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실록10권, 경종 2년 10월 20일 임신 2/2 기사 / 1722년 청 강희(康熙) 61년
국청 죄인 홍계적의 졸기
국역
국청 죄인(鞫廳罪人) 홍계적(洪啓迪)이 옥중(獄中)에서 죽었다. 처음에 국청(鞫廳)의 문목(問目)에 이르기를,
"천위(天位)가 불안하고 종사(宗社)가 장차 망하려 하므로, 애통(哀痛)한 교지에 대신(大臣)에게 도움을 구하였으니, 중도를 따라서 막아서 못하게 했어야 할 것이다. 대신(大臣)이 청대(請對)한 뜻은 광구(匡救)하여 부지(扶持)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백계(百計)로 저당(阻塘)하여 위로는 군부(君父)를 조절(操切)하고 아래로는 간로(諫路)를 두색(杜塞)하였다. 조송(趙松)을 죽일 만하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역적 조송의 초사에서 나왔으니, 처음에 흉모(凶謀)에 참여하여 듣지 못하였으면, 조송이 은화를 훔친 것이 저에게 무슨 관련이 있기에 죽이려는 데에 이르렀겠느냐?……"
하였는데, 공사(供辭)에 온갖 말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천지(天地)와 귀신을 가리키면서 스스로 맹서하며 심지어, ‘자취가 죄적(罪籍)에 있으니, 토주(討誅)하기를 청하는 정성을 펴지 못하고, 이름이 역적의 공초(供招)에서 나와 도리어 망측(罔測)한 죄과(罪科)에 빠졌다…….’고까지 하였다. 국청 대신(鞫廳大臣)의 뜻은 참작하여 처치하는 데 있었는데, 대의(臺議)가 거듭 일어나 형문을 받은 지 4차례 만에 끝내 옥중에서 병사(病死)하기에 이르렀다. 홍계적은 대개 당론(黨論)에 병든 자이다. 그의 비망기(備忘記)를 작환(繳還)하고 청대(請對)를 저지하여 막은 두 가지 일은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분개하였고, 역적 조송(趙松)의 초사(招辭)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확실하게 믿을 바가 아닌데, 이로써 흉역에 참가하여 모의하였다 하여 마침내 항양(桁楊)557) 아래에서 죽게 하였으니, 진실로 원통하다. 이것도 또한 위관(委官)이 안옥(按獄)하는 데 앉아서 횡의(橫議)를 진정시키지 못하여 초래한 것이니, 애석하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58면
- [註 557] 항양(桁楊) : 형장.
원문
○鞫廳罪人洪啓迪死於獄中。 初, 鞫廳問目曰: "天位不安, 宗社將亡, 哀痛之旨, 求助於大臣, 則從中而沮遏之。 大臣請對, 意在於匡扶, 則百計而阻搪之, 上以操切君父, 下以杜塞諫路, 至於趙松可殺之說, 出於賊松之招。 初不與聞於凶謀, 則松之偸銀, 於渠何關, 而至於欲殺乎?" 云云。 供辭極口稱冤, 指天地鬼神而自誓, 至曰: "跡在罪籍, 未伸請討之誠, 名出賊招, 反陷罔測之科云云。" 鞫廳大臣, 意在酌處, 而臺議重發, 受刑四次, 終至瘐死。 啓迪蓋病於黨論者也。 其繳還備忘, 阻搪請對兩事, 人皆齊憤, 而至於逆松招辭, 未必的信。 以此而謂之參謀凶逆, 竟斃於桁楊之下, 則誠冤矣。 此亦委官按獄, 不能坐鎭橫議而致之也, 惜哉!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58면
경종 2년 (1722) 10월 20일
경종실록10권, 경종 2년 10월 20일 임신 2/2 기사 / 1722년 청 강희(康熙) 61년
국청 죄인 홍계적의 졸기
국역
국청 죄인(鞫廳罪人) 홍계적(洪啓迪)이 옥중(獄中)에서 죽었다. 처음에 국청(鞫廳)의 문목(問目)에 이르기를,
"천위(天位)가 불안하고 종사(宗社)가 장차 망하려 하므로, 애통(哀痛)한 교지에 대신(大臣)에게 도움을 구하였으니, 중도를 따라서 막아서 못하게 했어야 할 것이다. 대신(大臣)이 청대(請對)한 뜻은 광구(匡救)하여 부지(扶持)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백계(百計)로 저당(阻塘)하여 위로는 군부(君父)를 조절(操切)하고 아래로는 간로(諫路)를 두색(杜塞)하였다. 조송(趙松)을 죽일 만하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역적 조송의 초사에서 나왔으니, 처음에 흉모(凶謀)에 참여하여 듣지 못하였으면, 조송이 은화를 훔친 것이 저에게 무슨 관련이 있기에 죽이려는 데에 이르렀겠느냐?……"
하였는데, 공사(供辭)에 온갖 말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천지(天地)와 귀신을 가리키면서 스스로 맹서하며 심지어, ‘자취가 죄적(罪籍)에 있으니, 토주(討誅)하기를 청하는 정성을 펴지 못하고, 이름이 역적의 공초(供招)에서 나와 도리어 망측(罔測)한 죄과(罪科)에 빠졌다…….’고까지 하였다. 국청 대신(鞫廳大臣)의 뜻은 참작하여 처치하는 데 있었는데, 대의(臺議)가 거듭 일어나 형문을 받은 지 4차례 만에 끝내 옥중에서 병사(病死)하기에 이르렀다. 홍계적은 대개 당론(黨論)에 병든 자이다. 그의 비망기(備忘記)를 작환(繳還)하고 청대(請對)를 저지하여 막은 두 가지 일은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분개하였고, 역적 조송(趙松)의 초사(招辭)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확실하게 믿을 바가 아닌데, 이로써 흉역에 참가하여 모의하였다 하여 마침내 항양(桁楊)557) 아래에서 죽게 하였으니, 진실로 원통하다. 이것도 또한 위관(委官)이 안옥(按獄)하는 데 앉아서 횡의(橫議)를 진정시키지 못하여 초래한 것이니, 애석하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58면
- [註 557] 항양(桁楊) : 형장.
원문
○鞫廳罪人洪啓迪死於獄中。 初, 鞫廳問目曰: "天位不安, 宗社將亡, 哀痛之旨, 求助於大臣, 則從中而沮遏之。 大臣請對, 意在於匡扶, 則百計而阻搪之, 上以操切君父, 下以杜塞諫路, 至於趙松可殺之說, 出於賊松之招。 初不與聞於凶謀, 則松之偸銀, 於渠何關, 而至於欲殺乎?" 云云。 供辭極口稱冤, 指天地鬼神而自誓, 至曰: "跡在罪籍, 未伸請討之誠, 名出賊招, 反陷罔測之科云云。" 鞫廳大臣, 意在酌處, 而臺議重發, 受刑四次, 終至瘐死。 啓迪蓋病於黨論者也。 其繳還備忘, 阻搪請對兩事, 人皆齊憤, 而至於逆松招辭, 未必的信。 以此而謂之參謀凶逆, 竟斃於桁楊之下, 則誠冤矣。 此亦委官按獄, 不能坐鎭橫議而致之也, 惜哉!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58면
원본
경종 2년 (1722)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