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5권, 숙종 27년 4월 25일 임오 2/3 기사 /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집의 김치룡이 집안 변고를 일으킨 유명겸·심익겸을 치죄할 것을 건의하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집의 김치룡(金致龍)이 의논하기를,
"고(故) 진사(進士) 유석기(兪碩基)는 윤씨(尹氏)에게 장가 가서 아들 유언성(兪彦聖)을 낳고 그 아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 뒤에 유석기가 죽고 유석기의 아버지 유명관(兪命觀)이 또 죽으니, 유언성이 대를 이어 그 상(喪)에 복(服)을 입었습니다 윤씨도 자기 집에서 부음을 듣고 그 집에 도착하니, 유명관의 동생이나 아들 및 친척들이 누구도 이의(異議)를 걸어 오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명관의 매제[妹婿] 심익겸(沈益謙)이 유언성(兪彦聖)이 입은 최복(衰服)을 빼앗았고 윤씨로 하여금 통곡하며 방황하여 갈 곳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에 드디어 자기 남편의 무덤에 가서 언서(諺書)로 유서를 써서 묘목(墓木)에 걸어 놓고, 그 나무 가지를 꺾어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습니다. 유명관의 아우 유명겸(兪命謙)은 그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 집안을 잘 처리하지 못하여 이런 변고를 발생시켰으니, 심익겸(沈益謙)과 유명겸(兪命謙)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수금(囚禁)시키고, 사실을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문
숙종 27년 (1701) 4월 25일
숙종실록35권, 숙종 27년 4월 25일 임오 2/3 기사 /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집의 김치룡이 집안 변고를 일으킨 유명겸·심익겸을 치죄할 것을 건의하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집의 김치룡(金致龍)이 의논하기를,
"고(故) 진사(進士) 유석기(兪碩基)는 윤씨(尹氏)에게 장가 가서 아들 유언성(兪彦聖)을 낳고 그 아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 뒤에 유석기가 죽고 유석기의 아버지 유명관(兪命觀)이 또 죽으니, 유언성이 대를 이어 그 상(喪)에 복(服)을 입었습니다 윤씨도 자기 집에서 부음을 듣고 그 집에 도착하니, 유명관의 동생이나 아들 및 친척들이 누구도 이의(異議)를 걸어 오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명관의 매제[妹婿] 심익겸(沈益謙)이 유언성(兪彦聖)이 입은 최복(衰服)을 빼앗았고 윤씨로 하여금 통곡하며 방황하여 갈 곳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에 드디어 자기 남편의 무덤에 가서 언서(諺書)로 유서를 써서 묘목(墓木)에 걸어 놓고, 그 나무 가지를 꺾어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습니다. 유명관의 아우 유명겸(兪命謙)은 그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 집안을 잘 처리하지 못하여 이런 변고를 발생시켰으니, 심익겸(沈益謙)과 유명겸(兪命謙)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수금(囚禁)시키고, 사실을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문
원본
숙종 27년 (1701) 4월 25일