)를 칭도(稱道)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은 이는 부도(不道)한 말이니, 넉넉히 단안(斷案)이 될 수가 있다."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조정(朝廷)에서 이미 증직(贈職)하였기 때문에 신은 한집안의 사정(私情)으로써 칭도(稱道)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이잠(李潛)의 일에 수시(隨時)로 칭찬하였다면 목호룡(睦虎龍)을 상변(上變)하도록 격동(激動)시킨 것도 또한 의심이 없는 것이다."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오(過誤)가 된 듯합니다."

하였다. 목천임(睦天任)에게 묻기를,

"심정옥(沈廷玉)의 공초(供招)로써 살펴본다면, 네가 요사한 박상검과 서로 내통한 것은 다시 의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네가 종전에 만약 간범(干犯)한 바가 없다면 어찌하여 옥졸(獄卒)을 유도하고 심정옥을 공동(恐動)하여 그 말을 변경시키기까지 했겠는가?"

하니, 목천임이 공초하기를,

"역적 박상검의 집에 서로 내통하였다는 것은 매우 애매(曖昧)합니다. 심정옥(沈廷玉)·심정신(沈廷紳) 형제(兄弟) 사이에 왕복(往復)한 편지를 신도 또한 여러번 보았으니, 이로써 죄를 삼는다면 비록 죽을지라도 또한 탓할 바가 없으나, 심정옥을 유도하여 그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하였다는 일은 이는 바로 옥졸(獄卒)이 공(功)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이 어찌 유도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원일서(元日瑞)에게 물으니,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정우관(鄭宇寬)의 공초에 이르기를, ‘11월에 박상검을 보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오늘 원병사(元兵使)가 마땅히 심정옥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하였는데, 신의 아비는 10월에 이미 김해 부사(金海府使)가 되어서 부임하고 원래 서울에 있지 않았는데, 어찌 11월에 와서 모일 리가 있겠습니까? 이는 바로 아무까닭도 없이 없는 사실을 꾸며서 무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정옥의 공초에서 ‘신이 밤을 틈타 역적 박상검의 집에 왕래하였다.’고 하였는데, 신은 이때에 상인(喪人)이었으니, 어떻게 최복(衰服)을 입은 몸으로 환관의 집에 왕래하였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벌써 신축년 겨울의 일을 잊었는가?"

하고, 명하여 그때의 문안(文案)을 읽게 하여 그로 하여금 듣게 하고 윤취상(尹就商)이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고 원휘(元徽)가 평안 병사(平安兵使)가 된다는 대목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신축년 겨울의 일은 곧 이 조항(條項)이다."

하였다.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신이 심정옥과 더불어 비록 한번 만나본 교분(交分)은 있으나 족적(足跡)이 그문에 가지 않은 지는 이미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신은 바로 상인(喪人)이었으며, 신의 아비는 병이 있었으니, 어찌 능히 왕래하면서 모의(謀議)를 하였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다시 묻기를,

"너의 아비가 병이 있어서 능히 출입(出入)을 못했다면 어떻게 평안 병영(平安兵營)에 부임하였는가?"

하니,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신의 아비가 신축년 12월에 평안 병사에 임명되어 병(病) 때문에 사직소를 올렸으나 마침내 체직(遞職)되지 못하였고, 곧 임인년 1월에 조령(朝令)에 핍박되어 어쩔 수 없이 부임하였던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원휘(元徽)가 어느 때 죽었는가?"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원휘가 죽은 것은 3월에 선래 군관(先來軍官)이 들어오던 이튿날에 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심수관(沈受觀)이 말하기를,

하니, 민진원(閔鎭遠)이 말하기를,

"심수관은 곧 심중량(沈仲良)의 아들입니다. 당초에 그 이름 글자가 틀렸으므로 그가 여러 죄수(罪囚)들의 공초에서 긴요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려 나문(拿問)하려고 하였던 것이며, 전일에 전하(殿下)께서 우선 내버려 두라는 분부를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던 것이고 여러 죄수들은 이미 모두 하옥(下獄)시킨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하교(下敎)하기를,

"당초에 이중환을 나치(拿致)하여 왔을 때 국청(鞫廳)을 설치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목시룡(睦時龍)에 이르러서는 관계가 매우 중대하여 다른 죄인과는 다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청을 설치한 것이다. 오늘의 일은 대개 가뭄을 근심하여 죄수(罪囚)의 정상(情狀)을 살펴 밝히려 한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지나치게 미치는 근심이 있다면 어찌 불쌍하게 여길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조정이 3백 년 동안 나라를 향유(享有)한 것은 조종조(祖宗朝)에서 인덕(仁德)을 쌓은 소치가 아님이 없다. 요(堯)·순(舜)을 본받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삼(李森)은 전연 석방시킬 수 없으니 아주 먼 변경(邊境)에다 안치(安置)1131) 하고, 심정옥(沈廷玉)은 그 아비를 차마 끌어대지 못하여 박상검의 일을 그가 곧 스스로 담당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불쌍히 여길 만한 일이므로 감사 도배(減死島配)할 것이며, 심정신(沈廷紳)은 그 정절(情節)은 비록 밉지마는 이미 그 형을 죄주었으므로 마땅히 참작하는 도리가 있어야 할 것이니 방송(放送)하게 하고, 목천임(睦天任)은 벼슬을 구하는 마음에서 나왔으니 아주 먼 변경(邊境)으로 정배(定配)하며, 유경유(柳慶裕)는 도로 배소(配所)로 보내고, 심수관언례(彦禮)는 모두 방송(放送)하라."

하였다. 대신(大臣)과 여러 신하들이 경솔하게 먼저 참작하여 처리하는 실수를 강력히 말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민진원이 말하기를,

"심정신이 옥중(獄中)에서 통서(通書)하여 심정옥으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한 죄는 큽니다. 이와 같은 유(類)를 전연 석방한다면 아마 뒷날의 폐단을 방지하기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정배(定配)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하교하기를,

"이삼(李森)·목천임(睦天任)·심정옥(沈廷玉)·심정신(沈廷紳)은 모두 가(枷)1132) 를 풀어 주되, 이삼서간(西間)1133) 으로 이송(移送)시키고, 이중환(李重煥)원일서(元日瑞)는 다시 엄형(嚴刑)으로 실정(實情)을 알아내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이삼은 본래 간사하고 교활한 무부(武夫)로서 경종(景宗) 초년(初年)에 김일경(金一境)·윤취상(尹就商)·남태징(南泰徵)·박찬신(朴纘新) 무리와 더불어 휘적(輝賊)1134) 에게 아첨하고 아부하여 환첩(宦妾)과 체결(締結)해서 국면(局面)을 바꿀 것을 도모하고 동궁(東宮)을 무함하고 핍박하니, 국인(國人)들이 지목(指目)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다. 경종이 승하한 때에 미쳐 이삼이 바야흐로 장임(將任)을 겸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가 군대를 가지고 난(亂)을 일으킬까 의심하였다. 그때에 전(前) 사간(司諫) 이봉익(李鳳翼)이 한통의 소(疏)를 진달하여 미리 간교한 싹을 꺾었으며, 경화(更化)된 후에도 이봉익이 또 간관(諫官)으로서 발계(發啓)하여 비로소 귀양 보내는 명을 얻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또 다시 심정옥의 공초에서 긴급히 나왔으니, 만약 엄하게 구문(究問)하여 조사를 한다면 간사하고 음흉한 정상을 거의 캐어 낼 수 있을 것인데, 잡아 가둔 뒤에 대신(大臣)이 인피(引避)하여 들어감으로 인하여 국좌(鞫坐)가 지연(遲延)되었다. 마침 가뭄을 근심하여 죄수의 정상(情狀)을 살펴 밝히는 날을 만나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참작해서 처리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심정옥·목천임의 무리가 모두 이삼을 힘입어 면죄를 얻게 되었으니, 아! 탄주어(呑舟魚)1135) 의 법도 또한 낮추었다 높였다 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한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9면
  • [註 1119] 법가(法駕) : 임금이 거동할 때에 타던 수레의 한 가지.
  • [註 1120]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1121] 환국(煥局) : 정국(政局)을 바꿈.
  • [註 1122] 승륙(陞六) : 7품 이하의 벼슬아치가 6품에 오르는 일.
  • [註 1123] 철릭(帖裏) : 무관(武官)의 공복(公服)의 한 가지.
  • [註 1124] 인정(人定) : 매일 밤 2경(二更)에 종을 28수(宿)의 의미로 28번 쳐서 통행을 금지하는 것.
  • [註 1125] 구차(久次) : 오랫동안 지위가 오르지 않음.
  • [註 1126] 영기(令旗) : 군중(軍中)에서 군령(軍令)을 전하는데 쓰던 기(旗).
  • [註 1127] 정유년 : 1717 숙종 43년.
  • [註 1128] 임인년 : 1722 경종 2년.
  • [註 1129] 호적(虎賊) : 목호룡을 지칭함.
  • [註 1130] 계묘년 : 1723 경종 3년.
  • [註 1131] 안치(安置) : 귀양간 죄인을 가두어둠.
  • [註 1132] 가(枷) :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
  • [註 1133] 서간(西間) : 의금부(義禁府) 안 서쪽에 있는 옥사(獄舍).
  • [註 1134] 휘적(輝賊) : 유봉휘를 지칭함.
  • [註 1135] 탄주어(呑舟魚) : 배를 통체로 삼킬 만한 큰 고기. 전하여 대악인(大惡人).

