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수정실록5권, 경종 4년 1월 10일 을유 1/1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윤각의 옥중 졸기
국역
윤각(尹慤)이 자복(自服)하지 않고 죽었다. 윤각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무신 겸 선전관(武臣兼宣傳官)에 보임되었다. 숙종(肅宗)이 일찍이 원중(苑中)에 임어하여 무사(武士)들을 사열하다가 윤각의 풍의(風儀)를 보고 지목하여 이르기를,
"저기 수염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였는데, 드디어 차서에 구애없이 탁용(擢用)하여 벼슬이 총융사(總戎使)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까지 이르렀다. 박상검(朴尙儉)이 이미 용사(用事)하자 윤각이 탄핵을 받아 삼화부(三和府)로 찬배(竄配)되었었는데, 목호룡(睦虎龍)이 무옥(誣獄)을 일으킴에 이르러서는 체포되어 옥에 갇혔고, 온갖 방법으로 죄를 만들어 얽어 넣으려 했으나 다만 죄를 성립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작처(酌處)하라고 한 것이 일곱 번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관(臺官)에게 저지당하였다. 고문이 말할 수 없이 혹독했지만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는데, 드디어 옥중(獄中)에서 병들어 죽었으니, 이때 나이 60세였다. 영조(英祖) 원년(1725)에 설원(雪怨)시키고 인하여 하교하기를,
"윤각의 경우는 매우 원통하고 또 다른 무신(武臣)과는 자별한 점이 있으니, 특별히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하고 그 자손(子孫)을 녹용(錄用)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98면
원문
경종 4년 (1724) 1월 10일
경종수정실록5권, 경종 4년 1월 10일 을유 1/1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윤각의 옥중 졸기
국역
윤각(尹慤)이 자복(自服)하지 않고 죽었다. 윤각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무신 겸 선전관(武臣兼宣傳官)에 보임되었다. 숙종(肅宗)이 일찍이 원중(苑中)에 임어하여 무사(武士)들을 사열하다가 윤각의 풍의(風儀)를 보고 지목하여 이르기를,
"저기 수염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였는데, 드디어 차서에 구애없이 탁용(擢用)하여 벼슬이 총융사(總戎使)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까지 이르렀다. 박상검(朴尙儉)이 이미 용사(用事)하자 윤각이 탄핵을 받아 삼화부(三和府)로 찬배(竄配)되었었는데, 목호룡(睦虎龍)이 무옥(誣獄)을 일으킴에 이르러서는 체포되어 옥에 갇혔고, 온갖 방법으로 죄를 만들어 얽어 넣으려 했으나 다만 죄를 성립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작처(酌處)하라고 한 것이 일곱 번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관(臺官)에게 저지당하였다. 고문이 말할 수 없이 혹독했지만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는데, 드디어 옥중(獄中)에서 병들어 죽었으니, 이때 나이 60세였다. 영조(英祖) 원년(1725)에 설원(雪怨)시키고 인하여 하교하기를,
"윤각의 경우는 매우 원통하고 또 다른 무신(武臣)과는 자별한 점이 있으니, 특별히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하고 그 자손(子孫)을 녹용(錄用)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398면
원문
원본
경종 4년 (1724) 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