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실록11권, 경종 3년 1월 24일 갑진 2/3 기사 /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무고 죄인 권진성의 졸기
국역
무고 죄인(誣告罪人) 권진성(權盡性)이 복주(伏誅)되었다. 권진성은 고(故) 상신(相臣) 권상하(權尙夏)의 종손(從孫)이다. 몸가짐이 패악(悖惡)하여 불의(不義)를 많이 행하였고 어보(御寶)를 위조(僞造)하여 읍옥(邑獄)에 수감(收監)되었는데, 상변(上變)을 칭탁하므로 옮겨 가두고 국청(鞫廳)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고변서(告變書) 속에 있는 말로 끄집어 내어 묻기를,
"역모(逆謀)를 한 자는 누구이며, 흉인(凶人)의 글 두 장은 어떤 사람이 쓴 것인가? 그리고 글 가운데 사연은 어떤 것인가? 명록(名錄)이란 어떠한 명록이며 무슨 까닭으로 형리(刑吏)와 아노(衙奴)에게 빼앗겼는가? 그리고 아노는 어느 고을 수령의 종이더냐? 모두 일일이 바른 대로 불어라."
하니, 권진성이 공초(供招)하기를,
"병술년037) 11월에 청풍 부사(淸風府使) 심정보(沈廷輔)가 김무정(金武貞)을 시켜 만나보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노론(老論)이 미리 화(禍)를 멀리하고 몸을 안전하게 할 계책으로, 이건명(李健命)이 서신으로 나에게 권유하여 바야흐로 독(毒)을 넣는 것과 자객(刺客)을 쓰는 것과 군사를 일으키는 것 등 세 가지 일을 도모하고 있다.’고 하고, 심정보가 손수 은(銀)은 낸 각인(各人)의 명록(名錄)을 써서 제가 상경(上京)하는 길에 부탁하였으나, 제 자신이 위조의 죄에 빠져 회덕현(懷德縣) 옥(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형리 박필명(朴必明)이 아노(衙奴)와 더불어 주쉬(主倅)의 명령이라 칭탁하고 문서(文書)를 수탐(搜探)해 갔는데, 본쉬는 곧 조정강(趙正綱)입니다."
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의계(議啓)하여 이르기를,
"심정보(沈廷輔)가 그가 어보(御寶)를 위조한 일을 적발한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혐의 때문에 발고하여 곧 나문(拿問)을 청한다면 뒷날의 폐단에 관계됩니다."
하고, 먼저 박필명을 잡아다 핵실(覈實)할 것을 청하였다. 박필명에게 공초를 받은 뒤 다시 권진성을 추문(推問)하고, 면질(面質)시키니 권진성이 말이 막혔다. 형벌을 더하니 드디어 무고(誣告)임을 자복(自服)하였다. 이에 결안(結案)하기를,
"심정보가 청풍 부사(淸風府使)가 되었을 때 저의 어보를 위조한 죄가 발각되어 옥사가 이루어졌고 사지(死地)에 빠졌으므로, 이 때문에 혐의를 품고 죽음 속에서 살길을 구하는 계책으로 무고한 것이 적실(的實)합니다. 박필명은 그 당시 형리(刑吏)로서 옥중에 출입하였고 본쉬(本倅)였던 조정강은 이미 사망하여 빙문(憑問)할 계제(階梯)가 없어서 문서를 찾아내 갔다는 것을 박필명에게 미루어대어 심정보를 무고한 계책을 사실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이른바 명록(名錄)의 문서는 모두 지어낸 거짓말이며, 이른바 서찰(書札)과 처음 문초할 때에 공술한 바 심정보와 더불어 수작했다는 흉언(凶言) 또한 지어낸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038) 하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였으며, 박필명을 놓아 보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77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註 037] 병술년 : 1706 숙종 32년.