원문

○是日, 上自社壇回駕, 至義禁府前路, 下親臨禁府, 疏釋獄囚之命。 都承旨金取魯等進曰: "刑殺之地, 不宜親臨。" 上不聽。 於是, 三司諸臣, 俱詣輦前奏曰: "金吾, 鞫囚之外, 無他囚。 法駕還御之後, 徐令有司按行足矣。 何必親臨?" 上不聽。 遂詣金吾, 召大臣、禁堂、三司諸臣, 仍酌決鞫獄諸囚。 李森極邊安置, 沈廷玉減死島配, 沈廷紳定配, 睦天任極邊遠竄, 柳慶裕還發配, 沈受觀彦禮放送。 大臣、三司力爭之, 上不聽。 廷玉, 益昌之長子也。 以益昌交通之事, 出於罪人鄭宇寬孫荊佐之供, 而益昌已死, 無以究覈, 故因臺啓命鞫者也。 廷紳, 廷玉之弟, 彦禮, 尙儉之汲婢也。 天任就商締結, 潛圖換局, 而皆出於廷玉之供者也。 重煥, 之族孫, 而虎龍讓其元勳, 故因臺啓拿鞫者也。 日瑞, 之子也。 天任就商慶裕受觀等, 聚銀貨賂尙儉之狀, 出於宇寬荊佐之供, 而已死, 不問日瑞, 則無以究覈, 故拿鞫者也。 慶裕受觀, 亦以交通, 拿鞫者也。 鞫廳問廷玉, 廷玉供曰: "元徽, 臣之異姓再從親, 一鏡則臣前母之至親也。 尙儉則受學於臣家, 又隔墻, 而辛丑七月晦間, 夜深後, 家有火光, 又有開門聲, 翌日問于家汲婢彦禮, 彦禮曰: ‘丫溪洞 金叅議原州 元書房及進士與尹先達, 夜深輒會’ 云。 其後問于, 則元徽亦頻頻來會, 而所謂金叅議, 卽一鏡, 元書房, 卽日瑞, 進士, 卽睦天任, 尹先達, 卽就商也。" 又供曰: "辛丑九月, 臣下鄕, 至月晦間始還, 其間事, 臣之第四弟廷紳, 詳知也。" 於是, 鞫廷紳彦禮, 皆抵賴不服。 更推廷玉, 供曰: "臣問燃燈聚會之事, 則曰: ‘元徽尹就商睦天任元日瑞, 謀議換局, 換局後, 就商爲訓將, 元徽兵, 天任圖其陞六及復其祖官爵事也。’" 又曰: "臣之往家者, 六七次, 而與同往者三次, 之來會家者, 不啻累次, 而臣與者, 一次, 之來訪臣家者, 亦一次矣。 辛丑九月, 臣與同往家也, 有着貼裏一武弁出去, 臣問知爲也。 仍謂曰: ‘此名武也。 與吾同事, 前頭可大用也。’ 其後臣往元徽家, 已在座。 指臣而語曰: ‘彼乃吾之再從沈廷玉也。’ 復指而語臣曰: ‘此乃忠淸兵使李森也。’ 問臣以前日丫洞同往之小宦, 臣曰: ‘尙儉也。’ 恨其不能早知, 而酬酢於伊時也。 又於辛丑十月夜深後, 家, 邀臣謂曰: ‘俄者李森來此, 欲見君相邀, 而以君遲來之故, 或恐見覺於隣家, 未免徑歸’ 云。 蓋承旨鄭必東之家, 在前路故也。 十二月, 復與, 同往家, 則沈檀已先在座矣。 曰: ‘豈不合政丞乎?’ 曰: ‘崔錫恒沈檀, 皆可合, 而錫恒當先爲政丞, 沈檀姑先爲吏判矣。’ 曰: ‘須善爲周旋。’" 又曰: "臣於辛丑十二月初二日夜, 往家, 人定後有人至門, 低聲而呼, 留臣出去, 良久不還, 故臣潛往窺之, 則與客, 同在大門左軒上。 客謂曰: ‘厥事何以爲之乎? 吾若得將任, 則當竭力, 拮据君家産業矣。’ 笑謂客曰: ‘雖以久次論之, 自當爲之, 何乃汲汲如此?’ 客亦笑曰: ‘君不聞急擊勿失之語乎?’ 臣遂入坐, 問於曰: ‘客誰也?’ 曰: ‘卽前所謂尹先達者也。’ 臣知其爲就商也, 仍與酬酢。 就商臨去, 戒勿泄, 亦握臣手相戒矣。" 於是, 天任就商皆命拿。 蓋, 曾以臺啓遠竄, 就商亦曾出於宇寬之供, 暫鞫旋竄。 至是幷拿, (至遂)〔遂至〕 庭鞫。 就商刑四次, 終不服尋斃。 推鞫, 不服, 與廷玉面質。 廷玉向曰: "辛丑九月, 吾與家, 吾先入, 次之, 將上軒, 汝出來, 故問于而知爲汝矣。 伊日吾適借乘, 故留而吾歸。 歷路入元徽家, 汝已在坐矣。" 廷玉曰: "汝之初供, 旣曰初見吾於家, 後見吾於家, 而今乃曰自家歸時, 見於家云者, 何其相左乎?" 互相證辨, 終無勝負。 鞫天任, 天任不服。 時, 天任以其毛裘, 賂羅將兪卜尙, 使廷玉變辭, 廷紳亦傳書廷玉, 使之變辭。 廷玉果變辭, 而通書事發, 羅將兪卜尙金三奉金富貴, 幷勘律。 鞫日瑞, 問以聚銀貨結宦妾會家, 謀換局之事, 日瑞不服, 鞫慶裕, 問以聚銀貨結宦妾之狀, 慶裕亦不服, 鞫重煥, 問以虎龍讓勳之事, 推詡李潛之意, 重煥亦不服。 受觀以名字之差誤, 命姑囚, 自是連行推鞫, 天任刑二次, 廷玉彦禮刑四次, 重煥刑六次, 日瑞刑五次, 慶裕廷紳但嚴問, 而不加刑。 至是, 上御虎頭閣, 問廷玉供中, 締結之狀, 供曰: "廷玉之初供, 與面質時相左, 而臣之除忠淸兵使, 乃在辛丑十月, 則其所謂九月逢臣於家, 則指臣曰: ‘忠淸兵使’ 云。 臣未除拜之前, 何以預稱耶? 家相邀事, 圖換局面, 必有曲折, 而渠又隔墻, 則何不於臣在時召渠, 而必待臣歸後召之哉?" 更問曰: "國恤初, 逆突入陣中, 而汝以令旗, 三次入之, 何耶?" 供曰: "軍中無令旗, 則不得解陣, 例也。 逆以威勢欲突入, 故臣使之勿入, 而令未下, 將校怯於威勢, 先已開陣入之, 故臣卽棍汰其將校矣。 其後, 又欲突入陣門, 則將校安宗國, 初則不納, 終不能拒, 故臣之不汰宗國, 以初能拒之也, 棍治宗國者, 以終不能拒也。 臺言則乃以臣之棍宗國, 謂以初拒逆之罪也, 此爽實也。" 問廷玉, 廷玉供曰: "聚會事, 孫荊佐知之。 臣家則無相會之事矣。" 問與家穿墻相通事, 供曰: "此則家籍沒後, 入其家者之所爲也。" 問彦禮曰: "一鏡尙儉家耶? 會廷玉家耶?" 彦禮供曰: "廷玉家, 有東西兩門, 常自東門會于隅房, 而夜會時, 雖不知某某聚會, 則必問廷玉之在否, 廷玉則必問之歸否矣。 至於家之會不會, 不能的知也。" 上命以隅房有無, 問于廷玉, 供曰: "隅房則有之, 而豈有逆相會之事乎?" 問廷紳曰: "妖仕宦後, 往來汝家乎?" 供曰: "尙儉仕宦後, 使勿往來, 而臣家有二門, 而爲捷徑, 故尙儉時時往來, 而不獨也, 他宦, 亦或往來矣。" 問重煥曰: "汝若無所犯, 則逆何故指爲元功乎? 逆之疏, 時龍之供尙在, 汝何敢發明乎?" 供曰: "丁酉年, 臣設有是言, 至於壬寅, 則元不相關, 而臣之遭臺啓也, 賊忽然上疏, 以臣若有大功者然, 極爲可笑。 此不過欲掩渠盜匿驛馬之跡, 創出孟浪之言也。 激勸告變之說, 誠極曖昧矣。" 上曰: "驛馬事, 在何年, 而重煥就囚, 又在何年?" 左議政閔鎭遠曰: "驛馬事, 在丁酉, 而重煥就囚, 則在癸卯矣。" 上復問曰: "汝雖云不勸賊上變, 而旣譽, 又有司馬昭之說, 則便同勸成。 若於癸卯以驛馬事, 欲彌縫, 而擧汝名則猶之可也, 壬寅無驛馬事, 而賊謂汝激勸上變, 何也?" 供曰: "此不過賊構陷, 而不然則或被誘而然也。 臣則不知也。" 上取入癸卯推案, 命讀重煥供辭, 至言雖不中, 死亦可哀等語, 上曰: "以此問于重煥。" 重煥供曰: "不中云者, 非推奬之言, 而可哀云者, 不過一家之私情也。" 上復問曰: "不中、可哀等語, 汝雖云非推奬, 而至於癸卯, 乃曰丹忠血忱, 凡有秉彝之天者, 孰不稱道其節義云者, 此不道之言也, 足爲斷案矣。" 重煥供曰: "朝庭旣贈職, 故臣以一家私情, 有所稱道矣。" 上曰: "旣於李潛事, 隨時褒美, 則激虎龍上變, 亦無疑矣。" 重煥供曰: "到今思之, 似爲過誤矣。" 問天任曰: "以廷玉之招觀之, 汝之交通妖, 更無可疑, 而汝從前若無所干犯, 則何以至於敎誘獄卒, 恐動廷玉, 使變其說乎?" 天任供曰: "交通逆之家, 極爲曖昧, 而廷玉廷紳兄弟間往復之書, 臣亦累見之, 以此爲罪, 則雖死亦無所恨。 敎誘廷玉, 使之變辭事, 此是獄卒徼功之故也。 臣豈有敎誘之事乎?" 問日瑞, 日瑞供曰: "宇寬之供有曰: ‘十一月見尙儉, 則尙儉以爲: 「今日元兵使當來會於沈廷玉家。」 云’, 而臣父則十月, 已爲金海府使而赴任, 元不在京, 豈有十一月來會之理? 此乃白地構誣者也。 廷玉之供, 謂臣乘夜往來於逆之家云, 而臣是喪人, 何以曳衰往來於宦者之家乎?" 上曰: "汝已忘辛丑冬事耶?" 命讀其時文案, 使之聞之, 而至就商爲訓將, 元徽平安兵使處, 上曰: "辛丑冬事, 卽此條也。" 日瑞供曰: "臣與廷玉, 雖有一面之分, 而足跡不到於其門者, 已爲十餘年矣。 且其時則臣是喪人, 臣父有疾, 豈能往來而謀議乎?" 上復問曰: "汝父有病, 不能出入, 則何以赴平安兵營乎?" 日瑞供曰: "臣父於辛丑十二月, 除平安兵使, 以病呈辭, 終不得遞。 乃於壬寅正月, 迫於朝令, 不得已赴任矣。" 上曰: "元徽死於何時?" 諸臣咸對曰: "元徽之死, 在於三月, 先來軍官入來之翌日也。" 上曰: "沈受觀是誰也?" 鎭遠曰: "受觀, 卽沈仲良之子也。 當初以其名字之差爽, 欲待其緊出於諸囚之供, 而拿問之矣, 前日殿下, 以姑爲置之爲敎, 故仍置之矣。" 諸囚旣皆還下于獄。 上遂下敎曰: "當初, 李重煥之拿來也, 不欲設鞫, 而至於時龍, 關係甚重, 有異於他罪人, 故不得已而設鞫矣。 今日之擧, 蓋爲憫旱而錄囚也。 如或有濫及之患, 則豈非可恤者耶? 我朝三百年享國, 莫非祖宗朝積德累仁之致也。 欲法, 當法祖宗矣。 李森則不可全然放釋, 極邊安置, 廷玉則不忍援引其父, 尙儉之事, 渠乃自當, 此則誠可矜矣。 減死島配, 廷紳則其情節雖可惡, 而旣罪其兄矣。 宜有參酌之道, 放送, 睦天任, 出於求宦之心, 極邊定配, 柳慶裕還發配所, 沈受觀彦禮, 幷放送也。" 大臣諸臣, 力言徑先酌處之失, 上不聽。 鎭遠曰: "廷紳通書獄中, 使廷玉變辭之罪大矣。 如此之類, 全然放釋, 則恐有後弊之難防矣上遂命定配。 仍下敎曰: "天任廷玉廷紳, 竝解枷, 移送西間, 重煥日瑞, 更令嚴刑得情。"

