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수정실록3권, 경종 2년 5월 7일 신묘 1/2 기사 / 1722년 청 강희(康熙) 61년
이홍술의 옥중 졸기
국역
이홍술(李弘述)이 옥중(獄中)에서 죽었다. 이홍술은 침착하고 굳세어 기사(騎射)에 능했으므로, 젊어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숙종조(肅宗朝)에 평안도 절도사가 되어서는 명망이 무신 가운데 으뜸이었다. 숙종 42년에 훈련 대장에 승진되고 형조 판서를 지냈다. 숙종이 승하(昇遐)하자 금병(禁兵)을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였는데, 행진(行陣)을 엄중히 하여 출입자를 기찰(譏察)하였다. 비록 수보(首輔)060) 인 김창집(金昌集)의 명령도 받지 않았으므로, 궁문(宮門)이 숙연(肅然)하여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경종(景宗)이 즉위하여서는 대신(大臣)과 함께 저사(儲嗣)를 세울 것을 청하여 임금이 허락하였으므로, 드디어 영종(英宗)을 책립(冊立)하여 왕세제(王世弟)로 삼았다. 그런데 김일경(金一鏡)이 은밀히 환관(宦官) 박상검(朴尙儉)과 결탁하여 교지(橋旨)로 선전관(宣傳官)을 발견(發遣)하여 이홍술의 병부(兵符)를 빼앗았다. 처음에 이홍술이 포도 대장을 겸직하고 있을 적에 요인(妖人) 육현(陸玄)이 무리를 모아 도적질을 하였으므로 체포하여 장살(杖殺)하였는데, 김일경이, ‘육현은 평소 김창집의 문하에 노닐었으므로, 그들의 은밀한 일을 알게 되자, 김창집이 그를 미워한 끝에 몰래 이홍술을 시켜 때려 죽임으로써 그 입을 봉하려 했던 것이다.’고 하면서 이홍술을 하옥(下獄)시키고 고문을 가하여 힐문했으나, 이홍술이 사기(辭氣)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옥졸(獄卒)들도 경복(警服)하였다. 서덕수(徐德修)는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므로 옥리(獄吏)가 결안(結案)에다 대신 압서(押署)하였다. 또 이홍술을 협박하니, 이홍술이 꾸짖어 말하기를, ‘죽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거짓 승복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끝내 승복하지 않은 채 옥중에서 죽었는데, 그때 나이 76세였다. 영종(英宗) 원년에 이홍술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68면
- [註 060] 수보(首輔) : 수상(首相).
원문
○辛卯/李弘述死於獄中。 弘述沈毅善騎射。 少登武科, 肅宗朝爲平安道節度使, 名冠武臣。 四十二年, 進訓鍊大將, 判刑曹。 肅宗昇遐, 率禁兵扈衛宮城, 嚴行陣譏出入。 雖首輔金昌集, 令亦不受, 故宮門肅然無譁。 景宗卽位, 與大臣, 請建儲嗣, 上許之, 遂冊英宗爲王世弟。 金一鏡陰結宦官朴尙儉, 矯旨發遣宣傳官, 奪弘述符。 初, 弘述兼捕盜大將, 妖人陸玄結黨爲盜, 弘述收捕杖殺之。 一鏡以爲: "玄素遊昌集之門, 知陰事, 昌集嫉之, 闇使弘述撲殺之, 以滅其口。" 下弘述獄, 掠問之, 弘述辭氣不少屈, 獄卒驚服。 徐德修受栲而絶, 獄吏代押爲結案。 又脅弘述, 弘述罵曰: "死, 易耳。 吾豈誣服者哉?" 卒不服, 死於獄中, 時年七十六。 英宗元年, 命復弘述官。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68면
경종 2년 (1722) 5월 7일
경종수정실록3권, 경종 2년 5월 7일 신묘 1/2 기사 / 1722년 청 강희(康熙) 61년
이홍술의 옥중 졸기
국역
이홍술(李弘述)이 옥중(獄中)에서 죽었다. 이홍술은 침착하고 굳세어 기사(騎射)에 능했으므로, 젊어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숙종조(肅宗朝)에 평안도 절도사가 되어서는 명망이 무신 가운데 으뜸이었다. 숙종 42년에 훈련 대장에 승진되고 형조 판서를 지냈다. 숙종이 승하(昇遐)하자 금병(禁兵)을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였는데, 행진(行陣)을 엄중히 하여 출입자를 기찰(譏察)하였다. 비록 수보(首輔)060) 인 김창집(金昌集)의 명령도 받지 않았으므로, 궁문(宮門)이 숙연(肅然)하여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경종(景宗)이 즉위하여서는 대신(大臣)과 함께 저사(儲嗣)를 세울 것을 청하여 임금이 허락하였으므로, 드디어 영종(英宗)을 책립(冊立)하여 왕세제(王世弟)로 삼았다. 그런데 김일경(金一鏡)이 은밀히 환관(宦官) 박상검(朴尙儉)과 결탁하여 교지(橋旨)로 선전관(宣傳官)을 발견(發遣)하여 이홍술의 병부(兵符)를 빼앗았다. 처음에 이홍술이 포도 대장을 겸직하고 있을 적에 요인(妖人) 육현(陸玄)이 무리를 모아 도적질을 하였으므로 체포하여 장살(杖殺)하였는데, 김일경이, ‘육현은 평소 김창집의 문하에 노닐었으므로, 그들의 은밀한 일을 알게 되자, 김창집이 그를 미워한 끝에 몰래 이홍술을 시켜 때려 죽임으로써 그 입을 봉하려 했던 것이다.’고 하면서 이홍술을 하옥(下獄)시키고 고문을 가하여 힐문했으나, 이홍술이 사기(辭氣)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옥졸(獄卒)들도 경복(警服)하였다. 서덕수(徐德修)는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므로 옥리(獄吏)가 결안(結案)에다 대신 압서(押署)하였다. 또 이홍술을 협박하니, 이홍술이 꾸짖어 말하기를, ‘죽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거짓 승복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끝내 승복하지 않은 채 옥중에서 죽었는데, 그때 나이 76세였다. 영종(英宗) 원년에 이홍술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68면
- [註 060] 수보(首輔) : 수상(首相).
원문
○辛卯/李弘述死於獄中。 弘述沈毅善騎射。 少登武科, 肅宗朝爲平安道節度使, 名冠武臣。 四十二年, 進訓鍊大將, 判刑曹。 肅宗昇遐, 率禁兵扈衛宮城, 嚴行陣譏出入。 雖首輔金昌集, 令亦不受, 故宮門肅然無譁。 景宗卽位, 與大臣, 請建儲嗣, 上許之, 遂冊英宗爲王世弟。 金一鏡陰結宦官朴尙儉, 矯旨發遣宣傳官, 奪弘述符。 初, 弘述兼捕盜大將, 妖人陸玄結黨爲盜, 弘述收捕杖殺之。 一鏡以爲: "玄素遊昌集之門, 知陰事, 昌集嫉之, 闇使弘述撲殺之, 以滅其口。" 下弘述獄, 掠問之, 弘述辭氣不少屈, 獄卒驚服。 徐德修受栲而絶, 獄吏代押爲結案。 又脅弘述, 弘述罵曰: "死, 易耳。 吾豈誣服者哉?" 卒不服, 死於獄中, 時年七十六。 英宗元年, 命復弘述官。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68면
원본
경종 2년 (1722)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