- [註 038]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 : 사형(死刑)을 할 때 가벼운 죄는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까지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를 피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重罪)는 이에 구애받지 않고 집행하던 참형(斬刑).
원문
○誣告罪人權盡性伏誅。 盡性, 故相臣尙夏從孫也。 持身悖惡, 多行不義, 以僞造御寶, 被繫邑獄, 稱以上變, 故逮囚設鞫。 以其告變書中語發問曰: "逆謀者是何人, 凶人書二張, 是何人書, 而書中辭意何如? 名錄是何許名錄, 而何故見奪於刑吏及衙奴? 衙奴是何倅之奴? 竝一一直招。" 盡性供以爲: "丙戌十一月, 淸風府使沈廷輔, 使金武貞請見言: ‘老論預爲遠禍安身之策, 李健命書, 要勸渠方圖置毒、刺客、起兵三事。’ 廷輔手書出銀各人名錄, 付渠上京, 身陷僞造之罪, 見囚懷德縣獄。 刑吏朴必明, 與衙奴, 稱以主倅之令, 搜探文書而去。 本倅卽趙正綱" 云。 鞫廳議啓曰: "沈廷輔摘發其僞造御寶之事, 世所共知, 因嫌發告, 輒請拿問, 有關後弊。" 先請拿覈必明。 必明取招後, 更推盡性面質, 盡性理屈加刑, 遂自服其誣告。 結案曰:
沈廷輔爲淸風府使時, 渠之御寶僞造之罪, 發覺成獄, 陷於死地, 以此銜嫌, 以死中求生之計, 誣告的實。 朴必明以其時刑吏, 出入獄中, 本倅趙正綱, 旣已身死, 憑問無階, 則以文書搜出, 推諉必明, 以實誣告廷輔之計。 所謂名錄文書, 皆是做出虛言, 所謂書札及初招所供, 與廷輔酬酢凶言, 亦是做出云。
不待時處斬, 籍沒家産, 朴必明放送。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77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경종 3년 (1723) 1월 24일
경종실록11권, 경종 3년 1월 24일 갑진 2/3 기사 /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무고 죄인 권진성의 졸기
국역
무고 죄인(誣告罪人) 권진성(權盡性)이 복주(伏誅)되었다. 권진성은 고(故) 상신(相臣) 권상하(權尙夏)의 종손(從孫)이다. 몸가짐이 패악(悖惡)하여 불의(不義)를 많이 행하였고 어보(御寶)를 위조(僞造)하여 읍옥(邑獄)에 수감(收監)되었는데, 상변(上變)을 칭탁하므로 옮겨 가두고 국청(鞫廳)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고변서(告變書) 속에 있는 말로 끄집어 내어 묻기를,
"역모(逆謀)를 한 자는 누구이며, 흉인(凶人)의 글 두 장은 어떤 사람이 쓴 것인가? 그리고 글 가운데 사연은 어떤 것인가? 명록(名錄)이란 어떠한 명록이며 무슨 까닭으로 형리(刑吏)와 아노(衙奴)에게 빼앗겼는가? 그리고 아노는 어느 고을 수령의 종이더냐? 모두 일일이 바른 대로 불어라."
하니, 권진성이 공초(供招)하기를,
"병술년037) 11월에 청풍 부사(淸風府使) 심정보(沈廷輔)가 김무정(金武貞)을 시켜 만나보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노론(老論)이 미리 화(禍)를 멀리하고 몸을 안전하게 할 계책으로, 이건명(李健命)이 서신으로 나에게 권유하여 바야흐로 독(毒)을 넣는 것과 자객(刺客)을 쓰는 것과 군사를 일으키는 것 등 세 가지 일을 도모하고 있다.’고 하고, 심정보가 손수 은(銀)은 낸 각인(各人)의 명록(名錄)을 써서 제가 상경(上京)하는 길에 부탁하였으나, 제 자신이 위조의 죄에 빠져 회덕현(懷德縣) 옥(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형리 박필명(朴必明)이 아노(衙奴)와 더불어 주쉬(主倅)의 명령이라 칭탁하고 문서(文書)를 수탐(搜探)해 갔는데, 본쉬는 곧 조정강(趙正綱)입니다."