【史臣曰: 李森, 本以奸猾武夫, 當景廟初年, 與一鏡就商南泰徵朴纉新輩, 諂附賊, 締結宦妾, 圖換局面, 誣逼東宮, 國人之指目, 固已久矣。 及夫景廟禮陟之時, 方帶將任, 故一世之人, 皆疑其擁兵作亂。 其時前司諫李鳳翼, 爲陳一疏, 逆折奸萠, 更化之後, 鳳翼又以諫官發啓, 始獲命竄。 至是, 又復緊出於廷玉之招。 若嚴加究覈, 奸凶情節, 庶可鉤得, 而拿囚之後, 因大臣引入, 鞫坐遷就。 適値憫旱錄囚之日, 至有親臨酌處之擧, 而廷玉天任輩, 皆賴獲免。 噫! 漏網呑舟, 已極可恨, 而祖宗三尺之法, 亦未免低仰, 識者竊歎。】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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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7권, 영조 1년 7월 21일 병진 2/7 기사 /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의금부에 친행하여 심정옥 등의 죄를 참작하여 결정하다

국역

이날 임금이 사직단으로부터 회가(回駕)하다가 의금부(義禁府) 앞길에 이르러 의금부에 몸소 가서 옥수(獄囚)을 소석(疏釋)하라는 명을 내리니, 도승지(都承旨) 김취로(金取魯) 등이 나와서 말하기를,

"형살(刑殺)하는 곳에는 마땅히 친히 가실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이에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연(輦)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의금부(義禁府)의 국수(鞫囚) 외에는 다른 죄수는 없습니다. 법가(法駕)1119) 가 환어(還御)하신 뒤에 천천히 유사(有司)로 하여금 조사하게 하여도 될 것인데, 어찌 반드시 친히 보려고 하십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고, 마침내 의금부에 나아가 대신(大臣)과 의금부 당상관(義禁府堂上官)과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이내 국옥(鞫獄)의 여러 죄수를 참작하여 결정하였는데, 이삼(李森)은 극변(極邊)에 안치(安置)하고, 심정옥(沈廷玉)은 감사(減死)하여 도배(島配)하였으며, 심정신(沈廷紳)은 정배(定配)하고, 목천임(睦天任)은 극변(極邊)에 원찬(遠竄)하였으며, 유경유(柳慶裕)는 도로 배소(配所)로 보내고, 심수관(沈受觀)언례(彦禮)는 놓아 보냈다. 대신과 삼사(三司)에서 강력히 간쟁(諫爭)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심정옥심익창(沈益昌)의 장자(長子)인데, 심익창박상검(朴尙儉)·김일경(金一鏡)과 서로 내통한 일이 죄인 정우관(鄭宇寬)·손형좌(孫荊佐)의 공초(供招)에서 나왔으므로, 심익창은 이미 죽어서 추구(推究)하여 조사할 수가 없는 까닭에 대계(臺啓)로 인하여 국문(鞫問)을 명한 것이다. 심정신심정옥의 아우이고 언례(彦禮)박상검의 물긷는 여종[婢]이다. 이삼(李森)·목천임(睦天任)·윤추상(尹就尙)김일경박상검을 체결(締結)하여 정국(政局)을 바꿀 것을 몰래 도모했는데, 이것이 모두 심정옥의 공초에서 나왔다. 이중환(李重煥)이잠(李潛)의 족손(族孫)인데, 목호룡(睦虎龍)이 그 원훈(元勳)을 양보하였기 때문에 대계(臺啓)로 인하여 잡아다 국문한 것이다. 원일서(元日瑞)원휘(元徽)의 아들이다. 원휘이삼·목천임·윤취상(尹就商)·유경유(柳慶裕)·심수관(沈受觀) 등과 더불어 은화(銀貨)를 모아 박상검에게 뇌물로 바친 형상이 정우관(鄭佑寬)·손형좌(孫荊佐)의 공초에서 나왔으나, 원휘(元徽)는 이미 죽었으므로 원일서(元日瑞)를 문초하지 않으면 추구하여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잡아다 국문하였다. 유경유심수관도 또한 김일경목호룡에게 서로 내통하였으므로 잡아다 국문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심정옥을 문초하니, 심정옥이 공초하기를,

"원휘(元徽)는 신(臣)의 이성(異姓) 재종친(再從親)이고, 김일경(金一鏡)은 신 전모(前母)의 지친(至親)이며, 박상검(朴尙儉)은 신의 집에서 수학(受學)하였고 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신축년1120) 7월 그믐 무렵에 밤이 깊은 뒤에 박상검의 집에서 불빛이 있었고 또 문을 여는 소리가 있었으므로, 다음날 박상검의 집에 물 긷는 여종[婢] 언례(彦禮)에게 물어보니, 언례가 말하기를, ‘아계동(丫溪洞)김 참의(金參議), 원주(原州)원서방(元書房)과 진사(進士) 윤선달(尹先達)이 밤이 깊은데 문득 모였다.’고 하였고, 그 뒤에 박상검에게 물어 보았더니, ‘원휘(元徽)도 자주 와서 모인다.’고 하였는데, 이른바 김 참의는 곧 김일경이고 원 서방은 원일서(元日瑞)이며, 진사는 곧 목천임(睦天任)이고, 윤선달은 곧 윤취상(尹就商)입니다."

하고, 또 공초하기를,

"신축년 9월에 신이 고향에 내려갔다가 동짓달 그믐 무렵에야 비로소 돌아왔으니, 그 사이의 일은 신의 넷째 아우인 심정신(沈廷紳)이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하므로, 이에 심정신언례를 국문(鞫問)하였으나 모두 변명하고 자복(自服)하지 않았다. 다시 심정옥을 추국(推鞫)하니, 공초하기를,

"신이 박상검에게 등불을 밝히고 모였던 일을 물으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원휘·윤취상·목천임·원일서환국(煥局)1121) 을 모의(謀議)하였는데, 환국된 뒤에는 윤취상은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고, 원휘는 평안도 병사(平安道兵使)가 되며, 목천임은 그가 승륙(陞六)1122) 되는 것과 그 조부(祖父)의 관작(官爵)을 회복시키는 일을 도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신이 김일경의 집에 간 것이 6, 7차례나 되는데, 박상검과 같이 간 것은 3차례이고, 김일경박상검의 집에 와서 모인 것은 여러 차례뿐만이 아니었으나, 신이 김일경과 함께 박상검의 집에 와서 모인 것은 여러 차례뿐만이 아니었으나, 신이 김일경과 함께 박상검을 만난 것은 한 차례였고, 김일경이 신의 집으로 찾아 온 것도 또한 한 차례였습니다. 신축년 9월에 신이 박상검과 함께 김일경의 집에 같이 갔을 때에 그곳에 있던 철릭(帖裏)1123) 을 입은 한 무인(武人)이 나갔으므로, 신이 물어 보고 나서 이삼(李森)인 것을 알았습니다. 김일경이 곧 박상검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이름난 무인인데, 나와 더불어 같이 일을 하면 앞날에는 크게 쓰일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신이 원휘의 집에 갔었는데, 이삼이 이미 자리에 있었습니다. 원휘가 신을 가리키면서 이삼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은 곧 나와 〈이성(異姓)으로〉 재종(再從) 간이 되는 심정옥이다.’고 하였고, 다시 이삼을 가리키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곧 충청 병사(忠淸兵使) 이삼(李森)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삼이 신에게 전일 아동(丫洞)에 같이 간 소환(小宦)을 묻기에, 신이 말하기를, ‘박상검이었다.’고 하니, 이삼은 그가 일찍이 알지 못하고 그때에 수작(酬酢)한 것을 한(恨)스러워하였으며, 또 신축년 10월에 밤이 깊은 뒤에 김일경박상검의 집에 와서 신을 맞이하여 이르기를, ‘조금 전에 이삼이 이곳에 와서 그대와 서로 만나 보려고 하다가 그대가 늦게 오는 까닭으로 혹시 이웃집에 발각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곧바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였는데, 대개 승지(承旨) 정필동(鄭必東)의 집이 앞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월에 다시 박상검과 같이 김일경의 집에 갔었는데, 심단(沈檀)이 이미 먼저 자리에 와서 있었습니다. 김일경박상검에게 이르기를, ‘심단은 어찌 정승(政丞)에 합당하지 않는가?’ 하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최석항(崔錫恒)심단이 모두 합당하긴 하나 최석항이 마땅히 먼저 정승이 되어야 하니, 심단은 우선 먼저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김일경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잘 주선(周旋)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신이 신축년 12월 초2일 밤에 박상검의 집에 갔었는데, 인정(人定)1124) 이 된 뒤에 누구인가 문에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추어 박상검을 부르니, 박상검이 신은 남겨둔 채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기에 신이 몰래 가서 엿보았더니, 박상검이 손[客]과 같이 대문(大門)왼쪽 난간 위에 있었는데, 손이 박상검에게 이르기를, ‘그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만약 대장의 직임(職任)을 얻는다면 마땅히 힘을 다하여 그대의 집 산업(産業)을 힘써 도울 것이다.’라고 하니, 박상검이 웃으면서 손에게 이르기를, ‘비록 구차(久次)1125) 로써 논하더라도 저절로 마땅히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조급하게 서두는가?’ 하니, 손도 또한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급히 공격하여 기회를 잃지 말라[急擊勿失]〉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고 하였습니다. 신은 드디어 들어와 앉았다가 박상검에게 묻기를, ‘손은 누구냐?’고 하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곧 전일에 말한 윤선달(尹先達)이다.’고 하기에 신은 그가 윤취상(尹就商)인 것을 알았으며 이내 수작(酬酌)을 했는데, 윤취상이 갈 때에 ‘누설하지 말라.’고 경계하였고, 박상검도 신의 손을 잡고는 서로가 경계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목천임(睦天任)·이삼(李森)·윤취상(尹就商)을 모두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대개 이삼은 전일에 대계(臺啓)로써 원찬(遠竄)되었고 윤취상도 또한 일찍이 정우관(鄭宇寬)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잠깐 국문(鞫問)하고 곧바로 귀양보냈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잡아와서 마침내 정국(庭鞫)하게 되었다. 윤취상은 4차례의 형신(刑訊)을 받았으나, 끝내 자복(自服)하지 않고 곧 넘어져 죽었다. 이삼을 추국(推鞫)하였으나 이삼이 자복하지 않았으로 심정옥(沈廷玉)과 면질(面質)시켰다. 심정옥이삼을 향하여 말하기를,

"신축년 9월에 내가 박상검과 같이 김일경의 집에 갔을 때에 나는 먼저 들어가고 박상검은 다음에 들어왔는데, 마루에 올라가려 할 때에 네가 나왔으므로 김일경에게 물어 보고는 너인 줄을 알았다. 그날 내가 마침 말을 빌려서 타고 갔기 때문에 박상검은 머물고 있었으나 나는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원휘의 집에 들렸는데, 그때 너는 이미 앉아 있었다."