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의계(議啓)하여 이르기를,
"심정보(沈廷輔)가 그가 어보(御寶)를 위조한 일을 적발한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혐의 때문에 발고하여 곧 나문(拿問)을 청한다면 뒷날의 폐단에 관계됩니다."
하고, 먼저 박필명을 잡아다 핵실(覈實)할 것을 청하였다. 박필명에게 공초를 받은 뒤 다시 권진성을 추문(推問)하고, 면질(面質)시키니 권진성이 말이 막혔다. 형벌을 더하니 드디어 무고(誣告)임을 자복(自服)하였다. 이에 결안(結案)하기를,
"심정보가 청풍 부사(淸風府使)가 되었을 때 저의 어보를 위조한 죄가 발각되어 옥사가 이루어졌고 사지(死地)에 빠졌으므로, 이 때문에 혐의를 품고 죽음 속에서 살길을 구하는 계책으로 무고한 것이 적실(的實)합니다. 박필명은 그 당시 형리(刑吏)로서 옥중에 출입하였고 본쉬(本倅)였던 조정강은 이미 사망하여 빙문(憑問)할 계제(階梯)가 없어서 문서를 찾아내 갔다는 것을 박필명에게 미루어대어 심정보를 무고한 계책을 사실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이른바 명록(名錄)의 문서는 모두 지어낸 거짓말이며, 이른바 서찰(書札)과 처음 문초할 때에 공술한 바 심정보와 더불어 수작했다는 흉언(凶言) 또한 지어낸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038) 하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였으며, 박필명을 놓아 보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77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註 037] 병술년 : 1706 숙종 32년.
- [註 038]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 : 사형(死刑)을 할 때 가벼운 죄는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까지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를 피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重罪)는 이에 구애받지 않고 집행하던 참형(斬刑).
원문
○誣告罪人權盡性伏誅。 盡性, 故相臣尙夏從孫也。 持身悖惡, 多行不義, 以僞造御寶, 被繫邑獄, 稱以上變, 故逮囚設鞫。 以其告變書中語發問曰: "逆謀者是何人, 凶人書二張, 是何人書, 而書中辭意何如? 名錄是何許名錄, 而何故見奪於刑吏及衙奴? 衙奴是何倅之奴? 竝一一直招。" 盡性供以爲: "丙戌十一月, 淸風府使沈廷輔, 使金武貞請見言: ‘老論預爲遠禍安身之策, 李健命書, 要勸渠方圖置毒、刺客、起兵三事。’ 廷輔手書出銀各人名錄, 付渠上京, 身陷僞造之罪, 見囚懷德縣獄。 刑吏朴必明, 與衙奴, 稱以主倅之令, 搜探文書而去。 本倅卽趙正綱" 云。 鞫廳議啓曰: "沈廷輔摘發其僞造御寶之事, 世所共知, 因嫌發告, 輒請拿問, 有關後弊。" 先請拿覈必明。 必明取招後, 更推盡性面質, 盡性理屈加刑, 遂自服其誣告。 結案曰:
沈廷輔爲淸風府使時, 渠之御寶僞造之罪, 發覺成獄, 陷於死地, 以此銜嫌, 以死中求生之計, 誣告的實。 朴必明以其時刑吏, 出入獄中, 本倅趙正綱, 旣已身死, 憑問無階, 則以文書搜出, 推諉必明, 以實誣告廷輔之計。 所謂名錄文書, 皆是做出虛言, 所謂書札及初招所供, 與廷輔酬酢凶言, 亦是做出云。
不待時處斬, 籍沒家産, 朴必明放送。
-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77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원본
경종 3년 (1723)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