하니, 이삼심정옥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의 처음 공초(供招)에선 이미 말하기를, ‘처음에는 나를 김일경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다가 뒤에 가서는 나를 원휘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곧 말하기를, ‘김일경의 집에서 돌아올 때에 원휘의 집에서 보았다.’고 하니, 어떻게 그 말이 서로 어긋나는가?"

하며 서로가 증거를 대어 변론(辯論)하였으나, 끝내 승부(勝負)가 없었다. 목천임을 국문하였으나, 목천임이 자복하지 않았다. 그때에 목천임이 그의 털로 만든 갖옷을 나장(羅將)인 유복상(兪卜尙)에게 뇌물로 주어서 심정옥으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하고 심정신(沈廷紳)도 또한 심정옥에게 편지를 전하여 변사(變辭)하게 하니, 심정옥이 과연 변사하였는데, 편지로 내통한 일이 발각이 되자 나장(羅將) 유복상(兪卜尙)·김삼봉(金三奉)·김부귀(金富貴)를 모두 형률에 의하여 처벌하였다.

그리고 원일서(元日瑞)를 추국하여 은화(銀貨)를 모아 환첩(宦妾)을 체결(締結)하여 박상검의 집에 모여서 환국(換局)을 모의(謀議)한 일에 대하여 물었으나 원일서는 자복하지 않았고, 유경유(柳慶裕)를 추국하여 은화를 모아 환첩을 체결한 상황을 물었으나 유경유도 또한 자복하지 않았으며, 이중환(李重煥)을 추국하여 목호룡(睦虎龍)이 공훈(功勳)을 양보하는 일로써 이잠(李潛)을 추켜 세워서 자랑한 뜻을 가지고 물었으나 이중환도 또한 자복하지 않았다. 심수관(沈受觀)은 이름 글자가 틀렸다는 이유로써 우선 수금(囚禁)을 명하였는데, 이로부터 추국(推鞫)을 연달아 행하여 목천임은 형신(刑訊)을 받은 것이 2차례나 되었고 심정옥언례(彦禮)는 형신이 4차례나 되었으며, 이중환은 형신이 6차례나 되었고, 원일서는 형신이 5차례나 되었으며, 유경유·이삼·심정신은 다만 엄격히 묻기만 하고 형벌(刑罰)은 가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호두각(虎頭閣)에 나아가 이삼에게 심정옥이 공초한 가운데 김일경·박상검과 체결(締結)했다는 정상(情狀)을 가지고 물으니, 이삼이 공초하기를,

"심정옥(沈廷玉)의 처음에 공초한 것이 면질(面質)할 때와 서로 어긋납니다. 신이 충청 병사(忠淸兵使)로 제수된 것은 바로 신축년 10월에 있었는데, 그의 이른바 ‘9월에 신을 원휘의 집에서 만나서 곧 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충청 병사라」고 하였다.’는 것은 신이 제배(除拜)되기 전에 원휘가 어찌 미리 충청 병사로 지칭하였겠습니까? 박상검의 집에서 서로 만난 일이 국면(局面)을 바꿀 것을 도모하였다면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며, 제가 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면 어찌 신이 있을 때에 저를 부르지 않고 반드시 신이 돌아가기를 기다려 불렀겠습니까?"

하니, 다시 묻기를,

"국휼(國恤)이 났던 처음에 역적 김일경이 진중(陣中)에 돌입(突入)할 때 네가 영기(令旗)1126) 를 가지고 3차례나 들어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이삼이 공초하기를,

"군중(軍中)에 영기가 없으면 진(陣)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규례(規例)입니다. 역적 김일경이 위세(威勢)로써 돌입(突入)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이 그로 하여금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영(令)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장교(將校)가 위세에 겁을 내어 먼저 이미 진문(陣門)을 열어 주어 들어오게 했기 때문에 신이 곧 그 장교를 곤장(棍杖)을 쳐서 태거(汰去)하였습니다. 그 뒤에 김일경이 또 진문(陣門)으로 돌입하려고 하니, 장교 안종국(安宗國)이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다가 끝내는 능히 거절하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안종국을 태거(汰去)시키지 않은 것은 처음에 능히 거절하였기 때문이요, 안종국을 곤장으로 다스린 것은 끝내 능히 거절하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대간(臺諫)에서 말하기를, ‘곧 신이 안종국을 곤장친 것은 처음에 역적 김일경을 거절한 죄라.’고 하였으니, 이는 사실과 어긋납니다."

하였다. 심정옥에게 물어보니, 심정옥이 공초하기를,

"김일경박상검이 모인 일은 손형좌(孫荊佐)가 이를 알고 있는데, 신의 집에서는 서로가 모인 일이 없습니다."

하고, 박상검의 집과 담을 뚫고 서로 통행한 일에 대하여 물으니, 공초하기를,

"이는 박상검의 집이 적몰(籍沒)된 뒤에 그 집에 들어간 자의 소행입니다."

하였다. 언례에게 묻기를,

"김일경박상검의 집에서 모였는가, 심정옥의 집에서 모였는가?"

하니, 언례가 공초하기를,

"심정옥의 집은 동쪽과 서쪽에 두 군데 문이 있는데, 항상 동문(東門)으로 들어와서 모퉁이 방에서 모였습니다. 그런데 밤에 모일 때에는 비록 아무 아무가 모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박상검이 오면 반드시 심정옥의 있고 없는가를 물었으며, 심정옥이 오면 반드시 박상검이 돌아갔는가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박상검의 집에서 모였는가 안 모였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해 모퉁이 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심정옥에게 물으니, 공초하기를,

"모퉁이 방이 있었습니다마는, 어찌 역적 김일경과 서로 모인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심정신(沈廷紳)에게 묻기를,

"요사한 박상검이 환관(宦官)이 된 뒤에 너의 집에 왕래(往來)하였는가?"

하니, 공초하기를,

"박상검이 환관(宦官)이 된 뒤에 왕래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신의 집에 두 군데에 문이 있어서 지름길이 되기 때문에 박상검이 때때로 왕래하였는데, 유독 박상검만이 아니고 다른 환관도 또한 더러 왕래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중환(李重煥)에게 묻기를,

"네가 만약 범(犯)한 바가 없다면 역적 목호룡(睦虎龍)을 무슨 까닭으로 원공(元功)이라 지칭(指稱)하는가? 역적 목호룡의 상소와 목시룡(睦時龍)의 공초(供招)가 아직 있는데 네가 어찌 감히 발명할 수가 있는가?"

하니, 공초하기를,

"정유년1127) 에 신이 설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더라도 임인년1128) 에 이르러서는 원래 상관되지 않는 일입니다. 신이 대계(臺啓)를 만나게 되자 호적(虎賊)1129) 이 갑자기 상소하여 신을 마치 대공(大功)이 있는 것 같이 하였으니 매우 웃을 만한 일이며, 이것은 그가 역마(驛馬)를 도둑질하여 숨긴 자취를 숨기려고 맹랑한 말을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변(告變)을 격동시켜 권유하였다는 말은 진실로 매우 애매(曖昧)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역마(驛馬)의 사건은 어느 해에 있었으며, 이중환(李重限)이 옥에 갇힌 것은 또 어느 해에 있었는가?"

하니, 좌의정 민진원이 말하기를,

"역마의 사건은 정유년에 있었고, 이중환이 옥에 갇힌 것은 계묘년1130) 에 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다시 〈이중환에게〉 묻기를,

"네가 비록 호적(虎賊)에게 상변(上變)하라고 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마는, 이미 이잠(李潛)을 칭찬하고 또 사마소(司馬昭)에 비하는 설(說)이 있었다면 곧 권유하여 성사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약 계묘년에 역마(驛馬)의 사건으로써 미봉(彌縫)하려고 해서 너의 이름을 거론하였다면 그래도 되겠지마는, 임인년에는 역마의 사건이 없었는데도 호적(虎賊)이 ‘네가 상변(上變)을 격동시켜 권하였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공초하기를,

"이는 호적(虎賊)이 구함(構陷)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혹은 유혹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니,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계묘년의 추안(推案)을 취입(取入)하여 이중환의 공사(供辭)를 읽으라고 명하고는 ‘말한 것이 비록 맞지는 않았으나 죽은 것은 또한 슬피 여길 만하다.’는 등의 말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로써 이중환에게 물으라."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맞지 않았다.’ 란 것은 추천하여 칭찬한 말이 아니고, ‘슬피 여길 만하다.’ 란 것은 한집안의 사정(私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다시 묻기를,

"맞지 않았다느니 슬피여길 만하다느니 하는 등의 말은 네가 비록 추천하여 칭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마는, 계묘년에 이르러 이에 말한 ‘단심(丹心)에서 우러나는 충성과 진심(眞心)에서 나오는 정성으로 무릇 상도(常道)를 굳게 잡은 천성(天性)을 가진 자라면 누군들 그 절의(節義)를 칭도(稱道)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은 이는 부도(不道)한 말이니, 넉넉히 단안(斷案)이 될 수가 있다."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조정(朝廷)에서 이미 증직(贈職)하였기 때문에 신은 한집안의 사정(私情)으로써 칭도(稱道)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이잠(李潛)의 일에 수시(隨時)로 칭찬하였다면 목호룡(睦虎龍)을 상변(上變)하도록 격동(激動)시킨 것도 또한 의심이 없는 것이다."

하니, 이중환이 공초하기를,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오(過誤)가 된 듯합니다."

하였다. 목천임(睦天任)에게 묻기를,

"심정옥(沈廷玉)의 공초(供招)로써 살펴본다면, 네가 요사한 박상검과 서로 내통한 것은 다시 의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네가 종전에 만약 간범(干犯)한 바가 없다면 어찌하여 옥졸(獄卒)을 유도하고 심정옥을 공동(恐動)하여 그 말을 변경시키기까지 했겠는가?"

하니, 목천임이 공초하기를,

"역적 박상검의 집에 서로 내통하였다는 것은 매우 애매(曖昧)합니다. 심정옥(沈廷玉)·심정신(沈廷紳) 형제(兄弟) 사이에 왕복(往復)한 편지를 신도 또한 여러번 보았으니, 이로써 죄를 삼는다면 비록 죽을지라도 또한 탓할 바가 없으나, 심정옥을 유도하여 그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하였다는 일은 이는 바로 옥졸(獄卒)이 공(功)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이 어찌 유도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원일서(元日瑞)에게 물으니,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정우관(鄭宇寬)의 공초에 이르기를, ‘11월에 박상검을 보니, 박상검이 말하기를, 「오늘 원병사(元兵使)가 마땅히 심정옥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하였는데, 신의 아비는 10월에 이미 김해 부사(金海府使)가 되어서 부임하고 원래 서울에 있지 않았는데, 어찌 11월에 와서 모일 리가 있겠습니까? 이는 바로 아무까닭도 없이 없는 사실을 꾸며서 무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정옥의 공초에서 ‘신이 밤을 틈타 역적 박상검의 집에 왕래하였다.’고 하였는데, 신은 이때에 상인(喪人)이었으니, 어떻게 최복(衰服)을 입은 몸으로 환관의 집에 왕래하였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벌써 신축년 겨울의 일을 잊었는가?"

하고, 명하여 그때의 문안(文案)을 읽게 하여 그로 하여금 듣게 하고 윤취상(尹就商)이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고 원휘(元徽)가 평안 병사(平安兵使)가 된다는 대목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신축년 겨울의 일은 곧 이 조항(條項)이다."

하였다.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신이 심정옥과 더불어 비록 한번 만나본 교분(交分)은 있으나 족적(足跡)이 그문에 가지 않은 지는 이미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신은 바로 상인(喪人)이었으며, 신의 아비는 병이 있었으니, 어찌 능히 왕래하면서 모의(謀議)를 하였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다시 묻기를,

"너의 아비가 병이 있어서 능히 출입(出入)을 못했다면 어떻게 평안 병영(平安兵營)에 부임하였는가?"

하니, 원일서가 공초하기를,

"신의 아비가 신축년 12월에 평안 병사에 임명되어 병(病) 때문에 사직소를 올렸으나 마침내 체직(遞職)되지 못하였고, 곧 임인년 1월에 조령(朝令)에 핍박되어 어쩔 수 없이 부임하였던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원휘(元徽)가 어느 때 죽었는가?"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원휘가 죽은 것은 3월에 선래 군관(先來軍官)이 들어오던 이튿날에 있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심수관(沈受觀)이 말하기를,

하니, 민진원(閔鎭遠)이 말하기를,

"심수관은 곧 심중량(沈仲良)의 아들입니다. 당초에 그 이름 글자가 틀렸으므로 그가 여러 죄수(罪囚)들의 공초에서 긴요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려 나문(拿問)하려고 하였던 것이며, 전일에 전하(殿下)께서 우선 내버려 두라는 분부를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던 것이고 여러 죄수들은 이미 모두 하옥(下獄)시킨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하교(下敎)하기를,

"당초에 이중환을 나치(拿致)하여 왔을 때 국청(鞫廳)을 설치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목시룡(睦時龍)에 이르러서는 관계가 매우 중대하여 다른 죄인과는 다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청을 설치한 것이다. 오늘의 일은 대개 가뭄을 근심하여 죄수(罪囚)의 정상(情狀)을 살펴 밝히려 한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지나치게 미치는 근심이 있다면 어찌 불쌍하게 여길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조정이 3백 년 동안 나라를 향유(享有)한 것은 조종조(祖宗朝)에서 인덕(仁德)을 쌓은 소치가 아님이 없다. 요(堯)·순(舜)을 본받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삼(李森)은 전연 석방시킬 수 없으니 아주 먼 변경(邊境)에다 안치(安置)1131) 하고, 심정옥(沈廷玉)은 그 아비를 차마 끌어대지 못하여 박상검의 일을 그가 곧 스스로 담당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불쌍히 여길 만한 일이므로 감사 도배(減死島配)할 것이며, 심정신(沈廷紳)은 그 정절(情節)은 비록 밉지마는 이미 그 형을 죄주었으므로 마땅히 참작하는 도리가 있어야 할 것이니 방송(放送)하게 하고, 목천임(睦天任)은 벼슬을 구하는 마음에서 나왔으니 아주 먼 변경(邊境)으로 정배(定配)하며, 유경유(柳慶裕)는 도로 배소(配所)로 보내고, 심수관언례(彦禮)는 모두 방송(放送)하라."

하였다. 대신(大臣)과 여러 신하들이 경솔하게 먼저 참작하여 처리하는 실수를 강력히 말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 민진원이 말하기를,

"심정신이 옥중(獄中)에서 통서(通書)하여 심정옥으로 하여금 변사(變辭)하게 한 죄는 큽니다. 이와 같은 유(類)를 전연 석방한다면 아마 뒷날의 폐단을 방지하기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정배(定配)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하교하기를,

"이삼(李森)·목천임(睦天任)·심정옥(沈廷玉)·심정신(沈廷紳)은 모두 가(枷)1132) 를 풀어 주되, 이삼서간(西間)1133) 으로 이송(移送)시키고, 이중환(李重煥)원일서(元日瑞)는 다시 엄형(嚴刑)으로 실정(實情)을 알아내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이삼은 본래 간사하고 교활한 무부(武夫)로서 경종(景宗) 초년(初年)에 김일경(金一境)·윤취상(尹就商)·남태징(南泰徵)·박찬신(朴纘新) 무리와 더불어 휘적(輝賊)1134) 에게 아첨하고 아부하여 환첩(宦妾)과 체결(締結)해서 국면(局面)을 바꿀 것을 도모하고 동궁(東宮)을 무함하고 핍박하니, 국인(國人)들이 지목(指目)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다. 경종이 승하한 때에 미쳐 이삼이 바야흐로 장임(將任)을 겸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가 군대를 가지고 난(亂)을 일으킬까 의심하였다. 그때에 전(前) 사간(司諫) 이봉익(李鳳翼)이 한통의 소(疏)를 진달하여 미리 간교한 싹을 꺾었으며, 경화(更化)된 후에도 이봉익이 또 간관(諫官)으로서 발계(發啓)하여 비로소 귀양 보내는 명을 얻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또 다시 심정옥의 공초에서 긴급히 나왔으니, 만약 엄하게 구문(究問)하여 조사를 한다면 간사하고 음흉한 정상을 거의 캐어 낼 수 있을 것인데, 잡아 가둔 뒤에 대신(大臣)이 인피(引避)하여 들어감으로 인하여 국좌(鞫坐)가 지연(遲延)되었다. 마침 가뭄을 근심하여 죄수의 정상(情狀)을 살펴 밝히는 날을 만나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참작해서 처리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심정옥·목천임의 무리가 모두 이삼을 힘입어 면죄를 얻게 되었으니, 아! 탄주어(呑舟魚)1135) 의 법도 또한 낮추었다 높였다 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한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9면
  • [註 1119] 법가(法駕) : 임금이 거동할 때에 타던 수레의 한 가지.
  • [註 1120]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1121] 환국(煥局) : 정국(政局)을 바꿈.
  • [註 1122] 승륙(陞六) : 7품 이하의 벼슬아치가 6품에 오르는 일.
  • [註 1123] 철릭(帖裏) : 무관(武官)의 공복(公服)의 한 가지.
  • [註 1124] 인정(人定) : 매일 밤 2경(二更)에 종을 28수(宿)의 의미로 28번 쳐서 통행을 금지하는 것.
  • [註 1125] 구차(久次) : 오랫동안 지위가 오르지 않음.
  • [註 1126] 영기(令旗) : 군중(軍中)에서 군령(軍令)을 전하는데 쓰던 기(旗).
  • [註 1127] 정유년 : 1717 숙종 43년.
  • [註 1128] 임인년 : 1722 경종 2년.
  • [註 1129] 호적(虎賊) : 목호룡을 지칭함.
  • [註 1130] 계묘년 : 1723 경종 3년.
  • [註 1131] 안치(安置) : 귀양간 죄인을 가두어둠.
  • [註 1132] 가(枷) :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
  • [註 1133] 서간(西間) : 의금부(義禁府) 안 서쪽에 있는 옥사(獄舍).
  • [註 1134] 휘적(輝賊) : 유봉휘를 지칭함.
  • [註 1135] 탄주어(呑舟魚) : 배를 통체로 삼킬 만한 큰 고기. 전하여 대악인(大惡人).

원문

○是日, 上自社壇回駕, 至義禁府前路, 下親臨禁府, 疏釋獄囚之命。 都承旨金取魯等進曰: "刑殺之地, 不宜親臨。" 上不聽。 於是, 三司諸臣, 俱詣輦前奏曰: "金吾, 鞫囚之外, 無他囚。 法駕還御之後, 徐令有司按行足矣。 何必親臨?" 上不聽。 遂詣金吾, 召大臣、禁堂、三司諸臣, 仍酌決鞫獄諸囚。 李森極邊安置, 沈廷玉減死島配, 沈廷紳定配, 睦天任極邊遠竄, 柳慶裕還發配, 沈受觀彦禮放送。 大臣、三司力爭之, 上不聽。 廷玉, 益昌之長子也。 以益昌交通之事, 出於罪人鄭宇寬孫荊佐之供, 而益昌已死, 無以究覈, 故因臺啓命鞫者也。 廷紳, 廷玉之弟, 彦禮, 尙儉之汲婢也。 天任就商締結, 潛圖換局, 而皆出於廷玉之供者也。 重煥, 之族孫, 而虎龍讓其元勳, 故因臺啓拿鞫者也。 日瑞, 之子也。 天任就商慶裕受觀等, 聚銀貨賂尙儉之狀, 出於宇寬荊佐之供, 而已死, 不問日瑞, 則無以究覈, 故拿鞫者也。 慶裕受觀, 亦以交通, 拿鞫者也。 鞫廳問廷玉, 廷玉供曰: "元徽, 臣之異姓再從親, 一鏡則臣前母之至親也。 尙儉則受學於臣家, 又隔墻, 而辛丑七月晦間, 夜深後, 家有火光, 又有開門聲, 翌日問于家汲婢彦禮, 彦禮曰: ‘丫溪洞 金叅議原州 元書房及進士與尹先達, 夜深輒會’ 云。 其後問于, 則元徽亦頻頻來會, 而所謂金叅議, 卽一鏡, 元書房, 卽日瑞, 進士, 卽睦天任, 尹先達, 卽就商也。" 又供曰: "辛丑九月, 臣下鄕, 至月晦間始還, 其間事, 臣之第四弟廷紳, 詳知也。" 於是, 鞫廷紳彦禮, 皆抵賴不服。 更推廷玉, 供曰: "臣問燃燈聚會之事, 則曰: ‘元徽尹就商睦天任元日瑞, 謀議換局, 換局後, 就商爲訓將, 元徽兵, 天任圖其陞六及復其祖官爵事也。’" 又曰: "臣之往家者, 六七次, 而與同往者三次, 之來會家者, 不啻累次, 而臣與者, 一次, 之來訪臣家者, 亦一次矣。 辛丑九月, 臣與同往家也, 有着貼裏一武弁出去, 臣問知爲也。 仍謂曰: ‘此名武也。 與吾同事, 前頭可大用也。’ 其後臣往元徽家, 已在座。 指臣而語曰: ‘彼乃吾之再從沈廷玉也。’ 復指而語臣曰: ‘此乃忠淸兵使李森也。’ 問臣以前日丫洞同往之小宦, 臣曰: ‘尙儉也。’ 恨其不能早知, 而酬酢於伊時也。 又於辛丑十月夜深後, 家, 邀臣謂曰: ‘俄者李森來此, 欲見君相邀, 而以君遲來之故, 或恐見覺於隣家, 未免徑歸’ 云。 蓋承旨鄭必東之家, 在前路故也。 十二月, 復與, 同往家, 則沈檀已先在座矣。 曰: ‘豈不合政丞乎?’ 曰: ‘崔錫恒沈檀, 皆可合, 而錫恒當先爲政丞, 沈檀姑先爲吏判矣。’ 曰: ‘須善爲周旋。’" 又曰: "臣於辛丑十二月初二日夜, 往家, 人定後有人至門, 低聲而呼, 留臣出去, 良久不還, 故臣潛往窺之, 則與客, 同在大門左軒上。 客謂曰: ‘厥事何以爲之乎? 吾若得將任, 則當竭力, 拮据君家産業矣。’ 笑謂客曰: ‘雖以久次論之, 自當爲之, 何乃汲汲如此?’ 客亦笑曰: ‘君不聞急擊勿失之語乎?’ 臣遂入坐, 問於曰: ‘客誰也?’ 曰: ‘卽前所謂尹先達者也。’ 臣知其爲就商也, 仍與酬酢。 就商臨去, 戒勿泄, 亦握臣手相戒矣。" 於是, 天任就商皆命拿。 蓋, 曾以臺啓遠竄, 就商亦曾出於宇寬之供, 暫鞫旋竄。 至是幷拿, (至遂)〔遂至〕 庭鞫。 就商刑四次, 終不服尋斃。 推鞫, 不服, 與廷玉面質。 廷玉向曰: "辛丑九月, 吾與家, 吾先入, 次之, 將上軒, 汝出來, 故問于而知爲汝矣。 伊日吾適借乘, 故留而吾歸。 歷路入元徽家, 汝已在坐矣。" 廷玉曰: "汝之初供, 旣曰初見吾於家, 後見吾於家, 而今乃曰自家歸時, 見於家云者, 何其相左乎?" 互相證辨, 終無勝負。 鞫天任, 天任不服。 時, 天任以其毛裘, 賂羅將兪卜尙, 使廷玉變辭, 廷紳亦傳書廷玉, 使之變辭。 廷玉果變辭, 而通書事發, 羅將兪卜尙金三奉金富貴, 幷勘律。 鞫日瑞, 問以聚銀貨結宦妾會家, 謀換局之事, 日瑞不服, 鞫慶裕, 問以聚銀貨結宦妾之狀, 慶裕亦不服, 鞫重煥, 問以虎龍讓勳之事, 推詡李潛之意, 重煥亦不服。 受觀以名字之差誤, 命姑囚, 自是連行推鞫, 天任刑二次, 廷玉彦禮刑四次, 重煥刑六次, 日瑞刑五次, 慶裕廷紳但嚴問, 而不加刑。 至是, 上御虎頭閣, 問廷玉供中, 締結之狀, 供曰: "廷玉之初供, 與面質時相左, 而臣之除忠淸兵使, 乃在辛丑十月, 則其所謂九月逢臣於家, 則指臣曰: ‘忠淸兵使’ 云。 臣未除拜之前, 何以預稱耶? 家相邀事, 圖換局面, 必有曲折, 而渠又隔墻, 則何不於臣在時召渠, 而必待臣歸後召之哉?" 更問曰: "國恤初, 逆突入陣中, 而汝以令旗, 三次入之, 何耶?" 供曰: "軍中無令旗, 則不得解陣, 例也。 逆以威勢欲突入, 故臣使之勿入, 而令未下, 將校怯於威勢, 先已開陣入之, 故臣卽棍汰其將校矣。 其後, 又欲突入陣門, 則將校安宗國, 初則不納, 終不能拒, 故臣之不汰宗國, 以初能拒之也, 棍治宗國者, 以終不能拒也。 臺言則乃以臣之棍宗國, 謂以初拒逆之罪也, 此爽實也。" 問廷玉, 廷玉供曰: "聚會事, 孫荊佐知之。 臣家則無相會之事矣。" 問與家穿墻相通事, 供曰: "此則家籍沒後, 入其家者之所爲也。" 問彦禮曰: "一鏡尙儉家耶? 會廷玉家耶?" 彦禮供曰: "廷玉家, 有東西兩門, 常自東門會于隅房, 而夜會時, 雖不知某某聚會, 則必問廷玉之在否, 廷玉則必問之歸否矣。 至於家之會不會, 不能的知也。" 上命以隅房有無, 問于廷玉, 供曰: "隅房則有之, 而豈有逆相會之事乎?" 問廷紳曰: "妖仕宦後, 往來汝家乎?" 供曰: "尙儉仕宦後, 使勿往來, 而臣家有二門, 而爲捷徑, 故尙儉時時往來, 而不獨也, 他宦, 亦或往來矣。" 問重煥曰: "汝若無所犯, 則逆何故指爲元功乎? 逆之疏, 時龍之供尙在, 汝何敢發明乎?" 供曰: "丁酉年, 臣設有是言, 至於壬寅, 則元不相關, 而臣之遭臺啓也, 賊忽然上疏, 以臣若有大功者然, 極爲可笑。 此不過欲掩渠盜匿驛馬之跡, 創出孟浪之言也。 激勸告變之說, 誠極曖昧矣。" 上曰: "驛馬事, 在何年, 而重煥就囚, 又在何年?" 左議政閔鎭遠曰: "驛馬事, 在丁酉, 而重煥就囚, 則在癸卯矣。" 上復問曰: "汝雖云不勸賊上變, 而旣譽, 又有司馬昭之說, 則便同勸成。 若於癸卯以驛馬事, 欲彌縫, 而擧汝名則猶之可也, 壬寅無驛馬事, 而賊謂汝激勸上變, 何也?" 供曰: "此不過賊構陷, 而不然則或被誘而然也。 臣則不知也。" 上取入癸卯推案, 命讀重煥供辭, 至言雖不中, 死亦可哀等語, 上曰: "以此問于重煥。" 重煥供曰: "不中云者, 非推奬之言, 而可哀云者, 不過一家之私情也。" 上復問曰: "不中、可哀等語, 汝雖云非推奬, 而至於癸卯, 乃曰丹忠血忱, 凡有秉彝之天者, 孰不稱道其節義云者, 此不道之言也, 足爲斷案矣。" 重煥供曰: "朝庭旣贈職, 故臣以一家私情, 有所稱道矣。" 上曰: "旣於李潛事, 隨時褒美, 則激虎龍上變, 亦無疑矣。" 重煥供曰: "到今思之, 似爲過誤矣。" 問天任曰: "以廷玉之招觀之, 汝之交通妖, 更無可疑, 而汝從前若無所干犯, 則何以至於敎誘獄卒, 恐動廷玉, 使變其說乎?" 天任供曰: "交通逆之家, 極爲曖昧, 而廷玉廷紳兄弟間往復之書, 臣亦累見之, 以此爲罪, 則雖死亦無所恨。 敎誘廷玉, 使之變辭事, 此是獄卒徼功之故也。 臣豈有敎誘之事乎?" 問日瑞, 日瑞供曰: "宇寬之供有曰: ‘十一月見尙儉, 則尙儉以爲: 「今日元兵使當來會於沈廷玉家。」 云’, 而臣父則十月, 已爲金海府使而赴任, 元不在京, 豈有十一月來會之理? 此乃白地構誣者也。 廷玉之供, 謂臣乘夜往來於逆之家云, 而臣是喪人, 何以曳衰往來於宦者之家乎?" 上曰: "汝已忘辛丑冬事耶?" 命讀其時文案, 使之聞之, 而至就商爲訓將, 元徽平安兵使處, 上曰: "辛丑冬事, 卽此條也。" 日瑞供曰: "臣與廷玉, 雖有一面之分, 而足跡不到於其門者, 已爲十餘年矣。 且其時則臣是喪人, 臣父有疾, 豈能往來而謀議乎?" 上復問曰: "汝父有病, 不能出入, 則何以赴平安兵營乎?" 日瑞供曰: "臣父於辛丑十二月, 除平安兵使, 以病呈辭, 終不得遞。 乃於壬寅正月, 迫於朝令, 不得已赴任矣。" 上曰: "元徽死於何時?" 諸臣咸對曰: "元徽之死, 在於三月, 先來軍官入來之翌日也。" 上曰: "沈受觀是誰也?" 鎭遠曰: "受觀, 卽沈仲良之子也。 當初以其名字之差爽, 欲待其緊出於諸囚之供, 而拿問之矣, 前日殿下, 以姑爲置之爲敎, 故仍置之矣。" 諸囚旣皆還下于獄。 上遂下敎曰: "當初, 李重煥之拿來也, 不欲設鞫, 而至於時龍, 關係甚重, 有異於他罪人, 故不得已而設鞫矣。 今日之擧, 蓋爲憫旱而錄囚也。 如或有濫及之患, 則豈非可恤者耶? 我朝三百年享國, 莫非祖宗朝積德累仁之致也。 欲法, 當法祖宗矣。 李森則不可全然放釋, 極邊安置, 廷玉則不忍援引其父, 尙儉之事, 渠乃自當, 此則誠可矜矣。 減死島配, 廷紳則其情節雖可惡, 而旣罪其兄矣。 宜有參酌之道, 放送, 睦天任, 出於求宦之心, 極邊定配, 柳慶裕還發配所, 沈受觀彦禮, 幷放送也。" 大臣諸臣, 力言徑先酌處之失, 上不聽。 鎭遠曰: "廷紳通書獄中, 使廷玉變辭之罪大矣。 如此之類, 全然放釋, 則恐有後弊之難防矣上遂命定配。 仍下敎曰: "天任廷玉廷紳, 竝解枷, 移送西間, 重煥日瑞, 更令嚴刑得情。"

【史臣曰: 李森, 本以奸猾武夫, 當景廟初年, 與一鏡就商南泰徵朴纉新輩, 諂附賊, 締結宦妾, 圖換局面, 誣逼東宮, 國人之指目, 固已久矣。 及夫景廟禮陟之時, 方帶將任, 故一世之人, 皆疑其擁兵作亂。 其時前司諫李鳳翼, 爲陳一疏, 逆折奸萠, 更化之後, 鳳翼又以諫官發啓, 始獲命竄。 至是, 又復緊出於廷玉之招。 若嚴加究覈, 奸凶情節, 庶可鉤得, 而拿囚之後, 因大臣引入, 鞫坐遷就。 適値憫旱錄囚之日, 至有親臨酌處之擧, 而廷玉天任輩, 皆賴獲免。 噫! 漏網呑舟, 已極可恨, 而祖宗三尺之法, 亦未免低仰, 識者竊歎。】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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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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